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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51205 / 예리한 낫을 가진 두 천사 / 요한계시록 14:14-20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5.12.01|조회수83 목록 댓글 0

예리한 낫을 가진 두 천사

요한계시록 14:14-20

14 <마지막 수확>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7 <마지막 재난을 가지고 온 천사>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계 14:14-20 / [마지막 추수] 내 눈앞에는 또 다른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흰 구름이 나타나고 그 구름 위에 어떤 분이 앉아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보이는 그분은 '인자'라고 불렸습니다. 그분은 머리에 순금으로 만든 면류관을 쓰셨고 손에는 예리한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그때 한 천사가 성전에서 나오더니 구름 위에 앉아 계시는 분에게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으로 추수를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추수하기에 알맞습니다.' 16) 구름 위에 앉으신 분이 낫을 땅 위에 휘두르자 곡식이 한곳에 모였습니다. 17) 그 후에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왔는데 그 천사도 역시 예리한 낫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 바로 그때 불로 세상을 파멸시킬 능력을 지닌 천사가 제단에서 나오더니 낫을 든 천사에게 큰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어서 그 낫으로 땅 위에 있는 포도밭에서 포도송이를 거두십시오. 포도가 다 무르익어 심판할 때가 되었습니다.' 19) 천사가 낫을 땅 위에 휘둘러 포도 송이를 잔뜩 거두어 가지고는 하나님의 진노의 큰 술틀에다 던져 넣었습니다. 20) 그 술틀은 성밖에 있었습니다. 술틀에 던져진 포도송이들이 마구 짓밟혔습니다. 그러자 술틀에서 어찌나 많은 피가 흘러 넘치던지 무려 320킬로미터나 퍼져 나갈 정도였습니다.

 

본문은 예리한 낫과 불을 가진 천사가 각각 추수하는 장면입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이 된 내용입니다. 이 둘의 차이점은 첫째는 성도들을 추수하는 장면, 둘째는 불신자들을 추수하는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14-16) 또 다른 환상이 열리고 사도 요한이 이것을 봅니다. 이번 환상에서 요한은 인자와 같은 이를 봅니다. 인자와 같은 이는 다니엘서에서 나오는 인자와 같은 이와 동일한 인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단 7:13). 여기서 그리스도는 흰 구름 위에 앉으셨습니다. 흰 색은 영광스러운 승리를, 구름은 일종의 보좌와 같은 것입니다. 머리에 쓰신 금 면류관은 왕의 권세와 영광을 나타내며, 손에 들린 예리한 낫은 추수 때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성전에서 나온 다른 천사가 그리스도에게 땅의 곡식을 수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자 그리스도께서 낫을 휘둘러 땅의 곡식을 거둡니다. 이 환상에서는 곡식을 타작하는 것이나 곡식을 까부르는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습니다(마 3:12; 눅 3:17). 따라서 이 장면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천국으로 모으는 내용입니다. 이는 구원받은 영혼을 추수하는 예수님의 교훈과 일치합니다(마 9:37-38; 눅 10:2; 요 4:34-38).

 

포도 추수(17-20) 본 단락에서 추수하는 또 다른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추수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심판의 천사입니다. 그의 손에도 예리한 낫이 들려 있습니다. 이 천사는 제단으로부터 나온 다른 천사에게 포도를 수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해 듣습니다. 제단은 억울하게 박해받던 성도들이 하나님께 탄식의 기도를 드렸던 곳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박해받던 성도들의 억울함을 갚아주시려고 심판을 명하시는 것입니다. 제단으로부터 나온 이 천사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불은 최후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심판의 천사가 땅의 포도를 거두어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집니다. 이때 포도가 터지면서 흘러내리는 붉은 포도즙은 최후의 심판 때에 흘릴 믿지 않던 사람들의 피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심판의 이미지는 구약 선지자들도 예언한 부분입니다(사 5:5; 욜 3:13). 한편, 포도주 틀이 있는 곳을 성 밖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추수의 대상이 성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불신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말하지만 시작보다 중요한 것이 마무리입니다. 그래서 유종의미를 거두라고 말합니다. 거두고 싶은 인생의 유종의 미로 어떤 것을 기도하고 소망하고 있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지목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이 지목하신 하늘의 백성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된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 위에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인격을 존중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순종을 배웠고 예수님을 통해 회개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목한 자를 항상 지켜보시고 보호하시는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참된 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기초로 삼아 그분의 피조물임을 긍정하고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지목받은 자는 회개합니다. 그리고 순종합니다. 그리고 지도자가 됩니다. 그에게 지도자로서 감당할 능력을 주십니다.

 

호크마 주석

=====14:14

또 내가 보니 희 구름이 있고 구름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에 대해서 혹자는 천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rris) 심판하러 오시는 재림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Ladd, Charles, Johnson). 한편 '흰 구름'은 마 17:5의 '빛난 구름'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하늘 위에 계신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구름을 타고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신다(1:7;마 24:30).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 '금 면류관'은 성육신과 부활을 통해 사단을 이기신 스리스도의 승리와 세상에 대한 그분의 영원한 통치권을 나타낸다(6:2;19:12). 또한 '손에 이한 낫을 가지신 것'은 욜 3:12-14을 반영한 것으로 이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권을 의미한다. 성육신과 부활로 사단에게 승리를 거두시고 복음을 선포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세상에 대한 종말적인 심판을 통해 추수하시려 재림하신다(15절;마 13:37-43;요 4:35-38).

 

=====14: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 추수하라는 명령을 그리스도에게 전달하는 '또 다른 천사'(7:2;8:3;14:6)는 '성전'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수에 대한 명령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7:15). 또한 '또 다른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음을 나타낸다(Ladd, Mounce). 한편 본문에 나타난 추수 비유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호 6:11;욜 3:13). 특히 구약성경에서는 바벧론을 심판할 때 사용되었으며(렘 51:33), 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도 최후의 심판을 추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마 13:30, 39). 그러나 비록 추수 비유가 하나님의 심판을 뜻한다 할지라도 본절에서는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을 모으는 것 즉 백성의 구원을 묘사한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포도 수확의 비유로 묘사되기 때문이다(17-19절).

 

=====14: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을 부려서 일을 하실 수도 있으나, 혹자의 지적대로 성도들을 거두어 들이는 일은 친히 낫을 휘두르신다(Ladd).

 

=====14: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 성도들의 수확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다(16절).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한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은 천사가 수행하게 된다(18절). 여기서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왔다는 것'은 15절과 마찬가지로 불신자에 대한 심판의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음을 암시한다.

 

=====14: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 으로부터 나와 - 또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오는데 이 '제단'은 6:9과 8:3-5의 기록으로 보아 의인의 기도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Morris). 이것은 핍박받는 성도들의 기도가 응답되어 그 최종적인 결과로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일어남을 암시한다(Mounce, Morris, Ladd). 한편 이 천사는 불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에 대한 설명은 주어져 있지 않다. 외경에 따르면 천둥, 바다, 우박, 눈, 비등의 자연을 천사들이 각각 받아서 다스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I Enoch 60:11-20). 여기서 언급된 천사는 8:3-5에 기록된 대로 향로에 단위의 불을 담아 땅에 쏟는 천사와 동일한 천사인듯하다. 불이 신약에서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마 18:8;눅 9:54;살후 1:7)불 가진 천사는 아마도 심판을 유도하는 듯하다.

이한 낫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 포도를 추수하는 것은 성경에서 심판을 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사 63:2-3;욜 3:13). 여기서 '포도가 익었느니라'는 악한 자들의 불신과 죄악이 절정에 달하였고 성도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신원의 때인 최후의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시사한다.

 

=====14:19

천사가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전지매 - '땅의 포도'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며 짐승과 사단을 추종하는 모든 불신자들을 지칭한다(Mounce). 이러한 포도는 수확의 때에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지게 된다. 수확된 포도를 포도주 틀에 넣고 포도즙을 짜는 행위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대적에게 맹렬하신 진노를 발하시는 것의 비유로 나타난다(19:15;사 63:3;애 1:15;욜 3:13). 이것으로 보아 본절은 짐승과 사단의 추종자들이 이 땅 위에서 성도들을 무참히 핍박하여 피를 흘리게 했듯이 그들도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을 당할 것을 시사한다.

 

=====14: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 '성'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구약의 예언, 즉 최후의 전쟁이 예루살렘 근처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기록에 따라 이 성이 예루살렘성을 가리킬 것이라고 주장한다(Beckwith, Ford, Swete). (2) 혹자는 사도 요한이 본서 다른 곳에서도 '성'을 상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11:1, 2;20:9) '하나님의 성' 혹은 '새 예루살렘성'을 뜻한다고 주장한다(11:1;21:2, 10, Beasley-Murray, Kiddle, Charles).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하나님의 성'은 구원받은성도들의 무리가 거하는 곳을 가리키므로 '성 밖에서'라는 말은 구속받은 성도의 무리에 들지 못하고 멸망가운데 처하였음을 나타낸다(Johnson, Charles). 한편 '피가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는 위경에도 나오는 표현으로(에스더하 15:37) 악인이 당할 극심한 고통을 가리킨다. 또한 피가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다'는 말은 320Km에 해당하는 1,600 스다디온 만큼 대적자들의 피가 흘러 하나님의 심판이 엄중함을 의미하며(Ladd, Johnson) 동시에 땅의 수인 4의 제곱에 완전수인 10의 세제곱이 곱해지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도 예외없이 전세계의 '성밖에 있는' 모든이에게 미치게 됨을 시사한다(Morris, Mounce).

 

 

 

 

세상 끝 날의 두 추수

계 14장 14~20절 / 서명성목사

추수하니까 제 장인어른인 최거원 장로님이 생각납니다. 그분은 제게 육신의 장인일 뿐 아니라 신앙의 아버지셨습니다. 평화시장에서 오랫동안 광목 장사를 하시다가, 뜻이 있어서 50대 후반에 이민을 오셨습니다. 당시 농장을 경영하시던 정용진 장로님이 공항에서 픽업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농사를 짓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Fallbrook에 위치한 Rainbow Valley에 정착하셔서 87년부터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평북 영변에서 농업학교를 나오셨지만 미국에 오시기까지 농사라고는 해 본적이 없으셨지만, 타고난 근면과 성실함으로 30년 가까이 채소 농사를 하셨습니다. Rainbow Valley에서 Choi하면 해뜨기 전부터 일하기 시작하고 해가 져서야 일을 마치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덕분에 저희 교우들도 수요일 저녁에 나오면서 신선한 채소들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농사는 참 성경적이야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시지 않니? 그야말로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이지’오이, 호박, 부추, 깻잎 등을 재배하셔서 LA에 있는 큰 한인마켓들에 이십여 년 동안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직접 납품을 하셨습니다. 우리 농장에서는 깻잎이 제일 효자라고 하셨습니다. 일 년 내내 큰 기복 없이 꾸준히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뮤리에타 한인장로교회를 우리 교회보다 일 년 먼저 개척하시고 장로로서 잘 섬기셨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지 벌써 일 년이 되어갑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 영적 추수장면을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견디는 자와 불신자의 극명한 삶을 대조하기 위함입니다. 13장에서 요한은 삼위 하나님을 모방하는 사탄의 세력, 즉 붉은 용과 바다 짐승, 땅 짐승이 합세하여 믿는 자와 교회를 박해하는 환상을 언급했습니다. 14장 1-5절에서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을 상징하는 144,000명을 통한 교회의 정체성을 언급하고, 6-20절에서 추수에 초점을 맞춥니다. 본문은 6~13절을 발전시킴으로써 최종적 구원과 심판의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이 메시지는 짐승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려는 1세기 초대 교회 성도들이 신앙의 순결을 더욱 힘써 지키려는 결단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세상 끝 날에 어린 양의 표를 받은 자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이 택함 받은 백성답게 살면서 훗날 주님 앞에 평강 가운데 서시기를 바랍니다.

 

땅의 곡식 추수(14-16절)

요한은 1:13에서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신 승리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14절에서 언급한 “흰 구름 위에 앉아계신 인자와 같은 이”는 다니엘서 7:13의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인자 같은 이’를 배경으로 합니다. 구름은 영광과 위엄을 상징하는데(출 16:10; 24:15-16), 여기서 ‘흰 구름’은 수송 수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것을 강조합니다. 통치자의 주권을 상징하는 ‘금 면류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세계를 심판하실 왕적 권세와 신적 영광을 가지신 주권자임을 나타냅니다. 이 모습은 인자 같은 이가 권세와 영광으로 통치하심을 묘사한 다니엘 7:14을 반영합니다. ‘예리한 낫’은 믿는 자를 확실히 구원하시고 불신자를 확실히 심판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옵니다. 여기에서 ‘성전’은 하늘 성전을 가리키므로 성전에서 나왔다는 것은 그 천사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대행자임을 시사합니다. 그가 ‘인자와 같은 이’에게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라고 큰 음성으로 외칩니다. ‘휘둘러 거두소서’는 직역하면 ‘보내어 추수하소서’입니다. ‘보내다’와 ‘추수하다’는 문법적으로 종말에 단회적으로 일어나는 심판행위를 의미합니다.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는 직역하면 ‘왜냐하면 땅의 수확물이 익었기 때문이다’입니다. 심판 수행의 준비가 다 되었다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이에 인자 같은 이가 낫을 휘두르자 땅의 곡식이 거두어집니다. 이는 곡식 추수가 하나님이 택하신 성도들을 모으는 것, 즉 하나님 백성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3:12에서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예언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고 고난 가운데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공생애 기간의 예수님의 모습과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서 천하만국을 통치하시다가 마지막 때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확연히 대비됩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인자는 믿는 자를 구원하시고, 불신자를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구원과 심판의 때가 무르익으면, 하나님은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구원과 심판으로 완성됩니다.

 

땅의 포도 추수(17-20절)

또 다른 천사가 하늘 성전으로부터 나옵니다. 15절의 천사를 6절에서 영원한 복음을 전한 천사로 본다면, ‘또 다른’천사는 8절에 언급된 둘째 다른 천사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천사도 ‘예리한 낫’을 가지고 있습니다. 18절에 또 다른 천사가 등장합니다. 이 천사는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라고 불립니다. 그는 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은 천사를 생각나게 합니다(8:5). 하늘 불은 심판의 수단입니다(눅 9:54; 히 10:27). 10절에서 셋째 다른 천사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천사들이 8~13절에 언급된 천사들과 동일하다고 한다면, 불을 다스리는 세 번째 다른 천사가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첫째와 둘째 다른 천사가 하늘 성전에서 나오는 반면 세 번째 다른 천사는 성전 안에 있는 제단에서 나옵니다. ‘그 제단’은 보좌 앞의 분향단을 가리킵니다. 이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가지고 나온 불이 제단 불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단에서 나온 천사는 성전에서 나온 천사를 향해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고 말합니다. 직역하면 ‘땅의 포도나무의 포도송이들을 모으라’입니다. 곡식과 마찬가지로 포도송이도 익어 추수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포도가 익었다는 것은 악한 자들의 불신과 죄악이 절정에 달하였고 성도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최후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시사합니다. 구약에서 포도 수확과 포도주 술틀은 심판을 상징합니다(사 63:1-6; 욜 3:13; 애 1:15). 둘째 다른 천사가 낫을 휘둘러 죄로 얼룩진 포도송이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지는 것으로 보아, 포도 추수는 땅의 곡식 추수와 달리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비슷한 표현이 계시록 19:15에도 언급됩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을 것입니다. 틀에 던져진 포도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삶을 자기만족과 악으로 채우며 제멋대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진한 만큼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역시 진하고 혹독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로 인간의 배은망덕한 행위와 악독을 참아 오시다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폭발하는 날, 마치 농부가 포도즙 틀에서 포도즙을 짜듯이 악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결과 포도가 틀에서 으깨지듯 하나님을 모욕하며 살던 죄인들이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순교한 영혼들은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께 원수를 갚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6:9-10). 천사가 성도의 기도를 금 제단에 드렸습니다(8:3). 이를 종합해 보면 순교한 영혼들의 기도가 어떤 식으로든 이 심판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이 거하는 ‘성 안’과 달리, ‘성 밖’은 심판의 장소입니다. 백성을 속량하려고 ‘성 밖에서’죽임을 당한 어린양 예수(히 13:13)를 거절한 이들은 ‘성 밖에서’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 20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맹렬하게 집행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먼저 포도주가 포도 틀에 들어가 밟혔는데 그 틀에서 나오는 것은 포도즙이 아니라 피였습니다. 악인들은 그 피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말의 굴레, 즉 말의 목까지 올라갔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까지 넓게 퍼졌습니다. 포도송이에 비유한 것은 그들이 땅에서 피를 흘리게 될 것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큰 전쟁으로 인한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림을 암시합니다. 1 스다디온은 약 600ft이니까 1600 스다디온은 약 300km로서, 팔레스타인 땅의 남북의 길이에 해당합니다. 십사만 사천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듯이, 이 숫자도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천육백은 땅의 네 모퉁이를 떠올리는(7:1) 4와 4를 곱한 수에 100을 곱한 값입니다. 포도주 틀에서 나온 피의 양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심판의 대상이 그만큼 많다는 점이며, 두 번째는 심판의 강도가 그만큼 세다는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한 악인들에 대한 심판은 준엄하며 철저할 것입니다. 종말론적 심판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반영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악을 영원히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악이 관영해질 때 그 악을 제거하십니다.

 

우리의 자세

- 심판의 날이 다가옴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끝이 존재합니다. 마지막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추수의 때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추수의 날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심판의 날은 반드시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히 9:27). 때가 이르기 전에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섬기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에 보이는 세상 것만을 따라 살 것인가 보이지 않는 믿음을 따라 살 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구원의 복을 받든지, 심판의 저주를 받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장차 갈 곳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승리한 믿음의 선진들이 열거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고난과 핍박과 심지어 죽음의 위협을 당해도 믿음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육체의 욕심을 버리고 성령을 따라 살면서 심판 날 주님 앞에 평강 가운데 맞이하도록 믿음에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 예수님이 추수의 주권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알 때, 우리를 바로 알고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한은 흰 구름이 있는데,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구원과 심판이 있을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와 같은 이는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금 면류관을 쓰신 것은 예수님이 영원한 왕, 통치자이심을 보여 줍니다. ‘손에 예리한 낫’을 가지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마지막 때의 추수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추수하시기 위해 다시 오십니다. 십자가 보혈로 구속하신 자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거두어들이십니다. 곡식을 추수한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가라지에 대해 심판하는 것을 말합니다. 곡식을 거둬들이고 난 후에는 거라지를 모아서 묶어다가 불사르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을 무참히 짓밟고 순교의 피를 흘리게 했던 악인들은 최후의 심판 날에 혹독한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비록 이 땅위의 삶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인내하며 주께서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이루시고 기도에 응답하실 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알곡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추수는 구약과 신약에서 모두 심판을 의미합니다. 심판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성도들에게 심판의 때는 구원의 날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천국 창고에 들어갈 알곡을 한 톨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거두실 것입니다. 때가 되면 틀 속에서 으깨져버리는 포도송이처럼 멸망의 길을 향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스스로를 믿음으로 평가하고 심판의 날이 오기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포도 비유를 사용하시는 경우 대부분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사 5:2; 눅 6:44). 하나님은 당신이 베푸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때 분노하십니다(사 5:5; 63:3). 죄와 불의가 관영하고 악인들이 번영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잠시뿐이며 그들에게 영원한 고통과 형벌이 예비 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악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빛 가운데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내와 믿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성도의 특권입니다.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겪는 희생에 대한 대가가 하늘의 상급입니다. 성도는 잠깐 동안의 쾌락을 위해 타협하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위해 헌신하고 힘써야 합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만을 누리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할 때, 하나님 앞에서 면목이 없게 될 것입니다.

 

나가면서

이단들이 성하고, 전쟁이 일어나고, 지진이나 기근 같은 재앙이 일어나고 신앙의 핍박이 있는 것이 말세의 징조들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말세는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영광중에 구름을 타고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본문은 세상 끝 날에 있을 두 추수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땅의 곡식’, 즉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추수되어 구원을 얻는 반면에, ‘땅의 포도’즉 짐승에게 속한 자들이 추수되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고난 받는 하나님 백성은 영원한 안식을 누리지만, 사탄의 세력은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종말론적 구원과 종말론적 심판은 같이 진행됩니다. 종말에는 두 세계로 나뉩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양과 염소(마 25:32),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마 25:1-13),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마 25:14-30), 데려감을 당할 자와 버려둠을 당할 자(마 24:40-41), 알곡과 가라지(마 13:30),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마 13:48), 충성된 종과 악한 종(마 24:45-51)으로 나뉩니다. 특이한 것은 중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차 상급의 대상인가 아니면 심판의 대상인가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22:11-12). 다윗 계보의 메시아이자 역사의 주권자이신 예수님께서 곧 오셔서 신실한 신자들에게 상을 베푸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의인들은 창세로부터 준비된 나라를 상속받고, 악인들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히 타는 불에 들어갈 것입니다(마 25:31-46). 진노의 포도주 틀에서 나온 피가 온 땅에 퍼질 만큼 철저하고 맹렬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심판의 날에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토록 견고한 터가 되시는 주님을 믿고 그분만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내일 두려움의 통곡을 막을 수 없습니다.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요한, 그리고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만이 믿고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을 보여 주는 목적은 단지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지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있을 구원과 심판을 염두에 두고 지금 어떻게 살지를 지혜롭게 결정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그때까지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악할수록 종말의 때가 가까웠음을 알고,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주님을 더욱 의지하며,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주님 앞에 서시는 귀한 믿음의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7대 원리

계 14:14 / 이한규목사

마지막 추수 심판을 할 때 주님은 신실한 성도들을 사랑의 낫으로 추수해 알곡으로 거두십니다(14-16절). 그 다음에 천사들을 통해 진노의 낫으로 심판하십니다(17-19절). 결국 심판 받은 자들의 피가 흘러나와 말굴레까지(약 150센티미터) 닿았고 그 피가 1600스다디온(약 298킬로미터)까지 퍼졌습니다(20절).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때로는 무섭게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에 정통하려면 다음의 7가지 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1. 씨앗의 원리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선을 심으면 좋은 일이 되어 돌아오고 악을 심으면 나쁜 일이 되어 돌아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심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쓴 열매만 거둔다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앞날에 대해서도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자녀들에게 믿음의 가치관만 잘 심어주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 자녀를 책임져주십니다.

 

2. 분량의 원리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주일예배 한번만 참석하는 사람과 매일 새벽예배까지 참석하는 사람이 똑같이 거두게 되지 않습니다. 또한 주님을 위해 죽도록 헌신한 사람과 대충 교회생활을 즐긴 사람과 똑같이 거두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심은 분량만큼 거두게 하십니다. 그 원리를 기억하고 욕심보다 성실함을 앞세워 살면 신기한 사실을 목격합니다. 그것은 자기가 심은 것 이상의 분량을 거두게 하시는 은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3. 정성의 원리

 

분량의 원리가 기본 원리이지만 항상 그 원리가 맞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즉 무조건 많이 심는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심을 때 정성을 기울이고 사랑과 관심을 주어야 합니다. 결국 심는다는 것은 종자를 심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과 정성도 심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위해서 혼자 일을 다 하는 것처럼 합니다. 많이 심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불평한다면 그 심은 것의 소중한 의미가 퇴색되고 결국 그 봉사가 복과 은혜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4. 기다림의 원리

 

열매를 거두는데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심었는데 자녀가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정성이 먼 미래에 자녀를 죽음의 늪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분이 자녀가 비뚤어지니까 자녀를 위한다고 생전 안 하던 매일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보름을 기도해도 자녀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금방 기도를 포기했습니다.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한 후 금방 효과가 있기를 바라지만 이 세상에 바로 열매를 내는 마술 씨앗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5. 기회의 원리

 

모든 이레는 다 때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가꿀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이 땅에 있을 때가 씨를 뿌릴 때입니다. 이 땅을 떠난 후에는 이 땅에서 심은 것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심은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고 그에 따라 상급을 받습니다. 그처럼 인생은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일생이기에 지혜롭게 잘 활용해야 합니다.

 

6. 은총의 원리

 

사람의 수고는 사실 작은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수고보다 크다고 인식하면서 늘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교회 부흥도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셔야 길이 열립니다. 자신이 부족한 존재이기에 은혜의 필요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욱 성실과 수고를 앞세워 삽니다. 하나님은 그 성실과 수고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7. 나눔의 원리

 

성도는 수고해서 얻은 것을 늘 남과 나누려고 해야 합니다. ‘받는 일’에 관심을 두면 더 받지 못하고 ‘나누는 일’에 관심을 두면 더 받습니다. 중세의 암흑시대는 교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눔이 없는 종교인들이 넘쳐서 온 것입니다. 꽃다발을 남에게 줄 때 꽃다발을 주는 내 손에 먼저 향기가 묻어나듯이 남에게 행복의 재료를 나눠주면 내가 먼저 행복해집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부자가 되기를 원하면 나눔의 기회를 잘 찾아서 은밀하게 나누십시오.

 

 

 

 

두 종류의 추수

계 14장 14~20절 / 이상호목사

오늘 본문말씀의 계시는 곡식추수와 포도추수 두 종류의 추수비유입니다. 이것은 세상종말에 두 종류의 인간들의 추수를 가리키는 영적추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수 때는 모든 것이 익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종말을 향하여 모든 것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악한 것이 점점 더 악하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계22:11에도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1. 곡식추수(14-16)

 

곡식추수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구원하여 천국창고로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곡식 추수꾼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흰 구름위에 앉았는데 머리에 금면류관을 썼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구름타고 재림하실 것을 말하며 구름타고 재림하실 때에 위엄과 영광을 가지시고 이한 낫과 같은 심판권을 가지고 오십니다. 성전에서 나온 천사가 “거둘 때가 이르렀으니 네 낫을 휘둘러라”한 것은 천사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추수하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성취하십니다.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지상에 사는 교회성도들이 여러 가지 환난을 받고 연단이 되고 정결하게 되어 믿음이 성숙되었음을 가리킵니다. 마3:12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창세전에 택함을 입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믿음으로 잘 익은 알곡이 되어 주님 재림하실 때 천국에 먼저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천국의 알곡되는 신자들이 됩시다.

 

2. 포도추수(17-20절)

 

곡식추수는 택한 백성들을 모으는 축복과 구원의 추수이지만, 포도추수는 저주와 형벌의 추수입니다. 포도추수는 불신자들과 악한 자들에게 임할 진노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포도가 익었다는 것은 악한 자들의 악이 가득 찼다는 뜻입니다. 악이 가득차면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오게 됩니다. 요엘3:12-13에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 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이 악이 큼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악인들이 이 땅 위에서 성도들을 무참히 핍박하여 피를 흘리게 했듯이 악인들도 포도송이가 발에 짓밟히고 틀에 눌려서 포도가 터져나가는 것처럼 심판당할 것을 말합니다. 전8:11에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죄짓는 일에 절대로 담대할 것이 못됩니다. 노아시대도 죄악이 관영함으로 홍수심판이 왔고, 소돔고모라도 죄악이 가득 차므로 유황불의 심판이 왔습니다. 곳곳에 테러공포, 조폭문화, 세균전쟁, 이러다가 핵무기를 쓰게 되면 세상은 불바다가 됩니다. 세상 인본주의 물질문화로 높이 쌓아가는 바벨탑 같은 말세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멸망당하게 됩니다.

 

3. 그렇다면 우리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는 알곡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열매맺는 성도가 알곡입니다. 열매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주님은 저주하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맺혀야 할 열매를 맺지 못하고 외부적인 모습만 신자가 아니라 실제로 내적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갈5:22-23), 빛의 열매(엡5:9), 전도의 열매, 기도의 열매, 선교의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혹시라도 악한 열매가 맺혀서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열매없이 땅만 버리면 찍어버린다고 했습니다. 금년이 지나기 전에 우리의 부족한 면을 회개하고 열매맺는 성도들이 됩시다.

 

둘째는 추수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요4:35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하였습니다. 지금 사방에 추수할 곳이 많고, 또 씨를 뿌려야 할 곳도 많습니다. 부지런히 전도하여 복음의 씨를 뿌리고, 한 영혼의 생명이라도 건져내야 합니다. 전도하여 택한 백성을 거둬들여 오면 하나님께서 삯도 주시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도 주십니다. 추수할 때는 뿌린 자도 즐겁고 거두는 자도 즐겁습니다.

사52:7에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했습니다. 좋은 소식만 전하며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계 14장 14~20절 / 박조준목사

본문에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면류관 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했는데 그분은 심판날에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이심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 시기가 중요한데 그것은 그때가 이르러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 둘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거둘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교회에 편지하면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 했습니다. 그 러면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고 경고했습니다. 사람이 남에게 속아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지 만 스스로 속아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 시 말해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속일 수 있는 줄로 생각하는 이가 있다고 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 진실과 실행이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신 말씀 또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자연 의 원칙입니다. 우리는 먼저 심어야 나중에 거둡니다. 심지 않고 거둘 수는 없습니다. 봄에 심 어서 가을에 거둡니다. 그것도 종류대로 거둡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벼를 심으면 벼를 거둡니다. 주님께서도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다 고 하 셨습니다. 그리고 양대로 거둡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둡니다. 그런데 소위 증수의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를 심으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둡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두는 시기는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가령 보리는 이른 여름에 거둡니다. 그러나 벼 는 늦은 가을에야 거둡니다. 과일 나무는 여러 해 후에 거둡니다. 3∼4년 후에, 어떤 것은 7∼ 8년 후에 거두게 됩니다. 이 원칙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그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볼 때, 우리 인간 은 누구나 농부입니다.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여름에 김을 매고,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농부입니다. 우리 인간의 매일 매일의 생활은 심는 것이고,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우 리의 생각하는 것, 우리의 말하는 것, 우리의 손과 발로 행하는 것 하나 하나가 말하자면 다 심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이렇게 씨를 뿌리게 되면 거두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을 내 성품, 내 인격에서 거둡니다. 내 가정에서 거둡 니다. 내 교회에서 거둡니다. 우리 사회에서 거둡니다. 내가 사업하는 데서 거둡니다. 국민으 로서 국가에서 거둡니다. 매일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이 말하자면 씨뿌림과 같아서 오늘 심은 것이 내일, 현재 심은 것이 장래에 가서 거두게 됩니다. 젊어서 심은 것을 늙어서 거둡니다. 부모 때에 심 은 것을 자손 때에 거둡니다. 이 세상에서 심은 것을 내세에 가서 거둡니다.이 원칙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서 생각하는 것, 입을 통해서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을 조심해서 심어야 될 것입 니다. 거두는 데도 종류대로 거둡니다. 곡식 가운데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신령한 세계에서 볼 때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에 보면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 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 라 라고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뿌리고 거두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육체를 좇아 뿌리는 씨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령을 좇아 뿌리는 씨입니다. 육체를 좇아 뿌리는 씨는 썩어질 것으로 거 둘 수밖에 없습니다. 정욕으로 심는 사람은 음란과 부패를 거둡니다. 악을 심는 자는 악을 거 둡니다. 불의를 심는 자는 불의를 거둡니다. 미움을 심는 자는 미움을 거둡니다. 거짓을 심는 자는 거짓을 거둡니다. 무자비를 심는 자는 무자비를 거둡니다. 탐심과 허영을 심는 자는 그런 것을 거둘 것입니다. 전에 야곱이 자기 아버지를 속여서 형 에서가 받을 장자의 복을 가로챘습니다. 여러 해 후에 그 아들들이 그 동생 요셉을 애굽에 팔아 먹고서는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속였습니다. 자기가 아버지를 속이더니 아들에게 속았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전에 이세벨은 무고한 포도밭 주 인 나봇의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권력으로 무참하게 빼앗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 후에 자기의 피가 이층에서 던짐을 받아서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조선 500년의 당쟁을 살펴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작당을 해서 다른 사람을 모함합니다. 그 사람이 무고히 피를 흘립니다. 몇 해 후에 그들 역시 모함을 받아서 자기의 피를 흘리고 넘어 집니다. 전에 어떤 사람은 무고한 자기 아내를 단지 공부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내쫓아 버리고 공 부를 많이 한 새 아내를 맞아들였습니다.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렇 게 많던 돈, 재산이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몸에는 병까지 났습니다. 그런데 공부 많이 했다 고 맞아들였던 그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그 동안 낳은 자식들을 버리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말 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천대하면 자기가 천대를 받습니다.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 자기 가 슴이 아플 때가 옵니다. 남을 중상하고 모략하면 내가 중상 모략을 당할 때가 옵니다.

그래서 남 잡이 제 잡이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성령으로 심으면 영생을 거둡니다.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둡니다. 덕을 심으면 덕을 거둡니다. 자비를 심으면 자비를 거둡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둡니다. 친절을 심으 면 친절을 거둡니다. 화평을 심어야 화평을 거둡니다. 나치 독일 사람들이 유대인을 수없이 닥치는 대로 학살할 때였습니다. 어떤 비행장의 한 조 종사가 자기 비행기 속에서 무엇을 고치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 사람이 상기가 되어서 황급하 게 비행기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당신이 살려 주지 않으면 죽겠는데 어서 이 비행기를 띄워서 독일 국경 밖으로 데려가 달라 고 애원을 했습니다. 이 청년은 유대인이었 습니다. 이 사람의 뒤를 지금 비밀 경찰이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 조종사는 불쌍 한 생각이 들어서 얼른 비행기를 띄워서 멀리 국경 밖으로 데려다 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조종사는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그 사실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얼마 후에 제2차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이 조종사 역시 독일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서 영국으로 가서 연합군의 공군으로 종군하면서 전쟁에 가담해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비행기를 타고 출전했다가 큰 사고가 나서 그가 탔던 비행기가 추락을 하면서 중상을 입게 되 었습니다. 뇌를 다쳐서 도무지 의식이 하나도 없고 중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수술을 잘하는 이를 청해서 수술을 하고 두어 주일 후에야 의식을 회복하게 되고 수술을 해 준 의사를 만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그 의사가 바로 여 러 해 전에 자기가 독일 비행장에서 건져준 그 유대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덕을 심으면 덕을 거둡니다. 성령을 좇아 심어야 영생을 거둡니다. 또 양(量)에 따라서 거둡니다.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도 이 원리는 변치 않습니다. 고린도후 서 9장 6절에 사도 바울이 헌금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이로다 했습니다. 많이 심어야 많이 거둡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씨를 많이 뿌리도록 말이나,생각이나, 행동에 힘써야 합니다. 좋은 생각,착한 생각, 건설적인 생각, 남을 돕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말도 남을 칭찬하는 말, 싸움을 말리는 말, 아픈 것을 위로하는 말, 아름다운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행동도 좋은 행동, 봉사와 헌신의 행동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착한 것도 적게 심으면 많이 거두고, 나쁜 것도 적게 심으면 많이 거둡니다. 구약 호세아서 8장 7절에 보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작은 바람으로 심었더니 회오리바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악은 역시 많이 거두게 됩니다.흥부 놀부의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이는 교훈적인 이야기입니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착한 일을 한 흥부는 많은 보화로 보응을 받았습니다. 반면 나쁜 마음을 가지고 나쁜 일을 한 놀부는 악한 것을 많이 거두게 되 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심는가 항상 조심해서 바로 심도록 힘써야 할 것 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한정된 이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다 이해하기 어 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심오한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우리 인간이 미리 어떻게 꼭 될 것이라고, 언제 거둘 것이라 고 추측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그 사람의 생전에, 당대에 거둡니다. 그러나 그 후대에 가서, 그러니까 그 자손 대에 가서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4장 1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땅의 곡식이 다 익어서 마지막 거둘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 다.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 라 받으려 함이라 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둡니다. 크고 흰 보좌 앞에 무론 대소하고 나아가서 최후의 심판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젊을 때는 장년기와 노년기를 위해서 심는 때입니다. 바로 심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좋은 씨를 뿌리십니까?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것은 다음 우리 자손의 세대를 위해서 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어 떻게 심고 있습니까? 성령을 좇아 심어야 합니다.가령 기도하는 것도 말하자면 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의 보좌 앞의 제단의 향기와 같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 기도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추수를 거두게 됩니다. 제가 한번은 사업을 하시는 어느 집사님이 공장을 짓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리기 원해서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목사님, 제가 이 세상에서도 여러 가지로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제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제 어머님 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셨는지 모르는데 아마 그 어머님의 기도가 오늘 저에게 열매를 맺는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기도를 심으면 축복의 열매를 거둡니다. 우리의 감사도 심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많은 감사를 드릴 때 많은 감사를 거둘 때가 올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겐 전깃불을 주시고전깃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겐 달빛을 주 시고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겐 햇빛을 주시고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겐 촛불도 전깃 불도달빛도 햇빛도 필요 없는 하늘 나라의 빛을 주신다. 그렇습니다. 감사를 심으면 더 큰 감사를 거두게 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도 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보화를 많이 쌓아 둘 때 그 보화로써 축복을 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모든 봉사와 선행은 성령으로 심는 것입니다. 반드시 거둘 때가 있습니다. 행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종자입니다. 이 종자를 뿌리는 것이 곧 전도 사업입니다. 많 이 뿌리면 많은 수확을 거둘 때가 있습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받고 처음으로 목회한 곳이 영등포에 있는 영은교회입니다. 그 지역에는 그 당시 방직공장, 견직 공장, 모방 공장들이 있었는데, 그 공장의 간부들이 그 교회를 출석하 였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저는 네 공장에서 예배를 인도해야 했으므로 매주일 한 번씩 공장 예배를 인도한 셈입니다. 그런데 거의 의무적으로 공장 직원들이 예배를 드리게 되 니까 그저 마지못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분도 눈에 띄곤 했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사모해서 교 회에 찾아오신 분들에게는 말씀을 전하기에도 힘이 나지만, 의무적으로 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 에게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이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성실히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가는 곳마다 그때 뿌린 씨가 열매를 맺는 것을 볼 때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환자 심방을 하러 화곡동에 갔는데 병중에 있는 부인이 간증하는 것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30여 년 전 회사에 다닐 때 제가 설교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때에 한 설교 제목과 내용까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를 믿게 되고 우리 교회에 다니게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며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고 하신 것 같습니다. 청교도들이 처음 영국에서 미국 대륙으로 건너왔을 때 그때는 고층 건물이 하나도 없었습니 다.그때는 미국에 자동차 한 대도 없었습니다. 황폐한 대륙에 건너와 추운 겨울을 지냈습니다. 그 겨울이 지나는 동안 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얼어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도와 감사와 봉사와 전도로 계속해서 심었습니다. 오늘날 그들의 자손들이 그 추수를 하면서 복을 받는 것 을 여러분들이 다 아십니다. 한 세대가 바로 심어야 다음 세대가 바로 삽니다. 우리는 무슨 씨를 뿌리고 있습니까? 육체의 씨를 뿌렸습니까? 성령의 씨를 뿌렸습니까? 성령 의 씨를 뿌려야 우리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성령의 씨를 뿌리려면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 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먼저 내가 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온전히 내 구주로 삼고 거듭나는 축복을 받아야만 합니다. 내가 온전히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성령 의 충만함을 받게 될 때 우리가 성령을 따라 아름다운 씨를 뿌리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는 이 미 과거입니다. 우리에게는 과거를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과거의 생활이 잘못된 것 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모든 생활을 이 시간에 청산하 고 온전히 새사람이 되어서 미래에는 성령을 좇아 사는 아름다운 씨를 뿌려야겠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했습니다. 곡식을 거둘 때가 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 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습니다. 인간의 생활이란 확실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와 같이 한 자리에 모여 있지만 내일 무슨 일을 당 할지 모릅니다. 내년에 될 일을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한 아는 두 가지 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죽는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사실 입니다. 여기에는 분명치 않는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이 심판은 온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는 진리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분명하게 여러 가지 교훈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 사도들이 분명한 글로써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 니다.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낼 때가 있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곡식을 거두면 타작을 하게 되는데 거기에서는 으레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놓을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말하자면 심판입니 다. 알곡은 창고에 넣고 쭉정이는 모아서 불살라 버린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지옥불에 던진 다는 말입니다.알곡과 쭉정이는 계속 이삭에 같이 붙어 있습니다. 이삭에 붙어 있는 동안 비슷 하게는 알 수 있지만 자세히 분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 갈라놓을 때가 옵니다. 이것 이 심판입니다. 사도행전 17장 3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아덴에 가서 전도할 때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심판할 날짜를 정하여 두셨다고 선언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보면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각각 선악 간에 그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 기록했습니다. 로마서 2장 16절에 보면 우리의 은밀한 죄가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날이 있다 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우리의 양심도 이후에 반드시 내가 행한 모든 일 에 대하여 선악 간에 보응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우리의 이성도 사후의 심판을 지적해 줍니다. 이치로 생각해 보아도 꼭 그래야 될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노력은 하지만 공평한 심판이 이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알곡과 쭉정이 를 갈라놓는다면 나는 어디에 속할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의 생각, 말, 행동 하나 하나를 나중에 책임져야 합니다.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라는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미국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인데 한 번은 뉴욕의 어느 호텔에서 저명 인사 20여명과 함께 저녁 을 먹을 때였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웹스 터는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친구가 웹 스터 씨, 당신의 일생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생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생각은 무엇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때 웹스터가 조금 있다가 얼굴을 들고 다 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예, 나에게 제일 엄숙하고 중요한 생각은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을 이 다음 내가 하늘 나라에 가서 내가 책임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할 때 내 마음이 가장 엄숙해집니다. 내가 하는 생각, 하는 말, 하는 행동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 받을 것을 각오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심고 좋은 것을 거두어야겠습니다.

 

 

 

 

재림과 추수심판

 

 

 

계 14장 14~20절 / 김홍도목사

성경의 4분의 1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이고, 성경 25절 당 1절이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의 재림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의 최후완성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요, 크리스천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1. 재림은 성도의 복된 소망

 

멀리 출장을 갔거나 해외로 간 남편이 있는 부인은 밤낮 남편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문소리만 나도 혹시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나 하고 기다려야 남편을 사랑하는 정상적인 아내이지 ‘남편이야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구…’ 하거나 ‘차라리 안 왔으면 좋겠다’라고 한다면 금이 간 여자이고 큰일 난 여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고 사모하지도 않는 성도라면 구원받지 못한 성도요, 신랑 예수님의 신부 자격을 상실한 신자입니다.

 

① 예수님 자신이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곳에 예수님 자신이 다시 오신다고 직간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② 천사들도 증언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0~11절에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라고 천사들이 증언했습니다. 승천한 장소도 감람산이고 재림하는 장소도 감람산이라고 스가랴 14장 4절에 예언되었습니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라고 했습니다.

 

③ 사도 바울도 증언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5~17절에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디도서 2장 13절에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라고 하신 말씀 등 여러 곳에 재림을 말씀하셨습니다.(딤후4:7-8,고전15:51-52,빌3:20-21)

 

④ 사도 요한도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6절에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22장 20절에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성경을 끝맺음했습니다. 그 외에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도 다 재림을 소망 삼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2. 재림의 징조

 

재림의 때와 시한은 아버지만 아시고 인자도 천사들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마24:36,행1:7). 그러나 재림의 징조에 대하여 성경은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선민 이스라엘의 징조

마태복음 21장 19절에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죽게 하신 예수님은 소계시록이라고 하는 마태복음 24장 32~33절부터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라고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무화과나무가 말라죽는 것으로 가르쳤고, 멸망했던 무화과나무가 다시 살아나면 주의 재림이 임박한 줄 알라고 하시면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14일에 독립했으니 주의 재림이 심히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세대”는 몇 년인가? 40년, 50년, 혹은 100년으로 보기도 합니다(창15:12-16, 400년을 4세대라고 함). 어쨌든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재림하신다고 했으니 심히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날들을 감하리라”라고 했습니다.

 

② 자연계의 징조

요한계시록 8장에 보면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각종 재앙이 임하는데 첫째 나팔을 불 때에 피 섞인 우박이 쏟아지매 땅의 3분의 1이 타서 사위고 수목 3분의 1이 타서 사윈다고 했습니다. 많은 산천초목이 불타 죽는다고 했고, 둘째 나팔을 불 때에 바다 3분의 1이 피가 되고 바다생물 3분의 1이 죽는다고 했고, 셋째 나팔을 불 때 강들의 3분의 1이 쑥같이 되매 많은 사람이 죽더라고 함은 물의 오염으로 사람 3분의 1이 죽을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또한 수억 년 또는 수천 년 얼어붙었던 빙산이 녹아내려 바다의 수위가 올라가서 섬들이 잠겨가고 있습니다. 눈이 안 오던 곳에 눈이 오고 비가 안 오던 사막에 비가 오는 일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하늘의 징조”라고 봅니다. 그 외에 오존층이 파괴되고 석유나 가스 같은 지하자원이 거의 다 고갈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종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③ 국제정세의 변화

다니엘 2장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꿈에 본 큰 우상이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그 종아리는 철이며, 그 발은 얼마는 철이고 얼마는 진흙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돌 하나가 내려와서 그 우상의 발을 치니까 그 우상은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날아가 버리고 우상을 친 돌은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금으로 된 머리는 바벨론인데 그 다음에 나오는 가슴과 팔에 해당한 메데와 파사 나라에 의해서 멸망할 것을 의미하고, 메데와 파사는 배와 넓적다리에 해당한 헬라에 의해 멸망하고, 이 헬라는 철로 된 두 종아리 로마에 의해 멸망하고, 이 로마가 멸한 후 구라파의 여러 나라가 연합하는 날이 오면 머지않아 뜨인 돌이 되시는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러 재림하신다는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현재 구라파의 여러 나라가 유럽공동체를 만들고 공동화폐 유로화도 만들어 살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아 주의 재림이 심히 가까운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상을 친 돌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나라, 천년왕국이 세워지고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 되시고 주와 함께 온 부활한 성도들은 크게 혹은 작게 왕(통치) 노릇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천 년이 차면 가두었던 마귀들이 잠깐 놓였다가 영원한 불못에 던지워지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에, 예수님 믿지 않던 사람들은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다니엘 7장 3절은 유명한 구절인데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을 예언한 것이고,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라고 했습니다.

 

3. 재림시에 일어날 일들

 

① 공중재림과 7년 혼인잔치

예수님은 단번에 지상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재림하시고 하늘에서는 7년 어린양 혼인잔치가 있게 되고(계19:7, 마22:2, 마25, 눅12:36, 눅14:8) 땅에서는 7년 대환난이 있게 됩니다. 창세 이래 없었던 큰 환난이 있게 됩니다.

 

② 죽은 자의 부활과 산 성도의 휴거

주님이 공중재림하실 때 구원받고 죽은 성도들의 영혼이 주와 함께 오실 때 그들의 몸이 부활하여 휴거하면서 영혼과 재결합하게 되고 그 때에 살아 있던 거듭난 성도들은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이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② 주님을 대면하게 됩니다

주님을 생각만 해도 기쁘고 꿈에서 뵈어도 한없이 기쁜데 그때에는 주님의 얼굴을 친히 뵙게 됩니다. 마태복음 24장 30절에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라고 했습니다(고전15:51-52).

 

4. 두 가지 추수심판

 

① 구원받을 영혼의 추수

주의 재림과 세상 심판이 심히 가깝기 때문에 주님께서 구원받을 영혼들을 추수하여 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요한계시록 14장 14~16절에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 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 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 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 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 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 같은 이, 곧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신 분이 바로 심판 주로 재림하신 예수님이고 그 분이 손에 날카로운 낫을 가지고 휘둘러 다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영혼구원의 시급함을 보여줍니다.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주님이나 천사들이 영혼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 모이는 성도들을 통하여 영혼을 추수해 들인다는 것입니다. 곧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 의 전도를 통하여 영혼을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전도는 천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한 낫을 가지고 휘두르신다”는 것은 시급하게 영혼구원을 서두르신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4장 35절에도 주님께서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하신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밀, 보리 같은 곡식은 넉 달이 지나야 되지만 영혼의 밭을 바라보면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곡식이 누렇게 익었는데도 거두지 않으면 하얗게 됩니다. 그래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땅에 떨어져 썩고 맙니다. 말세의 징조가 뚜렷하게 보이는 이 때에 어서어서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하라는 명령의 말씀입니다.

 

② 심판 받을 자의 추수

본문 17절부터 있는 말씀은 곡식이 아니라 포도송이를 거두어들이라고 하셨고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틀에 던지매 그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다고 한 것은 회개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버린 사람들은 무서운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 14장 17~20절에 에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운 심판이 있음도 믿지 않고 제멋대로 죄를 지으며 온갖 잔인하고 더러운 죄를 짓던 이들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받고 심판받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빨리 전도하여 추수해 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못에 던지워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됩니다.

빌리 그레이엄 박사님이 집회할 때마다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게 하고 또 그들을 강단 앞으로 불러내 세우기도(altar calling) 하는데 한번은 그를 따르던 어떤 교인이 왜 설교만 하고 말지 번잡스럽게 강단 앞으로 불러내곤 하느냐고 질문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그랜드캐니언 높은 꼭대기에서 철없는 어린아이가 천길만길 밑에 떨어질 것도 모르고 까불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면 가만 둘 수가 있느냐 한사코 그 위험에서 끌어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심정에서 시간마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고 결단을 내리도록 강단 앞으로 불러내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하더라는 것입니다.

무서운 심판과 지옥불을 바라보며 시급히 영혼을 구원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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