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요한의 사마리아 방문
행 8:14-25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행 8:14-25 /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자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으로 보냈다. 15) 두 사도는 사마리아에 도착하여 이 새로운 신도들이 성령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16) 그들은 단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을 뿐 아직 성령께서 그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임하시지 않았다. 17) 베드로와 요한이 신도들에게 손을 얹으니 그들도 성령을 받았다. 18) 시몬은 사도들이 신도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성령이 임하시게 하는 것을 보자 그 권능을 사려고 돈을 내놓고 19) `그 권능을 나도 갖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손을 얹을 때도 그들이 성령을 받게 해주십시오' 하고 큰소리로 간청하였다. 20) 그때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하다니, 당신은 돈으로 파멸될 것이오. 21) 마음이 비뚤어진 당신 같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으니 이 일도 함께 할 수 없소. 22) 악한 생각을 뉘우치고 주께 기도하시오. 혹시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해 주실지도 모르니까 말이오. 23) 내가 보기에 당신에게는 질투와 죄가 가득 차 있소.' 24) 시몬이 겁을 먹고 소리쳤다. `그런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25) 사마리아에서 증거하고 설교한 후에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오는 길에도 사마리아의 여러 마을에 들러서 복음을 전하였다.
사마리아 성에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에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사마리아 성으로 갑니다.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14-17)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말씀도 받고 세례도 받았지만 성령을 받았다는 소식은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냅니다. 물론 성령을 받는 방법이 꼭 사도의 안수를 통해서만 받는 것은 아닙니다(9:17).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는 경우도 있고(10:44), 여럿이 모인 곳에 임하기도 합니다(2: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에 의해서 성령강림을 하게 한 이유는 초대교회 질서를 위해서입니다. 지방교회가 성도들의 신앙이 사도들에 의해서 인정을 받아야하는 것과 예루살렘 교회에 의한 사도권을 따라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스도인임을 최종적으로 확인되고 선포되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래야 역사적 반복을 극복하고 유대와 사마리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임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에서 사도의 안수는 말씀을 받고 세례를 받음에 대한 축복의 행위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나만의 신앙을 넘어 우리의 신앙 안에서 공인될 필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18-25) 사도들이 안수로 성령을 받는 것을 본 시몬은 이 권능을 돈으로 사려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함을 지적하며 시몬을 꾸짖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사려하는 것, 성령을 받지 못하므로 영적인 것에 이해가 전혀 없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시몬에게 극약처방을 해 줍니다. “너의 악함을 회개하라” 그는 물리적인 효과에만 관심있는 마술사였습니다. 그에게 성령의 능력을 보고 그 능력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을 충분히 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기 악함을 회개하라는 것은 그 욕심을 품은 것을 회개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다른 이해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인간의 것으로 얻어지거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것을 다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또한 성령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시몬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늘 성령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하셔서 시몬과 같은 하나님 앞에 악함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적용: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과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음으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됨을 인정받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한다면 은혜 받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잃게 되고 그 뜻을 따를 수 없으며 불신자와 같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사탄의 미혹에 빠지게 됩니다. 성령충만은 그리스도인이 구해야 할 첫 번째 기도제목입니다.
호크마 주석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 1절에서 언급된 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은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 활동의성공적 보고를 듣고 두 사도를 파송하기에 이른다. 사도들 중에서 기둥같이 쓰임받던두 사도가 빌립의 전도지를 방문한 것은 두 가지의 큰 의미가 내포되고 있다. (1) 빌립의 선교 활동에 대한 확인이다. 즉 빌립의 선교 활동이 정당한 것이고 사마리아인들이 기독교인으로 인정됨을 확인하는 것이다. (2) 복음은 어떠한 벽도 있을 수 없다는것을 증명해 보여준 것이다. 즉 사도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유대인들에 의해 경멸받는 이방인과 특히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의 벽을 허물고 모든 사람의 기쁨을 위해(8절) 사마리아를 찾아감으로 전정한 복음의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8:15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 이로 보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지방으로 내려간 목적은 빌립의 선교 활동으로 나타난 성과를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이들에게는 유대와 사마리아간의 벽이(마 10:5;눅 9:51-53) 없어졌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한 예수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
=====8:16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 빌립의 선교 활동에 의해 그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성령을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1) 유대인에 대해 나쁜감정을 지닌 사마리아인들에게 두 사도가 와서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게 됨으로 예루살렘 교회와 사마리아인들을 한데 묶어주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2) 사도들에 의해 성령이 임함으로써 사도적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3) 빌립이 능력을 행하면서 전도하기에 바빴으므로 안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어떤 것이 정확한 추정인지는 알 수 없다.
=====8:17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받고 참된 기독교인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이구절은 성령을 받기위한 안수의 필연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수를 통해 성령을 체험하기도 하였지만(9:17)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는 경우도 있고 (10:44) 여럿이 모인 곳에 임하기도 한다(2:1-4). 그러므로 본문을 이해함에 있어서 안수를 통해서만 성령을 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또한 사도에게만 성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도에 의해 성령이 강림한 것은 다음 두 가지 의의를 지닌다. 첫째는, 지방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인정을 받아야 됨을 암시한다. 둘째는, 사도권에 따라 사마리아인들이 기독교인임이 최종적으로확인되고 선포됨을 강조한다.
=====8:18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 본절에는 시몬이 어떻게 성령받는 것을 보았는지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았다. 아마방언이나(Wendt) 예언을 통해 성령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성령 강림으로 인해 외적 현상이 나타났음이 분명하며 이 현상을 시몬이 목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 강림의 현장에 있었던 시몬이 그 체험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확실한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어느 정도 시사해 준다. 이러한 암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성령받는 것을 목격한 시몬은 두 사도에게 돈을 건네주고그 권능을 팔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마도 성령받은 사람에게서 어떤 신비한 현상을 시몬이 발견하고 마술을 전수(傳授)하듯이 성령도 전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13절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시몬이 빌립을 추종한 것이 표적과 권능을 보게된 때문이라는 점과 시몬이 마술사였다는 점에서 아마도 성령을 주는 능력을 갖는다면무엇이나 자신의 마술 능력을 능가하는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도 성령을 모든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을 것이다(Bauernfeind). 즉 그는 자신이 돈을 주고 마술을 전수받은 것처럼 성령을강림케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자 했을 것이다.
=====8:19
이 표현도 18절에서와 같이 사마리아인들이 두 사도의 안수를 받으면서 성령 체험을 하는 그 장소에 시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체험을 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권능'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여수시아'(* )로 1:8에서 '권능'으로 번역된 '뒤나미스'(* )와 의미상 차이가 있다. 즉 '뒤나미스'는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외적 현상을 강조하는 반면 '여수시아'는 내적 현상을 강조하는 용어다. 여기서 시몬이 외적 현상을 의미하는 '뒤나미스'를 나타낼 수 있는 '권세'를 요구했음을 암시한다.
=====8:20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 베드로가 말한 성령은 하나님이 주는 선물이다. 따라서 선물이 한쪽에서 다른 한쪽에게 무상(無償)으로 주어지듯이 성령 역시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은 돈주고 거래할 수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니다. 또한 받은 선물에대해 돈을 지불하는 것도 선물을 준 자에 대한 모독 행위가 된다. 따라서 성령을 돈으로 거래하려는 발상 자체는 곧 신성 모독이다.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 성령을 돈으로 얻겠다는 신성 모독적인 발상에 대해 베드로는 가차없는 저주 선언으로 대용하고 있다. '망할지어다'에서 전치사 '에이스'(* , '안으로')가 목적격의 명사를 동반해서 서술적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용법은 70인역의 일반적인 예라는 점에서 본문이 70인역에 영향받았을 가능성을생각해 볼 수 있다. 한편 베드로의 저주에는 재물이 지닌 위험성을 지적하여 종교 타락의 원인이 되는 재물을 멀리 할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즉 종교는 돈이 개입된 흥정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내린 멸망의 저주를 연상하게 한다(5:1-10). 따라서 본문은 성령 은혜가 돈이나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8:21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 이 말을 혹자는 시몬에게 베드로가 출교(黜敎)를 선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Haenchen, Neil). 그러나 이는 시몬이 기독교인이 된 사실(13절)을 부정하고 내어쫓으려는 것이 아니라 첫째, 시몬을 책망하여 올바른 기독교인이 되게 하려는 의도와(22절) 둘째, 시몬과 같이 불순한 의도와 잘못된 신앙을 갖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서용납될 수 없음을 선언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사도의 행위는 17절에서와같이 온전한 기독교인을 인정하고 보증하며 거짓된 기독교인을 구별함으로써 예루살렘교회와 사도의 권위를 강화하고 있다.
=====8:22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 회개를 촉구하는 베드로의 이 말은 20절의 저주와 21절의 냉혹한 책망이 단순한 공격적 발언이 아니라 시몬으로 하여금 참된 기독교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말이었음을보여주고 있다. 시몬의 불경건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마음을 '악하다'고 다시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카키아'(* )는 부패된 심적 상태뿐아니라 도덕적인 악행도 포함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시몬의 부패된 심적 상태에만 국한되어 사용되었다. 이는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 의해 입증되었다.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 이는 시몬이 행동으로보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범죄했음을 보여주면서 마음에 지닌 사악함을 회개해야 함을 강조한다. 시몬은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을지라도 불순한 동기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듯하다. 한편 '혹'으로 번역된 '에이 아라'(* )는 조건절을 강조적으로 이끄는 표현으로 회개하고 기도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역성경은 그 강조적 의미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그 의미를 불명확하게 번역했다.
=====8:23
악독이 가득하며 - 이 말은 헬라어로 '에이스 콜렌 피크리아스'(* )인데 직역하면 '쓰디쓴 쓸개를 향하여'란 의미를 지닌다. 이에 혹자는 시몬이 미신과마술의 쓴 뿌리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거나 불의에 대한 벌을 받게 될 쓴 쓸개즙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F.F. Bruce). 이와 유사하게 마샬(I.H. Marshall)은 시몬이 쓰디쓴 심판을 재촉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시몬이 예수를 받아들였으나 옛날의 사악한 습성을 버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불의에 매인 바 - 불의에 속하여 있는 시몬의 실존(實存)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이구절은 사 58:6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회개는 악으로부터의 확실한 해방이며 또한 악으로부터의 분리이기 때문이다.이 같은 인간 실존 상태는 시몬에게만 국한되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요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8:24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 베드로의 신랄한 비판에 대한 시몬의 반응은 자신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베자 사본은 '울음을 멈추지 않고 통곡하였다'라는 구절을 삽입시켜 시몬이 베드로의 책망을 듣고 깊이 회개했음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베자사본의 첨가를 따라 시몬의 회개를 기정 사실화했다(Blass, Wendt). 그러나 시몬은 베드로의 저주가 자신에게 내려질 것을 두려워했을뿐 진실한 회개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Meyer, Bengel, Alford, Knowling, Lenski). 22절에서 베드로가그에게 회개하고 기도하라는 권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회개하지 않고 베드로에게 기도를 요청한 것은 여전히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불신앙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본 구절을 시몬의 회개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8:25
두 사도가...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 이 표현은 선교의 중심이 예루살렘 교회라는 점을 암시하는 말이다. 즉 모든 지방교회는 교회의 중심인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확인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교회의 정통성과 관계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바울에 의해 이방 지역 선교가 본격화되면서 퇴색해졌다.
< 설 교 >
두 사도가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 8:14-17 / 양향모 목사
구약성경의 핵심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우리 인간도 창조하셔서 행복하게 잘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려하고 자기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배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은 영원한 생명도 빼앗기고 행복한 삶도 빼앗기고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세상에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면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런 우리 인간을 그대로 멸망하게 내버려두시지 않고 구원을 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형벌을 받게 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그 약속을 따라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그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말씀을 하셨으며 어떤 행동을 하셨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나 에베소서와 같은 여러 서신서들은 그 예수님과 우리가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그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예수님이 우리에게 메시야가 되고 구원을 받게 되는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구원이 무엇이며 구원받은 자가 어떤 복을 받고 어떤 삶을 누리게 되는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사도행전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떻게 퍼져나갔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나님나라로 승천하시면서 예언을 하시기를 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나라로 그리고 사마리아로 전 세계를 퍼져나갈 것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 일에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언대로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을 했고 온 유다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가기 시작을 했습니다.
사마리아에는 빌립이라는 사람이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의 한 사람은 아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뽑은 일곱 일꾼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는데 이방나라의 침공으로 인해서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들만 살지 못하고 이방나라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혼혈족이 된 도시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들처럼 생각했던 성입니다. 그들을 한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방인들보다 더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상한 도시에 사도도 아닌 집사가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도들이 사마리아 현장에 내려가서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사마리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본문 14절 말씀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했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빌립이 전한 말을 듣고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까지 들렸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긴급회의를 열고 베드로와 요한을 현장에 급파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방인들은 짐승으로 취급을 하고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이방사람들과 혼혈족이라고 해서 이방인보다 더 천하게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이라고 해도 예루살렘에 살지 않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지방에서 자라셨는데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라고 하자 유대인들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비웃은 적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유대인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 속에도 유대인이라는 우월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은 충격적인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정말로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도 생겼을 것이고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정말로 잘 믿은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을 설득하여 믿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간단히 된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그들에게 보내주셔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성령님을 보내주시면서 성령 강림식을 아주 거창하게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자기나라 말로 설교를 하는데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다 자기나라말로 듣게 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니까 벌떡 일어나서 걷고 뛰기도 하고 세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표적들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 표적을 보고도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경도 하나님도 잘 모르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대표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항상 앞장서기를 좋아했고 또 자칭 타칭으로 예수님의 수제자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가 가서 확인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따라나선 것은 좀 특별합니다. 물론 요한도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이런 순서로 이야기를 하니까 서열상으로 갈만한 위치의 사람이긴 합니다. 요한에게는 사마리아의 좋지 않은 추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십자가를 지실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아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고 하셨는데 마침 사마리아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먼저 보내어서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도록 부탁을 했으나 사마리아 사람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때 요한이 화가 잔뜩 나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돌아서 가셨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그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악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고 하는데 환영은커녕 마을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막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배척한 그 사람들이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요한이 따라나섰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받을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말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이 드는 복음입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 종교의 교리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믿기만 하면 의로운 사람이 되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도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따르던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것처럼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성경을 많이 읽고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는 교회를 오래 다니고 성경을 많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모르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기며 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사람처럼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가운데도 예수님의 복음을 믿지 않거나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어중간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는 것 같기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할 때 저 사람은 너무나 악해서 도무지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면,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면 그들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더라.
본문 15-16절 말씀에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내려가 보니 성령이 내리신 일은 없는 것 같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은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받지 않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다고 했는데 이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고 세례를 받았다면 당연히 성령님이 그 마음에 역사하셔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믿는데 성령님은 안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면서 그 상태가 어떤 상태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들 중 우리의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도 중요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믿음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짜 믿음이 되어야 하고 그 믿음의 고백이 진실한 고백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이미 받았으나 잘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오셨는데 예루살렘에서처럼 떠들썩하게 오시지 않고 조용히 오셨기 때문에 그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은 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성령님을 받은 사람이지만 뭐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성령님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성령님을 받지 못했지만 우선 예수님을 스스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그들이 말한 그대로 성령님은 오시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경우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예비적인 성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믿지는 못하지만 그냥 교회에는 오고 믿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 상태로 계속 있다가는 결국 어느 날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한 채로 교회를 떠나고 말게 됩니다.
성령님과 관계없이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다고 받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척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마리아성에서 만난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그 경우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는척하고 세례까지 받고 나중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성령님도 돈을 주고 받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가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진짜 믿음을 볼 수 없고 잘못된 신앙을 가진 가라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들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런 불완전한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도 받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만 다닌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은 진실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을 받지 못한 사람처럼 살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오시면 그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역사하심을 따라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와 관계가 없이 그냥 예수님만 믿고 세례만 받았다면 그것은 진실 되지 못한 신앙일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본문 17절에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를 보시고 그들에게 안수하니까 그들에게도 성령님께서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그런 상태가 성령은 이미 받았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고 성령님의 특별한 은사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두 사도가 안수하고 기도할 때에 그들에게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셨고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특별한 능력들이 그들에게도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성령님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를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님의 능력을 받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우리도 성령님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과 상관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같으면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분명히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 속에 성령님이 와 계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다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아무나 교회에 와서 그냥 쉽게 예수님 믿겠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순간 그 사람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시민권도 박탈당하고 재산이나 기득권도 다 박탈을 당하고 자신이나 가족이나 다 붙잡혀 가서 사자 밥이 되거나 불에 태워서 죽임을 당할 각오가 있어야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목숨을 담보로 하고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예배드리다가 발각이 되면 바로 붙잡혀 갔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믿음이 있느니 없느니 그 고백이 진짜니 가짜니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조금만 피곤해도 예배에 빠지고 조금만 기분 나빠도 교회에 안 나오고 조금만 불이익을 당해도 교회도 버리고 떠납니다. 그 속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참 힘들고 피곤한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내 속에 오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우리도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신앙생활이 즐겁고 평안합니다. 성령 충만하심이 없이 내 생각대로 내고집대로 살려고 하니까 자꾸 세상의 쾌락이 쳐다보여지고 교회가 오기 싫어지는 것입니다.
1.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지혜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알게 되고 이 세상에서 참된 행복의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되고 그 예수님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인지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신분이 얼마나 귀한 신분으로 바뀌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 받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얼마나 귀한 복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왕에 성령님을 받아서 신앙생활 하시려면 성령님에게 푹 빠지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알고 나면 진자 신앙을 가지고 나면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2.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우리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알게 해 주십니다.
우리의 죄가 너무나 흉악해서 이 죄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착각하고 사는 것은 우리가 착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지 못하고 구원이 필요한 인생인 것을 알지 못하고 교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죽어가면서도 천년만년 사는 사람처럼 삽니다.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되고 흉악한 죄로 죽어가는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스데반처럼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주여 이 죄를 나에게 머물러 있게 마옵소서”, “이 죄가 나에게 최종적으로 확정되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3.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우리의 삶이 점점 거룩한 삶이 될 것입니다.
쓸데없이 시간만 보내는 무책임하고 나태하고 게으르고 별 볼일 없이 사람들에게 미움이나 받는 그런 삶에서 정말로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잘했다고 칭찬받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3. 우리도 성령님의 능력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면 우리의 삶이 능력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힘이 없고 늘 고통스럽고 뭘 해도 잘 안 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꼭 눈에 보이는 기적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 같은 역사가 아니라도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우리의 삶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살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믿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십시오. 여러분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강한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은사 즉 재능들을 주셨습니다. 그 재능들을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쓰려고 할 때 그 재능에 큰 능력이 일어날 것입니다. 돈이나 시간이나 지식이나 기술이나 사랑하는 마음이나 열심이나 음악적인 소질이나 문학적인 소질이나 미술이나 그 어떤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그 재능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거기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1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듣고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믿기만 하고 세례만 받고 성령님의 능력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어중간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령을 받았고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참된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지 않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심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기쁨이 넘치고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큰 능력이 넘치는 복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악독 (독심, 쓴뿌리)
사도행전 8장 9-25절 / 김우생 목사
본문 말씀인 사도행전 8장 23절에서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악독 또는 쓴뿌리를 가리켜 전문가들은 독심, 즉 독이 있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대부분의 우리는 악독이 생기고 쓴뿌리가 내리고 독심을 갖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악독은 영적인 능력을 상실시키고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평안을 앗아가며 인간관계를 파괴시킵니다. 그래서 이 악독은 사단이 사용하는 가장 큰 도구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승리의 삶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승리하는 삶, 기쁨이 있는 삶, 영적인 고요함이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문제가 없고 환난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중에서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박국 선지자가 누렸던 그러한 기쁨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었으며,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항상 기뻐하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속에서 기쁨이 사라지고, 우리 마음속에 구원받은 감격이 없어지며, 다른 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자 하는 소원이 약해졌다면 멈추어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쓴뿌리, 즉 악독이 찾아들어 스며들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독이나 독심, 쓴뿌리는 자신을 괴롭게 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며, 또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그러면 이 악독의 원천은 어디입니까?
Ⅰ. 악독의 원인
악독의 원인은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❶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는 옛사람에 관하여 아담으로부터 연유되는 성품을 말할 때 육 또는 육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들은 인간의 죄성에서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시몬이라는 사람은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한 사람이었는데 자칭 큰 자라고 하였습니다. 오랜 동안 마술에 놀란 사마리아인들은 그를 청종했는데, 이제는 그가 베드로와 요한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그들을 따르면서 지금까지는 자기가 가장 큰 능력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들이 자기보다 더 큰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로 인해 시몬은 인간의 죄성이 있는 옛사람으로부터 투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투기는 내가 가져야만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독심으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❷ 인간의 죄성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용모나 신체적인 사실 때문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내 얼굴은 왜 이럴까, 내 신체는 왜 이럴까 하는 원망으로부터 쓴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139편 14절에서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각기 상이하게 지으셨고 실수 없이 지으신 놀라운 걸작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지으셨는지를 알지 못하는 잘못된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쓴뿌리가 생깁니다.
❸ 또한 환경 때문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심리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한 가정에 자녀가 6명 이상이 있는데 화장실이 하나이면 악독, 즉 쓴뿌리가 생긴다고 합니다. 서양에서 집의 크기를 이야기할 때 화장실이 몇 개냐고 묻기도 합니다. 이러한 좁은 공간에서 여러 명이 불편하게 지내면서 쓴뿌리가 생깁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시몬은 그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을 따르며 그들의 시중을 드는 역할을 해야만 했는데, 그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시몬은 그의 그릇된 욕망으로 인하여 쓴뿌리가 생겼습니다. 우리에게 악독이 있게 하는 세 가지 욕망이 있습니다.
❶ 지혜롭지 못한 욕망입니다. 시몬은 지혜롭지 못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기사와 표적과 능력이 따르게 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사도들을 통해서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그 선포를 뒷받침해주기 위해서 저들에게 능력을 행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지금까지 자기가 최고의 능력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가 따르던 사도들의 능력을 따라갈 수 없었으므로 그는 지혜롭지 못한 욕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인데 자기가 소유하려고 하다 보니 악독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우리는 각기 은사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상이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직분 은사도 다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❷ 이루지 못한 욕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갖고 싶다는 분별력이 없는 욕심으로 인하여 악독, 쓴뿌리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즉 그는 이룰 수 없는 욕망을 가졌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성공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질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즉 자기는 성취감이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들여야 기쁨과 평안이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악독이 생깁니다.
❸ 절제하지 못하는 욕망 때문에 쓴뿌리가 생깁니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것을 가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갖기 위해 돈을 주겠다고 합니다.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를 돈을 주고 사려고 합니다. 절제하지 못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절제인데, 그의 욕심이 그로 하여금 독심을 갖게 합니다.
Ⅱ. 악독이 인도하는 길
이 악독은 어디로 갑니까? 첫째로 본문인 사도행전 8장 23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악독이 가득하면 불의에 메인 바 되고, 죄에 메이게 됩니다. 공연히 경쟁하는 대상을 두었을 때, 미워하는 사람을 두었을 때, 이루지 못할 욕망 때문에, 또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지으셨다는 원망 때문에 기뻐하지 못하고 분개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품고 있다가 독심이 되어 죄와 불의에 메이게 됩니다. 이와 같이 독심이 그 마음에 있는 한 잘 하려고 노력하지만 승리가 없으며 기도가 되지 않고 능력을 입지 못합니다. 말씀을 읽으려고 해도 빛이 비쳐오지 않고 전도하려고 하려고 해도 결실이 없습니다. 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죄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일을 해도 감격과 기쁨 때문이 아니라 형식상으로 되어지고 의무감으로 합니다. 둘째로 악독이 가득하면 자연히 고통이 따릅니다. 악독이 있고 쓴뿌리가 있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그리스도인과 열린 교제(open heart)를 하지 못합니다. 전에 여러분에게 교제의 다섯 단계를 말씀 드렸는데, 악독이 있는 사람은 처음 단계인 인사를 하는 단계도 하기를 어려워합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눈치만 봅니다. 그리고 저가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됩니다.
Ⅲ. 악독의 결과
그러면 이러한 악독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❶ 영적 기능에 영향이 오게 됩니다. 즉 영적인 기능이 마비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능력을 상실합니다.
첫째 되는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둘째 계명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됩니다. 관계가 나빠지므로 고립되고 더 쌓이게 되어 자신을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파괴시킵니다.
❷ 이런 악독이 있으면 영적 성장에 장애가 있게 됩니다. 영적으로 어린 아이상태에 머물러 자라지 않게 됩니다. 영적으로 어린 아이 시기를 거쳐야 하지만, 이제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다면 이는 문제가 됩니다. 바울이 볼 때 고린도 교인들은 구변과 지식과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풍부했지만 교만해져서 사람에 따라 나뉘어졌습니다. 그들은 은사를 가지고 비교하고 교만해졌습니다. 이러한 쓴뿌리가 있으면 영적으로 자라지를 않습니다.
❸ 이 악독은 때로는 구원에 대한 회의까지도 일어나게 합니다. 한번 하나님의 자녀로 진정 거듭났다면 그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쓴뿌리가 생기게 되면 구원에 대한 회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쉽게 지치고 정서적으로 평안함이 없고 쉽게 노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싫어하게 되고 다른 사람도 용납을 못하게 됩니다. 자기를 비난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주변이 더러워지게 됩니다. 세우지 않고 무너지게 합니다. 이와 같이 악독은 정서적인 영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영향이 있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 악독이 있으면 병이 드는데 심지어는 암으로까지 진전된다고 합니다.
Ⅳ. 악독의 치유
끝으로 그러면 이 악독을 어떻게 치유 받을 수 있을까요?
❶ 죄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 22절에서 "그러므로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독심, 이 쓴뿌리는 죄라는 사실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서 치유의 첫 걸음은 죄를 자백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해 주셨다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❷ 하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그를 닮습니다. 부부가 서로 바라보고 사니까 서로 닮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분의 형상으로 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을 잘 해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생각하라고 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4장 8절에서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참되며 ..., 이것들을 생각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치원리에 따라 하나님이 생각지 말라 하셨으면 그 생각을 금방 바꿔야 합니다. 미워할 만한 것이 생각나면 사랑할 만한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❸ 우리는 자신을 죽음에 넘기워야 합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로마서 6장 6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고 내 자신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죽었으며,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고 의를 향하여 살았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넷째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는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아야 합니다. "너희끼리 화목하라"라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오늘 이 메시지를 통해서 여러분의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두 사도의 방문과 성령 강림
김영규 목사 / 행 8:14-25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14-17)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18-19)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20-23)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24)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행8:14-25)
사마리아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14) 빌립 집사의 전도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사마리아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이것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하나님이 구원하시나? 앞서서 여러 차례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 사이의 역사적 갈등에 대해서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거의 이방인 취급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최초로 열두 사도를 뽑으셔서 전도하러 보내실 때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마10:5) 사도들은 아마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겼을 겁니다. 그렇지! 사마리아 사람을 구원할 필요가 있겠나? 예수님의 가까운 제자였던 요한과 야고보는 한 술 더 떴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9:51-54)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이 잠깐 쉬실 거처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사마리아 사람들이 거절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상종하지 않듯이,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대인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야고보와 요한은 엘리야나 된 듯이 용감하게 말했습니다. 주여,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 사람들을 다 태워버리면 어떨까요? 제자들에게도 사마리아는 상종 못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다니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복음이 전해진 것도 이상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가장 중요한 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에 보냈습니다. 보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정말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는지 알아보자는 뜻입니다. 둘째는 그들이 정말 복음을 받았다면 온전한 믿음으로 인도해주자는 뜻입니다.
성령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가서 먼저 한 일은 성령을 받도록 기도해 준 일입니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14-17)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성령 받기를 기도했다? 교리적으로는 논란이 있는 부분입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영접했는데 아직도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들이 아직 복음의 본질을 모르고 거듭나지 못했다는 말인가?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도들의 기도로 성령 받았다는 말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예수 믿어 거듭난 자들에게 사도들의 기도로 성령의 은사가 더해졌다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들이 아직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해서(마술사 시몬처럼) 세례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는데, 사도들의 기도로 거듭남의 체험을 했다는 뜻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후자의 의미로 보입니다. 이들은 빌립의 기적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노라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복음의 의미를 다 알지 못해 자신을 주님께 맡기는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도들이 기도해 줌으로써 성령의 감동을 받고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의 성령의 역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은 인간적인 교양이나 훈련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 받는다고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은 내면의 문제요 영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 종교처럼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믿는 것이고, 믿어지는 겁니다. 마술사 시몬은 빌립의 전도를 받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것이 아니라, 믿으려고 노력한 것뿐입니다.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과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비유로 말한다면 이런 겁니다. 어떤 사람이 인천 공항에서 뉴욕으로 가려고 비행기표를 샀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고민했습니다. 비행기를 탈까 말까? 타기는 싫지만 그래도 마침내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러면 뉴욕까지 무조건 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타기로 결심했지만 비행기에 몸을 싣지는 않았습니다. 결국은 목적지까지 갈 수 없습니다. 믿음은 예수님께 인생을 맡기는 결심이요 행위입니다. 인생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과, 맡기려고 노력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구원은 노력이 아닙니다. 구원은 아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과 모든 존재를 다 주님께 맡기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믿을 때에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내면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믿어지지 않는 데 어떻게 믿습니까? 어떻게 하면 믿어집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할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5)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에게 전도 받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인생을 전적으로 맡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의 기도로 성령을 받고 거듭남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사도들의 기도와 안수입니다. 사도행전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경우입니다. 거듭남의 은혜든지, 은사든지 마찬가집니다. 첫째로, 기도할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오순절에(1:14), 박해를 받던 시기에(4:31), 베드로와 고넬료에게(10:9,30) 등등, 기도할 때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둘째로,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행10:45)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려면 기도하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혹은 말씀 듣는 중에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안수입니다. 안수란 손을 얹는다는 뜻입니다. 구약 시절에는 제물을 바칠 때에 안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에 안수는 안수 하는 자와 안수 받는 제물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제물의 희생은 곧 안수한 자의 희생을 의미합니다. 구약에 사람에게 안수하는 경우는 주로 어떤 직분을 임직할 때입니다.(민27:18)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실 때에 종종 안수하셨습니다.(마19:13,막6:5,눅13:13) 사도들은 병자를 고칠 때에, 혹은 직분자를 세울 때에(행6:6,13:3) 안수했습니다. 안수는 성령 받을 때에 반드시 필요한 절차는 아닙니다. 사도들의 안수는 단지 축복을 비는 기도의 일부입니다. 손을 얹는 것 자체가 무슨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기도하는 자를 돕고, 하나님의 은혜를 비는 한 가지 수단일 뿐입니다. 너무 안수에 매달리지는 마세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향한 우리 자신의 믿음입니다. 믿을 때에 성령을 받고 거듭납니다. 오늘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대부분은 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분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오늘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전적으로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속 사람이 거듭나는 영적 체험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은사를 돈으로 사려 한 시몬 마구스
사도들의 기도와 안수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어지는 장면은 아주 희극적입니다. 마술사 시몬이 너무나도 엉뚱한 요청을 했습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18-19) 어떻게 돈으로 안수의 능력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 보통 신자들이 볼 때에 전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시몬으로서는 충분히 취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시몬은 성령의 역사에 놀랐습니다. 그는 성령의 은사가 사도들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생각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 재능을 전수받을 수 있을까? 마치 자신의 마술처럼 사도들의 안수 역시 인간적 비법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런 능력을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억만금을 주더라도 살 가치가 있다! 안수의 능력을 살 수 있다면 나는 부귀와 명성을 엄청나게 얻을 것이다! 그는 이미 하찮은 마술을 통해서도 사마리아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큰 인물로 대접 받았습니다. 하물며 중풍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큰 대접을 받겠습니까? 시몬은 정신없이 요청했습니다. 사도여 당신의 능력을 내게 파소서!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게 예수 믿고 세례 받았다는 사람의 모습이란 말인가? 베드로가 노하여 책망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20-23)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사려는 사람입니다. 요즘 세상은 거꾸로 가는 세상입니다. 인생에서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공산주의 사회가 불가능한 평등주의 때문에 망했듯이, 자본주의 사회는 돈 때문에 망하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가치가 뒤집힌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뭐든지 돈으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사랑도 돈으로, 정의도 돈으로, 진실과 신의도 돈으로, 지식도 돈으로, 다 돈입니다. 이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많습니다.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영생, 천국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영혼의 가치, 하나님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에 너무 중요한 것들은 값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거저 주셨습니다. 생명을 거저 주셨습니다. 숨 쉬는 공기, 밟고 다니는 땅, 마시는 물, 다 거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저 주셨는데, 사람들이 길을 막고 돈을 받는 게 문제입니다. 영생, 천국, 영혼 구원, 모두가 거저 주실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굳이 값을 지불하겠다고 우깁니다. 전에 우리 교회 유치부에 맹랑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하루 종일 여기 저기 다니면서 놉니다. 하루는 태권도장엘 갔습니다. 그랬더니 원장이 엄마에게 말씀드려 돈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백 원짜리 동전을 꺼내서 원장에게 줬습니다. 그래도 돈을 가져오라고 하니까 집에 와서 하는 말이 “내가 돈을 줬는데 돈을 달라고 한다. 나쁜 사람이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 값을 지불할 수 있습니까? 죄가 돈으로 갚을 성질의 것입니까? 살인 죄, 강도, 강간, 도적질, 사기, 이런 것이 돈으로 갚아집니까? 남의 인생을 망쳐놓고 돈으로 갚을 생각을 합니까? 더구나 죄는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돈으로 갚는다는 생각 자체가 악한 겁니다.
베드로 사도는 마술사 시몬에게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에 매인 자라고 책망했습니다. 겉으로는 세례까지 받았지만 실상은 아직도 사단에게 매여 있습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했고, 본성이 전혀 변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생각이나 가치관도 여전합니다. 그는 사도들이 값없이 받은 은혜를 값없이 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직의 모독입니다. 그는 성령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고차원적인 마술로 생각했습니다. 성령 모독이요, 성령의 은혜 모독입니다. 그는 아직도 자기의 영달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아에 매여 있습니다. 그는 성직을 돈으로 사려고 했습니다. 신앙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딤전6:5) 영어사전에 보면 “simony”란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의 이름에서 온 단어입니다. 그 뜻은 “성직매매”란 뜻입니다. 결국 이런 자는 복음과 상관이 없고, 천국을 받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선언합니다. 너는 네 재물과 함께 망하라! 시몬은 깜짝 놀라 사도에게 부탁합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24)
베드로 사도는 마술사 시몬에게 충고합니다.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22) 너는 먼저 회개부터 제대로 해야 된다! 도대체 너무 망가져 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고쳐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 영생, 천국에 대해 아무 지식도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도 고차원적인 마술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헌신을 알지 못하고, 돈으로 사도 행세를 사려하고 합니다. 총체적 타락입니다. 우선 자신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제대로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정도의 인간이 바로잡히려면, 사색이나 노력 정도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는 권합니다. 기도하라! 마치 말기 암환자가 생사를 의사에게 맡기듯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혹시 그런 분들 있으십니까? 내 인생은 나도 손 댈 수 없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될는지? 그렀다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나를 고쳐 주소서!
마술사 시몬은 다시 부탁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당신이 말한 저주가 임하지 않게 해 주소서! 최후의 기도조차도 자기가 하지 않고 남에게 부탁하는 것은 아직도 그가 신앙이 뭔지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회개는 자기가 하는 것이지 남이 기도해 줄 문제가 아닙니다. 카톨릭 신자들은 신부님 앞에서 죄를 고백합니다. 고해성사의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성입니다. 정말 죄를 회개한 것인지? 아니면 요식 행위인지?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시몬에게 말합니다.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22) “혹” (a[ra= perhaps)이라고 말한 것은 용서받을 가능성이 100%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시몬의 회개가 진정성이 있다면 용서받을 것이고, 진정성이 없다면 용서받지 못할 겁니다. 베드로 사도가 볼 때에 마술사 시몬의 진정성이 여전히 의심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삼자가 볼 때에 여전히 의심스러운 신자가 되지 말라! 목회자가 보는 관점에서 의심스런 신자가 되지 마세요. 임종하신 후에 이 분이 천국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 의심스런 분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봐도 신앙의 진정성이 확실한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믿는 자는 성령으로 거듭난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원 진리를 들어서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구주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를 원했습니다. 믿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거듭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지적인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 정, 의의 모든 부분이 함께 작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지적으로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정서적으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내 인생을 맡기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구원의 과정에 성령께서 전적으로 간섭하십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오셔서 주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고 거듭나게 하십니다. 생각을 바꾸고 가치관을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는 사람의 힘으로 믿으려고 노력하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주님을 알고 믿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지구상의 어느 종족이든지 다 동일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저는 지난주에 태국 북부 미얀마 국경지역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몇 교회를 방문하는 중에 아카족 전도사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는 미얀마 출생으로, 태국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안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란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가 한국인 선교사에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삶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제까지 암담했던 그의 생애가 갑자기 밝아졌습니다. 그는 자기 동족을 전도하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자기 부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부족들은 예배당 문에 못질을 하고 폐쇄시켰습니다. 그래도 그는 굴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예배가 허락될 뿐 아니라 많은 그의 부족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제 교회는 그 마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저의 일행이 그 교회를 방문하는 날 온 성도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환영했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며 잔치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2:39) 지구상 어디든지 거듭난 자의 모습은 동일합니다. 주님의 성품, 주님의 인격, 주님의 생각, 주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오늘 내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날 뿐 아니라, 내가 속한 주변을 다 구원시키는 구원의 전도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파워 헝그리 마술사
김상복 목사 / 행 8:14-25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사도행전 8:14-25
사람이 제일 지키기 어려운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을 잘 지켜 늘 좋은 동기를 지니고 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마음에 품은 악한 동기 때문에 망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마음의 동기가 좋으면 결과가 좋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동기가 나쁘면 결과가 나쁠 수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 이야기는 이미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빌립 사도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 마술사 시몬도 세례를 받고 빌립을 열심히 쫓아 다녔습니다. 시몬은 빌립이 성령의 능력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동안 마술에는 자신이 최고라 여겼는데 자기보다 더 큰 인물이 나타난 것입니다.
빌립 사도의 소식이 예루살렘까지 들리자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습니다. 사마리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으나 그들은 성령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역사 하시고 성령을 체험 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악한 동기가 다 녹아지고 선한 동기를 갖게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믿기로 작정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도 성령을 체험하고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빌립 세 사도가 같이 일을 하자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신앙의 초기에는 하나님께서 가끔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신앙이 성장한 후에도 필요에 따라서 기적을 보여 주시지만, 아직 하나님에 대해서 확실하지 않은 신앙의 초기에 특별한 역사를 보여 주셔서 확신을 갖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을 때에도 믿음이 약한 그들에게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 기둥을 보내시고 메추라기로 먹이시며 바위에서 생수를 나게 하시고 적들을 물리치는 등 여러 기적을 통해 그들의 믿음을 세워 주셨습니다. 중국에서도 공산주의 이후 기독교가 처음 전파될 시기에 이상한 기적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모슬렘 국가에서도 선교사들이 사역 할 때 기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슬렘들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술사 시몬은 그동안 마술로 대단한 인기와 권력과 부를 얻었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사도들의 기적은 자기의 마술에 비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저 권세와 능력만 얻을 수 있다면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시몬의 믿음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대중을 따라 다니는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그냥 좇아하는 것입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13절) 요즘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살 때 뉴욕에 집회를 갔다가 어떤 분과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미국에 오기 전 서울에서 7년 동안 열심히 믿었습니다.” “오, 그래요? 요새는요?” “안 믿습니다.” 미국에 온지 14년 동안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믿음’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교회 다닌다고 따라 다니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기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신, 두 사람의 관계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처럼 “영접하는 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가족들이 가니까 그저 좇아가는 것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시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 다니며 교회에서 하라는 대로 했으나 성령이 없었습니다. 성령 체험을 통한 마음의 변화,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자기 망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나는 사마리아에서 최고의 인물이다. 빌립의 능력을 가지면 그가 떠난 후 내가 이 동네를 다시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와서 돈을 내밀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성령의 능력을 나한테 주시오. 나도 당신처럼 기적을 행하면 사람들이 내 앞에서 쓰러지고 무릎을 꿇을 것이오.” 세례는 받았으나 성령이 없으니까 이런 행동을 하는 겁니다. 베드로가 그를 책망했습니다. “너는 참 잘못됐다. 예수의 대한 신앙보다 기적에 관심이 더 많구나.” 시몬에게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더 중요했습니다. 왜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님도, 하나님도, 진리도, 성령도 관심거리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옆에 있는 분에게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하시더군요. 물론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예수 믿으면 치아가 튼튼해지고, 아들 낳고, 좋은 대학 갈 줄로 생각할 것 아닙니까! 시몬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관심보다 기적과 능력을 받아 자기가 더 빛나고 권세를 얻고 돈을 많이 벌어 자기 영광을 드러내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도 가끔 그런 일이 있습니다. 교회를 이용해서 무슨 사업을 해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업이 잘 안되면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자기 사업이 잘 되면 거기 머물고 안 되면 더 큰 교회로 또 옮깁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경배하고 그를 위해 살고 그를 섬기고 그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혜택, 그 꿀맛, 그것을 좇는 것입니다. 시몬은 돈을 주고라도 기적의 능력을 사서 하나님을 마음대로 흔들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것임을 시몬은 모릅니다. 시몬은 결국 돈과 함께 망할 사람이요, 돈이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물질만능주의자로 빠질 사람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작은 교회에서 한 분이 헌금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작은 교회니까 금방 그 교회에서 인정을 받고 장로가 되고 교회의 재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장로가 교회 건축헌금 전부를 자기 사업에 투자해서 날려버렸다는 것입니다. 시몬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이용해서 자기 사업을 일으키고 자기를 드높이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런 사람에게 “돈이면 모든 것을 하고 돈이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고 교회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너는 네 돈과 함께 망하리라”고 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시몬에게는 자기의 권력과 돈과 인기가 전부인데 돈과 함께 망하면 어떻게 합니까?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줄 알았느냐? 너는 네 돈과 함께 망하리라! 하나님 외에 무엇이라도 하나님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그 권력과 인기와 지식과 돈과 함께 망한다!” 베드로 사도의 경고입니다.
베드로는 시몬의 마음을 꿰뚫어보았습니다. 그의 동기가 좋지 못합니다. 믿는다고 했던 것도, 세례를 받은 것도, 빌립을 좇아 다닌 것도, 보고 놀란 것도 그 속에는 나쁜 동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과 저의 마음을 다 보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책망하면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동기, 마음속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권능만 받아서 될 일이 아니다. 이제 겨우 예수 믿겠다고 출발한 네가 사도처럼 되어 큰 권력을 행사하려고 하다니, 회개하라! 그리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22절) 마음속을 뒤집어 고치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마음이 녹아서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바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받아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시몬은 마음이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23절) 베드로는 마음이 비뚤어지고 동기가 나빠서 불의한 것, 죄의 노예가 되었다고 책망 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2. 시몬이 회개 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바로 무릎을 꿇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당신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하고 회개를 해야 했지만 시몬은 “그러지 말고 나를 위해 기도 좀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회개는 자기가 하는 것입니다. 남이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은 내가 다스려야합니다. 다른 사람이 다스려 줄 수가 없습니다. 내가 회개하면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동기가 선해집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아들의 죄를 대신 회개할 수 없습니다. 엄마의 죄는 엄마가, 아빠의 죄는 아빠가 회개해야 됩니다. 내가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했으면 내가 기도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어느 사업가 남편은 부인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기도 좀 하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기도하라고 하니까 부인이 잠도 잘 못자고 힘들어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제가 그 사업가를 만나서 말했지요. “다음부터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하십시오. 당신 사업을 놓고 당신이 먼저 기도하고 아내에게 기도를 요구하십시오.” 나는 기도하지 않고 가족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고, 나는 기도하지 않고 중보기도위원들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안 됩니다. 시몬은 “재앙이 나에게 나타나지 않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동기를 고칠 생각은 안하고 그것 때문에 나타날 결과만 두려워하는 겁니다. 마음만 고치면 저절로 해결되는 일입니다. 회개하고 마음의 동기를 바꾸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지 모른다고 베드로가 말했으나 그건 하지 않고 재앙을 받지 않게만 해 달라는 겁니다. 본문을 계속 읽어보면 기도해줬다는 말도, 용서해줬다는 말도, 회개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다른 사마리아 많은 지방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3. 이후에 시몬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 성경에는 더 이상 언급이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전해지는 전설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이레니우스라는 초대교회 목사님이 쓰신 글에는 시몬이 베드로에게 혼이 난 후 사마리아에서 두로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사마리아는 남쪽, 예루살렘 인근 지역이고 두로는 북서쪽 해변 지역입니다. 지금은 티레(Tyre)라고 부르는 곳으로 이번 레바논 전쟁에서도 피해를 봤던 지역이지요. 두로로 이사한 시몬은 헬레나라는 창녀를 돈을 주고 사서 데리고 다니면서 “이 여자가 내 생각의 첫 번째 개념이요, 만물의 어머니다. 천사들과 천사장들이 다 이 헬레나를 통해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잘못되었으니 그 속에서 잘못된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모든 세계의 만물이 되어지는 것들은 천사들이 만든 규율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천사들이 주관한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제롬이라는 사람은 교황의 비서로서 ‘라틴 벌게이트’라는 라틴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이분의 글에는 시몬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내가 보혜사다. 내가 전능자다. 나는 완전한 하나님이다.” 이런 사람은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 때는 정신병원이 없어서 넣지도 못한 것 같아요. 당시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믿었어요. 그 사람들도 정신이 없지요. 우리나라에도 “내가 메시야”라고 주장했던 사람이 있었지요.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한국에서 땅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상한 소리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는 시몬과 같은 사마리아 사람인데, 로마 클로디우스 황제 때 시몬이 로마에서 마술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신으로 섬김을 받았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티베료 강가의 동상에는 “거룩한 신, 시몬에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로마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섬기고 동상까지 세웠다는 역사 기록이 있습니다.
클레멘타인의 책에는 베드로와 시몬이 계속 대적했다고 합니다. 마술을 행하는 시몬을 베드로가 비판하고 두 사람은 신학적 논쟁도 했다고 합니다. 시몬은 “두 가지의 신이 있는데 구약의 신은 불완전한 신이다.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고 구약의 선지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다. 내가 메시야다”라고 했습니다. 로마 황제를 비롯해서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마지막으로 뭔가를 제대로 보여 주려고 “내가 이제 부상(浮上)해서 하나님을 향해 갈 것이다. 보라!” 하고 자기를 공중에 붕 뜨게 했다고 합니다. 요즘도 자기 몸을 공중에 띄우는 마술사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공중에 떴는데 둥근 테로 앞뒤좌우를 둘러도 걸리는 것 없이 공중에 떠 있어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를 뿐 신기한 환상이지요. 시몬도 날아서 하나님께로 간다고 자기를 공중에 띄웠는데, 베드로가 밑에서 “주여, 떨어뜨리시옵소서!” 기도했더니 시몬이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답니다. 주위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저 사람, 나쁜 거짓말쟁이군!”하며 모질게 돌로 때려 죽였다고 합니다. 시몬은 숨을 거두기 전에 “내가 죽으면 무덤에 묻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아직 안 살아났다고 하네요. 시몬은 이렇게 인생을 끝낸 겁니다.
이런 시몬 때문에 ‘simony’라는 영어단어가 생겼습니다. 성직을 매매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중세 시대에는 교황이 돈을 받고 성직을 팔았습니다. 시몬의 이야기는 마음의 동기와 생각이 잘못 되어 불쌍한 인생을 마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를 따른 사람들이 많았지만 초대 교부인 오리겐은 그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아니었다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동기는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말을 하거나 행동하거나 결정할 때 좋은 동기, 순수한 동기로 할 수도 있고 이기적이고 나쁜 동기로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겉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알 수가 없고 동기를 잘 알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됩니다. ‘아, 저 사람은 저래서 저렇구나!’ 그저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남의 동기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 내 생각, 내 순수한 동기만은 내가 주장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성령 충만함으로 여러분의 마음이 정결해지길 바랍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늘 성령의 도움으로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깨끗한 동기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좋지 않은 동기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고 좋은 동기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6:1) 조심하지 않으면 자꾸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속으로는 안 그러면서 겉으로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가증하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6장 2절에도 구제를 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오른손이 하려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그렇게 살짝 하라고 하십니다.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신중하게 보시는 하나님께서 다 보시고 적어두셨습니다. “네 당대뿐만 아니라 네 후손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시리라.” 기도할 때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다 응답해 주신다는 겁니다.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금식 때도 마찬가지고 교회에서 어느 부서를 섬길 때도 그렇습니다. 은밀하게 내 마음속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만약 성령께서 잘못된 동기를 조명해 주시면 그 즉시 바로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용서하시고 은총을 베푸셔서 여러분을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좋은 동기가 있나요?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여러분과 제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선한 동기를 갖고 나머지 인생을 살아 우리의 삶에 많은 은총을 체험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세례를 받으세요
김흥규목사(내리교회) / 사 43:1-7; 눅 3:15-17, 21-22; 행 8:14-17>
<말씀의 능력으로 예수 믿고 물세례를 받은 사마리아인들>
오늘은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이면서 수세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세례 받으신 날로부터 시작되니 주현절기에 세례와 관련된 말씀을 읽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오늘 저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말씀을 중심으로, 특별히 물세례가 아닌 성령세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8장은 이방인이 최초로 성령세례를 받은 놀라운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고 업신여기던 사마리아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사람들은 단지 이방인, 외국인이라는 개념 그 이상으로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사람들이지요. 이런 이들에게도 유대인들에게와 똑같이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말은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성령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역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민족경계나 지역경계를 넘어 어떤 민족 어떤 지역에도 두루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먼저 8장 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사마리아 지역에 놀랍게 역사했습니다. 4절로 8절을 보면 사마리아 지역에 놀라운 말씀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곳저곳을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는데 빌립이라는 제자가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빌립의 말씀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빌립이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했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말씀 안에 역사했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들이 쫓겨나갔고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았습니다. 말씀의 능력이 표적으로 나타났던 것이지요.
그래서 6절 말씀을 보면 사마리아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빌립이 전하는 말을 따랐습니다. 빌립이 선포하는 말씀에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는 말이지요. 오늘도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씀이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있는 말씀이 되면 여러 가지 표징이 일어나고, 그 능력있는 말씀에 사로잡혀 듣는 사람마다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술사 시몬도 예수 믿고 물세례 받고 빌립을 따라 다니다>
이제 9절로부터 25절까지 사도행전에 나온 이야기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9절로 10절을 보세요. 사마리아성에 시몬이라는 한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마술을 부려 “자칭 큰 자”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도 신기한 마술을 많이 부리니까 높은 사람에서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 마술사 시몬을 칭송했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의 소유자”(10절)라고 칭찬하며 시몬을 따랐습니다. 11절은 높으나 낮으나 신분에 관계없이 왜 수많은 사람들이 시몬의 추종자가 되었는지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힙니다.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시몬이 행하는 마술을 보고서는 놀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신 위대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습니다. 사람들이 높여주니 마술사 시몬 역시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자칭 큰 자”라고 으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어떤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능력인지 사람이나 귀신으로부터 온 능력인지를 분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나 귀신의 술수로부터 온 능력은 언제나 자기를 높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능력은 그 능력의 원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오직 하나님만 높이게 됩니다. 갖가지 마술을 부려 사마리아의 영웅이요 인기 스타가 된 시몬은 속임수를 통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와 같은 거짓과 술수를 순식간에 드러나게 하는 빛이신 예수님의 복음이 사마리아성에 들어오니 마술사 시몬이 맥을 못 춥니다. 12-13절을 보세요.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들어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복음”을 전했더니 남녀노소가 다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이방인 지역이 뒤집어졌다는 말이지요. 이 엄청난 말씀의 능력에 휩싸여 마술사 시몬도 엉겁결에 복음을 믿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칭 큰 자가 빌립의 제자가 되어 따라다닙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은 14절 이하에 벌어지는 사건에 있습니다. 사마리아성 전체에 말씀의 능력이 임하여 너나할 것 없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자 마술사 시몬도 그렇게 했습니다. 시몬의 문제는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 물세례만 받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군중심리 때문에 분위기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술수를 부리는 마술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의 능력에 이끌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성령세례를 받아 완전히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는다면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고 물세례를 받는 것은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사람들이 그랬고, 무엇보다도 마술사 시몬이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에도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혀 예수를 믿고 물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성령세례 사건>
14절로 17절을 보세요. 사마리아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본부를 둔 사도들에게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시찰단으로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성에 급파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보니 정말 사마리아사람들이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혀 예수를 믿고 물세례를 받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성령세례를 안 받은 것이지요! 그래서 두 사람은 사마리아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세례를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세례를 받습니다!
16절을 보세요.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즉, 물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도 함께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오늘 봉독한 누가복음에 보니까 물세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 같은 성령이 예수님 위에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처럼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동시에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물세례를 받은 이후 나중에 가서야 성령세례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지금 여기 사마리아사람들이 꼭 그랬지요! 예수 믿고 물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성령세례는 받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3장 8절에 보면 성령은 바람이 자기 멋대로 불듯이 성령 역시 자유롭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역사할 수도, 물세례를 받은 후 나중에 가서야 성령세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 성령 역시 임의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지요! 성령은 우리 맘대로 오고 가게 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사마리아사람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했더니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제 참으로 흥미로운 대목이 이 광경을 지켜본 마술사 시몬의 반응입니다. 18-19절을 보세요.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를 했더니 사람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술사였던 시몬이 전직을 못 속인다고, 자기도 한 번 성령받게 하는 능력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을 주면서 자기에게도 그런 권능을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여기 시몬은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혀 예수를 믿고 물세례까지 받았지만 아직 성령세례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직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 했습니다. 마술해서 사람들을 속여먹던 옛 습관을 청산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돈만 있으면 성령의 능력도 살 수 있다고 착각했지요. 돈 주고 성령의 권능을 살수만 있다면 자기가 안수하는 사람마다 성령의 능력을 받고 자기는 또 다시 사마리아성에서 가장 유명한 인기 스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이와 같이 천박한 상업주의적 생각을 품고 있는 시몬에 이고 베드로가 심하게 꾸짖습니다. 20절로 23절을 보세요.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성령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돈으로 살려고 한 당신은 돈과 함께 망할 것입니다!” 돈을 주고 성령의 권능을 사서 그 성령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 이름을 높이려고 했던 시몬은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시몬에게 회개와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러잖아도 말씀의 능력을 접하고 난 뒤 예수를 믿고 물세례를 받았던 시몬이 또 한 번 사도 베드로의 일갈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24절에 보니까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베드로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과연 시몬이 진실로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났는지, 베드로가 시몬의 중보기도 요청을 들어주어서 시몬에게 화가 미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는 그 결말을 알 수 없도록 미완성으로 끝이 나고 맙니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중보기도를 요청한 것으로 보아 베드로가 그 기도를 들어주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성령을 돈 주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시몬으로부터 아주 유명한 영어 단어 하나가 생겨납니다. “SIMONY”라는 말이지요. 거룩한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성물매매”, 혹은 “성직매매”를 “시모니”라고 부르지요.
<“빌립” VS “시몬”, “빌립의 복음” VS “시몬의 마술”>
① 빌립과 시몬의 대결
이제 오늘 말씀을 정리해봅시다. 사마리아성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끈 두 사람이 있습니다. 빌립과 시몬입니다. 빌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갖가지 표징을 일으켰고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습니다. 시몬은 마술을 통해서 높은 자나 낮은 자나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습니다. 하지만 빌립이 전한 복음의 능력이 시몬의 마술을 이겼습니다.
빌립과 시몬의 차이, 아니 빌립이 전한 복음과 시몬의 전한 마술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복음은 하나님의 통치를 알리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마술은 이런저런 돈거래를 해서 사람들을 속여서 자신의 인기와 이득을 챙기는데 있습니다. 적어도 빌립과 시몬의 대결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마술이 복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자칭 큰 자”라는 착각 속에 살아왔던 시몬은 복음의 능력을 접하고 자기보다 훨씬 더 큰 분이 계심을 알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세상의 속임수가 진리의 복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② 성령세례의 중요성
그 다음에 성령세례의 중요성입니다. 마술사 시몬은 다른 사마리아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었고 물세례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옛 습관을 청산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장논리에 충실한 그가 성령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 베드로에게 돈까지 건넵니다.
여기 예수 믿고 물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세례는 무늬만 크리스천으로 만들지, 속 알맹이는 아닙니다. 오직 성령세례를 받을 때 속사람이 거듭날 수 있습니다. 진짜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아무 값없이 사모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들에게 오늘도 성령은 선물로 주어집니다! 주의 종이 안수할 때 임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바람같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오늘 이 시간에도 성령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시간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성령님은 능력입니다
행 8장 14~24절 / 이윤재목사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느 정신 병원에 세 친구가 입원했답니다. 한 친구가 소리칩니다. “나는 왕이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소리칩니다. “나는 황제다”. 그랬더니 마지막 친구가 말합니다. “누가 너를 황제로 임명했느냐? 나 너 임명한 적없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자기가 더 높다는 것입니다. 네가 왕이면 나는 황제고 네가 황제면 나는 그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런 욕망이 무의식속에 있습니다. 남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하고 싶은 욕망, 남보다 잘되고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욕망, 이런 것들이 인간에게는 있습니다. 사람을은 저마다 힘을 찾습니다. 권력도 힘이고 학벌도 힘이 돈도 힘입니다. 진정한 힘이 무엇일까?
이번에 인도 선교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의 기도로 모든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인도는 분명 큰 나라인데 힘이 없었습니다. 인구 약 11억, 세계 인구를 60억으로 볼때 세계 인구의 1/6이 인도에 삽니다. 남한의 33배,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나라입니다. 세계 역사에 인도가 끼친 영향 또한 대단합니다. 주전 약 3천년전부터 시작된 인더스 문명, 이 문명은 세계 4대 문명중의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인도가 세계 역사에 공헌한 것은 종교입니다. 동양 종교의 대부분이 인도에서 나왔습니다. 먼저 힌두교, 힌두교는 현재 인도의 주된 종교로서 인도의 문화, 유적은 대부분 힌두교와 관련된 경전, 문화유적입니다. 그리고 불교, 불교는 인도에서 나와 아시아의 주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크교, 자인교, 이 모든 종교들이 인도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힘이 없습니다. 너무 가난합니다. 1인당 평균 소득이 한 달에 5-10만원입니다. 한달에 10만원이상을 벌면 괜찮다고 합니다. 그들의 찬란한 문화에서 볼 때 도저히 이해가 안된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가난한지 학생들이 한달에 기숙사에서 먹고 자는 돈이 만원입니다. 우리 돈으로 만원이면 한 끼 식사비에 지나지 않는 데 그들은 그 돈도 없어 제대로 공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어느 목사님 자녀에게 운동화를 사주었습니다. 배웅을 위해 따라온 분을 데리고 인도 재래 시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물어 물어 신발가게로 갔습니다. 자녀가 중학교, 초등학교 셋이라 우리가 흔히 신는 운동화를 사주었습니다. 얼마나 기뻐하는지 자기 평생에 자녀들에게 운동화 사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세 켤레 다해봐야 우리 돈으로 3만원입니다.
거리에는 여기 저기 거지가 있었습니다. 몇년 전 캘커타에 갔을 때 보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테레사 수녀 무덤이 있는 캘커타 “사랑의 집”근처를 가면 저녁에 수많은 홈레스들이 누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깔대기를 깔고 어떤 사람은 깰때기도 없이 맨땅에 누어 있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어린 자식 서넛을 데리고 맨 땅에 누어 있는 부모들입니다. 어린 자식들은 배고프다고 울고 부모들은 줄 것이 없고 참으로 눈뜨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런 극빈자가 인도에 전 국민의 25%나 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나라는 크고 역사도 오래 되었는 데 힘이 없을까?
하나님 없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힘이 없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없어서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술사의 이야기가 그 이야기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선교를 하는 중에 마술사 시몬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시몬”인 것으로 보아 유대인일 것입니다. “시몬”이란 이름은 유대인 가운데 흔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그의 직업이 마술사입니다. 여러분은 마술사를 아십니까? 이상한 행동을 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마술사 말입니다. 언젠가 T.V에서 미국에서 왔다는 신기한 부부 마술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인상이 좋아보이는 이 부부는 눈을 가리고도 다른 사람이 칠판에 쓴 글씨를 금방 알아 맞췄습니다. 멀리 떨어져서도 돈에 쓰여 있는 번호도 다 읽어 냈습니다. 커다란 상자 속에 손과 발을 꽁꽁 묶어 놓았는 데도 뚜껑을 열어보면 이미 상자 밖으로 나가 있습니다. 무슨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마술사 시몬은 아마도 이들과 비슷한 기적을 행했는지 모릅니다.
자, 그러면 그렇게 신비한 기적을 행했다면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술사 시몬은 아무리 봐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자기 보다 강한 빌립의 능력과 자신을 늘 비교합니다. 자기의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마술입니다. 마술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닙니다. 언뜻 보기에 재미있어도 그 안에는 다른 신이 있습니다. 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뜻보면 요가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운동하다보면 명상하게 되고 명상하다 보면 그 신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심령과학, 유령, UFO, 도, 명상, 점성술, 운세, 초능력, 기, 단학, 마인드 콘트롤, 이런 것들이 다 신의 세계에 관련있습니다. 건강으로 시작한 것이 영적 실체인 악마와 사탄과의 교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에 인도에서 힌두교 사원을 방문했습니다. 사람들이 염소를 끌고 사원앞에 길게 서 있습니다. 왜 서 있나 보았더니 염소를 잡아 재앙을 없애려고 서 있습니다. 한 어머니가 작은 염소 한 마리를 끌고 왔는 데 보니까 어린 아들의 얼굴과 머리에 불긋 불긋 반점이 나고 아들은 아파서 크게 울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병을 치료하려고 염소를 끌고 온 것입니다. 힌두 제사장이 칼로 염소의 목을 쳤고 곧 붉은 피가 쏟구쳤습니다. 그때 제사장은 엄마와 아들의 이마에 피를 발랐습니다. 그리고 돈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신이 그들에게 당부한 말씀도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인격적인 교훈도 없습니다. 그저 재앙만 면하면 됩니다. 재앙을 면하기 위해 염소를 잡고 돈을 주고 받으면 끝입니다. 그들의 신을 믿음으로 오는 영적인 기쁨이나 성숙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웃과 세상을 향한 소명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그저 생존을 위한 인간적 몸부림, 그것을 위해 돈 몇 푼과 염소를 바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없는 종교적 악순환이 그들에게 영적 공허와 혼란을 부추끼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없는 종교, 하나님없는 나라는 이렇습니다. 인간의 문제의 가장 깊은 본질에는 영젹 공허, 영적 빈곤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령받지 않은 신자는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다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이들은 빌립을 통해 전도를 받았습니다. 세례로 받았습니다. 셰례는 예수님 믿으면 받습니다. 행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빌립이 했던 기여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고 세례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사마리아사람들이 세례는 받았는 데 능력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세례는 받았는 데 능력은 없을까? 왜 예수님은 믿는 데 힘이 없을까? 원인이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믿긴 믿고 세례도 받았는 데 성령체험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두 사도를 보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마리아에 와보니 과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받았으나 한 가지가 없었습니다. 능력이었습니다.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5절입니다. 행8: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왜 그렇게 했습니까? 16절입니다. 행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은 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에게 들어서 복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들어서 지식으로 알고 있었으나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능력임을 몰랐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오순절 전에는 지식으로 예수님을 따르다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고 고기잡으러 떠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날 성령 받고 보니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능력임을 알았습니다. 관념이 아니라 힘임을 알았습니다. 차거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로 하여금 성령받게 하기를 위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정한 날이 오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을 하나씩 나오게 해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17절입니다. 행8: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그때부터 그들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두 종류의 신앙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는 사마리아인의 신앙이요 다른 하나는 사도의 신앙입니다. 사마리아인의 신앙은 귀로만 듣는 신앙입니다. 지식으로만 아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관념의 교실에 가둬 놓고 조금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신앙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 이상을 믿지 않는 신앙입니다. 매우 논리적이고 지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신앙때문에 거룩한 영향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기도 답답하고 남도 변화 못시킵니다. 이것이 사마리아인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사도의 신앙은 능력의 신앙입니다. 다만 머리로 아는 신앙이 아니라 체험하는 신앙입니다. 성령이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신앙입니다. 예수믿고 세례받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16절을 경계해야 합니다. 행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은 뿐이었더라“. 세례만 받아서는 안됩니다.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이번에 인도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인도 교회에서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된 새 신자들이 귀신들을 쫓아내 지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답니다. 이제 갓 예수 믿고 교회 나온 새 신자들이 어느 집에 모여 기도하고 있는데, 한 힌두교도가 찬송 소리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중 귀신들린 사람이 하나 있는 데우리를 괴롭게 한다. 우리를 좀 도와 줄 수 있겠느냐?”. 새신자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가서 기도했답니다. 그랬더니 귀신이 나갔답니다.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라 80명 가량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새신자는 성경도 잘 모르고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낸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몰라도 믿고 기도하니까 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었으나 우리가 그것을 전도와 선교에 쓰지 않으니까 능력이 안 나타납니다. 전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안에 이미 주신 능력이 나타납니다. 새신자라고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누군든지 믿고 구하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겸손히 사도들의 말을 듣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행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마리아 사람들은 겸손히 자신을 내려놓고 사도들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님은 가장 큰 힘입니다.
이때 사마리아인이 성령받은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입니다. 그가 18-19절에 사도들 앞에 이렇게 말합니다. 행8:18-19,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마술사 시몬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자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기왕에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힘은 마술의 힘이었습니다. 그 힘만으로도 그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했습니다. 더 큰 힘을 가져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돈을 주고 살수만 있으면 어떤 능력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다가가서 자신이 돈을 줄테니 성령의 능력을 팔기를 요청했습니다. 이것이 잘못 되기 시작하는 시초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잘못 이해한 사람은 자신이 그 능력의 소유자가 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능력앞에 자신을 복종시키기 보다 자기가 그 능력을 복종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능력에 의해 소유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능력을 소유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성령님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성령님이 여러분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마술사 시몬은 불행하게도 성령을 소유하기를 원했습니다. 20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여기서 “산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랍바네인“, 곧 ”획득하다. 취하다“는 말입니다. 돈주고 성령을 사서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기왕에 가지고 있던 능력에다 조금 더 센 성령 하나 더 추가하여 자신의 능력 재고량을 최대한 확대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믿는 여러분 성령을 받았습니까? 잘했습니다. 누구나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예수를 주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받은 것과 성령을 소유한 것은 다릅니다. 20절을 다시 보십시오. 행8: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여기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이 무엇입니까? 주는 자의 의지에 따라 주는 것입니다. 아무 대가없이 주는 것입니다. 돈받고 주는 상품이고 돈 안받고 주면 선물입니다.
오래 전에 한 목회자가 교회에서 기도회를 인도하는 가운데 많은 체험이 나타났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쓰러지는 체험이었습니다. 그가 손도 대지 않았는 데 사람들이 쓰러집니다. 여신도만 쓰러진 것이 아니라 남신도도 쓰러집니다. 한 사람만 쓰러진 것이 아니라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쓰러집니다. 많은 사람들의 병나았다고 하고 간증도 했습니다. 분명 하나님 믿는 세계에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후에 보니까 그때 쓰러진 사람중에 사람이 달라진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신 것은 몸이 쓰러진 것이 아니라 그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앞에 온전히 복종하게 것입니다. 마음이 복종하지 않고 몸만 쓰러뜨리려 하면 그것은장풍하는 사람들이 더 잘할 것입니다. 내 몸이 쓰러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자아가, 내 인격이, 내 삶 전체가 쓰러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약시대에 몸은 쓰러졌지만 사람은 쓰러지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잡기 위해 일생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라마로 피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군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군대가 라마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의 신이 급히 군대에게 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꼼짝 안하고 누어서 예언만 했습니다. 몇 번 군대를 보내도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사울이 직접 갔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사울에게 하나님의 신이 직접 임했습니다. “임했다”는 말은 “돌격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돌격하자 사울은 힘없이 그 자리에게 쓰러졌습니다. 아마 그때 사울은 인간적인 의지로 일어나 보려고 애썻을 것입니다. 자기 부하들 앞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왕으로서 민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어찌나 그를 강하게 누르시든지 사울은 도무지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도 상당히 강한 체구와 강한 정신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는 데도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일어나기는 커녕 그 힘에 점점 압도되어 이제 옷까지 하나 둘씩 벗어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하루 종일 그렇게 누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9:24절은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또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런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울의 몸이 쓰러졌다고 마음도 쓰러졌나요? 그는 몸은 쓰러졌으나 교만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몸은 쓰러졌지만 욕심과 탐욕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어서 예언도 했고 신비한 환상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미움과 교만과 욕심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떠 다윗을 잡으려고 일어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불레셋 사람에게 쓰러졌습니다. 칼에 맞고 쓰러졌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성령으로 쓰러질 때 잘 쓰러질 것을 몸만 쓰러지고 자기는 쓰러뜨리지 못해 그만 비참하게 인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성령은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크신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우리가 사모할 최고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 앞에 몸을 쓰러뜨린 자에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쓰러뜨린 자에게 가장 큰 능력을 나타냅니다. 자기와 싸워 이긴 사람이 가장 강한 자입니다. 자기 욕심을 이기고 자기 탐욕을 정복하는 힘이 가장 큰 힘입니다. 미국 기독교 역사상 빌리 그래함만큼 많은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유명해 지면서 세 가지 유혹을 받았다고 합니다. 첫째 상원의원에 출마해 달라는 유혹. 둘째 공화당 부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달라는 유혹. 셋째 세계적인 기독교 방송국을 세워달라는 유혹.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유혹을 모두 물리치고 평생 복음만 전했습니다. 잘나가던 사람이 세상적 유혹을 끊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성령이 이 일을 하게 합니다. 성령은 힘입니다. 잘 나가던 목회자가 가끔 교단 정치에 뛰어들어 영성을 잃고 교회를 어지럽힌 경우를 봅니다. 자기가 아니면 노회가 안되고 자기가 아니면 교단이 안된다는 생각은 엄청난 교만입다. 나를 과시하게 하는 힘이 아니라 나를 부정하는 힘이 가장 큰 힘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지배할 때 방해하는 것은 우리 자신만이 아닙니다. 마귀입니다. 21절, 22-23절에서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에게 욕심을 가져다 준 것은 사단이라고 말하고 그 사단을 꾸짖습니다. 22-23절입니다. 행8:22-23, “그러므로 너의 이 약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여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속에 사단이 들어가서 하나님을 성령님을 욕되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 사단에게 명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받기 위해 종종 우리를 묶는 사단의 세력을 묶어야 합니다. 마귀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불법칩입자입니다. 불법칩입자는 다른 사람의 영토를 불법적으로 쳐 들어온 사람을 말합니다. 가끔 남의 잔디에 텐트치고 캠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이 와서 나가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안나가면 경찰을 부릅니다. 가끔 남의 땅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법적으로 고소하면 나갑니다. 성경에 보면 마귀들은 자기들이 거주하는 사람의 몸을 자기들의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마12:43-4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마귀도 우리의 몸에, 마음에, 영혼에 불법으로 칩입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경우에 사용하신 방법이 명령기도입니다. 마16:23,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예수님은 사단을 향하여 명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의 이름을 두려워합니다. 우리의 강력한 무기는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나사렛 예수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저는 슥4:7절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성령의 공동체 교회
유민용목사 / 행 8:14, 17-25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50일째 되는 날 성령의 오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적색스톨은 성령의 불과 십자가 보혈을 상징합니다.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교우들 마음안에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역사는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의 성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약속하신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약속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은 복음의 증거자들로 흩어져 증인이 되었습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할때에 교회가 시작되었고 성령이 임한 후 교회는 흩어졌고, 흩어진 사람들을 통하여 복음의 소식은 확장되었습니다. 건물 중심적인 교회는 모이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됩니다. 교회는 거대한 역사 가운데 형성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받는 개인의 이야기들이 모여서 교회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부터는 예루살렘과 유대지역을 넘어 사마리아 지역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종교와 우상숭배를 수용하고 혈통적으로는 혼합민족이라서 당시 유대 기독교인들은 그들을 경멸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의 땅은 밟는 것 조차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자 경계가 무너지고 그토록 경멸하던 사마리아 지역에까지 복음의 씨가 뿌려지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 복음을 확장시켜 나가는 일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박해속에서도 복음은 확장되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는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스데반이 돌맹이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나오는데, 이를 계기로 핍박이 더 심해지고, 이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제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 가운데 고난을 통한 흩어짐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론의 핵심이 고난에 있는데,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안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다만 성도는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고 소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담의 죄로 인해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죄에서 비롯된 하나님과의 분리된 삶의 모습이 고난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면에 죄에서 자유로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으로써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전에는 죄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았는데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믿고 살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원 받은 성도들도 여전히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이는 고난이 죄와 깊은 관련이 있지만 모든 고난이 죄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바울은 고난을 그리스도의 행렬에 동참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17절을 보시겠습니다.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의 개선장군들은 전차를 타고 로마 시내로 행진하여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행진하는 길은 승리의 제사를 드리는 타오르는 향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포로들을 잡아 뒤에 세워 승리의 행렬을 이끌었는데 행진이 끝나면 포로들은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개선행진 대열 끝에 서 있는 포로들에게 이 향기는 죽음의 냄새일 것이고, 승리한 군사들의 몸에는 전쟁의 상처가 남았지만, 그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향기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이미 승리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렬에 비유했습니다. 성도들의 고난은 이미 부활하시고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안에서 겪는 고난은 성도들이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증거가 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삶으로 그리스도를 그려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힘이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뤄진 나라이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역사로 구원을 받고 살아가지만 어디까지나 첫열매이신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일 뿐이며, 종말의 때에 완성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고난을 초월하여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며 얻게 된 흔적이 있다면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난 영광일 것입니다. 보냄을 받는 성도들은 보낸 자를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고 고난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니 복음이 증거되는데 고난이 없는 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견딜 힘을 허락해 주십니다.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빌 클린턴의 영적 멘토로 유명한 토니 캄폴로 목사님에게 한 여인이 찾아와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저희 남편이 암에 걸려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병이 치유되기를 기도해 주세요. 토니 목사님은 남편이 치유되어 가정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1주일 뒤 여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저희 남편을 위해 기도해 주셨지요? 그리고 여인은 남편이 오늘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말을 할지 망설이던 목사님에게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제 남편은 그동안 분노에 차 있었어요. 하나님을 저주하기도 했고, 가족들이 찾아와도 상처주는 말만 잔뜩하고는 등을 돌려 버렸어요. 그런데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한 그날부터 남편의 그런 행동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데 남편의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3일전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웃고, 찬양하고, 말씀을 읽으며 남편을 하늘나라에 보낼수 있었습니다.남편이 건강하게 되진 못했지만 영혼이 치유되었으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마음의 방에 마음의 얼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죄함, 자책감, 두려움, 외로움, 분노와 편견, 완벽주의, 질투, 후회 등의 감정이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게 합니다. 남편을 떠나 보내며 영혼이 치유되었다고 고백한 여인의 말에는 하나님을 만난 영혼의 기쁨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령은 죄에 묶여있던 마음에 찾아 온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께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오순절날 성령께서 임하자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이 차별받고 경멸받던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였다는 소식이 이를 증명합니다. 사마리아 지역은 복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겨졌는데 성령은 이러한 생각을 변화시켜서 복음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도하자 믿는 사람이 많아지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에게 들렸습니다. 14절을 보시겠습니다.
14 한편,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은 사마리아 성읍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자,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으로 보냈다.
오늘 본문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성도들이 성령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안수기도를 해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니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을 지나치게 해석해서 안수해야 성령님이 오는 것으로 여기며 안수만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안수 자체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일으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사도들의 안수로 인해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는 기도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었기에 사마리아 지역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은사 주의자들은 은사를 예수님을 믿는 것과 다른 차원으로 여기며 지나치게 성령 세례를 강조하는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면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 생활에는 거듭남의 체험이 중요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신앙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을 변화시키는 주님을 실제로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한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빌립이 전도할때 부터 유난히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입니다. 마술쟁이 시몬인데 그는 스스로를 큰자라고 여겼습니다.
9절로 11절을 보시겠습니다. 9 ○ 한편, 그 성읍에 여러 해 동안 마술을 부리며 살아온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인물인 양 행세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10 그래서 성읍 사람들은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그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하면서 ‘이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다.’라고 칭찬하며 감탄하였다. 11 이처럼 시몬이 신기한 마술로 오랫동안 그곳 사람들을 놀라게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랐다.
오늘날 혼합주의 신앙은 무엇일까요?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시대에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면 신앙이 하나님과 혼합되어 집니다. 돈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이기는 하지만 목적과 수단이 바뀌면 혼합주의 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가치에 도전하여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이끄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일평생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도와 주십니다. 또한 지속할 믿음의 동력이 약해졌을 때 새힘을 허락해 주십니다. 18 마술사 시몬도 그 광경을 보았다. 사도들이 사람들의 머리에 손을 얹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는,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내밀면서 부탁했다. 19 “내게도 이런 능력을 주어,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게 해주십시오!” 마술쟁이 시몬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로 성령이 임하는 표적을 보자 자신도 그 능력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는 돈을 주고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는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돈벌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술쟁이 시몬은 성읍에서 자칭 큰자라 여기며 살았는데 성령의 능력을 받고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돈은 하나님 보다 높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보다 앞설 수도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돈을 무시하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은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교회 다니며 예배를 드려도 여전히 신앙의 목적이 잘 살아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모든 일들이 잘 풀리는 것에만 둔다면 믿음은 갈수록 미신화 될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믿음의 결과일수는 있지만 믿음 생활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영적이다'라는 것은 통합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의 가치와 몸의 부활을 함께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삶에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구원을 통한 복도 함께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새생명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죄로 부터 자유케 하시고, 고난을 이길 힘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릇된 생각은 신앙 공동체의 질서를 깨트리고 매우 위험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깨달음으로 인간 본성의 자기중심성과 돈을 우상화하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딤후 3:1-2)
성령님은 우리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힘으로 자기를 부인할 수 없고 자기 십자가를 질 수도 없습니다. 선한일 행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20 그러자 베드로가 시몬을 꾸짖으며 말했다. “감히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 하다니, 당신은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21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올바로 쓰지 못하니, 당신은 이 일에 아무런 상관도 없고 또 얻을 것도 없소. 22 그러니, 당신은 속히 악한 생각을 뉘우치고 주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런 악한 생각을 품었던 것을 용서해 주실지도 모르오. 23 내가 보기에, 당신은 마음이 뒤틀려 있고, 죄에 사로잡혀 있소.”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교회가 세상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세상적 가치, 능력주의, 결과주의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돌이키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할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베드로는 시몬에게 그의 악함을 회개하라고 촉구하며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 하여 주실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이들은 주님을 영접할때 한번 회개했으면 회개 할 것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그릇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한번 목욕했다고 해서 몸을 씻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 강림절을 맞이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고 싶은 마음을 부어 주십니다. 주안에서 잘 지낸다는 것이 재정적, 물질적 번영을 이루고 아무일 없이 평안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을 행하다 보면 손해 볼 일이 있습니다.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에게 이미 주신 성령은 우리를 지키고 영원토록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의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두 사도가 사마리아에서 여러 마을에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구원받을 사람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성령 강림절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기대하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능력이 충만하여지고 우리를 부르신 이유를 기억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초대교회가 보여준 성령운동
행 8장 14~17절 / 피종진목사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사도행전의 원색적인 성령의 운동은 바로 오늘 종말을 향한 이 시대에 우리를 통해서도 나타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일어났던 이 성령의 역사는 그 당시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팔레스타인으로 그 성령의 불길이 번져지게 해서 영국과 독일 등 전 세계 각 나라마다 복음이 전파되게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한국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다시 한 번 더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그곳에서 폭발되도록 2000. 이스라엘복음화대성회를 준비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성령의 역사는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귀한 그리고 우리 중심을 좌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J.C 페니는 '신앙생활의 가장 근본적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성령을 받는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말 신앙으로도 가장 앞선 사람이고, 백화점을 1,800개나 가지고 기독교 최고의 5대 재벌의 반열에 선 그런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령을 받은 이후에 '성령을 받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가장 근본'이라고 이렇게 체험적인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가 어떻게 성령운동을 일으켰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듣고 보니까 저들이 요한의 물세례는 받았는데 성령을 아직 받지 못했고 성령이 임하신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가 급히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첫째, 성령을 받게 하기 위해서 안수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14,15절) 그 후 17절에 보면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고 말씀했습니다. 안수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임직을 위한 안수가 있고, 병을 고치기 위한 안수가 있고, 성령을 받기 위한 안수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 그들이 성령을 받기를 위해 안수했을 때 성령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성령을 받아야 될까요? 오늘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8:9). 교인은 되되 그리스도인은 되지 못합니다. 교회에 등록을 하면 교인이 됩니다. 그러나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내 구주로 믿어야 됩니다. 또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됩니다. 또 성령을 받되 충만히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크게 쓰신 모든 인물들의 공통점은 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쓸모없고 버림받고 천대받고 가난하고 못생긴 그런 사람도 성령 받으니까 다 하나님이 크게 쓰신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도 마가 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했을 때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산 기도 등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충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을 선포하는 중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 10:44) 베드로가 말씀을 선포할 때에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입으로 '아멘'하여 화답하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다가 성령의 감동이 임해서 눈물이 쏟아질 때가 있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육신의 생각이 영의 생각으로 바꾸어집니다. 인성, 육성이 영성으로 바꿔져서 많은 지혜가 생기고, 삶의 지혜와 방법이 성령에 의해서 떠오르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임하면 그 순간에 모든 근심 걱정 불안 공포가 평안으로 바꿔집니다.
셋째, 성령이 충만한 자를 따로 뽑아서 하나님의 각기 직분을 맡겼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 6:3,4) 하나님께서는 일꾼을 선택하실 때 제일 첫째조건이 성령 충만한 사람을 따로 뽑아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직분을 맡아서 사역할 때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고,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의 손길 발길에 함께 하셔서 큰 일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일꾼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크게 쓰임받는 길은 성령 충만을 받는데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말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합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성령받은 사람은 어려움이 있어도 절대로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큰 일 났다'는 말도 자꾸 하면 안됩니다. 우리 사람이 생각할 때는 큰 일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큰 일이 아닙니다. 지구 덩어리 하나도 손바닥에 있는 것처럼 마음대로 좌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보니까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판단해보면 불같은 시험도 아주 작게 보입니다. 또한 성령이 함께 하면 모든 일이 쉽게 풀려나갑니다.
하나님께 직분을 크게 받은 사람일수록 성령 충만을 지속해야 됩니다. 그리하면 온갖 하나님의 복과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하고, 기도의 응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이 충만한 일꾼들을 선택해서 세웠을 때 저들은 실패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스데반은 순교의 위치에서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마지막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킨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행 7:55∼60).
사도행전 11:24에도 보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바나바를 가리켜 '착한 사람, 성령이 충만한 사람,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에 진설병을 드릴 때 '고운 밀가루로 기름으로 반죽하여 안팎으로 잘 구워서 매일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고운 밀가루'라는 것은 정말 부서지고 부서지고 부서질 때 고운 밀가루가 됩니다. '기름으로 반죽하라'는 것은 성령에 의하여 반죽하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성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그 분은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고귀한 제물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성령 충만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점점 강퍅해지고, 세상은 점점 사탄이 역사하고,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넷째, 성령이 사도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나게 했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행 5:12) 성령은 이와 같이 사도들을 통해서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나게 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심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9:31에 보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로 인하여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그 주변으로까지 서서히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시고 또한 성령을 통하여 권능을 부여하심으로 구속사역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매일처럼 기적 속에 살아갑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사람들은 기적을 못 믿어요. 하나님께서는 성령에 의해서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기적을 나타내게 합니다. 이 지구상에 하나님의 기적을 말할 때 반대하는 분이 있으면 오히려 여러분들이 질문해보세요. '이 지구상에 기적이 아닌 것을 말해보라'고 말입니다. 이 지구상에 기적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보세요. 하얀 쌀밥을 먹었는데 혈관에 가서는 어떻게 빨간 피로 변하고, 머리로 가서는 새까만 머리로 변합니까? 또 조그마한 꽃씨를 심었는데 아무리 현미경으로 천 배 만 배 확대해서 보아도 색깔이 나오지 않는데 빨갛고 파랗고 노란 예쁜 꽃이 되느냐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이 지구상에 기적이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부가 다 기적 속에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기적 속에 운행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것은 이 땅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편 139:7∼10에 보면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다윗이 기도한대로 이 지구상에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아무 곳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성령으로 모든 것을 진행하게 하시면서 성령의 역사를 이어지게 하십니다. 안수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 충만을 체험하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크게 쓰임받아 성령으로 말미암아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성령의 불길이 온세계로 퍼지게 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행 8장 18~21절 / 양향모목사(광성교회)
사마리아에 살았던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가 다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이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와서 표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그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가 정말로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마술사로서 그 표적행하는 것이 탐이 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복음을 따랐다기보다는 빌립을 보고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 강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가 빌립보다 한 수 더 높은 사람으로 보인 것입니다. 빌립은 표적을 행했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사람들에게 그 표적을 행하도록 만들어 주더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람들에게 안수를 하니까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았는데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빌립이 행하던 그 표적들을 행하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빌립을 보고 놀랐던 그가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는 더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붙었습니다. 빌립이 행하는 표적보다는 베드로와 요한이 행하는 성령을 받게 하는 능력이 더 큰 것인 줄 알았기 때문에 빌립에게 표적행하는 것을 배울 것이 아니라 베드로에게 성령을 받게 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을 좀 주고 그 기술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전에 그가 애굽에 가서 마술을 배울 때 돈을 주고 배운 것처럼 성령의 능력도 돈을 주고 사면 되는 줄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가 애굽에서 배운 마술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같은 것으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돈을 주고 기술을 배우거나 돈을 주고 능력을 사서 행하면서 돈을 벌수 있는 그런 것으로 잘못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시몬에게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라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 베드로의 말이 오늘 설교제목입니다. 시몬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한 마음을 가졌는데 그 바르지 못한 마음이 무엇인지 우리에게는 그 바르지 못한 마음이 없는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시몬의 바르지 못한 마음
먼저 시몬이 어떤 마음을 가졌기에 베드로가 시몬에게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라고 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8-20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주면서 자기도 사도들이 행하는 권능을 받아서 자기도 사람들에게 안수를 하면 안수를 받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시몬을 책망을 하면서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며 성령님을 사람 마음대로 받게 하는 것도 잘 못된 생각이라고 꾸짖었다는 것입니다.
1)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은 바르지 못한 마음입니다.
시몬의 잘못된 생각은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안수해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이 최고입니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돈이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해서이고 그 돈으로 행복을 이룩해보겠다고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꿈입니다. 그런 세상에 살면서 돈의 위력을 가지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 와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돈이면 다 해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일도 중요한 것들은 돈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진실한 사랑이나 참된 인간관계나 진정한 행복은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쳐올 때 불행한 일이 닥쳐올 때 돈으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화려한 장례식이나 화려한 무덤은 만들 수 있겠지만 내가 가는 길을 돈으로 정할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는 돈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돈 같은 것은 필요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돈 가지고 뭘 하려고 했다가는 큰 낭패를 만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귀한 것을 주시면서 그것을 값없이 아무런 대가없이 거저 은혜로 주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조건 없이 그냥 은혜 받으라고 하시는데 뭔가를 가져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가자고 전도하면 어떤 사람은 조금만 기다리라고 합니다. 교회에 가도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을 알아주고 헌금 안 하는 사람은 괄시하니까 돈 좀 벌어서 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니까 돈 번다는 핑계로 교회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운영해야 하니까 돈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기쁘시게 한다고 교회를 떠나서 돈을 벌로 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예전에 할머니들을 전도하니까 헌금할 돈이 없어서 교회 못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돈을 벌지 못하니까 헌금 안 해도 된다고 해도 제 말을 안 믿어서 제가 머리를 써서 오히려 교회에 오면 돈을 준다고 했습니다. 2천 원씩 드리면서 교회에 오시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한 열 분씩 오시더니 조금 있으니까 한 사람도 안 옵니다. 돈은 핑계고 교회에 오기 싫으니까 예수님을 믿을 수 없으니까 못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면 분명히 교만해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으면 이 세상을 좋아하고 천국을 좋아하지 않고 예수님 재림도 기다리지 않고 세상에서 더 잘살려고 몸부림을 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바짝 예수님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뒤를 돌아보지 않고 딴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따르기 때문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 44:1-2) 돈 없는 자도 오라고 하셨습니다. 돈 없이 값없이 와서 은혜로 주시는 귀한 것을 거저 받으라고 했습니다. 돈 벌어서 돈 가지고 사는 것은 배부르지 못하는 것이고 만족하지 못하는 것인데 거기 매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면 우리가 교회에 올 때 헌금을 가지고 오는데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헌금은 우리 자신들의 교회를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헌금을 수천억 원을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믿음을 살 수 없습니다. 거저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며 그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2)성령님을 사람이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시몬의 잘못된 생각은 돈으로 무엇이든지 해결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령님의 능력을 사람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로 예수님을 믿게 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게 하고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합니다. 이런 믿음과 관계되는 이런 모든 일들을 성령님께서 하십니다.
이 믿음과 관계되는 일을 위해서 성령님께서는 때로는 이 세상의 자연 법칙이 아닌 초자연적인 법칙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믿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기적적인 일들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런 귀한 일을 하시는 성령님을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들어가시거나 들어가지 마시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하시는 일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안수를 할 때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니까 사람이 안수하면 성령님이 오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안수한다고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임무를 받은 사도라고 해도 언제나 아무에게나 안수한다고 다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면서 혹은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도록 해 주시면서 안수라는 수단을 동원해서 사용을 하시는 것이지 항상 그렇게 안수한다고 다 성령님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 때에 복음이 세계만방으로 전파되는 중요한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특별히 보여주시기 위한 한 방법으로 안수를 사용하신 것이지 안수가 성령님을 오시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힘으로 오고가게 하실 수 없는 그 성령님이 오늘 우리에게 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억만금을 주고 살 수 없는 그 성령님이 오늘 우리에게 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의 생명을 거듭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진리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믿음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침을 받게 해 주시고 이 세상에서 죄를 멀리하고 점점 더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를 꼭 붙잡고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나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돈으로도 할 수 없고 힘으로도 할 수 없는 이 엄청난 일이 나에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바르지 못한 마음의 결과
시몬이 바르지 못한 마음으로 엉뚱한 요구를 한 결과를 오늘 본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마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지 않나 살펴야 할 것입니다.
1)네 은과 함께 네가 망할지어다.
본문 20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돈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사려고 한 시몬에게 네가 좋아하고 네가 의지하고 네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그 돈과 함께 네가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돈처럼 친절한 것이 없습니다. 돈만 있으면 진짜 대접을 잘 받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잘되고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그 돈에는 다른 어두운 한 면이 있습니다. 돈이 좋은데 그 돈이 그냥 생기지 않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의 노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잘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보험회사나 다단계 회사 같은데 가보면 먼저 사람들에게 돈을 쓰는 것을 가르칩니다. 화려한 파티에도 데리고 가고 호화판 요리 집에도 데리고 가고 좋은 옷 명품 가방도 사게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 좋은 것을 하면서 살려면 돈을 벌라고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화려하게 살라고 유혹을 합니다. 그 유혹에 빠져서 평범하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살던 사람들이 사기꾼이 되고 범죄자가 되고 인생 파탄에 빠지고 맙니다.
돈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만 돈에 노예가 되면 안 됩니다. 돈이 우리를 끌고 가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돈을 끌고 나갈 줄 알아야 합니다. 정당하게 벌고 아껴서 쓰고 바르게 쓰고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먼저 쓸 줄 알아야 합니다.
2)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본문 21절에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베드로나 요한이 전하는 이 진리의 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네게 돌아갈 분깃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이 진리의 도는 즉 우리가 가는 이 믿음의 길은 철저하게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마음으로 믿으면 의로운 사람이 되고 그 마음에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르는 것이 우리가 가진 진리의 도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바른가, 바르지 못한가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시몬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믿는 척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신앙을 고백했고 세례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고 예수님을 통해서 돈을 좀 벌어 볼까하는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돈을 주고 사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로 인해서 인기도 얻고 돈도 벌어보자는 잘못된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거짓으로 고백을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시몬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 이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말하는데 그런 행위가 복음을 위한 바른 마음에서 나오지 않고 잘못된 마음으로 자기 이익이나 자기 자랑을 위해서 행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행위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바른 마음 진실한 마음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교회를 오는 것도 어떤 마음으로 오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어떤 마음으로 드리느냐가 중요합니다. 찬송을 부르는 것도 기도를 하는 것도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충성을 하는 것도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바른 마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분깃도 없다고 했습니다. 분깃은 나누어가질 몫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상속받는 것을 분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상속 받을 것이고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인데 그것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받기 위함이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기 위함인데 우리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 중요한 것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돈의 노에가 되면 이 세상에서 망하고 그런 돈을 사랑하는 잘못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영원한 생명도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진실 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위대한 믿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능력으로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도록 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통하여 바른 마음으로 정직한 마음으로 이 믿음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관계가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기업을 받게 될 것입니다. 돈으로 사람의 능력으로 받을 수 없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와 계신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돈과 성령
행 8장 18~24절 / 김경년목사
위대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흥망성쇠는 외적인 요인에 있지 않고 내적인 요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국가의 흥망성쇠나 가정의 흥망성쇠도 내적인 요인에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은 교회의 내적인 사건 가운데 가장 큰 사건입니다. 그럼 성령 강림의 사건은 언제 어디서 일어났었습니까?
성령강림은 오순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2:1절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오순절"이란 원래 "제 50일"의 뜻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삼대 명절이 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입니다. 오늘날 교회력으로 보면 유월절은 부활절과, 오순절은 성령강림절과, 초막절은 추수감사절과 가깝습니다.
성령강림은 마가 다락방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거기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이십 명이나 되었습니다. 성령 강림의 사건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은혜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 강림은 어떤 모습으로 임했습니까?
먼저, 바람같이 임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불 같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2:2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바람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람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또한 바람은 어디든지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어디서든지 일하십니다.
2:3절에는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불의 혀"라는 표현은 불길이 타 올라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불은 더러운 것을 태워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상징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힘을 얻습니다, 권능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이 각 사람에 임한 것입니다.(요14:16, 행2:17)
이제 성령 강림의 결과는?
1) 방언을 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여명의 사람들이 일시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저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는데 이 소리가 나므로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나라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습니다.
2) 용기가 생겨 복음을 전했습니다.
원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다 도망을 갔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했었습니다. 제자들은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가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 강림 이후에는 저들이 용기가 생겼습니다.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3) 교회가 생겼습니다.
행2:42-47절의 말씀은 바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의 모습이 바로 이런 교회라고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되어 인류 역사상 가장 완전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성령충만한 교회의 모습을 사동행전 2:42~47절까지 소개합니다.
먼저, 초대교회는 교회 생활과 가정 생활이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에서는 서로 형제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내것과 네것을 서로 따지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힘썼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이렇게 됩니다.
가정에서는 온 가족이 서로 화목하여 모든 이웃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당시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생활이 빛이 되었습니다. 결국 교회는 날마다 부흥되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초대교회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방언을 말하고 각 가지의 이적이 있었으나 또한 핍박도 심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감옥에 잡혀 가고 감옥에 잡혀 간 사도들을 위하여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자 또 옥문이 흔들리면서 풀려나는 기적도 나타났습니다.
성령강림으로 시작된 초대교회가 3천명 5천명으로 점점 부흥되자 사도들은 사역을 분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생겨난 제도가 집사제도입니다.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을 전적으로 담당하고 구제와 헌금관리를 위하여 집사를 세웠는데 그 기준은 믿음이 좋고 성령이 충만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잘 아는 스데반 집사가 있습니다. 그분이 성령 충만한 집사로 일하다가 대제사장들에게 붙잡혀 돌에 맞아 죽습니다. 비참하게 죽으면서 스데반은 천사의 얼굴같이 밝은 미소를 띠며 원수같은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죽습니다. 이일로 초대교회 사도들은 유대와 각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기 흩어졌습니다.
또한 일곱 집사 가운데 빌립 이라는 집사가 있었는데 그는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동네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직업은 마술사였습니다. 그는 빌립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빌립을 따라 다니며 도와주었습니다.
사마리아성에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소문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그곳에 내려와서 예수 믿고 세례 받은 자들을 위하여 부흥회를 합니다. 특별히 안수 기도를 하면서 성령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를 할 때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이 불 체험을 하면서 방언을 터뜨리면서 기적을 나타내자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시몬이라는 사람이 자기도 성령 받기를 사모하지 않고 오히려 성령을 받게하여 권능을 나타내는 사도들이 부러워 그들 앞에 말합니다.
“나에게도 이 권능을 주어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소서 하면서 사도들에게 엄청난 돈을 내 놓습니다”(본문18~19절)
그 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사도들의 저주는 대단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베드로가 저주할 때 성령을 속였음으로 즉사했습니다. 시몬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겁이 덜컥생겨서 “나에게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시몬과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 믿고 세례 받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가 교회 안에까지 들어오고 있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잠은 못삽니다.
돈으로 집은 사도 행복은 못삽니다.
돈으로 보약은 사도 건강은 못삽니다.
돈으로 성직은 사도 성령은 살 수 없습니다.
모든 귀한 것에는 가짜가 있습니다. 가짜가 있다는 것은 그것이 명품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복은 귀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반드시 가짜가 있습니다. 복에는 진짜 복과 가짜 복이 있습니다. 진짜 복의 메이커는 하나님이시고 가짜 복의 메이커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아주 교묘한 사기꾼이기 때문에 가짜 복을 아주 진짜처럼 만들어 우리를 속입니다. ‘평안’과 ‘편안’ 둘 중에 하나는 진짜 복이고 하나는 가짜 복입니다. 예. ‘평안’이 진짜 복이고 ‘편안’은 가짜 복입니다. 물론 ‘편안’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편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이야기 할 때 ‘편안’은 가짜입니다. 유사품입니다.
‘편안’은 좋은 것 같으나 우리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나약하게 하며 권태롭게 합니다. 그래서 편안은 우리에게 참된 만족과 행복 그리고 진정한 쉼과 안식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편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편안이 아니라 평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돈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평안이 아니라 편안입니다. 그러므로 돈은 진정한 의미의 복이 될 수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시몬의 잘못을 본문 21-23절에서 이렇게 지적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한 마음을 가지면 안됩니다. 어떤 신앙생활에서도 바르지 못한 마음은 바르지 못한 행동을 낳습니다.
예배드릴 때에도, 헌금할 때에도, 사람을 볼 때에도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강림으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충만한 초대교회는 가장 완전한 교회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성령강림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성령충만함으로 핍박 가운데서도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하였습니다.
이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 돈과 성령을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으로 성령을 살 수 없습니다. 성령의 가치를 돈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통하여 나의 유익을 채우려 하지 말고 너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령충만함을 얻으려면 돈으로 안됩니다. 돈보다 더 귀한 것은 우리의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로 나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돈보다 더 귀한 일입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기도하면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님이 오십니다.
성령의 능력은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십니다.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기도하라
행 8장 22~25절 / 양향모목사
성경은 구속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구원과 역사 즉 구속사라고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성경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바르게 알고 구원에 이르는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의 핵심인 구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나,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려주는 교과서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신앙생활의 지침서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의 길에 대해서 알려주시면서 많은 사건들과 그 사건속의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여주며 우리의 삶이 본이 되게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보면 우리 주변에는 본받아야 할 긍정적인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고 본받아서는 안 될 부정적인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받고 따라야할만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본을 받아야 할 삶은 따라 하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보통 잘 따르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따라하지 말아야 할 부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본받지 말아야 될 부정적인 사람들의 삶을 비판하고 욕을 하면서도 잘 따라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런 부정적인 타락한 습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쉽게 따라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 잘못이 무엇인 줄 알고 나 자신도 그런 삶을 살지 않도록 철저하게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은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인물입니다. 우리가 따라 해서는 안 될 아주 나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를 악독이 가득한 사람, 불의에 매인 사람이라고 혹평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버젓하게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나쁜 행동을 사람들이 많이 따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잘 살펴보고 그런 신앙을 가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에 매인 사람
본문 23절에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마술사 시몬이 행하는 것을 보니까 그 마음에 악독이 가득하고 악독으로 불의에 매여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악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성경의 기록을 볼 때 시몬에게서 특별한 사악함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마술이라는 것을 배워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낸 사람입니다. 그리고 빌립이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고 빌립을 따른 사람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를 하고 성령을 받게 할 때 그것을 좋게 보고 자신도 그런 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가 그동안 세상을 살아오면서 잘못된 신앙관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대로 돈을 드려서 그 복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것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을 아주 악하게 평가를 했습니다. 그 마음에 악독이 가득하고 그 불의에 매여서 사는 사람이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마술사 시몬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 억울한 일입니다. 하나님 잘 믿어보려고 했고 사도들처럼 좋은 일 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악독한 일이 된다는 말에 그는 참 억울하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남의 것을 훔친 일도 없고 남에게 사기를 친 일도 없고 착취를 한 일도 없는데 오히려 좋은 일 해서 사림들에게 존경받았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좀 잘 모르고 진리를 잘 알지 못해서 좀 다른 방법으로 신앙생활을 했다고 악독이 가득하니 불의에 매여서 사는 사람이나 하는 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는 그런 비슷한 것은 더 악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며 따라야 하는지는 더더욱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선한 일을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피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섬기고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 알면서도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을 가지지 않고 형식적으로 믿는척하는 것은 몰라서 못 믿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요 더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시몬과 같이 비슷하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혼란스러워지고 거짓 선생들이 활기를 치고 가라지가 알곡보다 더 무성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비슷한 것을 가지고 사기를 치는 거짓선생들이나 이단들에게 더 이상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 광성교회 성도들은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고 철두철미하게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 시몬처럼 마술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시몬은 마술을 배워서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게 했습니다. 시몬의 거짓말에 많은 사람들이 다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부흥사들이 부흥을 시키고 부흥사들이 망하게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흥사들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몰려오긴 했는데 그래서 교회들이 크게 부흥을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부흥사들이 잘못 가르친 거짓교훈들 때문에 엉터리교인들이 많이 양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부흥사들이 성도들을 속인 것 중에 하나가 마술사 시몬처럼 마술을 배워서 심리적인 것을 이용하고 또 귀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약간의 기적을 행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속인 것입니다. 그런 사기꾼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고 되지도 않는 기도응답을 받아 기적을 일으킨다고 많은 시간들을 허비했습니다.
2) 시몬처럼 잘못된 신앙을 따르지 마시기 바랍니다.-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시몬은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무엇을 믿든지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만 다니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줄 알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엉터리로 믿고 오히려 반대되는 것을 믿고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 됐다고 착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그 사실을 온전하게 믿고 진실 되게 고백하는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이런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좋은 말이긴 하지만 바른 믿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착하게 못사니까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하니까 우리가 좋은 일을 하지 못하니까 그런 일들을 통해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의 그런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나 중요한데 그런 기본도 모르면서 착하게 살자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살자고 지껄이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3) 시몬처럼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인지 돈을 믿고 따르는 것인지 잘 모를 정도로 돈이 모든 것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이 돈이 기준이고. 사람이 사는 목적도 이 돈이 기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에 얽매여서 주의 일도 못하는 사람도 되지 말아야 합니다.
4) 시몬처럼 세상의 출세를 위해서 믿음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핵심인물 두 사람은 원래 둘 다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다 같은 민족으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지만 두 사람의 가는 길은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바쳤던 사람입니다. 그가 한번 설교해서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예수님 믿게 하고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기도해서 이적도 행하고 안수해서 성령님도 받게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사람들을 자기 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붙잡고 교회당을 건축하고 그들이 바치는 헌금으로 잘 살려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살다가 복음을 위해서 거꾸로 십자가를 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술사 시몬은 종교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나중에는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비판하고 영지주의라는 이단의 괴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인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교리를 정하고 많은 사람들을 진리에서 떠나게 하고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이런 행동이야 말로 악독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는 베드로 사도가 가는 길을 따르려고 하지 않고 마술사 시몬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몬처럼 거짓 이적을 행하고 거짓 경건으로 시몬처럼 돈을 목적으로 삼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 출세를 위해서 교회를 이용하는 삯군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기보다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 생각들을 설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부인하거나 약하게 평가 절하하는 것은 그것이 그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 앞에서 사악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돈에 노예가 되어서 이 세상의 행복이나 성공의 노예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게 하는 사악한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런 진리를 깨닫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진리를 따라서 바른 마음을 가지고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가 얼마나 복된 사람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본문 22절 말씀에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시몬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 죄를 지적하면서 그 악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제시한 것입니다. 먼저 그 악함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흉악한 죄라도 혹시 그 마음에 품은 흉악한 죄악을 용서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혹’이라는 말은 잘 하면 혹시라도 용서 받을 길이 있지 않겠느냐는 그런 가능성을 이야기 한 것은 아닙니다. 마술사 시몬이 품은 죄악이 너무나 커서 용서 받기 힘이 드는 일인데 회개하고 기도하면 혹시 하나님의 마음이 변해서 긍휼을 베푸셔서 용서하지 않겠느냐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여기 ‘혹’이라는 말은 강조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냥 대강 회개하고 대강 기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철저하게 회개를 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해야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용서받을 수 있는 그런 죄가 아니라 아주 흉악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바르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믿지 못하는 죄는 대강 적당히 회개하고 기도하면 용서 받는 그런 죄가 아닙니다. 아주 철저하게 회개를 하고 아주 철저하게 고쳐야 되는 아주 중요한 죄입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보다 엄청 무서운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의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철저하게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몬은 이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의 죄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지 몰랐고 거기서 머물러 있으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회개란 먼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점검해보는데서 시작을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기 싫어합니다. 잘못이 생각이 나더라도 인정을 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지 못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것을 보고 본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고 나쁜 것을 보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 반대의 길로 가야되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본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자기 자신을 너무나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흉을 보고 욕을 하는데도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이 잘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삽니다.
본을 받을만한 삶을 사는 사람은 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간은 악하고 욕심이 많고 틈만 있으면 나쁜 길로 가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수시로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길로 가고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잘못된 일이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할 기회도 있고 바른길로 다시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일이 발견되면 즉시 그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 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회개란 잘못을 뉘우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길을 돌아서서 다시 바른 길로 가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회개입니다.
무엇이 잘 안되면 왜 잘 안되는지를 살피고 그 어려운 일이 다시 오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기도해서 어려운 일이 해결되었다고 또 다시 그런 길을 반복해서 가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늘 나 자신을 살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서 바른 길로 돌아서야합니다.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본문 24절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마술사 시몬은 베드로 사도가 그렇게 간곡하게 그의 잘못을 알리고 회개하고 기도할 것을 요구했지만 시몬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돈과 함께 망할 것이고 하나님을 뒤에서 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는 믿음을 통해서 얻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은 얻지 못할 것이며 그런 그의 행동은 악독한 것이고 불의에 매여 사는 비참한 짓임을 명백하게 이야기 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그런 잘못들을 철저하게 알고 회개를 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잘못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 잘못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느끼지도 못했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서 바른 길로 가려는 마음도 없었고 회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기도도 하지 않았고 사도들에게 기도해달라고만 요청을 했습니다.
그 기도요청의 내용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해 달라거나 바른 길로 가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자신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든지 바르지 못하든지 간에 상관이 없이 계속 살던 대로 살 것이니까 하나님께 벌만 받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돈은 계속 사랑하는데 돈으로 망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엉터리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구원은 받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희생도 없이 헌신도 없이 내 살대로 살테니까 잘못한다고 벌도 주지 말고 복만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영광 돌리고 그런 것 하기 싫으니까 그냥 복이나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술사 시몬을 통하여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교훈을 받았습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잘못 믿는 믿음이 얼마나 악한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바른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그런 것이 없는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철저하게 회개하고 바른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아는 것이, 바른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양향모목사 / 행 8:25
오늘 본문 말씀은 단순하게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왔다가 그 임무를 완성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말씀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데 돌아갈 때 그냥 돌아가지 않고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고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은 시시하게 별 볼일 없는 이야기를 아무 의미 없이 그냥 기록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 말씀은 어느 한 구절 의미 없이 기록한 부분은 없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그 시대나 아니면 다른 어느 시절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주는 말씀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도 당시에는 그냥 지나가는 단순한 한 사건의 기록이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귀한 의미를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오늘날 설교가 방향을 잃고 그 힘을 잃고 세상이야기나 듣기 싫은 잔소리로 인식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당시에 사도들이 주의 말씀을 증언하고 복음을 전하던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오늘 본문 말씀에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새”라고 했습니다. 두 사도가 사마리아성에 와서 주의 말씀을 증언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증언하여 말하다”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냥 말한 것이 아니라 증언하여 말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설교한다는 뜻을 가진 용어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혹은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또는 복음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선포할 때 그 선포를 여러 가지 용어로 쓰고 있습니다.
“가르치다”라는 말을 설교라는 말로 쓰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 5장의 산상보훈을 시작할 때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서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5:2)라고 하셨는데 이 가르치다는 말을 설교에 사용해서 설교를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인지 그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기도 하고 또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포하다”라는 말을 쓸 때도 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새”(눅8:1)라고 하실 때 여기서 “선포하다”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여기 선포한다는 말은 신하가 왕명을 받고 그 왕명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설교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왕의 신하가 어인이 찍힌 문서를 하나 들고 와서 어명이요 하면 무릎을 꿇고 그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그 어명이 사약을 받는 것이라고 해도 왕이 있는 왕궁을 향해서 절을 하고 그 사약을 받게 하는 것이 어명입니다. 설교는 어명과 같이 어명보다 더 엄격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고 그 어명을 듣는 사람들은 어명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권면하다”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행18:4)라고 했는데 여기서 권면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라고 호소하고 설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설교는 진리를 전파하고 그 진리를 따르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증언하다”입니다. 본문에서 증언하다는 헬라어로 디아말튀로마이(διαμαρτύρομαι)라는 단어를 썼는데 “증언하다”는 뜻 외에 “엄숙히 확언하다, 경고하다, 엄명하다.”라는 뜻으로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이 단어는 법정에 출두해서 자기가 본 사실을 증인으로서 그대로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말에서 순교자라는 말이 나왔듯이 어떤 일이 있어도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사실이 아닐 때 목숨이라도 내어놓을 수 있다는 각오로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옛날의 설교는 주로 “선포하다”는 말에 가까운 설교였습니다.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대로 따르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믿음이 좋아서 목사님이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하면 아멘으로 받고 그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하나님의 명령을 선포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목사들이 자기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처럼 잘못 전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외쳐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지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설교를 왕의 명령을 선포하듯이 해도 잘 안 들으니까 그것이 왜 하나님의 말씀인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기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성경공부가 엄청나게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흥회도 사경회라고 해서 성경을 공부했고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을 동원하여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을 했습니다.
성경공부를 많이 해서 진리를 잘 알면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잘 할 줄 알았는데 공부를 많이 해도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머리만 잔뜩 커져서 지식만 늘었지 그런 지식이 곧 삶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배워서 성경지식으로 남을 비판하는 일에나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더군다나 교회 안에 거짓 선생들 이단들이 많이 들어와서 엉터리 공부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성경공부가 신앙을 망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많은 이단들이 성경공부 가르쳐준다고 유혹을 해서 성경의 진리가 아닌 자기들의 엉터리 교리로 사람을 세뇌시켜서 이단에 빠지게 만듭니다. 무료성경공부니 하는 단체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가르쳐도 안 되니까 이제는 권면하는 설교 설득하는 설교를 합니다. 교리를 가르쳐주고 신앙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설명해주고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호소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남의 호소나 부탁이나 권면이나 이런 것에 잘 동조하지 않습니다. 남의 부탁 다 들어주다가는 내 할 일을 못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못 들어주고 남의 부탁 들어주다가 망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설교자들이 고민이 많습니다. 왕명이라고 선포를 해도 안 되고 진리를 조목조목 가르쳐도 안 되고 부탁을 하고 호소를 해도 안 되니까 이제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듣든지 말든지 듣고 믿든지 말든지 그냥 시간되면 최선을 다해서 설교를 하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듣고 감동 받을 가슴이 있는 사람은 감동을 받고 실천한 손발이 있는 사람은 실천을 하고 이것저것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요 그냥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사도들의 설교 형태가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두 사도의 설교 형태는 증거하여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이것은 내가 목숨을 걸고 확실하게 증언하는 것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이익을 채우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당신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는 모든 것을 다 잃고 목숨까지 담보로 잡히면서까지 이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목숨까지 바칠 것을 각오하면서 하는 말이 시시한 이야기를 해서 되겠습니까? 시시한 이야기 하면서 거기 목숨까지 걸겠습니까? 목숨까지 바치면서 꼭 해야 하는 이야기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중요하고 너무나 확실하고 이 길 밖에 없는 아주 중요한 진리의 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살펴볼 것은 그들이 목숨까지 걸고 증언한 것이 “주의 말씀”이라고 했는데 그 주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모든 것을 바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외치느냐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라고 하면 넓은 의미에서 성경 말씀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성경 말씀 전체를 다 주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주의 말씀이란 그런 넓은 의미에서의 말씀이 아니라 좁은 의미에서 주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경 전체를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의 말씀은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한 대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들이 증언한 주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이나 여러 제자들에게 또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도 여러 가지 말씀들을 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 전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정말로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말씀을 증언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만나서 많은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그가 처음 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직접 하신 말씀으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던 시몬에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우리가 그런 경험을 했으면 그 이야기가 엄청 자랑스러운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네게 오셔서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순종했더니 엄청났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별 것 아닌 줄 알고 잡은 고기도 다 버리고 고기 잡을 배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그였기 때문에 고기 엄청 잡은 그런 이야기를 중요한 이야기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좋아하는 말씀은 “영생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난 후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만 따라 다니면 먹고 사는 문제가 다 해결이 되니까 다른 것 할 필요도 없고 오직 예수님만 따라 다니면 만사가 다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영생에 관한 말씀을 하시자 사람들이 하나 둘 다 떠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하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8)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말한 영생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9-40)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6-17)
구원에 관한 말씀, 영생에 관한 말씀,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에 관한 말씀이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해준 주님의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많은 설교자들 가운데 이런 영원한 생명에 관한 말씀을 자기 삶을 다 바쳐서 자기 목숨을 다 바쳐서 순교하는 각오로 증언하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삶을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영광을 위해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거짓말을 섞어가면서 설교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 보도된 글을 보니까 어떤 기독교 학생운동 본부의 대표 목사가 여고생을 농락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또 어떤 유명한 강사 목사는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고위 공무원으로 재직했었으나 교통사고 한 다리를 잃고 좌절 속에서 방황하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일어났다고 간증을 하고 특강을 하고 다녔는데 알고 보니까 다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학력도 위조고 공무원 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심지어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것도 거짓으로 탄로 났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정말로 베드로와 요한 같은 주의 말씀을 바로 증언하는 증언자가 그립습니다. 목숨을 걸고 진리를 외치던 순교자의 신앙이 그립습니다.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두 사도가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는데 이 복음은 앞에서 그들이 증언한 주님의 말씀 즉 영원한 생명 영원한 찬국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할 때 정말로 기뻤을 것입니다. 그들이 전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시한 것 좀 나누어줘도 마음이 기쁩니다. 먹을 것 조금 나누어 줘도 기쁘고 작은 선물 하나 줘도 기쁩니다. 받는 사람도 기쁘겠지만 주는 사람도 기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소식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도 기뻤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소식은 복된 소식입니다. 너무나 기쁜 소식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귀한 소식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허무하게 살았는데 영원한 세상이 있다는 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그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려면 율법을 다 지키고 선을 행하고 수준 높은 삶을 살아야 되는 줄 알고 포기하면서 살았는데 아주 간단한 길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 인 줄 인정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서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 높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그 아들의 지위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쁜 소식을 이런 복된 소식을 어찌 전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시간만 있으면 틈만 있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전해야 할 복음이 우리가 믿는 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나쁜 사람들이 자기만 천국 가려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가르쳐줍니다. 기도해서 응답받고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 이런 쓸데없는 것만 잔뜩 이야기 하고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는 감춰 버립니다. 천국 이야기 하면서도 아무나 잘 못 가는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율법도 지켜야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고 충성도 해야 되고 그래야 가는 것이지 그냥 믿기만 한다고 가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나쁜 사람들이 교회에 잔뜩 모여 있습니다. 복음을 복음으로 전하지 않고 다른 것을 복음이라고 전하고 사람의 영원한 생명을 수종하게 여기지 않는 나쁜 사라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이 복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누구에게든지 해당이 되는 복음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똑똑한 사람이나 미련한 사람이나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다 천하보다 더 소중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천하보다 더 소중한 생명을 영원토록 가지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의 혼혈족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 더 무시하는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비천한 사람들에게도 복음은 유효합니다. 그들도 복음을 믿고 따르면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사마리아인 중에서도 저 산골 촌마을 사람들에게도 이 복음이 필요합니다. 촌마을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백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귀한 복음을 산골까지 다니면서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너무나 귀하고 중요한 것인 줄 알았기 때문에 세상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도 버리고 목숨이 위태로운지도 알면서도 당당하게 주의 말씀을 이 복음을 증언하며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이 세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족에게 우리 이웃에게 세상 끝까지 시골 구석구석까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 광성교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