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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50124 /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 1 / 창 10:1-14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5.03.31|조회수190 목록 댓글 0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 1

창 10:1-14

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3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4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5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창 10:1-14 / [노아의 후손들;대상1:5-23] 노아의 세 아들인 셈, 함, 야벳의 후손들은 이러하다. 이 세 아들은 홍수가 지난 뒤에 자녀들을 낳았다. 2) 야벳의 아들은 다음과 같다.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이고 3)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 리밧, 토갈마이다. 4)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 달시스, 깃딤, 도다님이다. 5) 이들은 모두 해변가에 살거나 또는 여러 섬에서 사는 사람들의 조상들이다. 이들은 모두 야벳의 후손들로 각기 다른 부족과 나라를 이루어 서로 다른 말을 쓰며 살았다. 6) 함의 아들은 다음과 같다. 구스, 미스라임, 붓, 가나안이고 7) 구스의 후손들은 스바, 하윌라, 삽다, 라아마, 삽드가이다. 라아마의 후손은 스바와 드단이다. 8) 구스는 니므롯이란 아들을 낳았는데 니므롯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다른 나라들을 휘어 잡은 정복자였다. 9) 또한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도 대단한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니므롯과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대단한 사냥꾼이다.'라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였다. 10) 그가 초창기에 정복한 나라는 시날 땅에 있는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였다. 11) 그는 거기에서 앗수르로 이동하여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 같은 성읍을 건설하였고 12) 또한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 레센이라는 큰 성읍도 건설하였다. 13) 미스라임의 후손들은 룻 사람, 아남 사람, 르합 사람, 납두흐 사람, 14) 바드룻 사람, 가슬루흐 사람, 갑돌 사람이다. ㄱ) 블레셋 사람은 이 가슬루흐 사람에게서 나온 사람들이다. (ㄱ. 히브리어 성서(마소라 본문)에는 블레셋 사람이 가슬르흐 족속에게서 나왔다고 되어있다.)

 

본문은 야벳과 함의 자손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벳의 계보(1-5) 본 장은 홍수 후에라는 시간적 시점과 노아의 아들들이라는 인물의 계보로 묶여지고 있습니다. 모든 민족들의 계보에서 가장 먼저 야벳의 족보를 소개합니다. 이는 창세기 전반에 보여지고 있는 형식입니다. 언제나 셋의 후손(5:6-32)보다 가인의 후손(4:16-24)을 먼저 소개하고 있고, 이삭보다 이스마엘(25:12-26)이 먼저 소개됩니다. 여기서도 셈(21-31)보다 야벳(2-5)과 함(6-2)이 먼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언약의 직접적 계승자를 나중에 기록하는 창세기의 독특한 형식으로서 하나님의 섭리가 점차적으로 계시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벳의 족보는 바닷가의 땅에 머문 나라들로 시작이 됩니다(5). 이는 셈과 함과 야벳 족속이라는 큰 세 무리를 나눌 때 기준이 되는 것은 종족적인 관점이 아니라 지리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야벳 족속을 소개할 때에 모든 자손을 소개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곱이라는 숫자의 상징에 더 주목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벳의 족보에서는 야벳의 아들 일곱 명과 손자 일곱 명 도합 14명만을 소개합니다. 이들이 야벳의 족속을 대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나뉘어서”는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 이후의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5).

 

함의 계보1(6-14) 함의 아들들은 주로 이집트, 가나안, 남아라비아, 에디오피아 등지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윌라는 모래땅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는 아라비아에서 페르시아만 사이의 광활한 사막 지대입니다. 스바는 솔로몬을 방문했던 스바의 여왕으로 인하여 성경 다른 곳에서도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왕상 10:1-10). 하지만 스바 지역이 어느 곳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구스가 낳은 니므롯은 세상에 첫 용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강력한 세력을 가진 첫 국가로 보여집니다. 한편 니므롯을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였다는 의미를 암시하는 구절입니다. 함의 계보에서는 이뿐만 아니라 앗수르와 니느웨 그리고 블레셋까지 나옵니다. 이들은 모두 복음의 계보와는 척을 지는 이들이었습니다. 한편 함의 족보에서도 일곱이라는 숫자로 그 형태가 통일되고 있습니다. 이름 외에 숫자로 상징하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적용: 성도는 어떤 계보를 가지고 태어났는지 보다, 어떤 믿음의 가문을 이루는지가 중요합니다. 당신의 가문을 위하여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범위 내에 있는 50대와 그저 주변 사람에게 공감과 도움을 베풀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50대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80대가 되었을 때, 더 건강한 쪽은 누구일까요? 건강과 행복의 비결을 연구해 온 하버드 의대 과학자들에 따르면, 80대에 더 건강한 사람은 50대에 인간관계의 만족도가 더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한집에 살며 같은 저녁을 먹는 부부일지라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한 사람은 장수의 혜택을 누렸지만 상대 배우자는 그러지 못했다고 합니다. ‘따뜻한 공감과 친밀한 관계’가 더 좋은 삶의 핵심 열쇠입니다.

 

< 설 교 >

나라들의 기원

피영민목사 / 창세기 10:1~5

서론

창세기 10장은 노아 세 아들의 족보인데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과 지명만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건너뛰고 싶지만 디모데후서 3장 16절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기 때문에 창세기 10장도 우리의 유익을 위해 기록한 말씀인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비옥한 땅도 있고 사막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도 설교하기 쉽고 재미있는 부분이 있고 설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0장은 사막같이 지루하고 어려운 부분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과 삶에 너무나도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창세기 10장이 중요한 이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라들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고 어느 지역에 정착되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창세기 10장이 없었다면 우리는 나라들의 기원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10장의 기록이 놀라운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창세기 9장에 노아가 예언한 그대로 다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야벳의 족속은 창대했고 함의 후손 가운데 가나안 족속은 종의 종이 되었고 셈의 후손들은 영적인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둘째, 창세기 10장에 나온 내용이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 된 것입니다. 창세기 10장 2~5절까지 야벳으로부터 14개 국가가 형성되었고 6~20절까지 함으로부터 30개 국가가 형성되었고 21~31절까지 셈으로부터 26개 국가가 형성되어 도합 70개 국가의 형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나온 70개 국가들이 정착한 지역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벳의 후손들은 터키부터 스페인까지 유럽지역에 정착했고 함의 후손들은 애굽, 에티오피아, 아프리카,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셈의 후손들은 중동지방으로부터 동쪽으로 정착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대한민국은 야벳의 후손이 아니고 함의 후손도 아니고 셈의 후손인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기록들을 도대체 누가 가지고 있었습니까?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했는데 아마도 셈을 통해서 그 기록이 전수되었을 것입니다.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 11:10~11). 셈은 600세까지 살았습니다. 꽤 오래 살았는데 제가 계산해봤더니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 셈은 396세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도 셈은 젊었다는 것입니다. 600세에 죽었으니 369세면 청년기에 해당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 계산을 해보면 야곱이 태어날 때 셈은 556세였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태어나고도 44년을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셈이 가지고 있던 기록을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자손들이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면서 야곱의 자손들이 셈의 기록물을 가지고 있다가 모세에게 전수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0장의 기록을 셈이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창세기로 기록한 사람은 모세였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때는 자료만 의존한 것은 아니라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창세기 10장의 내용에 관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관찰해보겠습니다.

 

Ⅰ. 창세기 10장의 내용에 관한 몇 가지 질문

 

➊ 나라들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엇이냐?

창세기 10장 5, 20, 31절에 세 번이나 등장하는 표현이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나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라의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언어입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같은 나라를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종족입니다. 종족은 다른 말로 하면 씨족(clan)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낳는 자녀들의 성씨에 따라서 각기 나라가 형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어의 혼란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 이후에 온 것이니까 창세기 10장과 11장의 순서를 바꿔야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창세기 10장은 나라가 나뉘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고 창세기 11장은 나라들이 나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인 언어의 혼란이 바벨탑 사건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순서를 바꿔야 될 필요는 없습니다.

➋ 나라들이 나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부터냐?

언제부터 나라가 나뉘기 시작했느냐? 노아의 세 아들들이 부지런히 자식을 낳고 노아도 자식을 낳으면서 처음에는 한 곳에 뭉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뉘어져서 국가가 형성되었느냐? 그 대답은 창세기 10장 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2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창 10:22~25). 에벨은 셈의 3대손이고 벨렉은 셈의 4대손입니다. 창세기 11장에서 계산해보면 벨렉은 홍수가 난지 107년 후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벨렉은 그 이름의 의미가 ‘나누임’(division)이고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뉘었다고 했으니까 벨렉이 태어나고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고 언어가 혼잡해지자 서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수 이후 약 100년 동안은 노아의 세 아들과 그 후손들이 같이 살다가 바벨탑 사건이 일어나면서 언어가 달라지고 그때부터 흩어져서 국가가 형성된 것입니다.

➌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언어의 혼란이 와서 국가가 나뉘게 되었는데 바벨탑 사건을 일으킨 주동 인물이 누구냐?

창세기 10장 8~12절까지의 기록을 보면 니므롯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 (창 10:8~12). 니므롯은 함의 손자입니다. 그리고 니므롯은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고 했습니다. 영걸은 영웅호걸을 줄여서 영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앞에 특이한 사냥꾼이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니므롯은 나라를 세웠는데 그의 나라가 시날 땅의 바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의 창시자가 니므롯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바벨론은 나중에 느부갓네살이 통치할 때 굉장히 번영했습니다. 니므롯은 창세기 10장에 다섯줄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지만 인류 역사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마치 ‘히틀러처럼 고약한 독재자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니므롯과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다’라고 하는 속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영걸이고 특이한 사냥꾼이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9장 2절을 보게 되면 홍수가 끝난 후 땅에 모든 짐승이 인간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인간이 짐승을 두려워합니다. 방주에는 공룡도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있었을 텐데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런데 이때 니므롯이 구세주처럼 나타나 맹수들을 사냥하는 것입니다. 활을 매고 맹수들을 잡으러 다니면서 인간들의 보호자로 자처하고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뛰어난 기량을 갖췄던 니므롯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갖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이 커짐에 따라서 바벨론이라는 국가를 창시하였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정복하였습니다.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창 10:11). 니므롯은 앗수르를 침공하였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라는 사람은 셈의 둘째 아들입니다.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창 10:21~22). 함의 후손인 니므롯이 셈의 후손인 앗수르를 침공하여 나라를 빼앗은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 보면 ‘그는 여호와 앞에 특이한 사냥꾼이다’를 ‘그는 여호와를 대항하는 사냥꾼이다’로 번역했습니다. 니므롯이라는 이름은 ‘대적, 반역’(rebellion)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유대의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바벨탑을 쌓도록 선동하고 주동한 인물이 니므롯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도록 주동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요세푸스가 그렇게 기록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도록 선동하고 주동했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의 스코틀랜드(Scotland) 목사였던 알렉산더 히스롭(Alexander Hislop)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히스롭은 ‘두 개의 바벨론’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니므롯이 바벨론 종교의 창시자라고 주장합니다. 니므롯은 셈의 둘째 아들인 앗수르를 죽임으로 인해 재판을 받았고 결국 그가 죽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니므롯이 죽은 후 그의 아내였던 세미라미스는 어린 아들 담무스를 가리켜 남편인 니므롯이 환생했다며 바벨론 종교를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니므롯은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고 애굽 신화에도 나옵니다. 이처럼 온갖 신화와 우상숭배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B.C.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해주고 인정해주자 바벨론 종교가 기독교와 혼합하게 되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로마 가톨릭이라고 알렉산더 히스롭은 주장합니다. 그의 주장은 빈약하고 허점이 많지만 니므롯이라는 한 사람이 인류역사에 얼마나 크고 악한 영향을 주었는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국가를 창시한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반역하는 인생은 인류 역사에 큰 해악을 주는 인물일 수밖에 없다는 대표적인 예를 니므롯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Ⅱ. 창세기 10장의 두 가지 교훈

 

창세기 10장은 두 가지 교훈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교훈인데

➊ 하나님의 관심은 지금 셈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했는데 여인의 후손이 셈의 후손으로부터 나온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0장을 보면 셈의 족보보다 야벳의 족보와 함의 족보가 먼저 나옵니다. 야벳이 먼저 나오고 함이 그 다음에 나오고 셈이 제일 나중에 나옵니다. 그런데 창세기 10장 21절에서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에벨은 누굽니까? 셈의 아들이 아르박삿이고 아르박삿이 셀라를 낳았고 셀라가 에벨을 낳았습니다. 즉, 에벨은 셈의 증손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셈을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에벨로부터 히브리라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에벨을 강하게 발음하면 헤벨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헤벨을 조금 더 강하게 발음하면 히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셈은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라는 말이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표현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관심은 셈에게 있는데 왜 야벳과 함을 먼저 내세웠느냐?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셈으로부터 메시야가 나오지만 셈의 후손에게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야벳과 함의 후손 전체에게 확산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우주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고 베드로에게 ‘내가 깨끗다한 것을 네가 더럽다하지 마라’고 계시하셔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확산된 것입니다.

➋ 야벳의 후손이든 함의 후손이든 셈의 후손이든 인류는 한 인종(race)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0장은 여러 인종에 관한 기록이 아니고 여러 국가에 관한 기록입니다. 하나의 인종으로부터 족속이 나오고 국가가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이나 조상은 노아 한 사람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인 것입니다. 인류는 하나의 인종이라는 것이 성경의 명백한 교훈임에도 진화론자들은 이 진리를 거부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여섯 가지 그림으로 표현되는데 원숭이로부터 시작해서 원숭이와 인간의 연결고리로서 루시라고 불리는 존재가 나옵니다. 그리고 흑인이 등장하고 그 다음에 황인 마지막에 백인이 나옵니다. 그래서 흑인 조상은 고릴라고 황인의 조상은 오랑우탕이며 백인의 조상은 가장 진화한 침팬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흑인, 황인, 백인의 인종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소위 ‘인종차별주의’(racism)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경우가 히틀러의 사상입니다. 가장 진화된 인종으로 온 인류를 유지하려면 덜 진화된 다른 인종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인종차별주의자가 되기 쉽습니다. 저는 미국의 루이지아나주에 5년 정도 살았습니다. 그런데 루이지아나주에서 주지사로 나왔지만 떨어졌고 미국 대통령 경선에도 나갔지만 떨어진 데이비드 듀크(David Duke)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인데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다가 고민한 끝에 진화론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인이 다른 인종들보다 우월하다는 사상을 갖게 되었고 소위 ‘KKK’라는 단체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KKK는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집단입니다. 이들은 머리를 스님처럼 깎고 흑인이나 아시아인이 백인의 이익을 빼앗으려고 하면 죽이기도 하고 핍박하는 아주 무서운 집단입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흑인이나 황인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백인을 위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몰몬교는 함의 후손이 니그로인이라며 저주받은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이 언제 함의 후손이 니그로인이고 그들 모두가 저주 받았다고 가르쳤습니까? 성경은 함의 후손 가운데 가나안만 저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도 노아가 가나안을 저주한 것이 흑인의 기원이라고 말하며 흑인들을 차별합니다. 그렇다면 몰몬교나 여호와의 증인만 인종차별을 하고 있느냐? 근본주의 기독교의 지도자인 존 라이스 목사도 다른 인종간의 결혼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며 인종을 구별합니다. 그래서 근본주의 기독교 대학인 밥 존스 대학은 2000년까지 소위 국제결혼한 사람들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미국 남침례교회에서도 흑인들을 받아들이는 백인 교회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악한 현상들은 결국 창세기 10장의 교훈을 배우지 못한 결과입니다. 모든 인류는 한 인종이기 때문에 한 인종에서 나온 족속들이 서로 혼인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백인과 흑인이 결혼하거나 아시아인이 흑인과 결혼하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로 인종이 같기 때문입니다. 단지 멜라닌의 양에 의해 피부색이 다를 뿐입니다. 인류가 멜라닌의 양으로 구별된다면 왜 흑인, 황인, 백인으로만 구별합니까? 황인 중에서도 백인 같은 황인이 있고 흑인 같은 황인이 있는데 그런 것까지 세분화해서 구별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인류를 구별하는 기준은 멜라닌의 양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흑인들 중에도 훌륭한 사람들이 있고 백인들 중에도 훌륭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론

 

대한민국은 단일민족국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은 국제결혼도 많이 하고 외국인들이 귀화해서 이제는 더 이상 단일민족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현상을 핍박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와 조금 다르게 생겼다고 해서 핍박하는 것은 창세기 10장의 메시지와는 어긋난 반인륜적인 죄악입니다. 사도행전 17장 26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명백히 선포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행 17:26). 인류는 피부색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는 한 인종입니다.

그런데 인류를 구별하는 한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영생을 얻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 것이며 마귀의 자녀들은 지옥에서 영원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인류는 이렇게 둘로 갈라집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구분은 셈의 후손으로부터 나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별됩니다.

그러므로 백인이 흑인과 결혼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미국 사람과 결혼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불신자와 결혼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마귀의 자녀와 결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눅 2:34). 예루살렘의 경건자인 시므온의 말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패하고 흥함의 표적이고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흥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고 패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부인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고 우리 자손들도 우리와 동일한 믿음으로 사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노아의 아들들 - 생명을 확장하는 삶

창 10:1~20 / 이상호목사

창세기 10장은 9:19절의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는 말씀이 확대된 내용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백성이 퍼진 결과가 창세기 10장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9:1절과 7절에 "온 땅에 충만하라"고 복주신 것이 이루어졌음을 말해 줍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께서 타락한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시고 복주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창세기 10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10장은 민족태동 -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한 인종의 번성을 말합니다.

 

1. 1-5 / 노아의 아들 야벳의 후손들

1절 노아의 아들들- 셈 함 야벳

5절 바닷가의 땅에 머문 야벳의 후손들

 

2. 6-20 / 노아의 아들 함의 후손들

6절 함의 아들들- 구스, 미스라임, 붓, 가나안

7-14절 구스와 미스라임의 자식들

15-20절 가나안의 자식들

 

3. 21-32 / 노아의 아들 셈의 자손들과 각각의 민족형성

21-22절 에벨의 조상, 셈의 아들들- 엘람, 앗스르, 아르박삿, 룻, 아람

23-31절 아람과 아르박삿의 자손들

32절 노아자손의 족속이 열국백성으로 나눔

 

특별히 창세기 10장에서 인류의 온 족속에 대한 말씀이 다 기록됨으로 해서 인류가 어떻게 파생되어 나왔는지를 말해 주고 있는데, 이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한 근원에서 나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인류의 조상이 한 뿌리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사건을 순서적으로 볼 경우에 경건한 자손과 그렇지 않은 자손과의 혼돈이 예상되고 이를 방치할 경우에 나중에 구원에 관한 내용을 말할 때에 이 구원에 있어서 둘째 사람 아담에 의한 속죄에 구멍이 생긴다는 결과가 오게 되며 논란도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 의해서 다시 세상은 아담의 후손인 한사람 노아에 의해서 정비되고 한 사람, 한 영혼에 대한 근거가 성립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류의 회복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노아 그 한사람의 후손들이 땅의 각처에 흩어져 살면서 각기 그 혈통대로 번성을 해 나갑니다.

 

야벳의 후손에 대한 기사(1-5절)

먼저 첫번째 살필 곳은 야벳에 관한 기록입니다. 홍수 후에 새롭게 시작되는 인류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먼저 야벳의 후손에 대해 기록을 합니다. 그 다음에 함의 기록이 나오고 맨 끝에 셈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관심은 야벳이나 함이 아니라 셈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셈을 선택하셨고 그를 통해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먼저 야벳을 기록하게 하신 것은 야벳이나 함도 역시 하나님의 기억 속에 살아 있어서 언젠가는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어쨌든 야벳이나 함을 먼저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의도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첫 부분에는 야벳의 후손들을 기록하는데 여기의 이름들은 그대로 각 족속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즉,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다 수많은 종족을 이루어 종족들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토록 짧은 기간에 그렇게 수다한 백성으로 불어나서 번성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비록 죄를 지어 타락하기는 했지만 그 크신 은총을 다 거두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땅에 번성하여 충만하라고 복 주심이 이제 하나님의 축복과 같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 속에서 노아는 그의 눈으로 이 모든 사실들을 직접 보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때에도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두려움과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을 드렸는데 이제 이렇게 홍수 후에 파괴된 세상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감탄과 찬송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처음 세상을 창조하시는 것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이 파괴된 세상을 회복하실 때에도 하나님의 신비가 온 세상에 가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창조하실 때보다도 더 큰 능력을 나타내셔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구속은 창조 이상의 큰 하나님의 권세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자리잡은 곳을 향하여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창조 첫째날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말씀대로 빛이 생깁니다.

 

창조 둘째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늘이 생깁니다.

창조 셋째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땅과 바다와 식물이 생깁니다.

창조 넷째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와 달과 별들이 생깁니다.

창조 다섯째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물고기와 새가 생깁니다.

창조 여섯째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동물들이 생기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하신 온 누리를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아합니다.

창조 일곱째날 하나님의 안식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안식 속에 모든 피조물이 참된 평화와 기쁨을 맛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주 안에서 묵상하고 기도하며 순종할 때 창조의 역사, 치유의 역사,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1,32절) 하나님은 인류를 한 형제되게 하셨습니다.

창10:32 “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21절) 하나님은 셈의 후손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창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 창세기 10장의 기도

창10: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사랑하는 여러분!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생명을 확장하는 삶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듯 노아는 제2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듯이 우리는 제3, 제4의 영적 조상이 되어 가족과 민족을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말씀에 응답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바로 알고 고백하며 고백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하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의롭게 세우시려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존귀하게 높이려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이기는 교회가 되도록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으로 인도하려고 재림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바로 알고 믿을 때 예수의 영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될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민족은 지금 나라는 작지만 경제적으로 대단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선교사를 미국 다음으로 많이 파송한 나라입니다. 외국을 여행할 때 쓰이는 여권 중에 우리나라 여권이 대단한 힘이 있다고 합니다. 한때는 미국여권이면 세계어디나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미국여권으로도 아랍 등 못가는 나라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계 많은 나라가 환영합니다. 지구상에서 무슨 어려움이 생기면 우리나라가 제일먼저 달려가서 도와줍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 우리 민족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세계 어디로 가든지 열가정이 모이면 회당을 세웠던 것처럼 우리 민족은 세계어디를 가든지 교회를 세운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은 성실하고 끈질긴 사람들이라 어디가든 적응을 잘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겨울에 영하 20도에서 여름에 영상 40도 가까이 올라가는 기후조건을 가진 나라라 우리민족은 세계 어느 곳에든지 적응을 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선교 조건으로 최고의 조건을 가진 민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런 유능한 민족을 그동안 숨겨두셨다가 마지막 때 하나님의 귀한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일어나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세계열방을 품고 온 세계 모든 족숙을 주님께로 돌려드리는 주님의 복음사역에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다시 받은 생명으로 영생하도록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저와 여러분은 생명을 확장하는 생명입니다. 선교하고 생명을 확장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을 맛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기도> 생명의 영 보혜사 성령님이시여!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단절하는 마음을 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생명을 확장하는 영으로 충만히 채워 주시옵소서.

생명을 확장하는 삶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복에 복을 더하사 하나님의 생명을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케 하므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맛보는 삶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아의 후손들

창 10장 1~32절 / 임덕순목사

창 10장은 노아의 후손들의 족보와 그 후예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족보 이야기는 언제나 지루합니다. 그러나 족보를 모르면 뿌리를 모릅니다. 본장은 실수한 아비와, 저주받은 자식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야벳의 자녀에 대하여는 2-5까지 넉 절을 기록하였고

셈의 자녀에 대하여는 21- 31까지 열 한 절에 기록하였으나,

함의 자녀에 대하여는 무려 열 다섯 절을 할애 하였습니다. (6- 20)

10장은 함의 자식들의 족보를 기록하는데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셈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생기는데, 그 이스라엘 백성에 관하여는 앞으로 자세히 기록하여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말씀할 것이지만, 본장에서는 그들과 적대 관계를 유지하며 고난 받을 함의 자손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가로막고, 하나님을 대대로 거역하며, 대대로 저주받을 민족이 다름 아닌 노아의 아들 중에서 나왔으며, 조상인 노아의 저주로 인하여 생겼다는 매우 두려운 사실을 본 장은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배가 정박한 곳은 성경에 밝히 기록하는 바대로 아라랏 산 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가족들이 배에서 나와서 제단을 쌓고 농사를 시작한 곳은 아라랏 산 주변지역이었을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들은 거기서 머물며 자식을 낳았고 그 자식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다른 지역으로 퍼져갔습니다. 인류는 그 아라랏 산 부근에서부터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아의 후손인 셈과 함과 야벳에게서 세계의 각 족속과 백성이 나누어졌습니다. (32)

 

지질학적으로도 아라랏 산을 세계 육지의 중심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유라시아판과 알프스판, 아프리카 판 등 주요 지진대가 이 지역에 겹쳐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티그리스 강과 유브라테스강이 시작된 곳이 에덴이라고 했는데, 유브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바로 이 아라랏 산 아래서 시작됩니다. 지금도 아라랏 산 아래서부터 유브라테스 강과 티그리스강이 발원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현재의 이라크와 터키 국경지대에 속한 현재의 아라랏 산 부근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라랏산은 터키 동부 불모지 평원위에 만년설을 이고 우뚝 서 있는 산인데, 해발5165미터의 산이며, 세계에서 가장 넓은 정상을 가지고 있는 산으로, 지름이 1킬가 넘는 원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넓어서 길이 135미터 정도의 배 수 백대도 댈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 지역에는 다양한 고고학적 자료들이 많이 발굴되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주거지역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아라랏산에서는, 오랬동안 노아의 배의 유적을 찾기 위한 탐사가 계속되어 왔는데,

1886년 제임스 브라우스가 단독으로 등반하던 중, 방주 조각으로 보이는 목재를 발견했고,

1936년에는 뉴질랜드인 하드위크 나이트가 역시 방주조각을 발견했으며,

1938년에는 소련의 조종사가 공중탐사중에 얼음 밖으로 튀어나온 방주로 추정되는 물체를 찍었고,

1952년에는 미국인 죠지 그린이 헬리콥터로 6장의 선명한 직사각형 선체를 촬영했으며,

1974년 미 우주항공국 인공위성 사진에 아라랏 산에서 방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고,

1984년에는 미국 국제탐험단의 마빈 스티핀스 라는 사람이,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는데, 길이 136미터, 넓이 24미터, 높이 14미터로 성경에 나오는 방주의 크기와 일치하는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엔 관광객들이 그곳을 방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2003년 7월에는 한국의 창조사학회가 유명한 등반가 허영호씨와 함께 “노아방주 탐사단”을 파견한다고 합니다.

 

야벳의 자손들은, 이 아라랏 지역에서 북서로 진행하여 동구라파와 유럽으로 퍼져가면서 번성하였고, 그들은 유럽 족속이 되었습니다.

큰 아들인 셈의 자손들은 그곳을 중심하여 머물거나 동진하여 엘람을 거쳐 아시아에 살게 되었고 그들의 후예를 셈족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함의 자손들은 남진하여 구스와 스바로 내려가 아프리카 족이 되었습니다.

 

함의 자손들은 시날 평지로 내려가 세속적 권력의 상징인 바벨과 에렉과 악갓 등을 건축하였습니다. (7)

또, 앗수르로 내려가 니느웨와 흐로보딜과 갈라와 레센을 건축했습니다. (11,12 )

또한 이들은 이스라엘을 대대로 괴롭힌 불레셋과 여부스, 아모리, 기르가스, 히위 족속 등의 가나안 족속이 되었습니다. (15-18)

그리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극에 달하여 심판받은 소돔과 고모라를 건설했습니다.(19)

 

함의 후손들 중에서 니므롯이라 하는 영걸(英桀)이 나왔는데 "영걸"이라 하는 뜻은 박윤선 박사에 의하면, 폭력으로 세상을 통치하는자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 세상 영웅들은 거의 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힘만 자랑합니다. "여호와앞에서 특이한 사냥꾼" 이라는 뜻은, 칼빈에 의하면, 여호와께 반대하여 일어선 자, 여호와와 대등해진 듯이 교만해진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함의 자손들은 조상에게 저주를 받아서 저주받은 자가 되었는데 그 저주받은 삶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떠난 삶이요 인간의 능력을 자랑하며 인간의 힘으로 무엇을 해보겠다고 나선 교만한 삶이며, 그러다가 망하는 삶이었습니다.

인간의 저주란 다름 아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자신을 믿는 삶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누구나 저주받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을 명심합시다.

 

저주받은 함의 자손들, 노아의 실수로 인하여 원인이 되고 노아의 실수를 아들에게 떠넘겨 저주함으로 인하여 저주받게 된 함의 자손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보겠다고 나서는 교만한 집단이 되어 버렸고,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게 대대로 원수가 되어 노아가 축복한 족속인 셈과 야벳족속의 방해꾼으로 등장하여 인류가 대대로 평안할 수 없는 세상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ㄱ, 이스라엘을 400년 동안 붙잡아서 노예로 부려먹으며 괴롭힌 애굽이 바로 함족이었고,

ㄴ, 이스라엘이 가나안과의 싸움에서 작은 아이 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엄청난 손실을 보고 패전하였는데, 그 이유가 시날산의 외투 한벌과 금덩이 하나 때문이었고, 그 시날 땅이 바로 바벨탑을 쌓았던 바벨론 땅입니다.

ㄷ, 이스라엘이 나중에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거절하고 범죄 했을 때도 그들을 70년 동안 붙잡아 두고 갖은 서러움을 준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노아의 저주는 한 자식을 향한 것이었지만 그 저주는 복을 빈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주어 모든 자손들이 저주를 받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온 축복은 그 대상만 복 받는 것이 아니라 축복한 자신이 복을 받으며, 입에서 나온 저주도 그 상대방만 저주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퍼부은 자신에게도 저주가 돌아온다는 신약의 진리를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이미 증명하고 있습니다.

 

구약 전체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바벨론은 정 반대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의 대명사이고,

바벨론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인간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세력입니다.

이스라엘이 일어나면 바벨론이 쇠퇴하였고,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바벨론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짓밟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증인된 사명을 다 감당하지 못할 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몰고 와서 이스라엘 왕을 사로잡아 눈을 뽑고 그 뼈를 꺾었습니다(렘50:17).

이스라엘이 성전의 그릇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할 때 바벨론 왕이 와서 그 그릇을 바벨론으로 가지고 가서 술잔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노아가 저주한 함의 자손은, 이렇게 자손 대대로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바벨론은 지금도 영적 이스라엘인 성도들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국가로서의 바벨론은 주전 539년, 즉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끌려간 지 70년에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들의 원수 바벨론의 손에 붙이면서, 70년이 차면 다시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약속대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기 훨씬 전에 바벨론은 망했습니다. 그런데도 신약성경에는 바벨론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신약에서의 바벨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상들입니다.

계시록에 “음녀 바벨론” 이라고 말씀하는데 그것은 세속화된 교회,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고 세상 적인 방법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을 음녀라, 바벨론이라고 하셨습니다.

 

계17:에는,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한 큰 음녀 바벨론이 저주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어린양의 신부를 몹시 괴롭게 하는 세력으로 등장하다가, 결국 그 바벨론은 맷돌짝 같이 바다에 던져져 침몰하고(계18:),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시작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완성된다는 뜻이며, 우리 개인에게 적용시킨다면, 인간의 모든 욕심과 교만과 사악과 범죄를 쓸어내고 나서야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내 마음 안에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 바벨론이 오늘도 도처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절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이 죄인인 것과, 자기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힘과 공로와 지혜와 능력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그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 그런 단체가 모두 성경이 말씀하는 바벨론입니다. 이들은 망하게 됩니다.

본문에 함의 자손들이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들은 오늘도 예수 없이도 인간이 선을 행하고 착하게 살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거짓말로 영혼들을 사냥하고 있으며, 영혼을 파멸에 던지고 있습니다. 각종의 이단적인 종교들이 그들이며, 세상의 정치적 구원을 논하는 신신학과,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고 참람한 이름을 사용하며 죄로 끌고 가는 기독교를 빙자한 종교들이 그들이며, 이밖에도 공산주의, 하나님 없는 자본주의, 하나님을 배제하는 학문,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는 운동들과 이념들과 단체들이 모두 바벨론입니다. 이들은 결국 하나님의 엄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바다에 가라앉는 맷돌짝 처럼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안에는 바벨론이 없습니까?

 

노아는 실수하여 자기 둘째아들을 저주하였고, 그들 대대로 저주받은 삶을 살게 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가 축복한 자식들에게도 괴로움을 주는 가시 같은 존재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위대하신 하나님은 애굽과 바벨론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애굽을 어린 이스라엘을 기르는 인큐베이터로 사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흉년으로 인해 애굽에 곡식을 사러 갔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 앞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어 총리가 되게 하셨고, 그 총리 요셉의 도움으로 애굽에서 가장 좋은 나일강 삼각주의 고센땅을 얻게 하여 400년동안 번성하게 하셨으니, 애굽을 인큐베이터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애굽의 우상숭배를 배우고 거기 안주하려 하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조로 왕조를 교체하여 핍박을 시작케 하셨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해방을 달라고 부르짖게 하여, 결국 모세를 시켜 해방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나안을 주셨으나, 그들이 거기서도 하나님을 배척하자 다시 함의 자손인 바벨론의 손에 매를 들려 이스라엘을 치게 하셨고 그들이 다시 회개하자 다시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까지도 사용하여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조상에게 저주받은 함의 자손들을 사용하여 당신이 택하신 백성들을 기르고 바른길로 나아가도록 채찍하며 연단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은혜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복을 누리고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롭고 능하시며 고마우신 아버지 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다.

 

하나님 중심으로 삽시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 저주받은 삶이며, 결국은 멸망입니다.

하나님 곁에만 살아도 우리의 실수를 인도의 도구로 삼아 이끄시는 분인데, 우리가 만일 즐겨 하나님을 따르면 얼마나 복된 길로 인도하시겠습니까?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라고 하신 말씀을 믿읍시다.

그 누구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며 삽시다. 내가 한 저주가 상대방만 저주받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저주가 내가 사는 이 땅을 저주스럽게 하고 내 발등에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롬12:14) 내가 밟고선 땅에 압침을 뿌려놓으면, 내가 발 디딜 곳이 없고 내 발이 찔립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축복으로 채우면, 이 세상에 사는 내가 복을 누립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감사와 축복으로 채웁시다. “하나님, 내가 사는 한평생 남을 미워하지 않고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며 살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합시다.

 

 

 

 

니므롯을 통해 주시는 교훈

창 10장 6~14절 / 지용수목사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함은 아들을 네 명 낳았는데 장남 이름이 구스입니다. 구스는 아들 다섯을 낳았고 그 아들들이 또 아들들을 낳아 손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그가 늦게 아들을 하나 더 낳았는데 그의 이름이 니므롯입니다.

니므롯은 비범한 인물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산을 타며 창던지기와 칼 쓰기를 익혀 처음에는 꿩이나 독수리 같은 새를 잡다가 얼마 후에는 토끼와 사슴 같은 약한 짐승을 잡더니 나중에는 산돼지, 곰, 호랑이까지 잡았습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야! 니므롯은 놀라운 사냥꾼이구나. 영걸이구나.”하며 극찬을 했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처음 나타난 영웅이었습니다. 리더십과 통치력을 갖춘 정말 놀라운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힘으로 그렇게 크게 된 그는 한 부족의 족장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더 큰 야심을 갖고 세상에 흩어져 있는 힘 있는 사냥꾼들과 싸움꾼들을 다 모아서 바벨론을 비롯하여 앗수르와 니느웨까지 모든 성읍을 통일시킨 후 자기 수하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살려주고 반항하는 사람들은 다 쳐 죽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큰 나라를 만들고 자신이 왕이 됩니다. 당시에 그를 꺾을 나라, 그를 꺾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감히 하나님께 맞섰습니다. 70인 역에 보면, “니므롯은 하나님을 대적한 왕이라. 그는 영걸이라.”라고 설명을 붙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히스기야, 다윗, 다니엘, 요셉처럼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잘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악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둘기는 성령의 상징이요, 거룩함과 온유함의 상징이기 때문에 비둘기를 통해서는 배울 것이 있지만, 뱀은 하와를 유혹해서 망하게 한 것이고 귀신, 사탄의 상징이니 그 뱀을 통해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뱀에게서도 반짝 하는 지혜를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6장 1절에서 8절을 보면, 큰 부잣집의 한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귀히 여기지 않고 자꾸 허비하니 주인이 그 소문을 듣고 그 청지기를 부릅니다.

“이 사람아! 내가 자네를 믿고 내 집을 다 맡겼는데 그렇게 허비하면 어떡하나? 이제 자네 일을 다 정리하게. 인계할 준비를 하게. 자네에게 더 이상 청지기 일을 맡길 수 없네.”

청지기가 속으로 생각합니다.

‘아이쿠! 내가 쫓겨나는구나. 이제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어떡하지? 옳거니! 이렇게 하자. 그러면 내가 직분을 빼앗긴 후에도 그들이 나를 영접하리라.’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당신은 우리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소?”

“감람유 100말입니다.”

“그러면 빨리 여기에 50말이라고 쓰시오.”

“당신은 얼마나 빚졌소?”

“밀 100석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80석이라 쓰시오.”

그는 빚진 자들의 빚을 줄여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악하고 부정직한 청지기에게서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악하고 부정직한 것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니므롯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이 세상을 다스리도록 그냥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공동체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막 사는 사람이 그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작은 공동체에서나 큰 공동체에서나 거룩한 비전을 갖고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백성들이 편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니므롯은 나라를 다스릴 때 그의 눈에 벗어난 사람을 가차없이 죽였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그의 종이 되었습니다. 아합이 나라를 다스릴 때도 의로운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악한 자가 나라를 다스리면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니 나라를 악한 자에게 맡기지 말고 성도가 나라의 리더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세상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구석구석을 통치하시도록 해야 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 아들이 고시 패스 후 연수를 마치고 어느 관청에서 과장으로 일할 때입니다. 그 과의 직원이 70여 명인데 연세 드신 분들도 몇 분 계신다는 말을 듣고 제가 아들에게 연세 드신 분에게는 특별히 더 겸손하게 잘 대해드리라고 했습니다. 그 70여 명의 직원들 중에는 크리스천이 많았는데 그분들이 제 아들에게 “과장님의 아버님을 통해 말씀의 은혜를 받습니다.”라며 예수님을 믿는 과장님이 왔다고 기뻐했답니다. 과장이 예수님을 믿으니 회식 때에도 회식이 끝나면 집으로 바로 가지, 노래방을 가겠습니까, 나이트클럽을 가겠습니까? 그러니 그 과의 70여 명이 다 예수님을 믿는 분위기가 되는 것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후 몇 달이 지났을 때입니다. 제가 서울의 한 교회에 집회를 가서 그곳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집사님의 부친이 돌아가셔서 고향에서 기독교식으로 장례식을 하는데 그 벽촌 사람들이 다 나와 “우리 마을에는 이런 법이 없어!”라며 막아서 장례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김영삼 장로님이 대통령이 된 다음에 그 집사님의 모친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아이구! 목사님, 기독교식으로 하십시오. 장로님이 나라님이 되셨으니 기독교식으로 하셔야지요.”라고 하더랍니다. 사실 목사님이 장례식을 하러 가면서 ‘동네 사람들이 또 반대하면 어떻게 할까?’라고 걱정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오히려 그렇게 대해 주더랍니다.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니 나라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번에 우리나라가 토고와 월드컵 첫 경기를 할 때 저도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그 경기를 보았습니다. 지난번에 우리 교회에 오셨던 이영무 목사님이 월드컵 축구 대표팀의 기술행정 책임자로 계십니다. 지금 독일에서 우리 선수들을 후원하면서 제게 “목사님의 기도 덕분에 우리 선수들이 잘한 줄로 믿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팩스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23명의 국가 대표 선수 중에서 12명이 크리스천이라며, 특별히 첫 골을 넣은 이천수 선수와 결승골을 넣은 안정환 선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습니다. 이천수 선수가 골을 넣고는 하나님의 응답이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했답니다. 그리고 안정환 선수는 부부가 항상 함께 손잡고 기도하고 부부가 떨어져 있을 때는 전화로 함께 기도하는데 이번에 골을 넣을 때는 하나님의 권능이 자기를 감싸는 것을 느꼈다고 간증하더랍니다. 그러니 국가 대표팀의 분위기가 교회 분위기랍니다. 이번 경기가 끝난 후에도 이영무 목사님께서 선수들과 함께 모여서 감사기도를 드렸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토고 선수들과 함께 동행한 주술사는 우상의 힘으로, 주술의 힘으로 반드시 토고가 이긴다고 신문에까지 크게 내고 주문도 열심히 외웠지만 토고는 졌습니다. 그러니 이영무 목사님께서 ‘영적 전투에서 우리가 이겼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라며 기도 부탁을 하는 편지를 보내신 것입니다.

교수님이 기독교인이면 그 교실이 은혜로운 분위기가 됩니다. 교수님이 공산주의 사상이 있는 사람이면 학생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게 됩니다. 사령관이 예수님을 믿으면 사령부 구석구석에 은혜가 있습니다. 사령관이 주일마다 교회 앞에서 주보를 나누어 주면 참모들이 다 교회에 오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나라의 지도자, 국회의원, 통장, 반장까지 다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 감사해야 됩니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있으면 감사해야 되고 조금 부족한 것이 있어도 감사해야 됩니다.

하박국 3장 17절, 18절에 말씀하십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우리에 양이 없어도 감사하고 기뻐해야 됩니다. 감사해야 살맛이 나는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제과 사장 다케다 씨는 제과점의 왕으로 불리는데 과자를 만들 때 반드시 유정란만 사용했습니다. 그는 일본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최고의 빵과 과자를 만든다는 철학으로 처음부터 일반 계란보다 세 배나 비싼 유정란만 고집한 것입니다. 손님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맛의 차이도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그 제과점의 빵과 과자를 찾으니 그 제과가 일본 제과 시장의 60%를 점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직원들에게 빵과 과자를 만들고 포장할 때 “감사합니다.”라고 3,000번 말하게 한답니다. 일할 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분위기가 달라지고, 감사의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실험한 결과에 의하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 입김을 시험관에 담고 거기에 모기를 넣으면 모기가 오래 오래 사는데, “제기랄!”하고 욕할 때 그 입김을 받아 시험관에 담고 모기를 넣으면 모기가 금방 죽는다고 합니다.

따라 합시다.

“감사하면 공기도 복을 받고, 저주하면 공기도 저주를 받는다.”

그러니 감사가 얼마나 좋습니까? 무조건 감사해 보십시오. 살맛이 납니다.

아침밥을 먹지 못하고 직장에 다니는 한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 아내가 얼마나 잠이 많은지 아침에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고, TV를 보다가도 자고, 밥을 먹다가도 조는 아내 때문에 그 남편은 골치가 아팠습니다. 하루는 회사의 동료가 아주 괴로워해서 그 이유를 물으니 아내가 불면증으로 입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불면증으로 입원하는 것보다는 잠이 많은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내가 잠이 많은 것에 감사했답니다. 그러고나니 어쩌다 친구와 놀다가 늦게 들어와도 아내의 잔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더 감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사하기 시작하니 잠보 아내가 복이더랍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상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나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됩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무르면 안 되고 전진해야 됩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유가 하박국 3장 19절에 나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비록 내가 지금은 초라해도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사 나를 초라하게 하지 않으시고 높이 살게 하시리라.’라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또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 행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원어에는 “너희 안에 일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해석하면 “가슴에 소원의 불이 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꿈도 희망도 없이 그냥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야! 나는 이렇게 되어야 해.”라는 꿈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시편 107편 30절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께서 나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물론 우리의 마지막 소원의 항구는 천국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도 우리를 꿈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내가 미국에 꼭 가야지.’라고 할 때 미국에 가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독일에 가야지.’라고 할 때 독일에 가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영웅이 되겠다는 꿈이 아니라 내가 크게 되어 세상을 복되게 하고, 이웃을 복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겠다는 꿈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2장 14절에 기가 막힌 말씀이 있습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성공하면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업가가 성공하면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정치가가 워싱턴처럼 성공하면 그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크게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에게 빛과 평안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전을 가져야 됩니다.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00명을 선정했는데 그 중 첫째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입니다. 그는 힐러리보다 더 실력있는 대통령감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흑인 여성이 그렇게 크게 될 수가 있었습니까? 그가 소녀 때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다가 백악관을 보았습니다. 밖에서 백악관 안을 보니 일하는 사람들은 다 백인들입니다. 그때 열 살 먹은 라이스가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아빠! 우리가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구경하는 것은 이 피부 색깔 때문이지? 이 피부 색깔 때문에 못 들어가는 거지? 그러나 나는 반드시 저 안에 들어갈 거야.”

그때 그는 강한 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실력을 쌓아나갔습니다.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그것을 넘고, 산이 가로 막혀 있으면 그 산을 넘고 못 넘을 산은 돌아가고 돌아가지 못할 산은 터널을 파며 나아갔습니다. 마침내 그는 백악관의 집무실에서 대통령의 오른팔이 되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낚시를 하러 갈 때도 그를 데리고 갈 정도로 지금 그는 대통령 가까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가 열 살 때 꾼 꿈은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그가 꿈을 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오래 전부터 저는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10만 제단이 되게 해 주세요. 우리 교회의 말씀을 통해 1,000만 명을 구원하게 해 주세요. 7,000석 교회와 자동차 3,0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주세요.’

이런 꿈이 막 끓어올라 눈만 감으면 ‘10만 제단이 되게 해주세요. 우리 교회에서 큰 인물들이 나오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끓어오르는 꿈이 있으니 우리 교회가 오늘 이렇게 나아가고 또 이렇게 교회를 짓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의 대성전이 완공되면 우리 모두가 “와! 이것이 우리 교회인가? 꿈을 꾸는 것 같도다.”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 차고 우리 혀에는 찬송이 넘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꿈을 가지니 하나님께서 그 꿈대로, 소원의 항구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Dream comes true. Dream comes true.”

따라 합시다.

“꿈은 이루어진다.”

하나님 없이 꿈을 꾸던 니므롯도 나름대로 그 꿈을 이루는데, 하물며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갖고 나아가면 안 될 것이 무엇입니까? 언제나 비전을 갖고 꿈을 꾸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 부부는 개인 병원 의사 시절 종합병원을 꿈꾸더니 결국 큰 종합병원을 이루었습니다. 할렐루야!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언제나 부푼 꿈을 꾸고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육상의 영웅 찰리 패독이 클리브랜드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특별 강연을 할 때 “여러분도 꿈을 가지면 세계 최고의 육상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시라는 학생이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 꿈을 갖고 좋은 태도로 끊임없이 연습하고 헌신하면 된다.”

그 제시가 뮌헨 올림픽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그가 고향에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환영을 하는데 한 아이가 그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나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너도 될 수 있어. 꿈을 갖고 하면 된단다.”

그 아이도 나중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꿈만 꿀 것이 아니라 그 꿈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seek and you will find)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는 자가 유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몸에 병이 와도 병을 이기기를 원하고 기도하는 자가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가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전쟁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갔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믿지 않는 사람들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운이 좋아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 됩니다. 그런데 고국에서 온 형제 하나니와 두어 사람에게서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불탄 그대로이며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능욕을 받으며 산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 조국을 위해 성전을 재건하는 꿈을 꾸며 계속해서 금식기도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 앞에 나가니 왕이 묻습니다.

“너는 병이 없는데 얼굴이 어둡구나. 이는 필경 네 마음에 걱정이 있음이로다. 무슨 걱정이 있느냐?”

“왕이시여, 제 조상의 묘소가 있는 성읍이 불타고 훼파되었는데 어찌 걱정이 없겠습니까?”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때 느헤미야가 잠깐 기도하고 왕에게 말합니다.

“왕께서 저를 기뻐하시고 제게 은혜를 베푸신다면 저를 보내셔서 그 성을 재건하게 해주소. 그리고 총독들에게 제가 잘 통과할 수 있게 조서를 내려 주시고 저에게 필요한 나무도 주소서.”

느헤미야를 사랑하는 왕이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려 그는 잘 갈 수 있었고, 필요한 나무도 얻을 수 있었고, 군대장관과 군대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52일만에 성을 완성합니다. 이것은 마치 꿈꾸는 것 같은 일입니다. 기도한 대로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꿈을 갖고 손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귀를 기울이십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약속을 지켜 주십니다.

 

그리고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니므롯이 가만히 있었는데 특별한 사냥꾼이 되었습니까? 어릴 때부터 산을 타면서 창으로 나무를 맞추기도 하고 토끼와 다람쥐를 잡기도 하고, 화살로 꿩을 쏘기도 하고 호랑이와 곰을 잡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하루아침에 골리앗을 쳐 죽였습니까? 성경에 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그가 싸움터에 갔다가 키가 3m나 되는 큰 골리앗 장군을 봅니다. 골리앗이 57kg나 되는 칼을 잡고 천둥 같은 소리로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합니다.

“누구든지 나와 싸우자. 덤빌 테면 덤벼봐라.”

그의 말에 모두가 두려워 떠는데, 다윗은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고 골리앗을 이기는 꿈을 꿉니다.

“할례 받지 못한 자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해? 내가 곰을 때려눕히듯이, 사자를 때려눕히듯이 저 놈을 때려눕히겠다.”

그는 골리앗을 때려눕히는 그림을 그리며 왕 앞에 나가 말합니다.

“제가 저 놈을 치겠습니다.”

“얘야, 골리앗 장수는 어려서부터 용사고 너는 어린 소년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니?”

“아닙니다. 이 종이 아비의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새끼양을 움켜 가면 제가 곰을 치고 사자를 쳐서 새끼양을 빼앗았나이다.”

이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다윗이 양을 칠 때도 그냥 논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양을 치면서도 물맷돌로 나무도 맞히고, 바위도 맞히고, 새도 맞히며 계속 연습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리와 늑대를 쳐 죽이고 나중에는 사자와 곰도 쳐 죽이는 경험을 쌓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무서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자의 발톱에서, 곰의 발톱에서 저를 구원하셨으니 저 블레셋 놈에게서도 저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다윗에게 골리앗과 싸워 보라고 합니다. 다윗이 막대기 하나와 냇가에서 주운 조약돌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가니 거인 골리앗이 조롱합니다.

“야, 이놈아! 네 눈에는 내가 강아지로 보이느냐? 막대기를 갖고 오다니.”

“너는 창과 칼을 의지해 오지만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 이름으로 나가노라.”

“이놈아! 오늘 내가 너를 죽여서 새의 밥이 되게 하겠다.”

“내가 네 머리를 베고 네 군대의 시체를 짐승과 새의 밥이 되게 하겠다.”

철없는 아이가 어른을 무시하고 그렇게 말하니 화가 난 골리앗이 씨근덕거리며 한칼에 베어버리려고 다윗에게 옵니다. 다윗이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마주 달리며 “주여!”하고 물맷돌을 던지니 그것이 골리앗의 눈과 눈 사이의 급소에 박혀 골리앗이 그대로 쓰러집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골리앗의 두개골에는 아직도 돌이 박혀 있는데 그 두개골의 크기가 보통 사람보다 한 배 반 더 크다고 합니다.

따라 합시다.

“성경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골리앗의 두개골을 보존해 두셨다가 오늘날 세상에 나타내시어 다윗이 물맷돌로 골리앗을 명중시킨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만일 우리 장로님이 물맷돌을 가지고 나아갔다면 골리앗을 명중시키셨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하시면 우리 장로님도 하실 수 있지만, 어림없습니다. 다윗이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용하신 것이고, 그러기에 또한 다윗도 자신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준비하자. 실력을 쌓자.”

잠언 22장 29절에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어에는 그냥 성실히 일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Do you see a man skilled in his work?(네가 자기 일에 기술이 대단한, 기술이 정교한 사람을 보았느냐?)”

여러분, 오늘날에는 우물 안의 개구리는 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국가 간의 벽이 다 허물어져서 중국 때문에 우리가, 인도 때문에 일본이 잘 살기도 하고 못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는 중국의 경제력이 일본의 경제력보다 5배나 커질 것입니다. 임금이 비싼 일본이 임금이 싼 중국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남는 길은 남다른 실력에 있습니다. ‘이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라는 사람이라야 대접을 받게 되고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하면 되지. 네가 우리 회사에서 나가면 다른 사람을 채용하면 되지.’라는 대접을 받는 사람은 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목사님이 다른 곳에 가시면 바로 다른 목사님을 모시면 되지.’하는 이야기를 듣는 목사님은 귀하게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다른 곳에 가시면 어떡할꼬? 우리 목사님 같은 분을 어디에서 모셔 올꼬?’라는 이야기를 듣는 목사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부장이 가면 다른 사람이 오면 되지 뭐.’하는 말을 듣는 부장은 좋은 부장이 아닙니다. ‘○○○ 부장이 나가면 우리 회사가 큰일 나. ○○○ 부장은 우리 회사에 꼭 있어야 돼.’하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려면 실력을 쌓아야 됩니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한 청년은 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1억 5천만 원을 지원받아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토플에서 최고 점수를 받아 1,800만 원의 장학금을 더 받았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그 청년이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손들고 기도하며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된다.’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따라 합시다.

“하면 된다.”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 때문에 자꾸 생각을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아도 창의적인 아이디어(creative idea)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아도 발전을 위해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발전합니다.

마사쯔쿠 사장은 오사카 중심지에 일본식 파전가게를 열었는데 그 가게에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맛은 자신이 있는데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가게 문을 닫았겠습니까? 아닙니다. 진취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가게로 올까? 옳거니! 이거다.’

그는 자전거에 자기 상점의 간판이 붙은 배달 박스 두세 개를 싣고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사실 박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빈 박스를 싣고 이 거리 저 거리를 계속 달렸습니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야! 저 파전은 굉장히 잘 팔리는가 보다. 끊임없이 배달되는구나.”하며 하나둘 오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밀물처럼 밀려와 지금은 직원이 6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이 성전을 지어서 옮겨올 때 장년이 700명 정도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3부로 나누어 드리니 200명이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큰 교회를 보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바다같이 큰 이 교회에……. 교회를 너무 크게 지었나? 이것 어떻게 하지?’

그래서 기도를 하니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버스 운행으로 봉사하는 우리 집사님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교회 버스 일곱 대로 창원과 마산과 진해를 돌게 했습니다. 중간에 다른 차가 끼어들지 못하게 해서 일곱 대의 버스가 줄을 지어 창원과 마산, 진해를 몇 바퀴씩 돌았습니다. 똑같은 버스가 한두 대만 달리면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갖지 않지만 일곱 대, 여덟 대가 함께 달리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와! 와!”하게 됩니다. 그러다 그 버스를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이곳에 온 지 일곱 달 만에 1,300명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한국과 세계의 소망 양곡교회’라고 적힌 교회 버스 열 몇 대가 착 돌면 사람들이 “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전도의 아이디어인 것입니다.

아이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1996년, 일본의 한 지역에 태풍이 지나가서 90%의 사과가 떨어지고 10%만 달려 있었습니다. 모두 가슴을 치며 한탄하고 슬퍼하는데, 한 사람은 “괜찮아, 괜찮아.”하며 달려 있는 사과를 한 개씩 한 개씩 포장해서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고 이름을 붙인 다음 수험생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천 원짜리를 만 원씩 받고 팔았는데도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고 하니 수험생들이 시험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것을 서로 사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길이 있습니다.

사방이 다 막혀도 하늘은 뚫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나는 안 돼. 나는 환경이, 배운 것이, 실력이…….”라는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니므롯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크게 되고 아무리 잘 되어도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면 영원히 쓸쓸한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니므롯은 노아의 손자입니다. 니므롯이 크게 된 다음에라도 노아의 손자답게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 하나님! 제가 잘못 살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제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하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왕이 되었으면 그 이름이 얼마나 빛나고 복 받은 영웅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바벨탑까지 세웁니다. 그러니 그는 영원히 멸망 받은 악한 니므롯, 저주받은 니므롯이 되고 만 것입니다.

아무리 크게 되고, 아무리 잘 되어도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면 영원히 쓸쓸한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자가 되어도 주님을 위해, 높이 되어도 주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해도 주님을 위해 살아갈 때 그 사람이 영원히 복 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갖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도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위해 나아가야 하지만, 크게 되고 크게 된 다음에도, 꿈을 이룬 다음에도 주님께 더 바짝 붙어 주님을 위해 살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전성기가 계속 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말씀을 받으며 ‘그래, 꿈을 가져야 돼. 그래, 기도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돼.’라고 깨달았어도 그것을 생각만 하고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그 부푼 꿈은 없어지고 맙니다. 수박을 사 왔으면 잘라서 먹어야 하듯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꿈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이 25세 때, 청바지를 입고 한창 놀 나이일 때 억만 장자가 된 신노씨가 강연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서 사업을 시작할 때 ‘아, 됐다. 이것 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한 다음 일주일 후에 그 일을 시작하는 사람과 바로 다음 날 시작하는 사람 둘 중에서 누가 성공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의 말은 두 사람 다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시 시작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부푼 가슴으로 ‘그래, 해 보자. 앞으로 내가 몇 년 더 살 지 모르니 이렇게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크게 해 보자.’라고 다짐해도 다음 날이 되면 “하긴 해야 되는데…….” 하다가 목요일쯤 되면 그 생각마저 몽롱해집니다.

오늘 집에 가서 고요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오늘까지 30년을 살았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살까요? 아버지! 제가 어떻게 달려가야 될까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 꿈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새롭게 출발해 보시기 바랍니다. 꿈을 갖고 ‘한번 해 보자.’하고 지금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실천에 옮기면 5년, 10년 뒤에 크게 되는 분이 많이 나올 줄 믿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크게 해주시기 위하여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생활이 되고 미래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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