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새벽공과와 설교

20160916 / 욥 6:14-23 / 내 형제들은 변덕스럽고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16.09.15|조회수114 목록 댓글 0

내 형제들은 변덕스럽고

6:14-23

첨부파일 새벽몌배20160916.hwp

14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15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16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추어질지라도

17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

18 대상들은 그들의 길을 벗어나서 삭막한 들에 들어가 멸망하느니라

19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20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21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22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했더냐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을 선물로 달라고 하더냐

23 내가 언제 말하기를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폭군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6:14-23 / 이토록 고통을 당하는 나에게는 애정 어린 벗이 필요한데, 전능하신 이 향한 믿음 깨어져 그 믿음조차 잃어버린 나에게는 진한 우정이 필요한데, 15) 한 핏줄이라는 내 형제들조차도 나를 배반하고 돌아섰다네. 시냇물처럼, 금세 말라버리는 시냇물처럼 돌아섰다네. 16) 이른 봄날이 되어 따뜻해지면 얼음도, 쌓였던 눈도 다 녹아내려서 흙탕물로 변하여 개울을 가득 채우기라도 하지만 17) 여름의 뜨거운 햇살 내리쬐기라도 하면 그것조차 이내 사라지고야 말지. 그 개울바닥이 아예 메말라 붙어 버리지. 뜨거운 햇볕 아래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지. 18) 떠돌아다니며 장사하던 무역상들 목말라 물 먹고 싶어 자취 없이 사라진 시내에 찾아왔다가는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되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급기야 거친 들에서 목숨 잃을 것 뻔하지 않은가? 19) 데마의 무역상들도 물을 찾으러 왔다가는 실망하고 돌아가지. 스바의 무역상들도 그렇게 물이 먹고 싶어 애를 태우나 아무리 찾아도 물 한모금 구할 수 없어 어찌할 줄 모르지 않겠는가? 20) 물 흐르던 시내에서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무슨 물이 있겠는가? 결국 허탕만 치고 나서는 낙심할 수밖에 오히려 그 손 부끄러울 수밖에 더 있겠는가? 21) 자네들도 내가 보기에는 바로 이러한 시내와도 똑같군그려. 무척 실망스러울뿐이네. 그래, 내 이러한 꼴을 바라보니 이렇게 무서운 모양을 바라보니 겁이라도 난단말인가? 두렵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22) 내가 언제 자네들에게 무엇이라도 좀 달라고 하던가? 자네들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축내어 뇌물이라도 써달라고 하던가? 23) 원수들 버젓이 있으니 그 손아귀에서 빼내 달라고나 부탁하던가? 압제자의 손에서 건져 달라고나 하던가?

 

욥이 무정한 친구들에 대하여 질책하고 있습니다.

 

동정을 받는 것은(14) 14절은 욥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친구들의 위로와 온후한 동정어린 사랑의 말이었는데 정죄와 책망만 있을 뿐이어서 그 상한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혹 욥이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4:7-8) 엘리바스는 욥을 권고하고 동정하는 참다운 우정을 보여주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19:21-22).

 

말라버린 개울이구나!(15-17) 친구들은 욥이 절실히 필요로 했던 따뜻한 동정과 위로는 주지 않고 관념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변론과 주장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욥을 무너뜨리고 마음에 울화를 쌓도록 계속 자극시켰습니다. 욥은 이런 친구들의 모습을 또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의 높은 산의 협곡에 눈이 내리고 기온이 더 하강하면 그 산의 협곡의 물들이 얼게 되고, 종종 그 얼음 위에 또다시 눈이 내려 겹겹으로 얼게 되어 협곡의 얼음 층을 형성하지만, 곧 뜨거운 날씨가 시작되면 그 눈과 얼음들이 녹아 검은 흙탕물로 불어나 넘쳐흐르는 개울이 되었다가 얼마 못가서 바짝 말라 흔적조차 없어지는 것 같은 자들이라는 평가입니다.

 

마른 개울 같은 자들이여(18-23) 그리하여 흔적조차 없이 말라버린 개울로 인하여 그곳을 지나가는 대상들이 물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사막에서 죽고 데마의 대상들과 스바의 상인들도 물을 찾아 헤매다가 바싹 마른 시냇가에 와서는 기대가 무너져 낙심하고 말았다는 비유적인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시내와 같은 자들이 너희들이라고 원망합니다. 즉 사막 광야에서 물이 떨어져 점점 목마름으로 타들어가 걸을 힘조차 사라져 쓰러지기 직전의 절대 절명의 생명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 지금 자신의 형편과 같다는 비유입니다. 욥 자신이 그런 때이므로 친구들로부터 털끝만큼의 도움이라도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냉담한 질책만 당한 신세라 자신의 참담한 심경을 토로한 것입니다(6:1). 또한 그들은 욥에게 내려진 두려운 재앙의 참혹함과 건강조차 회복되어질 가능성이 희박함을 깨닫고 두려워하며 넌지시 발뺌하고 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이기적 성향을 꿰뚫어보고 직설적으로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라고 한 것입니다.

 

적 용 : 극심한 고통 중에서 마지막 믿음의 한줄기를 붙잡고 처절히 견디는데 그것마저 친구들이나 이웃 혹은 영적 선생들로부터 부정당하고 정죄 당한 적은 없습니까? 우리는 이때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지나치리만큼 고난 속에 있는 형제를 대할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신중하게 말을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실패한 삶을 책망한 꼴이 되고, 나아가 비난과 정죄를 했구나 생각이 들어 후회 할 때가 있습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처럼 형제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체휼 할 수는 없는지 많이 기도합시다.

 

< 설 교 >

지금 욥에게 필요한 것은

고난받고 있는 욥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욥이라면 친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겠습니까? 반대로 여러분이 욥의 친구라면 욥에게 무엇을 주고 싶습니까? 욥은 친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 세 가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1. 한결같이 그리고 끝까지 믿어주는 마음입니다(14-15).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는 것처럼 욥은 그의 친구들이 진짜 욥을 위로해 주기 원한다면 끝까지 그리고 한결같이 믿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을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개울의 물살같이 지나가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개울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일단 깊이가 얕아서 소리가 요란합니다. 그리고 금방 물이 불었다가 순식간에 줄어들기도 합니다. , 물줄기의 방향도 그때마다 다르게 바뀝니다. 그러나 큰 강은 큰물이 흘러가지만,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의 방향은 한결같습니다. 이처럼 욥은 그의 친구들을 향해 개울처럼 상황에 따라 변하는 믿음이 아니라 한결같이 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믿어주는 마음을 원하고 있습니다.

 

2. 진짜 필요할 때 채워줄 수 있는 관심입니다(16-19).

얼음 녹은 물의 비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고지대에 쌓였던 눈과 얼음이 녹아내릴 때에 주변의 흙과 먼지가 함께 쓸려 내려오는데 그 빛은 검은색을 띄게 됩니다. 막상 여름이 되어 필요할 때가 되면 그 양은 급격히 줄어들어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떼를 지어 여행하는 객들은 사막의 폭염 가운데 갈증으로 허덕이다가 시내를 발견하지만, 그 물이 메말랐음을 보고 실망합니다. 극심한 갈증에 허덕이다 물을 보고 달려가지만, 그것이 신기루였음을 알고 크게 낙심하는 것처럼 욥은 친구들이 찾아와서 하는 말은 현재 욥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사막에서 물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 신기루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것이라도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때에 도움을 주는 관심이 필요합니다.

 

3. 위선이 아닌 참사랑의 말입니다(21).

욥의 친구들이 왜 두려운 일을 본즉 겁을 내겠습니까? 욥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욥을 위로해주기 위해 왔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은 하나님의 연단의 차원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벌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욥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주는 대신 따가운 경책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욥은 고난을 받고 있지만 친구들은 고난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의 고난이 죄로 인한 것이면 반대로 자신들이 고난 가운데 없는 것은 죄가 없다는 것의 입증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친구들의 태도는 욥에게 있어서 매우 비겁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내면에는 자신이 의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위선자들입니다. 가식적이고 위선 된 말보다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참사랑의 말 한마디가 욥에게는 필요했습니다.

 

이처럼 오늘 날 고난을 받고 있는 형제자매들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상황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끝까지 믿어주는 마음과 필요할 때 채워줄 수 있는 관심 그리고 위선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참사랑의 말을 전할 수 있는 지체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