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짐과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2)
행 8:1-13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그 날에 예루살렘 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 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 설 교 >
주님은 어떻게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가?
조영식목사 / 행 8장 1-8절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6월 둘째 주일이며, 총회 선교 주일로 지킵니다.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고 초대 교회가 부흥할 시기에 사탄의 핍박이 더 심해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탄의 핍박으로 스데반이 순교한 이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울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 세력은 스데반의 죽음을 계기로, 그 여세를 몰아서 교회를 완전히 진멸하려고 했습니다(3절). 그러나 사탄의 계획대로 교회를 진멸하는 일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주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시기 때문입니다(창50:20). 주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합니다(롬12:21). 성도는 어떤 악이든지 맞대응 말고 선을 행함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어떻게 악을 선으로 바꾸는지를 깨닫고, 우리도 선을 행함으로 악을 이겨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악한 세력들이 어떻게 교회를 핍박하는가?
사울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 세력이 어떻게 교회를 핍박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교회를 핍박하는 세력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고 합니다(1절). 그들이 사람까지 죽이면서 마땅하다고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종교적 신념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적 신념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야 합니다. 오늘날도 주님의 사랑보다 종교적 신념이 더 강할수록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정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도 교인이 절에 불을 지른 사건은 주님의 사랑보다 종교적 신념이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불을 지른 교인은 법정에서도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종교적 신념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교회를 핍박하는 세력은 교회를 분열하고 흩어지게 만듭니다. 초대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섰다”고 합니다(2:46). 그러나 사탄은 헬라파 과부들과 히브리파 과부들의 분쟁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했습니다(6:1). 또한 초대 교회를 핍박하여 모든 성도를 흩어지게 만들었습니다(1절). 그러나 주님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히10:25). 오늘날 코로나의 재앙으로 교인들이 흩어져서 함께 예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정에서 예배할지라도 서로 사랑의 줄로 연결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교회를 핍박하는 세력은 교인을 슬픔에 빠지도록 합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고 합니다(2절). 스데반의 죽음으로 초대 교회 성도들이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성도가 깊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절망에 사로잡혀서 주님의 사명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설사 슬픔에 빠질지라도 다시 주님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성도를 깊은 슬픔에 빠지도록 하여 주님의 사명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세상이 주는 모든 슬픔을 이겨내도록 더욱 더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주님은 어떻게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가?
오늘 본문에서 1절부터 3절까지 계속되는 핍박의 역사였다면, 4절부터 8절까지는 사탄의 핍박을 주님께서 선으로 바꾸시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어떻게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있습니까?
첫째로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흩어지는 악을 어떻게 선으로 바꾸고 있습니까?(1절) 주님은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도록” 했습니다(4절). 사탄이 교회를 박해하여 흩어지게 하는 악을 행했지만, 주님은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여 선으로 바꾸었습니다. 오늘날도 코로나 재앙이 성도를 흩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선으로 바꾸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달 스승의 날에 서울에서 청년 사역할 때 가르쳤던 제자에게 전화가 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내 유튜브 설교를 듣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교회와 목사님들이 무너질지라도 저같은 목사가 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킨다는 말에 감사함과 부담감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또한 고향 친구가 내 유투브 설교를 듣고 위로받았다는 글에 가슴이 뭉클한 적도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도 성도들이 흩어져서 예배하지만, 주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선한 역사가 계속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사탄이 스데반을 죽이는 악을 어떻게 선으로 바꾸고 있습니까?(2절) 주님은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도록” 했습니다(5절). 사탄은 스데반을 죽여서 복음 전파를 멈추려는 악을 행했지만, 주님은 스데반의 동료인 빌립을 세워서 선교 비전을 이루는 선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선교의 비전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고 합니다(1:8). 주님은 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빌립을 세워서 예루살렘과 유대에 머물렀던 복음을 사마리아 성까지 전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주님은 복음 전파를 위해 사람을 사용하지만, 또한 사람 때문에 선교의 비전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개척 교회를 시작했던 초창기에는 주님께 충성했던 성도가 이사 갈 때는 마음이 힘들어서 몇 날을 끙끙 앓아 누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또다시 필요한 성도님을 보내주셔서 우리 교회가 선교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오늘날도 사탄이 핍박하여 선교를 멈추려는 악을 행하지만, 주님이 더 크게 선교의 비전을 이루시는 선을 신뢰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사탄이 주는 슬픔과 절망의 악을 어떻게 선으로 바꾸었습니까?(2절) 주님은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합니다(8절). 사탄은 슬픔을 주어 절망하도록 악을 행했지만, 주님은 큰 기쁨의 선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의 기쁨은 슬픔에 빠져있는 초대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 증거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다”고 합니다(14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주님이 스데반의 동료 빌립을 사용하여 이루셨기 때문에 더 놀라운 은혜가 되었던 것입니다. 저도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교회 걱정 때문에 우울감이 밀려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전혀 예상치 못한 주님의 은혜로 우리 교회를 돌보시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탄은 큰 슬픔으로 절망하게 하지만, 우리가 예상치 못한 주님의 돌보시는 은혜로 큰 기쁨을 체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슬픔이 변화여 기쁨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깊은 슬픔에만 잠겨있다면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성도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마리아 성이 어떻게 큰 기쁨이 있었는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과 ‘한마음’이 될 때 큰 기쁨이 있습니다(6절). 여기서 ‘한마음’은 내가 주님과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과 한마음이 될 수 있습니까? 스데반처럼 주님께만 주목하여 집중할 때 한마음이 됩니다(7:55). 사마리아 성이 주님과 한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치유의 역사도 일어났습니다(7절). 그러나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큰 기쁨이 없다면 두 마음을 품은 것은 없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야고보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고 합니다(약1:6~8). 성도가 두 마음을 품고 의심하면 주님의 응답이 없어 큰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는 의심없이 주님과 한마음이 되어 모든 기도가 응답되는 큰 기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 하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큰 기쁨이 있습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고 합니다(6절). 사마리아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따르며 순종했기 때문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성도가 신앙생활에서 큰 기쁨이 없다면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따르며 순종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지만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과 ‘한마음’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6절). 성도가 말씀을 듣고 따르려면 반드시 주님과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저도 개척 교회를 하면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선교했기 때문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1:8). 지난주는 후배 목사가 우리 교회에 전화해서 선교비를 보낸다고 선교지를 추천해달라는데 정말 큰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의심없이 주님과 한마음이 되어 순종함으로 큰 기쁨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 다지기 (함께 되새김질 하는 시간입니다.)
1. 사울이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하다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1절)
2.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흩어지는 악을 주님은 어떻게 선으로 바꾸고 있나요?(1,4절)
3. 사탄이 스데반을 죽이는 악을 주님은 어떻게 선으로 바꾸고 있나요?(2,5절)
4. 사탄이 주는 슬픔과 절망의 악을 어떻게 선으로 바꾸고 있나요?(2,8절)
5.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6절)
□ 말씀 적용하기 (서로 삶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 우리가 주님의 사랑보다 종교적 신념으로 이웃을 정죄했던 모습은 무엇이 있나요?
2. 우리가 교회를 분열시키는 유혹을 이기고 화목케 했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3. 우리가 힘들어서 주님을 바라볼 때 예상치 못한 은혜로 회복된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4.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한마음이 되어서 순종했던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
환난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
행 8장 1~5절 / 박진호목사
영국 런던에 1666년에 대화재가 났습니다. 많은 시민이 죽었고 당시 세계 무역으로 거부가 되었던 자들마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될 정도로 런던 전체가 처참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청교도인들은 단 한 명도 다치지 않고 재산 피해도 입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사는 집만 피해서 불이 나게 했거나,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레이저 방호막을 쳐주어 불길이 닥쳐도 타지 않게 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화재가 나기 6개월 전에 ‘5마일 법령’이라는 것이 시행되었는데, 청교도인들은 모든 집단으로부터 5마일 이내에는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연히 런던에서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으며 그 참사로부터 안전하게 생명과 재산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곳을 심판할 때에 당신의 백성들이 피할 길을 어떤 방식으로든 미리 만들어 놓으십니다. 스데반처럼 순교로 당신의 특별한 뜻을 드러내어야 할 경우를 빼고는 그렇습니다. 노아더러 다가오는 심판을 대비해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분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만 있어도 그 의인뿐 아니라 도시 전체를 구원해 주신다고 했지 않습니까?
나아가 런던의 화재의 경우는 더 오묘합니다. 그 도시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기도 하겠지만 당신의 백성들을 직접 핍박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되 바로 그 핍박 자체가 핍박 받는 자들에게는 보호막으로 작용케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스스로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되게 한 셈입니다.
악인을 악의 구덩이에 그대로 방임해 두시는 것 자체가 심판이 되는 원리입니다. 악인이 왜 형통하는지 의아해하거나 부러워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스스로 쇠퇴하고 엄정한 심판도 따릅니다. 설령 눈에 보이는 현실적 심판이 없어도 그 심령이 평생 방황과 허무 가운데 지내다 그런 괴로움 가운데 죽습니다. 또 죽은 후에도 영원토록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가 전혀 없는 것만큼 큰 벌이 따로 없습니다.
신자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일에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장애가 생겨 그 앞이 막혀버리는 경우도 런던 화재와 같은 의미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따로 심판하거나, 다가올 더 큰 환난을 미리 피하게 하시거나, 또는 더 좋은 당신의 계획으로 인도하기 위한 방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겪는 당시로선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전후 경과를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결말이 난 뒤에야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가 얼마나 오묘했는지 소름끼칠 정도로 절감하여 그 큰 은혜 앞에 온전히 경배하게 됩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신자는 미처, 아니 평생을 두고 알지 못하고 지나갔지만 그런 식으로 보호하고 인도해 준 경우가 도무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비일비재 했다는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신자의 일생은 가히 하나님의 너무나 신비한 은혜의 대양(大洋) 속에 잠겨 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일일이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아마 신자는 입이 딱 벌어져 기절해 죽을 것입니다. 아니 이해조차 제대로 못할 것입니다. 설명을 해주어도 이해를 잘 못하는 일인데 실제 겪을 때야 더더욱 이해하지 못할 것 아닙니까? 이해도 안 되는 일을 자꾸 그 얄팍한 지성으로 따지려 드니까 염려 불안이 그칠 수 없지 않습니까?
욥이 하나님으로선 너무나 간단한 추궁에도 전혀 대답하지 못하고 오직 이 한 마디만 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주께서는 무소 불능(無所不能) 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42:2,3)
하나님이 신자 앞에 예기치 못한 장애를 만들어 막지 않으면 신자는 자기 길로만 계속 가려고 고집할 것입니다. 특별히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정이 있는 신자일수록 예루살렘에 계속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도저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생겨야만 다른 길로 가려고 마음먹을 것입니다.
스데반으로 순교하게 만든 것, 또 그 일이 기폭제가 되어서 동족이자 같은 창조주 하나님 신앙의 뿌리를 가진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게 한 것,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지게 된 것, 그런 핍박의 선봉에 선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그 자존심과 정체성을 여지없이 깨트려버려 회심을 시키신 것, 나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심하게 싸워서 헤어지게 만든 것 등등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계획과 뜻에 따라서만 움직이십니다. 그리고 그 사역의 기준도 오직 하나,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더 편만하게 증거 시키는데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일어난 핍박으로 신자들이 비록 정들고 익숙한 고향을 등져야 했지만 결과는 모든 땅으로 흩어져서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런던이 신자를 핍박한 죄 이전에 심판을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왜 어떻게 화재가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큰 환난에서 신자를 안전하게 보존시켜 계속 복음을 전하도록 했고 또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오묘한지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환난 가운데 기도할 내용이 달라져야 합니다. 단순히 환난을 없애달라는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분의 뜻을 알 수 없으니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환난 가운데 있는 그 분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또한 사실 한창 환난을 당하는 중에는 어지간히 기도해도 잘 모릅니다. 아무리 신령한 신자라도 하나님이 직통으로 계시해 주시지 않는 한 헤아리기 힘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되어져 가는 사정과 비교해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이 일을 통해 들어 사용하라는 헌신의 기도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핍박이 생기면 아무 염려하지 말고 그 핍박을 기꺼이 당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핍박이 있는데 그곳에 남아 계속 복음을 전하겠다고 버티면 자기도 죽고 복음 전파도 중지되지 않습니까? 핍박을 그저 수동적으로 당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런 와중에도 드러날 하나님의 영광은 반드시 있다는 확신을 갖고 오히려 능동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당신의 온전한 뜻대로 쓰시라고 하나님께 완전히 내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고난을 절대 외면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구원해 주시려고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단순히 고난에서 건져주려고만 함께 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신자를 겸비케 만들어 당신을 더 찾도록 하기 위해서만도 아닙니다. 그럼 “병 주고 약 주고”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 환난이 아니고는 신자를 자신의 거룩한 계획에 동참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십니다.
말하자면 신자에게 환난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에는 이 셋(환난에서 구원, 신자의 성숙, 하나님의 계획 달성)이 다 포함 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은 마지막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하나님이 아무런 계획 없이 어떤 일을 도모하실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신자 스스로 기꺼이 그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길이 환난을 이기는 가장 첩경이 됩니다. 신자는 환난 중에도 기뻐해야 합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건대 구원의 소망만 되어선 안 됩니다. 그럼 구원이 안 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구원되면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남기에 여전히 괴로울 뿐입니다. 또 믿음도 전혀 자라지 않습니다. 구원과 성숙과 영광 셋 다이지만 가장 먼저 하나님 그분만을 바라보는 소망이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참으로 연약하여 체질이 진토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겪더라도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신자가 평생을 두고 최소한으로 붙들어야 할 절대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며 그분의 길은 내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그분의 길이 내 길보다 높으며 그분의 생각은 내 생각보다 높다는 것입니다.(사55:8,9)
요컨대 인생을 살다가 예기치 않는 장애나, 억울한 핍박이나, 이해되지 않는 환난이 생길 때면 자꾸 하나님과 쟁론하려 하기 이전에 끝까지 인내하며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도무지 우리가 상상치도 못했던 영광스런 결말로 이끄셨다는 것을 반드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차피 나중에 그렇게 될 것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생명을 포함하여 자신의 전부를 그분께 내어드리는 것이 훨씬 낫지 않습니까?
그 흩어진 사람들
이동휘목사 / 행 8:1-25
1.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그 부활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부활 후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그들과 함께 계시는 동안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여러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는 말씀으로 장차 복음이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전파될 것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복음 전파는 오직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복음 전파,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이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치며, 요단강에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어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가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몸을 굽혀서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며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어떻게 사역하실 것인가를 증거했습니다. 이내 예수께서 요단강에 오셔서 세례 요한을 통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바로 그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께 내려오면서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한 사역을 행하시기 위해 성령이 임하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베드로가 줄곧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행하신 모든 일들이 모두 성령과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임을 증거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 가정에 가서 이렇게 증언한 것입니다.
(행10:36-4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이 일은, 요한의 세례 활동이 끝난 뒤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 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께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께서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악마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흘째 되는 날에 살리시고, 나타나 보이게 해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오직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아야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 증거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 끝, 온 세계로 되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너희에게 오직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증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르튀스’(μ?ρτυ?)인데 영어의 순교자, martyr(마터)가 바로 이 헬라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는 ‘증인’은 순교적(殉敎的) 자세를 가지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일1:1)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초대 교회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이 바로 그렇게 성령이 충만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그리하여 초대 교회는 채 2년도 되지 않아 무려 20,000여 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를 보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 대제사장을 비롯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시기가 가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행5:17-18)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그리고 스데반 집사도 이 복음 전도에 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면서 너희는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라며,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자 벌떼같이 달려들어 돌로 쳐 죽였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할 때, 바로 그 앞에 있었던 사울이라 하는 사람이 ‘스데반이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울은 스데반의 처형을 직접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그 순교의 현장에서 그것을 목격하고 마땅히 여김으로써 죄악에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2. 이렇게 초대 교회는 혹독한 박해와 핍박, 특히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말미암아 사도들을 제외하고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성도들이 각처로 흩어진 것은 핍박을 피해 여기저기로 피하기 위함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복음의 세계적 확산을 도모하고자 한 하나님의 뜻이 작용했던 것입니다. 당시 초대 교회 사도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행1:8) 주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자, 하나님은 외부로부터의 핍박이라는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세계로 나가 복음을 전하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의 순교는 기독교에 대한 핍박의 서곡임과 아울러 기독교 확장의 제1보(步)이기도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던 사울은 그 후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데 주동적 역할을 했습니다.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핍박을 피해 흩어진 성도들이 흩어져 아예 숨어 지낸 것이 아니라, “두루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박해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은 사마리아는 물론이고 베니게와 구브로 그리고 안디옥에까지 이르러 주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행11:19)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박해로 인해 교회는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며 확장되어 간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 대한 박해로 흩어진 가운데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빌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그 말씀을 전적으로 믿기도 하고, 그가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능력이 나타나는 기적을 보고 믿기도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귀신 들린 많은 사람에게서, 악한 귀신들이 큰소리를 지르면서 나갔고, 많은 중풍병 환자와 지체장애인들이 고침을 받은 것을 보고 빌립의 전하는 말씀을 신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마리아 성읍에는 큰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그 성읍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마술을 부려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스스로 큰 인물인 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낮은 사람으로부터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를 ‘큰 능력자’로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마술을 부리면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마술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빌립의 전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자 바로 그 마술사 시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은 뒤에 항상 빌립을 따라다녔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 때 시몬은 사도들이 손을 얹어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돈을 내고서 말하기를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도록 내게도 그런 권능을 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자신도 예수 믿으니 사람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 마술을 행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도에게 돈을 건네주고 성령의 권능을 사고자 한 것입니다. 사도들의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어떤 신비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마술을 전수하듯이 성령도 전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에게 “그대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그대는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우리의 일에 그대가 차지할 자리도 몫도 없소. 그러므로 그대는 이 악한 생각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행여나 그대가 마음 속에 품은 나쁜 생각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내가 보니, 그대는 악의가 가득하며, 불의에 얽매여 있소.”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시몬이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라고 부탁합니다. 성령을 돈을 주고 사려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처지가 되자 베드로 사도에게 기도를 구한 것입니다. 사실 시몬의 행위는 그가 복음의 내용보다는 표면적으로 나타난 표적과 능력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사도들을 따라다녔다는 것을 말합니다.
(행8: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하나님의 종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표적과 기적, 능력 등은 때때로 인간의 부족한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해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요20:30-31)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표적이나 기적 그 자체만 집착하는 것은 육신적인 영광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근본적으로 올바른 믿음에서 떠난 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요5:40-44)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예수께서 권세 있는 말씀을 가르치시자 군중 가운데서 한 여자가 큰 소리로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7-28)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모인 무리들에게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눅11:29-32) 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내다 니느웨 해변에 토해져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는데, 요나의 기대와 전혀 달리 니느웨 사람들이 가축들까지 금식을 시키며 회개하므로 멸망하지 아니하고 구원받은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눅11:29-30)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대 사람들에게 보일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그 요나의 표적은 바로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을 믿고 회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사함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는 자는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께서 베푸신 많은 이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던 무리들이 상당히 많았었습니다.
(요2:23-25)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이같이 이적이나 표적 등이 나타난다고 해서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복음 전도에 대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마13:3-8)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여기 “씨”는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이 비유가운데 “(마13:20-21)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라는 말씀은 이적이나 표적을 구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마치 자갈밭과 같아서 말씀을 듣고 즉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뿌리가 없어 쉽사리 넘어져버리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진정한 회개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초자연적인 이적과 표적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면, 구원은커녕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몬은 또한 본문 성구를 통해보면, 성령을 돈으로 사려는 죄악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명예욕에 급급하여 경건을 자신의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본문 19절을 보겠습니다.
(행8: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시몬처럼 물욕에 눈이 어두워 신앙생활의 경건을 이익의 방도를 생각하거나 결코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딤전 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3.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영적인 은사와 하나님께 속한 비밀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것을 담을 만한 그릇이 준비되었을 때 비로소 채워주십니다. 더러운 그릇에 거룩한 것을 담을 수 없듯이 우리의 생각과 삶이 철저하게 깨끗하게 비어 있어야 신령한 은사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봉사하지만 자기를 드러내 보이고 싶고, 하나님께 헌금하면서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원하거나 기복적인 마음을 가진다면 아직도 그 마음이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시몬은 세례를 받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다고 하지만 그는 영적으로 깊이 변화하였거나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육신적이요 욕심이 많은 인간적인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세례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며, 성령 충만함을 통해 보다 심각한 헌신과 내적인 변화가 있어야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시몬은 자기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베드로에게 부탁하기를 “(행8:24)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방금 전에는 성령의 은사를 돈으로 사려고 하다가 그것이 문제가 되니 이제는 자기 잘못에 대하여 베드로에게 대신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시몬은 베드로의 기도가 또 다른 마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시몬은 영적인 일과 미신적인 이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회개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행위를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참된 회개의 뜻도 모르고 그저 베드로에게 부탁하여 대신 회개 기도를 드려달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마치 자기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기는 숨고 그 대신 친구를 내세워 처리하려고 하는 염치없는 사람과도 같은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기의 잘못과 죄에 대하여 깊은 고통으로 가슴 아파하고 거기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요,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 죄를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네델란드의 유명한 코리 텐 붐 할머니가 이러한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공산권에 성경을 갖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당시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할 때라 공항에서의 검색이 매우 치밀하고 엄격했습니다. 그녀는 성경책이 가득 담긴 커다란 가방을 들고 검열 대열의 맨 끝에서 두 번째에 서 있었습니다. 보아하니 검색원은 딱딱한 말투로 이것저것 묻거나 소지품을 뒤지기도 하며 한 사람 한 사람 통과시키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자기 차례가 가까와옴에 따라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방 속에 뭐가 들어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지? 거짓말을 할까? 아냐 거짓말은 안돼! 그럼 어떻게 하지?” 그때 “기도하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당신의 천사를 보내사 저를 지켜 주시옵소서.” 그런데 그녀가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사이에 맨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새치기를 하였습니다. 이제 할머니가 맨 끝에 서게 된 것입니다. 드디어 그녀가 검색 받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검색원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어휴, 할머니 힘드시겠네요. 가방 이리 주세요. 제가 들어드릴께요.” 그리고는 가방을 검색원이 직접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까?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항상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언제나 진지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어디든 가라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올 수 있는 순종의 신앙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그 흩어진 사람들”처럼 여러분의 삶이 어떠한 정황 가운데 있다할지라도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 전도의 큰 능력과 표적이 나타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참 복음과 비슷한 복음
박정근목사 / 행 8:1~24
요사이 개신교 교회에서 회개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뜻 있는 몇몇 목회자들이 모여서 처음 시작하였고, 지금은 상당히 큰 많은 교회들이 참여하여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가 결성되어졌습니다. 얼마 전, 저는 이 동원 목사님으로부터 한 통의 팩스를 받았습니다. 신문 광고를 내보낼 터인데, 이러이러한 내용이니 미리 읽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 김동호 목사님, 이런 분들이 다 글을 만드셨습니다. 일간신문을 보신 분들이 계시겠지만 '하나님과 국민 앞에 우리 자신을 고발합니다.' 라고 해서 신문에 크게 광고가 나갔습니다. 제가 이 글을 다 읽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우리 자신을 고발한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들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워지고 그 이름이 능욕 당하게 됨을 가슴을 찢고 참회하며 애통함으로 우리 자신을 고발합니다. 이것은 목사님들이 목사님들을 고발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개교회 중심의 외형적 성장에 치중하고, 왜곡된 기독 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철저하게 가르치지 못했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그 죄를 하나님께 고발합니다. 우리는 돈과 권력이 있는 자를 가난하고 약한 자보다 우대하였고, 교회의 자원을 사회 정의 실현과 이웃을 섬기는 일에 바로 사용하지 못한 죄를 고발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와 종으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그의 이름을 높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높이는 업적주의와 영웅주의에 빠져 있는 허물을 고발합니다."
옷 로비 사건이 터지고, 청문회가 열리고, 세간의 수많은 사건이 터지는 핵심에 반드시 그리스도인들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 한국 교회의 위기를 느낀 나머지 뜻 있는 몇몇 목사님들이 모여서 참회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초창기에 교회가 어둡고 힘들 때는 오히려 우리의 신앙이 순수했었습니다. 배고프고 힘들고 희생해야 하는 그곳에 다른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 가면 핍박이 있고, 그곳에 가면 힘듦이 있는데... 순수한 신앙의 동기가 없는 사람들은 교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도 모르게 이 순수성이 변질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에 가면 복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기복신앙이 팽창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한국 교회는 너무너무 커졌습니다. 교회의 영향력이 대단해진 것이지요. 옛날 고난의 자리가 오늘 영광의 자리로 바뀌어버린 겁니다.
30년 전 목사의 인기도는 이발사 다음이었습니다. 그래도 다 같은 '사'자가 들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어떻습니까? 중 ·대형교회 목사의 인기는 의사, 판사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들어갈 때만 해도 전액 장학금을 주어도 늘 학생 수는 미달이었어요. 오는 사람이 없었어요. 왜? 목사, 전도사가 되면 다 고생해야 되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의 소명을 특별히 받지 않은 사람들은 신학교에 올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최고 인기 있는 신학교에 입학경쟁률이 몇 대 1인 줄 아십니까? 17:1입니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3수, 4수를 하고 신학교 문 앞에는 입시 학원이 생겨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명을 받아서 그럴까요? 혹 교회의 삶이, 목사들의 삶이 너무 좋아져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옛날에는 장로, 안수집사 서로 안 하려고 했습니다. 왜? 교회의 부족을 내가 다 채워야 하니까요. 돈도 희생해야 되고, 시간도 희생해야 되고, 몸으로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해야 합니까?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것이 바뀌었습니다. 봉사의 자리, 십자가의 자리, 희생의 자리에서 대접받는 자리, 누리는 자리로 어느새 바뀌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가장 잘 팔리는 책 가운데 「생사를 건 교회개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이 지은 책입니다. 다음 주일에 제가 앞에 갖다놓을 텐데 읽어보십시오. 여기에 보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 대형교회의 장로와 안수집사님들이 상당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을 내가 다스릴 수 있고, 대형교회 정도 되면 1년에 수십 억의 재정을 장로님 몇 분이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대형교회 목회자가 되고, 대형교회 재정을 담당하게 되면 은행에서 담보 없이도 수억 원을 그냥 대출해 준다고 하는 이 놀라운 사실을 말입니다. 저도 은행에 가면 특별대우를 받습니다. 부지점장이 쫓아 나오십니다. 이 작은 교회도요.
결과는 무엇입니까? 장로 선거를 하는데 돈이 동원됩니다. 총 회장 선거하는데 돈 봉투가 왔다갔다 합니다. 이 참상을 몇몇 뜻있는 목회자들이 오늘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순수하지 않은 동기를 가진 자들이 교회에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전혀 복음과는 상관없이 교회 생활을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와 내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우리 교회는 순수한 복음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여기에 왜 모였는가? 왜 영안교회를 만들어야 하는가? 왜 우리는 교회에 와서 헌금을 드리고 봉사하며 충성해야 하는가? 과연 우리는 순수한 복음의 동기로 예배와 여러 모임을 가지고 있는가?
교회라고 저절로 다 순수할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은 교회가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변질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박 목사도 변질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주지 않고, 여러분이 저를 감시해 주지 않으면 저도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돌아볼 뿐 아니라 나는 정말 순수한 신앙의 동기로, 주 예수께서 내 죄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셨기에 그 십자가 앞에 무릎꿇은 동기로 내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가? 이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감사하게도 순수한 복음을 가진 자들과 가짜 복음을 가진 자들의 특성을 뚜렷하고 적나라하게 저와 여러분에게 기록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이 특성들을 살펴보며 우리 안에 불순물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복음의 동기가 아닌 다른 어떤 것들이 도사리고 있다면, 아니 우리 교회 안에 이미 잠재하고 있다면 오늘 이 시간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고발하는, 그리고 참회하는 회개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 안, 교회 안, 가정 안에 복음이 다시 살아나는 귀한 예배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순수한 복음을 가진 자들의 특징을 하나님은 몇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8장은 큰 단락의 시작입니다. 사도행전의 주(主)절이 1장 8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을 복음화 시킨 사건은 사도행전 1장부터 7장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이제 8장부터는 유대와 사마리아를 복음화 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복음화 시키기 이전에 예루살렘 교회가 축복을 받아 파송된 것이 아니고, 그 교회에 큰 환란이 임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지도자 스데반이 죽었습니다. 온 교인들이 핍박을 받아서 보따리를 싸 가지고 예루살렘의 정든 고향과 집을 다 버리고 다른 지방으로 쫓겨가야만 했습니다. 여러분, 이들의 고통을 상상이나 해보셨습니까? 그러나 이들은 이 모든 고난을 이겼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저 핍박 때문에 좌절한 것이 아니요, 집을 빼앗겼기 때문이 슬퍼한 것이 아니요, 이 고난 가운데서도 그들은 이기고 하나님을 전파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왜요? 그들이 순수한 복음의 동기를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들의 특성을 세 가지로 성경은 지적해 주십니다. 첫 번째 어떻게 순수한 복음이 이들을 승리하게 했는가, 순수한 복음을 가진 자의 특징은 무엇인가? 먼저 그리스도 중심의 삶입니다.
【 참 복음의 특징】
1. 그리스도 중심의 삶
4절과 5절을 보세요.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보통의 때가 아닌 큰 핍박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위험의 때였어요. 방안에 가만히 숨어있어도 지금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을 잡아다가 목숨을 빼앗고 감옥에 처넣는 그런 위험한 때에 빌립과 성도들은 나아가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고 오늘 성경은 얘기합니다. 그들이 시간이 남아서 전파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기회가 와서 그리스도를 전파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얼마나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았던지 이 위험한 순간에, 이 고난의 때에, 이 극적인 슬픔의 때에 그들은 기회가 있는 대로, 아니 시간을 내어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고 성경은 가르치십니다.
순수한 복음을 가진 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삶의 순간순간 연장연장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슬픔이 온다고 그저 슬퍼하고, 낙심하는 일이 있다고 낙심하며 끝내버리지 않습니다. 기쁨의 때, 슬픔의 때, 평안의 때, 환란의 때에도 이들의 삶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정말 당신은 순수한 복음을 가지셨습니까? 아니, 혹시 내가 순수한 복음을 가졌는지 아닌지를 알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진단은 매우 간단합니다. 이런 질문을 해 보십시오. 당신의 삶은 얼마나 그리스도 중심적인가? 지난 일주일 동안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얼마나 생각하셨습니까? 여러분에게 허락된 시간을 얼마나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사용하셨습니까? 여러분에게 허락한 물질 가운데 몇 퍼센트를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쓰셨습니까? 지금 현재 당신의 삶에 무엇이 중심을 잡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 마음의 보좌 위에 앉아 계십니까? 돈입니까? 사업입니까? 건강입니까? 행복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순수한 복음을 아직도 철저하게 갖지 못한 자입니다.
우리 교회가 순수한 복음을 가졌는지 알고 싶으십니까? 문제는 간단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결정이 무엇에 의해 내려지는가? 오래 믿은 집사님들의 경험에 의해서, 성경을 많이 아는 목사의 생각에 의해서, 아니면 정말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작은 결정에서 큰 결정에 이르기까지 내려지고 있는가? 순수한 복음을 가진 자의 첫 번째 특징은 모든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삽니다.
2. 얽매인 자들을 해방시키는 능력
이사야 61장에 보면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할 일을 이렇게 표현해 줍니다.
"~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1절)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절)"
7절을 보세요.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복음을 가진 자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주위 사람을 얽어매는 것이 아니라 해방시켜 줍니다. 죄에서 그 영혼을 해방시켜 주시고, 마음이 상한 자에게 위로함을 주고, 육신이 아픈 자에게 때로 건강을 줍니다. 복음에 충만한 사람, 참 복음을 가진 사람이 가는 곳에는 그 사회가 달라집니다. 그 모임이 달라집니다. 거기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자유가 있었어요. 죄책감에서부터 자유, 마음의 상처로부터의 자유, 육신의 질병으로부터 자유, 불화함에서부터의 자유, 부부싸움에서부터의 자유, 미움과 시기로부터의 자유가 언제나 존재했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가진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입술로는 복음을 전하는 것 같고 신앙 생활을 참으로 잘하는 것 같지만 율법을 가르치는 자는 사람을 얽어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를 비판해버리고 정죄해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심령을 얽어맵니다. 내 종이 되어야 하니까요. 나와 다른 것은 보지 못합니다. 내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십니까? 주위 사람에게 자유를 주십니까? 멀리 가지 마십시다. 여러분의 아내에게 자유를 주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그 자녀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충분히 허락하십니까? 이것은 그들에게 방종을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을 가진 자는 주위 사람에게 반드시 자유가 전달되어야 합니다. 과연 당신을 만나는 사람들이 죄와 근심과 걱정에서 해방감을 맛보고 있습니까? 이런 자들은 특징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환영해요. 굉장히 잘 믿는 것 같은데 만나면 설교하려고 드는 사람, 만나면 비판하는 사람, 이런 자들은 사람들이 피해요. 순수한 복음을 가진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켜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가정에 해방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죄책감에서 해방되고,자녀들이 과거의 실수에서 해방되고 '우리 아버지 엄마는 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나를 이해해주실 분이야! 나에게 매를 가하지만 나를 버리지 않으실 분이야!' 이것이 순수한 복음을 가진 자들의 특징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탄의 권세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에 빠진 영혼들을 해방시켜 줍니다.
3. 넘치는 기쁨
8절을 보세요.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그들에게는 재미가 있었다는 겁니다. 웃음이 있었어요. 어제 제가 설교 준비를 하고 나오는데, 한 자매가 방실방실 웃어요. 왜 웃느냐고 물으니까 "목사님! 한번 웃으면 이틀 생명이 연장 된데요. 같이 웃으면 세배의 효과가 있데요. 으하하하!" 그래서 저도 많이 웃었어요.
여러분, 복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쁨입니다. 환경이 기뻐져서 기쁜 것이 아니에요. 오늘 이 사람들을 보세요. 지금 기뻐할 때입니까? 지도자 스데반은 죽었죠. 지금 무서운 사람들이 자기를 잡아 감옥에 가두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CIA, 중앙정보부가 동원되어 있는 이 찰나에 이들은 얘기합니다. 그 성에 보통 기쁨이 아니라 "으하하하~" 큰 기쁨이 있었다고요. 사도 바울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하시기를,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고난의 때에도 슬픔의 때에도 기뻐했습니다. 복음이 있는 자는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인생관이 바뀌니까요. 가치관이 바뀌니까요.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 땅이 어려워질 때에 슬퍼합니다. 낙심합니다. 원망합니다.
그러나 저 하늘에 가치관을 둔 사람들은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내 몸이 좀 병들면 어떻습니까? 그깟 사업이 좀 안 되면 어떻습니까? 우리 영혼이 이미 하늘나라의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내 과거의 죄만을 사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지을 죄의 값까지 다 지불하셔서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의인이야! 내가 너를 천국에 맞아들일 것이야!" 여러분, 이 소식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슬프십니까? 괴로운 삶을 사십니까? 이것은 여러분이 복음의 능력을 몰라서 그래요. 순수한 복음을 깊이 깨달으며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복음을 깊이 깨달은 자들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삽니다. 어디에 가서든 남을 해방시키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넘치는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쁨을 가지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은 핍박을 능히 이긴 순수한 복음의 능력과 그 복음을 소유한 자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모두가 다 그러한 능력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얘기합니다. 이들 가운데 가짜 믿음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9절부터 24절까지 기록된 시몬이었습니다.
여러분, 부싯돌로 불을 붙여보신 적이 있나요? 여기에는 아주 얇은 풀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시골에서 해봤어요. 한두 번에 안 됩니다. 부싯돌이 "탁탁"하면 놀랍게 불이 붙어요. 부싯돌과 부싯돌을 부딪히면 둘 다 흠이 안 가요. 그냥 스파크가 일어나요. 그런데 금강석이나 다이아몬드로 부싯돌을 긁어 보세요. 그러면 그렇게 단단해 보이던 부싯돌에 어김없이 골이 파여 버립니다.
겉으로 볼 때 굉장히 잘 믿는 것 같지만 순수한 복음의 능력이 임하게 되면 가짜 믿음이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몬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굉장히 잘 믿는 것 같았지만, 성경은 그가 가짜 믿음을 가졌음을 몇 가지로 간단히 지적해 주십니다. 먼저 비슷한 복음, 가짜 복음을 갖게 되면 어떤 특징이 나타나는가?
【 가짜 복음의 특징 】
1. 사람을 높인다
9절과 10절을 보세요.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것보다 더 큰 칭찬이 어디 있습니까? "저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아마 제가 그런 이름을 얻으면 여기 5부 예배도 부족할 것입니다. 가짜 복음의 특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가짜 복음에는 언제나 그리스도보다 사람을 높입니다. 복음 같은데, 말씀을 가르치는 것 같은데, 언제나 그 결과는 하나님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높아지는 겁니다.
교회에 나와서 내어놓고 자기 이름을 높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높인다고, 그리스도를 높인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수단일 뿐입니다. 그 마음의 진정한 동기는 나를 높이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짜 복음의 특징입니다. 교회에서 하기 쉬운 실수가 있는데 그것은 어떤 한 사람을 높이는 겁니다. 모든 이단들을 보세요. 하나님을 높여야 되는데 그 교회에서 한 사람이 높아집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참 감사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높아진 사람들은 다 번쩍하는 능력이 있는데, 저야 능력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저를 높이라 해도 안 높이겠지만, 만에 하나 여러분이 저를 사랑하신다고 하면 하나의 지도자의 존경으로 끝내십시오. 인간적인 사랑으로 끝내십시오. 그 이상 여러분이 저를 칭찬하고, 그 이상 여러분이 저를 높이게 되면 그 교회는 이미 복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누가 아무리 큰 공헌을 했다고 해도, 자기의 재산을 다 내놓았다고 해도 그것을 통해서 그 사람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져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십시다. 내가 무슨 일을 했든지, 아무리 큰 재능을 가졌든지,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을 했다고 해도 그리스도가 높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시몬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를 높였습니다. 가짜 복음의 첫 번째 특징은 사람을 언제나 높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가짜 능력을 소유합니다.
2. 가짜 능력을 소유한다
11절을 보세요.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이단이나 기도원 같은 데 가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 능력이 있어요. 몇 년 전 MBC 방송국에 난입한 이재록 목사를 보면 능력이 있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그 목사님을 천사 위의 하나님 동생 정도로 생각했어요. 나중에 어떻게 했나 봤더니 강대상에다 다 쇼를 했어요. 전기장치를 해 가지고 예배드리는 중간에 갑자기 저쪽에서 빛을 쫙 비춥니다. 이 박 목사를 환하게 비추니 얼굴에 점점 광채가 나요. 그리고 구름이 나타나면서 "아! 하나님이 오셨구나!"
여러분! 여러분의 수준을 너무 높게 생각하지 마세요. 한국 교회의 수준이 이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다 진리예요. 그가 LA에 가서 도박하다 걸려 몇 십만 불을 그냥 탕진했습니다. 교인들이 그를 경찰서에 고발하려고 하자 교인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제가 교회 건축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할까? 여러분, 이것 땡기는(?) 게 쉬운 줄 아십니까?" 그 날 어떠한 일이 있었는 줄 아십니까? 5만 명의 교인들이 다 울었대요. 그 5만 명이 어떤 사람인 줄 아세요? 무식한 사람들만 모였습니까? 교수들이 그 자리에 있었어요. 카이스트 박사, 의사, 검사, 판사... 영적인 데는 속이는 영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달리 해석할 길이 없어요. 가짜 능력을 소유한 것이지요.
마술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마술을 보게 되면 기가 막혀요.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저도 한번 봤는데 여자를 뉘어놓고 반을 딱 잘라요. 그런데 하나도 안 잘렸어요. 다시 붙입니다. 또 무대에다 코끼리를 데리고 와서 얇은 보자기로 살짝 싸서 "얍!"하는 순간에 코끼리가 없어져요. 다 눈속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술사 외에 비슷한 복음을 가진 자들도 가짜 능력을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모세의 시대를 기억합니까? 모세가 바로 왕 앞에 가서 지팡이를 던져 하나님의 능력으로 뱀을 만들었습니다. 마술사들이 "하, 그 정도!"하면서 그들도 뱀을 만들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여러분, 제발 "어디 가니까 신기하더라!" "안수 한번 받으니까 병이 나았데! 한번 가봐, 기가 막혀! 내 과거를 그냥 다 맞혀!" 이런 얘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슷한 복음을 가진 자들도 가짜지만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그러나 그 능력은 참 능력이 아닙니다. 가짜 복음을 가진 자들은 사람을 높입니다. 그리고 가짜 능력을 소유하여 사람들을 긁어 모읍니다. 그뿐 아니라 잘못된 동기를 가진 채 종교적 외모만 꾸밉니다. 그래서 알기 힘들어요. 진짜 복음을 가졌는지 가짜 복음을 가졌는지 알기 힘들어요.
3. 잘못된 동기를 가진다
이 시몬이 그렇습니다. 13절을 보세요.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
시몬은 침례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랐습니다. 대충 믿은 것이 아닙니다. 아마 그때 난리가 났을 겁니다. "마술 하던 사람이 영안교회 오더니 복음을 받았대!" 또한 그가 침례를 받고 간증도 합니다. 이 박 목사를 돕는 데 너무너무 열심히 돕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는 진짜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는 완벽한 신자였어요. 그래서 빌립조차도 그가 완전히 믿은 것으로 속았어요.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나타나자 그의 본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그 외모가, 겉모습이 완벽하면 할수록 한번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속을 수 있어요. 우리 교회 집사님들은 속일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가리켜서 나는 순수한 복음을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신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믿는 집안으로 말하면 할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 할아버님이 목사님이셨어요. 초대교회, 함흥 형무소에서 3년 감옥살이를 하신 분 중에 한 분입니다. 저희 집안에 목사를 다 모으면 30명은 될 겁니다. 위로 형님 세 명이 목사입니다. 이모부, 고모부, 외삼촌, 숙부님, 조카, 다들 목사이고 신학교를 다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순수한 복음과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나왔어요." "영안교회에 내가 어릴 때부터 출석했는데요." 이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정말 내 안에 순수한 복음의 동기가 있는가?
가짜 복음의 특징은 사람을 높이고, 가짜 능력을 소유하고, 잘못된 동기를 마음 안에 품은 채 종교적 외모만 번지르르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짜 복음의 특징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4. 물질적인 일에 관심을 갖는다
18절과 19절을 보세요.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무슨 얘기인가 하면 마술을 아무리 잘해도 마술사들은 그게 가짜인 줄 알아요. 시몬도 자기가 마술을 행하면서 가짜인 줄 알았거든요. 아마 처음에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오니까 '야, 기찬 마술사 대 선배가 오셨구나!' 이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이 안수를 하는데, 사도행전 2장에 행했던 그 진동 같은 것이 일어나면서 성령님이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확 임하는 겁니다. 보니까 이건 진짜거든요. 그때 이 시몬이 본색을 드러냅니다. 돈을 가져다가 요청을 합니다. "내가 이만큼의 돈을 줄 테니까 당신들의 그 능력을 나에게도 좀 부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한 말을 읽어보겠습니다. 20절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가짜 복음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영적인 일보다 물질적인 일에 관심을 갖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나옵니다. 십일조를 바치고 새벽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위해 봉사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많은 한국 교회 신자들이 자신이 더 잘되기 위해서 신앙생활 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여전히 그들의 관심은 영적인 일에 있기보다 물질적인 일에 있습니다. 이것이 가짜 복음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오래 믿었건, 성경을 얼마나 줄줄 외우건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늘 생각하는 것이 이 땅의 삶이요, 내 건강이요, 내 장수요, 내 자식 잘되고, 내 사업 잘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의 복음은 가짜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몬과 다를 바가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여러분 주위의 잃어버린 영혼들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분 친척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서, 그가 지옥 가는 것 때문에 밤을 새워가며 그를 위해 기도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자녀가 서울대학에 못 가서가 아니라, 자녀가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에 가슴 아파하며 그 자녀를 붙들고 무릎 꿇고 기도해본 적이 있느냐고요. 이러한 모습이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진 자요, 참 복음을 소유한 자라고 본문은 가르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은 어떠십니까? 당신은 순수한 복음을 소유하고 계신가요? 정말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가십니까?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으십니까?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잘못을 깨우치되 정죄하지 아니하고 순수한 복음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게 만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매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고난을 축복으로 만드는 비결
행 8장 1~25절 / 이명규목사
[고난]을 일컬어서 “변장하고 찾아오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겉으로는 고난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축복을 안고 오는 변장된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톱레이디] 목사가 폐결핵으로 고통을 당하고 우울하던 시절인 32세 때인 1772년도에 만든 찬송시가 있습니다. 우리 찬송가 503장입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내 걱정 근심을 쉬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합소서”
고난을 당할 때에 믿음으로 그것을 잘 이용하면 더 전진하고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지만 고난을 대하는 자세가 잘못되면 고난이 우리를 원치 않는 방향으로 몰고 갑니다. 고난은 그 자체가 크고 작음에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믿음의 태도냐, 아니면 불신앙적 태도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이렇게도 될 수 있고, 저렇게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과 전문의사 [에릭 린드맨] 박사가 위기를 당한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습니다. 병든 사람들,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 또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 등, 위기를 당했던 사람들을 전부 조사한 결과, 위기를 당한 사람들의 85%가 결국 위기가 축복이 되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위기를 당함으로 나쁜 습관을 고치게 되었고, 가정이 바르게 회복되었고, 또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게 되고, 시간과 물질을 절약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기도 하고, 또 발전하고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절대로 원망, 불평하지 말고 오직 그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믿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17C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아담스(Thomas Adams ; ?~1653)는 “그대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의 유익으로 계산하라”고 말했습니다. 고통을 주는 것을 나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쓰라리고 잘못된 추억, 실패하고 망신당한 일들을 마음속에 담고 열심히 분발하면 더 성공하고 크게 될 수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부유하게 된 사람이 있고, 질병 때문에 건강하게 된 사람이 있고, 어려움 때문에 더 성공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고난당하는 내게 유익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우리들에게 유익이 될 수 있고, 축복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함께 보기를 원합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1.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고난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고는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은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지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땅을 떠나실 때 우리 교회가 반드시 순종해야될 귀한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예루살렘교회는 이 사명에 불순종하였습니다.
교회가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전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지 모이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는 모이는데 힘썼지만 순종해야하는 귀한 사명을 잊고 있었습니다. 이 때 교회에 핍박이 오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죽임을 당하는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큰 핍박이 나서 사도들외에는 흩어지게 되었고, 사울이라는 사람이 교회를 잔멸하려고 하였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핍박이 얼마나 거세였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폭풍처럼 쓸고 지나가는 엄청난 위기 였습니다. 사울은 아예 교회를 뿌리채 싹 쓸어 버리겠다는 필사의 각오로 믿는 사람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수색하여 잡아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성도들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물론 핍박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는 것입니다. 핍박이 시작될 때는 사단이 승리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없애 버리려는 사단의 작전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루살렘에만 있던 교회가 온 사방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큰 뜻을 성취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기억하며 삽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성공하고 승리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기독교는 ‘순종'의 종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멘'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고후 1:20).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아무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아멘'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아멘' 하고, 축복 속에서도 ‘아멘' 해야 합니다. 건강할 때도 ‘아멘' 이요, 아플 때도 ‘아멘'입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기적의 말씀을 듣고서도 ‘아멘' 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축복과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핍박속에서도 흩어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뿐아니라 7-8절에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 사르밧 과부도, 마지막 남은 기름과 밀가루로 떡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는, 절박한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는 이 과부에게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했던 떡을 자기한테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만약 그것을 가져오면 하나님께서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의 밀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食口)가 여러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 17:15∼16)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고난 중에라도 어려운 환경중이라도 순종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바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문제는 우리가 순종을 하느냐, 안하느냐 입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을 했더니 통에 가루가 없어지지 않고 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은 그릿 시냇가의 기간을 빼고 대략 2년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가루를 뜨면 가루가 또 생기고 또 생기고, 기름을 부으면 기름이 또 생기고 또 생기고 계속해서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라고 했습니다. 먹고 남아서 일가친척까지 나누어 줄 수 있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로 ‘순종'을 통해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순종하고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총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레미야 7장 23절에 예레미야는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결코 저버려서는 안됩니다. 순종을 통해서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적으로 받게 하는 조건이다."라고 했습니다. 한번 순종하고 두번 순종하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순종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칼뱅(Jean Calvin ; 1509∼1564)은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무조건 따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유명한 장로교의 시조인 칼뱅은 말하기를 믿음이라는 것은 눈을 감고 무조건 따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 1906∼1945)는 “신앙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축복으로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축복으로 변화시키려면)
2. 영적으로 바로 서야 한다.
고난과 어려운 환경을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서도 영적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환경을 축복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영적으로 바로 서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기회를 고난 가운데서도 붙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이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는 것을 시몬이라고 하는 마술사가 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자칭 큰 자라 생각하였던 교만한 사람이였습니다. 빌립을 만나 예수도 믿고 침례도 받고 교회 회원이 되어서 빌립과 함께 다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돈으로 그것을 사려고 하다가 베드로에게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다고 신앙고백도 하고 침례까지 받았고 빌립과 함께 다녔으나 참 믿음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축복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뿐만 아니라 자신의 환경을 축복의 환경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우리의 신앙이 바로 서지 않으면 축복의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시몬은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을 놓쳤습니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 1620~1686)은 “재물을 잃으면 아무것도 잃은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마음에서부터 믿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바로 서 있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 만난 분명한 감격과 기쁨이 있습니까?
주님을 믿는 동기가 올바르십니까?
마술사 시몬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권능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어떤 기록에 보면 시몬이 “눈물이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면 틀림없이 은혜를 많이 받은 크리스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결과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올바르게 서지 못하면 잘못된 동기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신앙이 영적으로 바로 설 수 있을까요?
시몬의 잘못된 동기를 보면서 우리는 영적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영적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믿음의 근거가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몬은 말씀에 있지 않고 그가 본 빌립의 기적에 있었습니다.
8장 1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몬도 믿고”란 표현은 그의 믿음의 동기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고자 함이 아니라 기적을 보고 그것을 행하는 방법을 알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동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빌립은 자기의 추종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믿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이 나타나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고 자기 말을 들었는데 빌립의 전도를 받고 모두 그를 따르니 시몬도 자기의 추종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돈으로 성령의 능력을 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그러므로 이 악함을 회개하라.!!!
시몬은 돈이면 자신이 필요한 것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사단의 생각입니다.
당신 마음을 움직이는 중심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물질 만능주의가 되면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착각하는 것이 영적인 축복도 돈으로 해결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몬의 마음입니다. 영적인 축복을 어떤 환경에서도 누리시기를 원하십니까? 영적으로 올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우상을 섬기는 환경에서 포로로 생활하였지만 영적으로 바로 서 있었을 때 축복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팔려 노예 생활을 하였을 그 환경에서도 영적으로 바로 서서 하나님을 경외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 않았습니까?
우리 서서울 모든 성도가 영적으로 바로 서서 올바른 동기로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서 고난과 어려운 환경에 처한다 할찌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난과 어려운 환경을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3.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으나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할 때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 당시 사마리아는 유대인들과 상종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 예배하였습니다.
빌립이 전도할 때 성령까지 받았다면 예루살렘교회와 사마리아교회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대표가 와서 안수함으로 그들이 받은 성령과 사마리아에서 받은 성령이 같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셨습니다. 성령이 임함으로 오랫동안 원수지간으로 여겼던 사마리아와 유대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가치관이 깨어지고, 그들의 생각이 깨어지고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하나가 되었을 때 어떤 역사가 있었습니까?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고,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던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수록 더욱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고난을 이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고난을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될 수 있습니까?
하나 되기 위해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성령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 초점 맞추고 열심히 섬김으로서 하나될 때 우리에게 어려운 환경이라 할찌라도 축복으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목사와 성도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온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어려운 고난과 힘든일이 온다할찌라도 그 고난을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7:22-23 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남북 전쟁 때 그 미국이 남북 전쟁을 하고 있을 때 포토맥강이라고 하는 강을 사이에 두고 북군과 남군이 대치했습니다. 이제 내일 아침에 터져서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될 그런 그날 밤입니다. 달빛이 흐르고 조용한 시간에 군사들은 불안에 떨면서 지금 하룻밤을 지내게 됩니다. 그 누군가가 생각합니다. 군가를 부르기로 하면 양군이 전부 군가가 다릅니다. 애국가를 불러도 둘 다 다릅니다. 그런데 어느 군인이 누구나 다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 Home, Sweet Home,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여러분 잘 아는 그 노래를 어느 군인이 조용하게 불렀습니다. 옆에서 따라 불렀습니다. 강 건너편에 소리가 들려졌습니다. 그 분도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로 가득 찼습니다. 저들은 눈물을 흘리며 계속 불렀습니다. 다음날 전쟁은 없었습니다. 왜요? 한 마음이 되었거든요 어떻게 전쟁을 했던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될 수 있었습니까? 근본으로 돌아가보니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나를 오라고 하는데 나는 왜 여기서 이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근본적인 것에 부터 하나가 되니 전쟁이라는 이념적인 문제 가운데서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97세때 그 분이 뵈었는데요 "곽목사 잘 들어 두라우"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내가 영어를 많이 하고 영어를 좋아해서 영어성경을 한국말 성경보다 많이 봤거든."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싹없어지는데 영어단어가 하나도 생각나지가 않더래요 영어성경을 읽을 수가 없데요. 그리고 다 잊어먹었던 어머니와의 대화, 이런 것이 생각난다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갈 때가 가까운 가봐"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승만 박사께서 파란 눈의 마누라하고 평생을 살지 않았습니까? 하와이에 계실 때 마지막에 영어를 다 잊어 버려서 통역을 했답니다.
여러분,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자신의 경험, 지식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느 시간을 좀 멀리 내다보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요. 그 종말을 바라보며 오늘 현재를 생각해 보세요. 누가누구를 비판하고 누구를 원망하고 뭘 또 교만할 교만할 꺼리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실제거든요. 예수를 믿는다는 건 뭡니까? 믿는 순간부터 하나됨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 같은 죄인이니까. 잘났으나 못 났으나 죄인은 마찬가지요. 우리 의로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다 죽을 죄인인데 오직 예수의 은혜로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예수의 은혜로 내가 살고 하늘나라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오늘을 삽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라 할찌라도 축복으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서서울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 어떤 환경이라할찌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바꿀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흩어져 전하라
행 8장 1~8절 / 김상복목사
지난 주간 ‘전도폭발 임상훈련’에서 우리 권사님, 집사님들이 전국에서 오신 50여 분의 목사님들과 평신도지도자들을 섬겨드렸습니다. 옛날에는 목사님 한 분이 평신도 두 분을 데리고 나가 전도 훈련을 시켰었는데 이제는 평신도 한 분이 목사님 두 분을 훈련하는 평신도 목회운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교회에게 흩어져 복음을 전하라 하셨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모이려고만 했지 나가 전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큰 핍박이 오자 신자들이 어쩔 수 없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사도들만 남고 평신도들은 대거 전국으로, 전 세계로 흩어졌는데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습니다”(4절). 예루살렘 교회 전도왕은 빌립 집사로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십니다. 예수를 알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사마리아 교회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6절). 사마리아 사람들은 복음의 능력, 기적의 능력, 기쁨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기적의 능력은 빌립에게가 아니라 빌립이 전한 예수님께 있습니다. 여러분도 복음을 전하고 구원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기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분당 성남 지역에서 제일 호감 가는 교회로 할렐루야교회가 꼽혔다고 합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몇 주 전 미국에서 20년 만에 저를 찾아오시던 목사님이 야탑역에서 택시를 타고 할렐루야 교회로 가자 하니까 기사가 “제가 그 교회를 압니다.” 하더랍니다. “어떤 교회입니까?” 묻자 “대형 교회 가운데 나쁜 말 안 듣는 교회는 할렐루야교회뿐”이라고 하더랍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요즘 우리 교회 매일전도대가 교회 주변을 가가호호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이사 온지 벌써 10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우리 교회를 모르는 이웃이 있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교회의 존재를 이 지역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처럼 우리도 예배를 드리고 흩어져 복음을 전하여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기 바랍니다. 전도폭발 훈련을 받고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여 문화적 사명과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전도폭발임상훈련에서 우리 성도 네 분이 간증을 하여 모두가 큰 은혜를 받았는데, 오늘은 그분들의 간증 설교를 듣겠습니다.
<간증1> 전도폭발 2단계 유완식 집사입니다. 저의 부족함을 아시고도 이 훈련을 통해 받은 은혜와 기쁨을 함께 나누도록 이 자리에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는 거의 강제적으로 이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제 직장은 멀리 인천에 있었고 일도 많아서 좀 더 여유가 생길 때 훈련을 받으려 했는데, 제 아내가 혼자서만 은혜 받는 것이 아깝다면서 상의도 없이 등록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거부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기왕에 시작할 것 제대로 받아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각 결석을 않으려 하다 보니 매주 화요일에는 007작전이 펼쳐졌습니다. 제 통근버스가 7시20분에 야탑역에 도착하면 7시30분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아내가 기다렸다가 교회까지 태워주었습니다. 저는 차 안에서 아내가 준비해온 죽으로 저녁식사를 대신하고 수업에 참석했습니다. 전도폭발은 제게 커다란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첫째 은혜는 복음의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얼마나 일시적, 현세적 믿음을 갖고 살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퇴근길에 가끔 교회에 들러 기도했지만, 자녀나 사업을 위해서만 기도했지 정작 중요한 구원의 문제는 빠져있었습니다. 훈련을 받으며 제 믿음과 기도의 내용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제 구원자라는 믿음의 뿌리를 확실히 내렸습니다.
둘째 은혜는 시범팀 참여입니다. 어느 날 즉석양육 부분을 암기하는데 아내가 “시범하지 않을 거면 그 부분은 대충 해도 되요.” 하더군요. 저는 웃으면서 “그러면 제대로 외워서 시범하지 뭐!”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지나가는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시고 이번 학기부터 저녁반 시범팀에 참여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시범 연수 과정은 더 은혜로웠습니다. 복음제시 전체 암송을 여러 번 반복하니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제 것이 되었고 부담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무장된 것입니다.
셋째 은혜는 제가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어쩌다 기회가 오면 “교회를 다니면 이러한 점들이 좋더라.”고만 했지 적극적으로 전도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직장 동료들이 전도의 대상으로 보였고 그래서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얼마 전 한 직원이 다가와 업무적으로 제게 부탁을 하여 힘들이지 않고 도움을 주었더니 “어떻게 감사를 드리면 되요?” 하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때다!’ 하고 “30분만 시간을 내 주세요.” 하고 복음을 전했는데 감사하게도 그분이 기쁘게 주님을 영접하였고 얼마 전에 우리 교회에서 함께 예배까지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지금까지 절반인 6명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머지않아 나머지 사람들도 다 채워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도폭발훈련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생활의 기쁨과 활력을 주었습니다. 제가 변화되었습니다. 전도폭발 자체를 받게 된 것을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인으로서 매주 훈련에 참석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지만, 제가 드리는 조그마한 헌신에 비해서 하나님께서 더 크고 좋은 것을 주신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저는 기쁜 마음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단계도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간증2> 저는 전도폭발 3단계 천영주 집사입니다. 이 훈련을 받기 전에 저는 삶이 매우 고달팠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미션 스쿨을 다녔지만 교회는 그저 한가할 때만 다녔어요. 그래서 당연히 믿음 없는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저와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다 주고 그 앞에 있는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함께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간호학 전공을 한 저는 간호사가 싫어서 일찍 시집갔는데 시아버님께서 오래 편찮으셔서 전문 간호사 역할을 했어요. 시아버님 소천 후 1년 반 만에 남편에게서 암이 발견되어 시한부인생 10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너무 힘들고 외로워 교회에 등록하자 사랑방 식구들이 제 남편을 위해 40일 중보기도를 해주셨습니다. 담임 목사님과 교구 목사님도 제 남편을 방문하셔서 사랑으로 돌보아주셨습니다. 오랜 병마로 몸과 마음이 힘들어진 저희 남편은 12년간의 투병 끝에 해방되어 구원을 받고 천국으로 갔습니다.
싱글이 되고 보니 아이들 장래 문제가 많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 함께 다니는 부부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너무 부러워 멍하니 쳐다보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음성을 들려주셨고, 남편이 천국에 간 것을 기뻐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저를 위로해 주시는 주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저는 값없이 받은 구원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이 복음을 전하고자 전도폭발 훈련에 들어왔습니다.
암기가 어려웠지만 성령님께 완전히 의지했더니 글쎄 돌머리가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지 뭐예요. 단계가 거듭될수록 전도가 점점 익숙해졌어요. 전에는 친정아버지 영혼에 대해 그렇게 갈급하지 않았어요. 평생 은행원으로 강직하게 사셨던 아버지에게 저희가 복음을 전했을 때 아버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사를 끊으셨어요. 할렐루야 교회에 등록하고 7단계 새신자교육도 받으셨어요. 한번은 양품점 최 실장을 만나 복음을 전했어요. 주님을 영접한 그분이 교회에 처음 오던 날, 비도 오고 추웠습니다. 그날따라 담임 목사님이 외국에 나가시고 장기운동본부 목사님이 설교하셔서 저는 무척 실망이 되고 떨렸어요. 그 목사님이 “오늘 새로 오신 분은 새로 오신 기념으로 장기를 기증하십시오!” 하실 때는 정말 놀라 기절할 뻔 했어요. 완전히 주눅들은 모습으로 새 교우실로 갔더니 글쎄 그분이 장기기증서약서를 써 가지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이런 놀람과 기쁨은 맛보지 못한 분들은 결코 모를 것입니다.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제가 남편이 세운 공장을 경영하게 되었어요. 저는 전도훈련에만 힘썼는데 지난해 2천만 불을 수출하여 금탑상과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재수를 하던 제 둘째딸이 2월에 대학을 세 곳이나 합격하여 하나님의 은총이 넘쳤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큰일을 행하셨어요. 이번 학기에는 환자전도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는데, 친지가 입원한 병원에 병문안을 갔다가 그 병원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40세 된 뇌졸중 환자에게 같은 층에 입원한 친지 이야기를 하며 다가가자 쉽게 마음을 열었고, 복음을 전하자 자신은 외아들이라 제사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교회에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제사 대신 추도예배를 드리면 되고, 절 대신 예배를 드리면 훨씬 좋다고 말해주자 그런 방법이 있는 줄 몰랐다며 기뻐했습니다. 결신과 즉석양육을 하였고, 간병인과 함께 매일 기도드리실 것과 병원의 주일 예배에 참석하실 것을 부탁드리자 흔쾌히 동의하셨습니다. 같은 병실에 교회 경비를 보다가 뇌졸중으로 거동을 못하게 된 분이 계셨는데 저희가 전도폭발팀이라고 소개하자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저의 손을 꼭 잡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받은 한 형제들 사이에서 전도폭발은 인기 폭발이었습니다.
훈련자로 무장되는 2단계 때 저는 환상의 커플 7학년 권사님을 훈련생으로 섬기며 점점 더 강성해졌어요. 권사님은 젊을 때 이혼하고 떠난 남편을 전도하기 위하여 이 훈련에 들어오셨습니다. 한 달 전에 전도폭발 목사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하였어요.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 그분은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50년 만에 한 영혼이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권사님은 그 어른을 집으로 모시고 오셨어요. 자녀들과의 관계도 사랑으로 회복되었고 아침저녁으로 기도하시며 간호하시던 중, 2주일 전에 소천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한 번 택하신 백성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겠노라.”는 약속의 말씀을 지키심을 실감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 은혜, 용서, 자비, 평화를 보게 하셨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 마음속에 전도 대상자로 생각나게 하실 때 순종하니 이런 은혜를 체험케 하시네요.
이렇듯 전도폭발 안에 기적이 있고, 기적 안에 전도폭발이 있습니다. 지금 저는 반대이론을 처리하는 3단계 과정에 있습니다. 이 훈련을 받고 나서 사람들에게 다가가 전도하는 저 자신에 놀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하신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저 역시 영혼 사랑의 열정으로 주께서 저를 쓰시는 그날까지 순종하렵니다. 저는 지금 남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보다도 저를 더 사랑해주시고 이해해주시며 저의 모든 형편과 환경을 잘 아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예수님 신랑이 계시기에 외롭지 않습니다. 사실 지금 와서 이야기인데요, 남편이 있었을 때에도 조금은 외로웠어요. 앞으로 저는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마음껏 전하는 화려한 싱글로 살아가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간증3> 전도폭발 4단계 최원봉 집사입니다. 저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닌 이래 많은 교육과 훈련을 받았지만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전도폭발훈련입니다. 주위에 전도해야 할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전도해야 할지 몰라 기껏해야 “교회 한번 나와 보세요. 참 좋아요.”라고 했던 제가 자연스럽고 자신 있게 전도하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청했다가 훈련 시작 전날 회사 핑계로 취소했었습니다. 두툼한 복음제시 책을 받고 그걸 전부 외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1년 쯤 후에, ‘주님께 충성하면 사업은 주님께서 책임져주실 터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가장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생각 중에 갑자기 ‘너 작년에 전도폭발 신청했다가 취소했잖아.’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 바로 훈련신청을 했고 훈련 내내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임했습니다.
저는 또한 지난 학기부터 Kids' EE 즉 어린이 전도폭발도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게 또 하나의 큰 축복입니다. 한국어와 영어로 재미있게 진행되는 훈련을 통해 어린이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며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어른 전폭과 어린이 전폭으로 무장되니 남녀노소 누구를 만나도 맞춤전도를 할 능력이 생겼습니다. 말하자면 쌍권총을 찬 셈이죠. 외국인을 자주 만나는 제게 영어로 정확한 복음을 전하는 능력이 생긴 것도 또 하나의 큰 보너스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전폭훈련을 받으셨던 분들은 꼭 어린이 전폭을 한 번 섬겨보실 것과 초등학교 4-6학년 자녀를 두신 분들은 꼭 어린이 전폭에 보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사업차 제 공장이 있는 K국에 가끔 갑니다. 지난해 10월에 마침 그곳에 출장을 온 협력업체 정 사장님을 만나 제 공장에 초청을 했습니다.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한국과 외국에서 전도를 여러 번 했지만, 그날따라 성령님의 역사로 그분이 굉장히 뜨겁게 반응했습니다. 결신기도를 할 때는 가슴이 막 뜨거워진다고 했습니다. 그 때 마침 옆에서 보고 있던 저희 회사 공장장이 감동을 받아 자기가 섬기는 한인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에게도 12월 중에 복음제시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귀국하여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는 도중 그 공장장에게 담임 목사님의 허락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습니다. 너무도 기쁘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평소 40명 정도 출석하던 그 교회 중․고등부가 그날은 백 명도 넘게 모였습니다. 복음을 학생들에게 맞게 25분으로 요약해서 전했는데, 처음에는 웅성거리던 학생들이 2-3분 지나자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첫 질문인 천국 갈 확신에 대해서 약 50%가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둘째 질문인 천국 갈 이유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대답을 못했습니다. 복음 제시 후 거의 모든 학생들이 뜨겁게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담임 목사님으로부터 장년부에도 복음제시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T국에 한국 청년집회 모임에서 남녀 청년 15명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도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셨고 모두 다 영접을 했습니다.
지난 3월에는 K국 또 다른 한인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복음 제시를 부탁받아 약 80명의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첫 질문에는 약 20%만이 확신이 있다고 대답했고, 둘째 질문에는 역시 거의 대답을 못했습니다. 지난 번 보다 업그레이드 된 버전으로 30분에 걸쳐 복음을 전했더니 90%가 넘는 학생들이 영접을 했습니다. 특히 양육부분에서 “여러분, 기도하기가 참 어렵지요?” 운을 뗀 후 다섯 손가락을 사용해서 기도하는 법을 알려주었더니, 기도하기가 어려웠는데 쉽게 머리 속에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제가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는 항상 어른전폭이나 어린이 전폭 사역자들께 중보기도를 부탁합니다. 전도에는 중보기도가 아주 중요합니다. 전에는 K국에 가면 회사 일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음번에는 하나님께서 또 어떤 사역을 준비해주실까?’ 하는 기대가 저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그곳으로 출장을 갔다가 그 근방에 있는 한인 고등학생 약 80명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보잘 것 없는 저에게 다른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사역을 주심에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욱 충성할 것을 다짐합니다.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흩어진 사람들
행 8장 1~8절 / 김경년목사
요즘 시골에는 벌써 농사 준비로 바쁜 모습입니다. 얼마전에 서울 근교에서 논과 밭에 불을 태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본격적인 농사 전에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소독 작업입니다. 저는 어릴 때 아버지가 논과 밭에 불을 놓을 때 저수지 둑에도 불을 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아이들과 불놀이를 즐깁니다. 잔디에 불이 붙었을 때, 그것을 막대기로 때리면 그 불씨가 더 멀리 더 잘 번져서 오히려 큰 불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여기서 '그 날'이란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하던 날을 의미합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그 한 사람의 순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몰아닥쳤습니다.
어느 정도로 큰 핍박이었던지 그리스어 원문은 megas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백만 배를 뜻하는 영어 단어 mega가 바로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메가톤 급 대 핍박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본문 3절에 사울이 교회를 잔멸하여, 남녀를 무론하고 닥치는 대로 끌어다 옥에 넘겼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잔멸했다는 단어(엘뤼마이네토)는 원래 멧돼지가 포도밭을 마구 짓밟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그만큼 폭력적이고도 잔인했다는 말입니다. 오죽했으면 여자까지 마구 잡아다 옥에 넣었겠습니까? 참으로 잔인한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다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핍박이 가해져서 성도들이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4절을 보면,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라고 했습니다.
핍박을 받아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핍박과 박해를 당해 흩어진 성도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그들이 박해를 당하기는 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무서운 박해가 가해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그런 확신 있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시험과 환난이 와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가 되시고, 예수를 믿는 것이 참으로 복되다 하는 그 믿음이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기서 흩어진 자들이 어디로 흩어져서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본문 1절 하반절입니다.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들은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을 향해 흩어졌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땅이란 유대와 사마리아보다 지리적으로 더 먼 곳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흩어졌던 방향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유언했던 방향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즉 모든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했었는지 본문 4절에서 기록합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흩어진 사람들은 핍박이 두려워 단순히 남의 눈을 피하여 숨어있거나, 혹은 다른 일을 위해서 예루살렘을 떠났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넘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흩어지면서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거기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로 이들에 의해 복음은 비로소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19-21절에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허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났던 사람들 중에는 서쪽으로 구브로-즉 지금 지중해에 있는 사이프러스에 가서 복음을 전한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북쪽으로는 지금의 시리아에 있는 베니게 그리고 터키에 위치한 안디옥에 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를 세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안디옥 교회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이곳에서부터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란 호칭으로 처음으로 불려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이 교회에서 파송된 사도 바울에 의해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가 없었다면 세계역사의 흐름을 돌려놓았던 사도 바울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안디옥 교회는 없어서는 안 될 교회였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졌던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흩어졌다'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diaspeiro입니다. 이 단어로부터 흩어진 자를 뜻하는 diaspora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본래 diaspeiro라는 동사는 농부와 관련된 단어로, 농부가 씨를 뿌리는 행동을 표현하는 동사입니다. 단 뿌리되 그냥 가만가만히 뿌리는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두루 흩어 뿌리는 것이 diaspeiro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이 우연이 아니었고, 교인들이 핍박을 받은 것도 우연이 아니었고, 교회가 흩어진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운행자이십니다. 역사를 움직이십니다. 우리가 한 곳에 안주하려 할 때, 핍박과 환난으로 우리를 흩으십니다. 떠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노릇 할 때 그냥 거기서 안주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고된 노동과 핍박으로 그들을 그 곳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출애굽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흩어진 성도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고 했는데, 두루 다니며 전도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두루 다니는 것에는 가까운 곳부터 전도하면서 점점 더 멀리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가까운 곳부터입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멀리 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회성장학자인 엘머 타운즈 박사는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그 경로를 연구해봤습니다. 전체 교인 중에 86%의 교인이 가족이나 친지를 통해서 나온 사람들로서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6%가 조직적 전도에 의해 나오게 된 사람이었고, 목회자를 보고 나온 사람이 6%, 광고를 통해서 나온 사람이 2% 순이었습니다. 실제 거의 대부분의 전도는 가족이나 친지들, 친구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 배우자, 형제, 친척, 친구, 선후배 등의 권유로 교회 나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도 먼저 믿지 않는 가족들을 인도하는 일에 힘써야겠습니다. 가까운 내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전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마을을 뛰어넘고 더 멀리 국경을 넘어 외국에까지 가서 전도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지방에서 전도한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립이 전도할 때, 본문7-8절 말씀을 보면,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전도할 때, 여러 가지 기적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아팠던 사람이 병이 낫고 좋은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전도할 때 체험합니다. 하나님이 즉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기독교가 참된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그런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결 론
오늘 본문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빌립이 전도함으로 8절에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본래 그 사마리아성은 우상 많이 숭배하고 귀신을 섬기고 음란하고 타락한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 빌립을 통하여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면서, 그 사마리아 성이 기쁨이 넘치는 성으로 바뀌어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을 탓하지 말고, 주어진 환경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고 철저히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아멘
온 성에 큰 기쁨을
행 8장 1~8절 / 김 조목사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며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고 감옥에 있으면서도 빌립보교회에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음은 몸은 옥에 있으나 그 심령에 한없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으로 충만하시고 나만 아니라 내 가정에 더 나아가 이 나라에 이 기쁨으로 충만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는 8절 말씀대로 이 땅에 큰 기쁨이 있기를 원하여 “온 성에 큰 기쁨을”이라 제목하고 말씀드리려 합니다. 큰 은혜 되시기 원합니다. 스데반 집사 순교 이후에 교회에 큰 핍박이 가시화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지게 되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함으로 이방선교의 문이 열려지게 되었고 사마리아에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함으로 말씀도 듣고 행하는 표적인 중풍병자, 앉은뱅이가 고쳐지고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깨끗해지니 믿는 자가 많아져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했으니 오늘도 나와 여러분을 통해 온 성인 가정과 나라와 민족 가운데에 큰 기쁨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여기에 큰 기쁨은 세상에서 얻어지는 잠지 찾아오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복음 전파의 결과로 찾아온 영원한 기쁨입니다. 이 땅에 큰 기쁨이 있기 원하여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1-4절)
스데반 집사 순교 이후 큰 핍박으로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잔멸하려고 했는데 이러한 순교와 핍박은 교회의 잔멸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되어 교회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흩어진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음이 전파된 곳마다 특히 빌립 집사가 전한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있었더라 했습니다. 인간적인 것으로 따져본다면 왜 믿음 생활하려고 최선 다하는데 핍박이 오고 신실한 종이 죽임을 당해야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엄밀하게 보면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물론 이 핍박은 종교지도자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데서 시작이 되었으나 예수그리스도의 최후의 명령인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리라”(행1:8) 하신 것을 이루지 못하고 이 명령을 적극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에 모여 현상태에서 안주하려는 교회의 소극적인 신앙에 하나님은 핍박을 가하며 흩어져 세계 각국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안일한 생각으로 복음전파하지 아니하다가 문제가 생기고 고통이 옵니다. 복음전함으로 하나님도 기쁘시게 하고 온 성에 큰 기쁨이 있어지게 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주 이름 부르는 자 구원을 얻으리라 믿지 아니하는 자 부를 수 없고 듣지 못하니 믿을 수 없고 복음을 듣지 못하고 믿을 수 없고 전하는 자가 없으니 들을 수가 없으니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롬10:13-15) 전하지 아니하니 복음 들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안주하려는 소극적인 신앙자세는 핍박과 순교가 더해질 것이니 사명 기억하고 복음 전파하여 온 성에 큰 기쁨이 넘쳐나게 하는 성도되시기 원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합니다. (5-7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복음을 전파할 때에 말씀에 권위가 있어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으니 각종병자가 고침 받고 더러운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만 아니라 육적인 표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믿는 자가 많아져 큰 기쁨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행하시던 일 사도들이 하였고 스데반 집사도(6:8) 행하였고 빌립 집사도 그렇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십니다.(히13:8) 그렇다면 그때 역사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나와 여러분 통해 이 역사 이루실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영, 육간의 병든 자 고침 받는 표적이 있듯이 내 자신의 삶에 변화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난폭한 자 온순하게, 병든 자 건강한 자로, 부정적인 자 긍정적인 자로, 가난한 자 부자 된 나의 삶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나타내어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 고침 받는다 하셨습니다.(약5:15)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 나타내어 온 성에 큰 기쁨이 있게 하는 성도되시기 원합니다.
3.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8절)
예수를 죽이고 그를 따르는 자를 흩어놓으면 기독교 멸망될 줄 알았으나 성령 충만 받았으니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사마리아에 복음 전한 빌립은 사도가 아닌 집사로 그는 성령과 지혜와 믿음이 충만했던(6:3,5)자로 인정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역사로 기사와 표적도 많이 일어나고 복음 듣고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힘이나 능으로 아니 되는 것 성령으로 된다고(슥4:6,7) 하셨습니다. 성도여! 오늘이 2006년도 성령강림절이기도 합니다.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전혀 기도할 때(1:14), 모였을 때(2:1), 사모할 때(2:4), 회개할 때(2:38), 말씀 듣고 찬송할 때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롬14:17) 하셨으니 성령 충만한 사람이 복음도 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도합니다. 성령 충만 받고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세상 사람이 누릴 수도 없는 큰 기쁨의 성도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교회에 핍박과 순교는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도의 시작이(행1:8) 되는 계기가 되어 흩어진 곳곳에 복음을 전파함으로 가는 곳마다 역사 이루었고 온 성에 큰 기쁨이 있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이 땅에 기쁨이 있기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안일한 생각으로 자신만 생각하면 환란을 통해서도 흩어지게 합니다. 사명감 갖고 복음 전파하시고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성령 충만할 때 이룰 수 있습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혼심 다해 기도하여 성령 충만 받아 가는 곳마다 큰 기쁨이 넘치게 하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브레이크 샷을 날리시는 하나님
행 8장 1~8절 / 조상호목사
발표된 ‘Dynamics and Motivation for Migration’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5년 3월부터 2007년 3월까지 2년 동안 전국에서 829,500명이 최소 한 차례 이상 주거지를 옮겼다고 합니다. 이것은 뉴질랜드 전체 인구의 25.8%에 해당되는데, 4명 중 한 명이 2년 동안 이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사에 의하면 캔터베리 지역에서는 전국 평균보다 높은 29.5%의 주민이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크라이스트처치를 포함한 캔터베리 주민들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보다 이사를 더 자주 다닌다는 의미입니다. 거의 캔터베리지역 주민 3명 중 1명꼴로 이사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이사하는 이유에 대한 조사 결과도 함께 발표되었는데, 이사한 사람들 중 1/3 가량이 집을 새로 짓거나 구입하거나 팔거나 등의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1987년 호주 시드니에 도착한 후, 24개월 동안 9번이나 이사한 적이 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3일 동안 어느 집사님 댁에 머물다가, 이어서 전도사님 댁에서 20일 동안 살았습니다. 나중에는 전도사님 댁에서 나와 135불짜리 방 두 칸짜리 플랫을 렌트했습니다. 처가집에서 방 5개짜리 큰집을 구입했다고 함께 살자고 해서 처가집 신세를 지다가, 나중에는 구역식구와 함께 살았습니다. 첫 아이가 태어나서 더 이상 다른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해 145불짜리 플랫을 렌트해서 사는 등, 이사를 많이 했습니다.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이사를 온 후에도 오클랜드를 거쳐 더니든과 이곳 크라이스트처치에 이르기까지 지난 22년 동안 정말 이사를 많이 했습니다. 물론 그 때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도 이사를 자주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한 가정이 이사를 하셨는데, 이사할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다 있습니다. 집을 구입하거나 파는 등의 경제적인 이유와, 자녀학교 등의 교육적인 이유와, 따뜻한 집이나 넓은 공간 등의 주거환경 등의 이유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합니다. 또한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이사 온 것은 자녀교육, 영어연수, 비즈니스, 직장취업, 혹은 새로운 곳에서의 도전, 등의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사를 합니다. 지나간 한국역사를 보면, 돈 벌기 위해 조선말에는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 노동자로 가기도 하고, 60년대에는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갔습니다. 70년대에는 돈 벌기 위해 중동에 건설노동자와 베트남전에 용병으로 갔습니다. 돈 때문에 해외로 이사를 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이사를 하거나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런데 지나간 기독교 역사를 보면 크리스챤들이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핍박 때문이었습니다. 돈이나 자녀교육이나 주거환경 때문이 아니라 핍박 때문에 삶의 터전을 옮겨 다녔습니다. 다같이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임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목 베임을 당했고,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순교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은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그 이유를 아십니까? 왜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받았을까요? 물론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핍박을 받은 진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원래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하셨던 교회입니다. 예루살렘의 마가다락방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거기에 모여 있던 120명 모두가 성령 충만을 경험했습니다. 그 이후 그들은 변했습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겁쟁이였던 그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자 하루에 3,000명, 5,000명씩 예수 믿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 이름 권세로 일으켰고, 그 외에도 각종 질병을 낫게 하고, 귀신들려 괴롭힘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는 등, 많은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있었습니다. 복음전파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두 단어가 중요합니다. 첫 번째는 ‘권능을 받고’라는 단어이고, 두 번째는 ‘땅 끝까지 이르러‘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한가지 밖에 지키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각종 병을 고치고 귀신에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등,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은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교회 안에 분쟁이 생겼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한 번도 유대 땅을 떠나지 않았던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이방에서 살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헬라파 유대인들 사이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외국에서 돌아온 헬라파 과부들은 돌보지 않고 히브리파 과부들만 챙기다보니, 헬라파 유대인들이 불평하는 등, 교회가 시끄러웠습니다. 나중에 일곱 집사를 세움으로서 분쟁이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밖으로 나가 복음을 증거하는 대신 예루살렘 교회 안에만 집중하다보니 어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의 사명을 망각한 것입니다.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본질을 망각한 예루살렘 교회에게 한 가지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핍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교회가 교회의 본질인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교회를 흔드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이 핍박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어떤 마을에 큰불이 났습니다. 그 불길은 강풍 때문에 무섭게 번져나갔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불을 끌 수가 없다고 판단한 마을 주민들은 어쩔 줄을 몰라 당황했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수도사를 찾아갑시다!”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수도사가 마을 밖 움막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수도사에게 제발 불길을 잡아 주는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수도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안달이 난 마을 사람들은 그가 하는 일을 중지시키며 통사정을 했습니다. "제발, 불 좀 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주세요." 수도사는 할 수 없다는 듯 일어나 움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평소에 묶어 두었던 삽과 괭이를 손에 들고 나와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영문도 모르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지금쯤 마을이 몽땅 타 없어졌을 거요.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숯을 긁어모으도록 하시오. 집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을 것이요." 사람들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 지금 우리를 놀리는 것입니까?" 그러자 수도사는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극이란 거꾸로 뒤집힌 하나님의 축복이지요. 이미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인근의 수많은 마을들이 숯을 필요로 할 것이오. 그러니까 그들에게 숯을 팔아서 돈을 벌어들이시오. 그 돈으로 크고 멋진 집을 짓고도 남을 거요."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은 삽과 괭이를 들고 투덜거리며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그 수도사가 말한 것처럼 마을을 다 타버리고 검은 숯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숯을 모은 후 그것을 인근 마을로 가져가 팔았습니다. 나중에 마을 사람들은 숯을 판 돈으로 더 크고 멋진 집을 지었습니다.
이처럼 고난이 오히려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절대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아담스는 “그대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의 유익으로 계산하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시련이든지 그 시련이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을 고난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 너머에 더 큰 축복을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난과 역경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이 핍박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잃어버린 선교적 사명을 다시 찾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러자 1절 하반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비로소 그들은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핍박 때문에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 살 수가 없어서 박해를 피해 제각기 유대와 사마리아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서양당구에서 처음으로 치는 것을 ‘브레이크 샷(Break Shot)’이라고 합니다. 이 ‘브레이크 샷’을 하면 당구대 한 가운데에 모아놓았던 여러 개의 공들이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이 당구공들처럼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흩어진 그들이 무엇을 했느냐 입니다. 다같이 4절을 보겠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사방으로 흩어진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시중에 이런 말이 돌고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을 가는 곳마다 중국집, 즉 차이니스 레스토랑을 연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회사를 세우고, 유대인들은 회당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무엇을 할까요? 고스톱을 친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간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핍박을 피해 흩어진 예루살렘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도 예루살렘 성도들처럼 복음증거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은 핍박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흩어진 사람들 중 빌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가 아니라 집사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히브리파 성도들과 헬라파 성도들이 서로 갈등한 끝에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 일곱 집사를 세웠는데, 그 중에 한 사람입니다.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에 갔습니다. 이 사마리아 지역은 유대 지역과 달리,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결혼하여 낳은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사마리아에 가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사람들이 꺼려하는 그곳까지 갔습니다. 다같이 5절을 보겠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빌립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이나 세상의 어떠한 이론을 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사마리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자,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다같이 6절과 7절을 보겠습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할렐루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빌립이 복음을 전하자, 많은 사람들에게 붙어있던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많은 중풍병자들과 앉은뱅이들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miraculous signs, 즉 많은 표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고기를 잡아 근근이 살아가는 한 가난한 어부가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 터벅터벅 걸어가며 ‘나도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부자가 되면 큰 집을 사리라. 종도 많이 두고 좋은 음식도 마음껏 먹으리라.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발이 돌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려다보니까 가죽으로 만들어진 돌 주머니였습니다. 돌에 부딪히는 바람에 다리가 아파서 쉬었다 가려고 강가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하나씩 꺼내어 강물에 던지면서 ‘나도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부자가 되면 큰 집을 사리라. 종도 많이 두고 좋은 음식도 마음껏 먹으리라.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강물에 던지다가 언뜻 달빛에 그 돌들이 번쩍번쩍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아차 싶어서 주머니를 열어보니 마지막 한 개가 남았는데, 돌이 아니라 금 덩어리였습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이 가난한 어부 같은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는데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미 능력 있는 복음을 받아들였음에도 그 복음의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본문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자, 복음과 함께 능력이 임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이 전하는 복음만 들은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하는 miraculous signs, 즉 표적들도 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Divine Power of mission‘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모든 병과 약한 것들이 고침을 받고,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또한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가 선진국이 되었고, 해적의 나라였던 영국이 신사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에서는 피의 혁명이 일어나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면서 민주화를 일구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후 착취에 가까운 부녀자와 아동의 가혹한 노동 같은 부조리가 만연했음에도 불구하고 피 흘림 없이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요한 웨슬레가 전파한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전했던 예수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컸던지, 그가 지나간 동네에는 200년이 넘었어도 술집이 다시 생겨나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에는 모든 믿는 자를 구원케 하는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복음에는 사탄의 권세를 파하는 능력이 있고, 세상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복음은 단순한 말이나 세상의 학문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복음은 실제입니다. 복음은 파워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빌립은 사도가 이니라, 여러분들과 같은 평신도였습니다. 특별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성령으로 충만 받은 후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수많은 표적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빌립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여러분들이 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이 전하는 복음과 함께 그가 행하는 표적들도 보았습니다.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들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복음은 능력과 함께 기쁨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기쁨이 넘칩니다. 다같이 8절을 보겠습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무슨 기쁨이든지 세상이 주는 것은 잠깐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깐 있다가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원합니다. 주님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평강과 기쁨이 넘칩니다. 제가 바로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여러분, 제 과거의 별명이 뭐라고 했습니까? ‘인상파’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 실수로 떡 방앗간 기계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왼손 중지와 약지를 잃어버린 후 저의 얼굴에서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어른들 앞에서 춤도 추고 재롱도 부리던 제가 갑자기 인상파가 된 것입니다. TV를 통해 코메디를 보아도 즐겁지가 않았고, 만화책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어도 전혀 웃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항상 인상을 찡그리며 살다보니, 부모님이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7년 동안 살다가 18살 때 복음을 듣고 변화되었습니다. 건강도 회복되고 지혜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기는 등 변화가 많았지만, 그 중에 가장 첫 번째 변화는 사라졌던 기쁨이 회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대학원을 다닐 때는 동료들과 교수님들로부터 별명을 하나 받았는데, 그 별명이 바로 ‘제비족’ 조제비‘라는 별명입니다. 제가 항상 즐겁게 살고 제 얼굴에서 기쁨이 떠나지 않는다고 그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능력과 함께 기쁨을 동반하는 줄로 믿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눌린 자가 자유케 되며, 낙심한 자가 기쁨을 회복하는 역사가 나타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Good News,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나만 구원받고 우리 가족만 복을 받으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크리스챤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신자에게 무관심한 크리스챤들과 교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증인이 되지 못하고 예루살렘 성안에만 머물러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은 크리스챤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땅 끝까지’의 사명을 잃어버린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를 한 번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우리가 예루살렘 성안에만 머물러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보다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까? 혹시 우리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처럼, ‘땅 끝까지’의 사명을 잃어버린 교회는 아닙니까? 만약 우리가, 우리교회가 ‘땅 끝까지’의 사명을 잃어버렸다면, 멀지않은 때에 하나님께서 '브레이크 샷'을 날리실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인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들을 '브레이크 샷'을 날리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더 나아가 우리 교회에게 '브레이크 샷'을 날리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헌신을 기억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과 건강과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한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가정에 남편은 믿음이 좋은데 반해, 부인은 믿음도 없고 매우 인색해서 어지간해서 돈을 풀지 않았습니다. 부인은 남편 체면 때문에 억지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일마다 단골로 지각을 하였습니다. 그날도 예배가 시작된 후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뒤늦게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뒷자리는 다 차고 맨 앞자리에 자리 하나가 남아 있었습니다. 마침 장로님의 대표기도 시간이었기 때문에 조용히 비어있는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런 자세로 예배를 드리다보니 목사님 설교시간에 엉뚱한 생각만 했습니다. ‘오늘 저녁이 곗날인데 시간 전에 갖다 내야지 못 내면 벌금 내는데…, 나는 언제 탈 차례인가? 내 차례가 다가오는데 돈 조금 들이고 맛있게 대접할 것 뭐 없나?’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느 덧 설교가 끝나고 헌금시간이 되어 헌금위원이 맨 먼저 자기 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 부인이 헌금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준비했으면 1,000원 짜리 한 장이면 되는데 야단났습니다. 물론 가방 안에는 곗돈 내려고 준비한 돈과 수표가 들어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엉겁결에 책가방에 손을 넣어 잡히는 대로 한 장을 꺼내어 헌금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넣긴 넣었는데, 고민이 생겼습니다. 과연 자기가 얼마를 헌금했는지 고민하다가 예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서 가방 안에 들어있는 돈을 세보니 딱 십 만 원 짜리 수표 한 장이 모자랍니다. 이거 야단났습니다. 원통하고 억울해서 속을 끓이다가 돌아온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 오늘 큰 실수를 했어. 헌금을 미리 준비해 갔으면 1,000원 짜리 한 장만 냈을 텐데,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가 실수로 10만 원 짜리 수표를 내버리고 말았어. 아까워 죽겠어!” 그러자 남편이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보, 염려하지 말아요. 당신은 실수해서 냈지만, 하나님은 실수가 절대로 없으시기 때문에 당신이 낸 것을 꼭 기억하실 거요. 그러니 염려하지 말아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헌신을 다 기억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 앞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인도한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우리의 헌신을 기억하실 줄로 믿습니다. 만약 우리가 ‘땅 끝까지’의 사명을 잘 감당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과 건강과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브레이크 샷'을 받기 전에,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땅 끝까지’의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증거함으로 말미암아 그에 따른 더 큰 은혜와 복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현재의 어려움을 복으로 바꾸라
최종원목사 / 행 8:1-8
정신과 전문의사 [에릭 린드맨] 박사가 위기를 당한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습니다. 병든 사람들,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 또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 등, 위기를 당했던 사람들을 전부 조사한 결과, 위기를 당한 사람들의 85%가 결국 위기가 축복이 되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위기를 당함으로 나쁜 습관을 고치게 되었고, 가정이 바르게 회복되었고, 또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게 되고, 시간과 물질을 절약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기도 하고, 또 발전하고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절대로 원망, 불평하지 말고 오직 그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믿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17C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아담스(Thomas Adams ; ?~1653)는 "그대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의 유익으로 계산하라"고 말했습니다. 고통을 주는 것을 나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쓰라리고 잘못된 추억, 실패하고 망신당한 일들을 마음속에 담고 열심히 분발하면 더 성공하고 크게 될 수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부유하게 된 사람이 있고, 질병 때문에 건강하게 된 사람이 있고, 어려움 때문에 더 성공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고난당하는 내게 유익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우리들에게 유익이 될 수 있고,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고난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고는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은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지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땅을 떠나실 때 우리 교회가 반드시 순종해야 될 귀한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이 사명에 불 순종하였습니다.
교회가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전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지 모이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모이는데 힘썼지만 순종해야 하는 귀한 사명을 잊고 있었습니다. 이 때 교회에 핍박이 오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죽임을 당하는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큰 핍박이 나서 사도들 외에는 흩어지게 되었고, 사울이라는 사람이 교회를 잔멸하려고 하였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핍박이 얼마나 거세였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폭풍처럼 쓸고 지나가는 엄청난 위기였습니다. 사울은 아예 교회를 뿌리 채 싹 쓸어 버리겠다는 필사의 각오로 믿는 사람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수색하여 잡아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성도들이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4)
물론 핍박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는 것입니다. 핍박이 시작될 때는 사단이 승리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없애 버리려는 사단의 작전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루살렘에만 있던 교회가 온 사방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큰 뜻을 성취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핍박 속에서도 흩어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결과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7-8절에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유명한 장로교의 시조인 프랑스의 칼뱅(Jean Calvin ; 1509∼1564)은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무조건 따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 1906∼1945)는 "신앙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축복으로 만들기를 원하시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쿼바디스"라고 하는 영화를 보면 로마라고 하는 도시가 맘에 안 들어서, 소위 예술가를 자처하는 네로 황제가 사람을 시켜서 불을 지릅니다. 다 태워버리고 다시 만들려고. 아, 불을 지른 다음에 원망이 많으니까 이것을 기독교인에게 씌워버립니다. 기독교인들이 항상 불로 심판한다고 하다가 불을 질렀다고 했습니다.
불은 네로 황제가 지르고 죽기는 기독교인이 죽습니다. 수만 명을 잡아다가 원형극장에서 죽입니다. 이렇게 억울하고 무모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던 베드로가 같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도망을 합니다. 로마에서만 빠져나가면 되니까. 로마성 밖으로 나갈 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막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쪽으로 향하여 가십니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바로 그 말입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그때에 예수님 말씀이 "네가 버리고 나온 로마를 향해서 내가 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 한다" 베드로가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다시 발걸음을 돌이켜서 로마로 갑니다. 가서 그는 십자가에 죽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내가 감히 어떻게 같은 모양으로 죽겠느냐? 거꾸로 매달아라."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서 베드로가 순교를 합니다.
여러분, 피해가다가 잡히는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한탄하며, 저주하며, 죽는 것도 순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선택적입니다. 온전히 선택적입니다. 죄가 있어서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일부러 당하는 것입니다.
2. 영적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고난과 어려운 환경을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서도 영적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환경을 축복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영적으로 바로 서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기회를 고난 가운데서도 붙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이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는 것을 시몬이라고 하는 마술사가 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자칭 큰 자라 생각하였던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을 만나 예수도 믿고 세례도 받고 교회 회원이 되어서 빌립과 함께 다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돈으로 그것을 사려고 하다가 베드로에게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우리의 신앙이 바로 서지 않으면 축복의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시몬은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을 놓쳤습니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 1620~1686)은 "재물을 잃으면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술사 시몬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권능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신앙입니다.
어떤 기록에 보면 시몬이 "눈물이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면 틀림없이 은혜를 많이 받은 크리스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결과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올바르게 서지 못하면 잘못된 동기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시몬의 잘못된 동기를 보면서 우리는 영적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영적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믿음의 근거가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몬은 말씀에 있지 않고 그가 본 빌립의 기적에 있었습니다.
8장 13절에 보면 "시몬도 믿고"란 표현은 그의 믿음의 동기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고자 함이 아니라 기적을 보고 그것을 행하는 방법을 알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동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빌립은 자기의 추종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믿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이 나타나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고 자기 말을 들었는데 빌립의 전도를 받고 모두 그를 따르니 시몬도 자기의 추종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돈으로 성령의 능력을 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그러므로 이 악함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시몬은 돈이면 자신이 필요한 것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사단의 생각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심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우상을 섬기는 환경에서 포로로 생활하였지만 영적으로 바로 서 있었을 때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팔려 노예 생활을 하였을 그 환경에서도 영적으로 바로 서서 하나님을 경외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바로 서서 올바른 동기로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서 고난과 어려운 환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불행한 예술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열 살도 되기 전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배고픈 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힘겨워서 동생들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장성한 뒤에도 불행은 계속됩니다. 결혼한지 13년만에 아내와 사별하고 재혼을 했습니다. 그는 무려 스물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 중의 열명이 열 살 전에 죽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생을 살았습니까? 그 남은 가운데도 하나는 정신박약아입니다. 이 예술가는 노후에도 비참했습니다. 인생 말년에 시력을 잃었으며 뇌출혈로 인하여 반신불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생을 통해서 역경을 뚫고 끊임없이 불후의 명작을 썼습니다. 명곡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마다 그 첫머리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라고 쓰고 작품마다 마무리에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썼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요한 세바스찬 바하입니다. 바하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하의 곡을 듣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 영광이 넘치는 바하를 알지만은 바하가 한평생 이렇게 모진 고생을 했다는 것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모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동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고난의 의미를 압니다. 고난의 결과도 압니다. 고난의 필요도 압니다.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압니다. 고난 속에서 새롭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높은 곳으로 점점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3.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으나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할 때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 당시 사마리아는 유대인들과 상종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나름대로 예배하였습니다.
빌립이 전도할 때 성령까지 받았다면 예루살렘교회와 사마리아교회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대표가 와서 안수함으로 그들이 받은 성령과 사마리아에서 받은 성령이 같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셨습니다. 성령이 임함으로 오랫동안 원수지간으로 여겼던 사마리아와 유대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가치관이 깨어지고, 그들의 생각이 깨어지고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하나가 되었을 때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고,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던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수록 더욱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고난을 이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고난을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 되기 위해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성령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 초점 맞추고 열심히 섬김으로서 하나될 때 우리에게 어려운 환경이라 할지라도 축복으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목사와 성도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온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어려운 고난과 힘든 일이 온다고 해도 그 고난을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남북 전쟁 때 그 미국이 남북 전쟁을 하고 있을 때 포토맥강이라고 하는 강을 사이에 두고 북군과 남군이 대치했습니다. 이제 내일 아침에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될 그런 그 날 밤입니다. 달빛이 흐르고 조용한 시간에 군사들은 불안에 떨면서 지금 하룻밤을 지내게 됩니다. 그 누군가가 생각합니다. 군가를 부르기로 하면 양군이 전부 군가가 다릅니다. 애국가를 불러도 둘 다 다릅니다. 그런데 어느 군인이 누구나 다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 Home, Sweet Home,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여러분 잘 아는 그 노래를 어느 군인이 조용하게 불렀습니다. 옆에서 따라 불렀습니다. 강 건너편에 소리가 들려졌습니다. 그 분도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로 가득 찼습니다. 저들은 눈물을 흘리며 계속 불렀습니다. 다음날 전쟁은 없었습니다. 근본으로 돌아가보니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나를 오라고 하는데 나는 왜 여기서 이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하나가 되니 전쟁이라는 이념적인 문제 가운데서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97세때 그 분이 뵈었는데요 "곽목사 잘 들어 두라우"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내가 영어를 많이 하고 영어를 좋아해서 영어성경을 한국 말 성경보다 많이 봤거든."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싹 없어지는데 영어단어가 하나도 생각나지가 아니 하더랍니다. 영어성경을 읽을 수가 없데요. 그리고 다 잊어 먹었던 어머니와의 대화, 이런 것이 생각난다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갈 때가 가까운 가봐"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승만 박사께서 파란 눈의 마누라하고 평생을 살지 않았습니까? 하와이에 계실 때 마지막에 영어를 다 잊어 버려서 통역을 했답니다.
여러분,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자신의 경험, 지식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느 시간을 좀 멀리 내다보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요. 그 종말을 바라보며 오늘 현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바로 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어 어떤 환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바꿀 수 있는 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크리스천 디아스포라
행 8장 1~8절 / 김인환목사
여러분의 기도로 의료봉사를 잘 다녀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리스천 디아스포라’ 라고 하는 한 집단이 탄생하는 내용입니다. ‘디아스포라’ 라고 하면 그것은 유태인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흩어진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 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삼천년 동안 방황하며 세계 곳곳에 흩어져서 살았습니다. 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 디아스포라도 있습니다. 크리스천으로 세계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입니다.
1-3 /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에 뜻하지 않게 박해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기고 성령이 제일 충만한, 제자 가운데 으뜸 되는, 얼굴이 천사와 같았던, 예수님처럼 자기를 죽이는 자도 용서했던 스데반이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 마음이 아픈 사건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어려운 점은 신앙생활을 잘하는 가정에 고난이 오고 환난이 올 때입니다. ‘저 가정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데 왜 저런 시련이 오는가? 왜 저런 환난과 고난이 저 가정에 오는가?’ 그럴 때 회의도 가고 마음이 아픕니다. 차라리 신앙생활을 신통치 않게 하는 가정에서 고난이 오면 그래도 낫습니다. “저거 봐! 신앙생활을 신통치 않게 하니까 혼나잖아” 라고 말을 할 여지라도 생기는데, 신앙생활 잘하는 가정에서 환난이 올 때 목회자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지금 바로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기는 스데반이 환난을 당한 것입니다.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스데반의 순교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개입된 것이 나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답니다. 스데반이 죽는 것에 대해서 마땅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울이라는 청년이 바뀝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사울이 변화됩니다. 바울이 되고 사도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죽었지만 스데반이 할 일을 바울이 다 하게 됩니다. 그 이상을 한 것입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하였지만 그 순교로 한 청년이 변화되어 그 자리를 채우는구나! 스데반 이상으로 큰 일을 하는구나! 세상의 고난은 우리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영역이구나. 거기도 하나님의 뜻이 있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본문에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잘 하면서도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환난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속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 줄로 믿습니다.
4-6절 /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들이 크리스천 디아스포라입니다. ‘복음’이라는 말은 영어로는 ‘Good news’ 입니다. 복음을 전했다. 퍼트렸다는 것입니다. ‘소문냈다. 알려줬다. 광고했다. 가르쳤다. 선포했다’ 는 뜻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소식이고 좋은 소식이니까 가만히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알려줘야 합니다. 남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교고 전도입니다. 여러분도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코미디언 곽규석 씨를 아실 것입니다. 이분이 미국에 간지 20년이 넘으니까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이가 드신 분들은 대부분 압니다. 그가 코미디언으로 인기를 얻을 때는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돈이 많으니까 그냥 가지고 있기가 싫어서 투자를 한다고 광고사업에 손을 댔답니다. 그런데 연예인이 사업을 잘 하겠습니까? 투자를 했다가 완전히 망했습니다. 빚까지 많이 지게 되었습니다. 빚쟁이들이 쫓아오니까 일본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일본 호텔에 피신을 해 있는데 누가 편지를 보냈답니다. ‘아니 내가 여기 와 있는 것을 어떻게 알고…’ 편지를 읽어봤더니 예수 믿는 크리스천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당신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지금 긴장하고 있지요? 예수를 영접하세요” 라고 씌어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읽으니 우선 자신이 피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쁘고 굉장히 화가 나더랍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또 편지가 왔습니다. 그 사람이 또 보낸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읽자마자 갈기갈기 찢어서 휴지통에 넣어버렸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까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고 두 번씩이나 편지를 보내준 것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부인에게 화를 내고 쏘아붙이고 나면 내가 너무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숨을 내쉬면 다시 받아들여서 숨을 쉬듯 말입니다. 휴지통에 편지를 넣고 나니까 내가 너무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교회 나가라는 얘기여서 ‘교회 나가볼까’ 하고 일본에 있는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고난의 때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오더랍니다.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한국에 와서 하용조 목사라는 분을 만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연예인교회를 함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도 되고 장로도 되고 미국에 있는 신학교에서 공부를 해서 목사까지 된 것입니다. 저와 같이 방송 사역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분이 예수 믿게 된 것은 이름도 모르고 어떤 분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두 번 받은 것 때문입니다.
복음은 전하는 것입니다. 여기 보니까 누가 어디서 전했다고 했습니까?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전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유대인은 사마리아 하면 “그 쌍놈들, 잡종, 이방 여자와 결혼해서 아기 낳은 사람들” 이라고 했습니다. 선민사상이 유독 강하고 독선적인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도 안했습니다. 그들이 더럽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사마리아 땅도 더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에 절대 가지 않았습니다. 유대인 가운데 사마리아 땅을 밟은 사람은 바로 예수님 뿐 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에 가서 사마리아 여인을 전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에 예수님의 유언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도 온 유대까지는 가는데 그 더러운 땅 사마리아에는 안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유언은 사마리아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안가고 예루살렘에서만 모여 있으니까 하나님이 핍박이라는 채찍을 가하신 것입니다. 이 일로 스데반이 순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이 살기 위해 도망간 것입니다. 유대 땅은 사막이기 때문에 큰 나무도 없고 숨을 데가 없습니다. 다 들켜 잡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디로 도망갑니까? 사마리아 땅으로 가면 됩니다. 거기는 더러운 땅이라고 안 옵니다. 그래서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 디아스포라’의 시작입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가 만주 땅에서 의료 봉사를 했습니다. 왜 우리 민족이 만주 땅까지 갔습니까? 이곳은 ‘북간도’ 라고도 하고 ‘사이도’ 라고도 합니다. 옛날 대조영이 발해를 세웠던 곳입니다. 고난이 왔기 때문에 이곳까지 간 것입니다. 잘 살던 팔도강산 이 좋은 땅에 일본이 쳐들어와서 다 빼앗고, 한일합방을 시켜버리고, 예수 믿는 거 못 믿게 하고, 곡식을 빼앗아 가서 살기 좋은 우리나라를 떠나게 된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제가 미국에서도 살아봤지만 한국은 과일도 맛있고 쌀도 맛있고, 제일 살기 좋은 곳이 한국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와서 고난을 주니까 어쩔 수 없이 간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 동포가 200백만 인데 지금은 줄어서 180만 정도가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당도 지어주고 의료봉사도 간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동포들은 250만이고 그에 이어 중국이 2위입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56개 족이 모여서 사는 데 한족을 제외한 55개의 소수민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수민족 가운데 제일 부지런하고 머리 좋은 민족이 조선족입니다. 중국에서는 조선족을 다 인정합니다. 조선족은 대부분 예수를 믿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조선족이 다 크리스천인 줄 안답니다. 간접적으로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로 흩어진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수요일에는 연길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교회보다 몇 배나 더 큰 빨간 벽돌 교회였습니다. 수요일이었는데도 그 큰 교회의 1층이 거의 다 찼습니다. 그것을 보고 우리 교회 권사님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수가 같았습니다. ‘남자들은 주일날 한 번 나오고 수요일, 금요심야기도에는 안 오는데 여기는 다 나오네’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 선교하고 나서는 미국에서 한국교회를 본받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이 중국에 선교하고서는 “한국이 중국처럼 예배 잘 드려야하는데, 중국처럼 예수 믿어야 하는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족만이 아닙니다. 한족도 그렇게 많이 모입니다. 우리는 대충대충 모이지만 중국은 열심히 잘 모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많은 것을 보고 왔습니다.
북간도에서 역사적인 곳 가운데 ‘명동’ 이라는 곳입니다. 두만강 건너면 그곳인데 거기를 방문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서 처음으로 개척한 곳이 바로 명동촌 입니다. 명동의 지도자가 여러분이 잘 아는 김약연 목사라는 분입니다. 이분이 처음으로 북간도에 교회를 세웠는데 그것이 명동교회입니다. 그리고 소학교를 세웠고 그것이 명동학교입니다. 낮에는 개간을 해서 농사를 짓고, 저녁에는 모여서 공부를 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명동교회와 명동소학교입니다. 그 김약연 목사님은 항일 시인 윤동주의 외삼촌입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유명한 시인이었지요. 일본 교토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죽었는데, 생체실험을 당했다고 합니다. 원인도 모르는 주사를 많이 맞다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앞두고 1945년 2월에 새벽 3시에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죽었습니다. 아마 심장마비가 온 것 같습니다. 그때 나이가 29세였습니다. 만으로 말하면 27년 2개월. 해방을 6개월 앞에 두고 그렇게 젊은 나이에 윤동주가 갔습니다. 가보니까 그 초등학교 옆에 윤동주의 생가가 있습니다. 그 초등학교의 동창들이 우리가 아는 영화배우 나운규, 젊을 때 프린스턴에서 공부했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문익환 목사입니다. 문익환 목사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가 윤동주의 장례를 주례했습니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 당시 1월에 현대의 정주영 씨가 북한을 가서 김일성을 만나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 문익환 목사가 자기도 김일성을 만나야겠다고 해서 북한을 갔습니다. 나이가 70이 되었는데 정부가 허락도 안했는데 몰래 가서 만나고 왔습니다. 와서는 체포되어서 7년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많이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북한정부는 체제유지를 위해서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건으로 인하여 북한 동포들이 기독교와 목사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갖게 도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이 탈북을 하면 우선 찾는 것이 교회를 찾고, 목회자를 찾아갑니다. 먹여주고 재워주기 때문입니다. 보호해주고 신변안전을 지켜주고 한국으로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7-8절을 읽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빌립이 복음을 전했더니 더러운 귀신이 나갔답니다. 영어로 ‘unclean spirit’ 입니다. 귀신은 더러운 것입니다. 더럽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옵니다. 귀신이 들어오면 더럽게 사는 것입니다. 더러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귀신 들린 게 다른 것이 아니라 더럽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답니다. 중풍병자와 앉은뱅이 두 종류를 이야기 했습니다. 이번에 중국을 가봤더니 거기는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아니라 농아가 많았습니다. 벙어리는 귀가 먹으면 벙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 벙어리가 3천만이랍니다. 그들이 주로 추운 만주 지역에 있답니다. 왜 벙어리가 되냐고 물었더니 선천적이고 유전적인 벙어리는 많지 않고 대부분 후천적으로 벙어리가 된답니다. 추운지역이라 아이들이 3-5세 때 감기를 앓으며 고열이 오르면 그 때 귀가 먹는 답니다. 그래서 결국은 벙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대책이 없습니다. 그들의 생계수단이 뭐냐고 했더니 대부분 소매치기랍니다. 그래서 그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것이 조선족 교회들입니다. 조선족 교회마다 농아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중풍병자도 많습니다. 왜 중풍병자가 많은지 그 이유를 이번에 가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집에 모여서 의사들이 진료를 하고 간호사가 혈압을 잽니다. 혈압을 재는데 혈압기가 고장 난 줄 알았습니다. 혈압이 너무 높게 나와서 혈압계를 여행 짐에 넣어 가져오느라 고장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의사분의 혈압계로 다시 재어도 너무 높게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혈압계로 다시 쟀는데도 높았습니다. 알고 보니 혈압계가 고장난 것이 아니라 혈압이 너무 높은 것이었습니다. 160/100, 180/120, 200/130, 그런 식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 온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젊은데 벌써 풍이 있어 중풍병자가 되었습니다. 왜 그러냐 했더니 추운 지역이라 절인 음식, 짜고 간이 된 간고등어 같은 것을 많이 먹어서 일반적으로 혈압이 다 높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약을 먹는다는 데도 180/120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조금 있으면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의사들이 당장 혈압약을 먹어야 한다, 혈압약을 먹는데도 높은 사람은 이런 약으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혈압이 너무 높아서 생명이 위급한 사람을 최소한 몇 십 명은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셔서 그분들이 산 것입니다. 거기서 진료를 다하고 또 다른 집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갔더니 거기는 또 왜 그리 못사는지, 옛날 30-40년 전 구로동 판자촌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이게 우리 동포들이 사는 모습이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셨구나.’ 그걸 보니까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주머니는 비록 그런 곳에서 살아도 인상이 훤하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 분이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자기 아들이 한국에서 취직을 했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 보내주어서 집도 사고 건물도 샀답니다. 자기 자식이 한국에 와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랬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한국이 잘 살아야 하는 구나. 그래야 그들에게 힘이 되는 구나.’ 세계에 흩어진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나라가 잘 살아야 그들에게 의지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 와서 돈을 벌어 부치니까 집도 사고, 건물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축복도 받고, 선교도 하고, 우리가 세계에 흩어져서 크리스천 디아스포라로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세계 175국가에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70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세계에 흩어져 사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모두가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 사절이요, 크리스천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선교사들입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행 8장 1~8절 / 박용래목사
요즈음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질병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우울증은 마음 속에 기쁨을 다 빼앗겨버린 상태에서 살고 싶은 의욕도 없고 용기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상태에 빠질 때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고 말하는 것도 귀찮고 움직일 힘마저 빼앗겨버린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가장 좋은 약은 바로 기쁨이라는 약입니다. 잠언 17장 22절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봉독한 성경말씀에 보면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나타났습니다.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 기쁨은 물질의 풍요로움에서 찾아온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좋은 환경에서 만들어진 기쁨도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피난 나온 피난민 가운데 빌립을 통하여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채워졌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큰 기쁨이 사마리아 성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1) 복음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빌립이 금은보화를 가져다 준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사마리아로 들어갔습니다. 빌립이 전한 복음을 통하여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나타났습니다. 본래 복음은 복된 소식이요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가 복음의 핵심입니다. 빌립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함으로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으로 채워졌습니다. 사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기쁨이 없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온 죄는 바로 죽음을 몰고 왔습니다. 죽음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버린 상태입니다.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머물러 살고 있었습니다. 죄의 심판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죄의 노예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바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심판에서 해방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로 우리들의 죄를 속죄하여 주셨다는 복음이 사마리아 성에 전해졌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게 된다는 진리를 사마리아 성에 선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빌립의 전도를 받아들였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죄사함을 받음으로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빌립이 전한 복음으로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나타났습니다. 죄에서 심판에서 자유와 해방을 받은 기쁨,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감격과 기쁨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채워졌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영적인 죽음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된 생명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이 복음으로 큰 기쁨으로 채워졌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지는 평안과 기쁨은 잠시뿐입니다. 그러나 인류에게 참된 기쁨과 영원한 기쁨은 바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기쁨을 가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기쁨이 나타났습니다. 본래 사마리아 성은 유대인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축복받은 가나안 땅이지만 사마리아는 특수한 지역으로 이방지역처럼 취급받았습니다. 똑같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었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처럼 취급다고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솔로몬 왕 이후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생활로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끌려가지 아니하고 남았습니다. 남은 자들도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켰는데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타협을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민족이 되었습니다.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에 귀환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같은 동족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천대하고 멸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동족이지만 이방인 취급을 했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백성처럼 취급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더 큰 갈등은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해서 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 성 사람들의 헌금을 받지 아니한 것입니다. 같은 동족이지만 이방인 취급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갈등이 컸습니다. 그런데 복음 안에서 이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유대인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복음을 전함으로 복음 안에서 이런 갈등과 막힌 담이 무너졌습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원수 맺힌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복음으로 하나님의 한 자녀가 되었고 한 형제가 되었습니다. 복음은 국경이 없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복음을 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기쁨, 멸시와 천대와 조롱받던 모든 장벽과 노예에서 해방 받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가졌던 큰 기쁨을 오늘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가정에도 넘쳐나야 합니다. 세상에 부귀영화에서 오는 기쁨보다도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행복한 그리스도인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6절에는 표적이 나타났다고 말씀합니다. 7절에는 귀신들이 떠나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마리아 성에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각종 귀신들이 떠나가고 병자들이 고침 받은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구약성경에 예언한 대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 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심이라”(욜2:13)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라”(욜2:28-29)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욜2:32)
사마리아 성에도 구약에서 예언했던 말씀처럼 성령의 역사가 크게 나탔습니다. 귀신들의 노예로 살던 사람들에게서 귀신들이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각종 병든 자들이 치료받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사마리아 성에는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큰 기쁨이 나타났습니다. 오늘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가장 큰 기쁨으로 충만함 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복음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사마리아 성에서 이루어져가고 있기에 그 성에 큰 기쁨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스데반이 순교당한 뒤 핍박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인들이 각처로 흩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은혜와 성령 충만을 받고 칭찬 받고 놀라운 부흥을 가져오는데 왜 핍박을 받아야 합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안주하고 안일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핍박을 통하여 세계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구원받기 위해 신앙생활 한다면 구원받았으면 이제 죽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이 사는 목적은 그리스도의 증인되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전도하기 위해 삽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 삽니다. 전도하는 길은 ①내가 하든지. 전도하고 선교사로 가든지 전도하기 위해 사는 목적을 가져보십시오. 기쁨이 있습니다. ②아니면 선교사를 보내든지. 전도하는 일을 위해 돕든지 선교비를 후원하십시오. 전도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③자식을 많이 낳든지. 아이를 낳아서 전도 열매를 맺으면 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복음 전하는 것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명령이요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전도에 둬 보십시오. 기쁨이 있고 축복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허무주의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참된 기쁨과 소망은 복음에서 옵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데서 옵니다. 전도하는 목적 있는 삶을 살면 큰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이 성도들 가운데, 우리의 가정에, 그리고 우리 대전장로교회에 사마리아 성처럼 큰 기쁨으로 채워지기를 축원합니다.
샘솟는 기쁨
행 8장 4~7절 / 양인순목사
스데반의 순교와 더불어 초대교회 안에 대박해가 시작됐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고수했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들고 각처로 흩어졌습니다. 그 흩어진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빌립이 있었습니다. 그는 초대교회 일곱 집사중의 한 사람으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습니다. 누구보다 복음의 열정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는 사마리아로 내려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이방인과 피가 섞인 사마리아 사람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안 사람들 역시 유대인들을 증오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빌립이 유대인으로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로 혹독한 비난과 비판을 초래하는 일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도 배척당하기 십상인 경우입니다. 적어도 당시의 정황으로 봐서 정신병자가 아니고서는 유대인으로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빌립은 세상의 모든 비난과 박해를 각오하고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후에는 소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 땅 에티오피아 내시에게도 복음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결과 빌립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대위임 명령을 온 몸으로 실천한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이방 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흩어진 사람들 가운데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복음을 전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의 반응이 6절에 나옵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빌8:6)
사마리아 인들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짐승같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한마음으로 복음을 믿고 따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8:8)
주의 뜻에 순종하는 빌립에게 하나님은 귀신을 좇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 결과 귀신이 떠나가고 각종 병자들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마술을 부려 그 지역에서 유명해진 마술사 시몬까지도 빌립의 권위 앞에 엎드립니다. 그도 세례를 받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닙니다. 그 결과 어둠의 땅 사마리아에 큰 기쁨이 넘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놀라운 역사의 출발점은 바로 무명의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 하나님 나라의 역사입니다.
빌립이 어둠의 땅, 버려진 땅, 저주받은 땅으로 알려진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자 온 성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기쁨이 있더라’에서 ‘있더라’라 번역된 헬라어 ‘기노마이(ginomai)’는 어떤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역동적인 현상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하면 빌립이 복음을 전하자 그 성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큰 기쁨이 ‘생겼다, 솟아났다’는 뜻입니다. 마른 땅에 샘이 터지듯 복음이 전해지자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활화산처럼 솟구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요 역사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면 슬픔과 탄식의 어둠의 땅에 위로부터 주시는 평화와 기쁨이 용솟음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복음이 전파되면 큰 기쁨이 샘처럼 솟아날까요? 그 이유를 살펴봅니다.
첫째, 복음은 죄를 용서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겪는 모든 생노병사의 고통은 바로 죄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에덴의 축복을 누리도록 창조됐습니다. 에덴은 평화가 있는 곳입니다. 에덴은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곳입니다. 에덴은 모자람이 없는 풍성한 곳입니다. 에덴은 기쁨이 충만한 곳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 결과 죄가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모든 사람을 지배하게 됐습니다. 온 인류를 고통과 신음 속에서 멸망의 길로 달려가게 만들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에 빠진 모든 인간은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깨끗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윤리적으로 살고, 도덕적으로 양심이 깨끗하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죄인일 뿐입니다. 우리 안에 심겨진 죄의 유전자를 뿌리 뽑을 수 없습니다.
지난 주 수서 경찰서 방문 설교하러 갔다가 서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도 방송을 통해 들었을 것입니다. 수서 경찰서 관내인 개포동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입니다. 30살의 숯 가공업체 사장이 거액의 보험을 들어 놓고 36살 된 여직원을 죽였습니다. 자동차에 휘발성이 강한 신나를 실어놓아 운행중 폭발하도록 했지만 미수에 그쳤습니다. 이번에는 여자 직원을 망치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태연하게 다음 날 출근을 하고 모임에도 참석했습니다.
수서 경찰서장이 예수님을 아직 믿지 않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용의자를 잡지 못해서 그 사장과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얼굴에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면 너무나 태연하게 말을 하더라는 거예요. 후에 경찰들이 조사 결과 용의자를 확인해 보니 바로 그 사장이더랍니다. 어쩌면 그렇게 사람을 죽여 놓고도 얼굴에 미소를 짓고 말할 수 있었는지 다음 날 수갑을 찬 살인범을 보고 인간의 양면성에 충격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떠난 인간의 양면성을 악마와 천사의 이중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어나는 모든 살인사건과 폭력과 음란, 자살, 중독 등 모든 사건은 결국 죄에 빠진 인간의 비극입니다. 악한 마귀와 사탄은 인간의 마음속에 어둠의 영을 불어넣습니다. 죄의 굴레를 씌워서 우리를 조종합니다. 문제는 누구도 이 악한 마귀와 사탄의 권세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림으로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짐승으로 드린 제사의 효력은 언제나 일회적입니다. 제물로 바쳐진 짐승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새로운 제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님은 죽음을 깨뜨리시고 영원히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드린 제사의 효력은 영원합니다. 따라서 더 이상 제사를 반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단번에 자신을 십자가에 드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에, 실패한 왕이라는 것을 조롱하기 위해 왕관 대신에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머리가 피투성이가 되어야 했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머리를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의 머리로 지었던 모든 죄를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뛰어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슴이 로마 군병들의 채찍에 맞아 갈갈이 찢어져 피를 흘리심으로, 내가 은밀하게 마음속으로 지었던 모든 은밀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심으로 내 손과 발로 지었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의 창에 옆구리를 찔러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으심으로, 썩어 문드러질 이 몸뚱이로 지은 모든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자신의 온 몸을 온전하게 십자가의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 공의가 실현된 곳이요, 하나님 사랑의 클라이막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으시고,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한다고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결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고백할 때 죄로부터 해방됩니다. 에노스의 실존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더 이상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심으로 주님 앞에 회개했으면 더 이상 죄 짐에 눌려 살지 마십시오. 죄보따리를 던져버리십시오. 더 이상 반복적인 죄의 관성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도 주의 보혈에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눈보다 더 희게 하는 것도 주의 보혈입니다. 구주의 복음을 전하게 하는 능력도 주의 보혈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모든 무거운 짐을 맡겨놓으십시오. 그리고 죄에서 자유하십시오.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확실히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진리 안에서 자유한 삶을 사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기쁨이요 행복인줄 믿습니다. 죄로부터 자유한 자만이 진정한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복음은 모든 질병을 치유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질고를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700여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3-5)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로 표현합니다. 사람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태를 통해서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분입니다. 하늘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시고, 풍랑이는 바다를 잔잔케 하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하늘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자이십니다. 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의 모습으로 오셨을까요? 예수님은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심으로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실 수 있었습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2:18)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으셨기에 우는 자들과 함께 우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당하셨기에 시험 받는 연약한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상담학에서는 <공감>이라고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만 계셨다면 우리가 하나님이란 존재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육신하심으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온 몸으로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육신의 질고로 고통당하는 분들이 있으시죠? 나이가 들수록 약봉지가 많아집니다. 어떤 분은 신경쇠약으로 잠못 이루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분도 있습니다. 심장계통의 질환으로, 호르몬 분비의 이상으로, 관절염이나 디스크로, 각종 질병으로 시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치유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중 1/3은 치유사역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병자들이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각종 질병으로부터 그들을 치유하십니다. 38년동안 걷지 못한 자도 고치십니다. 12년간 혈루증으로 고통당하던 여인도 고치십니다. 심지어 죽었던 나사로도 살리십니다. 이 시간에도 주님의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이 임하시면 여러분의 질병이 떠날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날마다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병에 눌려 살지 마십시오. 많은 질병이 마음의 병입니다. 자꾸 그 병을 의식하고, 그 병에 메여 있으면 점점 영과 육이 병듭니다.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날마다 명령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질병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날지어다.’ ‘모든 병에서 놓여 자유할찌어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지금도 얼마든지 여러분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도바울처럼 육체의 가시를 빼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계속 기도해도 낳지 않는다면 그 약함 속에 임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십시오. 그 약함이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약함 속에 임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더 놀라운 주님의 뜻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맘으로 간구하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치유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모든 질병에서 자유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덮어주셔서, 각종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복음은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러 옵니다. 도둑은 바로 사탄을 말합니다. 사탄은 지금도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러 오셨습니다. 더 풍성한 복을 주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풍성해집니다. 가난한 자가 부요케 됩니다. 미련한 자가 지혜롭게 됩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늘의 축복입니다.
성경은 믿는 자의 축복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곳에서 강조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1:2)
우리의 영혼이 잘되면 범사에 잘되게 하십니다. 우리를 강건케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에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생각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엡3:20)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어서 더 풍성하게 채우시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 복을 받아서 선한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많이 맡겨도 어리석은 부자가 아닌 하나님의 청지기로 산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더 넘치도록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하자 많은 사람들에게 붙었던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고 떠났습니다. 중풍병자와 걷지 못하는 자가 걷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언제 우리에게 기쁨이 찾아옵니까?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때 기쁨이 옵니다. 모든 질병으로부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때 기쁨이 옵니다. 가난한 자가 부요케 되고, 연약한 자가 새 힘을 얻게 될 때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 성에 기쁨이 임했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잠시 뿐입니다. 그것이 내 수중에 있을 때는 기쁨이 있지만 사라지면 금방 슬픔과 탄식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 자체가 기쁨입니다. 전 같으면 원망과 탄식이 나올 상황인데도 감사가 나옵니다. 입술에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그 이유는 주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사명이 있습니다. 이토록 엄청난 축복을 나만이 아는 비밀로 간직하고 산다면 이기적입니다. 그래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예수생명잔치를 여는 것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능력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모든 질병을 치유하고,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선포하는 것이 성지교회의 사명이요 우리의 사명입니다.
아직도 어둠의 사마리아 땅에 신음하고 있는 가족을 찾아야 합니다. 이웃과 친구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그곳에 바로 메마른 땅에 생수가 샘솟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 생수를 마시는 자마다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우리 모두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그곳에 샘물이 샘솟는 기쁨이 충만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다같이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찬송합니다. <살아계신 주>
1.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 내 모든 죄 다 사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2. 주 안에서 거듭난 새 생명 / 도우시는 주의 사랑
참 기쁨과 확신 가지고 / 예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살리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3. 그 언젠가 주 뵐 때까지 주를 위해 싸우리라 / 승리의 길 멀고 험해도 주님께서
나의 앞길 지켜주시리 /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