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신앙고백과 출전
삼상 17:31-40
31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삼상 17:31-40 / [참된 무기] 다윗이 왕이 내건 보상에 대하여 자세하게 묻고 다녔다는 소문이 점점 멀리 퍼져 나갔다. 그리고 이 소문이 사울에게도 들어가자, 그는 다윗을 불러들였다. 32) 사울 앞에 나온 다윗이 이같이 말하였다. `임금님, 저 블레셋 사람 때문에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33) 그러나 사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너는 아직도 소년에 불과하고 골리앗은 어린 시절부터 무기를 다루며 자란 용사가 아니더냐!' 34) 그런데도 다윗은 사울에게 굽히지 않았다. `임금님, 제가 아버지의 양 떼를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한 마리라도 물어 가려고 하면, 35) 당장 뒤쫓아가서 때려 죽이고 그 아가리에서 양을 살려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맹수가 제게 덤벼들면, 그 머리채를 붙잡아 때려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36) 저는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습니다. 그러니 저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쯤이야 짐승보다 더 쉽게 쳐죽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조롱하였으니, 그 죄값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37) 다윗이 끝으로 사울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으로부터 저를 보호해 주신 여호와이시니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제야 사울이 다윗에게 출전을 허락하였다. `자, 그러면 나가서 그와 싸워 보아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길 빈다' 38) 그리고 사울은 자기의 군복을 다윗에게 입혀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 주었고, 그의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혀 주었다. 39) 이렇게 완전무장을 한 다윗은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몇 걸음 걸어 보려고 하였으나 그에게는 걷기에 너무나 무거운 장비였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대로는 걸을 수 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안전무장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것들을 모두 벗어 놓았다. 40) [골리앗을 쳐죽이는 다윗] 다윗은 목자의 지팡이와 물매만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시냇가에서 조약돌 5개를 주워 가지고 메고 다니던 목자의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그는 물매만을 손에 들고서 그 블레셋 거인 골리앗을 향하여 걸어 나갔다.
다윗은 사울의 부름을 받아 왕 앞에서 자신의 말을 증명하며, 평소에 곰과 사자를 찢던 경험을 들어서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합니다.
사울을 위로하는 다윗(31-32) 골리앗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사울에게 있어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다윗의 등장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다윗을 불러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때 다윗은 골리앗으로 인하여 두려워하는 사울 왕에게 낙심하지 않도록 위로합니다. 다윗의 위로는 단지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라며 행동으로 사울에게 보여 줍니다(32). 다윗의 이런 행동은 엘리압이 비난했던 것처럼 결코 쓸데없는 만용이나 교만이 아닙니다(28). 그는 할례받지 못한 이방 족속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을 모독한 데서 그 명예를 되찾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영광을 회복해야 한다는 거룩한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사울의 만류와 허락(33-37) 비록 어려움에 처한 사울이라고 할지라도 다윗이 너무 어린 소년이라 전쟁에 나갈 수 없다고 만류합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이 양을 훔쳐가는 사자나 곰을 굴복시킨 것처럼,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을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여기서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도전 의사는 결코 일시적 흥분이나, 충동으로 인한 만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거룩한 열정과 확고한 신앙에 근거한 논리적인 설득에 결국 사울은 크게 감동을 받고, 마침내 골리앗과의 싸움을 허락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합니다. 이것은 결국 사울이 다윗의 승리를 강력히 염원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확신까지도 했음을 뜻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38-40) 왕은 다윗의 비범한 장담에 설득되어 출전을 허락하면서 자신의 투구와 갑옷까지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이러한 행위는 다윗의 신앙과 경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결과입니다(34-37). 왜냐하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여 골리앗과 싸우려는 다윗에게 인간적인 전투 장비 등은 별 의미가 없으며, 소년에게 어른의 투구와 갑옷이 맞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은 모두 벗어버리고 양을 치던 모습으로 작은 돌 다섯 개와 물매만 가지고 나섭니다. 이것들은 목자의 소지품으로 결코 투구나 갑옷이 아닙니다. 그가 지닌 것은 다만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용기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뿐입니다.
적 용 : 다윗의 신앙고백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울을 위로하고 담대하게 합니다. 우리는 어떤 신앙고백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에게 위로합니까?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믿음과 신뢰. 그런 자에게 갑옷과 투구 같은 인간의 방식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데 있어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었습니다. 참된 구원은 병력의 많고 적음이나 방백을 의지함이 아닌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겹겹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갑옷과 투구는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 설 교 >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삼상 17:31-49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골리앗과 싸워서 승리하는 이야기 !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읽은 말씀의 내용입니다. 언제 읽어도 가슴이 뛰는 이야기 ! 본문 말씀을 읽어가노라면 힘차게 달려가는 다윗의 발걸음 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고 묵상하면서 그날 엘라 골짜기에 가서 다윗과 함께 뛰어 보았습니다. 한참 다윗과 함께 골리앗을 향해 뛰어가다 문득 그의 눈을 보게 되었습니다. 확신에 찬 그의 눈빛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획획 거리는 물매 소리가 들려왔고 그의 당당한 외침이 제 귀를 때렸습니다. 이 외침입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그가 던진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고 그의 얼굴이 땅 바닥에 부딪히며 쓰러질 때 이스라엘의 한숨소리가 환호성으로 바뀌는 급전환의 모습, 어떻게 하느냐는 독백이 와! 살았다! 라는 외침으로 바뀌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습니다. 제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어금니가 맞물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약 이 본문을 연극으로 꾸민다면 이 연극의 주인공은 누구이겠습니까? 주인공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골리앗을 향해 달려가는 다윗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서 저는 또 다른, 더 밝고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뒤에서 잘한다, 너 참 잘한다하면서 흐뭇해하고 기뻐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응원하시는 하나님께 비추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 가슴 벅찬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엘라 골짜기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어나야 하고 또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날 다윗의 하나님은 바로 오늘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이 다윗의 모습이 여러분의 모습이 되시고, 승리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개입하셔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무엇을 보는가.
31절까지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엘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블레셋과 그들을 이끄는 골리앗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반대편 산에 있는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블레셋의 골리앗이란 자가 나와 이렇게 외칩니다. 이스라엘 군대여, 너희는 한 사람을 선택해서 우리에게 보내라. 만일 내가 그와 싸워서 그가 이기면 우리가 그대들의 종이 될 것이고, 만일 그가 지면 그대들이 우리의 종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간담이 서늘해 졌고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었습니다. 무려 40일 동안이나 그랬는데도 나서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다윗을 그리로 보냈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다윗은 8형제인데 전쟁터에 나간 첫째, 둘째, 셋째 형님에게 음식을 주기 위해 다윗은 전쟁터로 가게 되었고, 호언장담하는 골리앗을 보고 다윗은 내가 가서 싸우겠노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 이후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읽은 31절부터의 내용입니다. 3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혹이 다윗의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사울이 다윗을 불렀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윗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2절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본문에서의 주의 종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이 아니라 당신의 종(your servent)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왕 앞에서 백성들이 쓰는 언어입니다. 그 때 사울이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3절입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사울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사울은 진상을 보지 못하고 허상을 보았습니다. 사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앞에서 껄껄거리는 골리앗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이라는 허상 너머에 있는 진상을 보았습니다. 사울은 겁이 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엘상 17장 4~7절을 보면 골리앗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큐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 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 다리에는 놋 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한 큐빗은 팔꿈치부터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를 말합니다. 보통 40에서 45센티미터입니다. 여섯 큐빗 한 뼘은 2미터 50센티미터 정도입니다. 어린 갑은 고기비늘 같은 갑옷을 말하는데 그것을 입었고, 창 자루는 베틀채 같고, 방패를 든 사람은 따로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 모습만 보았지 자기 뒤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또한 전에도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한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는 그 하나님이 모든 승리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고, 그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을 고백합니다.
다윗의 무기
34~37절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사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이 말은 살아계신 하나님(the living God)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모든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계신데 과거에 나와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므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이 때 사울이 다윗에게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하며 보냅니다.
이 때 다윗은 무엇을 가지고 갑니까? 38~4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먼저 다윗은 사울의 군복과 놋투구, 갑옷과 칼을 받아서 갖추어 봅니다. 그러나 다윗은 곧 벗어 버립니다.
다윗은 익숙지 않은 것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포기할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은 빈손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막대기와 매끄러운 돌 다섯 개와 물매, 그리고 그 돌을 넣는 배낭을 갖고 갔습니다.
막대기는 위험할 때 짐승을 때려잡는, 그야말로 막대기입니다.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는 옷에 달려있는 호주머니가 아니라, 배낭을 가리킵니다.
물매는 돌을 던져서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짐승을 물리치는 무기입니다. 이것은 어린아이 장난감이 아닙니다. 실제로 싸움터에서 사용되는 아주 위력적인 무기입니다. 물매는 총과 같고, 돌은 탄알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물매는 무릿매라고도 합니다. 보기에는 아주 간단하지만, 아주 위력적인 무기입니다. 이것은 약 2미터 정도되는 가죽으로 만든 끈입니다. 그래서 한 쪽 끝은 손목에 묶습니다. 그리고는 그 중간에 돌을 넣고 돌리다가 다른 한쪽 끝을 놓습니다. 그러면 원심력에 의해서 가운데 있던 돌은 목표를 향해 날아가 적군이나 짐승을 쓰러뜨립니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는 물맷돌의 크기가 얼마만한지 아십니까? 그것은 만지작거릴 수 있는 조그마한 돌이 아닙니다. 이것은 야구공보다 조금 더 큽니다. 굉장히 큰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그것을 호주머니에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다섯 개만 해도 굉장히 무겁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배낭과 같은 주머니(제구)에 담아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화살을 담는 전통과 같은 것입니다.
이 돌의 속도는 시속 약 1백60㎞입니다. 보통 야구 선수들은 시속 1백35㎞를 던진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운동신경이 발달한 운동선수들도 날아오는 야구공을 피하지 못해 몸에 맞기도 하지 않습니까? 시속 약 1백60㎞라고 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집사님은 동네 아이들이 놀다가 방망이로 친 공에 얼굴을 맞았는데 코뼈가 부러졌습니다. 아이들이 던진 공에 맞은 것이 이정도면 야구공만한 돌멩이가 시속 1백60㎞로 날아와서 맞는다면 이것은 굉장한 무기입니다. 숙련된 사람들은 돌을 정확하게 목표물에 명중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내 것을 드릴 때
다윗을 쓰실 때에 하나님은 다윗이 가질 수 없었던 것, 그가 바칠 수 없었던 것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의 삶 속에서 터득했던 것, 그가 자기의 삶에 충실하면서 언제든지 내 놓을 수 있었던 물매와 막대기를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드릴 수 있는 시간이나 물질, 재능, 정열, 삶 등을 원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4, 5절에는 기가 막힌 말씀이 있습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이 말씀을 쉽게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그대는 그대를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남들과 비교할 때에 남들에게는 있지 않고 그대에게만 있는 독특한 재능이 있을 것입니다. 그 독특한 재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십시오.
다윗이 돌을 꺼내고 던지는 것까지는 다윗의 재능이었지만, 돌이 날아가 골리앗을 맞히고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은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현재 여러분들이 갖고 계신 것을 요구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낙심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있는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내 놓으면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인생의 승패는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가졌느냐 적게 가졌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냐, 내가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 나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인생의 승패가 좌우됩니다. 모든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45~47절에는 다윗의 외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그날 다윗이 싸우던 엘라 골짜기로 가서 그의 외침을 나의 외침으로 삼아 한번 외쳐보겠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들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할렐루야 !
이 고백과 외침이 여러분의 고백과 외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고백에는 세 가지의 위대한 고백과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전쟁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므로 네가 아무리 강해도 내가 승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주도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4장 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무엘상 2장 6, 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사단은 자신이 생명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생명문제를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나 죽이고 살리는 문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20장 1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인생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인생의 기본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기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용기있게 나아가십시오.
왕이신 나의 하나님
고린도후서 6장 9, 10절을 보십시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할렐루야 !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들이 감당하기에는 크게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허상 너머로 진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작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나는 작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실수가 없으신 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실수가 없으신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인생의 주도권을 쥐고 계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사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48, 49절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할렐루야 !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다, 내가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나는 네게 있는 것을 사용하기를 원한다. 네가 겸손하게 네게 있는 것을 바치기만 하면 다윗의 물매돌을 사용한 내가 너를 사용하여 위대한 승리의 장면, 신나는 일, 행복한 순간을 네게 주겠다.
이토록 신나는 장면, 위대한 장면이 여러분의 삶에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