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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는 언제 애굽으로 내려갔나요?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16.11.25|조회수102 목록 댓글 0

아기 예수는 언제 애굽으로 내려갔나요?


[본문 : 마2:1-23, 눅2:1-39]

○ 마2:1-23 및 눅2:1-39절은 예수님 탄생 시점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내용은 그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즉, 마태복음은 목숨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 매우 급박하게 진행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누가복음은 할례와 결례도 행하며 심지어 시므온과 안나의 축복인사까지 받는 등 무척 느긋한 느낌이 듭니다.
  ○ 4복음서가 서로 보완적 의미를 지님은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이해는 결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추정해 보았으나 만족할 만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 스스로의 능력으로 추가적인 추론이 불가능함을 인정한 이상, 보다 영성이 뛰어난 분들의 자문을 구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 것입니다.

< 질문 요지>
  ☞ 어찌하여 양 복음서의 상황묘사가 상이합니까? 주님의 애굽 피난은 1회적인 역사적 사건인데, 왜 이처럼 상반된 분위기로 표현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피난 시기는 언제인가요? 갓 태어난 직후인가요? 아니면 수개월 또는 수년 후인가요?

  ⊙ 주님 탄생기사를 다루고 있는 성경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입니다. 그런데 마태와 누가는 각각 상이한 관점에서 탄생시점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4권의 복음서는 상호보완적입니다. 4권을 다 합쳐서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관련된 사실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 그러나, 오늘 생각해 보려고 하는 내용은 그러한 일반적인 설명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 같아 곤혹스럽습니다.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것 같기만 합니다. 성경 비평가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는 구절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헤롯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피하셨던 시기에 관한 것입니다. 마치 성경의 오류인 것처럼 보이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나름대로 추론을 해 봤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입니다.


[답변]

이 문제에 대해 질문자와 같은 의아심을 갖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예수님의 유년 시절에 관한 기록은 마태와 누가만이 기록하고 있고 그것도 두 사건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상황인지라 앞뒤 연결이 제대로 안되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동방 박사의 베들레헴 방문 시기가 언제냐 하는 것입니다. 이미 질문자님께서 지적한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박사들의 방문 시기를 단순히 별의 나타난 시기와 여행에 소요된 기간 등으로 추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확실한 힌트가 성경 본문에 두개나 있음을 대부분의 신자들이 놓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11을 봅시다. “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보고 경배한 장소가 마구간(stable)의 구유(manger)가 아니라 일반 가정집(house)이었습니다. 집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oikia는 주로 집안, 일가족이란 뜻으로 쓰이며 거주지(집)로도 번역되는데 마구간이라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또 본문의 아기는 신생아나 갓난 유아(infant)가 아니라 어느 정도 자란 아이(child)로서 사용된 헬라어는 paidon입니다.

반면에 누가복음 2:7은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Manger)에 뉘었으니”라고 기록하고 있고 또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16절)와 “이 아기에 대하여”(17절)에 사용된 아기(babe)는 신생아를 뜻하는 헬라어 brephos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절에 대해 헬라어를 몰라도 영어 역본만 비교해 보아도 그 차이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KJV, NASV, RSV, NIV등 모두가 마2:11은 house와 (young)child로 또 눅2:16은 전부 manger와 babe(baby)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동방 박사 경배 사건은 마구간에서 신생아를 두고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마구간이라는 명시적 설명이 없고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가축 먹이나 물을 담아 두는 구유가 들판에 있었기에 아기 예수가   출생한 곳이 베들레헴의 들판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따지면 아기 예수가 출생하여 한참이 지난 후, 즉 성전에서 할례(눅2:21-40)를 마치고 일반 가정 집으로 옮긴 뒤 1-2살 정도 사이에 일어난 것입니다. 헤롯이 2살 미만의 아이를 살해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헤롯이 조금 여유 있게 2살까지 아이를 죽이라고 한 이유는 동방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시기를 물어 예루살렘까지 여행하는 기간을 감안했기 때문입니다.(마2:7) 헤롯은 틀림 없이 박사들에게 언제 별이 나타났으며, 얼마 동안 준비해서, 언제 출발해서, 어디를 거쳐서, 얼마나 걸려 도착했는가 자세히 물었을 것입니다.

참고로 헤롯의 영아 살해 사건에 관해선 Macrobius가 지은 ‘축제’(Saturaalia)에 “아구스도 황제가 ‘헤롯의 명령으로 시리아 지역의 두 살 이하 아이들이 살해 당할 때 그 속에 헤롯 자신의 아이도 포함되었다’ 하면서 ‘차라리 그의 아들이 되기보다 돼지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별이 처음 나타났을 때 출생하여 동방 박사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느 정도 자란 후입니다. 처음에는 호적을 하러 왔던 요셉과 마리아가 장남이 태어나자 아마도 아기 교육을 위해 혹은 경제적 이유로 그래도 시골 나사렛보다는 예루살렘에 가까운 베들레헴 고향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집을 구해 거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수인 요셉은 어디 가서도 쉽게 생활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75마일,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은 5.5마일, 베들레헴에서 애굽까지는 300마일임)

애굽으로 피신해서도 당시의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해 곳곳에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어 예수의 가족은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역사가 필로에 따르면 당시 애굽에는 약 백만의 유대인 이주민들이 살고 있었다고 함) 또 애굽에서 돌아올 때에도 베들레헴(혹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려다 꿈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나사렛으로 방향을 바꾼(마2:12) 사실을 보건대 동방 박사 방문 때에 베들레헴에 정착하려 집에서 거주한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유년 시절의 큰 사건을 그 발생 순서에 따라 배열하면 이렇게 됩니다.

1. 아기 예수가 출생하여 구유에 누여지고 목동들의 방문을 받음.(눅2:8-20)
2. 아기 예수는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고(눅2:21)
3. 결례를 위해 성전에 올라가 선지자들을 만남(눅2:22-38) 남자 아이의 경우 40일이 지나야 결례를 할 수 있음,
4.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음(예수의 나이는 최하 6개월에서 2살 미만으로 추정)(마2:1-12)
5. 애굽으로 피신(마2:16-18)
6. 헤롯의 2살 미만의 영아 살해 사건(마2:16-18)
7. 예수의 가족(The Holy Family)이 애굽을 떠나서 나사렛으로 돌아 옴(마2:19-23, 눅2:39-40)
8. 성전에서 소년 예수가 발견됨(눅2:41-52)

성경 본문에 정확하게 집(house)과 아이(young child –단 우리 말 성경 마2:11에는 구분이 없음)라고 번역해 놓았는데도 흔히들 동방박사가 예물을 마구간에 있는 신생아 예수(눅2:16)에게 드리고 경배한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인데 크리스마스 카드나 성화에 나오는 그림에 너무 익숙해져 아예 그렇게 생각을 굳혔기 때문입니다. 아마 성화를 그린 사람들로선 비천한 모습으로 구유에 오신 구세주와 또 박사들로부터 경배를 받는 만왕의 왕이신 아기 예수를 한 번에 강조하려 했을 것입니다.

또 유대인들의 관습과 율법을 엄격히 지키려는 태도를 보아 요셉이 예수의 할례나 결례 전에 외부인 그것도 이방인들의 방문을 받았을 리는 없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도 메시야 탄생에 대해 정통한 지식이 있었고 경배를 위해 베들레헴까지 방문했는데 이런 관습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설령 그런 지식이 없었다 해도 상식적으로도 신생아의 경우 최소 한달 정도는 지나야 방문하지 않습니까? 이래 저래 동방 박사의 방문은 성전 결례 이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런 식의 대표적인 또 다른 오해는 동방 박사가 세 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에는 단 한 군데도 세 명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도 아예 그렇게 굳어져 있습니다. 아마도 선물로 황금, 유향, 몰약 세 개를 바쳤기에 그렇게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사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한 명은 아니고 복수인 것은 분명합니다만 정확하게 몇 명인지는 불명합니다.      

결론적으로 누가복음에 기록된 성전 결례 시에는 아기 예수에 관한 위협이 전혀 없었습니다. 당연히 아주 평화스러운 분위기에서 결례를 마치고 선지자 두분의 축복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태는 동방 박사의 방문으로 갑자기 돌변했습니다. 마태 복음의 기록도 급박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Georgia Sandison이란 학자가 “난제 1000개에 대한 성경적 해답”(Bible Answers for 1000 Difficult Questions)에 간단하게 서술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 해답을 제가 번역해서 전재하는 것으로 답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정확하게 질문자님이 추정한 순서 그대로 입니다.  

“질문# 208 우리 주님의 부모는 그의 출생 후 그를 예루살렘으로 데려 갔는가 애굽으로 데려 갔는가?(Did the parents of our Lord take him after his birth to Jerusalem or to Egypt?)

어떤 사람들은 마태와 누가의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없다. 예수의 출생 후에 그 부모들은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는 마지막 날까지 베들레헴에 남아 있었다. 결례를 마친 후에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와 함께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여러 일들을 정리하고 짐을 싸서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 왔다. 더 이상 마구간에 거주하지 않고 집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동방 박사의 방문을 받았다. 이들 박사들은 처음에는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베들레헴이 어디인지 알아 보고 왔다. 그들이 방문하고 간 후에 요셉은 천사로부터 경고를 받아 에굽으로 피신했다. 복음서들 마다 기록된 것이 다르므로 사건들의 순서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네 복음서를 다 종합해서 판단해야만 한다. 마가와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유년 시절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고 마태와 누가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의 경우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 온 것과 애굽 피신 사건에 관해선 전혀 언급이 없지만 마태는 애굽 피신에 관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네 복음서 기자들 어느 누구도 구세주의 이 땅에서의 삶에 관해 연대기적으로 완벽한 기록을 남기려 의도한 적은 전혀 없다. 그러나 각각의 기록은 다른 사람의 기록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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