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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170721 / 삿 6:11-18 / 기드온을 부르심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17.07.20|조회수254 목록 댓글 0

기드온을 부르심

6:11-18

첨부파일 새벽몌배20170721.hwp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8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6:11-1 /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시다] 여호와의 심부름꾼이 오브라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오브라는 아비에셀의 후손인 요아스라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던 마을이다. 마침 요아스의 아들인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짜는 틀에서 몰래 밀이삭을 떨고 있었는데, 12) 여호와의 심부름꾼이 기드온 앞에 나타나 `용감하고 씩씩한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하고 말을 건넸다. 13) 그러자 기드온이 말을 받았다. `내 주여, 만일 여호와께서 전정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어찌하여 우리가 이토록 고통을 당해야만 합니까? 일찍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실 때 놀라운 이적을 행하셨다는 말을 우리 조상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들었습니다만 그때 여호와께서 베푸셨던 그 놀라운 이적은 지금 다 어디로 갔습니까?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 넘기신 것이 아닙니까?' 14)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기드온아, 너는 힘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라. 아무 걱정 말고 어서 가서 너의 동족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라. 내가 너를 지금 보낸다.' 15) 기드온이 `하지만 제가 감히 어떻게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수 있습니까? 저희 가문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에서도 가장 힘없는 가문인데다가 저 역시 우리 집안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립니다.' 하고 대답하자 16)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꼭 함께 하겠다. 아무 걱정 마라. 너는 미디안 사람을 단숨에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17) 기드온이 대답하였다. `주께서 그토록 저를 잘 보셨다면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증거를 제게 보여주십시오. 18) 제가 주께 드릴 예물을 가지러 갔다오겠습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이곳을 떠나지 마시고 꼭 저를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마 어서 다녀오거라.'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주님은 사자를 통해 기드온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낼 사사로 부르십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반응은 부정적이었고,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을 격려하여 세웁니다.

 

기드온에게 나타나다(11)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먼저 선지자를 보내 이스라엘의 회개를 요청합니다. 이후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 기드온을 세우기 위해 사자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에게 보냅니다. 요아스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강하다는 의미로 여호아스의 줄임말입니다. 기드온은 부수는 자라는 말로 도끼로 찍어 파괴한다는 내용을 포함합니다. 이름의 뜻처럼 여호와의 강함을 믿고 강건하게 세상을 살아야 할 기드온이었지만 그의 형편은 전혀 이름의 뜻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미디안의 침략이 두려워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는 기드온의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의 전체적인 연약함과 두려움을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원래 밀을 추수하기 위해서는 넓은 뜰에서 타작합니다. 먼지가 많이 날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 놓고 타작을 하다가는 미디안에게 다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타작한다기보다는 한 알 한 알 소리 죽여 훑어 내고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기드온을 격려하다(12-18) 본문은 여호와의 사자의 세 번의 말(12, 14, 16)과 기드온의 세 번의 답(13, 15, 17)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먼저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선포하지만(12),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일이 일어났는가?”하며 반문합니다(13). 여호와의 사자는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드온을 보내셨다고 선포합니다(14). 이에 대한 기드온의 반응은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내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가장 작은 자입니다”(15). 주님은 사자를 통해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할 것”(16)을 선포하지만 기드온은 이마저도 의심하며 주되시는 표징을 요청합니다(17). 본문은 기드온을 세우시는 주님의 돌보심을 통해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갖고 있느냐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의 권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임을 선언합니다. 내 생각의 중심이 나의 연약함이 아닌,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적 용 : 내 자신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환경과 시각보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며, 쓰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지 마십시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왜 그리 힘든 걸까요? 욕망의 탑에는 꼭대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위만 보지 말고 자신을 향해 눈높이를 맞춰보세요. 현재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힐링의 시작입니다. 지금까지는 잘 해냈으니 앞으로도 잘 할 거라고 진심으로 자신을 격려하세요. <우리들의 좋은 시>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 곁에서 힘과 용기를 주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설 교 >

큰 용사여!

사사기 5:11-16

신앙생활 자체가 역설의 삶입니다. 살아가는 삶의 방정식에는 세상의 방법이 있고 하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너무 세상의 방법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법은 생소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들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내 자신이 더 작아지고 왜소해 지는 것을 느낍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섬김을 받으려면 먼저 섬기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보지도 못했던 하나님을 위하여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섬기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향하여 대화하며 기도합니다. 이기고 싶으면 지라고 했습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 모두가 역설의 원리입니다. 알고 보면 신앙의 삶은 이렇게 신비한 삶입니다. 그런데 오늘 생각해 보니 그 보다 더 큰 역설이 하나 더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주님으로부터 기억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나를 택하셔서 자녀 삼으시고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예배드리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 많은 사람들 중에서 부름을 받았고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더 낫고 훌륭하고 유능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부족한 나와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자녀 삼으셨을까요? 여러분은 그 의미를 아십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리고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사사기의 일부입니다. 왕조시대가 열리기 전에는 사사시대였습니다. 나라와 민족 앞에 큰 위기나 어려운 일이 발생하게 될 때 하나님은 한사람을 등용하여 난국을 해결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부름 받은 사람을 선비 사() 자와 스승 사()자를 써서 사사(士師)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인들이 연합해서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학대했던 시대였습니다. 우리의 일본시대처럼 압제받는 일은 민족에게 슬픈 일입니다. 내 나라 안에서 힘이 없어서 남의 민족에게 압제받고 고난 받는 삶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산으로 도망하여 움막을 짓고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독립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드온을 보내어 민족의 해방을 이루도록 임무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렇게 파송되는 기드온은 자질이나 자격이나 강력한 지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름 받은 기드온은 그런 사람이 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네가 가서 민족을 구원하라고 했을 때 기드온이 처신한 모습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때 취한 기드온의 행동은 우리들의 자질과 흡사합니다.

 

1. 소심한 자

12절에서 사자는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네가 가서 미디안을 물리치고 백성을 구원해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기드온은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중이 아니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1년 농사를 다 빼앗길까봐 무서워 숨어서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천사가 그런 기드온을 찾아와서 큰 용사여하고 부르셨습니다. 기드온이 무슨 용사입니까? 그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한 사례가 나옵니다. 천사가 기드온에게 네 아버지 집에 있는 바알 제단과 아세라 상을 헐고 모두 찍어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사람들이 볼까봐 두려워서 대낮에 못하고 밤에 가서 우상을 찍어냈습니다.(25) 기드온은 이렇게 아주 소심하고 용렬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이 기드온의 모습을 보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서 부름 받은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능력이 있어서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먼저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참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장차 큰일을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고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똑똑해야 하고 아주 우수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선택하신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 시대에서도 결코 우수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부족하고 무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서를 보십시오. 제자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부족하게 보입니까? 그들은 실수를 연발하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주님은 왜 그렇게 부족한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셨을까요? 그것을 보면 주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드온이 그런 수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소심하고 용렬한 사람이었습니다.

 

2. 의심 많은 자

또 기드온은 의심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미디안으로부터 네가 나가 싸워서 백성을 구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확신을 갖기 위해서 어떤 증표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619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여 내가 예물을 가져 오리니 떠나지 마소서하고 집에 가서 염소 고기와 무교병과 국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그것을 바위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국을 부으니 그곳에 불이 내려와서 다 태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믿을 수 있을 것인데 그는 그것으로는 미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6절을 보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마당에 양털 한뭉치를 놓을 테니 그 주변 땅은 마르고 양털만 이슬이 젓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잠을 자고 새벽에 보니 양털뭉치에는 물이 가득하였고 그 주변은 마른 땅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로 양털은 마르고 주변 땅은 적셔달라고 했더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인간은 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드온에게는 천사의 말을 그 자리에서 믿을 수 있는 자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번 증표를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기드온을 우리는 용사라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용사입니까? 기드온은 아주 소심한 사람이었고 아주 의심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드온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정작 기드온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도 똑같은 절차를 밟았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서 고난받고 있는 내 백성을 구해내라고 하셨을 때 모세는 한사코 못 간다고 버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확신을 주시려고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네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를 당에 던져보라.” 그랬더니 그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네 손을 품에 넣었다 꺼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손에 갑자기 나병이 돋아났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그런 확증을 보고서도 나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니 말 잘하는 사람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말 잘하는 아론을 모세에게 붙여 주면서 애굽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부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자격이나 자질이 출중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결같이 이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3. 불평하는 자

기드온은 또 불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불평은 아주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불평을 자꾸 하는 사람은 정신이 병든 사람입니다. 정신이 병들었으니까 희망과 소망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과 정신이 병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마음이나 생각이 병든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볼 것 다 보고도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역사 중 출애굽 사건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조상들을 통해서 들어서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네가 가서 미디안과 싸워 백성을 구하라고 하자 그러면 뭔가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보여주었더니 다 보고 난 후에 또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13절에서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준 것 아닙니까하고 따졌습니다. 기드온은 옛날 출애굽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통해 우리민족과 함께 하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과거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함께 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하였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왜 이렇게 이 백성들이 고난 받도록 놔두시느냐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말은 하나님이 이 백성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은 늘 불평만 합니다. 그래서 불평자들은 좀처럼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이 점을 보면 기드온은 결코 용사가 아닙니다. 생각이 용렬하고 소심하고 의심이 많고 거기다 불평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런 기드온을 향하여 큰 용사여라고 부르십니다.(12) 기드온이나 12제자들은 결코 용사들이 못 됩니다. 그래도 가라고 하시니 기드온이 이렇게 또 핑계를 댑니다. “내가 어찌 이 백성을 구원하리이까 나는 므낫세 집안의 가장 약한 자이오며 내 아비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그 말은 나는 죽어도 못 가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무슨 큰 용사입니까? 그래서 이를 역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큰 용사여라고 부른 것은 현재시제가 아닙니다. 장차 너는 큰 용사가 될 것이라는 암시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4. 기드온의 순종

결국 기드온은 하나님의 분부를 따릅니다. 순종합니다. 어떻게 순종합니까? 그것이 34절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결국 소심자요 반항아이며 의심자인 기드온이 이 하나님의 영에 힘입어, 즉 성령에 힘입어 군사 300명으로 미디안군 135,000명을 무찌르게 됩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큰 용사가 되고 전설적인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고대합니다. 내 눈으로 그것을 보았으면 합니다. 한번 보면 잘 믿을 것같이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여러 번 기적을 보았어도 그것이 크게 동기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기적을 본 사람들이 잘 믿을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병고침을 받은 분들이 믿음이 좋을 것 같지만 얼마 있으면 곧 잊어버립니다. 기적이 다가 아닙니다. 복음서를 보면 많은 기적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많은 기적들을 곁에서 보고 체험하였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떡을 얻어먹고 박수를 치고 병을 고침 받고 눈도 뜨고 귀도 열리고 입도 열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행렬에는 한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까지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신앙의 세계는 보는 세계, 만져지는 세계가 아닙니다. 기적이 다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주의 영이 함께 하시니이것이 해답입니다. 기드온은 보고 체험하고 목격한 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함께 하시니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병사 300명을 데리고 135,000명의 미디안 군사를 물리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기드온은 큰 용사가 되었고 전설적인 사람이 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도 처음에는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실패를 거듭하였습니다. 왜 저런 무능한 사람들을 제자로 선택하였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의 부활을 경험하고 다락방에 내린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자들을 제자로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자들은 더 이상 시행착오를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제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마침내는 모두 순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고 합니다. 바돌로매는 가죽이 벗겨지는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를 하였습니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도하다가 순교를 했다고 합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창에 찔려 순교를 하였고, 안드레는 에베소에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맛디아는 감람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였고, 누가는 헬라에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또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약하고 왜소하고 병자였던 그가 사역을 끝까지 잘 감당하고 마침내 로마에서 장칼로 목을 내리칠 때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순교했다고 합니다. 기드온도 결국 큰 용사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역설입니다.

 

하나님은 엘리트만 좋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한 사람들만 좋아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르시지도 않습니다. 엘리트들은 고난의 때가 오면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험도 희생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름 받은 자들을 보면 처음에는 한결 같이 부족하고 무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제자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고 기드온도 대표적입니다. 그런 기드온을 향하여 천사가 큰 용사여라고 불렀습니다.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라고 부른 것은 현재시제가 아니고 미래시제입니다. 이는 미래 큰 용사가 될 사람임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은 부족해도 미래에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을 불러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 능력 있게 하신 후에 사용하십니다. 엘리사는 농사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불러 선지자로 삼으셨습니다. 엘리야로부터 부름 받았을 때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영감에 배나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그 결과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보다 배나 더 강한 영적 힘으로 사역을 승리롭게 해냈습니다. 사도바울은 교만했던 사람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 하여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가기도 하였습니다. 얼마나 병든 자아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까? 그는 병든 교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그를 그 교만이 부서질 정도로 강하게 불러내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마침내 교만이 부서지고 자신의 병든 자아가 건강하게 치유되는 전환점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주님은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교만, 자만, 병든 자아를 가지고는 주님을 위한 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부수고 깨뜨려서 주님과 중심을 맞추신 다음에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꽤나 그 시대에 뒤쳐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무능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에게서 미래, 장래성, 가능성을 발견하시고 그들을 불러 훈련하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성령을 흠뻑 취할 만큼 부어주셔서 제자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가끔 왜 나를 부르셨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왜 나 같은 사람을 불러 이 일을 하게 하셨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왜 우리 같은 무능한 사람들을 불러 사용하고 계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역설입니다. 이제 부름 받은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신다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서 겸손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에 충만하여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고대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내가 여기에 서 있어야 할 아무런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주의 영이 함께 하시니그때부터 기드온이 된 것처럼 오늘 우리도 내안에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쓰임 받고 주의 도구로 사용되게 되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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