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간 여자의 유산
민 36:1-13
1 요셉 자손의 종족 중 므낫세의 손자 마길의 아들 길르앗 자손 종족들의 수령들이 나아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지휘관들 앞에 말하여
2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 주에게 명령하사 이스라엘 자손에게 제비 뽑아 그 기업의 땅을 주게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우리 주에게 명령하사 우리 형제 슬로브핫의 기업을 그의 딸들에게 주게 하셨은즉
3 그들이 만일 이스라엘 자손의 다른 지파들의 남자들의 아내가 되면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의 기업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들이 속할 그 지파의 기업에 첨가되리니 그러면 우리가 제비 뽑은 기업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요
4 이스라엘 자손의 희년을 당하여 그 기업이 그가 속한 지파에 첨가될 것이라 그런즉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 지파의 기업에서 아주 삭감되리이다
5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요셉 자손 지파의 말이 옳도다
6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종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7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
8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중 그 기업을 이은 딸들은 모두 자기 조상 지파의 종족되는 사람의 아내가 될 것이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조상의 기업을 보전하게 되어
9 그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게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 지파가 각각 자기 기업을 지키리라
10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11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들의 숙부의 아들들의 아내가 되니라
12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종족 사람의 아내가 되었으므로 그들의 종족 지파에 그들의 기업이 남아 있었더라
13 이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규례니라
민 36:1-13 / [결혼한 여자가 물려받을 재산] 요셉의 후손 중 므낫세의 손자이며 마길의 아들인 길르앗 씨족의 각 집안 어른들이 모세와 이스라엘 각 씨족의 우두머리들을 찾아와 2) 이렇게 여쭈었다. `여호와께서는 어르신에게 제비를 뽑아 우리 이스라엘 형제들이 차지할 땅을 나누어 주라고 명하셨지요. 그리고 또 우리 형제 슬로브핫의 몫으로 돌아갈 땅을 그의 딸들에게 넘겨 주라고 말씀하신 줄도 압니다. 3) 그런데 만일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른 지파 사람에게 시집을 가면 그들이 물려받은 땅은 다른 지파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제비 뽑아 우리 지파의 몫으로 돌아왔던 땅이 줄어들 것입니다. 4) 모든 땅이나 소유가 본주인에게 모두 다시 돌아가는 희년이 되면 슬로브핫의 딸들이 소유하고 있던 땅도 시집 간 그 지파에게 딸려가 우리 지파의 땅이 그만큼 줄어드는 셈입니다.' 5) 그러자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모세가 이렇게 지시를 하였다. `요셉의 후손인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지금 하는 말이 옳다. 6) 슬로브핫의 딸들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도 되지만 다만 자기 지파 사람들에게만 가야 한다. 7) 그렇게 한다면 제비를 뽑아 대물림할 몫으로 받은 땅이 이 지파에서 다른 지파로 딸려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누구든지 유산으로 받은 땅을 옮기지 못한다. 8)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 자기 지파에게 몫으로 돌아온 땅을 물려받은 여자는 반드시 자기 지파 사람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 이스라엘 각 지파 사람들은 자기 지파의 땅을 반드시 자기 지파 안에서 대물림하도록 하여라. 9) 이렇게 하여 몫으로 각각 나누어 받은 땅이 어떤 지파에서 다른 지파로 딸려 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각 지파는 자기들 몫으로 돌아온 땅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10) 슬로브핫의 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시켜 말씀하신 대로 하였다. 11) 슬로브핫의 딸은 말라, 디르사, 호글라, 밀가, 노아로 모두 다 아버지 슬로브핫의 형제인 삼촌의 아들들에게 시집을 갔다. 12) 이들이 모두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의 후손에게 시집을 갔기 때문에 그들이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땅은 계속해서 므낫세 지파의 땅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13) 이상은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가에 있는 모압 평원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명령과 규정이다.
요셉 자손은 수령들이 모세에게 질문합니다. 아들이 없이 죽은 자의 기업은 그 딸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했지만, 다른 지파에게 시집가면 그 땅은 다른 지파에게 넘어가는 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기업에 관한 문제(1-4)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분배받은 땅은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제비뽑아 뽑히는 데로 주셨습니다. 슬로브핫의 경우 아들이 없어 기업을 그의 딸들에게 주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딸들이 다른 지파에게 시집을 가면, 그 땅도 다른 지파에게 속하게 되는데, 자기 지파의 땅이 줄어드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모세에게 묻습니다. 그들은 그만큼 기업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기업은 하나님께서 주신 없어지지 않는 복을 말합니다. 우리가 얻을 천국도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나 장자에 대한 기업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기업 문제의 해결(5-13) 모세는 질문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을 그들에게 말해 주었을 것입니다. 딸들의 말도 옳고 그 지파 사람들의 말도 옳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주라는 것입니다. 결혼은 언제나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며 다른 지파로 시집을 가면 기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기 할 수 없다면 자기 지파와 결혼을 해야 합니다. 슬로브핫 딸들에게 시집을 가지만 하나님의 법에 따라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지파로 시집갈 경우 기업을 포기하고 같은 지파로 시집을 가면 기업을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딸이 지혜롭게 행합니다. 기업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지파가 아니라 자기 지파 남자와 결혼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정해 주신 데로 순종하여 기업을 길이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이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면 기업을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약속의 복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기업을 받기 전까지 기록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서 말씀하신대로 했으며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명령과 규례를 주셨고 그 법대로 순종하여 살았습니다.
적용: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돌아 볼 때 감사한 것은 무엇입니까? 지속해서 주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만인 동시에 무지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들은 우리 스스로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답이 없어 보이지만 답을 찾게 하시고, 사방이 막혀 움직일 수 없을 때 어디 한 곳으로 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 설 교 >
하나님께 숨종하라
민 36:5-13 / 이성우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민수기 36장 5절-13절까지의 말씀은 모세오경의 네 번째 책인 민수기의 마지막 장 중 가운데에서도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말씀으로,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가 전해 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 자손 중에서 므낫세의 손자이며 마길의 아들인 길르앗 집안 가장들이 모세를 찾아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들이 없이 딸만 있는 가정에 주어진 재산 상속과 관련한 법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그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그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구한 그 답을 주셨으며, 그 답을 받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였더니 그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던 당사자들인 슬로브핫의 딸들이 그 명령에 순종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그 땅을 각 지파별로 제비 뽑아 나누어 정착하여 살 것을 말씀하셨었습니다. 그리고 각 지파에게 할당된 그 땅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려고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놓으신 땅으로, 하나님께서 은혜와 선물로 주시는 땅이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으며, 다만 그들은 그 땅에 대한 관리자로서 끝까지 그 땅을 자기들의 기업으로 관리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의 땅을 잘 지켜 나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그들 각자 사이의 언약과 축복의 보증으로 간주되었기에 항상 소중히 취급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제까지 땅이 없는 민족으로 오랜 유랑생활로 인해서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또한 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명한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땅은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제비뽑아 나누어 주시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지키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의무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지파 어느 종족의 사람이 자기의 기업을 물려받을 아들이 없이 딸들만 있는 상태로 죽게 되어서 그 기업을 딸들에게 물려주게 되었을 때, 만약 그 딸들이 다른 지파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면 그 땅은 결국 원래 주어진 지파가 끝까지 지키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까다롭고 예민한 문제를 가지고 길르앗 집안 가장들이 모세를 찾아와서 문제 제기를 했던 것입니다.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좁은 땅 덩어리에서 만약에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이 편중되게 된다면 반드시 거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결국은 공동체 전체의 평화가 위협을 받게 되어서 심한 경우에는 공동체 전체가 함께 파멸하게 되는 문제까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게 될 때에, 반드시 제비뽑는 방식을 통해서 그 땅을 각 지파별로 골고루 나누도록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하나님은 50년 주기로 돌아오는 희년 법을 제정하도록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때에,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사람이나 어떤 물건에 대한 소유권이 타인에게 넘어가게 되었을 경우에 50년이 되는 해에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서 종이 되어서 자유를 잃어버렸던 사람은 자유의 몸이 되게 되고, 땅의 경작권을 빼앗겼던 사람은 그 경작권을 다시 찾게 됨으로써 결국은 공동체 전체의 평화를 유지해 나가도록 하신 사실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 정복과 정착을 코앞에 두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분명하게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여자들에 대한 재산 상속법과 관련한 문제를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 묻게 되었던 것이고, 문제를 위임받은 모세는 하나님께 그 뜻을 물었으며,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문제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제시해 주셨고, 모세는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달했으며, 마침내 백성들은 그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게 되었던 사실을 오늘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이 중요한 영적인 질서와 관련해서 아주 분명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는 이와 같은 분명한 영적인 질서를 통한 순종의 상태에서만 가장 아름답고 축복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세워 나가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에서 누리게 될 평화와 기쁨, 그리고 행복은 반드시 그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야할 백성들의 순종을 통해서만 완성되어지게 된다고 하는 사실도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여자 상속법의 당사자들인 슬르보핫의 딸들은 모세를 통해서 들려주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순종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자신들에게 주어져 있었던 자유, 곧 이스라엘 남자라면 아무 제한 없이 결혼하여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자유를 절제하고 자기들이 속한 지파의 남자들과 결혼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에 인접해 있는 요단강 건너 편 모압 평지에 집결해서 이제 곧 있게 될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갖추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아마도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그 땅을 안전하게 정복하고 정착하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큰 관심거리일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임을 깨우쳐 주기를 원하셨던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의 마지막 절인 13절 말씀은 민수기 전체의 결론적인 말씀으로써 이제까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데스 바네아를 출발해서 광야 40년의 세월을 지나서 요단 강 건너편 모압 평지에 이르는 동안 수없이 말씀하셨던 모든 명령과 말씀들이 결코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도록 주신 하나님의 명령들이었음을 분명하게 상기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제까지 자신을 통해서 들려주셨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이유와 근거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 민수기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전체적인 흐름을 한번 상기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으로의 여정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셨던 모세를 그의 동역자였던 아론과 함께 그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애굽을 출발해서 지금 요단 강 건너 편 모압 평지에 도착하기까지 길고 험난했던 과정 중에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세우셨던 지도자 모세와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과 크신 권능으로 함께 하시면서, 불신앙과 불순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게 하셨으며, 그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하나님의 명령들을 전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꿈꾸어 오셨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 곧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에 순종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으로 그들이 변화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기나긴 과정 중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지도자로 세워주셨던 모세에게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요, 모세에게 불순종하고 반역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 누구에게든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반역으로 간주해서 그들에게 징벌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질서를 만들어 오셨으며,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몸으로 배우며, 깨닫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록 모세에게 인간적인 한계와 연약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의 편에 서 계셨으며,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셨던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늦가을 하늘을 쳐다보면 떼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이 기러기의 생태를 관찰해 보면 우리가 배울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 기러기들은 먹이와 따뜻한 곳을 찾아 40,000km를 날아가는데, 기러기들은 맨 앞에서 날아가는 리더를 중심으로 V자 대형을 그리며 머나먼 여행을 한다고 합니다. 가장 앞에 날아가는 리더의 날개 짓은 기류에 양력을 만들어 주어서 뒤에 따라오는 동료 기러기가 혼자 날 때 보다 70%정도 쉽게 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러기들은 먼 길을 날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울음소리를 내는데, 그 울음소리는 앞에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들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러기는 40,000km의 머나먼 길을 옆에서 함께 날개 짓을 하는 동료를 의지하며 날아갑니다. 만약 어느 기러기가 총에 맞았거나 아프거나 지쳐서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면, 다른 동료 기러기 두 마리도 함께 대열에서 이탈해 지친 동료가 원기를 회복해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또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동료의 마지막까지 함께 지키다 무리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감동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 화요일 저녁에 우리 교회에서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함께하다가 지금은 다른 교회에 가서 섬기고 있는 어느 부부가 초대한 식사 자리에 갔었습니다. 놀랍고 감동적인 것은 그 부부는 식사를 하는 중에, 그동안 본인들이 우리 교회에 있을 동안에 저를 많이 힘들게 하고 여러 차례 속상하게 했던 것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고 하면서 거듭 용서를 구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여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가 이제야 깨닫게 되었지만, 목사님에게는 무조건 순종해야 하겠다는 사실과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길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날마다 이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는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번 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과 관련해서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 개신교 성도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주 아름다운 모습인 사제를 영적인 아버지로 고백하고 대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에게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있었던 모습인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한국 교회에서는 사라져버리게 되었고 이제는 목사를 교회 운영의 책임을 맡은 관리자나 책임자 정도로 대하게 된 것이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큰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사를 한낱 관리자나 책임자 정도로 바라보는 한 거기에는 결코 믿음 안에서의 순종이 있을 수 없으며, 남게 되는 것은 오직 비판과 불평, 원망하는 마음만 남게 될 것인데, 이것은 분명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단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몰래 넣어준 아주 잘못된 생각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마치 기러기 떼처럼 아주 멀고 험한 길을 날아가고 있습니다. 폭풍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곳을 뚫고 날아가는 힘든 여정이며, 그 여정은 하나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입니다. 온갖 폭풍우를 맞아가며 앞서가는 리더와 함께 무리지어 날아가고 있는 동료들의 힘을 빼는 사람이 되지 말고 기러기 떼와 같이 서로가 최상의 조화를 이루어 힘과 용기가 샘솟을 수 있도록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더 나아가서 목회자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심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가는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며, 하나님의 큰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민수기 36장 1-13절
이성유 목사
오늘 본문은 27장 1절부터 11절에서 다루어졌던 ‘슬로브핫 딸들의 상속 이야기’의 부록입니다. 므낫세 지파였던 슬르브핫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들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그의 딸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하게 해 달라고 모세에게 요청합니다.
당시 규례에 따르면 여성들에게는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남성들만이 재산을 상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아들이 없었던 슬로브핫의 땅은 그의 이름으로 보존되지 못하고 없어질 처지였습니다. 더 나아가 슬로브핫이라는 이름 자체가 므낫세 지파에서 영영 사라질 운명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던 슬로브핫의 딸들은 용기를 내어 모세를 찾아갔고, 여성의 상속권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녀들의 이유있는 청원에 대해 모세는 하나님께 아뢰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슬로브핫 딸들의 요청을 수락, 그녀들이 아버지 슬로브핫의 땅을 상속할 수 있도록 유산상속에 관한 새로운 법규를 제정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후 그와 관련되어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 4절입니다.
"요셉 자손의 종족 중 므낫세의 손자 마길의 아들 길르앗 자손 종족들의 수령들이 나아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지휘관들 앞에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 주에게 명령하사 이스라엘 자손에게 제비 뽑아 그 기업의 땅을 주게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우리 주에게 명령하사 우리 형제 슬로브핫의 기업을 그의 딸들에게 주게 하셨은즉 그들이 만일 이스라엘 자손의 다른 지파들의 남자들의 아내가 되면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의 기업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들이 속할 그 지파의 기업에 첨가되리니 그러면 우리가 제비 뽑은 기업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의 희년을 당하여 그 기업이 그가 속한 지파에 첨가될 것이라 그런즉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 지파의 기업에서 아주 삭감되리이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아버지 슬로브핫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규례가 재정비되었지만 그 법규안에는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른 지파 출신의 남자들과 결혼할 경우, 본래 므낫세 지파의 땅에 속해 있던 슬로브핫의 유산이 다른 지파에게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었습니다. 본문 1절에서 4절은 그 부분을 우려한 므낫세 지파의 수령들이 모세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혁’은 일회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점진적인 절차를 밟아 보완해 나가는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개혁은 진정한 의미의 변혁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또다른 ‘개혁’을 야기하는 ‘모순덩어리’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용기있는 청원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상속권이 인정되는 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개혁의 이면에는 지파 전체의 손실이라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자칫 하다가는 또다른 ‘개혁의 불씨들’이 양산될 판국이었습니다.
이 상황속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신 명령이 본문 5절에서 9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요셉 자손 지파의 말이 옳도다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종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중 그 기업을 이은 딸들은 모두 자기 조상 지파의 종족되는 사람의 아내가 될 것이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조상의 기업을 보전하게 되어 그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게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 지파가 각각 자기 기업을 지키리라"
결과적으로 슬로브핫의 딸들은 본인이 마음에 드는 남자와 결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땅을 상속받은 딸은 므낫세 지파, 곧 아버지의 지파에 속한 남자와만 결혼해야 했습니다. 지파별로 분배한 땅은 같은 지파안에서 보존되어야 한다는 말씀의 원칙에 위배됨 없이 여성에 대한 상속권을 인정하기 위한 보완책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개혁’은 말씀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말씀이라는 원칙없이 이루어지는 개혁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피해를 주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본성상 자기 중심성을 탈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것을 극대화 하라고 부추깁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과 상황은 무시한 체 나만을 섬기며 나의 것을 확장해 나가라고 유혹합니다. 자기 욕망이라는 우물에 갇혀 타인의 손실은 외면한체 나만을 생각하는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럴 때에 그런 우리의 실상을 비추어 주는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여 나의 것을 확장해나가려는 탐욕스러운 나의 실상을 다시금 직시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말씀이라는 거울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가 욕심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은 그리스도인임을 상기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말씀의 토대 위에서만이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기 위한 바른 개혁이 시작됩니다. 그런 개혁을 통해 우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혁되어져 갑니다. 말씀의 원칙하에 말씀에 입각하여 우리 삶을 개혁해 나가야하는 이유입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듣게 된 슬로브핫 딸들의 반응이 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 슬로브핫 딸들이 보인 모습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명령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유리하게 해 보려고 조금도 애를 쓰지 않았습니다.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오늘 본문인 민수기 36장은 민수기의 마지막 장입니다. 마지막장은 그 성경의 전체 내용을 정리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입니다. 그런 마지막장에 27장에 이어 또다시 슬로브핫 딸들의 상속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단락에 그 딸들이 보여준 행동,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 묘사되며 민수기의 이야기는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광야 1세대는 불순종으로 인해 약속의 땅을 면전에 두고서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제 슬로브핫의 딸들로 대표되는 광야 2세대는 모압평지, 곧 약속의 땅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 상황속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그녀들이 보인 반응은 말씀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승계받게 될 새세대가 하나님께 보여드려할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민수기의 마지막장에 다시 한번 슬로브핫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가 재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옛자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주신 주님안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겠다는 고백과 결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그리스도인 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인식’은 우리 자신을 사탄의 손아귀로 부터 지켜주는 보호막이 됩니다. 더 나아가 ‘말씀에 순종하는 삶’ 은 사탄의 권세에 억눌린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예수님의 휘페레테스와 마르튀스로 살아가게 하는 영적 통로가 됩니다.
‘민수기’라는 성경의 제목은 이스라엘 민족을 계수한 두 번의 사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번의 계수를 통해 광야 생활 40년동안에도 백성들의 수는 변함없음이 증명됩니다. 바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신실하게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철저하신 보호하심과 책임져 주심에는 반드시 ‘순종’이라는 단서가 붙어있습니다. 모압평지 곧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새세대를 향해 36장 마지막절인 13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순종할 것을 상기시키고 계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개혁에는 지속성이 필요하며 더 나아가 바른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개혁이어야함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개혁’하는 일에 나서기도 했지만 지속성은 없었고, 한편으로 개혁을 명분삼아 ‘나’를 섬기며 ‘나’만을 위해 살아왔던 저희임을 이 시간 고백하오니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 말씀이라는 거울을 통해 탐욕과 정욕에 아직도 쪄들어 있는 저희의 실상을 직시하게 해 주십시오. 그를 통해 더 이상 ‘나’라는 욕심의 우물에 갇혀 사탄의 종 노릇을 하는 어리석음에서 탈피하게 해 주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붙들어 주십시오. 더 나아가 사탄의 권세에 억눌린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예수님의 휘페레테스와 마르튀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희를 인도해 주십시오. 말씀으로 삶을 개혁해 나가기를 원하시며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책임져 주시는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용기 내어 시도해 보았던 개혁이 있었다면 당시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어떤 결과를 낳았습니까?
2.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추진해보았던 개혁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어려움은 무엇이었습니까?
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4. 내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하는 삶의 영역을 떠 올리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다.
민수기 36:1-13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 유영진 목사
므낫세 지파 수장들의 문제 제기 (1-4)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2절입니다.
(1-2) 요셉 자손의 종족 중 므낫세의 손자 마길의 아들 길르앗 자손 종족들의 수령들이 나아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지휘관들 앞에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 주에게 명령하사 이스라엘 자손에게 제비 뽑아 그 기업의 땅을 주게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우리 주에게 명령하사 우리 형제 슬로브핫의 기업을 그의 딸들에게 주게 하셨은즉
민수기 36장은 민수기 27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27장에는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므낫세 지파의 슬로브핫은 자녀로 아들이 없고, 다섯 명의 딸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슬로브핫이 사망하자, 그의 딸들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나아가 자신들에게도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하게 하여, 아버지의 이름과 그 기업의 땅이 계속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모세는 이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져갔고, 하나님께서는 기업을 소유한 자가 죽을 때, 그에게 아들이 없으면, 그의 딸에게 땅을 상속하고, 딸도 없으면, 그 죽은 사람의 형제에게 상속하고, 그 죽은 사람의 형제도 없으면, 그 죽음 사람의 아버지의 형제에게 상속하고, 그 아버지의 형제들도 없으면, 다른 가까운 친척을 찾아 그 형제에게 그 땅을 상속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슬로브핫의 딸들로부터 시작된 기업 분배에 대한 질문과 원칙은 오늘 본문인 민수기 36장에 와서 다시 나타납니다. 3-4절입니다.
(3-4) 그들이 만일 이스라엘 자손의 다른 지파들의 남자들의 아내가 되면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의 기업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들이 속할 그 지파의 기업에 첨가되리니 그러면 우리가 제비 뽑은 기업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의 희년을 당하여 그 기업이 그가 속한 지파에 첨가될 것이라 그런즉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 지파의 기업에서 아주 삭감되리이다
이번에는 슬로브핫 딸들이 속한 므낫세 지파의 수령들이 나아와 질문을 제시하였는데, 이들이 두 번째로 제기한 문제는 슬로브핫의 딸 들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속은 이제 그들의 것이 되었는데,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른 지파의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먼저 당시 남녀가 결혼을 하면, 그 모든 소유가 남편과 그 남편이 속한 지파 중심으로 움직였고 설령 그렇다고 하여도 희년이 되면, 각 지파의 모든 소유와 기업이 하나님께서 처음 정하신 원래의 기준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말씀을 따라 잘 움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결혼으로 인하여, 한 가족의 땅이 다른 지파의 땅으로 넘어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땅의 기준이 흔들리게 되는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그러한 점을 종합해 보았았을 때, 민수기 27장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이 요청한 것이 한 가족의 기업과 기준에 관한 것이라면, 이번 36장의 문제는 한 지파의 기업과 그 기준에 대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5-9절입니다.
하나님의 해결방안 (5-9)
(5-9)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요셉 자손 지파의 말이 옳도다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종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중 그 기업을 이은 딸들은 모두 자기 조상 지파의 종족되는 사람의 아내가 될 것이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조상의 기업을 보전하게 되어 그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게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 지파가 각각 자기 기업을 지키리라
이와 같은 지파 간의 소유권 기준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특별 조항으로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받은 여성들에 한하여, 혼인 시 다른 지파의 사람이 아닌 자신과 동일한 지파의 사람과 결혼을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명령을 혹자는 자유를 탄압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고, 혹자는 성차별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기준을 주신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차별은 한쪽 성이 다른 쪽 성보다 우세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쪽의 성을 특별히 차별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시 문화와 사회적 시스템의 한계 속에서도 굳이 각종 특례 및 보완 규정을 만드시면서까지 한 가정과, 지파의 기업을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남성을 위함도 아니고, 여성을 위함도 아닌 하나님의 원칙, 즉 하나님께서 처음 정하신 기준과 원칙을 지키고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먼저 처음부터 성경을 남성을 위한 것인가? 여성을 위한 것인가? 라는 관점으로 보는 것은 옳은 관점이 아님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중심으로 쓰여진 인문학적 작품이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원칙을 중심으로 쓰여진 계시입니다. 그렇기에 그 해석의 중심에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슬로브핫 여인들은 비록 겉으로는 자신들을 중심으로 놓고 자신들의 이권을 주장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이 이야기의 중심에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업의 경계 즉 하나님께서 므낫세 지파에게 주신 처음 원칙을 사랑하고 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그 신앙의 중심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민수기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사용하셔서, 이 문제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상세히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특별히 5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요셉 자손 지파의 말이 옳도다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입을 빌려 요셉 자손, 슬로브핫의 딸들의 주장이 옳다고 선언해 주십니다. 이는 이들의 주장이 상식적으로 또는 사회적 통념적으로 옳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실 당시 사회적 통념으로 보았을 때, 당시 슬로브핫 딸들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통념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슬로브핫 딸들의 주장에 대해 옳다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이는 슬로브핫 딸들이 하나님의 처음 원칙을 지키려 했던 마음이 옳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방식, 즉 하나님 말씀과 원칙으로 자신들의 백성들을 ‘옳다’라고 선언해 주시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참된 위로와 힘을 주십니다.
자신의 백성에게 힘주시며, 자신의 백성들을 위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과거나 오늘이나 이와 같은 ‘말씀의 원칙’이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백성에게 힘주시며, 이들을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한 점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1차원적으로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자유와 사회적 통념을 무시하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참된 위로와 하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 각자는 오늘이라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하나님의 처음 원칙과 기준으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생각이나 세상의 통념이 우리의 기준이 아닙니다. 오늘이라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온 세상의 주인공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불만투성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펼쳐지는 모든 일들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참된 위로와 하늘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를 옳다고 여겨주실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35-36절입니다.
(누가복음 6:35-36)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나 중심적인 삶을 떠나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로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내가 아닌 하나님과 말씀의 원리를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살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점점 닮아가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성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가져야 하는 가장 바른 삶의 태도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큰 기쁨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정한 위로입니다. 10절입니다.
끝맺는 말 (10-13)
(10)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10절을 보면 슬로브핫의 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슬로브핫 딸들의 중심과 목적이 하나님께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에게는 하나님의 이 기준이 불만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자신의 지파로만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에도 불구하고 슬로브핫의 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놓고 보았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말씀 안에서 자유롭고 풍요로워지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이자 말씀의 신비입니다. 11-13절입니다.
(11-13)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들의 숙부의 아들들의 아내가 되니라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종족 사람의 아내가 되었으므로 그들의 종족 지파에 그들의 기업이 남아 있었더라 이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규례니라
성경은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족보를 기록할 때 그 이름을 다 기록하지 않고 중요한 인물만을 기록하는 것과 또 남성중심적인 족보 기록의 특성을 보았을 때,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름이 모두 기록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슬로브핫의 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중심과 기준을 따라 담대히 믿음의 일들을 주도적으로 감당해 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상세히 기록하게 하시고, 또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신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결단으로 인하여, 이들의 기업, 즉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업과 그 질서의 기준이 그대로 남아있게 된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지켜야 할 기업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고, 우리는 예수님을 소유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바로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예수님 안에서, 참된 위로와 기쁨을 얻는 하늘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골로새서 3장23-24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골로새서 3:23-24)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지혜로 제비뽑아주시고, 분배해주신 기업의 자리, 말씀의 자리, 믿음과 은혜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들을 지키고, 남아있게 할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를 믿음으로 감당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믿음의 일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 함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봄으로, 주님을 날마다 주님께 감사하며, 믿음으로 우리가 해야할 그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모든 교우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우리 삶의 주인이자 기준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각자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에서
지켜야 할 기준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먼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이자 기준으로 생각하는 삶 살게 해 주옵시고,
그 결과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하나님께서 작고 연약한 우리 개개인의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인생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기준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주장하고, 수호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2.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속박이 아닌 자유나 기쁨을 누린 경험이 있다면 기록해 봅시다.
3. 세상의 기준들과 다르게 하나님께 ‘옳다’라고 인정받는 삶의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4. 하나님 안에서 유명한 사람과 세상 속에서 유명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영원한 기업을 구하는 믿음
민수기 36:1~13 / 김종호 목사
민수기의 마지막 장이다.
이스라엘에서 기업은 지파별로 인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제비를 뽑아서 분배가 되었다.(민26:52~56)
아들이 기업을 상속받았는데 장자는 다른 아들에 비해 두배를 받았다.(신21:15~17)
만약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경우에는 딸이 기업을 이어 받았다.(민27:1~8)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므낫세 지파의 슬로브핫의 딸들이 그랬다.
딸이 없는 경우에는 그 기업을 형제에게 주고 형제마저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주도록 했다.(민27:9~11)
그러나 딸들이 다른 지파 사람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땅이 시집간 지파의 땅이 되고 므낫세 지파의 땅은 줄어 들게 된다.(3)
희년이 되어도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7)
오늘 본문의 문제가 바로 이것에 있다.
딸들이 땅을 상속 받는 문제는 지난 27장에서 결론이 났다.
혁명적인 사건 같지만 하나님은 딸 들에게도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
문제는 결혼을 통해서 상속이 될 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지파 안에서만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6)
각 지파에서 재산을 상속받을 딸들은 반듯이 자기 지파의 사람들과 결혼을 해야 한다(8)
그래야만 그 조상의 유산이 보존되고(9)
각 지파는 자기의 땅을 계속 소유하게 된다.(10)
율법에도 자식이 없는 과부의 경우에는 남편의 형제와 결혼을 하게 함으로 남편의 기업을 보존하도록 하셨다.(신25:5~6)
하나님은 상속권을 가진 여자는 반듯이 자기 지파내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주심으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신다.
결혼에서 선택의 자유 보다도 각 지파에 분배 된 땅이 더 소중했기 때문일까?
그럼 이스라엘에서 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땅의 소유자는 하나님 이시다.(레 25:23)
땅은 각 지파에 내려주신 축복의 기업이였다.(민33:54)
각 지파와 각 가문은 자신에게 분배된 그 땅을 온전히 보전함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야 하는 것이다. 아멘.
그러므로 아비의 토지 상속권을 가진 여자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땅을 아비 지파내에서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 같은 지파에서 결혼을 해야한다.
슬로브핫의 여인들도 4촌들과 결혼을 한다.(11)
땅을 통하여 맺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한 (10) 슬로브핫의 여인들을 본다.
강요된 결혼이 축복된 결혼이라 할 수 없겠지만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의 의사를 분명히 확인하고 축복된 결혼으로 인도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의 자녀들도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될 터인데 믿음의 가문에 믿음의 자녀와 결혼 하길 기도한다.
양가 가문에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이 축복하는 결혼하길 소망해 본다.
하나님 아버지! 지난 3개월 동안 민수기 말씀을 읽어 오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은혜 가운데 광야의 생활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순종의 댓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 불순종과 심판을 보았고 40여년을 방황한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가나안이라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없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행했던 믿음의 여인들과 같이 나의 삶도 여호와께서 명하신 바로 그것을 행하는 인생되게 하옵소서.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인생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민수기 결론의 의미
민수기 36:1-9 / 피영민 목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 주의해야 할 세 가지 규례를 주셨는데 두 가지는 민수기 35장에 기록되어 있고, 마지막 한 가지 규례는 3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 규례는 레위인들에게 땅을 주지 않는 대신에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진 48개 성읍에 살도록 하신 것과 그 중 6개 성읍을 도피성으로 지정하여 과실치사를 행한 사람의 생명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민수기 36장에 기록된 마지막 규례는 딸들이 땅을 상속받은 경우 다른 지파의 남자에게로 시집가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민수기에는 인구조사와 하나님이 주신 갖가지 명령, 규례, 예언, 족보, 시 등 엄청난 내용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마지막 36장의 내용은 좀 사소해 보입니다. 거대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민수기의 결론 부분이 딸들이 상속받은 땅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지파 남자에게로 시집을 갈 수 없도록 정하셨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의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애들이 하는 말로 “이게 다야? 이게 끝이야?”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민수기가 독립된 책이 아니라 모세오경의 큰 내용 속에서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36장의 내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명기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민수기 36장의 내용은 사소한 내용 같아 보여도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40년 간 불순종과 반역을 일삼고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다소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광야 40년의 생활을 벗어나면서 이제 요단 강만 건너면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었던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었는데, 오늘은 그것을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Ⅰ. 이스라엘 족장들은 ‘확고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다
민수기 36장에 기록된 내용은 므낫세 지파의 두령들이 모세와 이스라엘의 족장들에게 나아와서 시민법, 상속법 흠결의 문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사람의 법은 어떤 법이든지 완전하지 않습니다. 항상 흠결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들이 제시한 흠결의 문제는 이미 민수기 27장에 언급된 내용입니다. 므낫세 지파 슬로브핫이라는 사람의 다섯 딸이 광야에서 죽은 아버지의 땅을 상속받지 못한다면 아버지가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이름도 없어지고 땅도 사라지게 될 텐데 그러면 우리가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된 내용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었고, 하나님은 이들을 기특하게 여기시고 딸들이 땅을 상속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므낫세 지파의 두령들은 다시 문제를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므낫세 지파의 땅을 상속 받아서 다른 지파 사람에게로 시집을 가면 상속받은 땅도 가지고 가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대한 완전체로서 므낫세 지파의 땅이 유지되지 못하고 타 지파에 귀속되어 중간 중간에 구멍이 나게 될 텐데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문제제기였습니다. 한 마디로 기업에 감소가 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땅을 매매한 후 시집을 가도 되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이스라엘에는 희년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딸들로부터 그 땅을 구매했어도 희년의 때가 오면 다시 원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니 매 한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절에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여 가로되 요셉 자손 지파의 말이 옳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므낫세 지파 사람들의 말이 옳다는 것입니다. 상속받은 땅을 가지고 시집을 가게 되면 기업의 감소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명하시기를 마음대로 시집을 가되, 오직 그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로만 시집을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남자들에게 시집을 가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게 되니 그렇게 함으로써 조상 지파의 기업이 삭감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문제를 민수기 2개의 장을 할애해서 기록해 두고 있느냐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을 드렸지만 사람 보기에 사소해 보일 뿐,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것이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 중에는 백성들의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먼저 이 문제를 제기한 시점은 아직 가나안 땅을 차지한 때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단 강 동편 땅에 거하고 있을 때 일어난 문제들입니다. 아직 가나안 땅을 단 한 평도 차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난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슬로브핫의 딸들을 기특하게 여기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출애굽의 1세대 사람들은 과거 40년 전 가나안 땅 입구인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은 내가 너희에게 준 밥이니 가서 먹으라”고 했지만 그 땅을 먹지도 차지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아직 차지하지도 못한 땅을 이미 자기가 소유한 것 인양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땅인 것처럼 믿고 광야에서 소천한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 받게 될 땅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믿음을 기특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36장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제 슬로브핫의 다섯 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족장들이 가나안 땅을 이미 차지한 것처럼 여기고 믿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두령, 족장들은 모세에게 나아와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면 므낫세 지파도 차지하게 될 텐데, 딸들이 상속한 땅을 가지고 다른 지파 남자들에게 시집을 가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이들이 가나안 땅을 자기 땅으로 확고히 믿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 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땅을 금방 차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복전쟁을 무려 7년이나 진행해야 했습니다. 그제야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인데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과 족장들은 전쟁을 몇 년간 치러야 하는지 전혀 개의치 않고 분명한 경계를 정해서 주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틀림없이 소유하게 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다섯 딸들만 그런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믿음을 다 갖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가나안 땅이 오직 믿음 있는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복음의 대 원리를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은 누가 들어갑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민수기 36장이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예배하며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 중에는 단 한 사람도 “나는 성경 안 믿어! 천국 안 가도 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앉아 계시면 반드시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아무도 믿음이 없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처럼 가나안 땅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 확고한 믿음으로 충만해졌습니다.
Ⅱ. 이스라엘 백성들은 ‘확실한 소망’의 사람들이 되었다
7~9절에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중 무릇 그 기업을 이은 딸들은 자기 조상 지파 가족되는 사람에게로 시집갈 것이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조상의 기업을 보존하게 되어서 그 기업으로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게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 지파가 각각 자기 기업을 지키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다 각각 자기 지파의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내용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할당받은 지파의 땅은 줄어들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지파 모든 백성들이 남녀의 구별 없이 모두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확실히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고 땅을 모두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 한 평 갖지 못했습니다. 노예가 무슨 땅이 있겠습니까? 40년 동안 가나안 땅을 방황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을 모두 갖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갖게 되고 그 땅은 다른 지파, 다른 사람에게로 소유권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소망입니까?
제가 만약 여러분들에게 강남중앙침례교회에서 침례를 받고 성도가 되면 1인당 강남 땅 천 평씩 드리겠다고 약조한다면 아마 엄청난 부흥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약조하면 실현성이 없으니까 아무도 믿지 않겠습니다마는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실현성은 확실한 것입니다. 영원히 순종하며 사는 한 그 땅의 소유권이 남에게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소망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천국에서 모두 땅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라고 찬양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실 영원한 땅, 기업은 목숨, 생명보다 귀한 것입니다. 성도는 누구나 예외 없이 ‘다 각기’, ‘각각’과 같은 부사가 중요합니다.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의 소유권은 절대로 남에게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확고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천국에 내 이름으로 등기된 넓은 땅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제주도에도 내 땅이 있으면 매일 그 땅을 생각하며 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주도의 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기업이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뜁니까? 소망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 소망은 확실한 소망, 산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성도들의 건강한 삶에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고난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성도는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모세도 자기가 천국 가면 큰 땅을 차지하려고 애굽의 왕자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상 주심을 바라봤습니다. 천국에서 땅을 주시고 그 땅을 영원히 남에게 빼앗기지 않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현세의 삶 속에서 고난을 능히 이겨낼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동일한 원리를 말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 후반절에서 4절에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천국과 지옥과 같은 이야기 좀 그만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만 할까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면 얼마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소망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간직된 것,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않은 하늘에 간직된 기업인 줄 믿습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6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세상을 살면서 잠깐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기업을 간직해 두셨고, 그 기업이 타인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한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망이 부끄럽지 아니하다는 말은 한글로는 해석이 어렵지만, 영어로는 쉽습니다. “Hope never disappoint us”(소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결코 실망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늘에서 기업을 받을 것이라는 소망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소망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고,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5). 현세의 땅도 가지고 있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 있어도 언젠가는 바뀌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기업은 쇠하지 않고 썩지 않고 더럽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기업을 우리에게 주셔서 영생 부활하며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도의 소망입니다. 민수기 36장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고, 분명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Ⅲ. 이스라엘 백성들은 ‘확실한 순종’의 사람들이 되었다
민수기 36장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 보여주는 반응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너희는 아버지의 땅을 상속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파의 땅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므낫세 자손 지파의 남자에게만 시집을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 순종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10~12절에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 아비 형제의 아들들에게로 시집가되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가족에게로 시집 간 고로 그 기업이 그 아비 가족의 지파에 여전히 있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35장에 이르는 광야 40년의 기록은 사실상 불순종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판하고 비난하고 험담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 내용들 뿐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36장의 결론은 매우 아름다운 순종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딸들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나의 결혼까지 참견하시느냐고 불평할 수 있었고, 나는 므낫세 자손의 남자는 싫고 유다 지파의 남자가 좋다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기 결혼에 대한 선택권, 인권도 없습니까?”라고 항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일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믿음으로도 모범을 보여주었고, 순종으로도 모범을 보여준 것입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복음적인 명령들입니다. 예배하라. 기도하라. 헌금하라. 선교하라. 전도하라. 찬양하라. 모두 복음적인 명령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명령들 말고 신구약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항존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십계명을 설교하면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라고 설교하면 ‘율법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십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복음주의에 속한 어느 목사가 십계명을 지켜야 천국간다고 설교합니까? 절대로 그런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십계명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율법주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십계명을 기준으로 성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화의 절대적인 기준이 십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법을 어기는 것은 죄입니다. 죄는 결코 복잡하지 않습니다. 십계명의 법대로 살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반대로 의는 십계명의 법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십계명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십계명에 불순종하면 복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십계명에 순종하면 성화를 이루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십계명을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5절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의 법을 지켜 행하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점을 보러 다니고 우상에게 절하고 안식일을 범하며 도적질하고 간음하고 살인하고 이웃의 것을 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습니까? 주여 주여 하는 자들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자는 반드시 복을 받게 됩니다. 또 야고보서 1장 22절에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은 자유하게 하는 율법입니다. 십계명에 기록된 대로 사는 것이 불편한 것 같아 보여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는 것이 좋습니까? 뭍에 나와 있는 것이 좋습니까?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뭍에 있는 물고기는 곧 말라 죽을 물고기입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을 때 비로소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가 자유함을 누리는 것은 율법을 따라 살아갈 때에만 비로소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 중에도 의식법, 시민법과 같은 것들은 구약 시대의 법입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은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을 지키고 사는 것이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거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율법폐기론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법에 반대하면서 어떻게 성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기준이 없는 사람입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습니다. 십계명을 어기고 무슨 복을 받겠습니까? 점치러 다니면서 무슨 복을 받겠습니까? 거짓말하고 외도를 일삼으면서 무슨 복을 받겠습니까? 요한복음 14장 21절에도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원리입니다. 나의 계명은 바로 십계명을 가리킵니다.
고린도전서 7장 19절에도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식법은 중요치 않지만 도덕법은 중요하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입니다. 20세기 한국교회에는 세대주의 종말론이 만연했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율법폐기론입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결국 율법이 아무 쓸모없다는 식으로 여기게 됩니다. 율법과 은혜를 서로 원수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무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와 관련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에게는 십계명이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십계명을 지키는 일이 즐겁고 기쁜 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기독교인들이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요일만 되면 어디로 놀러갈까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저런 일은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성령을 받으니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기보다 매우 즐거운 일이 되었고, 삶의 활력을 가져다주는 일이 된 것입니다. 이는 결코 무거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십계명을 지키며 사는 것은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결 론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십계명을 존중하며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도들이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부어주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 계신 저 천국에 있고, 천국에 들어가 얻게 될 영원한 기업에 있는 줄 믿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민수기 결론이 갖는 위대한 의미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민수기 36:1-13
Ⅰ. 므낫세의 자손들
1. 슬로브핫의 딸들
민27장과 36장은 등장인물과 주제가 연관성이 있습니다. 민26장에서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에 지파별로 제비를 뽑아 땅을 기업으로 나누어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차적으로 열두 지파는 각 지파별로 기업을 나누었습니다. 일단 이스라엘 총회에서 각 지파별로 기업을 분배했으면 그 다음 순서는 각 지파에서 각 가정 별로 기업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요셉의 아들 므낫세 종족에서는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다섯인데, 27:3절처럼 아버지 슬로브핫은 광야에서 죽었기에 딸들이 의지하고 살아갈 아버지도 안 계신 상태 즉 고아입니다. 살아갈 길이 막막한데 조상들이, 지파의 어른들이, 종족의 장로들이, 다섯 딸들에게는 큰 아버지나 작은 아버지나 또는 그 위의 할아버지뻘 되시는 분들이 땅을 분배하면서 아들이 없는 집에, 조카딸들만 있는 집에는 땅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유산을 나누는데 누구는 많이 주고 누구는 적게 주고한 정도가 아닙니다. 모두가 백지 상태에서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땅을 주지 않으면 사는 형편이 조금 나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착이 안 되고, 아예 살아 갈수 있는 근거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아들이냐 딸이냐가 문제가 아니고, 기업을 더 주고 덜 주고가 문제가 아니고, 살기가 수월하고 힘들고가 아니라 새로운 지역으로 들어가서, 아예 처음부터 삶을 시작해야 하는데 땅을 안 주면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 그 사람들
36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27장에서 자신들의 후손들, 아버지가 죽은 고아에 여자들만 다섯 명인 불쌍한 자녀들에게 땅을 분배하지 않아 살아갈 길을 막막하게 만들었던 장본인들입니다. 이들이 모세에게 나아와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른 지파로 시집가면 지파의 기업이 삭감될 것을 염려하며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혹자들은 이미 27장에서 딸들에게 기업을 주지 않았을 때, 딸들에게 기업을 주면 당연히 딸들이 결혼을 할텐데 다른 지파의 남자와 결혼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혹시 자기 지파의 기업이 다른 지파에게도 넘어갈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사람들의 조치가 나름 신중했고, 앞으로 펼치질 다양한 사태들을 예견하고 미리 대비하려는 지혜도 있었다고 칭찬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르신들, 이 대표들, 이 장로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기 지파의 일원, 가족, 후손 즉 사람이 아니라 자기 지파의 기업 또는 땅이었습니다. 만약 지파의 장로들이 매사에 자기 지파를 생각했고, 지파에 속한 각 사람을 존중했다면 민36장과 27장은 순서가 바뀌었어야 합니다. 자기네 지파 내에서 기업을 분배할 때에 먼저 다섯 딸들을 불러서 그 동안 아버지없이 사느라고 애썼다고 위로 했어야 하고, 장차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온 지파가 합심해서 돌볼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짐했어야 합니다.
3. 사람이냐, 땅이냐
27장에서 므낫세 종족의 대표들이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을 대동해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지휘관들 앞에 나와서 먼저 말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슬로브핫의 딸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모세와 제사장에게 나아와 호소했어야 했습니다. 자기들 지파에 속한 사람조차 존중하지 않던 사람들이 36장에서 모세에게 나아와 지파의 기업이 삭감될 것을 우려하며 대책을 세워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아인 여자들을 대상으로 남자들이 했던 일, 딸들을 대상으로 어른들이라는 사람들이 했던 일이 이것이었습니다. 때에 슬로브핫의 딸들을 보호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인간을 존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배려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배려해 주셨습니다. 인간이 인권과 인격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권을 주셨고 인격을 높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예가 아니고 바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행복한 삶을 선물하시려고 친히 십자가를 지신 분이십니다.
Ⅱ. 기업을 지킬지니라
1. 삭감되리이다
주어야할 기업을 주지 않았던 교활한 장로들이 이번에는 자기들의 기업이 삭감될까봐 노심초사하면서 하나님께 따지러 왔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괘심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교활한 장로들, 고약한 대표들이라고 박대하지도 않습니다. 저들이 교활하거나 말거나, 고약하거나 말거나 저들이 말한 내용, 저들이 주장한 내용은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하나님은 저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36:5~8).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가장 집착하는 것은 땅이나 기업 즉 재산 또는 물질과 관련된 것이고, 갑자기 많은 재산을 얻거나 잃을 수 있는 사건 중의 하나가 결혼인 것은 분명합니다. 한편으로는 마음대로 시집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상 지파 사람에게만 시집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의 입장에서는 우선 기업을 분배받았으니 최소한의 생존 수단은 확보하였고, 지파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도 위험하니 지파내에서 결혼하기로 결정합니다(36:10~12).
2. 기업을 지킬지니라
출애굽하는 순간부터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자그마치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한결같이 가나안 땅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언급하면서 ‘내가 인도한다’, ‘너희가 들어가거든’이라고 강조하셨고,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차라리 애굽에 있었다면’,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반복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시하고 거부해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이스라엘을 위한 사역을 진행하셨고, 가나안 땅에 대한 기업 분배까지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입성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기업 분배가 끝난 후에 이스라엘이 땅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일부는 가나안 땅 대신 요단강 동편의 야셀과 길르앗 땅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뒤이어 므낫세 지파를 통해 각 지파 내에서 기업의 재분배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서로 자기 지파의 땅에 집착해서 절대로 다른 지파에게 기업이 넘어가지 않도록, 자신들의 기업이 삭감되지 않는 온갖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목축하기 좋은 곳이라고 했던 곳에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내 지파의 딸이 다른 지파로 시집가서 기업이 삭감될까봐 걱정했는데 만약 다른 지파와 사이가 나빠져서 싸움이 일어나서 기업을 빼앗기면 어떻게 합니까? 더 심각하게 다른 지파가 아니라 아예 다른 민족, 이방 민족이 침입해 와서 땅을 빼앗아 가면 어떻게 합니까?
3.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모든 지파가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원리와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기대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와 원리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땅 자체가 안녕과 풍요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동편의 땅에 살면 불행해지고 가나안 땅에 살면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파별로 기업이 많아야 부유하고 평안해 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기업이 삭감되지 않아야 최소한의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주 정교하고 세밀한 율법을 주셔야 사회가 안전하고 질서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민수기는 40년간 진행된 끝없는 하나님의 수고, 자신이 언급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하나님의 신실함, 어떤 상황이라도 다 해결해 나가는 하나님의 능력, 아무리 거역하고 불순종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한없이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고 보여주고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경험하고 체험하게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각자 자기 기업을 지키라
민 36:1-13 / 주병열 목사
최근 세계적으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걱정도 크고 염려가 적지 않습니다. 나라 살림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개인의 삶에서도 경기침체의 결과를 몸으로 견뎌야 하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아마도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들 말합니다.
성경 속에도 경제이론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경제이론은 땅(토지)에 대한 이해에 기초합니다. 한국의 경제를 성경에서 토지에 대해 들려주는 말씀에 근거해서 이해하고 오랜 시간 연구해 온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토레이라고 하는 대천덕신부이십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해방 후 북한이 토지개혁을 했습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이 6.25 남침을 계획하는데, 김일성의 생각으로는 그들이 남침을 계획할 때까지 남한이 토지개혁을 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북한이 남침을 해서 남한의 농민들에게 땅을 주겠다고 하면 민심이 들고 일어나서 전부 자기 편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한도 농지개혁을 이로 인해 김일성은 자기 계획대로 남한을 무너뜨리지 못했다고 대천덕신부는 말했습니다. 국민들이 자기 땅이 있어야 애국심도 생긱고 나라를 지키고 싶은 의욕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땅을 빼앗기면서부터 생명력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서부지역에 인디언 추장 씨애틀 씨가 살고 있었습니다. 1854년 미합중국 대통령 피어스가 정부 대표단을 그에게 보내서 땅을 팔라고 제안하면서, 땅을 팔면 그들이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이 때 인디언 추장 씨애틀 씨가 답한 연설문이 내려옵니다. 그가 한 연설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대들에게 팔 수 있다는 말인가? 백인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가지는 우리 모두의 하나님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듯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곳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하나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홍인에게나 백인에게나 똑같은 것이다. 이 땅은 하나님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해치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른다. 계속해서 그대들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그대들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오늘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내가 네게 땅과 후손을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땅 분배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34장은 가나안 땅의 경계에 대해, 그리고 땅 분배에 참여하게 될 각 지파 대표들을 언급합니다. 35장은 레위인에게 줄 성읍과 도피성에 대해 말씀하시고, 36장에서는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할당된 땅 문제에 민수기 27장에 이어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토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이해는 바로 땅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25장 23절에서 하나님은 “토지는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에 의하면 토지는 상속은 가능하지만 매매는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한 번 하나님께서 어느 지파, 어느 가문, 어느 가정에게 주신 땅은 영원히 그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생활이 어렵고 뜻하지 않은 재난을 만나거나 질병으로 인해 부득이 토지를 팔아야 할 때가 생길 수 있는데, 그럴 때라도 토지를 팔고서는 50년 마다 희년이라는 제도를 두어 원주인, 즉 하나님께서 처음 주셨던 그 가정에게로 돌려주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토지를 판다는 것은 토지의 소유권을 파는 것이 아니라, 토지의 사용권을 파는 것입니다. 그래서 50년 마다 오는 희년이 얼마 남았느냐에 따라 그 남은 해 수 만큼의 사용권을 파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지키시고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 주시는 장치였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본문 말씀은 그런 배경 하에서 토지분배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토지는 본래 남자들을 통해 주어졌고, 상속되었습니다. 땅이 남자에게 상속되었던 것은 가정의 대표로서의 가장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토지는 지파, 가문, 그리고 가족 단위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토지를 나눠주는 과정에서 슬로브핫에게 다섯 명의 딸이 있었는데, 슬로브핫이 딸들만 남겨놓고 죽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딸들이 모세에게 아버지의 이름으로 토지를 분배받도록 요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서 하나님께서 딸들에게도 토지를 주게 됩니다. 그런데 슬로브핫의 딸들이 므낫세 지파의 땅을 분배받은 후 다른 지파 남자에게로 시집을 가면 이 땅이 다른 지파에게 속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 다른 지파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므낫세 지파의 어른들이 이 문제를 모세에게 제기했습니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길르앗 가문의 사람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그 기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현대인들이 이해하는 땅에 대한 욕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 하나님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마치 씨애틀이라는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에서 나오는 마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매우 소중한 기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영적 기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와 가정과 교회에 누리고 살 수 있는 기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유산, 영적 기업을 발견하고 잘 개발하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우리 가정에 무엇을 주셨는지 잘 보십시오. 우리 교회에 무엇을 주셨는지 보십시오. 찬송가 489장에는 이렇고 노래합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드러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것들을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음성이 있고, 봉사할 수 있는 손과 발이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언어가 있습니다. 가족과 교회를 주셨고, 시간과 생명과 관계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돈을 주고 살 수 있겠습니까?
개인적인 욕심으로부터 출발하는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라는 생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소중히 여기거나 귀한 줄 모르고 남의 것만 탐을 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두 번째 4-9절과 13절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 있을 수 있는 상황, 즉 스로브핫의 딸들이 다른 지파 남자와 결혼했을 때 므낫세 지파의 땅이 그리로 갈 것을 언급하면서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 때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내 놓은 대책이 이것입니다. 슬롯브핫 딸들은 마음대로 원하는 남자에게 시집을 갈 수 있지만, 그들의 조상 지파, 즉 므낫세 지파 남자에게만 시집 가도록 명령을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회의 상황에서 보면 참 우스울 수 있습니다. 기회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다른 지파에 아무리 좋은 신랑감이 있어도 포기해야 합니다. 기업으로 주신 땅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남자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당시 한 지파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를 선택하는데 제한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 남자나 여자가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 몇 사람이나 만나보고 결혼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배우자가 몇 번째 만난 사람입니까? 저는 100명의 여자와 선을 보고 결혼한 남자를 봤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자기 부인은 104번 째 남자와 결혼했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자랑이냐구요?
어느 날 밤에 어느 자매가 잠을 자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야! 샬롯츠빌한인교회 나오는 남자하고 결혼하거라.’라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괜히 멀리서 찾으려고 고생하지 말라. 네 짝은 네 가까이에 있어 라고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음에 기대되고 흥분되지 않겠어요? 멀리 가서 고생할 필요도 없고요. 그런데 굳이 가까이에서는 안찾으려고 합니다.
아무튼 지파 안에서의 결혼을 제한한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 율법,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제문제의 가장 중요한 골격이 되는 토지문제를 지키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하는 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여자 상속법에 나오는 자기 지파 안에서의 결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 제도를 지켜주는 가장 큰 법은 바로 희년을 지키는 것입니다. 50년이 되면 모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처음 주셨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땅도 본래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고, 남의 집에 팔려간 종도 다시 본래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 기업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부모의 가난이 자식에게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매우 잘 된 제도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의 순종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그들이 모두 광야에 있고, 가나안에 들어가면 당분간은 자기 땅을 가지고 어느 정도 살겠지만, 분명 세월이 가면서 그들 가운데 생겨난 빈부의 격차, 그리고 그런 문제는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말씀 한 구절 한 말씀을 소중히 생각하면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희년이 얼만큼 지켜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것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스라엘에 왕정제도가 생기면서도부터였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생기면서 왕은 군사력과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군사력을 지니고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물질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 물질을 위해 왕은 토지를 소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8장에서는 왕을 달라고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무엘 선지자가 왕의 제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말씀합니다. 왕정제도가 생기면 왕이 너희의 아들들을 취하여 왕의 병거와 말을 돌보게 할 것이고,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를 만드는 일을 시킬 것이고, 요리도 하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너희의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엇입니까? 토지제도가 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성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삼상 8:19-20) 이것이 죽는 길임을 모르고 왕을 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결국 망할 때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모든 땅은 왕과 소수의 귀족들의 것으로 돌아갔고, 부한 자들은 계속 부하면서 하나님을 떠나고 타락한 길을 갔고, 굶주린 백성들은 고통 속에서 가난과 아픔으로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길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길밖에는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경제의 위기를 보면서 이것이 얼마나 큰 어려움인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제지식이 없어도, 그리고 이 일을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것이 아닙니다. 본문 8-9절을 보십시오. 8-9절에서는 이 법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에게 적용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일은 슬로브핫 딸들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만, 그 시대에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왜 땅 분배가 그렇게 중요한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라와 백성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은 순종할 때 비로소 그 말씀의 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곧 생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순종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일면 맞습니다. 그러나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비로소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들을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13절을 보십시오. “이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니라.”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느낍니까? 민수기는 시내산에서 시작해서 요단 가, 가나안 땅의 첫 성인 여리고 맞은편, 곧 모압 평지에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민수기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광야 40년의 삶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 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이로 인한 고난의 세월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셨던, 광야 1세대를 통해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이루시기 원하셨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을 통해 일하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들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한 세대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광야 40년의 긴 방황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마지막 장에 이 말씀이 들어있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그들은 이제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삶의 출발이자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10-12절을 보시면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들의 삶에,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참된 평안과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순종하는 길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순종은 생명을 낳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아버지 몫의 땅을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지파 안에서 결혼하라고 하니까 그대로 지파 안에서 남자를 만난 것입니다. 마음 놓고 지파 안에서 골라 결혼한 것입니다. 그래서 복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복이냐고요? 그게 복입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기업을 주셨습니다.
받은 복을 헤어려 보십시오. 가족과 배우자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소중히 여기십시오. 시간과 생명과 관계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다시 안 볼 사람처럼 대하지마십시오.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손과 발이 있음으로 인해 감사하십시오. 어느 성도님께서 토요일 아침마다 하는 교회청소를 마쳐 놓고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에 오히려 본인이 감사하고 기쁘다는 말로 대답하는 것을 듣고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꼈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기쁨, 그런 감격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기쁘게 하고, 감사하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기업을 놓치지 마십시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 기업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신자의 희망
민 36:1-13
인간은 현재의 불만 속에서 과거를 후회하거나 동경하며 미래를 희망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과거란 좋았든 나빴든 지나간 것이기 때문에 과거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문에 모든 인간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는 지금의 처지보다 좀더 나은 환경을 꿈꾸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게 마련인 것입니다. 비록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내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비록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들 속에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을 미래를 물으면서 살아갑니다. 내일, 모레, 또는 몇 년 후 몇십 년 후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내 가정에 내 나라에 이 지구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것인가? 이런 것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정확한 해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걱정하고 희망을 두고 사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요즘 같이 경제가 어려울 때는 더욱 더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희망을 가져보지 않습니까?
이렇게 오늘날 사람들의 희망은 철저하게 현실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묻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죽음 이후의 세계라는 것이 하나의 인간의 상상일 뿐 실재로 존재하는 않은 세계일 것이라는 의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에서는 내세라는 것에는 희망을 두려고 하지 않고 오직 현실 위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죽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의문을 품을 수도 없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죽음 앞에서 인간의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죽음이 인간의 마지막 종점이라면 인간이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산다고 해도, 또 그 희망대로 이루어 졌다고 해도 결국은 죽음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희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에게 있어서 참된 희망이란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일 뿐 그 누구도 이것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모든 인간은 그 죽음의 흔적을 몸에 지닌 채 세상을 살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인간의 희망과 죽음에 대해서 먼저 말씀을 드린 것은 죽음 앞에서는 인간의 희망은 의미 없고 가치 없는 것임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현실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이란 내 뜻대로 내 마음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을 버리려고 하지 말고 다만 인간에게는 죽음이란 무너뜨릴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인생이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참으로 쓸데없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죽음의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너무 쉽게 잊고 삽니다. 특히 세상으로부터 존경받고 칭찬 받고 대우받을 때 죽음의 과정 속에 있는 자신을 잊어버리고 높여지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흡족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신자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죽어가고 있으며 죽음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흔적을 우리의 삶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병이 들고, 늙어 가고, 노동을 해야 하고, 한평생 고생하면서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이 죽음의 신호탄입니다. 죽음을 짊어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죽음의 흔적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희망은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음속에 희망을 품고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께 있는 죽음의 흔적은 생각지도 않은채 현실의 희망만 품고 산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여서 말씀을 듣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이시간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있는 죽음의 흔적을 분명히 발견하고 나오셔야 할 것입니다.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결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옛날부터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불사약, 불로초라는 있지도 않은 약을 상상하게 만들었고, 피라밋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었지만 그 무엇도 죽음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을 찾으면 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죽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의 문제는 그리스도안에서만 해결되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무조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죽음이란 죄의 결과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의 해결은 죄문제를 해결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죄문제만 해결하면 죽음에 대한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되어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죄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입니다. 죽어야 하고 피흘려야 하는 그 요구에도 자기의 희망을 드러내지 않고 순종하심으로 죄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신자의 삶의 원칙이 무엇이었습니까? 땅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땅은 어떤 땅입니까? 예수님의 피가 흘려진 땅입니다. 하나님께 순종치 못하는 우리로 인해서 피흘려진 땅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예수의 피가 흘려진 땅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곧 땅을 더럽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정신을 온전히 드러내며 사는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죽음이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여전히 죽음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죄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죄속에서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에 죽음의 흔적은 여러분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불만, 불평, 슬픔, 불행감 그 모든 것이 죽음의 흔적입니다. 여러분이 여전히 죄가운데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죄 때문에 스스로 짊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짐을 모두 남 탓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자기 불행의 원인을 자기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원인은 여러분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을 느끼고 불만이 있고 슬픔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생을 생각하는 방식으로 예수님의 인생을 생각하면 불행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를 불행한 인생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도 한마디로 표현하면 순종입니다. 그런데 저마다 자기 희망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는 것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죄가운데 있는 인간의 모습이고 죽음의 흔적인 것입니다. 감사하고 기뻐하다가 자식이 취직이 안돼는 것 때문에 슬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의 흔적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내 욕심 때문에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몸이 아플 때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죄가운데서 살기 때문에 몸이 아픈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십시오. 사고를 당했다면 내가 죄가운데 살기 때문에 사고를 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십시오. 죄악 가운데 살면서 자기 희망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신자는 자포자기한채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세상에 희망을 두지 말고 다른 세계에 희망을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피할 수 없고 벗어버릴 수 없는 죄악으로 인해서 죽음의 흔적을 몸에 지난 채 인생을 살아가지만 이 죄를 완전히 벗어버릴 그 나라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하늘과 새땅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의 희망으로 채워지기 위해서는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희망이 없고 가능성이 없고 오직 죽음의 흔적만 가득 가진 채 결국 멸망으로 사라질 세상으로 볼 때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희망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슬로브핫의 딸들의 결혼 문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린 민 27:1-11절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이 자기들에게 기업을 달라는 요청을 함으로서 그들에게도 아비의 기업이 주어졌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 이들에게는 기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른 지파로 시집을 가게 되면 결국 슬로브핫의 딸이 속해 있는 지파의 기업이 상실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다른 지파로 시집을 가지 못하게 함으로서 기업을 보존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슬로브핫의 딸들의 결혼은 단지 남녀간의 결혼이 아니라 기업을 짊어지고 그 기업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한 결혼인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결혼할 때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자기 행복을 위해서나, 미래의 희망을 안고 결혼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을 그대로 유지하고 전달하기 위한 결혼인 것입니다. 시집을 가되 자기를 위한 시집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 멋대로 자기 인생을 위해서 자기 마음에 대는 남자를 골라서 시집을 가게 되면 한 지파의 기업이 상실되어 버리고 하나님이 정해준 기업이 엉뚱한 지파에게로 흘러가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결혼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기업이 그대로 전달되어지느냐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결혼에 대한 어떤 법칙을 찾아내기보다는 신자된 사람으로서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인간은 죽음의 흔적을 지닌 채 산다고 했습니다. 죄가운데 있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우리이지만 그러나 죽음을 이길 수는 있습니다.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죽음이라는 사슬에 묶이게 했던 죄의 문제에서 영원히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더 이상 죽음과 상관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아들을 희생의 자리로 보내셔서 부활을 가능케 하신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를 지금 여러분이 입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음의 흔적 위에 은혜의 흔적을 입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을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해서 살아가야 하고 죽음의 흔적을 나타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흔적을 나타내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들이 자기의 희망을 앞세운 채 내 인생을 위해서 내 마음대로 살아가고, 내 행복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죽음의 흔적을 드러내는 인생이 되는 것이고, 반대로 죽음 속에서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중요하고 은혜를 나타내는 것이 더 귀한 일임을 깨닫고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인생을 산다면 그것이 곧 은혜의 흔적을 나타내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눈물을 흘리고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은 이 땅에 저주받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악하기 때문에 세상이 악한 것이고 내가 악하기 때문에 세상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내세를 모른 채 온통 세상에만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여러분은 다같이 하나님의 복음을 짊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대로 자기에게 좋은 것은 선택하고 나쁜 것은 버리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닙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시집을 가도 하나님의 기업을 짊어지고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어디를 가도 은혜를 나타내야 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일을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내마음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죽음에 서서 산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죽음을 잊고 살기 때문에 죽음 위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은혜의 실체도 발견하지 못한 채 입으로만 은혜를 떠들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달하기 위해서 자기의 삶을 포기하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세상의 악함이 자기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기고, 오직 자기 행복을 찾아 살기 때문에 예수님이 피흘리셔서 주어진 땅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는 것은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만이 피흘리신 주님을 원할 것입니다. 죽음의 흔적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고는 예수의 피를 믿을 수 없습니다. 죽음을 잊어버렸는데 어떻게 죽음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피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죄를 멈출 수 없고 죄를 고칠 수도 없는 인간입니다. 죄속에서 죽어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깨끗케 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새하늘과 새땅이지 우리의 죄로 더러워진 이 땅이 아닙니다.
더러운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새하늘과 새땅에 공짜로 들어가게 하시는 사랑과 자비, 그것이 곧 신자된 우리의 희망입니다. 슬로브핫의 딸은 마음대로 살아갈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기업이 주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하나님의 기업의 약속이 주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붙들려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과 자비를 전달해야 할 사람으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무엇을 보여주며 살아갑니까? 돈이 있으면 행복하고, 자식이 잘되는 것이 행복하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행복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하늘나라가 인생의 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삶이 되십시오.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는 사랑과 자비를 지키는 삶이 되십시오.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환경 속에서 내 죄 때문에 짜증이 나고 걱정이 생기고 근심이 일어나고 불평이 날 때마다 여러분에게 드리워져 있는 죽음의 흔적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여러분의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럴때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할지 삶의 목표가 분명해 질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순탄치 못하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세상살이가 순탄하면 행복해지고 순탄치 못하면 불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세상을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고 내 편하기만 희망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은 죽음인 것을 잊지 마시고 모든 희망을 새하늘과 새땅에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이 짊어지고 있음을 잊지 말고 복음을 지키고 복음이 전달되어지는 삶이 되기를 힘쓰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