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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30608(1) / 경건한 성도의 영적 싸움(1) / 엡 6:10-20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3.08.11|조회수1,870 목록 댓글 0

경건한 성도의 영적 싸움(1)

엡 6:10-20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6:10-20 / [영적 투쟁] 끝으로 내가 여러분에게 깨우쳐 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강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11) 그러니 사단의 어떤 속임수나 올무에도 대항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무기로 무장을 하십시오. 12) 우리가 싸워야 할 적들은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육체가 없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악한 지배자들과 강력한 존재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어둠의 왕들과 영적 세계에 있는 무수한 악령들입니다. 13) 그러므로 언제 적이 공격해 오든지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하나님의 무기를 다 사용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러분은 굳게 서 있을 것입니다. 14) 이제 여러분은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하나님이 인정하신다는 흉패를 가슴에 붙여야 합니다. 15) 평화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빨리 달릴 수 있는 신을 신어야 합니다. 16) 어떤 싸움에서든 악한 세력이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는 믿음의 방패를 들고 있어야 합니다. 17) 그리고 ㄱ)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칼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합니다. (ㄱ. 사59:17) 18) 여러분은 또한 항상 기도하십시오. 무슨 일에나 성령께서 원하시는 선 안에서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여러분이 필요한 것을 계속해서 아뢰십시오. 각지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열심으로 기도하십시오. 19) 내가 주님에 관한 것을 담대하게 말할 때나 주님의 구원이 이방 사람들에게도 임한다는 것을 설명할 때 하나님께서 적절한 말씀을 주시도록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20) 나는 지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쇠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감옥 안에서도 주님을 증거하는 말을 담대하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바울은 마귀를 대적하는 성도의 모습을 영적 전쟁에 맞서는 무장된 군인에 비유하여 권면합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10-13) 마귀는 사악한 간계로 성도들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11). 이 싸움은 눈에 보이는 싸움이 아닙니다. 악한 영들과의 영적 싸움입니다(12). 마귀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끊어버리려고 교묘하고 집요하게 공격을 펼칩니다. 그러나 아무 감각 없이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있다면 영적 싸움에서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바울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14-17) 바울은 영적 싸움에 대비해 6가지의 장비들을 세세히 열거합니다. 허리띠는 모든 것을 고정시켜줍니다. 죄의 유혹을 물리치려면 먼저 하나님의 진리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호심경은 심장을 보호합니다. 하나님의 의로 무장된 호심경은 성도의 마음과 생각을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합니다. 또 군인에게 있어 군화는 전신을 떠받쳐주는 것입니다. 평안의 복음의 신은 치열한 전쟁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 평안으로 떠받쳐줍니다. 방패는 적의 공격을 무력화시킵니다. 믿음은 불화살 같은 마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영적 방패입니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구원의 투구로 모든 생각과 가치관을 보호해야 합니다. 성령의 검은 영적 무기들 중에 유일한 공격 무기입니다. 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사용법을 올바르게 익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령의 검을 올바르게 다루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해야 합니다. 성도의 삶에서 일어나는 영적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하나님의 무기로 무장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18-20) 기도는 성도의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입니다. 바울은 언제, 어떻게,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기도는 성령 안에서 해야 하며, 항상 깨어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본인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영적 싸움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공동체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군대이고, 우리의 무기는 기도입니다.

 

적용: 성도의 삶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의 눈으로 나와 주변의 상황을 보아야 합니다. 오늘 당신의 삶에 찾아오는 유혹과 공격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떻게 이겨내기를 소망하십니까?

 

성도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책임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따라오는 유혹과 고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조롱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의지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감당할 만한 십자가를 주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십자가를 감당해야 하며, 한결같은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설 교 >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 6:10-20 / 피종진 목사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쟁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그 순간부터 장차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수행해야 할 영적 전쟁은 혈과 육, 즉 연약한 인간을 상대로 한 싸움이 아니라 마귀의 세력과의 영적 전쟁임을 밝히고, 그러한 마귀와 대적하여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신갑주’란 군인이 전쟁에 나가면서 자신을 적군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입는 전신무장의 갑옷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첫째,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 6:11) 마귀는 사탄을 의미하는 말로 ‘악의 영’(엡 6:12)입니다. 사람에게 마귀가 들어가면 생각과 말과 행동이 악하여져서 악한 자가 됩니다. 또한 마귀는 참소하는 자(계 12:10), 대적하는 자(벧전 5:8), 더러운 귀신(마 9:34),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 미혹케 하는 영(딤전 4:1), 거짓말하는 영(대하 18:21), 점치는 영(겔 13장)으로 역사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자신의 실체를 감추고 하와를 속인 마귀는 경건한 다윗을 속여 범죄케 하였고,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속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했습니다. 마귀는 기회만 있으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특히 마귀는 성도들을 유혹하여 실족케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함으로써 결국 성도들을 자기의 수하에 두고자 합니다. 마귀는 힘이 세고 목소리가 크다고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여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둘째, 악한 날에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 여기서 ‘악한 날’이란 온갖 악과 부정과 우상 숭배가 극심한 바울 당시의 시대를 의미하기도 하고,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자신의 마지막 때를 알아차린 사단의 권세가 우는 사자와 같이 대소동을 일으키는 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좋은 날, 행복한 날, 형통한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날도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3,14절을 보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악한 날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가 무장해야 할 하나님의 전신갑주

①진리의 허리띠입니다(엡 6:14).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진리 및 성실과 정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로 무장하지 않으면 거짓 교훈으로 공격하는 마귀의 공격을 피하기 어렵고, 또한 성실과 정직을 갖추지 않으면 마귀에게 공격의 허점을 제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②의의 흉배입니다(엡 6:14). ‘의의 흉배’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의미합니다. 우리를 마귀의 정죄로부터 온전히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함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2).

③평안의 복음의 신입니다(엡 6:15). 평안의 복음은 영적 군사에게 활동하기 가장 좋은 군화와 같습니다. 당시 전쟁터에서는 뾰족한 나무 조각이나 막대기를 끝을 잘라 땅에 박아두곤 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신을 신지 않으면 공격을 하거나 방어를 하기에 앞서 발에 심한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야 했습니다.

④믿음의 방패입니다(엡 6:16). 믿음은 성도에게 날아오는 불화살을 막을 수 있는 영적 방패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풀무 불 시험에서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벧전 5:8,9).

⑤구원의 투구입니다(엡 6:17). 영적 전투에 임하는 성도가 써야 하는 투구는 구원의 소망입니다. 구원의 소망이 있을 때에 스데반 집사와 같이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약해지지 않습니다. 구원의 소망은 사람을 강하고 굳세게 합니다.

⑥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엡 6:17).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의 권세를 제압할 수 있는 공격용 무기로서 성령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에서 말씀으로 승리했습니다.

⑦기도와 간구입니다(엡 6:18).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병사가 아무리 무장을 철저히 하고 있다 할지라도 깨어 적의 공격을 대비하지 않는다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갖춘 후에는 깨어 기도함으로 마귀의 공격을 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깨어 기도함으로 마귀와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고, 악한 날에 승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 즉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으로 예비된 신,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깨어 기도함으로 영적 전쟁에서 최후까지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적전쟁

엡 6:10-18 / 조용기 목사

할렐루야~ 한번 따라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예수님 안에서 행복합니다. 젊고 건강합니다. 평안합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오늘도 이겼습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더불어 영적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우주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자 루시퍼와 그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과 귀신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인간을 공격하여 타락하게 만듭니다. 그 예가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킨 것입니다. 그 후 마귀는 인간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인간은 구원 받기 전에는 마귀의 지배 하에서 마귀의 종노릇 하였고 구원 받은 후에는 마귀와 싸우며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현재 끊임없이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마귀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성경을 통해서 보면 마귀는 원래 매우 아름답게 지음 받은 그룹 천사장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천사 중에서도 가장 높은 천사인 그룹 천사 중에서도 으뜸이 가는 천사였습니다.

에스겔 28장 13절로 14절에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그가 이렇게 온갖 보석으로 단장하며 아름답게 지음 받은 것은 하나님을 보좌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지휘자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사라는 정체성을 잊고 감히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타락한 것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을 반역하여 쫓겨날 때 그를 따르던 하늘의 천사 3분의 1을 함께 타락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따라 산다면 마귀의 종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우리의 대적 마귀

마귀는 그 정체성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 이사야 14장 12절에는 더 부연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사 14:12~15)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는 굉장한 명칭을 가진 것이 사탄입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별은 천사를 상징하는데 뭇 천사 중에 가장 높은 자리를 자기가 참여하고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는 것은 북국 집회는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 계신 곳에 그가 같이 하여 하나님과 동등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결과 구덩이 맨 밑에 빠진 것입니다. 가장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교만과 오만입니다. 탐욕과 욕심인 것입니다. 사탄은 교만과 오만이 그 가슴에 들어오고 탐욕과 욕심이 들어오자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가 타락할 때 혼자 타락한 것이 아니라 그 밑에 따르던 천사 3분지 1을 데리고 타락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모든 세력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대적하는 흉악한 세력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4절에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닌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씨름

우리는 생각하기를 혈과 육으로 우리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북한을 생각하면 김정일이와 그를 따르는 도당들, 인간의 혈과 육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게 원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은 그 배후에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가 그 뒤에서 힘을 주고 마귀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주어서 싸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영적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하여 우리는 싸운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치자, 대통령, 수상들 높은 자리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 배후에 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반드시 마귀가 조정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통치자들 뒤에는 마귀가 조정하고 있다. 권세자들,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 권세 있는 자들 뒤에도 마귀가 조정하고 있다.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이 세상 모든 흑암의 세력을 배후에서 조정하는 것은 원수 마귀인 것입니다. 공중에 권세를 잡고 있어 우리의 기도를 막고 하나님의 은혜를 막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우리 사람들에게 찾아와서 일하려고 할 때 못 내려오게 막고 있는 것이 공중에 권세 잡은 악의 영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하라는 것은 우리의 기도를 막고 있는 악의 영들을 격파하고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도록 하기 위해서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처해 있습니다. 이 악의 세력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치자들을 지배하고 있고 권세자들을 지배하고 있고, 이 세상 주관자들을 지배하고 있고, 공중에 권세잡아 흑암의 세력으로 우리를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안보이는 엄청난 조직이 배후에서 우리를 대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씨름은 눈에 보이는 혈과 육에 대한 씨름이 아니라 배후에 있는 영적인 세력과 싸워서 이겨야 되기 때문에 영적 세력과 싸우는 것은 주먹으로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지난 2010년 11월 미션매거진(Missionmagazine)에서는 한 선교사님이 죽어가는 유럽 교회를 살려야 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 글을 보면, 유럽에서 개신교 출석 교인이 평균 3%에 불과한 나라가 22개국이나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믿음의 선진국들이 주일날 교회 출석하는 성도가 3%밖에 안된다. 프랑스만 보더라도 60년 전에는 전체 인구의 96%가 천주교 미사에 참석했지만, 지금은 불과 6%만 미사에 참석하며 개신교는 2%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1998년 짐바브웨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당시 영국의 대주교는“영국 교회가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기도의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교회 성장 정체를 이야기 한 지가 벌써 몇 년 째입니다. 그런 반면, 우리나라의 술 소비는 점점 증가하여 이제는 세계 1위입니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2004년을 기준으로 연간 20조 990억 원에 이르는데 이는 국내 총생산(GDP)의 2.9%가 술을 먹어 날리는 것입니다. 나아가 음주는 자동차 사고, 가정 폭력, 살인, 행동장애, 자살 등의 원인이 되므로 그것이 가져오는 손실이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씨름은 결코 눈 앞에 있는 것들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런 통계를 보고 큰일났다고 생각하지만 배후에 마귀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배후의 세력과 싸우지 않고는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국가가 아무리 힘을 다해서 이러한 것을 다스릴려고 해도 배후에 마귀가 자꾸 조정을 하는데 마귀의 조정을 내버려 두고서 이 현실을 다스릴 수 없는 것입니다. 뒤에 있는 마귀를 묶어 버리면 현재 육의 사람들이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마귀의 소근 거리는 것을 묶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마음에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실 동안에는 힘이 있지만 성령이 떠나면 힘이 없는 것처럼 마귀들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들어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온갖 악으로 소근 거립니다. 그 마귀를 묶어야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방탕하면 방탕의 마귀를 묶어야 되고, 아내가 방탕하면 방탕의 마귀를 묶어야 하고 술을 먹으면 술 먹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마귀를 묶어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혈과 육의 사람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있어서 인간을 조정하는 눈에 안보이는 원수 마귀와 씨름하고 싸워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결코 눈 앞에 있는 것들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 배후에 있는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인 마귀와의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지성인 러시아의 소설가 솔제니친은,“우리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인간들이 교회의 문을 닫으니 하나님께서는 하늘축복의 문을 닫으신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교회의 문이 닫히면 하늘문이 닫히고 교회의 문이 열리면 열릴수록 하늘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1천 2백만 성도가 있고 5만 교회가 있는데 교회가 늘수록 하늘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닫을수록 하늘문이 닫히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자는 먼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떠나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 마귀를 대적해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를 그대로 두고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에베소서 6장 10절로 13절에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여러분 마귀를 대적하여 물리치면 그가 가져오는 많은 흑암의 역사를 멸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종종 간단히 말하면 감기끼가 있다. 몸이 으스스하게 아프다. 편두통이 있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되지요.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이 병을 배후에 조정하는 영적인 파괴하는 마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감기끼를 가져오는 원수 귀신아 묶음을 받으라! 이 편두통아 귀신아 묶음을 받으라.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꾸짖으면 마귀가 물러가면 증상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상이 생기는 것은 눈에 안보이는 마귀가 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저는 이 진리를 깨닫고 난 다음에 늘 마음 속이나 몸에 흑암의 세력이 들어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려고 할 때 곧장 그와 싸웁니다. 곧장 그를 물리치면 나중에 그 증상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자다가 일어나서도 머리가 아프고 몸에 한기가 들고 하면 그대로 자지 말고 예수 이름으로 원수 마귀를 꾸짖습니다. 너희 마귀야 내게서 물러가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어떤 때는 소리치며 나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고요하게 떠나기도 하고 여하간 떠나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깨끗해져요. 상쾌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와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억압이 있으면 마귀가 안떠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억압하는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이 떠나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쾌해질 때까지 싸워야 돼요. 여러분 스스로가 싸워야 돼요. 그렇게 하면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말한 것입니다. 허리띠라는 것은 여러분 바지가 내려가지 않게 튼튼히 묶어 주고 옷을 바로 입을 수 있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까? 허리띠를 잘 묶어야지 다윗처럼 허리띠를 잘 못 묶고 춤을 추다가 바지가 내려가서 발가벗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운동하려도 허리를 단단히 묶어야 되지요.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허리에 띠를 잘 띠어야 옷이 몸에 부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로 허리띠를 띤다는 것은 말씀으로 힘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허리를 질끈 묶으면 허리가 튼튼하고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늘 읽고 듣고 묵상하고 말씀에 선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우리 말씀은 믿음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서서 믿으면 그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 14절에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라고 말한 것입니다. 말씀 중심, 십자가 중심으로 허리띠를 띠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보면 예수님이 몸찢고 피흘려 우리를 대속했지 않습니까? 어떻게 대속했어요? 죄에서 대속했습니다. 그것을 질끈 허리에 묶어야 돼요. 불의와 추악에서 대속했어요. 그것을 허리에 묶고 병에서 대속했고, 저주에서 대속한 진리를 허리에 묶고 죽음에서 대속한 말씀으로 허리를 묶으면 허리가 튼튼해서 몸이 마음대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습니다. 허리가 강해야 몸이 바로서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서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다는 꿈과 환상을 가지고 나가면 이 세상에 승리하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허리가 튼튼하고 말씀의 진리가 허리를 매야지 허리가 아파서 흔들흔들 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등뼈가 상한 사람 여러분 자리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하고 짐도 걸머지지 못하고 뛰지도 못하고 반 병신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서 몸의 중심이 잡혀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바로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말씀이 충만하면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의 흉배를 붙여라. 흉배라는 것은 가슴을 보호하는 장비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활을 쏘고 칼로써 싸우지 않습니까? 요사이 총을 쏘면 가슴에 아무리 흉배를 붙여도 뚫고 들어가지만 옛날 비유를 가지고 말씀했으니까 흉배를 붙이면 활을 쏘면 부딪혀서 떨어지고 그 다음 칼로써 쳐도 안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슴이란 것은 우리 마음에 사상을 말합니다. 생각을 말합니다. 생각을 가슴에 품지 생각을 발 뒤꿈치에 품는 사람 봤어요? 생각을 가슴에 품지요.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운명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가슴에 마귀가 불화살을 쏘아요.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이고 죄악으로 유혹하고 타락하고 파괴하는 생각을 집어 넣어요. 생각의 전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마음 속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생각을 집어 넣어요. 여러분 마음을 말씀으로써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정리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을 부여 잡으면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이 그것을 따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변화되면 환경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에서 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잘사는 것이나 못사는 것 승리하는 것이나 패배하는 것이 다 마음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먹어야 돼요. 그런데 마음을 잘 먹기 위해서는 여기에 의의 흉배를 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의의 흉배란 죄사함을 받은 의로운 은혜를 마음 속에 가지고 하나님과 가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합니다. 의인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수 있습니까? 의인이 되어야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데 의인이라는 것은 죄를 한번도 안지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도 한번도 안지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 다 죄인인데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으면 죄가 하나도 안지은 것처럼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피가 왜 위대하냐면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도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면 일평생에 죄를 한번도 안지은 사람처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보혈을 믿어 의의 흉배를 붙이면 하나님과 같이 하고 하나님과 같이 하면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한다고 생각해야 강하고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고 외롭게 나혼자 인생을 산다면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면 날리고 불안하고 공포에 들어차고 초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절대로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로움이 있어야 돼요. 의로움은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혈을 떠나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행위로써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 있어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태어날 때부터 거짓말쟁이요, 불의하고 추악하고 죄를 지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는 희망이 없어요. 오늘도 예수님의 보혈을 믿으면 아멘 하십시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믿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선물 받으라. 의로움의 선물을 받으라. 의의 흉배를 붙이면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나와 같이 할 수 있고 나에게 나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꿈쩍을 못하지요. 예수님의 보혈이 무서운 것은 마귀의 세력을 멸하고 하나님과 같이 살고 하나님과 함께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율법 행위에 의지해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는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을 신으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5절에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

신은 삶과 행위의 보호 기구인 것입니다. 여러분 신이 적은 것을 신으면 발 뒤꿈치가 가죽이 벗겨지고 발이 아픕니다. 신은 넉넉하게 신어야 발이 아프지 않습니다. 멋내려고 아주 발에 딱 맞은 신을 신었다가는 발 가죽이 벗겨지고 혼이 나는 것입니다. 발이 편안해야 걸음걸이가 편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은 자기 행위를 보호하는 수단을 말하기 때문에 인간의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학위나 배경이나 다 신발입니다. 모세가 80세에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제일 먼저 모세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네 발의 신을 벗으라. 신을 벗으라. 모세는 바로왕의 왕궁에서 40년 동안 살았습니다. 애굽의 모든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다 배운 사람입니다. 그 다음 사람 때려 죽이고 난 다음 도망을 쳐서 미디안 광야에서 와서 40년 살았습니다. 그래서 80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만나니까 하나님이 제일 먼저 말한 것이 네 발의 신발 벗으라. 신발은 뭡니까? 자기 명예, 지위, 권세, 돈, 교육, 자기 자랑, 자기 보호 기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보호하는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 보호를 가지고 자랑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것은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신발을 신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놀라운 신발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신발 보호하는 은혜를 예비한 것입니다. 그 은혜가 십자가에서 용서와 의의 신발인 것입니다. 용서와 의를 보혈을 통해서 허락해 주시고 거룩함과 성령충만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치료와 건강을 허락해 주시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허락해 주시고 부활 영생 천국을 허락해 준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중심으로 해서 성경은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 약속이 다 여러분 편안하게 살려고 하나님이 은혜로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아버지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신발을 신겨라. 맨발 벗은 자에게 신발을 신기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맨발 벗은 인생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비한 신발을 신기면 여러분 가난한 사람은 부요하게 되고 포로된 사람은 자유를 얻게 되고 눈 먼자는 보게 되고 눌린 자는 자유케 되고 하나님의 은혜의 신발을 신으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어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빈손 들었다.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다.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 은혜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신발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그 목록이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무엇을 예비해 놓았는가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신발을 신고서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와서 여러분을 넘어뜨리려고 해도 튼튼한 신발을 신고 있기 때문에 죄를 덮어씌우려고 해도 안되고 불의를 가지고 더럽게 하려고 해도 안되고 병으로 덮어 씌워도 안되고 망하게 하려고 해도 안되고 지옥으로 데려가려고 해도 안되는 것은 아예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신발을 신고 튼튼하게 서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평안의 신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발을 신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안해야 돼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인생에 불안과 초조, 절망을 가지고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신발이 튼튼하면 아프지 않잖아요. 발이. 평안한 생활을 하기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이 세상에 끊임없이 방패라는 것은 적이 쏘는 화살을 막는데 쓰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 우리 원수 마귀가 우리 마음 속에 불안, 초조, 절망, 분노, 시기, 염려, 근심 이러한 모든 것이 여러분을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억압한 마음, 괴로움 이런 화살이 날라올 때 이것을 막아야 되겠는데 무엇으로 막습니까? 믿음으로 막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방패로 막아야 돼요. 믿으면 하겠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서 마귀가 오면 대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염려가 오면 하나님이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 했으니 나는 맡겼으니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마음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불안이 다가오면 성경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병이 다가오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 물러가라! 공포가 다가오면 하나님이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같이 있겠다고 했으니 물러가라! 일을 시작하고 일이 잘 안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푸른 초장에 뉘워 주시겠다고 말했다. 나를 모든 일에 푸른 초장을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우리 가정을 푸른 초장으로 나의 일터를 푸른 초장으로 내 교회를 푸른 초장으로 형통하게 만들어 주겠다 했다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말씀으로써 여러분 원수 마귀를 물리치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생활인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감각적으로 살고 지식으로 살고 경험으로 살고 이성으로 살지만 여러분과 나는 무엇으로 살지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지요?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공부해서 거기에 쓴 것을 전부 마음 속에 꽉 간직하고 마귀가 오면은 말씀을 가지고서 대적하면 우리가 늘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6절에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잠언서 30장 5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구원의 투구를 쓰라.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언제나 부정적으로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하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머리에 꽉 채워 놓아서 부정적인 생각이 오면은 막아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여러분 머릿속에 긍정적인 생각이 오도록 입술의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기쁘다. 나는 즐겁다. 나는 평안하다. 나는 형통한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사랑한다. 왜 이말을 합니까? 실제 없어도 그 말을 하는 것은 그렇게 하므로 불행과 고통과 괴로움과 실패를 가져오는 마귀를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먼저 생각이 들어오면 그것이 마음 속에 들어가서 꿈을 꾸게 하고 믿음을 갖게 하고 입술로 고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총을 늘 머릿속에 간직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여러분 이사야 53장을 외우십시오.

“저가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내가 나음을 입었도다 내가 어린 양 같이 그릇 행하여 내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 나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도다”

나를 적용해서 머릿속에 하나님 말씀을 채우는 것은 굉장히 좋습니다. 더구나 시편 23편은 여러분에게 굉장히 좋은 긍정적인 생각을 주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그것은 나의 생활에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족하게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어떻게,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푸른 초장에 누운 양은 배불리 먹으니까 형통한 것입니다. 여러분 집에 들어가면 우리 가정이 하나님이 푸른 초장으로 만들어 주신다. 직장에는 하나님이 이 직장을 푸른 초장으로 만들어 주신다. 일터에는 하나님이 일터를 푸른 초장으로 만들어 주신다. 하나님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물가에 들어가서 마음에 쉼을 얻는 것처럼 하나님은 마음에 평안을 주신다. 하나님이 나의 평안이다. 집에 들어가나 일터에 가나 밖에 있으나 안에 있으나 평안을 주신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내 영혼을 막 살아서 일어나게 하신다. 기쁨으로 마음이 뛰고 즐거움으로 마음이 흥분되고 마음에 행복으로 활짝 꽃피는 이런 마음을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쁨으로 흥분해야 돼요. 즐거움으로 흥분해야 돼요. 젊어서는 그렇게 쉽지만 늙어서는 춤추기가 힘들지만 안되면 혼자라도 거울 앞에 서서 한번 춤춰 보세요. 춤추면 마음이 그렇게 기뻐지는 것입니다. 저도 청년회 집회에 한번 춤추고 나니까 기분이 좋더라구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소생시켜 영혼이 활달하게 되기를 원하고 그 다음에 자기 이름을 위해서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 힘으로 아무리 의롭게 살고 거룩하게 살려고 해도 안되잖아요. 그렇지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안돼요. 술주정뱅이가 주여, 마음은 먹기 싫어도 육신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한잔, 두잔 자꾸 먹어요. 담배 피는 사람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면서 또 탁 불을 붙이고... 사람의 욕망을 아무리 인간의 힘으로 제어하려고해도 안돼요.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십시오.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되지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성령이 와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시편에 저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지 않습니까?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에 고통스러운 일이 매일같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크고 적은 고통이 다가올 때 고통을 바라보지 말고 같이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이 계시면 해를 당치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원수가 다가오면 원수의 목전에는 밥상 차려주시고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 잔이 넘치게 하신다. 원수가 아주 싫잖아요.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원수가 우리의 생활 속에 굉장한 기여를 합니다. 원수가 오면 밥상도 차려주고 성령 기름도 부어 주셔서 잔이 넘치는 생활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한단계 높아지고 두단계 높아지고 삼단계 높아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만 보지 말고 목자되신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그를 이용해서 우리를 발전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른다. 부모가 자식을 평생토록 인자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인자하게 바라보시고 평생토록 돌보아 주시고 하늘나라 영원한 아버지의 집에 데리고 가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게 시편 23편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은 시편 23편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고백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아침에 한번 외우고 점심 때 한번 외우고 저녁에 한 번 외워 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흑암에서 광명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무에서 유로 가난에서 부요로 질병에서 건강으로 이러한 변화가 말씀을 통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투구를 쓰는 것입니다. 말씀을 머리에 탁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늘 기억하고 외우고 말씀을 묵상하면 여러분 신앙생활에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해주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의 검인 말씀을 항상 가지고 있으라. 배후의 세력 마귀와 적극적으로 대적하여 싸우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말씀으로 공격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있는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내 환경에 있는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매일 여러분이 일터에 나가기 전에 귀신부터 먼저 쫓아내십시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에게 와서 나를 훼방하는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그리고 방언기도를 조금 하고... 방언기도를 한 5분이나 10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해 주시니까 그러면 그날 생활에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녁에 잠들기 전에도 귀신을 물리치고 쫓아내고 방언기도 좀 하고 자면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방언기도는 여러분, 내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대신해서 꼭 필요한 기도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매님 한분이 내게 와서 간증을 하기를 갑자기 막 기도가 하고 싶은데 무슨 기도를 할지 몰라서 간절히 기도를 하고 방언으로 통성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하고 난 다음에 집 문을 채워 놓고 구역장이니까 구역회 인도하러 갔어요. 그런데 남편이 예수를 안믿고 예수 믿고 구역예배 인도하러 나가고 교회 간다고 핍박을 많이 하는데 그래도 열심히 교회 나왔습니다. 그 구역예배를 인도하고 난 다음에 집에 들어오니까 대문이 문이 열렸어요. 남편이 온줄 알고 당신 왔오? 하고 들어가 보니까 당신이 아니라 옷가지가 마당에 내던져져 있고 도둑놈이 왔어요. 도둑놈이 왔는데 그 동안에 모아놓은 돈 좀 서랍 속에 넣어 놓았는데 이것 다 날라갔으면 이제 죽었다 말이야.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는 남편 이제 돈조차 날렸으니 내가 살아날 길이 없다고 하나님 앞에 주저 앉아가지고서 아이고 하나님, 날 살려 주소. 나는 이제 죽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서랍을 열어 보니까 다른 서랍에는 전부다 흐트러서 옷을 끄집어 내서 엉망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서랍의 돈만은 손도 안대고 그대로 놓았어요. 얼마나 흥분했던지 그 길로 내게 뛰어 왔더라구요. 말할 사람이 없어서 내게 왔다면서 이런 기적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다른 것 다 뒤죽박죽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가장 귀한 돈은 손도 안대고 그 서랍은 열지도 않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서랍 곁에 올 때 눈을 막아 버렸습니다. 안보이는데 어떻게 서랍을 열어요? 어떻게 그렇게 했습니까? 방언기도 했기 때문에... 벌써 떠나기 전에 하나님은 그놈이 들어올 줄 알고 미리 그 입술을 통해서 막아 달라고 방언으로 기도 해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그 자매님을 방언으로 기도하게 만들고 난 다음에 지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여러분의 삶에 튼튼한 은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귀신 쫓아내고 방언하고 저녁에 잠자기 전에 귀신 쫓아내고 방언을 말하고 자면은 편안하게 잠잘 수 있고 굉장히 좋습니다. 아주 좋은 보약입니다. 한번 해보세요. 나는 매일같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는 싸워서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보다 강한 무기는 없어요.

마태복음 12장 28절로 29절에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먼저 마귀를 묶어 놓고 나면 모든 일에 훼방을 재켜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강한 자를 묶어 놓고 난 다음에야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 강한 마귀가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훼방을 하는데 일을 할 수가 있어요? 마귀부터 먼저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들과 싸워서 이겨 놓으면 그 다음에 평안하게 일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우리나라 대통령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될 것은 대통령같은 권세 있는 자의 뒤에는 마귀가 끊임없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훼방을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일을 잘하려고 해도 자기 힘으로 못하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기도를 해서 강한 자를 묶어 버리면 대통령이 마음에 성령의 은혜와 사랑과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받아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잖아요.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 권세자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줘야 마귀가 훼방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대적 안하면 마귀는 점점 더 강하게 우리를 쳐들어 와요. 마귀를 대적해야 돼요. 눈에 안보이지만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야 돼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마귀가 우리를 멸하러 왔는데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보혈을 의지하고 내 가슴에서 마귀가 물러가게 대적하고 우리 가족 중에서 마귀가 물러가도록 대적하고 교회를 훼방하는 원수 마귀를 물리치고 생활과 사업을 훼방하는 원수 귀신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대적하면 마귀는 물러가지 대적 안하면 안물러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만 바라보고 마귀를 대적해 나가면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승리를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와 싸울 때는 예수님의 이름을 잊지 마십시오. 내 힘으로 싸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싸워야 되고 마귀와 싸울 때는 말씀을 의지하고 싸워야 되고 성령님을 도우심을 온전히 구해야 되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서 싸우면 마귀는 물러가는 것입니다.

피터 와그너 박사라고 저하고 굉장히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훌러 신학대학교 교회성장 주임교수로 있었던 분인데 굉장히 오랫동안 편두통으로 고생 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저명한 병원이나 의사들에게 가서 다 조사를 받고 진찰을 받고 약을 먹어도 안 나았어요. 너무나 괴로워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나에게도 종종 만나면 편두통 때문에 고생한다고 괴롭다고... 나도 생각하기를 아마 머릿속에 뭐가 잘못되었나보다 그렇게 생각했지 마귀가 누른 줄은 몰랐어요.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피터 와그너 같이 신령한 목사요, 대학교수요, 지혜로운 사람인데 마귀가 붙었으면 벌써 쫓아냈겠지. 그리고 아무말도 안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너무 골치가 아프고 편두통으로 괴로워서 고통을 당하는데 자기가 가만히 생각을 하니까 그 조용기 목사가 와서 병들거든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하는데 혹시 나도 귀신이 붙어서 그런 것 아닌가? 그러면 왜 날 보고서 귀신 쫓아내라는 말 안하느냐? 내가 한번 시험적으로 쫓아봐야겠다. 그냥 하려고 하니까 부끄럽더랍니다. 적어도 신학박사요, 대학교수가 무슨 엎드려서 편두통 마귀야 물러가라! 그 말하기가 곤란해서 샤워실에 들어가서 옷을 벗고 샤워를 틀어 놓고 편두통 마귀야 물러가라! 나에게 편두통을 가져오는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그리고 비누로 이렇게 씻는데 비누방울이 물에 싹 씻겨 내려가는 것처럼 편두통이 싹 사라져 버리더랍니다. 야~ 이것 거짓말 같다. 아예 편두통이 깨끗이 나아버렸어요. 그래서 나에게 말하기를 조목사, 시키는데로 원수 귀신을 쫓아내고 나니까 거짓말같이 편두통이 나았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보태 주었습니다. 마귀는 한번 나갔다가 도로 다시 와서 문을 두드릴테니 도로 편두통이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러니까 에~ 괜히 나았다는 것 거짓말이구나 생각하지 말고 또 물리쳐라. 열 번오면 열 번 물리치고 백번오면 백번 물리치면 물러간다.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얼마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또 편두통이 다가오더랍니다. 다가와서 요 귀신아 안속는다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하니까 또 물러가 버리고... 또 다가오기에 또 물러가라니 또 물러가버리고... 그래서 나중에는 완전히 편두통에서 놓여남 받았다고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귀를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가슴 속에 들어오는 부정적인 생각도 자꾸 물리쳐야 되고 우울한 마음도 물리쳐야 되고 병의 마귀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한두번 물리치지 말고 계속 싸워야 돼요. 계속 싸워야 돼요. 가정에 불화가 있으면 불화의 원수 마귀와 싸워야 되고 저주가 오면 저주 마귀와 싸워야 되고 우리에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은 배후에 원수 마귀가 귀신들과 더불어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좋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히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이 다가오면 마귀가 배후에서 역사하는 줄 아십시오. 그리고 마귀를 쫓으십시오. 대결하면 물러가는 것입니다. 내버려 놓으면 같이 살기를 원합니다. 마귀는 처음에 와서 여러분과 더불어 있습니다. 따라 다녀요. 같이... 그런데 마음 속에 마귀가 늘 같이 따라다니다가 그 다음에는 내버려 놓으면 여러분 마음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억압한다는 것이 아주 압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흔히 말하는 스트레스. 제일 처음에는 그냥 마귀가 따라다니다가 그것을 내버려 놓으면 스트레스에 걸리게 합니다. 마음에 막 스트레스에 걸리면 얼마 안있다가 그것도 내버려 놓으면 우울증에 걸립니다. 우울증, 조울증에 걸립니다. 우울증, 조울증에 걸리게 내버려 놓으면 정신이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처음에 따라다닐때부터 쫓아내면 괜찮은데 따라다니는 것 내버려 두면은 점령하고 점령한 것을 내버려 두면 억압하고 스트레스하고 스트레스에 걸린 것을 그대로 두면 점령하는데 점령해 놓으면 힘듭니다. 제가 교회 개척할 때 이양선 박사라고 적십자 병원 소아과 과장 부인이 있었는데 그 부인 이름도 아직 기억합니다. 김순선 여사입니다. 그 의학박사의 부인이 반신불수가 되었어요. 늘 골치가 아프다고 하고 반신불수가 되어가지고서 병원에서 약은 다 쓰고 치료는 다 받아도 안되니까 천막교회를 세웠을 때 반신불수가 돼 몸을 이렇게 이렇게 끌면서 교회 왔어요. 우리 교회에서는 최고로 지성인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맡고 남편이 의학박사고 가정도 잘 살았어요. 전부 거지들만 모인 곳에 그 분만 교회 들어와서 앉으면 반신불수라도 교회가 환합니다. 그래서 제가 굉장히 정성을 들였다구요. 하루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난 다음에 내가 안수를 해주는데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축복받게 해주세요. 하니까 손을 탁 치더니만 나를 보고 야 이 자식아 그래요. 어휴 교양있는 여자가 그 말을 하는데 내가 너무 기가 막혔어요. 뭐라구요? 야 이자식아 왜 나에게 손을 얹냐? 왜 젊은 주의 종이 귀부인 머리에 손을 얹고 야단이냐. 미안합니다. 내 손 얹은 것 미안합니다. 나는 축복해 주려고 손 얹었는데 그런 의미로 생각하면 미안합니다 하니까 야 임마, 교회 당장 집어 치워. 말하는 것을 보니까 귀신이 말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당신 누구요? 그러니까 귀신이다. 어쩔래?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귀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오라! 허허허~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집에서 살았다고 너 몇마디에 나가냐? 안나간다! 그래서 같이 기도하던 몇사람의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듣더니 겁이 나서 다 달아나 버리고 말았어요. 천막교회에 나와 그만 남았는데 와~ 강합디다. 그때 나는 아주 신출내기고 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데 예수 이름으로 나오는 말만 알아가지고서 예수 이름으로 나오라고 하니까 안나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한시간을 싸워도 안나온다고 하지요. 두시간을 싸워도 안나온다고 하지요. 그런데 왜 계속해서 싸웠냐면 의사부인인데 만일 정신병자가 되어서 이렇게 하면 의사가 와서 보고 이것 우리 마누라 교회 나가더니 미쳤다 말이지. 미치게 만든 것은 주의 종이 미쳤으니 날 고소, 고발하면 이제 경찰 신세까지 지게 되겠다. 그래서 그 부인 걱정이 아니라 내 걱정이 더 되가지고서 내가 예수 이름으로 나오라. 안나온다. 나오라. 안나온다. 나는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었으니 기운이 빠져서 힘이 없는데 이것은 힘이 장사에요. 반신불수가 일어나가지고서 나를 때리려고 달라는데 나는 천막 가운데 도망을 치고 내 뒤에 따라오고... 나는 자꾸 물러가라고 하고 안물러간다고 하고... 여러분 무려 8시간을 싸웠습니다. 아침에 싸운 것이 해가 질때까지 싸웠어요. 나중에는 내가 정 힘이 지쳐서 어찌할 수 없이 내가 항복해야 되겠다 싶을 때 이 김순선 씨가 입에 거품을 물더니만 쓰러져요. 그래서 내가 예수 이름으로 나오라! 고함을 치니까 나중에 나가겠다고 그래요. 누구냐 그러니까 우리는 수가 굉장히 많다. 10년이 넘도록 이 집에 살았다. 그러더니 지금 나를 이렇게 무시하게 쫓아내느냐. 그래서 내가 무조건하고 나가라! 난 모르겠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나가라! 그러니까 한참만에 눈을 부비더니 크게 하품을 하고 일어나더니 아이구 미안합니다. 뭐가 미안합니까? 누굽니까? 마귀입니까? 진짜 사람입니까? 그러니까 진짜 사람이라고 그래요. 내가 마귀가 나를 통해서 주의 종하고 싸우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속으로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어찌할 수 없이 잡혀가지고서 욕을 하고 고함을 치고 주먹을 휘둘렀는데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그 다음에 이제는 나았다고... 그래서 빨리 집으로 가라고 남편 병원에서 돌아오기 전에 빨리 가라고... 그리고 내 보내고 난 다음에 혼자서 앉아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또 목사님~ 하면서 뛰어오는 것입니다. 아이구 또 시작이구나... 하나님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그 뛰어 들어오는데 왜 그렇습니까? 날 보세요. 뭘 보란 말입니까? 춤을 추는데 반신불수가 완전히 나았어요. 정말로 너무나 놀랬습니다. 10년 동안 반신불수가 된 사람이 귀신이 쫓겨나가고 난 다음 온몸 전신이 완전히 나아서 춤을 추고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남편 오는데 집밖으로 뛰어나가서 남편을 마중하니까 남편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다른 여자인줄 알고 정신을 못 차려요. 여보 나야~ 나야! 어떻게 나았느냐? 천막교회 가서 전도사님하고 8시간 고함을 치고 싸우고 귀신이 쫓겨나고 난 다음 나았다고.. 그래서 그 다음 주일날 그 남편이 교회를 왔더라구요. 내가 그 이야기를 어제 다른 목사님들 모임 가운데도 이야기했는데 마귀는 눈에 안보이지만 배후에 있어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배후에 있는 마귀를 강한자를 묶어야 병든 자를 해방시킬 수 있다. 완전히 억압을 당하고 스트레스를 당했으면 그 뒤에 있는 마귀를 묶어야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라. 저가 너를 피하리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이 원수 마귀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닌 것입니다. 인간이 아닌 것입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공중의 권세잡은 마귀들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들과 예수 이름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믿음을 강하게 하여 대적하여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속에 있는 마귀를 쫓아내고 내 주변에 있는 마귀를 묶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승리를 가져오고 평안을 가져와야 하나님 앞에서 축복받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마귀를 이기면 여러분의 생활속에 성령이 넘치게 임하여서 하늘나라가 여러분 생활속에 들어오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기도하겠습니다.

 

 

 

 

영적 전쟁과 하나님의 전신갑주

엡 6:10-18 / 이종철 목사(빛과생명교회)

영적 싸움

신앙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 중 하나는 아마 ‘영적 싸움’일 것입니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불쾌한 단어 또한 이 ‘영적 싸움’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나 성경에 반대되는 태도를 보이거나 말을 할 때 우리는 곧잘 “사탄아 물러가라”합니다. 아니면 그 배후에 마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의지로 한 말에 대해서 사탄 운운 할 때 듣는 사람은 매우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영적 싸움’이라는 단어의 근원이 바로 오늘 말씀에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혈과 육이란 것은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괴롭히고 사람이 고난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를 타락하게 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악한 정책은 악한 사람이 만듭니다. 정치지도자나 어떤 집단이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거나 욕심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대교회에서 로마가 황제 숭배를 강요했는데 이는 황제가 신적인 영광을 누리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로마 제국 통치의 안정을 기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의 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12절 말씀은 이런 보이는 혈과 육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싸움의 주된 근원이라 말씀합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주범이 아니라 그 배후에 어떤 악한 영적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인간들이나 권세 배후에 어떤 영적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11절에서는 마귀를 12절에서는 정사, 권세, 어둠의 세상 주관자,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고대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초월적 세력들이 보이는 세계를 다스리고 있었다고 믿었기에 이런 복잡한 명칭들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들을 이제는 사탄 곧 마귀라는 악의 대장과 그들을 따르는 귀신 곧 악한 영들로 단순화하고 있습니다. 싸움이라는 것은 적의 본진이나 그 대장을 쳐야 결정적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와 싸우거나 주변적인 것들을 건들어 봤자 별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말씀은 혈과 육이라는 허수아비와 싸우지 말고 그 배후에 있는 영적 세력과 진짜 싸움을 하라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는 이런 영적인 세계나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사회였습니다. 저는 피라미드를 볼 때마다 감탄을 합니다. 쿠프 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46m, 한쪽 면의 길이 230m, 230만개의 돌이 들어간 거대한 건축물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이 왕의 무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진짜 세계라 믿었고 피라미드는 죽음 이후 왕의 안식처입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 엄청난 사업을 왕 위에 즉위하자마자 벌이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죽음 이후 자신이 들어갈 무덤을 이렇게 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보이지 않은 영적 세력에 대해서조차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성이 깨이고 과학 문명이 발달한 현대 세계에서도 에베소서에서 말씀하는 이런 영적 존재들을 믿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듭니다. 이에 대해서는 현대 기독교 지성이라 할 수 있는 C. S. 루이스의 말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루이스가 쓴 책 중에 『스크류테이프의 편지』가 있습니다. 이 책은 고참 악마가 신참 악마에게 어떻게 하면 한 인간을 넘어뜨릴 수 있는지 훈수하는 편지글 형태의 우화입니다. 그 서문에서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마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 인류가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서로 정반대지만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인 오류들이지요.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악마를 믿되 불건전한 관심을 지나치게 많이 쏟는 것입니다. 악마들은 이 두 가지 오류를 똑같이 기뻐하며, 유물론자와 마술사를 가리지 않고 열렬히 환영합니다.”

저는 이 말씀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말씀에 앞서 흔히 말하는 ‘영적 싸움’이란 말에서 우리가 빠지기 쉬운 오류 두 가지를 먼저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영적 싸움을 간과하는 오류

사탄의 전략 중 하나는 사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믿게 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이고 인간 집단이라는 태도입니다. 물론 맞습니다. 악을 행하는 것은 혈과 욱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간의 교만이 숨겨 있습니다. 인간의 판단과 결정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과신입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속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결정했다고 했는데 실은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고 함정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베드로를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며 제 삼일에 다시 사실 것을 말씀하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꾸짓으며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 하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억울했을 것입니다. 자기 입술로 고백했는데 한 번은 하나님이 그렇게 가르쳐 주셨다고 하고, 또 한 번은 자기 생각과 의지로 예수님을 말렸는데 이번에는 사탄아 물러가라는 심한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같아서도 베드로처럼 말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주님이 고난을 당하고 죽는다고 하는데 말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말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영적 싸움에 정체가 드러납니다. 사탄이 이런 인간적인 정과 생각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일을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혈과 육을 가진 우리 인간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또 이용당할 때가 많은지 모릅니다. 역사가 그렇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결정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들이 많았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아마 대표적으로 독일의 히틀러 체제일 것입니다. 유태인을 억압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 소위 철학의 본고장이라는 독일 국민의 대다수가 지지하였습니다. 당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속은 것입니다. 분위기에 휩쓸린 것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성경은 악한 영들이 배후에서 역사했다고 평가합니다.

인간은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늘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변의 사람들과도 많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인간의 의지란 것도 얼마나 박약한지 모릅니다. 분위기에 휩쓸리고 권위에 약한 것이 인간의 의지입니다. 심리학의 실험들 중 그 결과가 사회에 매우 큰 충격을 주었던 실험이 있습니다. 소위 ‘밀그람의 실험’입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상대방에게 문제를 내고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더해 가는 실험입니다. 전기 충격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맞은 편 학생의 비명소리가 높아집니다. 문제를 내는 사람들은 아르바이트로 고용된 실험대상자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돈이 지불되었고 그 실험에 충실해야 될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문제를 푸는 학생은 실제로 전기 충격 장치는 없었고 단지 비명만 지르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실험을 구상하며 실험자들은 상대방의 비명소리가 높아지면 이 고용된 사람들이 중도에 실험을 그만 둘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놀라웠습니다. 40명 중 26명이 마지막 극한인 450V의 전기충격을 학생에게 가했습니다. 나머지 14명도 250V에서야 멈추었습니다. 그 정도 충격이면 상대방이 죽을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물론 그때까지 곁에서 실험연구원이 이 실험을 계속해야 하는 당위를 설명하였습니다. 이 실험 결과가 보여준 것은 도덕적으로 부당할지라도 권위적인 명령을 거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였습니다. 실험자의 이름을 따서 ‘밀그람의 실험’으로 알려진 이 연구 결과는 히틀러 치하에서 인간이 악을 저지르기가 얼마나 쉬운가를 증명해주었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이처럼 박약합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사회의 권위적 명령을 거부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소위 구조악이라는 것입니다. 황제 숭배를 조장하는 사회에서 이것을 거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일제시대에는 신사참배에 다 굴복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서 단순히 구조악 정도가 아니라 그 배후에서 사람들을 얽어매게 만드는 악의 영이 역사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옳은 것을 옳은 대로, 진리를 진리대로 바라볼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 싸움의 본질입니다. 히틀러 시대에도 이 악한 체제를 거부하는 고백교회와 저항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에는 신사참배에 저항하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영적 전쟁을 수행했던 하나님의 군사들입니다.

 

영적 과대망상의 오류

이 반대 극단에는 모든 것을 영적 현상으로 재단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사탄의 탓으로 돌립니다. 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인간의 죄, 구조 악, 사탄과 악의 영들입니다. 개별 인간이 죄를 저지릅니다. 이것이 오래 쌓이고 사회화 되면 구조악이 되어 이제는 개별 인간의 행동을 규정합니다. 그리고 인간과 사회를 악한 방향으로 이끄는 영적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것들 중 지금 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 잘 파악해야 그에 대한 처방이나 대처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사탄의 탓으로 돌리면 우리는 실제 악을 행하고 있는 인간의 악에 대해서 간과하기 쉽습니다. 잘못을 범하는 인간을 교정하면 될 일을 애꿎게 사탄 탓만 하고 있습니다. 사회를 바꾸는 것이 더 실제적인데 허망한 세력과의 싸움에 온 에너지를 낭비하고 맙니다. 노예제도로 말미암아 악이 범해진다면 노예제도를 없애면 됩니다. 그런데 맨날 그 배후에 사탄이 있다고 하며 기도만 하고 있으면 악은 바뀌지 않습니다. 노예제도는 기도로 없앨 것이 아니라 법을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만약 기도가 필요하다면 노예제도를 없애달라는 기도여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영적인 현상으로만 파악하려 하면 현실적인 능력이 떨어집니다. 현대 사회에서 악은 주로 인간들에 의해서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사탄처럼 시대 변화에 민감한 존재가 없습니다. 사탄은 이제 과학 시대에 맞는 옷을 입고 그렇게 인간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들만이 여전히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허공을 치며 싸우고 있습니다.

영적 과대망상의 대표적인 예가 땅 밟기 기도입니다. 지난번에 봉은사라는 절에서 신앙인들이 땅 밟기를 하며 그 절이 무너지기를 기도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비단 여기뿐만 아니라 기독교계에서는 사탄의 영적 진지를 파한다는 명목으로 여리고성 돌듯이 해당 지역을 땅 밟기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그렇게 하면 사탄의 힘이 무력화되는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이런 땅 밟기 기도가 옳은가요?

물론 여전히 미신에 빠져 있는 미개 사회에서는 땅밟기 기도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사탄의 힘을 너무 간과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하여 사탄이 물러나나요? 절대 물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효과는 있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모아서 기도하는 효과 말입니다. 땅밟기 기도에서 이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사탄은 이미 이성화 된 모습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있는데 허공을 치는 기도를 하지 말기 바랍니다.

 

사탄의 영역이 무너지는 것은 한 사람이 복음을 영접하여 그 사람이 바뀔 때 일어납니다. 그 지역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회로 바뀔 때 어둠과의 싸움에서 승리가 이루어집니다. 땅 밟기 기도에 지나치게 의미 부여를 할 때 우리는 현실을 놓쳐 버리고 미신적이고 황당한 논리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진정한 영적 싸움은 무엇인가? 저는 로마서 12장 2절이 정답이라 생각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우리를 사방에서 공격하고 있는 사탄과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과학만능주의, 물질욕, 경쟁심, 성장주의, 개인주의, 민족주의, 지나친 사치, 무사려와 무감정 등과 싸워야 합니다. 가치관 싸움이 가장 강력한 영적 투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전쟁터는 바로 우리 가정입니다. 우리는 이 때문에 우리 자녀와 싸우고 우리 배우자와 싸워야 합니다. 이 세대의 가치를 은연중 강요하고 있는 바로 옆에 있는 이웃들이 우리의 적이고, 안방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언론과 TV 매체들에 저항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우리가 이런 오류들에 조심한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영적 전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장입니다. 11절에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며 13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말씀합니다. 전신갑주는 고대 로마의 중무장 병사들을 연상하면 됩니다. 싸움에서 상처를 받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장을 잘해야 합니다. 머리에 쓰는 투구는 가장 중요한 머리와 얼굴을 보호해 줍니다. 가슴에 대거나 입는 흉배는 가슴을 보호해줍니다. 허리띠는 여러 무기들을 장착할 수 있고 몸의 움직임을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신발이 튼튼해야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방패는 적들의 화살이나 창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창검은 적들을 공격하는 무기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갖추어졌을 때 전신갑주로 무장했다고 말합니다.

여기 진리의 허리띠, 믿음의 방패 이런 식으로 말을 해서 진리가 반드시 허리띠 역할만 해야 하고 믿음이 방패 역할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리가 어떤 때는 투구 역할을 하여 우리의 생각을 보호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어떤 때는 방패가 되기도 하지만 공격용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전신갑주를 설명하는 방편일 뿐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앞에 있는 소유격들입니다. 진리, 의, 평화의 복음, 믿음, 구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에베소서에서 그리고 있는 전신갑주의 이미지가 너무나 선명하고 적절한 면도 있기에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진리의 허리띠로 무장해야 합니다. 허리띠에는 창과 활과 검 등 여러 무기들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 허리띠를 질끈 묶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은 진리에서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진리, 우리의 목표와 가는 길, 행하는 방식이 옳다는 확신이 있어야 우리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의의 흉배로 가슴을 잘 보호해야 합니다. 심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흉배는 심장을 보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확신을 놓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의롭다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8).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의로운 삶을 삽니다. 올바름 그것이 우리의 생명이고 악한 자를 대적하는 무기입니다.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으십시오. 복음을 평화의 복음이라 한 것에 유의하십시오. 복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가져다주고 인간에게도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복음의 신발을 신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게을러져 죄를 짓지 않습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십시오. 믿음은 우리를 어떤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도록 만듭니다. 믿음의 방패는 사단의 불화살들을 막아냅니다. 사단은 죄의 불화살, 낙담의 불화살을 쏘아 댑니다. 하나님을 굳건히 신뢰할 때 우리는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십시오. 머리를 잘 보호해야 합니다. 구원은 곧 승리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우십시오.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유일한 공격용 무기입니다. 죄를 치는 무기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딤후3:16).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듯(계1:16)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말씀으로 싸웁니다. 말씀에 따라 ‘아니다’ 외칠 때 사탄을 비롯한 어둠의 세력은 물러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할 때 사탄이 쫓겨나며 병든 자가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영적 싸움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싸움이 우리의 싸움이 아니고 우리의 능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0절에서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 말씀합니다. 여기 그 힘은 ‘그 분의 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어주신 힘으로 싸웁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 사도는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9)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베풀어주신 능력이 얼마나 큰 데 이것을 알지 못하고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1절과 13절에 전신갑주란 단어 앞에 ‘하나님의’란 소유격이 붙어 있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전신갑주입니다. 옛날 신화에 보면 신이 불패의 방패나, 어떤 한 것도 벨 수 있는 검이나, 어디든 갈 수 있는 신발이나, 어떤 무기도 막아낼 수 있는 갑옷을 주인공에게 주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이 놀라운 신적인 무기들이 주어졌습니다. 이 모든 무기들은 하나님이 주셨기에 천하무적입니다. 그 어떠한 것도 우리를 침범할 수 없습니다.

18절에서는 기도하되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저 우리 의지를 다지거나 허공을 치는 독백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들으시고,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사탄과 어둠의 세력과 이 세대는 매우 강력한 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있고 갑신갑주가 있습니다. 우리의 배후 세력은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두려움 없이 순복할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악령과 하나님의 전신갑주

엡 6:10-20 / 이필재 목사

성경에는‘악령’이라고 하는 사탄의 존재가 확실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가장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악령 존재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대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악령의 존재입니다. 이 악령은 구조상 인격을 지닌 존재이며 동시에 영적 존재로 오늘 성경 말씀에는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상을 주관하는 자” 이렇게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악령의 존재는 창세기에서부터 등장합니다. 하와를 유혹한 사탄의 모습을 보면 아주 교묘합니다. 지성의 능력이 있습니다. 설득력이 있어서 합리적 이유로 하와를 넘어뜨리는데 성공합니다. “네가 하나님이 되면 더 좋을 텐데 왜 하나님 밑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사느냐?” 아주 설득력 있는 지성의 유혹을 해서 하와가 넘어가 버렸습니다. 사탄은 감성도 지녔습니다. 아담에게 먼저 오지 않고 감성이 약한 하와를 선택하였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의지도 대단히 강합니다. 절대로 쉽게 물러서는 법이 없습니다. 하와를 넘어뜨려 하나님을 하와로부터 분리시키는데 성공한 사탄은 예수님마저도 넘어뜨리려고 친절하게 다가와서 창세기 때와 똑같이 유혹을 했습니다. 지성의 능력으로 유혹을 했습니다. “세상 구원은 네가 생각하는 방법으로는 어려우니 내가 일러주는 말로 해야 돼.” 이렇게 예수님을 유혹하고 감성 능력도 동원이 됩니다. “너 배고프지?” 아픈 데를 살짝 긁어주면서 시작하는 것을 볼 수가 있고 의지가 있어서 한두 번에 물러가지 않고 세 번째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이 악령이 하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 악령의 사역을 보시면 활동 범위가 대단히 광범위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보면 “그는 공중 권세를 잡은 불순종의 영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주 만물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악령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악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이며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력, 이 세상일을 다 알고, 그 일의 권세를 가지고 어둠의 세상을 만드는 일에 능력 있는 주관자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쓰러뜨려서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분리하는데 성공했으니 얼마나 능력이 있습니까? 신명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집단으로 유혹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게 하는 일에 성공합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사울 왕에게 들어갑니다. 그래서 악령이 들은 사울왕은 자기를 해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제사장 85명을 끌어다가 목을 쳐서 죽여 버리는 악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욥기서에 보면 하나님을 그렇게 잘 믿는 동방의 의인 욥을 못살게 굴어서 아들딸 모두를 죽여 버리고 그의 재산을 다 뺏어버리는 일을 하고 욥의 몸에 질병을 주어서 고통을 받게 하는데 “빨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돌아서라.” 시험하기 위해 그렇게 합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까지 시험에 듭니다. 성도들을 죽이고 이간질시키며 마음을 동역케 해서 하나님의 역사에 방해꾼이 됩니다. 마침내 가룟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서 예수를 배반케 하여 예수를 십자가로 인도하는데 공헌하는 기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악령의 능력을 당해낼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래야 악령을 대적할 수 있다.” 영적인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 가운데 나이가 많아진 노인들이 판단력이 흐려지고 말과 행동이 정상 수준에서 벗어날 때 “망령을 피운다.”는 말을 합니다. “망하게 하는 영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 됩니다. 이 말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은 성경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보고 ‘군대 마귀’가 들렸다고 하는 기록이 나타나 있습니다. 마귀는 마치 군대 같은 무서운 파괴력을 소유한 영적 존재력이 됩니다. 사탄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알 수도 없으면서도 우리의 모든 배후에서 교묘하게 막강한 힘을 가지고 우리를 파멸시키고 본질적으로 우리를 변질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사탄이 어찌나 힘이 강한지 우리가 가진 힘으로서는 도저히 그를 피할 수 없고 맞서 싸워 이겨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보다 훨씬 머리가 영리하고 힘이 강한 능력자인 것을 성경이 인정합니다. 이 악령이 하는 일은 성경에 나타난 대로 잠도 안 잔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가능성 있는 사람을 만나면 천사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삽시간에 부하 직원으로 만들어서 자신의 활동 무대를 넓혀가는 존재입니다. 마귀의 문제에 있어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많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마귀를 물을 때 ‘검은 마귀’와 ‘흰 마귀’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검은 마귀’란 세상 가운데 있는 마귀를 말하고 ‘흰 마귀’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마귀라고 규정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다 마귀의 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가능성에 늘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무서운 악령을 이길 수가 있는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인데 바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악령의 힘이 문제가 안 됩니다. 문제는 성령 충만한 이가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영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 하나님은 영적 존재인 것을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그래서 우리 인간이 영적 존재임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과 나의 영의 만남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이 그 아이의 손을 붙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이란 곧 영이다. 하나님이 영이시고 우리가 영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과 나의 영이 교통을 할 때 나는 영의 존재가 되고 성령을 힘입는 존재가 되어서 이 마귀의 영은 우리가 거절할 수 있는, 그리고 물리칠 수 있는 넉넉한 힘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성령 충만을 설교하고 항상 교인들이 성령 충만이 있기를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령이 사람의 영을 지배해 버리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누구의 말도 듣지를 않습니다. 오직 악령의 말만 순종합니다. 여기 본문 11절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네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 이 전신갑주는 옛날 병사들이 쓰던 옷입니다. 가장 잘된 전신갑주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한번 가보십시오. 머리에 쓰는 투구에서부터 손에 끼는 장갑까지, 발까지 전부 철로 되어 있습니다. 철갑 옷입니다. 그래서 조금도 틈이 없습니다. 상대방의 창끝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몸 전체가 다 전신갑주인데 그것만 입으면 피해를 하나도 당하지 않고 전쟁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너희가 철갑을 옷 입은 병사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러면 악령이 도무지 틈타지 못한다.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오늘 이렇게 권고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 악령의 역사는 하나님이 정해준 시간 안에서만 역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얼마나 남지 않았음을 요한계시록에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귀는 자기의 때가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 온갖 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데 놀랍게 역사하고 있음이 성경말씀에 나온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가장 선한 존재, 축복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악령이 들어가면 가장 추악해지는 이 사실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악령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의 노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서 오늘 여기 성경말씀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본래 바지와 저고리를 따로 따로 입지 않고 하나로 입습니다. 그런데 허리에 띠를 묶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띠가 온 몸에 힘을 주는 의상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허리띠를 띠라고 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다 압니다. 그러니까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 그러면 악령이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여기 옛날 성경에는 “의의 흉배”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우리 생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심장에 의를 품으라. 하나님의 옳은 일을 위해서 살기로 마음에 작정하라.” 그리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어라.” 이렇게 설명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가라는 말입니다. 따라가되 평안의 복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우리 성도들이 시험에 빠지는 것은 다 믿음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떠난 삶은 사탄의 공격을 받도록 노출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약해지는 데서 틈이 생겨버리면 그 틈을 타고 항상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음 가운데 나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됨에 대한 확신을 항상 내가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성령의 힘 앞에 악령은 굴복당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힘을 의지해야 되고 나에게 최후의 승리는 이미 무장되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아니한다는 신앙 고백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방패를 갖고 살면 마귀가 절대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믿음이 약하여 지는데서 모든 문제가 생깁니다. 기독교는 믿음으로 의하여 구원받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믿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너희 믿음이 그것 밖에 안 되느냐?”라고 날마다 책망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하셨습니다. 투구는 모자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라는 것은 “너는 하나님의 백성됨의 영광을 빛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신분은 그 사람이 쓰고 있는 모자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 저 사람은 군인이구나. 아! 저 사람은 경찰이구나.” 거의 우리 사회 문화는 특징 있는 사람들이 머리에 쓰는 모자로 신분을 발표하고 살아가는 문화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의 투구란 뭐냐?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감추지 말고 머리에 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자신감 있게 발표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겁쟁이 좋아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약 사람 앞에서 나를 부끄러워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끄러워하겠다.” 이것은 뭡니까? 집사이면 집사라고 말해야 합니다. 집사가 어디 가서 예수 안 믿는 척 그런 비겁한 행동 하지 말라는 겁니다. 나만 봐도 집사인지 알 수 있도록 하란 말입니다. 군대 가는 젊은 친구들이 와서 기도 받고 가게 되면 제가 말합니다. “군대 가면 예수 안 믿는 친구들이 더 많이 생깁니다. 어떻게 할 겁니까? 너 예수쟁이구나! 놀리면 어떻게 할 겁니까? 거기서 그래, 나는 교회 다니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다. 자신감 있게 발표하고 밥 먹을 때도 기도 분명하게 하고 주일날이 되면 부대에 있는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리고 괜히 나쁜 애들 휩싸이고 그러지 말고 너 때문에 그 군대 사회가 믿음이 발표되도록 구원의 투구를 써라. 아! 저 놈 예수 믿는구나. 항상 그런 별명이 생길 수 있도록 해라. 예수 안 믿는 척 하고 밥이 나오는데도 기도 안하는 척 눈 뜨고 슬며시 기도하지 마라. 나는 예수 믿는다고 발표해라.”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세상 친구들이 있는 곳이나 어느 좌석에 가서 괜히 예수 믿는 사람 아닌 척 한다면 마귀는 그런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이 놈은 내가 한번 붙잡으면 내 종이 되겠다.’ 예수님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담임 목사인 내가 어디 가서 목사 아닌 척 행동하면 여러분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어휴! 저런 목사를 존경하고 그 교회를 다녔구나!” 금방 실망할 거 아닙니까? “어디를 가서든지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목사이고 집사이고 한 것을 밝히 들어내라. 구원의 투구를 써라. 네 신분을 영적으로 밝혀라.” 그러면 시험에 안 듭니다. 괜히 무서워서 벌벌 떨고 슬슬 기고 눈치 보다가 시험에 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영광스럽고 자랑스럽지 왜 창피합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마틴 루터 말대로 흰 마귀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전신갑주는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내가 늘 강조하지 않습니까? 교회는 프로그램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예배 프로그램에만 잘 나와도 믿음은 걱정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읽고 실천하도록 노력하면 이것이 전신갑주입니다. 말씀이 보호합니다. 지난 주간에도 우리 갈보리교회에서 146명이 목사 후보생들 다 인터뷰 했습니다. 한 사람씩 다 물어봤습니다. “지금까지 성경 몇 번 읽었습니까?” 인터뷰 한 사람 가운데 제일 많이 읽은 사람이 35번 읽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죄송합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번 이상은 안 읽어본 것 같습니다.” “여보세요.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내가 신학교 다닐 때는 입학에서 졸업까지 성경 50번 읽어야 졸업시켰소. 교인들 가운데 성경 100독 하신 분도 있소. 이제 성경 1번 읽고 어떻게 목사가 되겠소? 떨어뜨릴까?” “아닙니다. 이제 많이 읽겠습니다.” 제가 언제 큰소리치겠습니까? 후배들에게 큰소리치지요. “아니, 목사 되겠다고 얼굴 내민 사람이 성경 1번 읽어서 성경이 뭔지 알겠소?”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무장은 내가 어떤 경우에 있던지 나를 보호하도록 합니다. 이것이 전신갑주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권하고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 다음에 “깨어 기도하라.”라고 했습니다. 집안 식구들 가운데 한 사람은 새벽 기도하도록 만드십시오. 중요합니다. 기도는 후손들에게까지 가는 하나님의 약속이 됩니다. 그러니 가족 중에 한 사람은 새벽기도 하도록 꼭 만들어보십시오. 틀림없는 하나님의 약속이 나타납니다. 신령한 군인의 영적 최대 공격 무기는 말씀과 기도라고 했습니다. 이것으로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귀는 다 물러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6장을 우리가 공부했는데 거기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망가졌습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가 싸움 박질하고 헬라파, 히브리파 온통 수라장입니다. 이제 이 교회는 없어지던가 갈라지던가 하는 어려움이 왔을 때 베드로가 말하잖습니까? “왜 교회가 이 모양이 되었는가? 우리가 잘못했다.” 뭘 잘못했는가?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게 되어 있는데 말씀을 제쳐놓고 설교하기가 싫어진 겁니다. 왜 사도들이 설교하기 싫어졌는가? 거기 예루살렘에 있는 교인들은 거의 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설교하는 것을 잘 듣겠습니까? 예수님은 능력을 발휘하면서 권위 있는 말씀을 증거하셨는데 이 사도들도 여태까지 예수님의 설교만 들었지 자기가 전해보지는 않았잖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이제 사도들이 설교를 해야 되는데 교인들이 예수님 설교같이 듣지를 않았습니다. 설교를 왜 저렇게 하느냐,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으니까 귀찮아졌습니다. “하지 말아야겠다. 설교해도 말만 많고….” 목회자들은 다 똑같은가 봅니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고 “못한다, 못한다.” 하면 아주 못해 버리더라고요. 그렇게 설교를 안 하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지니까 마귀가 “와! 이거 내 세상이 되었다.” 금방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랬을 때 사도들이 회개하고 어떻게 말합니까? “아! 설교 안 해서 이 모양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베드로가 선언하지 않습니까? “사도들은 예수님의 사도로 선택받은 우리들,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 우리는 지금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만 전무하리라.” 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니까 마귀가 금방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교회 모든 것이 해결되어졌습니다. 교회는 말씀과 기도로 항상 전신갑주를 입어야지 다른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라고 오늘 가르쳐준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이 일을 위해서, 즉 설교를 하기 위해서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으니” 손에다 쇠사슬을 묶었습니다. 이것을 끊어버릴 수 없다는 말을 쇠사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이렇게 묶어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위해서 평생을 하기 때문에 에베소 교인들이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나는 평생 이 일만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나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해 주십시오.” 뭐라고 부탁합니까?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렇게 기도해 달라고 성도들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도들은 설교를 해야 합니다.

 

저는 신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저는 몸이 약했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보니까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활동을 해야 되는데 체력적으로 이것을 당해내지 않으면 힘듭니다. 그러니까 “목사가 매일 새벽기도도 안하고 쿨쿨 잠만 자느냐?” 이런 소리가 금방 나옵니다. ‘이야! 이거, 평생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체력이 안 따라주면 목회도 못하는데 어떡하나? 그런데 소명은 받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두 가지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를 건강하게 하나님이 인도해 주옵소서. 건강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45년 6개월 동안 목회하는 기간 동안 앞으로는 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나는 병원에 입원한 일도 한 번도 없습니다. 어쩌다 감기를 걸려서 콜록 대거나 아니면 예방 주사 맞으러 병원에 갔지 내가 병원에 입원해서 신체상에 건강 어려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46년 6개월 동안 아파서 설교 못 해본 적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은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한 가지 기도제목은 “하나님 아버지! 어떤 때는 하루에 10번도 설교를 해야 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계속 설교를 해야 합니다. 심방 열 집을 하면 열 번 설교를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하나님 아버지! 내가 무슨 말을 그렇게 계속 할 말이 있겠습니까? 내게 말씀을 주셔서 이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나로 입을 벌려 설교할 수 있는 말씀을, 복음의 비밀을 영적으로 내게 터뜨려주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소리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위해서는 이 두 가지, 건강과 말씀을 주옵소서.” 그러니 그것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서 지금까지 그때부터 오랫동안 목회했지만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니까 설교 잘하지 않습니까?

 

지금 바울의 투쟁은 상대가 로마 제국입니다. 로마 제국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해석했느냐? “로마가 나쁜 나라가 아니다. 로마 군병들이 나쁜 놈들이 아니다. 다 악령의 역사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이 줄을 끊어야 한다. 그러면 로마도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저 로마 군인들도 크리스천이 된다.” 이렇게 해석하는 겁니다. “어두움의 세력, 악령이 지배하는 정사와 권세, 이 로마는 지금 거기에 붙잡혀서 기독교를 핍박하고 나를 감옥에 가두고 예수 믿는 사람 다 죽이고 있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니까 이 악령의 역사,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요 악의 영들이라.” 그러니까 “나를 감시하는 저 무장한 로마 군인들 벼락 맞아 죽어라.” 그러한 기도를 하지 않고 또, 에베소나 빌립보 교인들에게 “빨리 나로 하여금 감옥에서 나가게 해 달라.” 그러한 기도도 안합니다.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 악령의 역사의 줄만 끊어 버리면 이 모든 사람이 다 우리 형제가 된다. 로마의 군병들도 재판관도 총독도 우리가 빨리 구원해야 될 불쌍한 영혼들이라. 모두 악령의 지배 때문에 저렇게 하고 있으니까 악령을 추방하자.” 옛날에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악령이 지배하니 교회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면 북한 사람들이 나쁜가? 아닙니다. 악령이 어두움의 권세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저 모양이 된 겁니다. 그러니 악령을 추방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북한의 군인들도 민간인들도 정부의 고위 관리들도 악령의 이 지배만 거둬내면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제가 생각할 때는 북한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수령님 모시듯 예수님을 섬기면 얼마나 전도를 잘하겠습니까? 문제는 악령의 역사입니다. 이 악령을 추방하는, 이 공중의 권세가 우리의 문제입니다. 이 악령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2장 11절에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이 사탄은 날마다 속입니다. “선악과 따먹으면 네가 하나님 될 거야.” 속았습니다. 그래서 하와가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세상에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온 마귀도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속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속지 않았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를 상대로 악령 추방을 위해서 감옥 안에서 쇠사슬에 묶여 외로운 투장을 하고 있는 바울인데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울의 기도가 다 응답 되잖습니까? 악령의 권세는 로마에서 다 응답되고 AD 313년에 콘스탄틴이 밀라노의 칙령을 말해서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어 지금은 교황청이 로마 복판에 있고 베드로는 로마 교황청 밑 무덤에 지금 있잖아요? 온 세계 복음의 센터가 되었습니다. 악령의 지배만 물러가면 온 세상이 이렇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악령의 편에서 보면 완전한 패배 같이 보이는 현장이 하나님의 백성이 보면 승리의 출발점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를 십자가가 못 박은 악령은 이겼다고 노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3일 후에 그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가 승리하여 이렇게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하여지지 않습니까? 문제는 내가 이러한 악령의 역사를 알고 성령의 역사를 믿으면서 성령이 충만하여서 우리 주변의 공중 권세를 잡은 이 악령의 고리를 끊어버릴 때 나를 통한,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세상을 밝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을 보면 정사와 권세자들은 악령의 지시대로 인간됨의 최고의 축복인 영혼 구원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는 일은 돌로 떡을 만드는 일, 권세 잡기 위해서 악령에게 절하는 일, 찬란한 문명의 기적, 이것만을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자기 영을 괴롭히는 악령과 싸울 때 책상의 잉크병을 항상 벽으로 집어 던지면서 “사탄아, 물러가라!” 이렇게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악령의 속임수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내 영에 침투하는 이 악령을 기도와 말씀으로 몰아내고, 평안의 복음의 능력을 우리 속에 가지고 있을 때 악령을 나를 보고 무서워서 꼼짝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감 있게 구원의 투구를 쓰고 말씀과 기도의 전신갑주를 입고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나서면 악령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성령 충만 하라고 우리가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 “병신 자신은 귀신이 눈만 흘겨도 귀로 벌떡 자빠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악령의 권세가 아무리 커도 겁낼 거 하나도 없습니다. 왜? 이미 그것은 항복한 권세입니다. 우린 십자가 권세, 승리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데 무엇이 겁납니까?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일꾼된 것에 대한 자부심과 이런 영적 능력을 구원의 투구로 발표하면서 “십자가 군병들아!” 이렇게 나가면 악령은 꼼짝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크리스천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발표하지 못하느냐 말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인데 일곱 악령이 들렸던 여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그것이 다 물러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최고로 많이 받은 사람이 그 사람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설교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모든 악령들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갈지어다.”하고 우리가 힘 있게 나아가면 성령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가지고 항상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행진하는 일꾼들이 된 것입니다. 모두 그렇게 성령이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악령의 역사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 가득해 있지만 성령이 충만한 자는 다 악령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그 방법대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권고한 그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전신갑주를 입고 아무리 세상에 마귀가 가득 차 있어도 말씀으로 다 물러간다는 신앙의 힘을 가지고 승리하는 아버지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달라진 나를 발견하자

엡 6:10-20 / 하용조 목사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서서 진리의 허리띠를 동여 매십시오.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인의 복음의 신을 신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을 드십시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담대히 싸우십시오.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십시오

제게 북한에서 온 편지가 몇 장 있는데 그 중 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순교했는지를 보여주는 편지가 있어 소개합니다. 그날 저녁 어두워져서 약 20명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둘씩 손에 손을 묶고 어디론가 광산굴 어구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굴 입구에서 그들이 한 조씩 담아올 것이 있다고 하며 끌고 들어갔습니다. 깊숙이 들어가 갱(깊이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에 이르렀을 때 촛불을 켜 과녁으로 삼고 총을 쐈다고 합니다. 총을 맞은 성도는 피를 토하며 갱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들은 피를 토하여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찬송가를 맥이 진하여 숨지는 순간까지 불렀답니다. 그 때 그 속에서 일부 살아나서 이 일이 역사의 흑막 속에 감춰질 뻔 했지만 정의는 이것을 허용하지 않고 산 증인을 남겨 주었습니다. 여기 또 한 가지 아름다운 사실은 정명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남편이 희생되자 남편의 시체라도, 아니 순교한 성도의 시신을 덮어주려는 의도로 굴 속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정명숙 여사는 희생된 성도의 눈을 감기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하 생략)

 

오늘 마지막 날 밤, 저는 크리스천의 지속적인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비밀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한 두 번은 잘 할 수 있지만 계속 끝까지 잘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두 가지 명령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 안에서 강건해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강건해 질 수 있는 곳은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종이 한 장은 쉽게 찢어질 수 있습니다.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종이가 성경책 안에 끼여 있다면 어느 누구도 찢을 수 없습니다. 나는 약하지만 내가 주님 안에 있으면 사탄이 나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벽지 한 장은 쉽게 찢어지지만 벽에 붙으면 찢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유리조각 같은 존재, 배신하는 존재입니다. 내 결심은 약합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 안에 있으면 강건해 질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강건해 질찌어다!

에베소서 6장은 오늘 우리에게 강건해지라고 명령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강건해 질 수 없습니다. 내 지혜도, 내 노력도 한계가 있습니다. 심지어 기도마저 한계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기도시키지 않으면 기도도 찬양도 목마릅니다. 성령께서 기름부어 주실 때 찬송이 계속되며, 힘을 주실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강해지십시오.

11절을 보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두 번째 명령이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게 된다면 마귀의 어떠한 공격도 견딜 수 있습니다.

택한 자라 할지라도 마귀는 넘어뜨리려 합니다. 마귀의 속임수, 교활함, 전략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여러분, 마귀와 우리와 싸우면 백전백패입니다. 이것은 마치 눈을 감은 사람과 눈을 뜬 사람이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도저히 교활한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면 백전백승입니다.

 

싸움의 대상을 정확히 알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쟁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크리스천들의 삶은 전쟁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지던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이것이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은 레슬링과 같습니다. 밀고 당기고, 엎치락 뒷치락 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의 본질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혈과 육이라는 것은 인간적인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사는 세상의 권력을 갖고 있는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권세는 권세자들을 말합니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은 사탄입니다.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은 세탄의 하수인들입니다. 이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사탄의 지배를 받는 정치, 경제, 예술, 문화, 산업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스템 자체가 공중 권세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 자체가 구조적으로 아담 이후로 악한 것입니다. 사탄의 특징은 권력, 권세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안에 사탄은 자기 하수인들이 많습니다. 점성술, 이단 등 영적으로 이상한 일들을 행하는 사람들, 사상, 영적인 미혹하는 영들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어제 편지를 보면 북한 동포들이 점쟁이에게 미혹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또 기독교가 순교자의 피를 이어 받아 복음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는 반면, 이단이 들어와 예수가 몇 년에 재림한다니까 다 거기로 몰린답니다. 목사님이나 성경학자들이 없으니까 어디 물어볼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고픈건 참겠는데, 신앙의 혼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보십시오.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악의 세력은 강하고 광범위합니다.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를 가 보십시오. 어둠의 세력이 가득한 사회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 배후에 인간을 신음하게 만드는 악의 세력을 보게됩니다. 사탄의 거대한 조직과 힘을 대적하고 이기는 방법을 13절이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이 세상은 여리고성과 같습니다. 여리고성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해 무너지지 않습니까? 가나안인들은 농경사회에서 훈련을 받은 군인들입니다. 여리고성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많은 무기와 군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목민입니다. 오합지졸입니다. 전쟁을 해 볼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여리고성이 무너집니다. 바벨론은 무너집니다. 사탄은 무너집니다. 그들이 처음에는 득세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신부가 나타날 때 음녀는 사라집니다. 거룩한 교회가 나타날 때 악한 모든 세력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말세의 유일한 희망은 교회의 부흥입니다. 예수님의 꿈은 두 가지였습니다. 십자가와 교회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건물이 교회가 아닙니다. 교파가 교회가 아닙니다. 조직이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으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이들의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을 뒤바꿀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교회는 로마를 무너뜨렸습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예수님이 의도하시고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로 그 교회’가 될 수 있다면 마귀는 무너질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교회입니다. 교회가 서 있으면 마귀가 죽게 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여러분의 교회가 성령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살아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기도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세상을 꿈꾸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13절을 다시 보십시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합니까?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

 

1. 진리의 허리띠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어떤 것입니까? 일곱 가지가 나옵니다. 14절에 두 가지가 나옵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서서’라는 말에 동그라미를 치십시오. 영적 전쟁은 앉아서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어나야 합니다.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다면 영원히 다락방에 앉아있어서는 안됩니다. 뛰어 나와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그 자리에 머무르게 하지 않습니다. 땅 끝까지 가게 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7년 된 교인은 떠나라’고 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떠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왕국을 만들고 큰 교회를 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일어서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케 할 것은 안주하려는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를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앙은 내가 누리는 기득권, 안정하려는 유혹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은 일어섬으로 시작됩니다.

제일 먼저 우리에게 소개된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허리는 몸의 중심입니다.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는 진리로 허리를 단단히 동여 매야 합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중심을 잡으십시오. 어떤 유혹과 이단이 온다 하다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중심을 잡은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감정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은 쉽게 흔들립니다. 참된 그리스도인, 어떤 위기 속에서도 살아나는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말씀중심입니다. 진리는 말씀입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예수 그리스도로 허리를 동이십시오. 말씀으로 허리를 동이십시오. 이런 사람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의의 흉배

두 번째는 ‘의의 흉배’입니다. 흉배는 목부터 허리까지 감싸는 것입니다. 이것의 기능은 심장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심장에 화살을 맞으면 즉사합니다. 마귀의 화살은 여러분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한 방으로 끝내려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심장을 공격하는 것을 막는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합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이 구원의 진리를 놓치면 안됩니다. 율법으로, 행위로, 종교적인 의식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여러분의 심장을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3. 평안의 복음의 신

세 번째는 15절에 있습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당신은 복음의 신을 신었습니까? ‘신을 신었다’는 것은 ‘행동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나갈 준비, 걸어갈 준비, 전쟁한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5) 저는 여러분들이 매일 발을 만지며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여’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를 짓는 발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발,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발이 닿는 곳마다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4. 믿음의 방패

네 번째입니다. 16절을 읽어주십시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믿음의 방패입니다. 이것은 모든 악한 자의 공격을 막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시 3:3,4)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시 33:20) 어떤 사탄의 세력이 나를 공격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이십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으로 인해 모든 마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5. 구원의 투구

17절에는 두 가지가 나옵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투구는 머리에 쓰는 것입니다. 머리를 맞으면 치명적입니다. 우리 신체 중에서 치명적인 곳이 두 군데가 있습니다. 머리와 심장입니다.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심장에는 의의 흉배를 붙이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줄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머리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머리와 심장만 상하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구원, 사랑, 하나님의 자녀됨에 대한 확신이 구원의 투구입니다.

 

6. 성령의 검

하나님이 주시는 공격 무기가 있습니다. ‘성령의 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검입니다. 모든 악한 화살을 믿음의 방패로 막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검’으로 사탄의 심장부를 찌를 것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 119:11) 주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있으면 범죄치 않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검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성령 안에서 기도

18절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일곱 번째 무기는 ‘무전기’입니다. 최선전에 나간 사람은 본부와 긴밀하게 연락을 해야 합니다. 본부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무식한 군인은 돌격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지휘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휘를 받는 것이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기도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성령 안에서 기도하되 성도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나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 구원의 투구, 말씀의 검, 믿음의 방패, 그리고 기도입니다.

이것을 가만히 살펴 보십시오.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등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등을 돌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등을 돌리는 자는 패배자입니다. 마귀와는 언제나 정면승부를 하십시오.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합니다. 마귀가 대적하면 우리가 피합니다.어둠의 세력과 담대히 싸우십시오

19절을 읽어주십시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바울은 성도에게 기도를 꼭 부탁했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사도가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이 목사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이 있다면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설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20절을 읽어주십시오.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을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여러분이 여성사역축제를 마치고 떠날 때 신부의 화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떠나십시오. 마귀는 울며 통곡하며 여러분을 떠날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있는 더러운 귀신의 세력이 떠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분을 공격하는 어둠의 세력이 묶임을 받고 떠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1년 후에 다시 뵐 때는 더 성숙한 모습으로 뵙기를 바랍니다.

목사가 설교할 때 여러분의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성에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대상은 여러분의 이성이 아니라 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 알아듣습니다. 이성은 알아듣지 못해도 영은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부활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교회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줄 아십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마귀는 여러분의 교회를 어떤 명목으로라도 깨버리려고 합니다. 이 유혹에 말려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룟 유다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가 되었지만 결국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도구가 되고 맙니다. 인간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깨버리고, 상처를 줍니다. 저는 여러분이 교회를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후 승리의 날까지

엡 6:10-24 / 맥추감사절 / 곽창대 목사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세 가지 절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3대 절기는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봄에는 유월절을 지키고 여름에는 맥추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게 했습니다.

여름에 지키는 맥추절을 초실절이라고도 하는데 곡식이나 과일의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초실절로부터 시작하여 가을까지 모든 열매가 무르익게 되면 추수를 끝내고 창고에 수확물을 저장하는데 그때 수장절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농부가 씨를 뿌리고 첫 열매를 맺기까지 갖가지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과 아울러 몇 개월 후면 풍성한 수확을 얻을 것을 내다보고 미리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 맥추절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성령강림절이 되었습니다. 맥추절을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삼 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지상에 계셨는데 그때 제자들에게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께서 강림하실 것이라고 여러 번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예고대로 성령님께서 예루살렘의 어느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여명의 성도들에게 강림하셨습니다. 그때가 오순절이었습니다.

맥추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것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의 구원을 보증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 성령님께서 내주하신 목적은 성도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적으로 말하면 성령님께서 강림하심으로써 신약의 교회가 창설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 열국에 퍼진 모든 교회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셔서 교회를 지키시고 결국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교회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신 것은 초실절에 해당되며 그 후로 마지막 추수 때인 수장절이 기필코 다가오듯이 성도의 구원이 완성되고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로 완성되는 날도 반드시 도래할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로서 오늘의 설교 제목처럼 성도와 교회의 최후 승리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성도와 교회에 성령님을 보내주신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 감사하는 동시에 성령님의 역사로 얻게 될 최후의 승리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소망의 날이기도 합니다.

물론 목회서신에서 썼듯이 한국교회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신구약 성경이 말하는 맥추절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그 정신은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해의 반을 지나는 동안 크신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동시에 하반기 6개월에도 승리의 삶을 살도록 모든 좋은 것을 공급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날이 맥추감사절입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절기는 하나같이 감사와 소망의 절기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한밭교회 교우들께서도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를 헤아려 하나님께 최고의 감사를 올리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최후 승리의 날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반기 6개월을 힘차게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의 여러 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최후의 승리가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유는 대장 되신 예수님께서 이미 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를 제압하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군사들도 그 승리의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요일 5:4-5)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롬 8:37-39)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딤후 4:7-8)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마지막 날에 반드시 승리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해서 오늘을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최후 승리의 날까지 성도가 살아야 할 삶이 있습니다.

(고전 15:57-58)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오늘 본문에서도 최후 승리의 날까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1. 최후 승리의 날까지 우리 각자는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0-17절).

본문 11-12절에서는 우리를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이 악한 세력들이 힘을 합하여 성도와 교회를 거세게 공격하고 있으므로 성도는 그 공격에 맞서기 위해 영적으로 강건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강건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 주님 안에 있어야 한다(10절).

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10절).

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11-17절).

한 마디로 말하면 매 순간 주님을 의지하면 날마다 승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에베소서를 로마 감옥에서 썼습니다. 사탄이 악한 세력을 총동원하여 바울을 감옥에 가두었지만 그 감옥에서 사도는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를 읽으면 바울이 미래에 누리게 될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승리하고 있음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같은 승리의 경험과 확신은 바울이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울처럼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우리도 지금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구체적인 표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18절). 기도는 주님을 의지할 때 자연적으로 따라 나오는 반응입니다. 주님과 깊이 교제하며 주님의 능력을 힘입으며 주님께서 입혀주신 전신 갑주를 잘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신령한 방편이 기도입니다. 특히 기도는 말씀의 칼을 예리하게 갈아서 사탄을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하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기도를 잘 사용하는 자는 영적 전투에서 날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승리하려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반기 6개월 동안 날마다 승리하기 위해 더욱 기도에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최후 승리의 날까지 나 혼자만 아니라 성도들 모두가 승리하도록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합니다(18-20절).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님께서는 나 혼자만 승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모든 성도와 교회가 다 함께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기도할 때 여러 성도를 위해 기도하라고 당부했습니다(18절 하반절). 그 이유는 모든 성도가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영적 전투에 출전한 군사들이 함께 승리해야 그 승리가 제대로 된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아주 중요합니다. 기도하되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주위를 돌아보며 여러 사람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기도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자기 자신이나 가족들을 넘어 다른 사람들까지 가슴에 품고 기도하게 됩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이 감옥에서나 로마 당국자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파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 해달라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부탁했습니다(19-20절). 마찬가지로 한밭교회 교우들께서도 말씀의 사역자들을 위해 더욱 강렬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의 사역자들은 영적 전투의 선봉에 서서 적을 향해 돌진하는 돌격대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 돌격대가 무너지면 군대의 사기는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승리하기 위해서 서로를 위해 뜨겁게 기도해야 하지만 말씀의 사역자들인 교역자들과 전도자들과 선교사님들을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들 모두가 함께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반기 6개월 동안 함께 승리하기 위해 더욱 중보기도에 힘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들이 영적 전투에서 날마다 승리하도록 이전보다도 더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저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년 6월에 우리모두는 영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기쁘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

 

3. 최후 승리의 날까지 승리의 소식을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21-22절).

21절에 두기고가 나옵니다. 두기고의 직무를 군사용어로 비유하면 전령입니다. 두기고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도 멋지게 승리하고 있다는 소식을 에베소교회에 전할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처럼 승리할 수 있을지 사도 바울을 대신하여 그 방안을 알려주는 전령이었습니다.

두기고 편으로 전달된 사도 바울의 편지와 승리의 소식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염원대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욱 하나가 되어 전진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함께 승리해야 할 전우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 모여 승리의 소식을 나누어야 합니다. 특히 교회의 식구들이 함께 모이는 공동예배와 목장모임은 승리의 소식을 서로 나누는 시간입니다. 혹 영적 전투에서 실패했을지라도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한다면 다시 일어나 승리의 전선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모여 날마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하반기 6개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사도 바울이 살았던 1세기 때와는 달리 편지를 인편으로 보내지 않아도 얼마든지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으로 서로의 근황과 기도의 제목을 얼마든지 나눌 수 있습니다.

안식년 기간 동안 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보의 목회서신을 통해 저희 내외의 근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주보나 목자들의 목회일기나 교역자들의 주간 보고를 통해 여러분들의 소식을 수시로 접할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의 소식을 나누는 것은 근간의 승리를 축하하는 동시에 계속적인 승리를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승리의 소식을 나누므로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한밭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우리 개인과 교회 공동체의 승리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 편지 마지막에 주님의 은혜를 선포했습니다. 이유는 우리의 승리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이 주님의 넘치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넘치게 부어질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들에게입니다.

(엡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주님께서는 성도와 교회가 영적 전투에서 날마다 승리하도록 매 순간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고 계십니다. 이유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말로만 아니라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가장 좋기는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앞으로 6개월간 혹은 1년간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님의 신실한 약속이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변함없이 사랑한다면 반드시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리라! 그래서 너희 자신은 물론 가족들과 교회 식구들까지 모두 승리하게 되리라!” 이 약속을 붙잡고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성찬식을 거행하려고 합니다. 성찬식은 떡과 포도주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씹어 먹고 마셔서 뱃속에 넘기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감각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깊이 음미하도록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은혜의 방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당신의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시는 신령한 양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이 성찬을 먹고 마시는 자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최후의 승리를 믿고 대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날마다 승리하도록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장 되신 주님께 충성과 사랑을 바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다짐하고 기도하면서 성찬식에 참여하도록 합시다.

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나도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겠습니다.

 주님 안에서 살겠습니다.

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겠습니다.

 나 자신과 교회 식구들의 공동의 승리를 위해 쉬지 않고 주님께 기도하고 협력하겠습니다.

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넘치는 은혜로 우리모두 함께 승리하게 하소서!

 

 

 

 

마귀와의 싸움

엡 6:10-18 / 조용기 목사

<서론>

“마귀와의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라는 치유상담연구원을 운영하는 이미란 원장은 전쟁 난민을 돕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직후 갑자기 쓰러져 전신마비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길랑-바레 증후군”이라는 병이었는데 체중이 34kg까지 줄었습니다. 손과 발은 물론 뇌를 제외한 모든 신경이 마비되어, 자기 손으로 물 한 모금 마실 수도 없고 혀가 굳어져서 말을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누워서 숨 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산 시체였었습니다. 그런데 모태신앙이었던 그녀는 상상을 통해 자신의 몸을 치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분명 절망이었지만 나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침상에 누워서 마음으로 상상했습니다. 내가 건강하게 되어서 일어나게 된다. 마음으로 자기 모습을 보고 뇌에서 각종 좋은 호르몬이 나와서 온몸으로 퍼져가는 것을 상상하고 이 병을 좋은 호르몬이 나와서 다 잡아 먹어버린다. 그것을 머릿속에 생각을 했었습니다. “내 몸을 마비시키는 바이러스는 죽고 신경은 살아날 것이다! 나는 다리에 힘이 생겨 걸어 다닐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웃고 힘차게 뛰어다니며 많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와 같이 마음에 상상 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상상 속에 건강하게 되고 튼튼하게 되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자기 모습을 꿈꾸고 그리고 믿고 그리고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러한 삶을 2년을 계속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너는 이제 버림받았다. 너는 희망이 없다. 그런데 그녀는 절망하지 않고 4차원의 영성을 실천했습니다. 2년 만에 깨끗이 나아버렸습니다.

마귀와의 영적 전쟁을 승리하기 위하여 이처럼 엄청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마귀는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의 세력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행사합니다. 여러분, 북한의 김정은 정권 같은 그 정권이 사람의 힘으로 움직여진다고 생각하면 어리석습니다. 그 배후에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가 시키는 대로 나가면 고모부 하나 죽이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세속적인 골치 아픈 문제들은 그 배후를 파고 들어가면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따라서 행하여 자기도 망하고 이웃도 망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의 세력임에도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싸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로 13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이 말씀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에베소서 6장 12절로 13절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좀 알려주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이 조금씩 조금씩 알려주셔서 지금은 꽤 알아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귀와 싸움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혈과 육을 상대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배후에서 그 사람을 조정하는 눈에 안 보이는 공중에 권세 잡은 정치와 권세를 가진 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 사람과 싸운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싸우면 같이 주먹을 쥐고 싸워야지. 배후에 세력을 우리가 이해하고 싸워야 하기 때문에 배후의 세력은 영이므로 우리도 영적으로 생각을 통하여, 믿음을 통하여, 신앙고백을 통하여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배후의 세력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 개인이나 우리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사는 것은 비유로 말하면 거짓의 바다 위에 둥둥 떠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것 전부 다 거짓의 바다 위에 둥실둥실 떠서 살고 있어요. 어디를 봐도 죄와 악과 마귀가 꽉 들어찬 곳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떠내려가지 않고 굳세게 서서 마귀의 세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입니다. 우리 허리를 써야 몸은 힘을 씁니다. 저는 잘은 못하지만 나이가 50이 넘어서 해외선교 하러 나가면 해외 지도자들이 꼭 날 보고 하루는 골프 치러 나가자고 합니다. 설교 만 하지 말고 우리하고 골프도 한번 치자. 그런데 어릴 때 제가 골프채를 구경도 못했는데 골프를 친다고 치면 골프공이 안 맞고 땅 만 자꾸 맞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해외 지도자들과 골프를 칠 수 있도록 좀 배워야 되겠다 싶어서 나를 좀 가르쳐 주십시오. 오래 연세가 얼마입니까? 70이 넘었습니다. 70 넘은 할아버지 안 가르칩니다. 잘못 쳐서 허리를 다치면 한평생 들 것에 들려 다니고 대소변 다 받아내야 되는데 나에게 손해배상청구하면 나는 거지됩니다. 나는 뒤따라 다니기만 해도 좋으니까. 하지 마라고 합니다. 왜 그러느냐 하니까 사람이 허리가 제일 중요한데 허리를 다쳐 놓으면 70세 이상 되는 노인은 낫지도 아니하고 완전한 병신이 된다구... 여러분, 허리를 다치지 않고 잘 쓸 수 있으면서 운동할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 제게 좀 가르쳐 주십시오. 몰래 가르쳐 주면 제가 보답을 하겠습니다.

 

<본론>

1. 진리로 허리 띠를 띠고

성경에도 보면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 다른 여러 가지 것으로 허리띠를 띠여 힘을 얻는다 해도 별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요가를 하거나 체력단련을 하거나 심신단련을 하거나 여러 가지 단련을 해서 마귀와 싸우려고 하는데 마귀는 그런 것에 눈도 깜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만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입니다. 말씀 이외에는 거짓의 바다입니다. 거짓의 바다에 흔들리지 않고 기초가 튼튼히 설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말씀 위에 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귀는 환경과 감각을 통하여 온갖 부정적인 압박을 가합니다. 환경을 보아라. 느낌을 보아라.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아라. 네가 성경에서 읽는 것하고는 틀리지 않느냐. 그러므로 내 말을 들어라. 마귀는 그렇게 꾀입니다. 마귀는 예수님 꾈 때도 먹는게 제일이다 이 세상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밥 안 먹고 굶어버리면 뭘 하느냐. 죽어버리면 아무 것도 못 할테니까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어라. 먹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다. 그래서 요사이도 많이 먹었다가 잡혀 들어간 사람들 많이 있잖아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말씀을 알아야지 말씀을 떠나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서는 알 수 없습니다. 허리가 약한 몸은 전체가 허약하고 어떤 마귀의 공세도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서면 허리가 휘청거려도 까딱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내가 허리띠를 띠면 몸이 굳세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은 상상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냥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지그시 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허리띠를 하나, 둘, 셋 이렇게 묶고 나는 말씀의 허리띠를 띠고서 나간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운동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마음이 자꾸 젊게 돌아가기에 에라 젊은 요랑 치고 한번 해봐야 되겠다 싶어서 휴가가 오면 스키를 타러 가려고 작정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내 옆에 앉아있는 사람보고 스키 타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니까 활짝 뛰면서 내 손목을 잡고서 제발 부탁하니 가지 말아 주십시오. 가서 허리를 다쳐 놓으면 세계선교도 다 공수레 공수거가 되어 버리고 큰일 납니다. 또 그뿐 아니라 옛날 젊을 때 목사님 따라 다니면서 스키 탔던 사람들이 같이 유혹받아가지고서 다 허리가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지면 그 가족들 누가 먹여 살립니까? 아예 지나간 것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서 나가야지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내가 흥분이 되고 마음에 힘이 생기는데 스키타도 괜찮지요? 마귀의 말 듣지 마라. 하나님께서 마귀의 말이라고 해요. 마귀가 환경과 감각을 통해서 온즉 압박을 가하는데 거기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너는 스키를 탈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성령을 타야 된다. 그래서 잊었어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리석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마 그중에 하나가 저인데 여러분, 여러분께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제게 말씀하라고 하시는 말이 있으면 인터넷 편지로 보내주십시오. 제가 꼭 참고로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8장 31절로 32절에 보면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주의 말씀이 진리고 주의 말씀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제자가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으로 허리띠를 띠면 아주 힘이 있어 쫙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와서 아무리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허리를 강하게 해야 돼요. 허리가 약하면 유도선수도, 태권도선수도 다 망합니다. 야구선수도 허리가 강해야 멀리 공을 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친구들하고 씨름할 때도 허리가 강한 사람이 씨름에서 이깁니다. 마귀하고 싸울 때는 허리가 강하면 마귀를 이깁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허리를 동여매고 기도하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그리고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심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심장이 있고 폐가 있는데 심폐기능이 활발한 사람은 오래 삽니다. 그런데 원수가 심장을 향해서 화살을 쏘면 심장이 꿰뚫어지면 살려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흉배를 보호하기 위해서(breastplate) 가슴에 방패를 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슴에 방패를 붙이면 어떻게 하느냐. 성경말씀에 보면 우리가 희망과 꿈, 기쁨과 평안, 감사와 찬양이 모두 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데 이 가슴이 공격을 당하면 하나님과 가까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에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 가슴에 희망과 꿈을 품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쁨과 평안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을 뺏기면 안 됩니다. 여러분 기도가 안 나올 때 답답할 때 제일 좋은 방법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이 굉장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고 감사가 제일 마귀가 미워하는 것이고 감사가 여러분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안 나오고 마음이 대단히 답답할 때는 이 가슴이 마귀가 짓누르고 감사를 못하게 하므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뭐 조건 없이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럴 때 가슴이 펑 뚫리고 마귀의 역사가 떠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배를 이 가슴에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망과 꿈을 주셔서 가슴에 갖고 있는 것입니다. 기쁨과 평안도 가슴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도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데 이를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분 항상 기도할 때 예수님의 보혈을 말하십시오. 주님이여 십자가의 보혈로 내 가슴을 덮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보혈로 내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혈의 찬송을 많이 하면 굉장히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죄를 짓거나 허물을 지으면 당장 회개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용서에 있지 정죄에 있지 않습니다. 용서해서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잘못했다고 정죄해서 꾸짖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언제나 제하여 버려야 마귀의 발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죄라는 발판을 짓밟고 우리 가슴속에 들어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용서하시는 주님이신 것이므로 늘 용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늘 여러분께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의 문명발전에 제1의 공로를 세운 것이 지우개. 우리 학교 다닐 때 잘못 쓰면 지우개로 지우지 않습니까? 그것이 인류 문명발달에 제1호의 공로를 세운 것이라고 하는데 왜 그러느냐 우리는 늘 지우개로 지우고 새로 살고 지우개로 지우고 새로 살고 이것이 번복되면서 문명이 발달되었지 한꺼번에 잘해서 성공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과거는 자꾸 잊어버리고 새로 나가고 과거는 자꾸 용서받고 새로 나가는 것입니다. 용서와 새롭게 되는 것이 늘 번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을 모시고 목회하면서 말도 건방진 말도 하고 말을 잘못하고 행동을 잘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저를 용서해 주셔서 그 다음에 설교하게 만들고 또 그 다음에 설교하게 만들기 때문에 발전하지 말하는데 늘 건방지게 말하고 사투리 쓰고 별 볼일 없다. 그만둬라. 용서를 안 해주시면 보따리 싸고 강단에서 내려가야지요. 그러나 용서를 해주시고 계신 이상은 보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목적인 것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것이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지우개지만 우리 기도할 때는 예수님의 보혈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영원히 우리를 용서하기 위한 하나님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 용서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 앞에 살면서 절대 긍정적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불안과 공포심과 우울과 좌절감 등이 마음속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희망을 주고 승리를 주고 기쁨을 주고 무엇이든지 긍정적인 것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공격을 받아가지고서 불안과 공포와 우울과 좌절을 가지고 뒤로 물러가면 주님이 크게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실패해도 다시 기도하면 또 할 수 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사용하면 재기할 수 있다. 주님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이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새마을 운동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나라가 되어서 요사이 중진국, 후진국 나라들이 새마을 운동을 공부하기 위해서 한국에 줄을 서서 오는 것을 신문에서 읽어보는 것입니다. 새마을운동 좋지요. 그보다 새마을운동보다 더 좋은 것이 교회 와서 새마음운동을 하는 것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해서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다른 것도 다 새로워지는 것이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에 성령을 보내주셔서 교회 성도들이 새로워지는 것을 도와주심을 감사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음 문을 열어놓고 하나님 성령이 오셔서 말씀을 가지고 언제나 새롭게 해주시기를 고대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실 때 빛이 생기고 바다가 생기고 육지가 생기고 사물이 생긴 것입니다. 온 세상이 허물어져가고 어둡고 캄캄하고 좌절하고 싸우고 뒤엎고 야단법석 아닙니까? 희망이 없다. 우리는 이래서 우리 개인적으로도 희망이 없고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희망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혼돈한 세상에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운행을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계시면 희망이 있습니다. 성령은 무에서 유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추에서 미로 무질서에서 질서로 가난에서 부요로 질병에서 건강으로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성령입니다. 우리가 그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말씀을 선포하면 빛이 있으라. 궁창이 생겨나라. 말씀을 선포하고 믿으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다 기적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슴속에 성령이 와서 계시고 여러분의 가슴속에 하나님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고 말씀을 입술로 선포하고 믿으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3절로 34절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러니 여러분을 하나님이 앞으로 끌어안고 뒤에서 밀고 대단하게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제가 여러분 고발 좀 해볼까요? 하나님이 누가 고발한다 말이야? 고발하는 것은 잘못한 것을 캐내서 욕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허락을 안 하는 것입니다. 누가 내가 택한 자들을 네가 고발하느냐? 내가 의롭다고 선언했는데 누가 정죄를 하느냐? 내 보혈로 의롭다고 했는데 너가 나쁘다고 정죄를 누가 하느냐?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너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나는 죽어서 그의 죄를 대속하고 부활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지금도 내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니 할 말 있거든 해봐라. 정말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몸에 전율이 옵니다. 마귀가 그것 거짓말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엄청나게 크니까.

우리 로마서 8장 33절로 34절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러므로 여러분을 이렇게 사랑하고 여러분을 끌어안고 보호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절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그리고 또 성경은 여기에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은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났습니다. 가시밭 엉겅퀴 길을 걸어가려면 발이 걸레와 같이 되고 찢어지고 정말로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옛날에 유대인들은 아들은 누구이고 종이 누구인지 분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 밭에서 일하니까요. 그래서 밭에 일하는데 누가 아들이고 누가 종인지 알려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몸 스타일을 가진 청년 둘이 일하는데 어떻게 아느냐. 여러분 어떻게 알겠습니까? 신발을 보면 압니다. 종은 맨발 벗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콧대기가 못생겨도 신발을 신습니다. 신발은 부모님이 일해서 모아놓은 재산을 상속할 자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들은 신발 신고 있으면 우리 아버지 재산은 내가 다 상속한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신발을 벗으면 종놈이 종님이 아니고 종놈이라고 말합니다. 종놈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평안의 복음을 준비한 신발을 준비했기 때문에 신발을 신으라. 죄와 용서의 신발,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신발, 저주에서 해방되어 잘 축복받은 신발, 병 고치는 신발, 천당 가는 신발,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것을 신으라는 것입니다. 네가 따로 예비하려고 하지 마라. 네가 왜 예비 하노? 네가 왜 의로운 신발을 예비하느냐. 거룩한 신발을 왜 예비하느냐. 네가 건강을 왜 예비하느냐. 네가 왜 백만장자 축복을 예비하느냐. 천당의 축복을 예비하느냐. 우리는 예비할 수 있는 힘이 없어요. 그러나 부족함이 없이 하는 것은 하나님이 예비해 놓았으니까 마귀가 와서 너 굶어죽는다. 못산다. 큰일이다 그러지만 안 굶어 죽는다. 내가 신발을 예비해 놓았으니까 평안히 예비해 놓은 신발을 신어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벌써 뜨겁게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애들 말로 끝장났어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여러분은 믿는 것밖에 없습니다. 행함이 없습니다. 그 은혜로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행위를 잘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자랑할 것이 없어요.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믿습니다만 할 따름인 것입니다. 좋은 일을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면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좋은 일을 행해서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여기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로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구원 받았어요. 너무 쉽다. 쉬워야 구원을 받아요. 하늘나라 가는 길이 어려우면 못가는 사람 많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우편 강도, 좌편 강도 중에 강도 한 사람이 주님 나라 임하실 때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당장 천당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마귀는 이런 것을 해야 구원받고 저런 것을 해야 구원받는다고 조건을 많이 말합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여러분을 구원시킬 아무 조건도 없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았으므로 평안의 복음을 준비한 신발을 신는 것같이 예수님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용서받고 예수 믿고 성령 받고 예수 믿고 치료받고 예수 믿고 축복받고 예수 믿고 천당 가고... 다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기도하고 진리를 알고서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여러분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만 외롭게 싸우라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 주셔서 24시간 여러분 곁에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누구십니까? 보혜사 성령이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기도하도록 도와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성령 보혜사께서 이 자리에 계시는데 성령은 거룩한 바람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거룩한 바람, 현재 숨 쉬는 이 바람처럼 거룩한 바람이 이 가운데 가득한 것입니다.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성령님 생각만 하면 마음이 저리도록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잠비아에 가서 집회를 하는데 호텔을 떠나기 전에 너무 몸에 병이 들어가지고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몸이 그냥 360도 빙빙 도는 것 같고 열이 활활 나고 심장이 뛰고 하나님 말씀이 머릿속에 기억이 안 나요. 그래서 아예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연락이 오기를 잠비아 대통령을 위시해서 모든 각부 장관들이 솔선해서 강단에 목사님과 같이 올라오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대통령보다 목사님이 좀 일찍 와 주십시오. 큰일 났습니다. 대통령하고 장관들이 다 오는데 나는 안 온다고 할 수도 없고 올라가서 괴로우면 큰일인데 괴롭게 되었어요. 왜냐, 설사가 나오거든요. 그러니 이렇게 옆구리 잡고 강단에 올라왔다가 강단 밑으로 내려갔다가 왔다갔다 한 것입니다. 거기 들판에 세워놓은 집회장소라서 화장실도 없어서 내가 같이 있는 우리 장로님 보고 빨리 강단 밑에 들어가서 화장실 하나 파라! 별도리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에서 보낸 자동차를 타고 들판으로 나가니까 한 오만 명의 군중이 모였는데 시끌벅적해요. 그런데 배는 끓고 아프죠 열은 나죠. 죽을 지경입니다. 그리고 강단에 올라가서 앉았는데 대통령으로부터 각부 장관들이 와서 악수를 하는데 웃어야 되는데 웃음이 참으로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찡그린 웃음을 웃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누가 내게 와서 말하기를 야 이놈아, 돕는 이가 계시는데 왜 네가 다 맡아서 하려고 하노? 보혜사 성령님이 너를 도우시니 위해서 와계시니 성령께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맡겨라! 사람이 급하면 어떤 일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대통령이 앉아있고 장관들이 앉아있는 그 앞에 내려앉아서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자기들은 내가 자기들을 존경해서 엎드린 줄 아는데 나는 성령님께 엎드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처 견딜 수가 없어요. 성령님, 나 죽습니다. 빨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런데 마음이 싹 가라앉더라구요. 마음이 가라앉아서 내가 대통령을 보고 진짜로 웃고 내가 악수를 하니까 꿇어앉아서 인사할 필요는 없다고... 그냥 내 곁에 앉으라고... 그래서 그 곁에 앉았는데 내가 설교할 시간이 되어서 일어나서 설교를 했는데 내가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 설교한 중에 제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과 삼부요인이 나중에 내가 꿇어앉으라고 하니까 다 꿇어앉고 회개를 하고 하나님이 역사가 일어났는데 감당하지 못할 만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도와주셔서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쳐버리고 말고 하늘나라가 임한 것이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그 성령께서 여러분 이 자리에 계십니다. 나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약할 때 강해진다고 못할 때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십자가에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가 철폐된 것을 항상 여러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마귀의 일을 철폐해 버린 것은 마귀가 왜 우리를 잡고 있느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 했으므로 그 조건으로 에덴에서 쫓겨나서 마귀의 손에 잡혔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죄악을 청산해버리므로 말미암아 조건을 없애버렸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붙잡고 있을 조건이 없어졌습니다. 여러분이 빚을 많이 졌다고 합시다. 제가 와서 빚을 갚아주었으면 빚쟁이가 와서 더 이상 여러분에게 행패를 부릴 조건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로 15절에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지워가지고서 십자가에 매달아서 못 박아버리고 굿바이 해버린 것입니다. 왜냐,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예수님이 여러분이 십계명을 어긴 모든 죄를 영원히 청산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이 계명으로 말미암아 너를 정죄할 수 없다. 너에게는 예수의 피가 있을 따름이다. 하나님이 그 계명을 가지고서 십자가에 못 박아서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보고 이제 내 백성을 잡을 권리가 있느냐? 능력이 있느냐? 마귀가 어찌할 수 없이 이제 좋은 말할 때 물러가라! 이 백성들은 예수님께 버림을 당하고 오랜 세월동안 이 율법 하에서 고통을 당했는데 이제 예수님이 다 청산했어. 나무에 못 박아서 다 청산했으니 너는 아무 권리가 없다. 물러가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 권세자들을 무력화하여 마귀는 무력화되어 구경거리로 삼았다. 십자가로 이겼다. 한번 따라 말하십시오. 십자가로 마귀를 이겼다. 이제는 마귀는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그러니 여러분은 완전한 승리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알고 누릴 뿐 아니라 성령인믜 도우심을 받아 성령님과 함께 행하고 마귀가 가진 모든 권세가 다 철폐되고 구경거리가 된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4.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제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우리가 가슴 딱 펴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4절과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마귀의 협박과 공갈을 우리는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라고 했는데 마귀가 이제는 무슨 말을 해도 여러분과 나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앎으로 마귀가 한길로 온 것을 일곱 길로 도망치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마귀를 이긴 자가 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마귀를 대적하고 내어 쫓는 것만 남은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마귀를 언제나 이기는 꿈을 꿔야지 지는 꿈을 꿔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해도 우리가 알고 꾸짖으면 도망을 칩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서 나가면 마귀는 언제든지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세게 서서 기도하면 말씀을 들은 마귀는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이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가 주님께 부르짖으면 마귀는 쫓겨나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싸워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하나님께서는 공격무기를 주신 것입니다.

 

5.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을 가지라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을 가지라.

구원의 투구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용서와 의를 얻었고 허물을 사함 받고 거룩하고 성령충만을 얻었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으니 병에서 고침 받았고 저주에서 해방되었고 천국을 얻었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니 이것을 머리로 무장하는 것은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입니다. 누가 무엇을 말해도 내 머릿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무장을 하고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가면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마귀를 도망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능력을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신앙고백을 총동원해서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이 긍정적이 되어야 되는데 그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꽉 들어차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아름다운 마음에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인구원을 받아서 내가 살고 남도 살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의 생애 속에 넘치게 나타날 것을 바라보고 즐거워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믿음이 자산인 것입니다. 다른 것 아무것 없어도 주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같이하셔서 도와주시고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입술로 고백하면 입술에서 나간 말씀이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을 그렇게 바꿔놓는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종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에 깨끗하고 아름답고 귀하고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하여 우리의 생활 속에 영적 배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분란이 일어나는 것, 생활에서 분란이 일어나는 것, 교회에서 분란이 일어나는 것, 국가대 국가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 그 배후에는 모두다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들과 공중에 권세 잡은 악의 영들이 있습니다. 마귀와 귀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이름으로 기도로써 그를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 대신 성령께서 와서 일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성경말씀 대로 하나님의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허락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가슴에 품고 하나님이 예비해서 주신 평화의 복음의 신을 신고 그 다음에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하나님 말씀의 검을 가지고 나가면 너무 철저히 무장이 되어있기 때문에 여러분 상처 받을 수가 없습니다. 2014년도는 여러분 빈틈없이 이 주의 은총으로 무장을 해서 마귀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은 나쁜 것도 눈에 안 보이는 마귀가 여러분을 짓밟아 놓고 난 다음 여러분 환경에 일어나게 만들어 놓는 것이고 좋은 것도 그대로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 좋은 것이 일어나도록 마음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통해서 이룩해 놓고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생활에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모든 것은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에서 일어나서 그것이 현실세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세계를 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은 과거에 일어났던 눈에 안보였던 일들이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나타나는 모든 것은 성령이 옷을 입혀서 나중에 여러분 생활 속에 실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눈에 보이는 것은 옛날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 만들어 놓은 것이 지금 옷 입고 나온다. 지금 내가 성령으로 만들어 놓으면 안 보이지만 얼마 안 있지 아니하면 옷을 입고 나온다. 진짜예요. 여러분 그렇게 해보십시오. 저는 지금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꿈꾸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우리 교회 들어오고 나가는 여러분들이 지금은 안 보이지만 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안 그렇지요. 그러나 여러분 꿈속에 이루어졌든지 그것이 미쳐 안 이루어졌으면 내속에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악수를 하면 아~ 목사님이 기도해 주셨군요.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제가 믿고 있으니 다음 달은 금년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변화된 사람들이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원수들이 우리 주위에 둘러 진 치고 있으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얼마나 첩첩히 둘러싸고 끌어안고 힘을 주고 능력을 주었기에 여러분은 까딱없습니다. 생각을 말씀으로 충만히 채우십시오. 부정적인 말하지 말고 부정적인 생각하지 말구요. 그리고 아름다운 꿈을 꾸십시오.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 아름다운 소망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그것이 여러분의 자본인 것입니다. 여러분 있어요.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있는 사람이에요. 있습니다. 이것이 자산인 것입니다. 내 자원은 믿습니다 라는 것이 내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여러분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하십시오. 나는 병에서 고침 받는다. 나는 자격증에 입학을 한다. 이 암은 물러간다. 이 싸움은 조용하게 된다. 입으로 좋은 일을 시인하십시오. 그렇게만 한다면 이 한해 동안 아름다운 한해를 보내게 되실 것입니다. 아멘.

 

 

 

 

공중전쟁

엡 6:10-18 / 조용기 목사

<서론>

오늘 저는 공중전쟁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지금까지 전쟁이 없었던 해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토인비 박사가 말하기를 “이 지상에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나는 곳 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사람들을 살리는 역사가 늘 따랐다.”고 말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 위에서 싸우고, 영적으로는 하늘에서 마귀와 그 세력들과 하나님의 천사들과의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며칠 후면 우리나라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조사내용은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언제라고 생각하느냐? 투표를 하라고 했는데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은 바로 6·25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광복을 맞이한 사건이 1위가 올 줄 알았는데 3위에 그친 데 반해, 6·25전쟁이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전쟁이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지난 5천 년의 역사를 보면, 전쟁이 없었던 때가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어느 순간에 전쟁이 터질지 모릅니다. 우리는 정전협정을 맺었지 휴전협정을 맺은 것은 아닙니다. 언제 정전협정이 파기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보태어서 보이지 않는 영적전쟁도 치루고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 대적하는 악한 영체들

하나님 대적하는 악한 영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우리 지구사이에 공중에 권세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탄이라고 말하는 천사장 중에 하나였는데 그의 이름은 계명성이었습니다. 원래 성경에 보면 이 계명성은 음악을 주장하는 영으로 나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찬양을 좋아하셔서 이 계명성이라는 천사장을 지위를 높여서 하늘의 성가대를 잘 이끌게 해주었는데 아 이놈이 교만해져가지고서 하나님과 나와 다를 것 뭐냐? 나와 하나님과 동등 되게 하자. 그래서 하나님께 반역을 해서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14장 12절로 15절에 보면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인정을 받았으면 더 낮아지고 충성해야 될 것인데 하나님과 같은 보좌에 앉아서 하나님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원수마귀의 군대 앞에 노출되어서 그와 늘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루시퍼는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나서 공중의 권세를 잡자마자 그 나라 조직을 했습니다. 군대조직도 있고 경찰조직도 있고 세금 받는 조직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온갖 조직을 다해서 우리 세상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조직의 배후에 눈에 안보이게 충동을 해서 파괴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은 한국을 맡아있는 사탄이 있습니다. 그 한국을 맡아있는 사탄은 한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모든 배후의 세력이 되어서 충동을 하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을 맡는 원수마귀, 일본을 맡은 원수마귀, 중국을 맡은 원수마귀, 소련을 맡은 원수마귀 전부 그 배후에 있어서 무지무지한 파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후에서 통치자, 권세자, 세상 주관자들로 배후에 여러 가지 흉악한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이는 육체를 가진 인간을 상대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싸우는 것은 이 세상 통치하는 정치적인 제도 뒤에서 싸움을 걸고 권세자들 뒤에서 싸움을 걸어서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오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공중의 권세를 잡고 세상에 파견이 되어서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들어가서 더욱 반역을 하고 불순종을 하도록 마귀가 사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 밑에 타락한 천사를 무수히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가 하나님께 반역하고 타락할 때, 수많은 군사들을, 귀신들을 끌고 같이 타락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밑의 부하로는 타락한 천사와 귀신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협력을 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게 만들고 더구나 예수 믿는 사람에겐 적극적으로 파괴 하려고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적하여 싸우는 원수가 현실의 배후에서 조종하는 원수 세계의 통치자, 권세자, 귀신들이 진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귀신이 나 귀신이다~ 날 보아라. 그렇게 하면 오히려 쉽습니다. 귀신은 엄청나게 자기를 귀신답지 않게 세상 영화를 덮어쓰고 배후 조종자로 나와서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보면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그와 그의 사자들, 귀신들 달아난 천사들 함께 쫓겨나서 이 세상의 파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루시퍼가 제일 꼭대기 사탄입니다. 루시퍼 밑에 자기들 나라의 장관도 있고 군대도 있고 외교를 하는 무리도 있고 조직을 해서 철저히 이 세계를 파괴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악이 여러분, 쉽게 물러가지 않는 것은 이 원수 마귀의 조직이 세상 모든 사람들 배후에 있어서 조직을 하고 끊임없이 악을 퍼부어 주고 있기 때문에 악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2. 어떻게 싸울 것인가?

어떻게 우리는 이것들하고 싸울 것이냐? 싸우지 않으면 안돼요. 진리에 서고 거짓이 넘치는 곳에 들어가 있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에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이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뱀을 통해서 왔습니다. 요사이 우리가 보는 뱀은 배로써 기어 다니고 쉭 하고 지나가면 정 죽여야 되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실제 옛날 아담과 하와 때의 뱀은 지금 뱀처럼 사납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애교 충만. 웃음 충만. 사람들의 간담을 녹이게 하는 교활한 짐승이었습니다. 이 선악과 나무에 있는데 아담과 하와를 꾀어 와서 이거 정말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더냐? 이거 먹으면 너희도 지혜롭게 되어서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된다. 하나님과 동등 될까 싶어서 하나님이 샘이 나서 못 먹게 한다. 까짓 거 먹어버려라. 하나님과 동등하게 된다. 사탄이 동등하게 되려고 하다가 쫓겨나는 것이니 똑같은 수법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사탄의 애교에 넘어가서 그 선악과를 별로 마음에 부담도 느끼지 않고 그냥 따서 먹고 그 다음 자기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이 아담이 “야 그거 먹었으니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쫓겨나면 어떻게 하느냐?” 아마 아담이 한마디는 말은 했을 것입니다 그럼 하와가 “쫓겨나면 나는 버림받고 당신 혼자 잘살겠네? 나만 불쌍하게 되지 않겠나?” “그래? 너 죽으면 나도 같이 죽어야지.” 그래 하와가 주는 것을 따먹고 하나님께 같이 범죄 해서 내어 쫓기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우리가 살아가는 올바른 길이고 거짓이 아닌 참이고 우리가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있으면 우리는 거짓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참을 따라 살게 되고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4절로 5절에 보면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고린도후서 11장 3절에 보면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모든 부패는 조정하는 마귀가 뒤에서 그렇게 조정해서 되는 것입니다. 죄의 배후에는 개인적인 것이나 단체적인 것이나 사탄이 있습니다.

마귀는 영적인 존재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탐욕과 시기와 악한 생각을 집어넣어서 죄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마귀는 뱀을 통해 다가와 하와의 마음에 탐욕을 넣었고, 마귀에게 넘겨진 하와는 인류 최초의 범죄자가 된 것입니다. 마귀가 뱀을 통해서 생각을 하와의 마음속에 넣어준 것입니다. 또 마귀는 가인의 마음에 시기심을 넣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맏아들 가인, 둘째 아들 아벨인데, 가인의 마음에 시기심을 넣어서 마귀에게 넘어간 가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된 것입니다. 자기가 그냥 나가서 동생을 죽인 것 아닙니다. 마귀가 죽일 마음을 생각을 집어 넣어주어서 그 생각에 넘어가서 시기심이 발로하여 동생을 죽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가인은 악한 자, 곧 마귀에게 넘어가 시기심으로 동생을 죽인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13장 2절에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집어 넣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집어 넣어주었다는 겁니다. ‘지킬만한 것 중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성경에 말씀한 것처럼 마음에 생각을 넣어주고 나니까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그 생각에 져서 따라간 것입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악한 생각을 넣었고 이를 이기지 못한 유다가 은 30에 예수를 팔아넘기는 엄청난 죄를 지은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사람의 마음에 탐욕과 시기와 악한 생각을 넣어서 죄를 짓게 하는 배후의 세력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세상의 생각을 집어넣으려고 하는 마귀의 노력이 대단합니다. 우리의 형제들을 통해서, 친구를 통해서, 이웃을 통해서, 의심할 수 없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마귀의 생각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고 말씀이 마음에 없으면 그들이 꼬이는 말에 넘어 갑니다. 나중에 보면 우리에게 엄청난 파괴를 가져오는 마귀의 생각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에 쉽게 낙심해서 뒤로 물러가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무서운 고통을 당하고 있다가 다시 국민들이 회개를 하니까 하나님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을 고향땅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20일 동안 기도를 드려도 아무런 대꾸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는가?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스무 하루째 되는 날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아이고 왜 이렇게 늦게 오십니까?” 다니엘 보고 “다니엘, 당신이 기도를 했을 때 첫날에 기도가 달성했다. 첫날에 하나님이 나를 불러서 이 응답을 갖다 주라. 했었습니다. 그 응답을 가지고 오는데 공중에 오니깐 공중에 원수마귀와 군대들이 나를 막아서 내가 밀고 당기고 20일 동안 머물러 있어서 전진하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군대 장관인 미카엘을 보내주셔서 미카엘이 응원으로 도와주어서 적진을 헤치고 이제 내려왔다.”고 했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하면 기도가 응답되지 못하도록 마귀가 억세게 막습니다. 그러므로 쉽게 낙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0장 12절로 14절에 보면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21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여기에 보니깐 바사 왕국의 왕들입니다. 페르시아 정복한 여러 나라 그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마귀가 떼를 지어서 와서 다니엘을 막았습니다. 21일 동안 나를 막았음으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들과 함께 머물러 있었다. 전진도 후퇴도 못하고 서로 대결하고 있으니깐 미가엘 장군이 와서 마귀를 쳐 물리치고 응답을 받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아주 영적인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굉장합니다. 우리는 원수들을 대적하고 성령의 도움을 청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안 되지 않습니까? 제게 편지가 오는 걸 보면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버렸는가 보다, 목사님 나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대개 그 편지를 쓴 사람들이 얼마나 기도하다가 낙심해서 그렇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나는 어떠한 자매님은 암이 걸렸는데, 유방암을 수술했는데 그게 몸으로 번져나갔는데 제게 와서 안수기도도 받고, 우리 교회에 와서도 기도하고 기도원에 가서도 기도하고, 그래도 별로 진전이 없다고 굉장히 낙심하는 것을 제가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견뎌라!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견뎌라!’ 그래서 기도를 1년 하고, 2년 하고, 3년 째 병이 나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인내력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마귀라고 하니깐 기운이 없이 흐늘흐늘한 놈이 아닙니다. 그 놈들도 눈알이 새카맣게 돼서 또렷또렷 한지 어쩐지 하나님 일을 훼방하고 하나님 백성들을 고통을 주려고 하는 나쁜 놈들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단호하게 우리가 대결해야 돼요. 에베소서 6장 13절로 18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저는 제가 신학교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한 그 때부터 시작해서 오늘 이 시간이 되기까지 에베소 6장 13절로 18절을 안 읽었으면 좋겠어요. 어찌 복잡한지. 무엇으로 방패를 삼을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운데 다 돌볼 수 없고 중요한 것 몇 가지만 가지고 마귀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우리 옷에 허리띠 띠는 거 허리띠 없으면 옷이 다 내려가기 때문에,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하나님 말씀을 몸에 단단히 간직하고, 그 다음 의의 호심경을 붙여라. 옛날에 창이나 칼로써 때려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가슴에 방어하는 무기를 입었는데 오늘날도 방탄복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방탄복을 입고, 그 다음에는 믿음으로 방패를 삼고,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라. 구원의 투구는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머리에 외우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서 마귀와 대항하라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원수 마귀하고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공격무기도 있어야 되고 방어무기도 있어야 되는데, 공격무기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공격하면, 우리가 공격하면 말씀을 대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갖고 기도로써 공격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공격용 무기와 방어용 무기가 있습니다. 방어용 무기는 뒤로 물러가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가 어떤 협박을 하더라도 물러나지 않고, 오래 참는 것이 방어용 무기인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공격적인 기도도 성령님 도움을 통해서 방어할 때도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여러분 마귀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같이 있어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시는데, 성령이 우리를 도우실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신다는데 그 탄식이 무엇이냐면 방언기도인 것입니다. 방언기도를 탄식을 하며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 구역장 한 분이 구역회의를 인도하러 가려고 하는데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어요. 어찌 마음에 탄식이 있는지 ‘아...하나님.. 아이고 하나님 오늘 내 마음이 왜 이렇습니까? 너무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아이고 어찌할까요. 왜 이렇습니까..’ 그러니까는 방언으로 기도가 나와요. 그래서 막 방언으로 기도를 했어요.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방언으로 기도하고 그다음 남편이 들어오는 시간이 되었는데 그 남편이 무얼 하느냐면 회사에 큰 자동차 운전수인 것입니다. 그가 집에 오면서 “오늘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준 것이 틀림이 없다. 안 그랬으면 내가 살아서 못 돌아왔을 것이다.” 왜 그러냐니까는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작은 벼랑에 떨어졌어요. 떨어졌으니 그 골로 떨어졌으면 다 죽었을 것인데 떨어졌는데 뒷바퀴는 벼랑에 걸려있고, 덜렁덜렁하고 사람들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어요. 벌벌 기어서 마지막 사람이 다 차에서 나오고 난 다음 차가 덜렁 하면서 벼랑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자기도 안 죽고 태운 모든 사람들도 살아났어요.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 구역장님이 하나님께 헌금을 크게 내겠으니 나보고 헌금 받아가라고 그랬어요. 아니 직접 헌금을 가지고 오지 왜 나보고 받으러 오라고.. 사연이 있어 그렇다고. 그도 역시 구역예배가려고 하는데 너무너무 마음이 고통스러워 문을 겹겹이 채우고 구역예배에 가서 구역예배를 드리는데 너무 가슴이 짓누르기 때문에 구역원들과 다함께 방언으로 기도해달라고 했어요.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할지 모르기 때문에 방언으로 기도를 잔뜩 해서 마음이 좀 시원하게 되어서 집에 오니깐 도둑놈이 들어와서 문 다 열어놓고 서랍 다 열어가 옷가지를 전부 다 던져놓고, 돈을 찾았다 말입니다. 그래 이제 그 자매님이 ‘아이고 이제 나 오늘 남편에게 맞아 죽었다..’ 돈을 한 장롱 장 밑에 서랍에 넣어놨는데 틀림없이 가져갔을 것이라.. 위에 다 들쳐놓고 옷 다 엎어놨는데 뛰어가서 그 헐무리한 서랍을 열어보니까는 다른 서랍은 다 흐트러졌는데 그곳은 고스란히 그대로 놓아 있어요. 눈이 어두웠던지 손을 안 대었어요. 그래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너무너무 감사해서 그 서랍에 있는 돈 중에 거의 반은 낸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생각해도 한 천 만원 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 헌금으로 드리겠다고. 우리가 마귀하고 싸울 때 우리 힘으로 기도 못하면 방언으로 기도해야 돼요. 방언은 우리에게 위험이 다가왔을 때 특별히 기도해주는 굉장히 좋은 무기인 것입니다. 방언기도를 등한히 여기면 안 됩니다.

 

3. 원수들이 하는 일

이 마귀들이 왜 우리를 괴롭히냐하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해야 성적이 올라가는데 귀신들도 자기 성적을 올리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얻되 충만히 얻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니’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오고 마이너스 인생을 가져오는 것은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주님은 어찌하든지 좋은 일을 해주지 나쁜 일은 안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망하게 안 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망하게 하지. 예수님은 생명의 원천이요, 여러분과 나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무슨 일을 당할 때에도 이게 마귀가 한 짓이냐 우리 주님이 하신 짓이냐를 알려고 하면 위험을 당하는 일을 통해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면 주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파멸을 가져오는 것은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분별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짓에 넘어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신기루인 것입니다. 사막에는 우리가 눈에 헛것이 보이도록 신기루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신기루를 따라가면 반드시 목말라 죽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전쟁 때, 아랍군 일개 대대가 신기루를 보고 따라가서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데 저기 물이 콸콸 흐릅니다 눈 앞에서.. 전부 엎드려 모래를 물인 줄 알고 그대로 퍼마셔가지고서 목구멍에 모래가 가득가득해서 죽었어요. 그러나 이스라엘 군대에서 복무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 죽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신기루에 속는 것입니다. 신기루는 진짜가 아니라 가짜입니다. 눈에는 보이지만 그것은 허상일 뿐, 그것을 믿고 따라가기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신기루처럼 우리 눈에 그럴듯하게 보일 것이나 그를 통해서 우릴 속입니다. 창세기 3장 6절에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어 그도 먹은지라’ 그것이 신기루 아닙니까. 거짓말인데 참말로 보이거든요.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에 서 있지 못하면 이 신기루에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에게 속아 눈에 믿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기에 탐스럽기도 한지라.. 결국 그를 따라가서 멸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짓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하나님 말씀 위에 굳세게 서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말씀의 주사를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4. 병(病)과 영계(靈界)의 배후활동

우리가 육신에 병이 들어서 고생하는 사람 많지 않습니까? 마음의 병도 굉장히 아픈 병입니다. 마음에 우울하고 좌절된 마음 고통도 얼마나 아픈 고통입니까. 육신의 질병도 엄청나게 아프지 않습니까? 그 모든 것이 배후에 귀신이 있습니다. 여러분 온갖 병을 앓지요. 그 병 자체가 있는 게 아니라 병 배후에 귀신이 있어요. 누가복음 11장 14절에 보면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벙어리가 되어서 말을 못하는데 온갖 치료를 다 해도 치료가 안 됩니다. 예수님이 와서 귀신을 쫓아내고 나니까는 벙어리가 싹 나아버렸어요. 배후에 귀신이 병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 7절에도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중풍병자와 못 걷는 자 배후에 마귀가 억압해서 그 병을 일으킨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나니까 병이 그냥 나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는 것은 여러분 그의 대속의 은총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예수님이 합법적으로 청산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로 5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실로 진짜로 가짜가 아니라 진짜로 우리 질병을 지고 그 병으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마태복음 8장 16절로 17절에 ‘사람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생애에 3분지 2는 병 고치는 데 보냈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병이 있지를 못합니다. 가는 곳마다 죄를 용서하고, 그 다음에는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성경에 말씀하는데 동일한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이 자리에 계신데 예수님이 우리의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주기를 원하는 만큼 우리가 병에서 고침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병을 앓는 것은 불법입니다. 합법적으로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이미 청산해 버렸는데 그러므로 여러분 병을 앓을 이유가 없습니다. 마귀가 억지로 여러분에게 병을 덮어씌우려고 하는데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딱 가지고 마귀에게 그 증거를 내놔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야 봐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나는 뒤로 물러가지 않는다. 네가 물러가라!’ 강하게 결심하고 대결하면 마귀는 물러가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치료하는 종교인 것입니다. 어떤 교회든지 치료를 해야 돼요. 오늘날 교회가 잠들어간다는 이유는 치료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적으로 우리를 구원함과 동시에 육체적인 질병을 고치는 것이 절대적인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고통을 당하면서 우리 병을 청산했는데 우리가 병을 왜 받아줘야 되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병은 예수님이 내게 주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그 말 듣기가 싫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은 병 주고 약 주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병 줘놓고 약 주는 그런 주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고치는 분이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병 고치는 종교인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가운데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건강을 누릴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실 은혜를 꼭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3분지 2가 병 고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을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 모든 병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모든 병입니다.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았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병 고침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도 해방을 누리고 병든 사람에게 이 진리를 가르쳐서 고침 받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은혜를 받을 때, 인내하라는 것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이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후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25년이 걸렸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고 난 후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13년이 걸렸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난 지 실제 이스라엘 왕이 되는데 13년이 걸렸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6장 14절로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요사이 경제가 나쁩니다. 경제 나쁜 환경 가운데서 중소기업을 하시는 분들이 고통을 당해요. 그래서 저에게 와서 하나님께 원망 아닌 원망을 대신 저보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설교할 때, 이러한 상황 속에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했는데 안 도와주는 것 같아요. 이거 목사님이 책임지고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현재 조금 나쁘다고 해서 박수를 치고 조금 안 나쁘다고 해서 섭섭하게 대하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약속을 믿었으면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끝까지 가실 줄 믿습니다!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면 주님이 꼭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그 긍정적인 생각으로 아름다운 꿈을 꾸고 꿈을 바라보고 그리고 ‘믿습니다!’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믿고, 여러분 스스로 ‘잘 돼라! 귀신은 물러가라! 하나님 축복은 임하실지어다!’ 아 그렇게 여러분이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서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이 같이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고 믿음이 더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6:14)’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 보세요. “반드시 하나님이 내게 복주시고 복주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일을 성사시키는 데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5만 번 기도응답을 받았던 조지 뮬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응답이 이루어질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범하는 커다란 잘못은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기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내하며 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으면 그것을 얻을 때까지 기도해야 된다.” 그러면 여러분은 기도에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일에는 언제든지 마귀가 훼방하고 대적합니다. 더구나 심신이 병들게 하여 우리를 죽게 하는 마귀를 대적하고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허리 띠

엡 6:10-14 / 신수일 목사

가수 서유석이 최근에 이런 노래를 발표했습니다. 제목이, "너 늙어봤냐?"입니다. 이 분이 45년생 올 해 꼭 칠순이십니다. 1절, 30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수라 부르지. 월요일엔 등산가고 화요일엔 기원 가고 수요일엔 당구장에서.주말엔 결혼식장 밤에는 상가 집. 너~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2절, 세상나이 90살에 돋보기도 안 쓰고 보청기도 안 낀다. 틀니도 하나 없이 생고기를 씹는다. 누가 내게 지팡이를 손에 쥐게 해서 늙은이 노릇하게 했는가. 세상은 30년간 나를 속였다. 너~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3절, 마누라가 말리고 자식들이 뭐라해도 나는 할꺼야.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할꺼야. 서양말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고 아랍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볼꺼야. 너~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4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비 되고 할배 되는 아름다운 시간도 너무나 너무나 소중했던 시간들. 먼저가신 아버님과 스승님의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인생이 끝나는 것은 포기할 때 끝장이다. 너~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이 분이 젊어서는 "가는 세월 그 누가 막을 수가 없나요?" 부르더니, 이제 늙어서는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가 인생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교회는 영적 무장에 대해서 나눕니다. 지난 주일에 영적인 전쟁이 무엇이고, 영적 무장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오늘부터는 영적 전쟁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준비하고 싸워야 하는지 자세하게 나눕니다. 우리가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마귀보다 힘이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영물이라 우리보다 지혜와 능력이 앞섭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첫 번째 무기가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14절,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소개하는데 첫 메시지가 "서서"입니다. 전신갑주는 완전무장인데, 완전무장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 있어야 합니다. 앉아있거나 누워서는 완전무장을 할 수 없습니다. 영적 무장은 게을러서는 할 수 없습니다. 무척이나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 할 일을 다 하면서 영적인 생활을 해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평신도로 세상 직업을 가지고 영적인 무장을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존경할만한 것!)

우리가 서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 서 있어야 합니까? 반석이신 그리스도 안에 서 있어야 합니다!(빌4:1, 출33:21) 영적인 무장에서 어느 것 하나도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관계없이 스스로 서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세상적인 조건-체력, 지식, 심성 등을 갖췄다고!) 고전10:12,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어야 비로소 반석 위에 서게 됩니다.

서서 완전무장할 준비가 되어, 처음에 무장할 것이 바로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허리는 몸의 가운데 있는데 왜 머리가 아니라 허리를 가장 우선순위로 무장의을 해야 합니까? 영적 무장을 통해 입는 옷은 전쟁에 나가는 군인의 옷입니다. 어떤 훈련이나 연습이 아니라 실전에 나가는 군인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영적 전쟁의 실전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라고 부릅니다.(딤후2:3-4)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영적 전투의 실전에 나가 싸워는 군사들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주님의 군사이면 사단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공격합니다. 사단이 우리를 가만히 두고 있다면, 내가 그리스도의 군사인가를 진단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나타나는 무기들을 보면 성령의 검을 제외하고 모두 방어용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전쟁을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방어용 무기를 잘 갖추고 있다가 결정적일 때 말씀 한 방으로 대적 마귀를 이기는 것입니다. 허리띠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이 띠에는 각종 무기들을 장착합니다. 칼도, 권총도, 물병도, 탄약도, 기타 여러 장비들이 허리띠에 부착합니다.(강력한 벨트) 결국 허리띠는 모든 무기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합니다. 또 허리띠는 복부를 보호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허리띠는 군복을 효율적으로 입고 사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허리띠는 상의와 하의 사이를 고정해줍니다.(고리역할) 특히 하의-바지나 스커트(치마) 등이 내려가지 않도록 지탱해줍니다. 만일 벨트가 풀려서 바지나 치마가 내려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가령, 마가복음 14장에 예수님이 잡히시고 주님의 한 제자가 베 홑이불을 두르고 도망갑니다. 그가 잡히지 않으려고 벗은 몸으로 달아난 이야기입니다.(51-52절) 마가는 그가 한 청년이라고 기록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말합니다. 베 홑이불은 이불이 아니고 겉옷입니다. 그런데 벨트가 없었던 것입니다.

벨트가 없어서 그만 벗은 몸이 되었습니다. 허리띠는 이와 같이 무기를 부착하기도 하고 군복을 제대로 갖추게 하는 중심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허리띠는 기동성을 제공해줍니다. 허리가 강해야 온전한 영적 전투를 할 수 있습니다. 축구 경기에서도 허리가 강해야 이깁니다.(미드필더-공격을 지원하고 적의 공격을 허리에서 차단하는 역할) 기성용 같은 선수-전방으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볼 배급도 하고 또 기회가 오면 직접 골도 넣습니다. 박주영 이후 골 넣고 기도하는 선수, 영국 빅리그에서 박지성보다 더 잘하는 선수로 성장해가고! 허리띠를 푸는 것은 곧 무장을 해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허리띠는 진리라고 말씀합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각 대학마다 진리를 추구한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도(진리는 나의 빛-라틴어로 Veritas Lux Mea), 연세대학교도(진리, 자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고려대학교도(자유, 정의, 진리. Libertas, Justitia, Veritas) 모두가... 그런데 과연 그들이 진정 진리를 추구하고 있나요? 그들이 교육표어로 내놓은 진리가 과연 참다운 진리입니까?

요한복음18장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고 다시 묻습니다. 허리띠는 진리인데, 그러면 빌라도의 질문과 같이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알레데이아)는 숨김-속임이 없는 것 곧 참된 것입니다. 참된 이치, 참된 도리, 변하지 않는 것, 영원한 것, 썩지 않는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술이라고 했습니다. 술은 만민을 평등하게 하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라고. 두 번째 사람은 당신과 같은 황제라고 했습니다. 황제는 말 한 마디로 천하를 굴복시키기 때문이라고. 세 번째 사람은 여자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어떤 황제도, 강한 용사도 낳고 여자 때문에 국경도 넘고, 죽음도 불사하기 때문이라고. 네 번째 사람은 진리라고 했습니다. 술과 임금, 그리고 여자도 강하지만 언젠가는 없어지고 말지만 진리는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영원한 진리가 무엇입니까?

옛 성인들은 진리를 탐구했습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아침에 도를 듣고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도는 곧 진리입니다. 간디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 평생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독립을 얻기 위해 진리를 희생시키기보다는 독립을 얻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진리를 택하겠다고 했습니다. 진리 없는 독립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희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낮에 등불을 들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지만, 그가 찾는 사람은 인간다운 인간,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한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세상에 자기 자신이 진리라고 말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20세기 최고 지성인이라 불렸던 C. S. Lewis(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는 이러한 그리스도를 향하여 우리가 결단해야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를 미치광이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첫 번째 영적 무장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로 허리를 동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우리에게 덤비지 못합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허리띠를 띠는 것은 그분과 늘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항상 그 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를 통하여 좀 더 실감나게 우리와 주님의 관계를 말씀해주셨습니다.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은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6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다만 우리가 진리이신 그리스도로 허리띠를 띠면, 나머지는 주님이 하십니다.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로 우리의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허리띠를 띤 자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선포해주셨습니다. 요8:31-32,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매우 간단한 원리인데, 문제는 우리가 겸손하게 이 말씀을 따라 적용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령, 이사야8:9-10을 봅시다.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진리이신 그리스도 없이 허리띠를 띠고 허리를 동여도 소용없다는 메시지입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 없이 사는 인생의 허무함을 전해줍니다. 오늘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만이 우리 삶의 능력임을 알고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18: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신다."고 노래합니다. 어떤 사람이 죽음이 임박해서, "당신의 생애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답니다. 그의 답은, "인생을 헛되게 산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평생,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모파상의 유명한 소설, [목걸이]의 여주인공과 같은 인생-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친구에게 빌렸다가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을 갚기 위해 10년 고생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짜-모조 다이아 목걸이였습니다. 참 기가 막힌 일입니다. 순간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대가지불이 터무니없이 컸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소설의 주인공 마틸드 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이 땅에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허무한 인생을 살다가 갑니다.

반면 한때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방랑하다가,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살았던 사도 바울은 죽기 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 없이 인생을 끝까지 헛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리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바울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주님과 함께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그의 고백대로 의의 면류관(큰 상급)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자기만 이 상급을 받을 것이 아니고 자기와 같이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로 허리띠를 띠는 자들 모두가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늘의 상급은 우리생각보다 많습니다. 옛 성인들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진리를 우리는 만나고 허리띠를 띠고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복입니까! 이 복을 우리가 평생 누리고 우리 자녀들도 이 복을 누리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세워갈 수 있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

 

 

 

 

의의 호심경

엡 6:10-14

어느 초등학교 학생들의 답안지를 소개합니다. 1번, 위와 같은 뜻이 되도록 '고치다'의 뜻을 사용하여 글을 지으시오? 학생의 답은 선생님이 이쁜 이유는 성형으로 얼굴을 고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채점한 선생님은, 선생님이 이쁘다는 말에 밑줄을 긋고 "이것은 맞고"라고 빨간색 색연필로 썼습니다. 성형으로 얼굴을 고쳤기 때문이라는 말에는 요건아님이라고 쓰면서, "설마 나?"라고 썼습니다. 2번,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여자의 신체적 변화를 한 가지만 쓰시오? 학생의 답은 무섭고 난폭하며 폭력적이다.(초등학교 시절에는 남자애들보다 여자애들이 난폭!)

3번, 비가 많이 와서 큰 피해를 당한 수재민에게 어떤 말로 위로를 하면 좋을지 쓰세요? 학생의 답은, 재민아 힘들겠지만 희망을 가져. 4번, 9에 4를 더했더니 1이 되는 경우는? 학생의 답은 어이없는 경우.(정답은 시계) 5번, 여자의 생식기관 중에서 임신했을 때 아기집이 되는 곳은 어디인가? 다섯 개 가운데 선택형인데, 학생의 답은 6번을 추가해서 다리 밑이라고! 마지막 문제입니다. 남한 청년과 북한 처녀가 결혼을 하였습니다. 어떤 일들이 생길까요? 학생의 답은 뜨거운 밤이 시작된다. 요즘 애들 알 수가 없지요!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다음, 다음 주일에 종려주일이니 사순절이 깊어갑니다. 남은 사순절 기간을 보내며 영적 무장에 대해서 나눕니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말을 합니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요즘 대심방을 하면서 가장 많은 기도 제목 가운데 하나가 자녀들의 취업문제입니다. 제 큰 딸의 기도제목이기도 합니다. 모든 자녀들의 취업과 진로가 잘 열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은 또한 영적인데 있음을 언제나 인식해야 합니다. 지난 두 주일 동안 나눈 것과 같이 영적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장해야 할 두 번째 무기는 "의의 호심경"입니다. 호심경은 가슴과 배, 그리고 등을 포함하여 상체의 앞뒤를 보호하는 기구입니다. 개역 성경 번역은 흉배입니다. 로마군병의 호심경은 미끈하고 강한 동판으로 만들어서 햇빛이 비치면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렸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호심경을 입으면 싸움에서 이길 확신을 가졌습니다. 일반 병사의 호심경은 18kg, 대형 사이즈는 35kg, 골리앗이 입었던 갑옷은 무려 55kg이 되었답니다. 옛날 호심경은 이렇게 무거웠습니다. 현대전에서는 방탄복을 입습니다.

우리가 호심경을 입고 방어를 해야 하는 것은 우리를 공격하는 존재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잘 알아야 합니다. 베트남에 가니까, 호지명(호치민)이 대 영웅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프랑스의 식민 생활 가운데 있던 조국의 독립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는 미군과 한국군을 포함한 연합군을 이기고 베트남을 통일시켰습니다. 무기로 본다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는데, 그는 부족한 무기를 가지고 강대국인 프랑스와 미국을 이겼습니다. 프랑스와 미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호지명의 전략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11절, 마귀입니다. 마귀-디아볼로스의 어원은 비방이란 말입니다. 비방하고 헐뜯음으로 때려서 상대방을 녹초로 만들어 무너지게 만듭니다. 마귀가 이렇게 사람들을 괴롭히는 참소자입니다. "너는 안 돼, 너는 죄를 많이 지었어, 그 죄를 다 어떻게 하려고, 너 같은 사람이 뭐 교회를 다니겠다고, 너는 위선자야, 그만둬, 너는 늘 죄 가운데 살아..." 사단은 끝없이 우리를 정죄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포함에도 불구하고(롬8:1) 마귀는 계속 우리의 약점-빈틈을 파고들고 공격합니다.

 

 

예를 들어 스가랴3장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섰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여호수아를 대적합니다. 사단이 여호수아를 대적함으로 하나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사단이 여호수아를 대적한 것은,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정죄한 것입니다. 사단은 여호수아를 정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다"고 선포하십니다.(마귀는 정죄하고 하나님은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가 마귀의 전략을 늘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은 우리로 죄를 짓게 유혹하면서 우리가 그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고 나면 우리를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유혹할 때는 그토록 달콤하게 매혹적으로 합니다.(하와를 유혹할 때도-네가 선악과를 먹으면 죽지도 않거니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이것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이 사단이 있는 곳에 죄가 있고, 죄가 있는 곳에 사단이 있다고 합니다. 실례를 소개합니다. 교도소 전도자로 유명한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 가운데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장로님이 청송 감호소 교도관으로 근무할 때 만난 어느 사형수 이야기입니다. 부모와 형-형수, 그리고 조카까지 다섯 명을 죽이고 잡혔습니다.

그런데 그 사형수의 얼굴을 보니 도무지 사람을 죽일 형상이 아니었습니다. 장로님이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살인을 할 수 있는가? 그것도 부모와 형제를! 어렵게 그 사형수가 장로님에게 마음 문을 열었습니다. 자기 말을 진정으로 들어줄 수 있어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형수에게 어느 날 어두운 형체가 다가오더니 부모를 죽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형과 형수 조카까지! 자기는 그들을 죽일 마음도 없고 힘도 없는데, 어두운 형체가 자기 안에 들어와서 살인을 범하고, 집 앞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조사를 해보니, 혼자서 삽으로 땅을 파서 다섯 구의 시체를 묻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포클레인으로 파야 되는 땅!)

그래서 공범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는데, 이 사형수는 어두운 형체가 자기 몸속에 들어오더니 땅을 파는데 모래 파듯이 쉽게 파지더랍니다. 시체들도 가볍게 옮길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가 잡혀서 청송 감호소에 들어왔는데, 그 어두운 형체가 다시 자기에게 다가오면서 위협하며 참소했습니다. 너 같은 놈이 살 자격이 있느냐? 부모도 죽이고 형제도 죽이고 어린 조카까지 죽였으니 너는 살지 말고 이제 죽으라, 자살하라고 하더랍니다. 이때 박장로님을 만났고, 장로님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살인범이 되게 하고 자살하라고 했던 마귀는 떠나고 인생의 참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는 사형을 피할 수 없었지만 죽을 때까지 전도를 하다가 멋있게 인생을 마쳤습니다. 마귀의 실체가 이렇습니다! 마귀가 이렇게 공격할 때, 우리는 호심경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무장해야 할 호심경이 "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의는 사람의 의가 아닙니다. 사회공의나 정의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dikaiosune theo-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언제나 있습니다.

한 부류는 자기 의로 사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아시죠! 나는 십일조를 드리되 야채까지 드리고, 매 주 주기적으로 금식을 하고요, 나는 죄인과 같지 않습니다... 자꾸 사람들에게 보이고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합니다. 도무지 자기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마치 안데르센 동화의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이 말입니다.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고도 최고의 옷을 입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사기꾼이 바로 마귀입니다. 이렇게 자기 의로 사는 자는 율법주의 신앙인들입니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 뿔에 못 이겨 넘어집니다.

또 한 부류는 하나님의 의로 사는 사람입니다. 세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는 의롭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은혜라 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심으로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칭의!) 롬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루터는 이것을 ‘행복한 교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의와 생명이 우리 것이 되고, 우리의 죄와 사망이 예수님 것이 된 것입니다. 어느 날 마귀가 루터에게 루터의 모든 죄를 자세하게 기록한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책을 보여주며, 너 같은 놈이 무슨 종교개혁을 하냐며 비아냥거립니다. 그때 루터가 “이게 다냐?”고 묻자, 또 있다며 두꺼운 책을 두 권 더 가지고 왔습니다.

루터는 아무 말 없이 펜으로 붉은 잉크를 찍어서 한 장 한 장마다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요일1:7). 그러자 마귀가 물러갔습니다. 이것이 의의 호심경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실수해도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우리가 실수한다고 하여 자녀가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 좋은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아들이 도박으로 빚을 지고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 다녔습니다. 얼마 후 빚쟁이들이 아버지를 찾아가서 빚을 모두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가족들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계속 도망 다녔습니다. 불안 속에서 집에도 못 들어가고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다 나중에 아버지가 빚을 다 갚아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을 안 아들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빚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 우리가 의의 호심경을 입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의는 우리가 쟁취하여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대신해서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사단이 우리를 향하여 참소한다고 해도 당황하지 말고 우리가 맞서서 싸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래도 나는 의인이다!"는 선언입니다. 네가 아무리 나를 참소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의롭다고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 "나의 옛 자아는 죽었다!"는 선포입니다. 내가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너, 사단의 통치 아래 있지 않다는 선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는 선언입니다. 의의 호심경을 입은 우리를 향하여 참소하는 마귀에게, "너의 정죄-비방은 내게 효력이 없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우리가 영적으로 무장되었다고 확신하면 더 이상 사단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단이 어떤 모양, 어떤 말로 위협을 하고 공격을 한다고 해도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사단의 공격에 방어할 의의 호심경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롬8:31-39입니다. 길지만 제가 아홉 절의 말씀을 모두 선포할 때 마음에 감동이 되시는 대로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인생을 잘 그려주었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주인공이 천국에 이를 때까지 겪는 여러 가지 시험과 유혹 그리고 영적인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에는 중간 지대가 없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합니다. 야고보의 권면은 우리에게 참된 용기를 줍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오늘은 우리가 무장해야 할 의의 호심경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우리가 무장해야 할 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빼앗기지 않고 사는 비결 세 가지를 나누며 말씀을 맺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보혈찬송을 많이 부르십시오!"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사순절에는 더욱 보혈 찬송을 부르기에 좋습니다. 저도 사순절에 보혈찬송을 많이 선곡합니다. 이것은 사순절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영적 무장으로 모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

 

 

 

 

말씀과 기도

엡 6:10-20 / 이동휘 목사

1. 어느 집에서 손님들을 초청하여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주인인 엄마가 6살된 딸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식사기도를 네가 한번 해볼래?” 그러자 딸이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엄마, 난 기도할 줄 모르잖아.” “그냥 엄마가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되지.” 그러자 딸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왜 자꾸 우리 집에 귀찮은 손님들이 많이 올까요?????”

오늘 본문은 예수 믿는 성도들이 강건하여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신갑주”는 싸움에 나아가는 군인이 방어와 공격을 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고 했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싸워야 하는 대상은 영적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싸움’, ‘영적 전쟁’이란 마귀와의 전쟁을 말합니다. 마귀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마귀는 사탄을 말합니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죄를 범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마귀, 사탄의 일입니다. 마귀는 가롯 유다를 유혹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팔아 돈을 챙기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요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한번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이때 시몬 베드로가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마16:17-19)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가 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여 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베드로의 지식이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알게 하시고 고백하게 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때로부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조만간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마16:22)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며 그러한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마16:23)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는 말씀으로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두고 ‘사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에 ‘사탄’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고 계획입니다. 사탄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고,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이르게 하시어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자 하는 것을 막아서는 것은 사탄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 사탄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못하도록 하고 죄를 범하도록 해서 사망에 이르게 하고자 지금도 사람들을 유혹하고 시험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인류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습니다. 이렇게 몹시 배고프실 때, 마귀가 찾아와 예수님을 유혹하며 시험합니다.

(마4:3)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에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렇게 말씀하시며 물리치셨습니다.

(마4:4)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물러가지 아니하고, 예수께서 하나님 말씀으로 시험을 물리치자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하나님을 말씀, 시편91:11-12을 인용하여 시험합니다.

(마4:6)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그러자 예수께서 역시 이번에도 하나님 말씀, 신명기6:16을 인용하여 그 시험을 물리치십니다.

(마4:7)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마4:9)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는 말로 집요하게 유혹하며 시험합니다. 이번에도 예수께서 하나님 말씀, 신명기6:13을 인용하며 이렇게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십니다.

(마4:10)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들게 되었습니다.(마 4:11) 이렇게 예수께서는 마귀의 유혹과 시험을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것은 주야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말씀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신앙생활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악령에 대항하여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이 되시는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마귀를 제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어느 사람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이 들린 아들을 산 아래에 있는 제자들에게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그 사람이 예수께 이렇게 호소합니다.

(막9:18)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아이를 데려오자,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막9:19-20)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셨습니다. “(막9:21)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그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9:22) 라며 간구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막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이 아버지가 이내 간곡하게 소리지릅니다. “(막9:24)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예수께서 그 아이에게 들어간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며 명령하십니다.

(막9:25)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예수님의 이같은 말씀에 그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고 그 아이는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시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막9:28)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막9:29)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마귀는 지금도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유혹하고 시험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며 죄를 범하도록 유혹하고 시험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이며 “악의 영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영적 전쟁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혈과 육”, 다시 말해 우리의 연약한 본성이 아니라 영적 세력, 마귀의 세력을 싸워 이겨야합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삶을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 “하나님 말씀과 기도”로 영적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악한 영적 세력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은 자들에게는 위협이나 해가 될 수 없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계속적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외에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악한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습니다.(벧전 5:8) 예수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기도로 무장하지 아니하면 마귀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항상 기도로 무장하여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전쟁은 취미가 아닙니다. 전쟁은 예술이 아닙니다. 전쟁은 철학이 아닙니다. 전쟁은 논리가 아닙니다. 전쟁은 현실이며, 죽이던지 죽던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전쟁은 바로 실존의 문제입니다. 사탄의 세력을 정복하고 승리의 생활을 위해서는 기도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 믿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 생활에 패배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늘에 계신 전지전능하신 우리 아버지에게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아버지로 믿는 사람은 기도의 능력을 믿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은 사실 무신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사실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하기를 쉬는 것을 하나님 앞에 죄라고 고백했습니다.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그래서 사도 바울은 기도하기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할 것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2:18-19) (18)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19)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예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막1:35)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눅6:12)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그리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고 계십니다.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범사에 쉬지 말고 기도하여 모든 삶에서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네게브 사막 그랄 땅으로 옮겨 살고자 했습니다. 당시 그랄 왕은 아비멜렉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살고자하는데, 그 땅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남의 아내라고 예쁘다면 남편을 죽이고 빼앗아 가기를 서슴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러자 아비멜렉 왕은 서슴없이 사라를 데려갔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셔서 경고하십니다.

(창20:3)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아비멜렉이 아직 사라에게 손대지 아니한 상태인지라,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창20:4-5)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20:6-7)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아비멜렉이 아침 일찍 일어나 두려운 마음으로 아브라함을 불러 사라를 돌려주며, 아브라함이 좋은 대로 아무데나 거주하라고 허락합니다. 그리고 사라에게는 은 천개를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선지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시어 출산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라 문제로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창20:17-18)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이렇게 아브라함이 이방인,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일지라도 그를 위해 기도할 때, 응답하셔서 닫힌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왕상8:33-39) (33)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34)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35)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36)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37)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38)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더 나아가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아니 이방인이 성전을 향해 기도하거든 응답해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왕상8:41-43) (41)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42)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43)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이처럼 이방인이라도 소문을 듣고 성전을 향해 손을 들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성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 56: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막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

B.C.70년경, 이스라엘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왕을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왕하20:1)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왕하20:2-3)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이 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돌아가던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 이렇게 왕에게 말합니다.

(왕하20:5-6)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자신을 낫게 하시고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징표를 구합니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는 “(왕하20:9)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고 구하는 징표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왕하20:10)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며 태양이 십도 뒤로 물러가는 표징을 구합니다. 이를 위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해가 10도 뒤로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왕하20:11)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히스기야가 병들었을 때,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하셨던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와 눈물을 보시고 그 뜻을 돌이켜 병을 치료해주셨습니다. 거기다 그 치료된 징표를 구하자 그 징표까지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한 사람 히스기야가 간구하는 징표로 태양을 뒤로 10도 물러가게 하시기까지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시켜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셨던 하나님, 이삭의 기도를 들으셨던 하나님, 야곱의 기도를 들으셨던 하나님, 그리고 히스기야의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의 기도도 들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 하늘에서 3년 6개월 동안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기도하자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성경 야고보서는 엘리야도 별스런 사람이 아니고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해설했습니다.

(약5:17-18)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우리는 비록 약한 인생이지만 기도로써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을 때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런 놀라운 기도의 위력을 알면서도 실제로 우리는 기도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고 있습니다. 기도는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마음 먹는다고 그대로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본문에 있는 대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하며, 깨어 기도하며 힘써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기도의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라는 말씀은 기도는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 패배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라도 기도는 자동적으로 안됩니다. 장로라도 기도는 자동적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기도는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기도는 전쟁입니다. 기도는 영적 전쟁을 치르기 위한 공격무기입니다. 전쟁은 취미가 아닙니다. 전쟁은 생명을 내어 거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기도도 생명을 내걸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이지만 그 교통을 위해서는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보통 각고와 결심을 갖지 않고는 기도하기 어렵습니다. 성도 여러분, 항상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모든 염려에서 해방되며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빌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예수께서 “(마7:7-8)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 외에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 없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이며, 기도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막론하고 말씀이 없는 기도나 기도 없는 말씀은 신앙생활에서 온전하게 승리할 수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성도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튼튼하게 받쳐주는 두 기둥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함께 해야 죄와 세상과 사탄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항상 충만한 신앙생활로 성도 여러분의 삶에 평강과 능력이 충만하시고, 범사에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 6:10~20 / 김광일 목사

강원도 태백에 예수원이라는 영성공동체를 세운 아처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는 1957년에 한국에 들어와 45년 동안 기독교 영성운동을 이끌었던 분인데 대천덕 신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성령의 은총을 강조하면서도 성경을 바탕으로 경제 정의실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던 말씀과 실천이 균형을 이루는 목회자였습니다. 그의 저서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에 나오는 ‘사탄의 지령’이라는 글입니다. 사탄이 한국교회를 장악하기 위한 전략을 담은 지령입니다.

사탄의 첫 번째 전략은 ‘박해’입니다. 교회와 신자들을 권력을 동원해 핍박하는 작전입니다. 그런데 그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성도들은 핍박과 고난이 심할수록 오히려 신앙이 더 강해지고 교회는 더욱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작전은 ‘면역화’입니다. 사탄은 한국교회와 성도들로 하여금 ‘광신적이다, 지나치게 열성적이다, 너무 요란하다, 품위가 없다, 정통적이지 않다’의 딱지를 붙여 더 이상 깊은 신앙 상태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작전입니다. 이 작전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을 적당히 하는 잘못된 신앙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세 번째 전략은 ‘타락화’입니다. 사람 중심, 돈 중심, 조직과 행정 중심, 개교회 중심, 대형교회 중심, 성공 중심, 최고가 되고자 하는 목회자와 성도, 큰 단체가 되고 싶어 하는 선교 단체 등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물량과 최고를 지향하는 성공 중심으로 이끌어갔습니다. 이 작전이 한국 교회에 잘 먹혀들었습니다. 네 번째 전략은 성도들로 하여금 사탄을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문화를 통해 사탄을 우습고, 귀여운 모습으로 캐릭터화 시켰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사탄의 실체에 대해 두려움과 거부감이 사라지게 했습니다. 사탄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탄의 이 전략 또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만들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이간질하는 자입니다. 물질, 질병, 죽음에 대한 두려움, 명예, 쾌락, 위기의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고자 합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이러한 사탄과의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교훈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세상적인 싸움이 아니라 어둠의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영적 싸움이라고 바울은 설명합니다. 싸움에 앞서 강건해야 되는데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강건할 수 없기에 주 안에서 강건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 거할 때 강건할 수 있으며 주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을 때 강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명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고는 영적 싸움 곧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것은 온몸을 빈틈없이 방어하라는 의미입니다. 마귀는 항상 넘어뜨리려고 하는 자들의 약점을 파고듭니다. 그러기에 약점을 보이면 안 됩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야 할 이유는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강조합니다. 마지막 승리는 끝까지 서있는 군사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는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방어하는 무기를 지니라

레기온(Legion)은 세계를 정복한 막강한 로마 군대를 지칭합니다. 레기온의 군대는 자원입대한 이들로 구성되어 군단 단위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 병사들은 15만명 정도였는데 강한 훈련을 받고 철저하게 전신갑주로 무장하였습니다. 물론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많은 숫자의 보충부대도 있었지만 로마의 중요한 전투는 소수정예의 레기온 병사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레기온 군단을 보면서 ‘어떻게 전쟁마다 승리해서 세계를 호령하게 되었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결국 싸움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레기온 군단은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자원한 군사들로 이루어졌고, 엄격한 훈련과 철저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 바로 레기온의 힘이었습니다. 영적 싸움도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용사가 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레기온의 군대처럼 엄격한 영적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철저하게 무장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서 17절입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여기에 나오는 전신갑주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방어하는 도구들입니다. 영적 싸움에는 인간적인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합니다. 약한 인간이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할 때 어떤 위험에서도 보호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방어하는 무기는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다섯 가지입니다. 성도는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허리는 몸의 중심입니다. 중심이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집니다. 헛된 욕망에 이끌리지 않는 공평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공익을 훼손하지 않아야 마귀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평화가 창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악한 자의 불화살을 막아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감격 속에 있을 때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가지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공격하는 무기를 가지라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Oliver Cromwell)이 청교도 혁명을 이끌었습니다. 왕을 따르는 왕당파와 맞서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청교도 가정에서 철저하게 신앙 훈련을 받았던 크롬웰이 청교도 혁명의 전쟁에서 겪은 일화입니다. 그가 싸움터에서 총탄을 가슴에 맞고 낙마하게 되었습니다. 말에서 떨어지면서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멀쩡한 것입니다. 이상하다 싶어 살펴보니 총알이 가슴에 품었던 성경책에 박혀 있었습니다. 성경책을 꺼내어 총알이 멈춘 곳을 보았습니다. 전도서 12장 1절이었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크롬웰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려 주셨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전쟁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슴에 품은 크롬웰이야말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살았던 자가 아니겠습니까?

본문 17절입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성령의 검, 말씀의 검은 전신 갑주의 유일한 공격무기입니다. 마귀가 공격해오는데 방어만 하면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공격하며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방어한 뒤, 손에 들려있는 성령의 말씀의 검을 가지고 마귀를 이겨야 합니다. 바울은 말씀의 검을 글라디우스의 검으로 연상하였습니다. 로마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장군이 에스파냐 원정을 떠났을 때 원주민들은 로마군대의 긴 칼을 피하면서 짧은 칼로 대항하며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도입한 칼이 양쪽 날이 선 글라디우스(Gladius) 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글라디우스의 검처럼 세상을 정복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방어를 잘 해도 적을 꺾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시 공격해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언제나 마귀의 공격을 유발시키며 끈질긴 공격에 마침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최선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말씀의 검으로 영적 싸움에서 이기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기도하는 무기를 행하라

피터 와그너 (C. Peter Wagner)는 풀러 신학대학의 교회성장학 주임교수였습니다. 오랫동안 편두통으로 고생을 했는데 검사를 해도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편두통이 귀신의 역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는 기도를 해야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부인을 의식해서 마귀를 쫓는 기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교수가 무슨 그런 짓을 하느냐’ 비웃을까 싶어 부인이 듣는데서 귀신을 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부인이 듣지 못하는 샤워장에서 샤워기를 틀어 물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한 소리로 “이 편두통의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편두통의 원수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고 명령했는데 편두통이 마치 물로서 비눗물을 씻듯이 싹 나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와그너 박사는 ‘여태까지 나에게 편두통을 앓게 한 것은 귀신이 붙어서 짓눌러서 아프게 하였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다음에도 가끔 편두통이 생기면 전처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고 명령하면 신기하게 또 물러가고, 물러가고 하더니 완전히 편두통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피터 와그너는 이 사건을 계기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대적하고 쫓아내는 기도의 무기를 통하여 영적 전쟁의 승리를 계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영적 전쟁에서 기도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전투는 혼자 수행할 수 없습니다. 서로 연합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영적 무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접수하여 연합 작전을 펼 수 있도록 만들고 후방의 지원을 요청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력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말은 부담이 될 것입니다. 전신갑주를 입고 활동할 수 없는 힘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생명력을 공급 받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힘을 키워야 합니다. 기도가 없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었다 해도 영적싸움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 서식하는 수십만 마리의 야생오리들은 겨울철이 되면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이동합니다. 오리들이 쉬어가는 곳은 나이아가라 강(Niagara River)입니다. 오리들은 호수처럼 평온한 강에서 재잘거리기도 하고, 먹이를 찾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평온함 속에는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강 하류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데 그곳의 급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셉니다. 폭포는 거대한 입을 벌린 채 오리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오리들이 그것을 간파하고 날아오르려 할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급류는 오리의 비상(飛翔)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결국 수많은 오리는 폭포에 휩쓸려 50여m의 낭떠러지로 추락해버립니다. 방심한 오리들은 어김없이 거센 폭포의 제물이 됩니다. 사탄의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평화롭고 한가한 기회를 노립니다.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사역을 훼방하고 성도들을 대적하고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하여 반드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The whole armour of God)는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무장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제도로 갖추지 않고 방치하여 사단에게 빼앗기고 무장해제 당한 것은 아닙니까? 그 결과 끊임없이 사단의 공격에 시달리고 많은 것들을 빼앗겨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에게 내어준 것들을 되찾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영적 전쟁에 승리해야 모든 일에 승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능력으로는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영적 싸움의 승리를 위해 주 안에서 영적으로 강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부디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으로 악한 마귀를 대적하여 이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훈련을 쌓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날마다 악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을 능히 이길 힘을 구하라

엡 6:10-13 / 이규현 목사

힘은 매력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기 원합니다. 힘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힘의 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든 사업을 하든 파워게임(power game)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안으로 들어가면, 힘겨루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힘이 없으면 무너지고 고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도 힘겨루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을 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힘과 우리가 말하는 힘은 다르지만, 우리는 힘겨루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귀보다 약해지면 죄 짓고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에게 끌려 다니고 불행해집니다.

우리가 가진 힘이 우리 앞에 일어난 상황보다 크면, 상황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상황과 사건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기른 사람들은 문제를 쉽게 뛰어넘습니다. 물론 고난이 있지만, 고난을 쉽게 지나갑니다.

 

신자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신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무엇입니까? 영적 파워입니다.

하나님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심으로 세상 가운데서 영광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능력을 드러내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가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게 하는 통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신자가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세상 사람들과 구별됩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어야 합니다.

 

주말이 되면, 세상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나갑니다. 놀러 다니고 술 마시러 다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들로 산으로 가는 것과 교회로 가는 것 이상의 구별되는 것이 없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취미활동을 하고, 우리는 신앙적인 활동을 하는 것일 뿐, 차이점이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월요일에 직장에서 만나면,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이 똑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 마시고 노느라 얼굴이 까칠하고, 우리는 철야기도 하여 얼굴이 까칠합니다.

둘 다 활동하는 것일 뿐, 별 차이가 없다면,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믿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도 매력적인 것이 많습니다. 즐겁게 해주는 것이 많습니다. 파워도 많습니다.

돈은 대단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에서 부활을 경험합니다. 돈을 가지면 전지전능한 신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집에서 모이고, 우리는 교회에서 모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권세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돈을 믿는 만큼의 믿음도 갖지 않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가게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철야기도에도 계속해서 참석하다 보면, 이것이 일종의 종교적 활동이 됩니다. 찬양하고 말씀 듣고 10분 정도 기도하다가 돌아가도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다가 세상의 힘이 가진 매력에 빠지면, “하나님, 저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라고 신세한탄하게 됩니다. 믿음 없는 말을 합니다.

 

모세에게서 하늘의 능력이 흘러나오자, 바로가 모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모세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나올 때, 애굽의 최고 권자(權者)가 모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세상이 무릎 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대충 믿으면, 오히려 우리가 세상에 무릎 꿇습니다. 교회에서는 믿음 있는 척 행동하지만, 세상에서는 세상에 무릎 꿇습니다. 돈의 힘 앞에 무릎 꿇습니다. 가진 자 앞에 무릎 꿇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머리를 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는 하늘의 영권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라고 고백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6장 10절에 보면, 바울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힘’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능력’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강건’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비슷한 단어입니다. 짧은 구절 안에 세 단어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는 능력은 다이너마이트와 같습니다. 강력한 힘입니다.

 

본문 에베소서 6장 11절 이후에는 우리가 왜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강하고, 다양한 악의 실체가 포진되어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4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신자가 능력을 가지면,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없으면, 세상에서 질 수밖에 없습니다.

삼손이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 블레셋에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머리는 잘리고, 눈은 뽑히고, 줄에 묶여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능력을 잃으면, 세상에서 재주를 부리며 살게 됩니다. 비참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것을 압니다.

세상은 우리를 다룰 줄 압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지만,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세상은 우리를 가지고 놉니다.

 

신자가 능력을 잃어버리면, 대적이 구름떼처럼 달려듭니다. 신자를 대적하는 무리가 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악의 무리들은 이 세상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사탄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사탄이 왜 공격합니까? 우리가 만만해보이기 때문입니다.

 

강한 것이 무엇입니까? 강건, 능력, 힘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성공과 강한 것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강한 것과 성공은 관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적인 힘을 가지면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과 영적으로 강한 것은 상관없습니다.

 

세상의 힘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해보입니다. 그러나 별 것 아닙니다. 오래가지 않습니다.

돈이든 권세든 명예든 인기든 한때 주목받습니다. 그러나 금방 없어집니다. 10년 동안 권세를 누리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적인 권력이나 돈의 힘은 모래성과 같습니다.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면, 힘없이 사라져버립니다.

성공했을 때에 영적 힘을 오히려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풍요가 우리를 오히려 쇠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힘을 가지면, 영적으로 왜 약해집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무서운 것입니다.

세상적 성공은 하나님의 능력과 자신의 능력을 혼돈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을 때,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강한 힘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서 힘을 다 빼십니다. 그 후에 그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공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많이 부어주시면, 변질되지 않을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많이 부어주시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돈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많이 부어주셔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관계에서 변함없이 믿음을 지키며 순수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 친구 목사는 외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재산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갑자기 돈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되니 그 후로 목회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100만원 관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동산과 부동산이 있으니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회에 힘이 빠졌습니다. 돈의 힘이 작용하니 목회에 힘이 빠져버렸습니다.

 

목회자는 아버지가 가난해야 목회를 잘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직업을 가져도, 목회자가 힘듭니다. 아내의 수입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의 아내가 직업을 갖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세상을 의지하는 것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내일 아침에 먹을 것이 있으면, 내일 아침까지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유전 탐사팀이 조사하다가 교회 밑에 유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교회가 갑자기 부자가 되었습니다. 돈방석에 앉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교회가 야단났습니다. 회의를 하면, 회의 주제가 전도가 아니었습니다. 유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회의했습니다. 교회를 다른 데로 옮기고, 유전을 팔아 나눠가지자고 했습니다. 유전을 발견한 이후, 교회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교회는 유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다른 것이 붙어서 문제가 됩니다.

교회에 매장된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성령을 받으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도 있어야 하고, 저것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본문 에베소서 6장 10절에 보면,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에 사로잡히고, 성령의 능력이 덧입히면, 아무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뒤집고도 남는 능력이 매장되어있습니다.

 

교회와 신자가 세상적으로 힘을 가질 때, 영적으로 약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 재산이 많으면, 굉장히 위험해집니다. 재산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호주에서 목회하면서 교회가 세상적으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에 오히려 능력이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교회를 잘 지어놓으면, 형식적인 매너리즘에 빠진 신자들이 자리를 채우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힘은 세상의 힘과 다릅니다. 세상의 힘은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영적 힘은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신자는 딴 것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늘어놓을 자랑을 교회에서 늘어놓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자랑을 교회에서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자랑하려면,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고후 10:17).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랑하려면 약한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영적 힘, 영적 권세가 없으니 엉뚱한 짓을 합니다. 엉뚱한 것을 자랑합니다. 세상의 것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베드로는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향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이름만을 자랑하고 믿는 삶이 중요합니다.

 

세상의 것을 가지고 있으면, 하늘의 능력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런 속성이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당장 힘을 휘두르기 원합니다.

그러나 불순물이 끼어들면 하늘의 능력은 우리에게서 사라져버립니다. 아무것도 없고 오직 예수 이름의 권세만 의지할 때,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세상의 힘과 영적 세계의 힘은 전혀 다릅니다. 이것을 구분할 줄 모르면, 신앙은 위기를 맞습니다.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영적 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힘을 자랑하지 말고, 영적 힘을 얻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만약 영적 힘을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의 힘에 휘둘리고,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힘과 하늘의 힘을 동시에 가지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힘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그것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위탁하십시오. 세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위탁하십시오.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 힘을 획득하면, 세상을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강해질 수 있을까요?

첫째, 구별되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구별이 힘이요, 거룩이 힘입니다. 다니엘은 거룩을 지켰습니다. 그것이 다니엘의 힘이었습니다. 다니엘이 거룩을 지켰을 때, 위로부터 힘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정권이 세 번 바뀌었는데도 다니엘은 권력을 가질 수 있었고, 그 권력으로 이방 땅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사자 굴 속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가운데 사로잡혀있었습니다.

그 능력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다니엘은 승부를 걸었습니다. 다니엘은 세속 도시의 한가운데서, 화려함의 극치인 왕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지켰습니다. 다니엘은 변절하지 않고, 거룩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다니엘에게 하늘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삼손은 거룩을 훼손했습니다. 삼손이 거룩을 잃어버리자, 그에게서 힘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머리카락이 잘려서 힘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거룩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힘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기준은 거룩입니다. 다니엘에게서 나타난 비밀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다니엘이 세속 도시 바벨론의 뜨거운 문화의 한가운데서 거룩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기도 때문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빗발치는 세상의 문화를 거스르며 자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왜 눈을 감습니까? 세상을 응시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응시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니엘은 왜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었습니까? 다니엘은 그 시대의 화려한 문명을 응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을 응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기도가 다니엘로 하여금 거룩을 지킬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자리가 거룩을 지키는 자리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의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거룩을 생명처럼 붙들었기 때문에 왕의 음식을 거부할 수 있었고, 세속화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정책은 유다에서 붙잡혀온 포로들에게서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것이 바벨론 정책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의 이름도 바꾸고, 모든 것을 바벨론화 시키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만일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바벨론 왕실에서 주는 향응에 도취되었다면, 그들은 추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현대판 바벨론 제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속 사회의 흡수력이 강력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목회가 어렵습니다. 세속화의 물결이 범람합니다. 어떤 것으로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목사도 떠내려갈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세속 국가의 포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벨론 포로 시대처럼 영적 포로기를 살아가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이 땅의 문명의 달콤함과 화려함에 무릎 꿇고 생포되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능력이 핵심입니다.

 

경건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닮는 삶입니다. 세상을 닮아가면, 경건을 잃어버립니다. 경건을 잃어버리면, 능력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신자가 아닙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을 통해 하늘의 능력이 흘러나올 수 없습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별된 삶을 포기하면, 세상의 포로가 됩니다. 세상의 아들딸이 됩니다. 어둠의 자식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삼손처럼 눈이 뽑히고 비참하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자칫하면 눈이 뽑히고 손과 발이 묶여 조롱당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정체성을 공격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빼앗으려고 발버둥 칩니다. 완전히 세상 속에 흡수시키려고 합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술을 마시라고 합니다. 한 잔을 받아 마시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우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 받아 취직했습니다. 그런데 첫 날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라고 합니다. 그가 신자인 것을 알지만,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지우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을 받아 마시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군대에 가면, 별 이상한 짓을 다 시킵니다. 저도 경험했습니다. 제가 신학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게 담배를 피우라고 했습니다. 담배를 입에 물렸습니다.

정체성을 지우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면 그들에게 끌려 다니게 됩니다. 정체성을 지우려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을 지워버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을 이겨내면, 아주 좋습니다.

제가 군인교회에서 설교하는 날에는, 제가 졸병이었을 때에도 아무도 제게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왕고참이 그렇게 하니 아무도 저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강하게 무장하지 않고, 믿지 않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 영적 기운이 빠져버립니다. 조금 남아있던 영적 힘도 빠져버립니다.

영적 기운이 빠져버리면, 찬송도 제대로 부를 수 없게 됩니다. 예배드리는 1시간이 길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버티기 어렵습니다. 능력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거룩하면 강해집니다. 거룩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오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경건하지 않은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영적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새나갑니다.

요즘은 더욱 그렇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것에 우리의 시선을 빼앗기면, 영적 에너지가 쉽게 빠집니다.

 

우리는 강력한 세속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이 세상의 문화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버립니다. 좋고 화려한 것을 계속 보면,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렇습니다.

좋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그 앞에 계속 있으면,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러므로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물질적인 것들로 인해 영적인 것이 침해를 받습니다. 물질적인 것들은 영적으로 은혜가 흐르지 못하게 막습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아 기도의 맥이 끊어지면, 기도의 불을 다시 붙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태로 세상에서 살다 보면, 세속적인 인간이 되어버립니다. 문화와 문명의 힘이 매우 강력합니다. 우리는 빨리 타락할 수 있고, 빨리 세속화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능력이 임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을 지킬 수 있습니다.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이 강함으로 인해 영적으로 약해진 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의도적으로라도 육의 힘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키고 영적으로 강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가끔 금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며 계속해서 먹다 보면, 영적으로 혼미해집니다. 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육을 죽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요즘 TV를 켜면 온통 먹는 이야기뿐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문화입니다. 멋진 레스토랑이 즐비합니다.

우리의 육은 ‘저렇게 맛있는 것을 왜 먹지 않느냐’고 소리칩니다. 그런 육체의 소리를 누르고 우리 자신을 지켜내면서 영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힘쓰지 않으면 우리의 영이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불필요한 것들을 많이 붙들고 살아갑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경건한 삶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경건의 삶은 여러 가지를 따르지 않고 하나를 따릅니다.

경건의 삶은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 때, 하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예수 이름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갈 때, 예수 이름의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예수 이름의 권세는 이 세상을 뒤집고도 남을 능력이 있습니다.

 

신자의 강함은 내적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6절에 보면,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속사람’은 내면, 영혼을 가리킵니다.

겉사람과 속사람이 있다는 것을 바울은 잘 알았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외적으로 보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부였습니다. 그의 성격도 강해보였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강한 제자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면이 굉장히 약했습니다. 그래서 풍랑을 무서워하여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자 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강한 것과 강한 척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척하는 신앙은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척하는 신앙은 금방 들통 납니다.

강한 신자로서 실력을 닦지 않으면, 허세가 금방 드러납니다. 한번 흔들어보면, 실체가 금방 나옵니다.

 

우리의 실력이 드러날 기회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우리의 겉모습에서 우리의 실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을 다듬어야 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속사람입니다.

우리의 겉사람이 가지고 있는 허영, 허풍, 허세 등을 제거해야 합니다.

 

외적으로는 대단해보여도 내적으로 약하면, 무너집니다. 겉을 꾸미는 데 시간을 보내지 마세요. 겉모양에 속지 마세요.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직분, 사회적 신분 등에 속지 마세요. 그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그런 것 때문에 오히려 내적으로 부실해질 수 있습니다.

 

겉보다 안이 중요합니다. 자동차도 속이 중요합니다. 중고차를 살 때, 차의 속을 봅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합니다. 직분은 하드웨어이고, 신앙심은 소프트웨어입니다.

기도회에 참여하는 것은 하드웨어입니다. 깊이 있게 기도해야 소프트웨어가 강화됩니다.

 

외형이 아무리 크다 해도, 내적 용량이 작으면 멈추어버립니다.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외형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속이 차지 않을수록 겉멋이 늡니다.

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밤잠을 설칩니까? 속이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면이 강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도록 일했는데, 사람들이 칭찬해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시험에 드는 사람은 아직 내면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노심초사하는 사람, 누가 무시할까봐 늘 긴장하는 사람은 속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소리치는 남편은 속이 약한 사람입니다. 부인이 겁나기 때문에 오히려 크게 소리치는 것입니다. 강한 사람은 소리치지 않습니다.

운전하는데 뒤에서 경적을 울리고, 앞에서 끼어든다고 흥분하는 사람은 속이 차지 않은 사람입니다. 운전하다 보면, 경적을 울릴 수도 있고, 끼어들 수도 있습니다.

 

돈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얼굴색이 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음이 아직 어리기 때문입니다. 속사람이 강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속사람이 강화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유지하고 누릴 수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파워입니다.

 

우물을 팔 때에 석 자를 파면 촉촉한 흙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섯 자를 파면, 탁한 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계속 파서 아홉 자를 파면, 맑은 물을 길어낼 수 있습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 깊숙이 들어가야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말씀이 영혼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내면이 진리로 강화됩니다.

누군가 한 마디 한 것 때문에 영혼이 흔들린다면, 아직 말씀이 영혼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의 말이 진리보다 강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힘듭니다.

 

우리는 우리의 속사람을 강화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강함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능력의 출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본문 에베소서 6장 10절에 보면,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6절에 보면,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능력의 에이전시(agency)이십니다. 능력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동원한다해도 우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추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날 대단하게 쓰임 받았다 할지라도, 성령께서 계속적으로 부어주시는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을 끊임없이 공급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주님은 승리자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승리하도록 이끌어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주와 하나 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능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노력하면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훈련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일정한 과정을 거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으려면, 우리는 우리의 힘을 빼야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라고 말했습니다. 약할 때에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약해야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가 길어지는 이유는 자신이 약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짧아지는 이유는 자신이 강한 줄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기도의 양과 질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 되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지 않아도, 나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겉사람은 낡아지고,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시기 바랍니다.

 

겉사람은 아무리 가꾸어도 소용없습니다. 겉만 신경 쓰는 사람은 후회할 날이 올 것입니다. 속사람을 가꾸고 강화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구하셔서 속사람을 단련시키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내면이 강화되면, 외부의 상황과 힘에 영향을 받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강함을 얻지 못하면, 삶이 새어나갑니다. 에너지 방출이 심합니다. 에너지가 방전되면,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어떤 힘에 의해 떠밀려 다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이 허무해집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힘이 없어서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외부의 환경이 얼마나 좋지 않습니까. 미세먼지가 대단히 심각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혼탁한 것들은 미세먼지와 같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을 죽입니다. 우리의 영혼 깊숙이 파고들어서 우리를 무력화시키려고 합니다.

 

세상의 한가운데서 우리의 속사람이 날마다 강화되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성령께 전적으로 의존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강해지시기 바랍니다.

영적 힘을 확보하면,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앞에 무릎 꿇게 할 수 있습니다. 현대판 바벨론의 한가운데서 포로로 살겠습니까. 세상을 뒤집어놓으시겠습니까.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능력이 회복된 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했습니다.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를 일으켰습니다.

현대판 바벨론의 한가운데서 신사도행전을 써나가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을 통해 신적 능력이 흘러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파워게임에서 이기지 못하면, 눈이 뽑힙니다. 포로가 됩니다. 하늘의 능력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거룩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생명처럼 지키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되 죽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힘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이겨내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하늘의 능력을 덧입지 않으면, 세상은 우리에게 거침없이 밀어닥칠 것입니다. 우리를 무릎 꿇게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능력이 회복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가운데서 구별되는 백성으로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마음껏 부르짖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령으로 충만하게 무장되어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이 세상을 무력화시키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면역력을 높이자

엡 6:10-20 / 김상수 목사

인류 역사상 건강에 관심 없는 시대는 없었지만, 지금 이 시대는 각종 환경오염 등으로 예전에 없는 별의 별 독한 바이러스들, 슈퍼 박테리아, 미세먼지, 폭염과 혹한 등이 생겨나면서 더욱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사실 몸이 아픈 후에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것이다. 가장 흔한 감기라는 것도 일차적으로는 감기 바이러스가 원인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이전에 우리 몸 안에 면역력이 약해서 걸리는 것이다. 감기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몸속에 생긴 암세포나 각종 병균에 대해서도 다 마찬가지다. 바이러스에 맞서서 싸울 힘이 약해지면 결국 그것들에게 점령당한다. 그러면 몸의 균형이 깨지게 되고, 발병하는 것이다. 매일 운동을 하거나, 음식을 조절하는 것도 사실은 면역력을 높이는 일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가 단지 육체의 면역력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영(spirit)과 혼(soul)과 육(body)으로 구성되어 있다(살전5:23).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건강에 대해 정의할 때, 단지 육체적인 질병만을 말하지 않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부분 심지어 사회적인 부분까지 함께 강조한다.

"건강이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온전히 좋은(역동적인)상태다. 그리고 단지 질병이나 병약함이 없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Health is a dynamic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spiritu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 (세계보건기구(WHO)의 “건강”정의)

 

사람은 누구나 육체와 정신과 영혼,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한 곳이 무너지면, 자동적으로 나머지 부분은 그것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게 되고, 영적으로도 침체되기 쉽다.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몸에 이상이 오고 영적으로 침체되기 쉽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영적으로 타락했을 때, 그 마음과 몸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타락 후에 죄의 결과로 사람에게 온갖 종류의 질병과 죽음과 삶의 심각한 고통들이 찾아왔다.

그렇기에 육체적인 면역력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영적인 면역력(영적인 기초체력, 맷집)을 키우는 것이다. 그래야 마귀 사단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누가 뭐라고 말해도 쉽게 상처받지 않는다. 반대로 영적인 맷집이 약한 사람은 누가 한 마디만 해도 쉽게 상처받고,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그 영혼이 콜록거린다. 심하면 깊은 영적인 침체에 빠지고, 자리에 드러눕기까지 한다. 이처럼 영혼육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심방이나 전도를 하다보면, “병이 다 나으면 신앙생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야 병도 쉽게 낫는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것은 단지 우리의 영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우리의 모든 삶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전(全)인격적인 구원사역’이라고 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we are healed)”(사53:5)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내 안에 영적인 면역력을 높일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성도들의 건강한 삶(well-being)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영적인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우리의 속사람이 강해진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는 방법을 에베소서 6장 10-11절에서 기록하고 있다.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6:10-11)

이 말씀을 보면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했다. “그 힘의 능력”이란 바로 뒤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말한다. 그러면 성령의 능력으로 뭐가 강건해진다는 말인가? 바로 우리의 속사람이다. 우리의 속사람이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을 때, 강건해지고, 그로인해서 마귀가 어떤 궤계를 부리면서 덤벼들어도 능히 대적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다. 성령충만 받아야 속사람이 강해지고, 속사람이 강해지면 영적인 면역력도 높아지고, 이렇게 되면 결국 마음과 육체도 좋아진다. 이 시간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성령의 전신갑주, 성령충만 받기를 원한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어떻게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을 수 있는가? 물론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받는 것이지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들이 할 것이 있다. 오늘 본문 14절 이하의 말씀이 바로 우리들이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씀한다. 여기에 기록된 성령의 전신갑주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상 공통적인 것들이 발견된다. 14-18절 말씀을 다함께 읽자.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말씀)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믿음) 15 평안의 복음(말씀)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믿음)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말씀)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말씀) 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기도)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기도)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기도)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기도)”(엡 6:14-18)

이 말씀을 종합하면, 표현은 다르지만 그 의미는 중요한 몇 가지 핵심으로 집약된다. 그것은 바로 말씀과 기도와 믿음이다. 이것들이 바로 성령충만을 받는 방법인 동시에 영적인 면역력과 맷집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생각해보면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야 말로 돈없이도 영혼육의 면역력을 높이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우리들이 날마다 운동하고, 잘 먹어야 건강해지듯이 영적으로도 동일하다. 날마다 말씀의 양식을 먹어야 하고, 날마다 부르짖어 간구함으로 신선한 영혼의 산소를 공급받아야 한다. 여기에는 찬송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미국 MD앤더슨암센터 종신교수였던 김의신박사는 말하기를 ‘미국의 유수한 대학병원들의 연구결과 누군가로부터 중보기도를 받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료효과가 월등하게 높고, 찬송을 부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암에 대한 면역력이 최대 2000배까지 높이 나왔다’고 했다. 여기에 믿음의 방패로 부정적인 불화살들(말, 비난, 시비, 부정적인 생각 등)을 막으면 된다. 이렇게 하면 속사람이 강해지고, 그에 따라 몸과 마음도 함께 좋아지고, 각종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선물로 주어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라고 약속하셨다. 믿음으로 구하면 주신다는 약속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성령충만 받아서 영적인 면역력과 맷집이 강한 성도가 되자. 이를위해 성경을 늘 가까이 하고, 기도와 찬송이 늘 입에 있게 하자. 믿음의 방패로 원수의 불화살을 막아내자. 주님이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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