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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170301 / 마 1:1-17 /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17.02.28|조회수115 목록 댓글 0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1:1-17

첨부파일 새벽몌배20170301.hwp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1:1-17 /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3:23-38]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 2)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았다.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았다.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았다.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갈 무렵에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았다. 12) 바벨론으로 끌려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았다.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았다.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리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요셉을 낳고. 이 요셉의 아내인 마리아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 17)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부터 다윗에 이르기까지가 14대이고,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까지가 14대이며, 바벨론으로 끌려간 때부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가 또한 14대이다.

 

본문은 예수님의 탄생 족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1-16)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을 축복 언약의 시작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아브라함)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3) 이처럼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의 시작을 아브라함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는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무엇보다 예수님의 혈통적 그리고 법적 자격에 있어서 다윗 왕가의 계승자임을 먼저 밝히는 것입니다. 주전 1000년경 시작된 다윗의 왕권은 주전 586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근 600년 가까이 단절되었습니다. 이러한 단절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삼하 7:12-13).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 이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 되어야 하며, 다윗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구세주 예수이신 것을 드러내는 사명적 명칭과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의 그리스도가 결합된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적으로 말하자면 메시야를 뜻합니다. 즉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셨음을 그 이름에서부터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1장에서만 그리스도를 세 번(1, 17, 18)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말하려는 마태의 의도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리기 위하여서 부단히도 노력하였습니다. 그러한 결실로 후기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고유 명사화 되었습니다.

 

그런즉 열네 대더라(17) 17절에서는 14대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그렇다면 14대가 세 번 나오니까 총 42명의 조상이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41명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 왕조 이전의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명이고, 다윗 왕조 이후의 솔로몬부터 여고냐까지 14명이며, 포로기의 스알디엘부터 예수님까지는 13명입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적합한 해석은 다윗(דוד,달렛4+와우6+달렛4)의 이름의 숫자에 맞추기 위한 의도로 보는 것입니다. 또한 왕이 되기 전 다윗과 왕이 된 이후의 다윗을 구분해야 한다는 견해와 포로기 이전의 여고냐와 포로기 이후의 여고냐를 구분하여서 14대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마태는 이 족보를 통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다윗을 통하여서 실현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완성하셨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적 용 :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진정으로 당신의 그리스도이십니까? 사순절의 시작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생각하는 사순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건에는 출처가 중요합니다. 일본의 유물을 조작한 것으로 유명했던 후지무라 신이치라는 미리 만든 유물을 발굴 예정 장소에 몰래 묻고, 발굴해서 찾아내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후지무라의 유물조작 사건은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했으므로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었습니다. 그가 발굴만 하면 엄청난 유물이 쏟아져 나왔기에 ()의 손이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기자의 취재로 조작한 사기극임이 밝혀졌습니다. 마태는 아브라함으로 시작하는 자신이 기록하는 복음서의 출처를 명백히 밝힘으로써 글을 시작합니다.

 

< 설 교 >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계보, 곧 예수님의 족보를 밝히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전반부, 곧 마태복음 1:1-17 말씀은 예수님의 인적 계보를 밝힙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의 후반부, 곧 마태복음 1:18-25 말씀은 예수님의 신적 계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18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고 했습니다. 1절에 나오는 계보와 18절에 나오는 나심은 헬라어로 똑같은 단어입니다. 단지 번역을 다르게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1장의 전반부는 예수님의 인적 계보로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반면에 마태복음 1장의 후반부는 예수님의 신적 계보로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41~42에서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이 대답한 것처럼,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셔야만 했습니다. 이에 따라 마태복음 1:1~17에 나오는 예수님의 인적 계보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심을 밝힘으로써,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적 계보만으로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려면,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인성이 필요한 이유는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셔야 했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 온전한 대속물이 되실 수 있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인적 계보는 예수님의 온전한 인성을, 예수님의 신적 계보는 예수님의 온전한 신성을 밝힙니다.

오늘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인적 계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안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한량이 없으신 은혜를 깊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예수님의 인적 계보를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하는 남자들을 살펴봅니다.

마태복음 1:17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하는 모든 대수는 열네 대씩 삼대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계보에는 총 사십 명이 넘는 남자의 이름이 등장하는 셈입니다. 마태복음 1:1 말씀처럼, 그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며 또한 다윗의 후손들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라고 해서 우리보다 더 낳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들에 불과했습니다. 이 사실은 그들의 조상이라고 추앙을 받는 대표적인 두 사람, 곧 아브라함과 다윗의 삶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로마서 4:11~12 말씀과 같이,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이며 동시에 믿음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인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온전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도 분명 흠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아브라함은 두 번씩이나 그의 아내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비겁하게 속였습니다. 한 번은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대로, 애굽의 바로를 속였습니다. 또 한번은 창세기 20장에 있는 말씀처럼, 그랄 왕 아비멜렉을 속였습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욕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기다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사라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들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의 자손대대 많은 불행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허물이 있는 아브라함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음으로 다윗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성군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다윗의 삶에도 흠이 많았습니다. 우선 그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자기의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따라서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는 엄청나게 큰 죄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쟁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는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또한 다윗은 자식들을 교육하는 일에도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서로 싸우면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처치하고,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죄도 많고 허물도 많은 다윗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추앙을 받게 된 것도, 또한 그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것도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였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계보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후손들도 또한 그 뒤를 이은 다윗의 후손들도 모두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삶도 결코 온전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들 모두 우리와 똑같이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모든 부족과 허물을 온전히 극복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이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하게 된 것은 그들에게 어떤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그와 같이 된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하는 여자들을 살펴봅니다.

예수님의 인적 계보에는 모두 다섯 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의 계보에는 여자의 이름이 오르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여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우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1:3 유다는 (1)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마태복음 1: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마태복음 1:5 살몬은 (2)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3)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마태복음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4)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태복음 1:16 야곱은 (5)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여기에 다섯 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다말과 라합과 룻과 우리야의 아내와 마리아입니다. 우리야의 아내는 이름이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구약성경을 통해서 그의 이름이 밧세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다섯 명의 여자를 차례대로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다말입니다.

창세기 38장을 보면, 다말은 가나안 여자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이방 여자였습니다. 다말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다말은 창녀 행세를 하면서, 그의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했습니다. 그리고는 쌍둥이 아들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분명 다말은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가 낳은 베레스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이것은 도무지 설명될 수 없는 일입니다.

2. 라합입니다.

여호수아 2장을 보면, 라합은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습니다. 앞에 나온 다말은 그의 자손을 갖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창녀 행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그것이 그의 직업이었습니다. 물론 다말처럼 라합도 이방 여자였습니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여호수아가 보낸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숨겨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 그와 그의 가족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 뒤 그는 이스라엘 사람 살몬과 결혼해서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라합은 이방 여자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기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이름은 예수님의 계보에 올랐습니다. 또한 그가 낳은 아들 보아스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가능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3. 룻입니다.

룻기를 보면, 룻은 모압 여자였습니다. 룻도 역시 이방 여자였습니다. 23:3을 보면,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원칙적으로 모압 여자는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이스라엘 남자 보아스와 결혼하고, 그의 이름은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가 낳은 아들 오벳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또한 전적으로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4. 우리야의 아내 곧 밧세바입니다.

밧세바가 다윗 왕의 아이를 배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는 최전선으로 보냄을 받아 전투 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후 다윗 왕은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일찍 죽었습니다. 그 뒤 그들 사이에 솔로몬이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밧세바가 예수님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나, 그의 아들 솔로몬이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5. 마리아입니다.

누가복음 1:28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말한 것처럼, 마리아는 은혜를 받은 자였습니다. 마리아는 은혜를 베푸는 자가 아니라, 은혜를 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된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은혜란 무슨 뜻입니까?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사랑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죄인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46-47에 기록된 마리아의 찬양처럼, 마리아에게도 구주가 필요했습니다. 마리아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야 하는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마리아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마리아를 높이거나, 마리아를 우상화하지 마십시오. 마리아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야 하는 죄인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에게 초점을 맞추면 안 됩니다. 마리아에게 베풀어졌던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계보에는 모두 다섯 명의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도 모두 다 죄인이었습니다. 심지어 불미스러운 과거를 지닌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름이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하는 세 시대를 살펴봅니다.

마태복음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1)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2)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3)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예수님의 계보는 세 시대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입니다. 둘째,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입니다. 셋째,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입니다. 이들 세 시대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입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의 여명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족장들 때부터 가나안 땅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한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을 했습니다.

그 후 여호수아의 인도로 그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했습니다. 뒤이어 여러 사사들이 그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다가 사울 왕과 연이어 다윗 왕이 세움을 입으면서, 나라가 든든히 서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 시대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무르익어 가던 때였습니다.

2.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입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의 쇠퇴기였습니다.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 때에, 이스라엘은 잠시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나자,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뉘어졌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 전체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며,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습니다. 그러다가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남쪽 유다도 여호사밧과 히스기야 그리고 요시야 때, 그저 잠시 하나님을 경외할 뿐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유다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했습니다. 결국 유다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3.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입니다.

한 마디로 이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의 암흑기였습니다. 이 시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별반 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입니다. 그들 대부분의 이름은 우리에게 아주 생소할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돌아왔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들은 나라의 주권을 상실하고,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의미 없는 존재로 겨우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의 역사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 성장하다가 쇠퇴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을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보잘것없는 역사를 가진 이스라엘이었지만,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니 이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마태복음의 첫머리에 나오는 예수님의 인적 계보를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계보에는 그저 옛 사람들의 이름만 나열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계보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뚜렷하게 넘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하는 남자들을 통해서, 또한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여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하는 세 시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끊임없이 넘쳐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계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완전한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죄인들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되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9:13 말씀처럼,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로 죄인들을 그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은혜로 죄인들인 우리를 불러서 구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담고 있는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를 생각해봅시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기 이전에, 마태는 본시 세리였습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세리는 창녀처럼 죄인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마태를 부르시고, 그를 구원하셔서, 자신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직접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마태는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계보를 통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밝혔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고, 우리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합시다. 예수님의 은혜는 한량없으십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무한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풍성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지금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한량없으신 은혜로 우리의 더러운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씻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한하신 은혜로 우리의 모든 부족을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풍성하신 은혜로 우리의 모든 곤경을 돌이켜주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변함이 없으신 은혜로 우리의 모든 실수와 실패를 완전하게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성탄의 달을 맞이해서, 이와 같은 예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인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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