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에 대한 지혜자의 경고
잠 23:1-11
1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2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3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6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8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9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10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11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잠언 23장에서 지혜자는 “탐욕과 방탕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네가 관원과 함께 음식을 먹게 되거든(1-5) 신분이 미천한 자가 고관대작의 식사 자리에 초대되었다면 누구나 기뻐할 것입니다. 그런 식사 초대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초대를 받으면 우쭐대는 마음이 생겨서 경솔하게 행동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1절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자리일수록 어떤 목적과 숨겨진 계획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따라서 분에 넘치는 초대를 받을 때 우쭐대는 마음으로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약점이 잡혀 올무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에 칼을 대듯이 단호하게 식욕을 억제하라는 것입니다. 삶의 목표를 부자가 되는 것에 두며 살수록 이런 자리에서 올무에 빠질 위험이 높습니다. 부를 쌓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은 미련한 일입니다. 재물은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일 뿐, 삶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부를 위한 계획을 세우지만, 지혜자는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고 허무한 것에 주목하지 말라”(4-5)고 말합니다. 지혜자는 마치 부에 날개가 있는 것처럼 부자의 손에서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악인이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6-11) 지혜자는 ‘악한 눈이 있는 자’라고 소개되는 악인의 초대에 응하지 말라합니다. 순수한 교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악한 목적을 위해 베푸는 호의를 함부로 받아들이면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조금 먹은 것은 토하겠고, 악인에게 좋은 말을 한들 업신여길 것이니 미련한 자를 훈계하지 말라고 합니다(9). ‘미련하다’는 것은 단지 지식이 모자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완악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련한 자를 가르치려는 노력은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지혜자는 사회적으로 가진 것이 없는 약자들을 보호해주라 말합니다(10-11). 지계석을 옮기는 자들은 힘이 있는 자들이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자들은 약자들입니다. 강한 자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항변조차 못하는 약자들을 위해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에(11) 그들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적용: 악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을 분별하여 사귀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무분별한 초대에 끌려 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브라함 링컨의 ‘신앙 십계명’
여섯째,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할 것이다. 일곱째, 나는 하나님만을 높여 드리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려 드릴 것이다. 여덟째, 나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자유하며 평등하다고 믿는다. 아홉째, 나는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할 것이다. 열째, 나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할 것이다.
< 설 교 >
식사와 영성
잠 23:1-6 / 이성희 목사 (잠언 23:1-6, 고린도전서 10:25-31)
먹는 문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이며 가장 요긴하게 해결해야 할 세계적 과제이다. 유대인들에게 먹는 문제는 생존에 관한 문제였고 그들의 메시야관은 식량 해결과 연관된 사상이었다. 인간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능만 가지고 살면 동물과 다를 바 없다. 먹는 것은 좋은 일이며 천국의 상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사랑과 화평이다.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의 조화, 먹지 않아도 배부름의 비결, 먹고 싶은 것을 절제할 수 있는 가난한 마음이 영성이다.
1. 무엇이든지 먹으라
고린도는 우상숭배가 심하였고 고린도교회에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다.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우상에 바친 제물이라도 예외는 아니라고 하며 무엇이든지 먹으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모든 것을 인간의 식물로 주셨다. 먹는 문제는 인류에게 죄가 들어오고 문화가 발달하면서부터 문제가 되었다. 땀을 흘려야 먹게 되고 가시와 엉겅퀴가 나게 되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식물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무엇이든지 감사하게 먹고 무엇이든지 절제하고 먹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
2. 영광을 위하여 먹으라
모든 것을 먹되 제물이라 말하거든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먹되 모든 것을 먹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덕을 위하여 그리고 신앙 양심을 위하여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시다가 밀을 잡수셨고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가서 잡수셨고 세리 삭개오의 집에 가서도 잡수셨다. 신앙적 식사는 즐기기 위하여 먹지 말고 몸을 위하여 섬기기 위해 남을 위해 먹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먹고 먹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먹기도 하고 먹지 않기도 한다.
3. 먹기를 탐하지 말라
성경의 권면은 먹기를 탐하지 말라는 것이다. 식욕을 억제하고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탐식은 화를 자초한다. 대 로마제국이 식탁 위에서 망했다는 말이 있다. 욥기 27:14은 "식물에 배부르지 못하며"라고 한다. 아무리 먹어도 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가 지나치게 먹는 것도, 외식이 과하게 발달한 것도, 음식 쓰레기가 많은 것도 다 영성적 식사법은 아니다. 식욕은 영성을 파괴하는 사탄의 유혹이다. 기본적인 욕구를 제어하여 검소한 식생활을 가져 먹는 문제로 범죄하지 않도록 식사 영성을 가지자.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잠 23:1-11 / 박조준 목사
오늘 저녁 봉독한 말씀의 첫 부분인 1-3절은 사치와 육욕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사람에게는 식욕이라는 본능이 있어서 먹는 일로 말미암아 죄를 범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 다. 또 마귀란 존재는 우리의 본능을 약점으로 잡아서 사람을 유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마 귀란 존재는 우리의 본능을 약점으로 잡아서 사람을 유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먹는 것은 즐거 운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제도 먹는 일로 합니다. 먹을 때는 대개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그 런데 이 열리는 틈을 타서 죄가 들어오기 쉽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는 대로 인류의 조상 아담 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 하였는데 무엇을 통해서 죄를 지었지요? 먹는 것을 통 해서 여자를 유혹하였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세요!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가운데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묻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기를 동산 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그 때 뱀이 여자에게 말하기를 그게 무슨 말이냐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알아서 그런 거야. 그 말을 들은 여자가 그 나무를 보니 먹 음직도 하고 보임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 었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만 먹을 것이 아니라 자기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성경 에는 한마디로 남편에게 주매 그는 먹은 지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연 상됩니다.
여자가 하나님의 금하신 열매를 먹고나니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지 남편을 보니 너무 순진하단 말이요. 그 얼굴에는 아무런 불안도 없이 그저 평안하고 자기를 보는 눈이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단 말이요. 그런데 여러분, 죄라는 것은 이상합니다. 자기 혼자 죄를 짓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죄 지은 후에는 다른 사람도 같이 죄짓기를 원하는 묘한 마음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32절에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 고도 자기들만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여보! 왜요? 나 당신한테 꼭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건 뭔데요. 또 새삼스럽게. 말 할테니 화내지 않을 꺼에요? 아니 화를 내다니 내가 언제 당신한테 화낸 적이 있소? 사실 아담과 하와는 이날까지 한 번 말다툼해 본 적이 없는 그저 다정하기만한 부부였습니다. 그러나 하와가 그 열매를 먹은 다음 순간부터는 벌써 마음이 병이 들어 남편이 나를 진정 사랑 하나? 하는 의심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게 다짐합니다. 여보, 당신 나를 사랑하지? 아무렴, 내가 이 세상에 여자라고야 당신밖에 더 있소? 원 별걸 다 묻는구먼. 아니야, 나는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요. 아 그러면 어떻게 하면 확인이 되겠소. 내가 당신 하라는 대로 다 할게. 아닌게 아니라 사랑하는 부부는 가만 보면 남편이 부인에게 꼼짝 못하고 졸졸 끌려갑니다. 사 실 힘으로 말하면 여자보다 남자가 월등히 센데 여자한테 남자가 진단 말이요. 사랑 때문에 그 래요. 남편의 사랑을 확인한 아내 하와는, 여보, 고마워요. 그럼 내가 하라는 것 다 할꺼에요? 아무렴. 그래요, 이 과실 말이요 하면서 아내가 내 놓은 것을 보니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엄히 명하신 과실이 아니겠어요?
눈이 둥그 래진 남편은 거의 경련을 일으키다시피 몸이 굳어져, 아니, 그건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하신 과실이 아니요? 그래요. 여보, 그것을 왜 땄어요? 그걸 먹으면 죽소 하며 벌벌 떱니다. 이 때 하와는 토라져서 말합니다. 여보, 나는 이것을 먹었어요. 당신이 보시다시피 죽지 않았어요. 당신도 들어보세요. 참 맛이 있어요. 이제야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너무 모르고 살았어요. 사람이 사는 것은 그게 아닌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당신 나 사랑한다고 했지요? 무엇이나 다 하겠다고 했지요? 이 위선자! 만일 내가 죽으면 당 신 혼자 살거예요? 나 죽으면 누구하고 결혼할 거예요! 따지고 보니 그렇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만 아담이, 어디 먹어 볼까? 하고 받아먹었답니다. 그런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 아이쿠 하는데 목이 걸려서 남자 의 목에는 뼈가 솟아났다고 합니다. 먹는 것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죄가 이 먹는 것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리고, 4-5절에는 재물에 대한 경고입니다. 물욕을 경계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식욕과 아울 러 인간의 본능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라. 네가 어찌 허 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 돈 없이 살수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돈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 서 성경은 돈을 필요 없다 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 고 경고하였습니다. 디모데전 서 6장 7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 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을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 돈을 쓰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맡아 가지고 사용하는 것 인데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내 것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새들이 많이 날아와서 다닌다고 그 새들이 자기 것으로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그 새들은 날개가 있어서 오늘은 여기에 내일은 다른 밭에 날아가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뜻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분명히 들으세요! 본능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생각할 때 죄가 됩니다. 먹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이 먹을 때 죄가 됩니다. 물질 그 자체는 선한 것 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 쓸 때, 그리고 지나치게 탐할 때 죄가 됩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본능대로만 살지 아니하고 이것을 제어할 줄 아는 것에 있습니다. 본능대 로만 살면 짐승이지 그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은 본능대로만 살지 생각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입니다. 까치는 5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아니 그 전에나 똑같이 집은 짓습니다. 본능대로 짓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잘 지으려고 생각하고 연구하기 때문에 발전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부여 된 특권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데 따라서 그 사람이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대저 그 마 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 고 하였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는 더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편 39편 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를 발하니. 즉 깊이 생각할 때에 불이 붙었다는 말입니다. 무슨 생각이나 깊이 오래하면 우리의 마 음이 뜨거워지고 가슴에 불이 납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것은 좋은 생각도 그렇고 나쁜 생각도 그렇습니다. 옛날부터 오늘까지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고 공헌한 분 들은 다 좋은 생각을 깊이 한 분들입니다. 위대한 종교가, 위대한 철학자, 위대한 과학자가 다 그렇습니다. 알키메데스 같은 분들은 같은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면서도 어떻게 사람이 물 속에 들어가면 가벼워질까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저 유명한 알키메데스의 원리 를 발견하고 자기가 목욕하고 있는 중인 것도 다 잊어버리고 내가 찾았다, 내가 발견했다 하면서 벗은 몸으로 기뻐하며 거리 에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뉴톤(Newton)같은 분은 사과 알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만유인력의 법칙 을 발견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반면에 악한 생각도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큰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일석이조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것을 오래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서 그런 흉악한 사람을 만들고 흉악한 일 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며칠 전에 신문을 통해 보셨겠지만 어떤 30대 여인이 생명보험 제도를 깊이 연구해서 (나쁜 방면으로) 결국 무서운 범죄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항상 자기의 생각을 살펴서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합니까? 사 람은 흔히 생각하는대로 됩니다. 생각하는 일을 합니다. 생각은 알과 같습니다. 비둘기 알을 오 래 품고 있으면 귀여운 비둘기를 깔 것입니다. 그러나 독사의 알을 오래 품고 있으면 마지막에 는 독사 새끼를 깝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은 성경에 보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위엣 것을 생각하는 것, 다른 하나는 땅엣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위에 속하는 생각이 있고 땅에 속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므 로 우리 믿는 사람은 비록 땅에 거하지마는 결국 위에 속해 있으므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골 3:2). 그러면 땅에 속한 생각이 무엇입니까? 가령 분한 생각, 남을 미워하는 생각, 이거 땅에 속한 생각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을 때 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 오래 품으면 결국 나 자신이 손해를 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품지 말라 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기하는 생각, 이것도 땅에 속한 생각입니다. 남을 시기하는 사람은 남이 잘 되는 것 을 싫어합니다. 이것은 옛날부터 승기자염이라고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는 그런 감정인데 이것은 실상 나 자신의 교만, 이기주의, 열등감 같은데서 나오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 을 오래 품고 있으면 결국은 나 자신이 타락합니다(사울 왕의 경우). 또 한가지는 불결한 생각입니다. 정욕의 생각입니다. 인간에게는 역시 성적 본능이 있어서 누 구나 일시적으로 성적 충동 또는 유혹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결한 생각을 계속해서 품는 것은 각자의 책임입니다. 품을 이유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대로 내 머리 위를 새가 날아다니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새가 내 머리가 앉아 둥지를 튼다면 그것은 내 책임입니다. 잠깐 동안 유혹을 받을 수 있습 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둥지를 틀어서 음란죄를 짓는 것은 내 책임입니다. 이런 요소를 다 제 거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크게 타락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은 위엣 것을 생 각해야 합니다. 땅엣 것을 생각지 않는 적극적인 길은 위엣 것을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병 속에 들어있는 공 기를 내보내려면 맑은 물을 넣으면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공기는 밀려 나가게 됩니다. 이것이 소위 불가입성의 원리 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면 땅엣 것은 자연히 들어올래야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즉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의 영광, 지혜, 사랑, 공의, 능력을 생각하라고, 산천초목을 볼 때, 오곡백과를 볼 때, 사람을 볼 때, 사귈 때, 사업을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위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의 겸손과 온유를, 진리 의 교훈과 깨끗한 생활을,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승천과 하나님 우편의 빛나는 얼굴을, 그의 사랑과 인내와 자비와 긍휼, 능력과 성결을 생각하라고. 분한 생각이 들어올 때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기도하신 말씀을 생각하라고. 오! 하나님! 이 사 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이들이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스데반은 순교 당할 때 그리스도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위에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있습니다. 천국 생각을 늘 하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보나 천국은 저보다 더 좋겠지! 생각하라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합니까? 생각하는 것으로 스스로 거듭났나? 그렇지 못한 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내가 무엇을 생각하나?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무엇을 생각해 왔습니까?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잠언 23:1-11 / 군산지구촌교회
오늘 저녁 봉독한 말씀의 첫 부분인 1-3절은 사치와 육욕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사람에게는 식욕이라는 본능이 있어서 먹는 일로 말미암아 죄를 범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 마귀란 존재는 우리의 본능을 약점으로 잡아서 사람을 유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마귀란 존재는 우리의 본능을 약점으로 잡아서 사람을 유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먹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제도 먹는 일로 합니다. 먹을 때는 대개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이 열리는 틈을 타서 죄가 들어오기 쉽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는 대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 하였는데 무엇을 통해서 죄를 지었지요? 먹는 것을 통해서 여자를 유혹하였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세요!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가운데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묻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기를 ‘동산 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죽을까 하노라’하셨느니라. 그 때 뱀이 여자에게 말하기를 ‘그게 무슨 말이냐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알아서 그런 거야.’ 그 말을 들은 여자가 그 나무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임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만 먹을 것이 아니라 자기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한마디로 “남편에게 주매 그는 먹은 지라”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연상됩니다. 여자가 하나님의 금하신 열매를 먹고나니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지 남편을 보니 너무 순진하단 말이요. 그 얼굴에는 아무런 불안도 없이 그저 평안하고 자기를 보는 눈이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단 말이요. 그런데 여러분, 죄라는 것은 이상합니다. 자기 혼자 죄를 짓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죄 지은 후에는 다른 사람도 같이 죄짓기를 원하는 묘한 마음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32절에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여보!”
“왜요?”
“나 당신한테 꼭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건 뭔데요. 또 새삼스럽게.”
“말할테니 화내지 않을 꺼에요?”
“아니 화를 내다니 내가 언제 당신한테 화낸 적이 있소?”
사실 아담과 하와는 이날까지 한 번 말다툼해 본 적이 없는 그저 다정하기만한 부부였습니다. 그러나 하와가 그 열매를 먹은 다음 순간부터는 벌써 마음이 병이 들어 ‘남편이 나를 진정 사랑하나?’ 하는 의심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게 다짐합니다.
“여보, 당신 나를 사랑하지?”
“아무렴, 내가 이 세상에 여자라고야 당신밖에 더 있소? 원 별걸 다 묻는구먼.”
“아니야, 나는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요.”
“아 그러면 어떻게 하면 확인이 되겠소. 내가 당신 하라는 대로 다 할게.”
아닌게 아니라 사랑하는 부부는 가만 보면 남편이 부인에게 꼼짝 못하고 졸졸 끌려갑니다. 사실 힘으로 말하면 여자보다 남자가 월등히 센데 여자한테 남자가 진단 말이요. 사랑 때문에 그래요. 남편의 사랑을 확인한 아내 하와는, “여보, 고마워요. 그럼 내가 하라는 것 다 할꺼에요?”
“아무렴.”
“그래요, 이 과실 말이요” 하면서 아내가 내 놓은 것을 보니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엄히 명하신 과실이 아니겠어요? 눈이 둥그래진 남편은 거의 경련을 일으키다시피 몸이 굳어져,
“아니, 그건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하신 과실이 아니요?”
“그래요.”
“여보, 그것을 왜 땄어요? 그걸 먹으면 죽소” 하며 벌벌 떱니다.
이 때 하와는 토라져서 말합니다.
“여보, 나는 이것을 먹었어요. 당신이 보시다시피 죽지 않았어요. 당신도 들어보세요. 참 맛이 있어요. 이제야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너무 모르고 살았어요. 사람이 사는 것은 그게 아닌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당신 나 사랑한다고 했지요? 무엇이나 다 하겠다고 했지요? 이 위선자! 만일 내가 죽으면 당신 혼자 살거예요? 나 죽으면 누구하고 결혼할 거예요!”
따지고 보니 그렇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만 아담이,
“어디 먹어 볼까?” 하고 받아먹었답니다.
그런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 ‘아이쿠’ 하는데 목이 걸려서 남자의 목에는 뼈가 솟아났다고 합니다. 먹는 것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죄가 이 먹는 것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리고, 4-5절에는 재물에 대한 경고입니다. 물욕을 경계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식욕과 아울러 인간의 본능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라.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 돈 없이 살수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돈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돈을 필요 없다 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7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을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 돈을 쓰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맡아 가지고 사용하는 것인데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내 것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새들이 많이 날아와서 다닌다고 그 새들이 자기 것으로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그 새들은 날개가 있어서 오늘은 여기에 내일은 다른 밭에 날아가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뜻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요! 본능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생각할 때 죄가 됩니다. 먹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이 먹을 때 죄가 됩니다. 물질 그 자체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 쓸 때, 그리고 지나치게 탐할 때 죄가 됩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본능대로만 살지 아니하고 이것을 제어할 줄 아는 것에 있습니다. 본능대로만 살면 짐승이지 그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은 본능대로만 살지 생각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입니다.
까치는 5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아니 그 전에나 똑같이 집은 짓습니다. 본능대로 짓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잘 지으려고 생각하고 연구하기 때문에 발전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부여된 특권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데 따라서 그 사람이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하였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는 더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편 39편 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를 발하니.” 즉 깊이 생각할 때에 불이 붙었다는 말입니다. 무슨 생각이나 깊이 오래하면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가슴에 불이 납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것은 좋은 생각도 그렇고 나쁜 생각도 그렇습니다. 옛날부터 오늘까지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고 공헌한 분들은 다 좋은 생각을 깊이 한 분들입니다. 위대한 종교가, 위대한 철학자, 위대한 과학자가 다 그렇습니다.
알키메데스 같은 분들은 같은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면서도 어떻게 사람이 물 속에 들어가면 가벼워질까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저 유명한 “알키메데스의 원리”를 발견하고 자기가 목욕하고 있는 중인 것도 다 잊어버리고 “내가 찾았다, 내가 발견했다”하면서 벗은 몸으로 기뻐하며 거리에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뉴톤(Newton)같은 분은 사과 알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반면에 악한 생각도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큰 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일석이조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것을 오래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서 그런 흉악한 사람을 만들고 흉악한 일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며칠 전에 신문을 통해 보셨겠지만 어떤 30대 여인이 생명보험 제도를 깊이 연구해서 (나쁜 방면으로) 결국 무서운 범죄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항상 자기의 생각을 살펴서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합니까? 사람은 흔히 생각하는대로 됩니다. 생각하는 일을 합니다. 생각은 알과 같습니다. 비둘기 알을 오래 품고 있으면 귀여운 비둘기를 깔 것입니다. 그러나 독사의 알을 오래 품고 있으면 마지막에는 독사 새끼를 깝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은 성경에 보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위엣 것을 생각하는 것, 다른 하나는 땅엣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위에 속하는 생각이 있고 땅에 속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비록 땅에 거하지마는 결국 위에 속해 있으므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골 3:2).
그러면 땅에 속한 생각이 무엇입니까? 가령 분한 생각, 남을 미워하는 생각, 이거 땅에 속한 생각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을 때 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 오래 품으면 결국 나 자신이 손해를 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품지 말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기하는 생각, 이것도 땅에 속한 생각입니다. 남을 시기하는 사람은 남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것은 옛날부터 승기자염이라고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는 그런 감정인데 이것은 실상 나 자신의 교만, 이기주의, 열등감 같은데서 나오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오래 품고 있으면 결국은 나 자신이 타락합니다(사울 왕의 경우).
또 한가지는 불결한 생각입니다. 정욕의 생각입니다. 인간에게는 역시 성적 본능이 있어서 누구나 일시적으로 성적 충동 또는 유혹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결한 생각을 계속해서 품는 것은 각자의 책임입니다. 품을 이유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대로 “내 머리 위를 새가 날아다니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새가 내 머리가 앉아 둥지를 튼다면 그것은 내 책임입니다.” 잠깐 동안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둥지를 틀어서 음란죄를 짓는 것은 내 책임입니다. 이런 요소를 다 제거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크게 타락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은 위엣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땅엣 것을 생각지 않는 적극적인 길은 위엣 것을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병 속에 들어있는 공기를 내보내려면 맑은 물을 넣으면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공기는 밀려 나가게 됩니다. 이것이 소위 “불가입성의 원리”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면 땅엣 것은 자연히 들어올래야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즉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지혜, 사랑, 공의, 능력을 생각하라고, 산천초목을 볼 때, 오곡백과를 볼 때, 사람을 볼 때, 사귈 때, 사업을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위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의 겸손과 온유를, 진리의 교훈과 깨끗한 생활을,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승천과 하나님 우편의 빛나는 얼굴을, 그의 사랑과 인내와 자비와 긍휼, 능력과 성결을 생각하라고.
분한 생각이 들어올 때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기도하신 말씀을 생각하라고. “오! 하나님! 이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이들이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스데반은 순교 당할 때 그리스도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위에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있습니다. 천국 생각을 늘 하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보나 천국은 저보다 더 좋겠지! 생각하라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합니까? 생각하는 것으로 스스로 거듭났나? 그렇지 못한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내가 무엇을 생각하나?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무엇을 생각해 왔습니까?
욕심내지 말아야 할 두 가지: 탐식과 탐욕
잠언 23장 1-11절 / 김민순 목사
1. 일곱가지 큰 죄악과 탐식
초대교회부터 내려오는 기독교 전통에는 일곱가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큰 죄가 있습니다.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정욕, 그리고 마지막은 탐식입니다. 이 일곱가지 죄는 그 자체로도 죄가 되지만 다른 많은 죄와 악을 유발하는 근원적인 죄 이기에 더 심각한 죄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범하는 많은 죄들은 이 일곱 가지 핵심적인 죄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이 일곱가지 죄악들이 우리 삶의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룩인 성화를 방해하고 인간관계를 해치는 심각한 죄입니다.
일곱가지 죄악 가운데 탐욕과 음식과 연관된 탐욕이 탐식, 식탐입니다. 십계명의 마지막 열번째 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인간의 탐욕을 정죄합니다. 인간의 욕심인 탐욕 가운데 식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며, 동시에 가장 강력한 욕구입니다. 인간은 얼마나 먹고 싶어하는 존재입니까?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중간에 간식도 먹고, 커피도 마십니다. 음식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먹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먹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먹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우리가 먹어야 할 그 이상을 구하는 것은 탐식, 곧 식탐은 죄입니다.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탐식이 왜 죄인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탐식이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대한 일종의 무질서한 욕구이며, 따라서 이성의 질서와는 반대가 되기 때문에 명벽하게 죄가 된다.” 우리 머리인 이성으로는 과도하게 먹어서는 안된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아는데 몸으로는 계속 먹고 싶은 통제가 되지 않는 무질서한 욕구이기에 탐식이 죄라는 것입니다.
16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히에로니무스는 일곱가지 큰 죄를 그림으로 설명했는데, 그중에서 탐식에 해당하는 그림은 이런 모습의 그림입니다. 한 뚱뚱한 남자가 곁에 있는 배고픈 어린 아이를 무시한 채 살찐 칠면조 요리를 먹으면서 자기 배만 채우고 있습니다. 여자 하인은 또 다른 요리를 가져오고 있고, 숯불에는 맛있는 소시자가 구워지고 있습니다. 탐식의 그림에 나오는 이 뚱뚱한 남자는 얼마나 욕심이 가득한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 잠언 말씀은 욕심이 가득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입니다.
2. 음식을 탐하지 말라
1-2절 말씀입니다.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높은 관직의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을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 관원과의 대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 앞에 차려져 있는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경우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지혜입니까?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라. 음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원과의 대화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음식에 눈이 멀어 중요한 관원과의 대화는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3절에서는 그 음식의 성격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음식과 음식을 먹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딤전 4장 음식에 관련된 교훈의 말씀입니다.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음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주신 감사한 선물이기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음식을 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높은 관원과의 식탁의 자리에 음식을 탐하느라 중요한 대화는 다 잃어버립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권면인 빌립보서 3장 18-19절을 보면,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지라.” 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입니까? 그들의 신을 배로 여기는 탐식하는 사람입니다.
음식과 연관된 지혜의 말씀이 계속됩니다. 6절을 보면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이 구절에 있는 악한 눈이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새번역 성경은 6절을 “너는 인색한 사람의 상에서 먹지 말고, 그가 즐기는 맛난 음식을 탐내지 말아라”로 번역합니다. 1절에서는 관원과 먹을 때, 6절에서는 인색한 사람과 함께 먹을 때의 상황에서 각각 음식을 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색한 사람이 7절에서 음식을 먹으라고 권합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음식을 먹고 마시라고 권하는 이 인색한 사람의 마음에는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음식을 탐하는 것은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3. 재물을 탐내지 말라
4-5절입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하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이 권면의 말씀은 사사로운 지혜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애쓰는 물질에 대한 탐욕을 말합니다. 이 사람의 모든 관심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것인가에 있습니다. 재물이나 돈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부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면 탐욕의 죄가 됩니다.
10-11절 말씀입니다.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탐욕이 가득한 자는 심어지 가난하고 불쌍한 고아들을 돌보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의 밭을 침범하여 지계석을 옮기는 탐욕의 죄로 가득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고아의 구속자이시며 탐욕한 자를 대적하여 고아들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음식을 탐하듯이 돈과 부를 탐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심히 파괴하는 심각한 죄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한 누가복음 12장의 우리 예수님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어리석은 부자는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어리석은 부자의 어리석음은 그 영혼의 만족을 오직 먹고 마시고,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둔 탐욕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탐욕이 왜 문제가 됩니까? 오직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생각하니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않고 그 영혼이 심히 가난합니다.
동일한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딤전 6장 9-10절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에 대한 탐욕으로 눈이 멀면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본문에 나오는 고아도 보이지 않고, 오직 채울 수 없는 욕심만 남습니다.
4. 탐식과 탐욕에 빠지지 않는 비결
그러면 어떻게 하면 탐식에도 빠지지 않고, 탐욕에도 빠지지 않겠습니까?
첫째, 자족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자족입니다.
둘째는 절제입니다. 먹는 것을 탐하는 것을 절제하기 위해서 금식이 필요하고, 돈에 대한 탐욕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가지려 하지 말고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하며 지금보다 더 단순한 삶을 살기로 절제의 은혜를 구합니다.
세번째는 섬김입니다. 내가 더 먹고 싶은 것으로 다른 부족한 사람을 섬깁니다. 내가 더 갖고 싶은 것으로 교회의 사역을 위해서 물질로 섬기고,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5. 우리의 기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탐식과 탐욕에 대한 권면의 말씀을 받아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보다 먹는 것을 더 추구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지 않게 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게 하시며, 육의 양식보다 더 영의 양식을 구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둘째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자족하는 마음, 지금보다 조금 더 절제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게 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도록 주신 은혜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부족하여 연약한 사람들을 섬기는 섬김에 아낌없이 사용되게 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음식과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가득한 이 시대에 우리 영혼은 오히려 더 피폐하고 굶주려 있습니다. 더 많이 먹어서 문제가 많은 시대이며,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려고 문제가 많은 이 시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영의 양식으로 살아가는 말씀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 자족하는 마음을 더하여 주시며 지금보다 더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절제의 지혜를 우리에게 더하여 주옵소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섬김과 사역을 위하여, 가난하고 굶주리고 부족한 이웃을 위하여 아낌없이 사용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