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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21001 / 부지런한 자 / 잠 27:23-27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2.10.05|조회수821 목록 댓글 0

부지런한 자

잠 27:23-27

23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24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25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26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27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잠 27:23-27 / 네가 기르는 가축 떼를 일일이 보살펴 주어라. 네가 키우는 짐승을 정성껏 보살펴 주어라. 24) 값진 보화가 영원하지 않듯이, 한 정권도 오래가리라 생각 말아라. 25) 하지만 풀은 베어 내면 또다시 싹이 돋아나니 이산 저산에서 풀을 베어 꼴을 마련할 수 있다. 26) 양털은 깎아 옷을 지어 입을 수 있고 염소는 팔아 땅뙈기라도 마련할 수 있으며 27) 염소젖은 너뿐 아니라 네 집안 사람들에게 먹거리가 될 수 있고 네 집 계집종들까지도 먹고 살 수 있으리라.

 

헛된 재물과 권력에 마음을 두기보다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 양과 소를 잘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부지런히 살피라(23-24) 양과 소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귀한 가축입니다. 귀한 만큼 소중하게 돌 봐야 합니다. ‘형편’이라는 말에는 ‘얼굴’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양떼의 얼굴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지런히 살피라’는 말은 ‘셈을 해 보라’는 의미입니다. 얼마만큼 많은 양과 소가 있는지 확인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형식적이거나 소극적인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게으르지 않고 세심하고 꼼꼼하게 살펴보라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라는 말씀이 떠오르게 합니다(요 10:14). ‘마음을 두라’는 말은 지극한 사랑으로 돌보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많은 재물을 소유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재물은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면류관도 대대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세상의 왕조가 영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즉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꼴을 거두라(25-27) 재물이나 권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풀은 사람의 노력과 관계없이 계속해서 움이 돋아납니다. 재물이나 권력과는 다른 성격이 있습니다. 재물이나 권력의 욕심이 없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좋은 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풀은 동물 뿐 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데도 유용합니다. 풀은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축은 풀을 먹습니다. 사람은 가축을 통해서 옷을 얻습니다. 뿐만 아니라 염소를 팔아서 밭을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양과 염소가 제공해 주는 젖은 좋은 음식이 됩니다. 여종의 먹을 것도 제공해 줍니다. 여종까지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자연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자연과 짐승, 자연과 사람이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잘 보호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적용: 1차 산업인 농업과 목축업은 우리의 생명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실천 방안들을 나누어 봅시다.

 

만약 당신에게 모래가 담긴 접시를 주면서 그 안에 철을 찾으라 한다면, 당신은 먼저 눈으로 찾다가 손으로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철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일 것입니다. 이때 자석을 가지고 모래 속에 넣어 찾아보면, 자력에 의해 보이지 않는 미세한 철가루가 붙기 시작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자석으로 철을 찾듯 매일, 매 시간마다 하늘의 복을 찾을 수 있게 해줍니다.

 

< 설 교 >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라

잠언 27:23~27 / 김준범 목사

본문은 양떼와 소떼를 치는 목자들에게 주어진 잠언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에 거하는 사람들이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양떼들과 소떼들을 배경으로 하면서, 특별히 선한 목자, 좋은 목자, 지혜로운 목자는 어떤 목자인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고 소떼에 마음을 두는 선한 목자가 되라

첫째,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고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고 하셨습니다(23절). 이는 목자의 마음 태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잠언 기자는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교훈하기를, 양떼의 형편을 잘 살피고 소떼에 마음을 두라고 하였습니다. “살피라”는 말은 “잘 알아라, 그들의 형편을 이해하라, 그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그들의 형편을 둘러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소떼에 마음을 두라고 하신 것은, 그 양떼와 소떼 하나하나에 진정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상대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목자라야 좋은 목자라는 말입니다. 양떼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위하고 사랑하며, 양떼 하나하나를 목적으로 생각하고 그들 하나하나에 대하여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는 목자라야 좋은 목자요, 선한 목자요, 지혜로운 목자입니다.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있다고 하셨습니다. 양을 위하여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모든 수고의 떡을 먹으면서 양들의 안위를 살피고 양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삯군 목자는 양떼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위하고 사랑하는 것이 없고, 양떼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목자, 선한 목자는 양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고, 그들을 잘 알며, 늘 양들에게 마음을 둡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에다 마음을 두고 삽니까? 우리는 무엇을 부지런히 살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양떼와 소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면서 그들에게 마음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양떼와 소떼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양떼 자체에 대한 관심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육적 형편만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형편, 신령상의 형편을 살펴야 합니다. 그들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고 그들의 영혼을 살펴야 합니다. 특별히 기도로 살펴야 합니다. 기도 시간에 그들을 마음에 두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그들을 잘 살피고 돌아보는 것입니다. 기도로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가 돌아보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에게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에는 관심이 많고, 재물과 권력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우리의 양떼의 형편을 돌아보는 일에는 별로 마음이 없습니다.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을 우리가 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두고 있습니까?

 

 

 

풀을 찾아다니면서 부지런히 꼴을 거두고 먹이는 충성스러운 목자가 되라

둘째, 좋은 목자는 풀을 찾아다니면서 부지런히 꼴을 거두는 목자입니다.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25절)고 하셨습니다. 풀은 아주 흔해서, 사람들은 풀을 좀처럼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세상의 금과 은, 세상의 영광과 권세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그런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양떼를 치고 소떼를 치는 목자들은 풀을 찾아다니고 양떼들에게 꼴을 거두어 먹여야 합니다. 양떼들에게 꼴을 거두어 먹이지 않는 목자는 양들을 학대하는 악한 목자요, 게으른 목자요, 어리석은 목자입니다. 참된 목자라면 허황된 것을 꿈꾸지 말고 마음을 낮추어서 풀을 벨 생각을 해야 합니다. 목자에게 있어서 소망은 금과 왕관이 아니라 양떼와 소떼입니다. 양떼를 먹일 수 있는 풀이 그에게는 금이요 왕관입니다. 목자는 자기 양떼와 소떼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인 풀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양떼와 소떼들이 그것을 양식으로 삼아서 먹고 자라게 됩니다. 풀을 찾아다니면서 양들을 초장으로 인도하고 꼴을 먹이는 목자라야 좋은 목자요, 선한 목자요, 지혜로운 목자입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이 풀은 베어져도 다시 새싹이 나고, 언덕에서 계속해서 끝없이 자라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풀을 풍성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목자는 풀 걱정하지 않고 안심하고 계속해서 양들을 돌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말씀하실 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이나 부탁하셨습니다(요 21:15-19). 양들에게 말씀의 꼴을 잘 먹이는 것이 가장 잘 돌보는 것이고 가장 잘 살피는 것입니다. 양식을 주지 않는 것은 양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에게 끊임없이 신선한 꼴, 좋은 꼴을 먹이는 목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인 꼴을 얻어 먹지 못해서, 말씀의 신선한 꼴을 얻어 먹지 못해서 그들이 기갈을 당한다고 하셨습니다 (암 8:11-13 참조).

 

자타를 유익하게 하는 지혜로운 목자가 되라

셋째, 목자가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고 그에게 맡겨진 소떼에 마음을 두고 살고, 양떼에게 부지런히 꼴이 먹이면서 돌보면, 양도 살고 목자도 삽니다. 양도 복되게 되고 목자도 복되게 됩니다. 목자가 양떼를 깊이 사랑하고 소떼에 마음을 두고 살면서 부지런히 그 형편을 돌아보면서, 부지런히 좋은 꼴을 먹여보십시오. 비록 목양의 일은 고단한 일이지만, 양떼와 소떼가 애정을 받으면서 좋은 꼴을 많이 먹게 되면 양은 살지고 잘 자라게 될 것입니다. 양들이 튼튼하게 되면 새끼도 잘 낳아서 양떼가 늘게 될 것이고, 양의 털로는 옷을 해서 입을 수 있게 됩니다. 양이나 염소를 잘 키우면 그것이 밭을 사는 값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밭에서 많은 식물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또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목자와 그 온 가족들의 식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으로 빵을 살 수도 있고, 필요한 대로 양식을 구할 수 있습니다. 목자 자신만 아니라 속한 모든 가족들, 여종들까지 먹을 것이 풍족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양도 복되고 목자도 복되게 됩니다. 자타에게 큰 유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목자가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고 소떼에게 마음을 두기를 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에게 마음을 두고 그들의 형편을 살핍시다. 먼저 우리 가족들의 형편을 돌아봅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하는 성도들, 믿음의 형제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고 돌아봅시다. 양떼를 살피고 돌아보는 일은 어느 한 사람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은 서로의 형편,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도록 함께 세움을 받은 자들입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4)고 하셨습니다.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자기 일만 돌아보지 말고, 각각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형편과 처지도 돌아보고, 그들의 일도 돌아보고 다른 일들을 유익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목자가 선한 목자요 충성스러운 목자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양떼들에게 우리는 어떤 목자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신다면 우리는 무어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너무 무관심한 목자는 아닌지 돌아보고 회개합시다. 사람들은 재물과 이 세상의 영화와 권세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는 게으른 자들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을 부지런히 헤아려보고 살펴봅시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양떼와 소떼가 언제까지 우리 곁에 있을는지, 우리의 직분과 일, 건강과 재물도 언제까지 우리에게 주어질 것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이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양떼와 소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면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말씀의 꼴을 서로 공급하며, 서로의 일을 돌아보아서, 자타를 복되고 유익하게 하는 선하고 지혜롭고 충성스러운 목자들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삶의 기쁨과 보람은 가까이에 있다

잠 27:23-27 / 376장

 

1. 주님의 은총이 오늘도 여러분 위에 내리심을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2. 어제 저는 참으로 뜻있는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신갈에서 용인으로 가는 고갯길 오른 편에 위치한 도립병원 노인 전문병원이란 곳에서 1주년 기념 행사를 가졌는데, 그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이 제가 가르치고 있는 루터신학대학교 학생들 40여명이었습니다. 그들 중 8명은 매 주일 두 차례씩 그곳에 입원하고 있는 치매 노인들을 위해 목욕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 선한 사마리아 회를 여러 차례 소개해 주었는데, 그것도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제가 설교를 하였고, 학생들이 준비해 간 노래와 율동 그리고 연극으로 한 때나마 그들을 위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거기 계시는 분들은 대부분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서 버림을 받은 무연고 노인들이었습니다. 일 평생 기르고 가르치는데 사랑을 다 쏟았던 자녀들이,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말았다던 지, 자신들의 주소지를 옮겨버림으로 세상에 홀로 떨어진 듯한 배신감을 품고 세상을 살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껍데기만 남은 노인들과 함께 손을 잡고 노래부르면서 마음속으로부터 한없이 서러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지할 데 없는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고 있는 젊은이들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 자식을 아낌없이 내놓을 만큼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신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사랑 가운데서 창조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불쌍한 모습을 눈뜨고는 바라보실 수가 없으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느끼고 용기와 희망을 갖고 우리 서로 사랑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장은하 집사님이 60개의 사탕봉지를 예쁘게 포장해 주어서 그것이라도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감사드립니다. 

 

3.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자신의 삶에 충실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맡은 일을 주목해 보고 관심을 가져보면, 거기엔 생각보다도 훨씬 더 큰 기쁨과 보람이 있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을 실제 생활에서 무의식중에 적용하곤 합니다. 내가 하는 일보다는 남이 하는 일이 더 근사해 보이고, 내가 사는 가정보다는 남의 가정이 더 행복해 보인다는 식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는 말입니다. 물론 객관적인 시각에서 이런 비교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삶은 객관화할 수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는 말도 있고, “위대한 삶은 좋은 조건에서보다는 나쁜 조건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행복은 극히 주관적인 것이 아닙니까?  남보다 좋은 조건인데도 늘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만, 반대로 자랑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삶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때문입니다. 고기 반찬을 먹으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나물 반찬을 먹고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삶을 이해하고 느끼는 사람의 정신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은 좀 실제적인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맡은 직분에 대해서 주목하고 관심을 기우려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감사할 것과 보람된 것을 많이 찾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은 사는 값이 되며,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사람의 식물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남의 떡만을 부러워하느라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 너무도 소홀히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겨 주신 일들의 소중함을 아직도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의 모친이 살아 계실 때, 늘 들려주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다. 가난했지만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네 살배기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남편이 곁을 떠나갔습니다. 아홉 남매 중 위로 아들과 딸 둘만 결혼시켰을 뿐 아직 일곱이나 줄줄이 남겨두고 말입니다. 어린 아들을 들쳐 없고 논으로 밭으로 심방대원으로 쉬지 않고 달음질 하셨습니다. 당신은 항상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자식들이 한결같이 신앙의 가정을 잘 이루어 사는 것으로 행복해 하셨습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성가대 지휘자, 성가대원, 등등으로 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늘 흐뭇해 하셨습니다. 일생동안 숱한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모든 염려와 걱정을 주님께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 행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 행복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숨바꼭질을 해 보셨지요? 보물찾기도 해 보셨지요?  오늘 그 즐거웠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꼭꼭 숨어 있는 우리의 행복을 찾아보시면 어때요?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전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쁨과 즐거움을 넘어서서 위로와 평안 그리고 소망과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한다면, 여러분은 참 귀한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참 행복한 분이십니다. 이런 느낌으로 오늘을 짊어져 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참된 목자의 사명

잠언 27:23-27 / 고재봉 목사

어느 날, 한 사람이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그 사실을 고하자 아내는 남편이 평소에 문학적 재질이 있었던 것을 알고 말한다. “여보! 살림은 제게 맡기고 이번 기회에 당신이 좋아하는 문학 공부를 한번 해 보세요.” 그리고 남편 몰래 조금씩 저축한 돈을 꺼내 보여주며 남편을 위로했다. 그 아내의 위로로 힘을 얻고 열심히 문학공부에 정진해 생겨난 작품이 바로 나다나엘 호손의 ‘주홍 글씨’다.

 

사람들은 다 연약한 존재이기에 서로 세워주어야 한다. 만남의 제일 목적은 서로 세워주기 위해서다. 특히 가정과 교회에서의 만남은 더욱 그렇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위로가 되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는 실패했을 때 인정이 없는 태도다. 실패할 때 위로하라고 동반자를 만난 것인데 그때 무시하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가까운 사람을 세워주지 못한 가인 콤플렉스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누군가와 만나게 하신 것은 그를 세워 주면서 공동체를 일으키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 위로자 한 사람만 있어도 공동체의 분위기는 어느새 살아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된 목자를 찾고 있다. 한국교회는 참된 목자를 갈망하고 있다. 본문을 중심으로 참된 목자는 어떤 모습인지 배우고자 한다.

 

본문 23절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첫째/양떼와 소떼의 형편을 살피고 마음에 두어야 한다.

영어 성경의 첫 번역이 예사롭지 않다. “Be sure you know.” ‘너는 확실하게 알라!’ 무엇을 확실하게 알라는 것인가? “the condition of your flocks.” 너의 양떼들의 형편을. 여기서 형편이란, the condition ‘양떼가 처해 있는 상태’ ‘건강상태, 정신상태’를 확실하게 살피고 확실하게 이해하라는 권면이다. 살피되 부지런하게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유의할 것은 사생활까지 침해해가면서 살피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2-3) ❶양떼를 부지런히 살피되 항상 양무리의 본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❷소떼에게는 마음을 두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소떼는 큰 짐승, 군중을 의미한다. 그런데 마음을 두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 “give careful attention to your herds.” 소떼에게 신중하게 관심을 보이고 집중해서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소떼는 양떼보다 더 신앙이 성숙하고 더 큰 일을 한다. 더 많은 유익을 준다. 놀랍게도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씀이다. 양떼는 위로의 말 한 마디, 부드러운 손길로 위로가 가능하지만, 소떼는 그렇지 않다. 마음이 통하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목자는 큰일을 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신뢰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공동체가 어려워진다.

 

예레미야 8장에 아주 주목할 만한 말씀이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상을 섬기는 유다, 회개치 않는 유다, 거짓을 쫓는 유다, 신앙의 결실이 없는 유다를 책망하면서 수치와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학, 반구, 제비, 두루미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 질서를 순응하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인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약간의 찰과상이 아니라 깊은 상처, 의사의 도움 없이는 치료할 수 없는 큰 상처가 임했다.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하면서 내 백성들이 받은 상처를 가볍게 여긴다. 그러면서 ‘괜찮아! 괜찮아! 그 정도 가지고!’ 그렇게 말로 끝난다는 것이다. 어떤 의사가 맹장 걸린 환자에게 머큐로크롬 한번 발라주고 ‘괜찮으니까 집에 가서 쉬시오.’라고 말한다면 그는 가짜의사다. 그런 의사를 가리켜 돌팔이라고 한다.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백성이 상처를 입어 앓고 있을 때에 그들은 ‘괜찮다! 괜찮다’하고 말하지만 괜찮기는 어디가 괜찮으냐?”(렘8:11, 표준) “그들은 내 백성의 상처가 별로 중하지 않은 것처럼 그것을 어루만지며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고 말하지만 사실 평안은 없다.”(현성) 하나님은 상처 받은 백성들 때문에 마음이 슬프고 상하고, 더 놀라운 것은 상처받은 백성들이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탄식하셨다. 21절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그러면 하나님의 치료책은 무엇인가?

22절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렘8:22)

길르앗에 뭐가 있다고? 유향과 의사가 있다는 얘기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 지역이다. 길르앗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유향이라는 약초가 많고, 다른 하나는 당시에 중병을 치료하는 명의들이 많았다. 유다 백성들은 중병을 앓고 있다.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은 수만 명, 수십만 명이 바벨론에 노예로 끌려가는 중병에 걸린다. 그러나 아무리 중병일지라도 하나님은 치료책을 마련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유향은 무엇이고 의사는 누구신가? 복음적으로 길르앗의 의사는 예수 그리스도요 길르앗의 유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는 길르앗의 유향이다. 큰 죄든 작은 죄든, 생각의 죄든 행동의 죄든, 믿기 전의 죄든 믿은 후의 죄든, 어떤 형태의 죄든 어떤 이름의 죄든 모두 씻어주고 덮어주는 길르앗의 유향은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우리의 죄와 모든 상처를 씻어주는 길르앗의 유향인줄로 믿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피 외에는 죄를 씻는 게 없다. 우리의 전문의는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본문 25절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둘째/신선한 꼴을 먹이기 위해 힘써 연구해야 한다.

다윗에 대해 전승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다윗은 양을 치더라도 다른 목동과 달랐다. 항상 양을 세 종류로 나주었다. 어린 양, 병든 양은 따로 기르면서 막 피어나는 연한 풀을 먹였다. 그리고 건강하나 아직 어린 양은 보통 풀을 먹였다. 그리고 건강한 양들은 억센 풀을 먹였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다윗아! 네게 양을 맡겨 보니 너무나 잘 돌본다. 네가 내 백성을 맡겨도 그렇게 잘 할 것 같다. 내가 너를 왕으로 삼으리라”(시 78:70-72)

 

양떼와 소떼들에게 좋은 꼴을 주기 위해 목자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아무 꼴이나 갖다 주면서 먹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양떼와 소떼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상태를 파악하지 않고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주부들은 고민할 것이다. 오늘은 어떤 밥을 지을 것인가? 고민하지 않는 주부는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고민하는 주부가 지혜롭고 충성된 주부다. 목자나 교사도 마찬가지다. 밥은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주식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밥만큼 반찬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복음서를 더 깊이 읽어보면 제가 말하는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제사장, 서기관, 율법사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사람들의 생활에 유용한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이끌어 주셨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는데 힘을 기울이셨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하나님께 칭찬받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롬 14:18-19)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이 말씀은 새로운 적용, 새로운 감동을 주는 말씀 준비가 필요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이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친 땅속을 파헤치고 고개를 들고 돋아나는 파릇파릇한 새싹들, 시커먼 나무들 가지에서 우리가 생각지 못한 세계를 가지고 나타나는 아름다운 꽃들을 보면, 땅속 깊이 잠잠했던 마음들이 흥분되고 감동이 살아나는 기분을 느낀다. ‘와! 어떻게 저런 세상이 숨겨져 있었을까?’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똑같은 말씀이지만 새로운 맛을 보게 하는 것이 바로 목자요 교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이 말씀은 어떤 교훈을 생각하게 만드는가? 도시에 있다가 산에 오르면 무엇이 다른가? 공기가 다르다. 그러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 산소 맛이 다르다. 너무 신선해서 우리 코끝이 신선하고 마음이 상쾌해진다. 신선한 맛을 나게 하는 꼴, 신선한 맛을 나게 하는 말씀을 말한다. 선생의 자리는 두려운 자리다. 많이 맡은 자리다. 잘 감당하면 그 축복은 상상하지 못할 놀라운 것이지만, 반대로 잘 감당치 못하면 그 받을 책망은 너무너무 클 것이다. 그래서 아무나 선생 되어선 안 된다. 주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야 한다. 새끼를 떼어놓고 여호와의 번제물로 드려지는 암소가 되어야한다. 양들은 목자를 앞서 갈 수가 없고 목자를 뒤따른다. 목자가 가면 양도 따라간다. 목자가 잘못 가면 양들도 잘못 간다. 교사 된 자는 이 얼마나 중대한 사명을 가진 자인 줄 안다면 아무나 이 직분을 생각 없이 사모해서도 안 될 것이다. 목자는 부지런히 양떼를 살피고 배고프고 병들고 낙오한 양이 없는지 찾아내서 만지고 치료하고 섬기어야 한다. 목자는 양 하나하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양은 목자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청해진해운 소속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한 사람의 리더가 중요함을 교훈하는 사건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윤택하게 하는 목자가 아니다. 어떤 위험 속에서도 양들과 함께 하는 목자다. 슬픔도 고통도 그리고 사랑도 함께 나누는 목자가 진정한 목자인 것이다.

 

 

 

 

 

부지런한 자

잠 27:23-27

오래전 어느 한 청년이 “전도사님. 장사하는 곳에 취직하고 보니 적정한 이윤을 남기는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어요. 폭리와 적정한 이윤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했었습니다. 성경에서 무역을 가장 잘한 왕은 역시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배를 만들어 14톤의 금을 얻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왕상 9:26~28). 또 3년마다 여러 물품을 싣고 오기도 했죠(왕상 10:22).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전도서 11장 1~2절 말씀이 ‘자선(慈善)’보다는 ‘투자(投資)’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럼 성경은 투자와 장사를 장려하고 있을까요?

 

먼저 성경은 상법(商法)을 중요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 의인이 ‘물질’에 관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잠언과 그 외 성경 말씀을 통해 물질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여기서 ‘성실함’은 교회 안에서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삶의 영역에서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에만 보낸 것이 아니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세상에서도 충분히 성실한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잠 25:13).

 

열심히 일하다 보면 30배의 열매를 얻을 때도 있고, 100배의 열매를 얻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100배에만 집착하지 않고, 주어진 열매를 통해 가난한 자를 돕고(잠 14:31),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면 폭리와 적정 이윤을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잠언 27장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삶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잠언에서의 ‘가난’은 게으른 자의 결과물(잠 10:4)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도 가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게으름과 술 취함과 같은 탐욕으로 가난해지는 것은 악한 자의 모습입니다(잠 21:17). 그래서 지혜자는 양 떼와 소 떼를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고 말합니다(23절). 삶의 영역뿐만 아니라 신앙의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물과 같이 면류관도 대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니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말하죠(24절). 그래서 세상에서나 신앙의 영역에서 늘 새로움으로 열심히 일하여 가정과 신앙의 영역이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23~27절).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달란트)를 활용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나의 탐욕이 더해지면 그것은 죄악으로 향하게 되기 쉽습니다. 욕심과 집착이 악한 모습을 낳고, 성실함과 절제가 선한 모습을 낳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부유함을 따라가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발견하여 그 안에서 성실하게 주의 일을 감당한다면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풍요로운 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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