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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20812 /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 잠 14:1-9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2.08.06|조회수259 목록 댓글 0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잠 14:1-9

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잠 14:1-9 / [의지할데 없는 이를 도와주어야] 슬기로운 여인은 집안을 일으키나 미련한 여인은 그 집안을 허문다. 2)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도, 비뚤게 사는 사람은 여호와를 우습게 여긴다. 3)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잘난 체하여 매 하나라도 더 맞고, 슬기로운 사람은 그 하는 말로 스스로를 지킨다. 4) 외양간에 소가 없으면 구유통은 깨끗하겠지만, 황소가 없으면 그 많은 곡식은 어떻게 거두랴! 5) 진실한 증언에는 거짓이 없으나 거짓된 증인에는 바른 것 하나 없다. 6) 남을 비웃는 자는 제 아무리 지혜를 찾아나서도 얻지 못할 것이나, 지각이 있는 사람은 쉽사리 깨달음에 다다른다. 7) 미련한 자 앞에서는 빨리 길을 떠나라. 그가 하는 말속에서는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하리라. 8) 속이 깊은 사람은 슬기로워 어떻게 살아갈지 잘 알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남을 속이기만 할 뿐이다. 9)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죄를 짓고 사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액운을 자초하나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날로날로 번창한다.

 

잠언은 훈계와 금언(격언)으로 되어 있는데, 금언은 경험과 관찰을 간략한 명제 형태로 쓴 것입니다. 10-15장은 3인칭 직설법으로 기록된 금언으로서 지혜를 주제로 계속 의로운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말하는 부분입니다. 잠언의 저자는 뚜렷한 대조와 비유를 써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1-3) 한 가정의 흥망성쇠가 여인에게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한편 이는 지혜를 의인화한 것이기도 합니다. 잠언의 저자는 여인의 비유를 써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반듯하게 설 것이지만 여호와를 경멸하는 미련한 사람은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잠언의 중심 신학을 확실하게 전달합니다(1).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정직합니다. 그는 늘 자신이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있음을 인식하며 살기에 겉과 속이 같습니다(2). 지혜는 언어를 사용해 자신을 지키는 삶의 기술입니다. 절제와 품격이 있는 언어생활은 나를 나답게 하고 나의 가치를 높입니다(3).

 

명철한 자는(4-6)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을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의 과감한 실행이 필요합니다. 주저하지 말고 과감하게 지금을 투자하여 풍성한 미래를 예약해야 합니다(4). 심리적 압박을 주는 재판정에서 하나님의 공의 실현을 위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계산 없이 “예”와 “아니오”를 말하는 단순함이 지혜입니다(5).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지혜가 있는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배웁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에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6).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7-9) 평소에 보고 배운 것이 행동으로 나옵니다. 삶의 좋은 모델이 되는 사람과 자주 만나야 합니다. 지혜가 내게 스며듭니다(7). 자기 삶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시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 모두 맡긴 사람은 삶의 목적과 방향, 소명을 분명하게 압니다. 그의 시간은 분명한 방향을 향해 흘러갑니다(8). 정직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죄를 봅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생명을 얻습니다(9).

 

적용: 당신은 지금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삶 안으로 과감하게 뛰어 들어가십시오.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과거와 가족의 결점을 인정하고, 물려받은 것 중 거부하고 싶은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가령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 자신에게 미치고 있다면, 그 사실을 단순히 부정할 것이 아니라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항상 과거에 고정된 채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 수잔 놀렌-혹스마의《생각이 너무 많은 여자》중에서 -

 

< 설 교 >

잠언강해 34(잠14:1-9)

강물처럼

어떤 부자 집에 아들이 장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며느리 될 사람을 고르기 위해 방을 붙였는데, 이런 방이었습니다.

엽전 한냥으로 안방을 가득 채울 물건을 사올 사람이면 며느리로 맞이하겠다는 방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딸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그 집에 자기 딸을 시집보내고 싶었지만 도저히 엄두가 안났습니다.

어떻게 엽전 하나로 안방을 가득채울 수 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가난한 집에 여자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오후에 그 방을 채워 놓을테니 모두 다 내가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들어와서는 안된다고 말하고는 그 엽전 한냥을 받아갔습니다.

그리고 오후가 돼서 그 여인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부자가 묻습니다. 그래 다 채워놨냐? 그 여인이 다 채워놓았으니 가보시라고.......

부자가 큰방을 들어가 보니 이름 모를 그윽한 향수만 가득나고 물건을 그대로였습니다.

부자가 그 여자에게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지 않느냐고 호통을 칩니다.

그때 여자가 대답하기를 방안을 가득채우라고 말씀하셨지 뭘로 가득 채울지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기에 향수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때사 이 부자집 주인은 그 여자의 지혜를 보고 며느리로 삼았다는 이야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이 외형적인 얼굴에 치중합니다.

그래서 성형수술이 유행입니다.

조금만 외형이 마음에 안들면 뜯어고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성형수술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외국에서 원정 성형수술을 하러 올 만큼 발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내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입니까? 무엇이 내적 아름다움입니까?

그것은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이 내적 아름다움의 최고봉입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얻겠느냐고 잠언은 남자들에게 묻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면 3년이 편하고 착한 여인을 만나면 30년이 편하고 지혜로운 여인을 만나면 3대가 편하다.........

외모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씨는 평생을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혜로운 마음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집을 세우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허무는 여자가 있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집을 세우는 여자가 지혜로운 여자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자고로 집안에 여자를 잘들여야 한다.....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여자는 한 가문을 세우고 허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여 청년들은 어느쪽에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여자를 택할 때, 얼굴보고 인물보고 택하면 백이면 백 실패하게 돼 있습니다.

마음을 보고 택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가진 여자를 택하면 후회하지 않습니다.

잠언에 보면 어진 아내와 악한 아내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본 말씀이지만, 잠 11:22절에 보면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

금고리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돼지 코에 걸려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웃기고 어울리지 않는 모습니까?

아무리 얼굴을 예쁘게 꾸미고 화장을 해도

무개념한 여자를 보면, 그 얼굴이 오히려 아깝다.......그런 생각이 안나겠어요?

그렇다면, 지혜로운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요?

 

첫째는 몸가짐, 마음가짐이 바른 사람을 말합니다.

잠 12:4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 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여자 한번 잘못 만나면, 평생 뼈가 썩는 아픔을 겪어야 하지만

여자 한번 잘 만나면 만사평통하고 기쁨이 된다는 뜻입니다.

헬라의 유명한 철학자요, 심지어 성인으로 손꼽히는 소크라테스는 부인이 악처로 유명합니다.

하루는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는데

부인이 저녁을 끓일 것이 준비되지 않아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가 강의만 하니까 그의 아내가 신세타령을 하면서 구시렁구시렁하는 겁니다.

"철학을 하면 밥이 나와, 쌀이 나와" 그러면서 하도 화가 나니까 부엌 살림을 막 내던졌습니다.

양푼이며 냄비며 닥치는 데로 집어던지고 야단이 났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이 계속해서 강의만 하고 있으니까

물통에 물을 하나 가득 담아 가지고 와서 남편에게 확 끼어 얹어버렸습니다.

이때 소크라테스가 젖은 옷을 툭툭 털면서 하는 말이

"뇌성벽력이 치더니 소나기가 쏟아지는군" 하더랍니다.

그런 모습을 본 어떤 제자가 소크라테스에게 과연 우리도 결혼을 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선생님을 보니까 결혼하는데 대한 회의가 듭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눈을 크게 뜨며 하는 말이 "암, 결혼을 해야지, 결혼은 반드시 해야돼.

어진 아내 만나면 행복할 것이고, 나처럼 저런 아내를 만나면 적어도 철학자는 될 걸세"...그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한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후회하지 않는 결혼이 되기 위해서는

예쁜 아내가 아니라, 바른 마음가짐을 가진 지혜로운 아내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지혜로운 여자는 돕는 베필이 지혜로운 여잡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만들 때, 남자를 돕는 베필로 주셨습니다.

남편을 주장하는 베필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걸 내조라고 합니다. 내조의 여왕이 되야 합니다.

내조의 여왕이 지혜로운 여잡니다.

어떤 집에는 여자가 남편보다 더 기가 센 집이 있습니다.

보기에도 별로 좋지 않지만, 남자를 보면 불쌍합니다.

아무리 여자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남편이 뛰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여자가 지혜로운 여잡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평강공주 아닙니까?

 

바보 같은 온달을 장군으로 만드는 일 그게 바로 여자의 힘인 것입니다.

누군가 그런 비유를 했습니다.

자동차는 엔진이 생명이라면, 그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은 엔진오일이다........

그 엔진오일 역할이 바로 여자의 역할인 것입니다.

엔진 오일이 있어야 엔진이 무리없이 잘 돌아가고 힘을 내서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남자는 부인에게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는 것이 가장 큰 힘입니다.

대개 남자들이 술집을 잘 찾는데, 이런 사람은 백이면 백

부인이 남편을 위로해 주지 않고 바가지를 긁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술집에만 가면 술집 아가씨들이 남자들을 왕같이 떠받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자기 말을 들으주고 하니까.

술값이 아깝지 않는 겁니다.

여자들은 그걸 잘 모릅니다.

여자들이 남편에게 사랑 받는 가장 큰 비결은 남편과 한 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면 남편이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면, 술집에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왜 술집여자들에게 돈줘가면서 거기서 위로를 받습니까?

지혜로운 부인이 있으면 그 부인에게 아낌없이 주는 겁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물어버립니다.

성경에 보면 수많은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그 집을 세운 여인이 있는가 하면 그 가문을 망하게 하는 여인도 있습니다.

하와나 이세벨, 같은 여자들은 집을 허문 여자들입니다.

그러나 라합이나, 룻, 아비가일 브리스길라 같은 사람은 집을 세운 여인들입니다.

가문을 세웁니다.

그래서 지혜는 금은보다 비싸다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 안에서 바른 신앙과 믿음을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시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우리가 아무리 집을 세우기를 원하고 성을 지키기를 원하여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셔야 가능하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때 가능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자가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속에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집을 세우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허무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회사를 망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회사를 세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우는 자 곧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허무는 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가 되야 합니다.

 

 

 

 

 

그 집을 세우는 여인

잠 14:1-11 / 박조준 목사

이미 봉독한 말씀 가운데 14장 1절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오늘 저녁 생각하고 기도하십시다.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세상에 여자가 많지마는 그저 크게 나누면 두 가지인데 가정을 세우는 여인과 가정을 허는 여인이 있습니다. 건설적인 여인과 파괴적인 여인이 있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가정을 세우는 여인은 지혜로운 여인이요, 가정을 허는 여인은 미련한 여인입니다.

 

성경에 비취어서 나는 어느 편에 속하는가? 지혜있는 편인가 그렇지 않으면 미련한 편인가 스스로 반성해 보십시다. 그리고 미련한 사람되지 말고 지혜있는 사람되십시다.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잠언에 어진 아내와 악한 아내에 대해서 여러 곳에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 다같이 한 번 찾아서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잠언 11장 22절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 금고리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돼지 코에 걸려 있으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여인이 지혜롭다는 것은 그 몸가짐을 삼가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못한 여인은 그 외모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지마는 자랑이 아니라 수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12장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같이 읽어보십시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부인 잘 얻으면 평생에 행복이요 영광이지마는 잘못 얻으면 평생을 두고 뼈가 썩습니다. 헬라의 유명한 철인이요 상자로 손꼽는 소크라테스(Socrates)의 부인은 3대 악처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철학을 하는 사람은 돈버는 직업이 아닙니다. 늘 제자를 몇 사람 모아 놓고는 인생의 깊은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거기서 무슨 돈이 나옵니까? 그러니 그 부인의 사정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지요. 살림은 말할 나위 없이 쪼들려 다음 끼 끓이는 것이 문제인데, 아 남편되는 사람은 그런데는 관심도 없고 그저 밤이고 낮이고 사색이 잠겨 있고 사람을 만나면 돈도 안 나오는 이해도 할 수 없는 철학 이야기만 하니 부인은 부인대로 속이 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하루는 여전히 제자들 몇 사람 모아 놓고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에게 부인이 저녁 끓일 것이 준비되지 않아 걱정을 했더니 소크라테스 ‘아, 그런가’고 하더니 아무런 대책도 안 세우고 그대로 계속 강의에 열중하더랍니다. 그러니 이 여인이 밖에서 별별 불평을 다하면서 세상 말로 하면 아마 팔자 타령을 한 모양입니다. “내 팔자 얼마나 기구하면 저런 걸 남편이라고 맞아 가지고 이런 고생을 하노? 밤낮 철학만 하면 밥이 나오나?” 아무리 밖에서 야단을 해도 소크라테스는 거기에 신경을 쓸 여지가 없이 계속 강의에 열중합니다.

 

그러니까 이 부인이 몇 가지 안되는 가구를 부수면서 돌아갑니다. 양푼 깨지는 소리, 의자 다리 부러지는 소리, 칼 토막 부엌바닥에 던지는 소리, 손에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야단 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이 소크라테스는 강의를 계속 합니다. 그러니까 한참 떠들썩하더니 그 다음엔 이 부인이 물통에 물을 하나 가득 담아 가지고 남편이 제자들에게 강의하는 방문을 와락 열어 젖히더니 물통의 물을 남편과 학생이 있는데 ‘쏴악’ 쏟아 부었습니다. 자, 그러니 갑자기 물벼락을 맞았습니다.

 

이때 소크라테스가 물에 젖은 옷을 툭툭 털면서 하는 말이 “뇌성벽력이 대단하더니 소나기가 쏟아지는 군” 하더랍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그의 제자들이 너무 어이없는 일이고 저희들 마음속에 회의도 느끼고 해서 어느 제자 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우리도 앞으로 결혼을 해야겠습니까? 선생님의 경우를 보니 결혼하는데 대한 회의를 느낍니다.” 그 때 소크라테스가 눈을 크게 뜨며 하는 말이 “암, 결혼해야지. 결혼은 반드시 해야 돼. 어진 아내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고 나처럼 저런 아내를 만나면 적어도 철학자가 될걸세” 하였다고 합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창조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부인을 잘 만나야 합니다. 잘못 만나면 소크라테스의 후예가 됩니다. 뼈가 썩습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에 한마디의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여기 기록을 보니까 현대 청년들의 결혼관을 말하면서 상대방의 기준이 여자가 남자를 택할 때는 경제 본위이고 남자가 여자를 택할 땐 외모를 우선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 통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만은 안그랬으면 합니다.

 

일반적으로 외부적인데 우선을 둡니다. 우선 외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으려는 남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서양 속담에 ‘Beauty is skin deep'이란 말이 있어요. 아름답다는 것이 결국 피부 두께만 하단 말이에요. 가죽 벗겨 놓으면 다 그렇고 그런 거예요. 물론 이 말을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 믿는 청년들은 그저 못생긴 여자만 돌아가며 골라 아내로 맞으란 말은 아니에요. 전에 에스더 같은 여인은 우리가 직접 그의 외모를 보진 못했지만 기록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수많은 입후보자 가운데 선택한 것으로 보아 외모가 아름다웠던 것이 짐작됩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왕 앞에 나아가 선을 뵙기 전에 꼭 만 1년 동안을 준비해야 하는데 여섯달 동안은 몰약과 기름을 써서 피부를 부드럽게 하고, 다른 여섯 달은 향품을 썼습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향기롭게 가꾸었습니다.

 

요사이 어떤 부인들은 밤에는 나이트 크림을 바르고 아침에는 콜드크림으로 닦아 내고, 38가지 화장품을 바르는데 세시간 반이 걸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옛날에는 요사이와 비교할 수 없었던 모양 같아요. 그런데 에스더는 다른 여자들처럼 굉장한 화장은 하지 않았는데 모든 사람에게 굄을 얻었고 결국 아하수에로 왕의 은총을 받아 왕후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의 정숙함, 그의 신앙심, 그의 애국심, 그의 지혜, 그의 담대함은 어느 여자와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사람이 문제입니다. 외모는 얼마 가지 아니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겉사람은 후패합니다. 여러분의 부인들이 아무리 기를 쓰고 가꾸어도 별 도리가 없습니다. 물론 가꾸면 안가꾸는 것보다 다소 낫겠지요. 그러나 별 차이 없어요. 결국 여자가 25세가 넘으면 자신도 모르게 잔주름에 생기기 시작하고, 30이 넘으면 남이 알게끔 주름이 잡히게 되고, 40이 넘으면 현저하게 노쇠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권면한 말씀이 뭐예요? 베드로전서 3장 1절에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워 외모로 은연중에 그것이 풍길 때 그것이 값진 아름다움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젊은 여성들은 지나친 허영과 사치는 사회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자신들의 장래에도 큰 불행을 초래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얼마 전에 어떤 글을 읽는데 이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어느 가정 대학 3학년에 다니고 있는 딸이 느닷없이 시집을 가겠다고 부모를 졸라대기 시작했습니다. 신랑감은 꽤 이름있는 사장의 맏아들, 찬조금을 내고 들어간 학교에서 학점이 모자라 두 번씩이나 유급을 하고 하는 수 없이 외국 유학을 가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에 돈이 많고 할 일은 특별히 없어서 휘청거리는 젊은이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석달 전에 학교 종강파티에서 만나 서로 같은 7번을 뽑아 파트너가 된 것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두 세 번 만나 결혼이란 결론을 내리는데 둘이 다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가 볼 때 이것은 너무나 당치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월급 12만원으로 다섯 식구가 근근히 살아온 형편인데 그런 부잣집으로 딸을 시집보내 평생 어깨를 좁히고 살게 하기는 부모로서는 싫었습니다. 딸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런 학교에선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교수 사이에 능력 있는 학생으로 정평이 있는 딸을 그런 청년한테 시집 보내기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딸을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얘야, 너 결혼이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하는 소리냐? 교제한 지 겨우 20일밖에 안됐다며?” 아직도 딸의 모든 것이 어려만 보이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랬더니 딸의 대답이 “엄마, 우리 친구 옥란이는 선보고 약혼해서 결혼까지 하는데 딱 27일 걸렸어요. 약혼 때 받은 240만원짜리 파텍스 시계를 탁 차고 나와서 우리보고 뭐라고 그런지 아세요? 학교 중퇴한 것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데요. 그 애도 일류 학교만 나왔어요. 뭐 머리가 나빠서 그러나요?” 이쯤 되니 어머니가 코너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전략을 바꿔서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얘야, 그 집안이 유명한 바람쟁이야, 너 그거 알고 있니?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할 것 없이 모조리 소문 뿌리고 다닌 지저분한 사람들이야, 그런 집에 어떻게 가니?” “어머니, 남자치고 바람 안 피는 사람 어디 있어요? 소박을 맞아도 아귀 같은 타발을 하고 셋방 구석에서 찔찔 짜는 것보다 미장원에 가서 손톱, 발톱 치장하고 캐디락 자가용 속에 앉아서 우는 편이 훨씬 현대적이에요.”

여러분! 우리 학생들 가운데 이런 분 없어요? 여성들의 결혼관, 가치관이 어디엔가 잘못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의 사는 것이 꼭 가산이 넉넉한 데 있는 것은 아니에요. 물질이 우리에게 꼭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 아니에요. 요사이 흔히 부인들끼리 모이면 신랑의 수입으로 그 사람의 점수를 매긴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어요.

 

현대의 위기는 모든 가치 판단의 전도에 있어요. 무엇이 중하고 무엇이 가치있는 가를 바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외모의 아름다움이나 보이는 물질 면을 무시하는 말이 아닙니다. 먼저 보이는 것에 치중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입니다. 변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면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한 남자가 바로 살려면 부인을 잘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 있는 여인은 그 집을 세웁니다. 헐지 아니합니다. 가령 우리 가정을 말할 때 남편은 책임자요, 아내는 내조자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성경이 교훈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6절에 사도 베드로가 아내된 사람에게 권면하면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복종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흔히 남편의 대명사가 주인이란 말로 통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서로가 주인입니다. 아내의 주인은 남편이요, 남편의 주인은 아내입니다. 전에 의젓한 분들이 아내를 향해 말할 때 ‘임자’라는 말을 했습니다. 임자는 주인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가정의 질서상 대표가 필요한데 그 대표는 남편입니다. 혹 어떤 부인께서는 속으로 섭섭하게 생각하실는지 몰라요. 왜 여자는 남편에게 순복하고 살아야만 하나? 글쎄 그것이 창조의 원리인 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야 여자가 행복한 걸요.

 

여기 어떤 부인이 가정에서 남편이 있긴한데 모든 책임을 부인이 지고, 결정도 부인이 하고, 부인이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부인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가서 한 번 솔직한 말을 들어보세요! 과연 행복하시냐구요. 아마 그 부인은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행복하냐고요? 말씀 마세요. 나도 남들처럼 남편하는대로 따라 살면 한이 없겠어요.” 그럴 겁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바로 세워 나가려면 가정의 주인 되는 남편을 헐뜯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이 “다투는 여인과 사느니보다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19장 13절에서 14절에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다투는 아내는 계속 떨어지는 물방울이라고 했습니다. 집에서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집이 어떻게 되지요? 결국은 무너지지요. 물이 새는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떻지요? 평안히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 앉았다가 저기로 피했다가 해야 합니다.

 

부인이 너무 남편을 쥐어뜯으면 남편이 자기 구실 바로 하기 어렵습니다. 가만히 사회에 나와 일하는 것을 보면 부인한테 볶이는 사람이 나타나요. 수입이 적다고 너무 바가지 긁지 마세요. 그러다 부정하면 그 책임 누가 질 거예요?

 

남편을 잘 위해 드리세요. 낙심하려고 할 때 격려해 드리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남편들이 새 용기를 가지고 무슨 일이든지 성공적으로 감당해 나갈 것입니다. 병든 남편 간호하는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 여러분의 정성이면 됩니다.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은 참 남편을 잘 위한다고 해요. 보통 우리 한국 가정에서 부인들이 애를 낳기 전에는 그래도 잘해 보노라고 하다가도 애를 두서넛 낳게 되면 아예 태만해지기 쉬운데 그러지 마세요. 좀 힘이 들어도 (사실이야 정말 사랑하면 힘들 것도 없지요) 남편이 나갈 때 들어올 때 잘 내보내시고 잘 맞아들이세요.

 

옷을 입는데도 언제나 깨끗이 단정히 입히도록 옆에서 돌봐 드리세요. 남편이 너절하면 결국 말듣는 것은 그 부인들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한 그 권사님은 얼마나 남편에게 잘하시는지 가는 곳마다 그 동리 부인들이 자연히 따라가게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 빛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려오는 말에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남자다. 그리고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요람을 흔드는 여자의 손이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 가정의 부인의 역할이 얼마나 큽니까?

 

우리 믿는 가정의 부인은 가정을 세워 가는 지혜 있는 여성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부인들에 대한 말씀만 하고 남편들에 대한 말씀을 할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권면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7절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어느 남자가 인류 사회에 크게 공헌했으면 그것 혼자 한 것입니까? 그 배후에 보이지 아니하는 훌륭한 부인이 있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상급은 꼭 같이 받을 것입니다. 그저 한마디로 말하면 아내를 귀히 여기는 남편이 되면 됩니다. 우리 영락 교회 여성도 여러분은 가정을 세우는 어진 아내 되시기 바랍니다.

 

 

 

 

14장: 지혜로운 여인, 분노, 구제, 의

 

1-4절, 지혜, 정직, 미련, 소

 

[1절]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지혜로운 여자들은 자기의 집을 세운다. 지혜로운 여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여 사랑하며 선하며 인내하는 자이다. ‘세운다’는 말은 가정은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부모가 힘써 세워야 함을 보인다. 부부 관계의 문제, 부모 자식 관계의 문제, 자녀의 교육과 생활지도, 건강 문제, 경제 문제 등 인생의 삶의 어려운 문제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여자는 그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지혜롭게 처리하고 자기의 가정을 잘 세워나갈 것이다.

물론,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워 주셔야 세워진다.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그러나 인간편에서 가정의 바른 건립에 남편과 아내의 노력도 필요하다. 본문은 가정이 남편의 수고만으로 잘 세워지지 않고 아내의 역할이 큰 것을 보인다. 비록 남편이 좀 부족해도 아내가 지혜롭게 행하여 남편의 부족을 보충하면 가정을 잘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여자는 자기의 손으로 가정을 헌다. 미련한 여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의 교훈대로 행치 않는 자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심과 너그러움이 부족하고 사랑과 선을 행하지 않고 마음에 자제력이 부족하고 성급하다. 그는 겸손치 않고 교만하고 고집스럽다. 그는 게으르고 사치하고 낭비하고 절제치 않는다. 그의 언어생활도 덕스럽지 못하다. 그런 여자는 자기 손으로 자기 가정을 허물며 자기에게 오는 복을 막으며 그 복을 물리친다.

 

[2절]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정직하게 행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또 양심대로 올바르게 행한다는 뜻이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다. 정직하게 행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증거이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입법자이시고 심판자이신 하나님, 죄악에 대해 심판하시고 징벌하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두려워하는 자이다. 그것은 이기적인 생각이나 편의적 생각, 기회주의적인 생각과 타협적 생각 등을 버리는 것이다. 경건과 믿음은 의롭고 선한 행위와 진실한 행위로 나타난다. 그것은 노아의 생활에서 잘 나타났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했고 의롭고 정직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이 살았다. 창세기 6:9,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러나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긴다. 패역하게 행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불평하고 그의 뜻을 거역하고 그의 계명을 불순종하고 완악하고 고집스럽게 행한다는 뜻이다. 패역하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입법자요 심판자이시며 사람에게 상과 벌을 주시는 자이신데,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그를 인정치 않고 존중히 여기지 않고 그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다 나라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두루마리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것을 듣는 대로 작은 칼로 그 책을 베어 화롯불에 던져서 그 모든 두루마리를 태웠다(렘 36:22-23).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3절]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한다. ‘교만하여 매’(코테르 가아와)라는 원어는 ‘교만의 매’라는 뜻이다(KJV, BDB).6) 미련한 자는 하나님과 그의 뜻을 거역한다. 미련한 자의 특징은 교만함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겸손하지만,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과 판단을 앞세운다. 사람의 인품은 말로 표현된다. 미련한 자는 미련한 말, 교만한 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말을 한다. 그는 그의 말로 매를 자청한다. 그 매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과 재앙을 가리킨다. 그것은 질병이나 물질적 궁핍을 포함한다. 미련한 자는 자기가 행한 일을 자기가 받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자기 자신을 보전한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을 따라 사는 자이다. 지혜로운 자의 특징은 겸손한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다. 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겸손한 자는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할 것이다. 지혜로운 자의 겸손한 인품은 그의 겸손한 말로 나타날 것이며, 그의 겸손한 말은 그를 죄로부터 또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보전할 것이다. 말의 의롭고 온전함이 의롭고 온전함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의인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4절]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소가 없으면 구유가 깨끗하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사실이지만, 비유적인 뜻을 가질 것이다. 구유는 소의 먹이통인데, 거기에는 음식 찌꺼기가 조금은 남아 있을 것이며 냄새도 좀 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소에게 관심이 있으시다기보다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시다. 고린도전서 9:9-10에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소는 목사와 교회의 여러 봉사자들을 가리킨다. 교회에 여러 봉사자들이 있으면 거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필요한 일들도 있다. 그 중에는 그들이 거주할 주택과 생활비 등 적지 않은 재정지출도 필요할 것이다. 어떤 봉사자들은 인격적 결함도 있어 마음 쓰이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다. 소가 하는 일은 참으로 많다. 소는 논과 밭을 가는 것과 추수하기 등 농사일에는 필수적이며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에도 유용하다. 소는 참으로 충직한 가축이다. 교회에 충성된 목사들과 직원들과 봉사자들이 많은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각인에게 주신 은사와 직분을 따라 설교와 전도와 심방의 일을 하고, 주일학교 교사들로서 또 찬양대 지휘, 반주, 대원들로서, 또 교회 직원들로서 충성함으로써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고 또 복음 사역에 많은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지혜로운 여인들은 집을 세우지만, 미련한 여인들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문다. 남자든지 여자든지 사람은 경건과 도덕성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지혜로 가정을 잘 세워야 한다.

둘째로,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긴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므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을 멸시치 말아야 한다.

셋째로,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자신을 보전한다. 우리는 교만하고 미련한 말을 해 징벌을 자청하지 말고 겸손하고 지혜로운 말을 해 자신을 보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로,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겠지만,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봉사자들의 필요성과 유익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좋은 봉사자들을 주시기를 구하고 또 그들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5-8절, 신실, 거만, 미련, 슬기

[5절]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증인은 보거나 들은 것을 증거하는 자이다.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는 믿을 만한 증인이다. 우리는 왜 진실한 것만 말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9계명에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또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또 그것은 교회와 사회에도 유익이 된다. 거짓말은 인간 관계를 파괴시키고 사회를 어지럽히지만, 진실한 증거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사람을 구원하고 세상에 의와 사랑을 세운다. 잠언 14: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예수님의 사도들은 핍박 중에도 하나님과 구원의 복음을 증거했고 사람들을 구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신실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는다. 거짓 증인은 거짓말하는 자이다.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잠 8:13). 또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하고 상대방을 해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여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말하는 거짓 증인을 세워 그를 죽게 했다(왕상 21:1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기 위해 거짓 증인들을 동원했었다(마 26:59). 그러나 거짓 증거는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이다.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큰 악이다(잠 6:16-19).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계 22:15; 21:8).

 

[6절]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거만한 자’라는 원어(레츠)는 ‘경멸하는 자, 조롱하는 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을 크게 여기고 남을 경멸하고 조롱하는 자이다. 그런 사람도 남들이 지혜를 구하니까 자기도 지혜를 구하며 또 때때로 지혜의 가치를 느끼기도 할 것이지만,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지만(약 1:5), 거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그에게 지혜를 주지 않으신다. 잠언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베드로전서 5:5,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나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쉽다. 명철한 자는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사모하는 자이다. 명철한 자가 얻는 지식은 세상적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 사람에 대한 지식, 삶에 대한 지식, 즉 영적 도덕적 지식을 가리킨다. 세상 지식도 유익이 있지만, 영적 지식은 근원적 지식이며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지식이다. 인생의 참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시작된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참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온다.

 

[7절]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에 순종치 않는 자이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지혜 있는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무시하는 미련한 자들이다. 우리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미련한 자의 입술에는 지식이 없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여기서 지식이란 하나님을 알고 그의 뜻을 아는 영적 도덕적 지식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함, 예배와 찬송과 기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함, 사람의 행위의 법칙인 의와 거룩과 선과 진실,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 등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세상 지식은 있을지 몰라도 영적 도덕적 지식이 없다. 또 그의 지식 없음은 그의 미련한 말로 드러난다.

미련한 자의 입술에 지식이 없으므로, 우리는 그 앞을 떠나야 한다. 우리가 왜 떠나야 하는가? 그것은 무지 때문에 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잠언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알지 못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는 자는 불경건과 죄악에 빠지며 그와 교제하는 자도 죄악된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곧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8절]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슬기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교훈대로 사는 자를 말한다.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 길을 아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길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자기의 길’이란 사람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죽어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성경에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작정과 창조로부터 그 존재가 시작되어 세상에 출생하고 그의 영광을 위하고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다가 장차 그에게로 가서 선악간에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특히 생활의 규칙을 주셨다. 그것이 십계명이다. 그 내용은 경건과 도덕성이다. 십계명에 계시된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예배드리는 것과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은 사람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며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또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했고(롬 12:1) 또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고백했고(고후 5:9),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다(딛 2:14).

그러나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교훈대로 살지 않는 미련한 자는, 자신이 의미와 가치를 두고 한 일들, 곧 돈과 명예와 권세와 육신의 쾌락 등이 실상 허무한 일이기 때문에(전 1:2, 14; 요일 2:15-17), 결국 속은 것과 같다. 그의 어리석음이 그를 속였다. 그의 불경건과 부도덕, 그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세상 사랑은 결국 그를 속인 헛된 것들이었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는다. 우리는 거짓말하는 죄를 범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진실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해도 얻지 못하지만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쉽다. 우리는 남을 경멸치 말고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과 인생에 대한 풍성한 지식을 얻어 바르고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입술에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식이 없는 미련한 자, 즉 교만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돈과 쾌락을 사랑하는 자를 멀리해야 한다(딤후 3:1-5).

넷째로,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지만,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받아 인생의 길 즉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바로 알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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