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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51214 / 무너지는 큰 성 바벨론 / 요한계시록 18:1-6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5.12.05|조회수132 목록 댓글 0

무너지는 큰 성 바벨론

요한계시록 18:1-6

1 <바벨론의 패망>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계 18:1-6 / [바벨론의 패망]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나는 또 다른 천사가 큰 권세를 받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땅은 그의 영광스러운 광채로 환해졌습니다. 2) 그 천사는 큰소리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바벨론이 무너졌다! 그곳은 귀신의 소굴이 되고 악령과 온갖 더러운 영들이 모여 들끓는 난장판이 되었다. 3) 모든 민족이 그 여인이 주는 음행의 독한 포도주에 취해 버렸다! 땅 위의 통치자들은 그 여인과 더불어 쾌락에 빠지고 온 세계의 상인들만이 그 여인의 사치스러운 생활 덕분에 큰 부자가 되어 떵떵거린다!' 4) 나는 또 하늘에서 들려 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내 백성들아, 그 여인을 떠나서 돌아오라. 그 여인의 죄에 빠져 들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역시 그 여인과 함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5) 그 여인의 죄는 이미 하늘에까지 사무쳐 하나님께서 그 죄를 심판하실 준비를 끝내셨다. 6) 그 여인이 너희에게 해준 만큼 돌려주고 악한 행위에 대해서는 갑절로 갚아 주라. 사람들에게 많은 재앙의 잔을 마시게 한 그 잔을 갑절로 해서 그 여인에게 마시게 하라.

 

본문은 사치와 음행으로 무너지는 큰 성 바벨론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죄의 자리를 피하고 거룩함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거룩함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죄짓기 쉬운 장소나 유혹과 환경을 피하는 것입니다.

 

사치와 음행으로 무너진 바벨론(1-3) 하늘에서 내려온 한 천사가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합니다. 이 천사는 큰 권세와 영광을 가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반영합니다. 이러한 천사의 모습은 무저갱에서 올라와 땅을 망하게 하는 사탄과 대조됩니다. 천사는 무너진 바벨론의 비참한 모습을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이며,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바벨론의 멸망 선포는 그의 불순종과 사치와 음행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향락과 사치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왕국은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바벨론은 음행의 포도주로 만국을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음행과 권세와 재물은 바벨론이 추구하던 것들입니다. 그것이 바벨론이 멸망하게 된 이유입니다.

 

죄에 참여하지 말라(4-6) 바벨론은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상징합니다. 바벨론에는 귀신과 각종 더러운 영이 모여 있기에 성도들이 그 가운데 거하면 나쁜 영향을 받게 되고, 마침내 바벨론과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멸망의 선언과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명령하는 또 다른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바벨론의 심판을 선포하며 성도들을 향해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들이 받을 재앙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합니다.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에 섞여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비록 바벨론에 살지만 바벨론에 동화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고 성도들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느 집단이 바벨론이고, 어느 집단이 바벨론이 아닌지를 당장에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바벨론이라는 것은 가시적인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구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따라 살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세상과 구분이 되지 않는 생각을 하고, 세상에 속한 삶을 여전히 살아간다면 바로 그 사람은 바벨론에 속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무너질 성을 쌓고 있습니까? 당신의 일터, 가정, 관계 속에서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말씀 묵상의 시작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마음입니다, 자신의 생각, 경험, 지식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진리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말씀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의미를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겸손은 마음을 열고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게 합니다. 진리 앞에 나를 낮출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호크마 주석

=====18: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 '다른 천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말이 아니라 단순히 앞장에서 언급된 천사와 구별짓는 말에 불과하다. 이 천사가 가지고 있는 '큰 권세'는 하나님으로 부터 부여받은 것임을 나타내며 천사가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을 선포하기에 합당한 큰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9:3, 10, 19). 한편 천사에게서 나오는 영광으로 인하여 땅이 환해졌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한다. 인간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영광의 빛을 입으신 하나님에게 나온 천사가 영광으로 땅을 환하게 비추는 것은 자연 스러운 일이다(시 104:2;딤전 6:16).

 

=====18: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 '힘센 음성'은 19:6과 유사한 표현으로 앞절에서 언급된 다른 천사가 '큰 권세'를 소유한 사실과 병행을 이루며 동시에 그가 선포한 내용, 즉 바벨론의 멸망이 확실한 사실임을 암시한다. 한편 '무너졌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센'(* )은 부정과거 시제이다. 이는 비록 바벨론의 멸망이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지만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한 사건임을 나타내는 표현 방법이다(Morris, Mounce).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 본문은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한 이사야의 말씀을 반영한 것으로(사 13:20-22) 큰 성 바벨론이 완전히 멸망하여 폐허가 된 모습을 나타낸다. 한편 '모이는 곳'이 되었다는 말은 큰 성 바벨론이 완전히 패망하여 사단의 하수인인 귀신들이나 악령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전락하였음을 시사한다(Johnson, Swete).

 

=====18: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 본문은 큰 성 바벨론이 멸망당하는 이유이다. '음행'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하는 것을 가리킨다(렘 3;2;호 4:10). 큰 성 바벨론은 자신이 범죄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여 모든 나라들로 자신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짐승을 숭배토록 한다. 그 결과 큰 성 바벨론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인하여 그 화려함이 사라지고 폐허가 되어 오직 더럽고 악한 영들과 짐승들만이 거하는 처소로 변하게 된다(2, 18).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 본문은 17:2절을 반영한다. '땅의 왕들' 곧 세상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한 제도의 원형인 큰 성 바벨론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며 악한 행위를 일삼는다. 이들의 악한 행위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음행 뿐만 아니라 큰 성 바벨론과 야합하여 부와 사치를 즐기는 것을 가리킨다(9절).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 본문은 상인들의 치부를 지적할 뿐만 아니라 큰 성 바벨론의 또 다른 멸망 이유인 '사치'에 대해 진술한다. 큰 성 바벨론은 방탕하고 호화스러운 생활은 이와 결탁한 상인들에게도 부와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게 되었고, 상인들은 그 이익으로 인해서 분에 넘치는 부를 누리게 된다.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 '하늘로서 다른 음성'은 '내 백성 아'라는 진술로 보아 하나님의 음성인듯 하나 사실상 하나님의 음성으로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다음절에서 '하나님'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다른 음성'의 주체에 대한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나(Charles) 천사의 음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Mounce).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 본절은 바벨론을 향해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했던 메시지를 반영한다(렘 50:8;51:6-9). '나와'이 헬라어 '여셀다테'(* )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을 통하여 자신의 백성을 구별하시는 것을 나타낸다(창 12:1;렘 51:45, Mounce). 하나님은 구속받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큰 성 바벨론의 죄악인 음행과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들지 말고 빠져 나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도록 명령하신다(Kiddle). 이러한 명령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려는 짐승에 의해서(13:7, 8) 모든 백성들이다 순교하는 것이 아님을 암시함은 물론(Ladd) 이러한 짐승의 핍박과 유혹에 넘어가 큰 성 바벨론에 참여하는 백성들은 큰 성 바벨론의 죄에 참여하는 것이 되며 그로 인해 큰 성 바벨론 이 당할 멸망에 동참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백성들이 큰 성 바벨론에서 나와 구별될 것을 명령하시며 경고하신다. 이 경고에 대해 혹자는 짐승을 숭배하는 자들을 향한 마지막 회개에의 촉구라고 해석하나(Caird) 그렇게 볼 이유는 없다. 도리어 그것은 큰 성 바벨론의 유혹을 당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명령과 경고이다(Johnson).

 

=====18: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 본문은 렘 51:9을 반영한다. 큰 성 바벨론의 죄는 하늘에 미칠 정도로 극에 달하였다. 그의 죄는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관영하고 팽배해졌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 즉 죄를 기억하셔서 진노의 포도주를 부어 심판하실 것이다(2, 6절;16:19).

 

=====18: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 본절은 하나님의 보응의 심판에 대한 진술이다. 여기서 '갑절을 갚아주고'의 해석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큰 성 바벨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최대한의 형벌이나 심판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orris). (2) 혹자는 '갑절을 갑아주고'가 구약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관용구로서 합당한 징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렘 16:18;17:18, Beckwith, Ladd).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음녀의 큰 성 바벨론은(17:18) 하나님을 대적한 죄는 말할 것도 없고, 만국을 미혹하여 사람들로 하나님과 어린양을 대항하게 하고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하며 분에 넘치는 사치에 빠져 교만에 이르게 한 죄에 대해 응당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한편 앞절과 본절에서는 성경의 복수에 대한 진술을 엿볼 수 있다. 신약성경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구약성경에 나타난 복수법을 시행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 축복을 기원해야 하며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롬 12:14, 17).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복수의 심판까지도 백지화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큰 성 바벨론의 죄악을 기억하시고 공정히 판단하셔서 마지막 날에 심판으로 보응하실 것이다(신 32:35;렘 51:24, 36;롬 12:19;벧전 3:9).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표지

계 18장 4~8절 / 오정호목사

20여년 전데 프랑스의 문명비평가로 이름이 있는 기소르망이라는 석학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문화에는 부가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이미지를 높이면 한국의 제품에 대해 좋은 인식을 심어주게 되고 그 결과 제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사건과 사물을 대할 때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남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각계에서 자신들의 관심을 다양하게 표명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북한과의 관계를 공존과 연합의 관계로 재정립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경제인은 경제인대로 북한 경제특수를 기대하고 있으며 인도주의자들은 이산가족 상봉문제에 그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자들의 관점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하나님께서 북한의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우며 특별히 지하교회 성도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시는 기회로 바라보는 신앙의 독특한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이 시대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규정하는지를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세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세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을 말하며. 특별히 말세의 마지막인 말세지말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이 말세지말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표지에 대해서 세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거룩하게 구별하여 사는 것입니다(4절).

 

본문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대명사인 바벨론이 등장합니다. 바벨론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유혹한 세속나라였으며, 마지막 때의 영적인 대적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바벨론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4절). 바벨론이라는 이 세상나라가 큰 재앙가운데 무너질 것을 보여주시며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말고 믿는자의 도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는 주님의 기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14장7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믿는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바벨론이 대신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 삶의 내용, 삶의 표준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순결하게 구별된 신부처럼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입니다(19장7절). 이 거룩한 세마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만 입혀주시는 것인데, 이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19장8절). 따라서 깨끗하고 구별된 삶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표지로 나타나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산 흔적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향하신 뜻은 자신을 지켜 바벨론의 우상에서 깨끗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요일5장21절).

하나님의 자녀답게, 구원을 체험하고 천국에 소망을 가진 자답게 사는 것이 말세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의 표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2절).

 

바벨론은 무엇입니까?

첫째, 큰 성, 큰 도시입니다(14장8절). 큰 도시 바벨론은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합니다. 다시말해 도시는 음행과 더러운 죄악의 집산지입니다. 도시의 익명성은 범죄를 부추기며 생존을 위해서 서로를 짓밟는 곳입니다. 수많은 순수한 젊은이들이 성공을 위해 도시로 모여들지만 그 순수함은 곧 더럽혀지고 맙니다. 도시는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바벨론의 별명은 ‘음녀’입니다(17장1절). 음녀는 이교도의 우상숭배에 대한 혐오적인 표현으로 성경에 등장하는데 성적타락을 부추기는 세력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면에서 우상을 숭배하도록 유혹하는 곳입니다. 로마가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핍박했다면 바벨론은 말세에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가 성도답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핍박합니다.

셋째, 바벨론은 권력과 부의 세력이 음란과 사치의 세력과 결탁하는 곳입니다(3절). 음란의 영은 육신적으로 음행을 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시킵니다. 음란의 영이 교회에 들어오면 고린도교회처럼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게 되고 정치권력속에 파고들면 사리사욕에 눈을 멀게 됩니다. 도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여 돈을 벌어들입니다. 요즘 TV는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청률을 높여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도덕성과 윤리성도 내팽개칩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더 도시의 화려함과 사치속에 빠져들어가고 하나님으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시의 타락한 문화는 곧 신앙의 세속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돈을 벌어들이는 그 자체에 있거나 세상괘락을 누리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넷째, 바벨론은 자기를 영화롭게 합니다(7절). 세상은 스스로 자고합니다. 세상은 점점 더 화려함과 교만을 더해갈 것이며 세속화 될 것입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가치를 우리들에게 강요합니다. 만약 세상의 요구대로 따라간다면 우리는 신앙고백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세상과 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거룩한 소속감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교우여러분, 영적분별력을 가지고 마지막때의 큰 성 바벨론의 영적인 정체를 직시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세상의 종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10절).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세력보다도 강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나라 바베론이 자신의 크고 강함을 교만으로 뿜어낼지라도 하나님이 손에 잡고 불어버리시면 티끌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 바로 바벨론의 운명입니다(10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기전 첫 성이었던 바벨론이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힘없이 무너져버린 것처럼 세상나라 바벨론의 부와 권력과 교만은 반드시 두려움과 통곡 속에 그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16,19절). 하나님의 시간이 이르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 있는 세력은 이 땅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바벨론이 심판받아 멸망당할 때에 저 하늘에는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다”는 승리의 찬양이 울려퍼지게 될 것입니다(19장1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궁극적인 승리를 바라보면서 현재의 삶 속에서 이 승리의 찬양을 노래하기 원하십니다. 찬양할 제목이 있습니까? 마음껏 찬양하십시오. 고난이 있습니까?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이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며 세상과 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힘있게 감당합시다(약4:4). 그리하여 우리 주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심판주로 속히 오실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3장10 ,11절).

 

 

 

 

바벨론이 멸망한 이유는?

계 18장 1~10절 / 조영식목사

들어가는 글.

오늘은 1월 네 번째 주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기독교를 핍박한 로마 제국을 17장에서 세상과 음행하는 음녀로 비유하고, 18장에서 사치와 향략에 빠진 바벨론으로 비유합니다. 계시록에서 음녀와 바벨론은 ‘큰 성’으로 연결되어 로마 제국을 동일하게 상징합니다(17:18/18:2). 이처럼 기독교를 핍박한 로마 제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음녀와 바벨론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묵시 문학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세상도 로마 제국을 비유하는 음녀와 바벨론의 모습처럼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신천지는 일반 교회를 오늘 본문의 바벨론과 동일한 모습이라고 우겨대면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바벨론처럼 멸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로마 제국이 바벨론 제국처럼 멸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 본문에서 로마 제국이 바벨론 제국처럼 멸망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고 합니다(2절). 계시록에서 더럽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모독한다는 의미입니다(17:3). 로마 제국은 바벨론처럼 주님을 모독하는 더러운 것들이 모였기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그러므로 더러운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거룩한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는 세상에서 주님을 모독하는 더러운 것들과 함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더러운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세상과 더불어 음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다”고 합니다(3절). 계시록에서 음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과 혼합되어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엡5:5). 여기서 음행하는 자와 더러운 자와 탐하는 자를 모두 우상 숭배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클수록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가 우상 숭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7절). 교회를 다녀도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너무 크며 우상 숭배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위하는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위하는 주님의 제자로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사치의 세력과 치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고 합니다(3절). 여기서 바벨론이 무너지는 이유로 사치의 세력과 치부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더러운 것은 영적인 타락이며, 세상과 혼합되어 음행하는 것은 육신의 타락이고, 사치의 세력과 치부하는 것은 물질의 타락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는 것은 물질을 낭비하여 자신을 과대 포장함으로 주목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황금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물질을 통하여 자신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합니다(마6:24). 여기서 재물이 하나님을 대신할 만큼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물에 종속되어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심판하시나요?

세상 사람들이 영적으로, 육적으로, 물질적으로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심판하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심판에는 공의로운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 가지의 기준을 지켜야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는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준다”고 합니다(6절). 사람이 심는 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심어야 합니다. 둘은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준다”고 합니다(6절).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셋은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준다”고 합니다(6절). 사람이 섞어서 혼합되게 한 만큼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썩어서 혼합되지 않고 거룩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장담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장담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는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바벨론은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라고 장담합니다(7절). 그러나 바벨론이 여왕으로 영원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우주에서 영원한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유한한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세상에서 결단코 당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바벨론은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장담합니다(7절). 그러나 바벨론은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애통함을 당하여 멸망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결단코 당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애통한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 애통함을 당한 영혼들을 위로해주며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우리가 멸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가 어떤 일에 참여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합니다(4절). 여기서 ‘참여한다’는 것은 함께 나누어 가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내 백성들에게 죄에서 나오고 그의 죄에 다시는 참여하지 말라고 합니다. 만약 세상의 정치에 참여한다면 함께 나누어 가지기 때문에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또한 주일 날 예배에 참여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에 참여하느냐가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여 함께 나누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무엇 때문에 가슴을 치며 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라고 합니다(9절). 땅의 왕들이 바벨론과 계속 사치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워서 가슴을 치며 울었던 것입니다. 만약 자신들의 죄악을 보면서 가슴을 치며 울었다면 구원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 때문에 가슴을 치며 우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상처받고 속상해서 우는 일은 많지만, 자신의 죄악을 보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일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상처받고 속상해서도 울 수도 있지만, 자신의 죄악을 보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림으로 구원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고 합니다(5절). 세상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사람의 기억보다 하나님이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사람의 기억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억으로 심판받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코로나로 어려운 목사님을 위로하러 갔는데, 오히려 위로받고 돌아왔습니다. 그 목사님이 저에게 연기자들이 드라마 배역을 몇 개월 하면 현실에서도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예를 들면서, 목회자들이 설교하면서 자신을 거룩한 제사장처럼 착각하여 현실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하라는 권면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성찰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바로 세워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로마 제국이 바벨론처럼 멸망하는 세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요?(2,3절)

2. 하나님이 공의롭게 심판하는 세 가지 기준은 무엇인가요?(6절)

3. 우리가 장담하지 말아야 하는 두 가지는 무엇인가요?(8절)

4.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지 않기 위한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4,5,9절)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위함으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 있나요?

2. 우리에게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닥친 것은 무엇이 있나요?

3. 우리가 주님 안에서 참여할 것과 참여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들이 있나요?

4.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성찰할 때 어떻게 기억하신다고 생각하나요?

 

 

 

 

세계화의 침몰 - 교만은 패망의 선봉

계 18장 1~10절 / 이상호목사

오늘 읽어 드린 요한 계시록 18장의 말씀은 바벨론의 멸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에 나타난 바벨론은 로마제국을 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18장은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한참 번영을 누리고 있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란 말이 나올 정도로 로마가 당시 지중해 연안 일대를 완전히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당시 세계가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이 되었을 뿐 아니라 로마가 지배하므로 말미암아 미개하였던 여러 나라들이 새로운 문명을 맛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로마의 지배를 오히려 감사하게 여길 정도였습니다. 2세기 사람인 아리스티데스란 수사학자는 그 로마의 평화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당신들이 나타나면서부터 혼란과 폭동이 사라졌다. 도처에 질서가 들어섰으며, 삶과 국가에 밝은 빛이 나타났고, 법들이 등장했으며, 신들의 제단이 신앙으로 넘쳤다" 그 어떤 전쟁도 이 땅과 도시들을 파괴하지 못했으며, 예술과 상업, 그리고 농업이 발전했고, 라인에서조차 포도가 재배되었으며, 교역과 무역이 성행했습니다. 새 도시가 생겼으며, 옛 도시들은 화려하게 꾸며졌습니다. 아리스티데스는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이 로마의 평화를 찬양했습니다. "도시들은 지금 광채와 우아함을 발하고 있으며, 온 세상이 유원지처럼 꾸며지고 있다."

"로마의 평화"는 정치적인 면에서 볼 때 강력한 군사력으로 안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즉 법과 질서를 마련해 주므로 누구나 자유롭게 그 영토를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에는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회의 행복이었습니다. 동시에 여러 나라를 하나의 국가로 통일시키므로 이룩하는 여러 가지 편리한 점들이 있었으며,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낙후되었던 산업을 일으키고 교역을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하므로 놀라운 경제적 부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각 지역에 있었던 문물들이 서로 유통되므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가 이룩한 세계화였습니다. 강력한 힘에 의해서 세계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강력한 경제력에 의해서 경제세계화가 이루어진 것에 비교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로마의 평화"는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느껴졌을 뿐이지 실제로는 "피와 시체"로 얼룩진 평화였던 것입니다. 로마의 평화는 결국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므로 얻어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많은 나라의 많은 가정들이 파괴되고 그 전통적인 문화가 짓밟히면서 이룩된 평화였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지켜온 문명이 송두리째 뿌리뽑혀 사라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고,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끌려가 "로마의 평화"를 이룩하는 데 그들의 땀과 피를 바쳐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런 로마의 평화를 당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찬양을 하고 그 평화를 즐겼을까요? 아닙니다. 로마의 지식인들 중 몇 사람은 이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흑철 시대보다 나쁜 시대, 이 시대의 타락에 걸맞는 이름이나 금속을 자연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당연히 식민지의 지성인들도 로마의 평화에 대해 비판을 가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결코 로마적 평화의 풍요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로마의 평화가 시작되던 초기에 이 땅에 태어나셔서 활동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르치신 평화는 로마의 평화와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로마의 평화는 힘에 의한 지배였지만,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평화는 원수를 사랑하며, 자기를 희생하므로 이룩하는 평화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로마의 평화를 비판하시지 않았지만, 사실상 예수님보다 더 날카롭게 로마를 비판한 사람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로마 총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도록 내어 준 것은 단순히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로마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후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황제를 주(主)로 고백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면서 로마의 평화를 사실상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로마의 평화 후기에 저작된 예언서입니다. 이 당시 소아시아의 교회들이 로마의 권력에 의해 박해를 받았는데 그 중요 원인이 바로 황제 숭배 거부였습니다. 식민지에서의 황제 숭배는 로마에 대한 충성심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황제 숭배 및 이와 관련된 축제를 기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로마에 불충하는 무리들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교회들은 핍박과 박해를 받아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로마에 대하여 요한은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들의 권력은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막강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정당한 것이 아니라 악의 근원이 사탄에게서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미국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의 붕괴를 지켜보면서 저는 다음의 말씀들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잠언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고린도전서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에 사도요한이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되어질 일을 기록한 것인데(계1:19) 오늘 읽은 말씀의 내용을 보니 미국에서 생긴 테러사건으로 무너진 빌딩과 그 상황을 보는 것 같아서 전율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더욱 생기에 됩니다.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면...

 

첫째: 1-7절을 보면 인류의 큰 사건이나 한 개인과 가정사의 일까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교만과 음행과 우상숭배의 가증한 것은 언제나 심판을 하시어 경고하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고 노아시대의 홍수심판이 그랬습니다. 인간이 만든 호화유람선인 타이타닉호가 절대로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으나 침몰했으며 미국이라는 지구상의 초강대국이며 경제대국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의 두 빌딩도 무너졌습니다.

7절을 보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고 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인간의 교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왕으로 최고의 높은 자리에서 권세를 부리게 될 인간의 아집을 볼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멸망당할 교만의 행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우기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원을 얻은 우리들은 " 나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라"는 믿음의 고백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8-10절의 말씀을 보면 순식간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재앙이 이르게 되니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 이르게 되고 그 아름답던 부와 건물이 순식간에 없어져 버립니다.

특히14-19절의 말씀을 보니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여 사라진 세계무역선터를 연상하게 됩니다. 8-9절을 봅시다. 불붙는 연기를 보고 또 재앙으로 가슴을 치며 사망의 고통이 있습니다. 애통하는 고통이 있습니다....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애통이 있습니다. 흉년이 있습니다...순식간에 세계의 증권시장이 폭락하게 됩니다. 비싼 가격에 주식을 샀던 사람들이 주식의 폭락으로 흉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계시록 18장의 내용이 현 국제정세와 일련의 사건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지도 모르지만....... 저의 심정은 지금의 현실에 대한 예언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만약 이 예언의 말씀이 지금의 현실에 처한 우리의 시대에 대한 예언이라면 종말이 곧 닥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종말이 와도 감사한 일이지만 전도하지 못한 가족들은 어찌하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의 멧세지를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너무나 현실의 사태와 흡사하기에 더욱 겸손히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섬기며 기도하고 충성하는 신앙을 회복해야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과 그분의 일을 위하여 우리에게 있는 달란트와 몸과 재물을 겸손히 그분께 드릴 수가 있도록 희생하며 섬기는 믿음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1912년 4월 14일에 침몰하기 시작하여 15일에 완전히 깊은 바다 속에 빠져버린 <타이타닉>호를 중심으로 꾸민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지만, 사실은 문명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어야 할 것입니다. 제작자들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영화를 만든 미국이야말로 바로 그 타이타닉이란 거대하고 화려한 배와 같은 나라요 그러나 결코 가라앉지 않는다고 장담하던 그 호화스러운 배가 첫 항해에서 예상치 않았던 빙산 조각에 의해 무참하게 가라앉아 버린 것처럼 머지않아 가라앉을 것이라는 예언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 2억불 이상이 들었다고 합니다. 실제 배 크기의 90%쯤 되는 233미터의 모형배를 만들었고, 100일에 걸쳐서 그 배를 띄울 큰 물탱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벌어드린 돈은 5억8천2백만불, 우리 돈으로 환산해 보니 7566억원 정도 되었습니다.

당시 이 배에는 유럽과 미국의 특급 부자들과 유명 인사들과 귀족들이 많이 탔다고 합니다. 특급실의 경우 배삯이 당시 돈으로 4천불 지금 달러로 계산하면 5만 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약 6,700만원입니다. 초호화 주택을 방불하게 하는 방인데 이 방을 이용한 사람은 제이콥 아토스 4세라는 갑부였습니다. 내외와 시종들을 거느리고 탄 것입니다. 8,700만불의 재산을 가진 그에게 4천불의 배삯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배에는 미국에 건너가 새로운 삶을 개척해 보겠다는 이민자들이 많이 탔습니다. 물론 그들은 대개 3등 칸에 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모두 2224명이 탑승을 하였는데, 이 배에 달아놓은 구명보트는 1178명 즉 50%에 해당하는 사람만 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배는 16개의 방수 격실(防水隔室)로 구성된 2중 바닥의 선체구조로 되어있는데, 이 방수 격실들 중 4개는 침수되더라도 선체의 부력에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배는 결코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4월 14일 자정이 되기 조금 전에 배는 빙산과 충돌했으며 방수 격실들 중 5개가 파괴되었고, 결국 배는 4월 15일 오전 2시 20분 경부터 바다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제일 아래 기관실에서 땀을 흘리며 석탄을 퍼붓느라 정신이 없던 사람들부터 희생이 됩니다. 물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쇠문으로 기관실을 차단하여 버립니다. 그리고 이어서 3등칸에 탄 사람들이 몰려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여기에 탄 사람들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기 때문에 언어소통의 문제로 당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른 채 결국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배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705명이고 1500명이 얼음처럼 찬 바다에 빠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을 보면, 특별실에 탔던 여자는 100%, 남자는 50%, 그리고 3등칸에 탔던 여자 25%, 남자는 10%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구명보트에 1178명이 탈 수 있었는데도 705명밖에 살지 못한 것은 부자들이 넉넉하게 보트를 타게 하기 위한 조치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약 500명을 더 태울 수 있었는데도 결국은 부자들 때문에 그 5백명이 희생된 것입니다.

타이타닉은 산업화에 도취되어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던 20세기에 처음으로 울린 경계 사이렌이었습니다. 그것을 다시 영화로 만들어 오늘 전세계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그것이 바로 오늘 신자유주의에 의한 경제세계화의 침몰을 경고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요한계시록이 경고하듯이 분명 거대한 맘몬은 맷돌처럼 내어 던져져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맘몬 세력에 항거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예언자들이여,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대 들을 위하여 그 도시를 심판하셨습니다. 18:20

지금 우리가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결코 그 거대한 세력에 굴복하기보다는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그가 심판하실 그날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반드시 그날은 올 것입니다. 이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고 새 예루살렘이 건설되는 그 날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경제 도시 바벨론의 멸망

계 18장 1~24절 / 박조준목사

요한계시록 18장은 17장에 이어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장에서는 종교 도시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서 생각한 바 있습니다. 17장과 18장을 구별하지 않고 같이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내용상으로 보아 같은 것은 아 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본문 1절을 보면 이 일 후에 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18장의 사건들이 17장의 사건이 끝난 후에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했는데 17장의 사건들은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한 천사 에 의해 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18장에 나타난 천사는 다른 천사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전 체를 통한 천사가 자기 의무를 다하고 가면 다른 심판이 땅에 내리도록 하는 원칙이 서 있는 것 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7장과 18장에 나오는 이름들이 서로 다릅니다. 18장에는 큰 성 바벨론 이라고 기록되 어 있습니다. 17장에서 멸망된 바벨론은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계 17:5)는 이름으로 언급했습니다. 같은 말은 바벨론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이름을 잘 비교해보면 차이점이 있습니다. 17장에 기록된 음녀 바벨론은 이 땅의 왕들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기록된 바벨론에서는 상인들과 임금들이 바벨론을 위해 슬퍼하 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17장과 18장이 환난기 종말에 가서 일어난다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모든 종교를 말 살시키고 그 대신 13장에 나타난 대로 적그리스도의 화상 앞에 절하게 할 수 있는 시기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점으로 보아 17장은 종교단체의 멸망을 말씀했고, 이제 생각하게 되는 18장은 사단의 보좌 다시 말하면 상업과 정치의 도성 바벨론이 멸망함으로써 환난기의 종지 부를 알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에 나타난 또 다른 천사 라는 것이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 중의 하나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이 천사가 그의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하는 큰 권세 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천사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큰 성 바벨론이여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하는 소리였습니다. 본문은 환난기에 세계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던 성읍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히 이 도시가 어디일까 하고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학자는 거 기는 로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학자는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이라고 말하기도 합 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성경에 쓰여진 말 그대로 바벨론이 재건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벨론 도시가 어디냐 하는 데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모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바벨론이 재건된다고 믿는 데는 아직도 성취되지 않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여러 가지 예언들 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사야서 13∼14장, 예레미야서 50∼51장은 주님의 날 에 바벨론이 멸망한 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읽어보면 구약에 기록된 바벨론 멸망의 예언들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만에 이스라엘의 적인 바벨론 이 멸망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바벨론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정치 체제 와 경제, 그리고 종교 체제의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에 이 예언의 두 번째 의미는 여호와의 날 다 시 말하면 환난기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51장 26절을 보면 사람이 네게서 집 모퉁 잇돌이나 기촛돌을 취하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영영히 황무지가 될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바벨론을 멸망시켰을 때 그 중에 아무것도 다른 도시로 실려가 쓰여질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예레미야나 이사야의 예언도 바벨론이 갑자기 무너져 망하였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13장 19절에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 볼 때 바벨론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갑자기 멸망될 것을 예언해 주고 있습 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바벨론이 그런 식으로 갑자기 멸망하지는 않습니다.이사야서 13장 20절에 보면 바벨론이 폐허되고 말아 다시금 사람이 거주하지 않게 되리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처할 자가 없겠고 거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 아라비아 사람도 거기 장막을 치지 아 니하며 목자들도 그곳에 그 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하였습니다. 클라렌스는 「섭리의 진실성」이란 책에서 고대 바벨론이 그렇게 갑자기 망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바벨론 성읍은 기원전 541년 구브로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벨사살 왕의 축제가 있던 밤, 그 성읍을 흐르는 강물과 뚝 속에 있는 수문을 이용해서 침입했는데 그 날 따라 바벨론의 파수병이 성문 잠그기를 잊었다고 합니다. 함락이 된 후에도 사흘이 지나도록 그 사실 을 몰랐을 정도로 조용히 해치웠다고 합니다. 그 당시 성읍의 파괴는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그래 서 어떤 학자는 고대 바벨론이 다시 부활할 것이고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 합니다. 다시 재건된 바벨론은 사단의 보좌가 되어 환난기 동안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의 역 할을 해 나갈 것입니다. 이 도시가 이토록 찬란하고 웅장하지만 이 도시는 세계 역사상 가장 짧 은 역사를 가진 수도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멸망을 당하여 순식간 에 황폐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3절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천사의 선고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온 천사에게서 하나 님의 영광이 빛났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세상을 비춰주는 것, 그 자체가 벌써 어두움에 대한 심판인 것입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 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 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 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지옥처럼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귀신들과 악한 영들이 벌 받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 이 되었다고 하는 것 은 말할 수 없이 황폐하여진 상태를 말합니다. 바벨론이 왜 이처럼 무서울 정도로 멸망하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음행과 사치 때문이었습니 다. 이 세상의 문화가 극도로 발달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역하고 음행과 사치를 좇게 합니다. 위정자들도 같은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게 되는 것입 니다. 그리고 세상주의는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극도로 쌓게 되고 그것을 자신만을 위하여 사치 스럽게 사용하게 되어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해야 할 물질을 자신의 향락과 사 치만을 위해서 사용하게 되니 하나님의 멸망이 임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사치 때문에 돈을 버는 사람도 있으나 결국 그것 때문에 자신들도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4절에 보면 택한 백성은 이런 자리에서 구별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또 내가 들으 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 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행악자와 함께 멸망당하는 것 은 있을 수도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마지막 때에 있을 일을 말씀하였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 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 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 사랑하 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런 자리에서 돌아서 나와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우리 모두 복 있는 사람의 길을 걷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바벨론이 멸망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본문 5∼8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가 나안 7족을 멸망시키실 때도 그들의 죄악이 관영한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그냥 두시지 아니하십니다.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다 고 하는 것은 죄의 내용이 하나님께 알려졌 다는 말이 아니라 그 분량이 너무 많아서 하늘에 닿았다는 말입니다.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말입 니다. 하나님은 그 불의한 일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 불의에 대해서 그냥 넘겨 버리시지 않 습니다. 반드시 벌하십니다.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원리를 그대 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 갑절을 갚는다 고 했는데 이것은 꼭 2배만 갚겠다는 것이 아닙니 다.

구약성경에 보면 7배나 갚는다고 했는데 사실은 같은 뜻입니다. 무서운 형벌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의 죄악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영화롭게 한 사치의 죄입니다.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얼마나 교만했습니까?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려야지 다른 어떤 사람에게 돌려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진노를 갚으십니다. 그러므로 그 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주라 고 했습니다. 부귀영 화를 이 땅에서 마음껏 누리게 되었으니 고난과 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부자와 나사로; 눅 16:19∼31). 8절에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했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 쌓아올린 문화 라고 하더라도 파괴가 됩니다.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그 어디라 도 빛을 낼 수 없습니다. 이사야서 47장 8∼9절을 보면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린 일도 모르 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 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슨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했습니 다. 하나님의 갚으심은 진실로 공의롭습니다. 하나님은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21장 30절에 보면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한다 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당할 자 없습니다. 이처럼 사치와 부귀로 싸여 있던 바벨론이 망하게 되자 이를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 문 9∼19절까지입니다. 바벨론 때문에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은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이처럼 허무합니다. 세상의 영화와 권세를 누리던 왕이 슬퍼합니다. 권 세를 잃은 왕의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처량합니까? 큰 성, 견고한 성이 일순간에 무너졌 습니다. 장사로 돈을 벌던 사람들이, 상인이 슬퍼합니다. 다시 물건을 사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 건 사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데 장사가 무슨 장사입니까? 상품을 보세요. 모두가 사치품들입니 다. 넷씩입니다. 금, 은, 보석, 진주 는 사치품입니다. 세마포, 자주옷감, 비단, 붉은 옷감 은 사치 옷감입니다. 향목, 상아 기명, 값진 나무와 진유와 옥석으로 만든 기명 은 사치 기물들입니 다. 계피, 향료와 향, 향유, 유향 은 사치향품입니다. 포도주, 감람유, 고운 밀가루, 밀 은 고급 식료품입니다. 잘입고 잘먹는 것이 세상 영화를 취하는 자들의 상례입니다. 소, 양, 말, 수레 는 가축과 승용물로서 가축은 미식을 의미하고 말과 수레는 승용을 겸합니다. 가까운 거리도 타고 다니는 것은 사치 생활입니다. 5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곳도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사치한 생활 입니다. 종들과 사람의 영혼 이라 했는데 내가 일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 하는 일도 사치에 속합 니다. 심판 날에는 세상의 사치품들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에스겔서 7장 19절에 보면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여 그 심령을 족하게 하 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탐하던 과실, 맛있는 것들, 빛난 것들 은 미식과 아름다운 옷을 말하는데 의식주가 인간 생활에 있어서 필수품 이지만 도에 지나치는 것은 사치요, 악의 근원이 됩니다.

이 모든 부귀와 영화와 사치는 일순간 에 망하고 맙니다. 선인들이 슬퍼합니다. 모든 사치품이 무역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소용 없이 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세요. 바벨론이 이처럼 비참하게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 슬퍼하는 왕들과 상인 들과 선인들이 있는 반면 기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본문 20절에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 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 라. 우리가 이 세상에 얼마나 살는지는 알지 못하나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이 세상 위해 살지 말 고 주님 위해 사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함이 없는 세상 것에 마음을 두지 맙 시다. 롯의 아내처럼 미련 가지고 뒤를 돌아보지 맙시다. 우리 마음을 아름답게 단장합시다. 이 것이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벧전 3:3∼4).

 

 

 

 

큰 성 바벨론이여

계 18장 1~3절 / 김윤기목사

이라크는 1991년 걸프 전쟁 이후에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게 자국 내의 석유 개발권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나라에서 왕 따 당해서 석유개발권을 얻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미국은 전 세께 석유 수요의 25%를 사용하고 있어 자국 미국 내의 석유 생산의 45%만을 공급받고 나머지 60%는 해외에서 석유를 수입해오고 있으며 2020년에는 미국 내의 석유가 고갈될 것이며 이락은 세계 제 2위의 석유 매장량과 석유가 지표아래에 있어 생산원가가 적게 드는 이유에서 미국은 자국내 석유의 안전한 공급을 위해 이라크 전쟁을 할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반전 시위에도 불구하고 2003년 3월 20일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격함으로 이라크전쟁이 발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라크는 성경에 나와 있는 나라로 바빌로니아 즉 바벨론을 말하고 있습니다(이하 바빌로니아로 표기). 이 시간에는 이 바빌로니아의 역사 변천과 성경은 이 바빌로니아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대해서 본문 말씀을 가지고 조명해보려고 합니다.

 

1. 고대 바빌로니아

바빌로니아 지역을 근동 또는 중동이라 부르는데, 이 용어는 영국 사람들이 런던 교외에 자리 잡고 있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자오선(the first meridian)으로부터 아주 멀다고 생각되는 동쪽을 극동(Far East)이라고 했고, 아주 가깝다고 생각되는 동쪽을 근동(Near East), 그리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중간쯤으로 여겨지는 동쪽을 중동(Middle East)이라고 불렀던 데서부터 입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원초적인 시작은 창10:6-14에서부터 입니다.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땅의 바벨과 .... (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11:1-5)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때 쌓은 성은 바벨론이요, 대는 유명한 바벨탑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탑이란 말인데 그 말은 제사장들이 별들을 응시하던 옛날의 관측대를 의미하는 지그랕(Ziggurat)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점성술은 바벨론에서 시작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에는 최초의 점성술에 관한 주목할만한 기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점성술인 바벨론 관측소를 파괴시켰다는 말을 들을 때 별 경배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역사적인 고대 바빌로니아 지역은 바빌로니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서남아시아의 고대문명을 말하며, 또는 티그리스강(江)과 유프라테스강(江) 사이 메소포타미아(원래「메소포타미아」라고 하는 말의 뜻은「두강사이」를 의미한다고 하니,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우리의 양수리(兩水里)라고 하는 지명의 작명법과 흡사함.) 남동쪽의 지명을 말하기도하고, 바빌론 제1왕조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년대적으로는BC 4000년대 말에 이곳 남부에 세운 수메르인(人)의 도시국가에서, 바빌로니아 문명의 기초가 된 수준 높은 도시문명이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BC 2350년 무렵 셈계(系) 아카드인(人)의 사르곤 1세가 통일국가를 건설하여, 181년 동안의 아카드시대에 수메르의 문화는 셈족화되어 오리엔트(오리엔트’라는 말은 로마인이 태양이 솟아오르는 동방을 ‘오리엔스(Oriens)’라고 부른 데서 유래하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총칭한다.)의 각 지방에 전파되었습니다.

바빌론 제1왕조의 6대왕 함무라비는 숙적인 이신·라르사를 토벌하고 가까운 이웃을 평정하여 엘람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또한 중앙집권제도를 확립하고, 수도 바빌론에 성벽을 쌓고 각지의 신전을 재흥하여 말둑신(神)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를 재편성, 신상을 안치하였습니다.

또 법전(法典)을 반포하였으며. 운하를 파고 도로도 정비하여 무역을 융성하게 하였으므로 국력이 충실해져서, 바빌론은 오리엔트의 중심도시로서 번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차로 쇠약해져, BC 1530년 무렵 히타이트인(人)의 침입으로 멸망하였습니다. 이때까지를 고대 바빌로니아라고 부릅니다.

 

2. 신 바빌로니아

기원전 12세기경에 토착민들이 이방민족을 몰아내고 이신 제2왕조(기원전 1157-1025)를 열면서 바빌로니아는 다시 세력을 떨치기 시작했지만, 느부갓네살 1세 때 잠깐 빤짝하고는 한참 기세를 떨치던 아시리아에 눌려 지내야만 했습니다. 더군다나 시리아 사막에서부터 밀려 내려오는 아람족의 대대적인 약탈을 막아내느라 국력을 헛되이 소모해 좀처럼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도권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갈대아의 나보폴라살은 바빌로니아의 왕이 된 후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메대와 외교협상을 벌여 시리아와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하기로 약속하고는, 메대와 함께 기원전 612년에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를 점령하였습니다. 이어 기원전 605년에 가르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 군대의 도움을 받아 재기하려는 아시리아군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한동안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쥐고 흔들던 아시리아 제국을 결정적으로 멸망시켰습니다.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느부갓네살 2세는 이집트의 사주를 받아 반기를 든 유다 왕국을 몇 차례 침공하였습니다. 기원전 597년 바빌로니아의 제2차 침공 때에 “유다 왕 여호야긴은 자기 어머니와 신하들과 장군들과 내시들을 거느리고 바빌론 왕에게로 나아가 사로 잡혔습니다”(열왕하 24:12). 이때에 이사야 예언자가 일찍이 히즈키야에게 예언한 대로 야훼의 전과 왕궁에 있는 모든 보화를 털렸습니다(왕하 20:17; 24:13).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전 시민과 고관들과 군인 일만 명, 그리고 은장이들과 대장장이들”(열왕하 24:14)이 바빌론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2차 바빌론 유배입니다.

여호야긴 대신에 왕위에 오른 시드키야도 반란을 일으켰지만, 기원전 586년에 바빌론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나라가 망하는 비운을 초래했습니다. 이때에 야훼의 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성 안 건물이 모두 불탔고, “예루살렘성에 남은 사람들과 바빌론 왕에게 항복해 온 자, 그리고 기타 남은 백성들”(2열왕 25:11)이 포로로 끌려가는 제3차 바빌론 유배가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이후 정권이 몇 차례 뒤바뀌다가 기원전 539년에 페르샤의 고레스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종교는 다신교입니다. 도시국가인 바빌론이 힘을 떨치자 그 도시국가의 신인 마르둑(히브리어 므로닥)이 그동안 최고신으로 올라섰습니다.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空中庭園) 유적은 세계 7대 불가사의(不可思議)의 하나의 걸작입니다.

바빌로니아성의 크기는 성벽의 길이 한쪽에 24Km씩 사방 96Km, 높이 100m , 두께 25m, 성벽 밑 지하11m, 성벽과 성 사이의 공간은 400m, 였고 성벽바깥쪽에는 물이 채워진 운하가 있는 난공불락(難攻不落0의 성이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문화는 그림문자를 쓰다가 추상적인 개념을 표기할 수 있는 표의·표음문자인 설형문자를 발명하여, 그 문자에 따라 12진법과 60진법에 의한 기수법(記數法)을 정착시켰습니다. 60진법과 12진법은 그들이 삭망월(朔望月)을 30일로 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 마지막 바빌로니아 역(曆)법은 헤브루(유대)력에 전승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 밖에도 바빌로니아인이 고안한 황도 12궁과 여러 별자리가 오늘날의 천문학에 그대로 계승되었으며, 일월행성(日月行星) 숭배에서 발단된 7일주(七日週)나 시간의 12진법·60진법 등이 현대에도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3. 바빌로니아의 멸망

요한 계시록은 묵시 문학인 다니엘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드라이버(Driver) 교수는 묵시문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묵시’라는 말(Apocalypse)은 ‘열어 보인다’ ‘계시한다’는 뜻으로 어떤 숨은 뜻을 찾아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예언’에 있어서도 이 계시적 성격이 있음은 물론이나 예언과 묵시는 그 성질에 있어서 서로 차이를 가지는데 “예언의 계시는 직접적이고 묵시는 간접적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꿈이나 상징으로 간접적으로 전하는 것이 묵시의 성격입니다. 다니엘서의 환상은 이런 의미에서 묵시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예언의 활동이 끝난 다음 등장한 것이 묵시문학입니다. 쉽게 깨달을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하면서도 그 목적은 항상 미래를 계시해 주면서 현재에 당하고 있는 역경에서 참고 견디어 그 신앙에 충성하도록 격려하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현재의 역사 문제를 취급하여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하며 그 행동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직접적으로 말해 줍니다. 그러나 묵시는 과거의 어떤 사실을 들어서 그 과거를 현재의 사실에다 결부시켜 그 뜻을 찾게 합니다. 이런 면에 다니엘서의 묵시문학이 신약의 요한계시록의 저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현재 로마나라에서 당하고 있는 박해를 성도들이 잘 인내하여 승리토록하기 위해서 핍박하는 로마나라를 그대로 지칭 못하고 상징적으로 다른 나라 즉 옛날의 번영을 이루어 지금의 로마나라와 비슷한 바빌로니아 제국을 들어 그 로마나라가 멸망될 것을 마치 바빌로니아가 망하는 것처럼 쓰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바벨론이 무너지다

본문의 “바벨론”이라는 말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조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 바벨론 성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멸망된 바벨론 성은 폐허이며 다시 지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렘 50:39-40). 고 예언되어있는 대로 지금 그 바빌로니아성은 재건되지 아니했습니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요한계시록 18:3).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에 만연한 부패가 만국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곳의 상업적 생산품이 많은 부를 만들었습니다. 이 큰 성인 바빌로니아는 끝내 역사 속에서 멸망하고 맙니다.

여기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벨론이 지금의 바빌로니아는 아닙니다. 아마 앞으로 옛날의 바빌로니아처럼 그리고 사도 요한 때 로마 나라처럼 마지막 말세에 바빌로니아와 같은 강력한 나라가 역사에 등장하여 반 기도교적이고 우상의 나라가 되는 강대국을 말하고 있으며 그 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반드시 멸망 당 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 십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을 향하여 한 걸음씩 조금씩 다가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지 모릅니다만 우리 모두 세상 되어 가는 일을 보고 깨어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8:1-8

찬송가 445장 / 정한조목사

바벨론의 붕괴 예고(1-3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부터 313년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할 때까지, 30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로마제국으로부터 깊고 넓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10번의 대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64년 네로 황제의 박해였습니다. 그는 로마에 일어난 대화재를 그리스도인의 소행으로 몰아 극심하게 박해했습니다. 그는 원형경기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맹수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게 만들기도 하고, 기둥에다가 건초더미와 함께 묶어 야외를 밝히는 ‘인간 촛대’로 삼기도 했습니다. 이 때에 사도 베드로, 사도 바울 등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박해는 90-96년까지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가 자행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신들을 섬기지 않기 때문에 신들이 노했다는 이유로 극심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를 피해서 카타콤(지하 무덤)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극심한 박해를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기 위해서 기록되었습니다.

22장으로 구성된 요한계시록은 하늘의 이야기와 땅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늘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고, 하늘 보좌가 있으며, 구속받은 성도들, 시온산,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땅에는 고난받는 교회를 대표하는 일곱 교회가 있고, 재난과 박해를 나타내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두 짐승과 지금은 왕성해 보이지만 결국 멸망하게 될 바벨론(로마제국)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하늘과 땅을 교차하여 보여줍니다. 그래서 땅에는 박해가 있고, 고난이 있고, 한숨이 있어서 좌절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눈을 들어서 하늘을 보면 하늘 보좌와 시온산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보여서, 용기와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당시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비록 박해가 있을지라도 땅만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자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18장은 땅에 대한 마지막 내용으로 바벨론(로마 제국)의 멸망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2)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큰 권세를 가진 천사가 내려와 ‘힘찬 음성으로 외쳤다’는 것은 아주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가 가만히 말해도 그 소리가 우렁차게 들릴 터인데, 그런 존재가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다_젖먹던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천사의 외침의 내용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이었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이 무너지고 페르시아 제국이 세워짐으로 유다 백성이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듯이, 지금의 바벨론 제국(로마 제국)도 무너지고 말 것이고, 마지막에는 새하늘과 새땅이 완성될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외친 내용이 이상합니다. 천사는 “무너질 것이다 무너질 것이다”라고 외치지 않고,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지는 해처럼 몰락의 길을 걷고 있지 않았고,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후대는 그 때를 ‘팍스 로마나_로마의 평화’라고 부르며, 로마 제국이 주변의 나라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바벨론이 ‘무너질 것이다’라고 미래형으로 표현하지 않고, ‘무너졌도다’라고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그 일(로마 제국의 무너짐)이 확실하게 일어날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신적 과거’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그 일이 미래의 일이지만, 완성의 시점에서 보면 과거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30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로 정하신 일, 부르신 일, 의롭다 하신 일은 모두 과거의 일이 맞습니다. 그러나 영화롭게 하시는 것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를 영화롭게 되는 자리까지 반드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이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에는 건재하였을지라도,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사도 요한이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로마 제국을 향해 “무너졌도다”라고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제가 서울역 광장에서 확성기를 들고,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강대국 미국이여 또는 중국이여”라고 외친다면, 아마 사람들은 제가 미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는 미국이나 중국이 아무리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결코 영원하지 않고, 영원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는 두 눈, 이 땅과 영원을 동시에 바라보는 두 눈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속적인 가치관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큰 성 바벨론(로마 제국)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가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게 한 결정적인 이유라고 말합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음행은 거의 대부분 ‘우상숭배’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방인의 신전에 들어가 우상을 숭배하고, 그 신전의 여사제들과 음행을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 음행이 만연했던 것은 사람들이 쾌락을 자기 인생의 최우선 순위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음행(쾌락)만이 아니라 재물이든, 권력이든, 명성이든 그 무엇이든지 그것을 하나님을 보다 앞세우면 그것이 우상숭배가 됩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큰 특징은 쾌락과 사치를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 다른 나라를 정복했고, 과도하게 징세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쾌락과 사치가 제국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만이 아니라 어떤 나라도, 어떤 사회도, 어떤 가정도, 아니 어떤 사람도 쾌락과 사치에 빠지면 그 인생이 무너집니다. 인생과 가정, 사회를 세우는데는 오랜 세월이 걸리고, 잘 유지하는데에도 많은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바벨론을 떠나라는 경고(4-5절)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 멸망과 같은 재앙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길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죄된 삶을 이기는 최상의 방법은 거기에 참여하지 않고,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오지 않고 이기는 법은 없습니다.

형들의 모함으로 보디발 장군의 집에 팔린 요셉은 거기서 종살이를 했는데, 보디발 장군의 부인이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그때 요셉이 취한 행동은 자신의 겉옷이 벗겨질지라도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 안에 있었다면 유혹을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 1:1-2)” 복이 있는 사람이 되고, 복 있는 사람의 길을 걸으려면, 악인들의 생각, 죄인들의 길, 오만한 사람들의 자리와는 다른 곳, 여호와의 율법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바벨론의 자리, 세속적 가치관의 자리에서 나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그런 가치관을 추구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삽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삽니다. 요셉이 종살이는 물론 옥살이를 할 때도 구별된 삶을 살았고, 다니엘도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의 궁궐에 살았을지라도 다른 가치관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사무치다’는 단어는 ‘아교로 붙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로마 제국의 죄에다 아교를 발라 차곡차곡 쌓았더니 그것이 하늘까지 닿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기억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며,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결코 모르지 않으십니다.

 

바벨론 심판의 정당성(6-8절)

6-8절은 바벨론이 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새번역. 6) 너희는 그 도시가 준 만큼 그 도시에 돌려주고, 그 도시의 행실대로 갑절로 갚아 주어라. 너희는 그 도시가 섞은 잔에 갑절로 섞어 주어라

이 말씀은 우리 속담,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를 떠올리게 해 줍니다. 바벨론은 자신이 강대국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사람을 의식하면 넘어질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의식하면 세워집니다.

(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바벨론은 자신이 여왕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애통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로마 제국이라는 국가는 결코 패배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가장 큰 죄는 오만(교만)이었습니다. 그들의 교만은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고, 하나님이 없이도 충분히 안전한 국가를 만들 수 있으며, 하나님 없이도 부하고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얼마나 허망한 생각이었습니까?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잘 살아낼 수 있고, 하나님이 없이도 가정을 잘 꾸려갈 수 있으며, 하나님이 없이도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생은 무너집니다.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로마 제국이 아무리 강해도 자신이 침략한 나라들 앞에서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 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로마 제국도 하나님께서는 ‘하루 동안에’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과 같은 엄청난 재앙이 임하게 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무리 강하게 여겨져도, 아무리 가진 것이 많게 생각되어도, 또 아무리 총명하다고 생각되어도 겸손해야 합니다.

바빌로니아 제국의 벨사살(Belshazzar) 왕은 성전의 기물을 사용하여 잔치를 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였는데, 벽에 글자가 쓰여졌습니다. 그것을 다니엘이 읽고 해석해 주었는데, 벽에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단 5:5)’이라 쓰여 있고, 그 의미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이었습니다. 벨사살은 몰랐을 것입니다. 자신이 베푼 그날 밤이 자신이 땅 위에서 마지막 숨을 내어 쉬는 날이었고, 그 밤이 바빌로니아 제국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 될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가 로마 제국의 가치관을 갖고 살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갖고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오만하지 않고 겸손한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생활화의 생활의 예배화를 중심으로 실천하면 아무리 세속의 바람이 휘몰아 쳐도, 하나님의 은총 속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 은총 속에서 사는 한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의 박해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또한 로마 제국의 힘에 눌려 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제국도 마치 영원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삶은 무엇이었는지, 진정으로 강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오늘도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속적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혹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나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목적 삼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사도 요한은 당시 최대의 박해자이자 최강대국이었던 로마 제국이 이미 무너졌다고 말하며 그리스도인을 위로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굉장히 강해 보였던 것이 무너지는 것을 본 때는 언제였습니까?

2. 쾌락을 추구하는 삶,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르는 삶은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재앙을 당하지 않는 길은 그 자리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자리 중에 떠나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3. 로마 제국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오만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루 동안에도 재앙이 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당신이 벗어야 할 오만의 옷은 무엇입니까?

4. 세속적인 가치관의 물결이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동행하시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바벨론에서 떠나라

생명의 삶 / 계 18:1-8

요한계시록은 바벨론 멸망을 반복적으로 여러 차례 언급합니다(24:8, 16:19~20, 17~18장). 18장은 애가 형식을 통해 바벨론 멸망을 다룹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하며 심판의 이유를 말합니다. 바벨론이 멸망당하는 이유는 음향,교만(자기 영광),사치,우상 숭배 때문입니다. 온 땅을 음행으로 이끈 바벨론은 멸망해 귀신의 처소가 되고, 더러운 영들의 소굴이 될 것입니다.

– 천사가 전하는 바벨론 멸망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 내가 세상의 부를 추구 하거나 사치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까요?

 

** 바벨론을 떠나라(요한계시록 18장 4~8절)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람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한절 묵상_요한계시록 18장 7~8절)

악한 자들의 특징은 무지하고 오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도 악한 무리는 참회하기를 거절하고 끝까지 저항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과 재물을 의지해 하나님을 대적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판을 집행하시면, 그들은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분노를 그치게 하고 우리를 그분의 은혜 영역 안에 머물게 합니다. 성도는 절망뿐인 삶에 소망을 주는, 온전한 참회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철저히 심판하시지만, 자기 백성은 구원하십니다. ‘내 백성아'(4절)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성도의 특별한 관계를 나나내는 사랑의 호칭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강력한 명령에 순종해 바벨론을 떠나야 합니다(4절, 렘 51:45). 바벨론을 사랑해 그곳에 몸담고 있으면 바벨론과 함께 멸망당하고 맙니다. 또한 성도는 바벨론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죄악 된 생활을 끊어 내야 합니다.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면 하나님과는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약 4:4). 성도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바벨론의 영향력은 막강하기에,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바벨론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을 떠나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약 4:8). 바벨론의 영은 교회에도 깊이 침투해 있습니다. 성도(교회)는 순수한 믿음을 잃지 않도록 늘 자신을 돌아보고 깊은 회개로 나아가야 합니다.

 

–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명령은 무엇인가요?

– 내가 속히 빠져나와야 하는 죄악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오늘의 말씀 요약)

요한은 큰 권세를 가진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 천사는 만국을 음행과 사치에 빠뜨린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칩니다. 하늘에서 또 다른 음성이 들려, 바벨론에 하루 동안에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의 재앙들이 이르리니 하나님 백성은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음행과 사치로 가득한 바벨론과 같은 곳에서 속히 나오라는 주님 음성을 듣습니다. 모든 죄와 불의를 기억하시고 그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마음과 행실을 버리고, 순전하고 거룩한 주님의 백성 되게 하소서.(아멘)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나오라

요한계시록 18장 1-8절 / 코너스톤교회

요한계시록 18장은 음녀로 비유된 큰 성 바벨론의 멸망하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벨론은 큰 상업 도시로 나타나는데, 이 도시가 멸망하는 모습을 통해 음녀 바벨론의 최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가지 염두해야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바벨론의 멸망은 문자적으로 역사상 실제로 있었던 이 세상 도시의 멸망을 기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 입니다. 도리어 요한계시록 18장은 바벨론의 멸망을 통해서 사탄의 거대한 권세와 그를 추종하는 모든 세력들이 받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큰 성 바벨론이 왜 망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봅시다.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성의 지나친 음행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3절을 봅시다. “(계 18: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바벨론이 멸망하게 된 이유는 그의 음행 때문인데 이는 영적 간음 즉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여기 3절에 보니,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왕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과 이방신을 따랐음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간음으로 바벨론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습니다.

큰 성 바벨론이 망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극도의 사치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이들은 넘치는 부로 인하여 교만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성적으로 또한 도덕적으로 방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가난한 자를 돌아보지 않고 도리어 약한 자를 학대하고 불의한 짓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이로 인해 바벨론은 하나님의 큰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 바벨론이 무너지는 모습을 한 번 살펴봅시다. 하늘에서 큰 권세를 가진 천사가 내려와서 힘센 음성으로 외칩니다. 천사가 외치는 내용을 2절에서 함께 보겠습니다. “(계 18: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먼저 천사가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합니다. 두번씩이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하고 반복해서 말한 것은 이들의 멸망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기 때문 입니다. 여기서 보면 천사가 폐허가 된 바벨론에 대해서 언급하며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서 에돔, 니느웨 등과 같은 나라들이 멸망을 예언할 때 사용되었던 표현들 입니다.

2절에서 사용된 ‘모이는 곳’이란 표현은 헬라어로 ‘감옥’을 의미 합니다. 따라서 화려함과 부함을 자랑하던 큰 성 바벨론은 이제 황무지가 되었고, 악한 영들과 마귀의 소굴이자 그들을 가두어두는 감옥이 된 셈입니다. 1세기를 살아가던 그리스도인들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바벨론은 ‘로마제국’으로 해석 했습니다. 실제로 로마에는 음행과 사치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를 핍박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로마가 멸망 했을 때 사람들은 오늘 큰 성 바벨론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천사가 외친 예언적 선포는 종말론적 사건으로 이 세상에 부패하고 음란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나라들이 끝내 멸망하고 폐허로 바뀌게 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탄과 그가 속한 세상은 오늘도 화려함과 부함으로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의 법칙대로 살아가면 부하게 살 수 있고, 화려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을 좇아 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정말 어리석은 결정 입니다. 왜냐하면 악한 세상이 약속하는 부함과 화려함은 결국 썩어 없어질 것들이기 때문 입니다.

오늘 하늘에서 나오는 음성도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이 세상의 부함과 화려함을 따라 살아가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계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바벨론으로부터 나올 것과 그들의 죄악에 참여하지 말 것을 경고하십니다.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것은 산 속 깊숙한 곳이나,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가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딜 가도 세상을 떠나 살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경고는 바벨론이 행하는 우상 숭배, 음행, 교만 사치, 부를 추구함, 폭력 등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악들로부터 벗어나라는 경고의 말씀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큰 성 바벨론의 특징이 나타나는 곳들로부터 분명하게 자신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거룩함 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하여 죄악에 빠지게 만들려하기에 늘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많은 재물과 화려함을 자랑하던 세상의 길은 끝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5절 말씀과 같이 이미 세상의 죄는 이미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불의한 일,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조롱하고, 하나님을 버린 일을 기억하시고 그의 진노를 심판의 때에 하나도 남김 없이 그들 위에 쏟으실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위에 갑절로 갚아 주실 것이라 했습니다. 성도들을 핍박하고 못살게 굴고, 고통을 주고, 피 흘리며 죽였던 이 세상과 사탄의 세력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갑절의 아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러한 결말을 기억하고 세상에 살아도 세상에 속하지 않도록 늘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심판의 본보기, 큰 성 바벨론의 최후

요한계시록 18:1~10 /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1. 바벨론의 결말, 지옥

① (1절)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 지더라”

▶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일곱 대접의 재앙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18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오만과 탐욕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큰 성 바벨론’의 최후다. 일곱 대접의 재앙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구원으로 나가는 과정, 곧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을 증거 한다.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 지더라’ 요한계시록에 자주 등장하는 천사는 스랍(seraph)이나 그룹(cherub)을 넘어 하나님의 사자(使者)를 포함한다. 암흑 같은 바벨론 포로기에 다니엘처럼 세상을 밝히던 빛과 같은 존재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그리스도인의 정체는 세상의 빛, 어둠을 밝히는 빛이다.

② (2절)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 큰 성 바벨론은 오만과 탐욕을 추구하던 모든 나라와 모든 인생을 통칭한다. ‘곳’이라는 단어의 원어를 살피면 ‘옥(獄, gaol:감옥)’으로 번역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큰 성 바벨론의 최후가 지옥으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오만과 탐욕의 결말은 지옥이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탄소중립을 실현하지 못해서 지구의 평균온도가 3도까지 상승하면 지구는 생지옥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무엇이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드나?’ 인류의 넘치는 탐욕과 무분별한 오만이다. 감염병의 대유행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에 대한 대자연의 역습이다.(김양중.『자연의 역습, 감염병』,미래아이, 2020) 코로나만 바라보지 말고 코로나를 일으킨 인간의 탐욕과 오만을 볼 수 있는 통찰이 요구된다. 코로나와 싸울 게 아니라 코로나를 일으킨 인간의 탐욕과 오만과 맞서 싸워야 한다. 코앞에 닥친 극심한 기후 재앙의 원인도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의 극복이다. 지금 우리는 교만과 거짓의 왕 사단, 큰 성 바벨론으로 인해 파괴와 멸망의 대위기를 맞이했다. 생지옥 같은 세상에서 공생과 공존으로 나가는 길은 재앙의 의미를 깨닫고 탐욕과 오만으로 치달았던 삶의 방식을 돌이켜 회개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③ (3절)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 큰 성 바벨론과 추종 세력들이 함께 멸망한 원인은 무엇인가?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 곧 음행이다. 성경이 말하는 음행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우상숭배다. 본문은 음행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려고 하는 ‘치부(致富)’로 꼽는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마 6:24)”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라고 단언한다. 탐심은 필요를 넘어 필요 이상의 것을 구하는 탐욕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로 규정한다. 돈은 소중하지만 선용할 대상이지, 결코 사랑의 대상이 아닌 까닭이다. 물질의 축적이 부르는 폐해를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2. 하나님의 자녀인가, 탐욕의 노예인가!

① (4절~5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 심판 중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구원의 외침이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천국 백성은 하늘에 속한 자, 곧 하늘에 소속된 자로 말씀대로 준행하는 이들이다. 다시 말해 죄에 참예하지 않는 자들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에 이르니라(약 1:15).” 욕심은 필요 이상을 구하는 것이다. 필요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욕심은 반드시 죄로 이어지고, 죄의 결과는 반드시 사망으로 귀결된다. 예외는 없다. 성경은 이와 정반대의 길을 제시한다. 말씀을 좇아 의를 이루며 생명으로 나가는 길이다. 이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여주신 삶의 방식이다. 회개의 진정한 의미는, 욕심을 좇아 살던 불의한 죄의 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의의 길로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회개의 본래적 의미다. ‘그의 죄, 그의 받을 재앙들, 그 죄’ 여기서 그는, 탐욕과 오만의 상징인 큰 성 바벨론이다. 하나님의 후사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와 대비되는 바벨론의 후예로 사는 탐욕의 노예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다. 본문은 죄를 주도하던 바벨론뿐만 아니라 죄에 동조하던 이들도 동일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② (6절)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듯, 죄의 값은 사망이다. 오늘날 인류가 겪는 위기와 재앙의 원인은 오만과 탐욕의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9)”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보응하실 뿐이다.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바벨론에게 왜, 갑절(double)로 갚으실까? 지도자(leader)는 부여된 권한에 따른 막중한 책무가 따른다. 때문에 지도자(leader)의 죄가 더 무겁고 크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 3:1)”,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 모독을 받는 도다(롬 2:17~24)”

③ (7절)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는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 ‘큰 성 바벨론’의 죄를 더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자기과시, 자기자랑’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바울이 지적하는 핵심은 하나님을 알고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머리와 입술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면서도, 은혜 받은 자답게 살지 않는 것이다.

▶ ‘큰 성 바벨론’이 저지른 ‘사치’는 ‘외식’을 의미한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중심을 반듯하게 세우고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겉만 번듯하게 꾸미는 ‘외식’을 일삼는 것은 가증스런 행위다. 자기과시와 외식하는 삶의 결과가 고난과 애통이다. 이와 반대로 자기부인과 겸손의 결과는 은혜와 감사다.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교만을 가리킨다. 결코 망하지 않고,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자부하는 교만은 필패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악은 교만이다. 교만한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실패와 허물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멸망도 죄 때문이 아니라 징계를 받고도 교만함으로 회개치 않았기 때문이다.

 

3.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심판

① (8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 하루아침에 임할 재앙과 하루아침에 무너질 영광을 증거 한다. 생명과 건강, 물질과 자녀는 소중하지만 영원하지 않고 한 순간에 무너지고 사라질 것들이다. 생명과 건강, 물질과 자녀를 의지할 게 아니라 생명과 건강, 물질과 자녀를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거듭해서 죄를 짓는 까닭은 죄에 대한 심판이 없는 것처럼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는 냄비 속에 개구리처럼 서서히 물이 데워지다 한 순간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를 가리켜 소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부른다. 어떠한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한순간 단번에 폭발하는 것을 말한다. 죄의 결과도 이처럼 한 번에 훅 가버리고 말 것임을 증언한다.

② (9절)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은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은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을 향한 심판의 본보기다. 오만과 탐욕의 결과로 무참히 몰락하는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강 건너 불 보듯 하지 말고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울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한다. ‘나의 인생도 저렇게 허망한 것이구나, 나도 회개치 않으면 저렇게 되겠구나!’ 우리가 누리는 세상의 부요와 세상의 썩어질 영광도 어김없이 한 순간에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제국도 영원한 인생도 없다. 심판의 본보기가 아니라 축복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서두에 언급한 바벨론 포로기에 다니엘이 축복의 본보기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준행하는 자들과 동행하시고 축복하신다.

③ (10절)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 큰 성 바벨론이 하루아침에 몰락시키는 ‘그 고난’을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세상도 언젠가 ‘큰 성 바벨론’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을 알고 사는 지혜가 요구된다. 성경은 이 지혜를 가리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시 103:15~18)”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 진실을, 지금은 애써 외면하며 살지만 세상이 믿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그 날에 비로소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날에 깨달으면 때 늦은 후회일 뿐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 깨달으면 너무 늦는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빨리 단 하루라도’, 이전에 삶의 방식을 돌이켜 회개하는 것이 지혜다. 요한계시록은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통해 이 지혜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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