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상을 받으라
요이 1:7-13
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8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9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12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3 택하심을 받은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하느니라
요이 1:7-13 / 거짓 지도자들을 주의하십시오. 수많은 거짓 지도자들이 사방에서 활개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진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거역하며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8) 그들과 같은 인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상을 얻으려고 애쓴 그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래야 주께서 주실 큰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9)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흘려 버리고 다른 길로 빠져 방황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잘 따른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을 다같이 모실 수 있게 됩니다. 10) 만일 누가 여러분을 찾아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가르치려 하거든 그 사람을 집에 들여놓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를 격려하는 따위의 일도 하지 마십시오. 11) 만일 여러분이 그런 자와 어울린다면 여러분도 그 악한 일에 가담하는 자가 됩니다. 12) [작별인사] 아직도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편지로는 더 이상 쓰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즐거운 시간을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13)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당신 자매의 자녀들이 당신에게 문안합니다.
구원은 어디까지나 은혜의 문제이지 행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신실함은 나름대로의 보상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미혹하는 자(7-11) 우리말 성서에는 생략되었지만 본문은 원래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이 접속사는 4-6절에서 요한이 쓴 모든 내용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미혹케 하는 자”란 단어는 ‘길을 잃게 하다’ 혹은 ‘방황하게 만들다’란 의미를 가진 단어의 어근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불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부인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시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유일한 길은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는 길뿐입니다. 그분이 육체로 임하시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이니 하나님께로 나아 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곧 그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합니다. 사랑에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진리에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 거짓 교훈으로 무장한 “미혹하는 자”들로 인해 진리의 위기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위기 때문에 요한은 자신의 독자들이 서로를 향한 사랑 속에 더욱 견고하게 서 있도록 권면합니다. 그와 같은 사랑은 이단을 막아내는 교회의 가장 강력한 방어일 수 있습니다. 요한은 거짓 교훈을 상세하게 분석하거나 해부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리를 더 적극적으로 선포하는 데 전념합니다. 그렇게 하면 진리 지체가 자연스럽게 그리고 본질적으로 오류를 분해하고 파괴 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12-13) 요한은 글이 아니라 말로, 편지가 아니라 방문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쓰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교회를 방문하여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들 서로간의 기쁨이 충만하고 온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서로 간의 기쁨이 충만해지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요한이 그들과 만나 나누고 싶은 말의 중심은 다름 아닌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훈, 그리고 이에 따른 사랑과 진리 안에서의 서로 간의 사귐이라는 것을 예상하게 해 줍니다.
적 용 : 우리 모두 각자 삶의 자리에서 진리를 행하다가 사랑 가운데서 함께 만나 더욱더 기쁨이 충만한 교회가 되길 위해 기도합시다.
논어에 보면 익자삼우손자삼우<益者三友 損者三友>, ‘보탬이 되는 벗이 셋이고, 해가되는 벗이 셋이다.’라는 글을 봅니다. 어려움이나 걱정이 있을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 자기 일처럼 조언해주고 지혜를 빌려주는 친구는 큰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결국 도움으로 일을 이루기 마련이만, 도움을 받겠다는 속셈을 가지고 친구를 사귄다면 진실한 친구를 얻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설 교 >
진리와 사랑 안에서 미혹하는 자를 물리치십시오
오늘 본문 7절 말씀은 성경 헬라어 원문에 있는 한 단어를 생략하여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원래 성경 원문에는 7절 말씀이 헬라어로 ‘호티’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는데, 한글 성경은 이 말의 의미가 생략되어있습니다. 이 ‘호티’라는 단어는 ‘왜냐하면...때문에’라는 뜻을 가진 접속어입니다.
그러니까 원문에 가깝게 7절을 직역해서 읽으면 “왜냐하면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가 됩니다. 그러니까 앞에 나오는 1-6절까지의 말씀이 오늘 7절 이하의 말씀의 이유가 되어 연결되어있습니다. 1-6절이 말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리 안에서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5-7a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왜냐하면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진리 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할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사랑하는 데 실패하면 그것은 곧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데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무너뜨리려는 거짓진리의 이단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까지 이단들이 드나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성도를 미혹합니까? 거짓 교사들 즉 이단들은 자신들은 항상 새로운 빛, 새로운 계시, 전에 알지 못하던 새로운 말씀을 주는 것처럼 위장하여 성도들에게 접근합니다. 그들은 기존 교회에는 진정한 말씀이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사도들로부터 이천년 간 이어져 온 정통신앙의 가르침을 진부한 것이라고 폄하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들은 믿음의 근본 진리를 능히 뛰어넘는 초월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이단들의 모습이 사도 요한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7절을 다시 보십시오.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몸을 통해 분명히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고 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사실입니다. 즉 성육신 사건은 기독교의 정통교리입니다. 요한복음 1:1,14에 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런데 사도 요한 당시에 이단은 이것을 부정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당시에 새롭게 등장하여 유행하던 영지주의 사상에 의하면, ‘영’은 거룩하고 완전한 존재이지만 ‘육’은 불완전하고 거룩하지 않은 저급한 존재라는 이원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하나님이 불완전한 육체 속에 도저히 임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몸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기독교의 정통 신앙 자체를 공격하는 적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들만 갖고 있다는 새로운 빛, 새로운 계시, 전에 알지 못하던 새로운 말씀이라는 것은 진리의 터 위에 수천 년 동안 다져진 기독교 정통신앙에 비추어 보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신앙인들조차 이런 거짓 가르침에 빠지고 이단에 넘어지는 것일까요? 자신이 참다운 진리와 사랑에 온전히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진보적이고 새로운 것만 찾기 때문입니다. 5절과 6절 각각 후반부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니라.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어떤 성도들은 이미 주어진 정통신앙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키지 않으면서 새로운 교리나 가르침만 쫓아다니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9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여기서 ‘지나쳐’라는 말의 원뜻은 ‘진보적인’, ‘혁신적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단들의 주장은 확실히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는 지나치게 앞서 갑니다. 무엇을 지나쳐 앞서 갈까요? 9절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교훈’ 즉 주님이 이미 가르쳐 주신 교훈을 벗어나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로 결국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훈인 진리와 사랑은 예수님께서 친히 전해 주시고 몸소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박해와 순교의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교훈을 전했습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우리는 이 교훈은 잃지 않아야 합니다. 내게 그리스도의 교훈인 진리와 사랑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이단은 강경하게 거부하고 대응해야 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집에 들이지 말라는 것과 인사도 하지 말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그들과의 관계를 차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참된 정통신앙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들이 영적으로 눈 먼 것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용납하거나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전에 맺은 관계 때문에 그들을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고 용납한다는 것은 그들을 안심시키고 지원해 주는 일일 뿐만 아니라, 교회 스스로가 미혹의 위험에 빠지게 될 수 있는 일입니다.
혹시 어떤 분들은 그것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이 말씀하는 이 명령들이 가혹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참된 사랑에서 나온 관용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무지와 진리를 지키는 일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온 관용일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깨닫고 의지적으로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진리와 사랑이라는 그리스도의 바른 교훈 안에 거하여, 어떤 미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함으로 영생의 상을 받아 누리는 우리 교회와 온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