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 무엇인가요? (마태복음 16:1-4)
1. 요즘처럼 무더위가 계속될 때는 하늘로부터 시원한 소낙비라도 쏟아졌으면 하지요. 요즘처럼 믿음생활이 어려울 때는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자극이 강한 음식을 먹는다 합니다. 매운 음식은 맵지만, 이상하게도 먹을수록 자꾸 먹게 됩니다. 그것은 매운 맛에 중독되기 때문입니다.
예일대학교에서 500명을 대상으로 하여 음식에 관한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13가지의 질문을 하였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계속 먹게 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배가 불러도 먹게 하는 음식인가? 살이 찐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는 것인가?”하는 질문입니다.
그런 음식은 중독성이 있더랍니다. 미국의 경우, 가장 중독성이 강한 음식이 피자이고, 피자에 있는 치즈에 ‘카제인(casein)’ 성분이 있는데, 이것은 속에서 소화할 때, “카소모르핀”이라는 마약 성분을 만들어 낸납니다. 그래서 자꾸 먹게 된답니다.
‘중독’이라는 말과 ‘세뇌’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독은 마약 중독이라는 말로 쓰이고, 세뇌라는 말은 어떤 사상에 세뇌가 되었다는 말로 쓰입니다. 별로 좋은 말이 아닙니다.
담배 중독이 되면 참 끊기가 어렵습니다. 끊으려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공산주의에 세뇌가 되면 돌아서기가 어렵습니다.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중독과 세뇌가 종교에도 해당됩니다. 이단이나 사이비에 세뇌당하면 그렇습니다. 가정이 파탄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평생 속고 사는 것입니다.
신앙의 습관은 그 사람의 체질과 맞물려 있습니다. 다혈질인 사람은 박수를 쳐야 하고, 큰 소리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점액질인 사람은 조용한 것을 좋아합니다.
누구나 중독되고 세뇌 당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건강한 신앙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지요?
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의 속을 떠보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과 능력을 행하신다 하니, 정말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나타내 보이라는 것이지요. 누구든지 신앙을 가진 사람이면, 하나님의 표적을 보고 싶어하지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보는 앞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런 경험을 해 보셨는지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서로 반대의 입장을 가진 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보수적 입장이고, 사두개인들은 진보적 입장입니다. 예로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는 자들이고,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들입니다.
또 바리새인들은 유대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한 자들이고, 사두개인들은 당시의 지배국가인 로마에 대하여 친로마적인 입장을 취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라 할 때, 바리새인들은 그래도 긍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하시는 능력에 대해서는 귀신이 들려서 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반면에 사두개인들은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표적이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쉽게 표적이 나타나면,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강대국의 식민지로 600년이 넘도록 내버려두느냐는 것이지요.
그들은 하늘로부터의 표적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3. 그들의 이러한 질문에 예수님의 대답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연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듯이, 이 시대를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내일 날이 좋겠다 말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비가 올라는 모양이다 말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자신이 사는 그 시대가 어떤 지를 알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시대라고 하십니다. 악하다는 것은 힘이 강한 것이 지배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선하고 약한 자들이 설 자리가 없음을 말합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조차도 로마제국과 돈에 시녀 노릇을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음란하다는 것은 성적으로 문란한 것을 말하기보다는 우상에 젖어사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는 탐심을 가리켜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골로새서 3:5-6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하였습니다.
탐심이 우상 숭배인 것은 탐심은 자기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심을 위하여 하나님까지 이용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마저 욕심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마저 사람이 차고 앉아 살면서 무슨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느냐는 반문인 것이지요. 너희에게는 표적이 아니라 심판이 있을 따름이라는 뜻이지요.
4. 두번째 말씀은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보일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요나의 표적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1) 하나는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한 후에 다시 육지에 던져진 것이고, (2) 또 하나는 니느웨 성에 가서 대충 말씀을 전했는데, 그 성 사람들이 회개함으로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였습니다. 니느웨 성에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을 때, 반대편인 다시스로 도망하였습니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니느웨 성은 적국의 수도였기에, 망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그 말씀을 거절하고 자기 좋은 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육지를 떠나 배를 타고 다시스로 도망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요나는 철저하게 내 속에 있는 자아, 자기 욕망, 이기적 욕망덩어리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도 내가 더 중요한 것이지요. 하나님도 나를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욕망이 자신을 죽이지요. 사람이 고통을 겪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욕심 때문이지 않습니까? 내 욕심만 비우면 편하고 쉬운 것을, 그렇지 못하기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5. (1) 어느 날 어떤 목사의 꿈에 가면을 쓴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가면 쓴 사람은 목사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괴롭혔습니다.
일이 될 만하면 방해하여 망가뜨리고, 좋은 일이 일어날만 하면 훼방하여 그르치게 만들곤 했습니다. 너무 화가 난 목사는 그 사람을 붙잡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어느 놈이 내 인생을 망가뜨리는 거야? 누가 내 일을 이렇게 어렵게 만드는 거야?"
서로 뒤엉켜 한판 붙었습니다. 드디어 목사는 가면을 쓴 방해꾼의 배 위에 올라타게 되었습니다. 목사는 그 방해꾼 정체를 알고 싶어서 가면을 확 벗겼습니다. 그런데 가면 쓴 방해꾼의 얼굴은 다름 아닌 바로 목사 자신의 얼굴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꿈을 깬 목사는 깊이 깨달었습니다. "내 인생을 가장 방해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바로 내 자신이구나"
6. (2) 독방에서 수도를 하던 수행자는 밀려드는 내면의 잡다한 유혹 때문에 도무지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행하던 독방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신발을 신고 있는데, 건너편에 낯선 수행자가 역시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깜짝 놀란 수행자는 그 낯선 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낯선 이가 고개를 들고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나는 당신의 자아요. 나 때문에 이곳을 떠나는 길이라면, 한 가지 알려 주고 싶은 것이 있소.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나도 늘 당신하고 같이 가게 된다는 사실이오.”
(3) 한 독거 수도사가 너무도 힘들고 괴로운 나머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탄아, 너는 왜 나와 이토록 싸우느냐?”
사탄이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그 싸움은 네가 하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악한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지요. 결국은 내가 나와 싸우는 것이지요. 문제의 원인은 내 안에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나는 나 자신을 데리고 다니게 마련입니다.
7. 요나는 도망을 가다가 사람들에게 들켰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큰 물고기가 그를 삼켰습니다. 바다에 던져지면 죽는 것인데, 죽지 않고 큰 물고기가 삼키는 바람에 살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만 살려주시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큰 물고기가 오늘날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내 맘대로 살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큰 집인 교회에 머물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만나고 살라고요. 여기서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살라고요. 여기서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으면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회개를 들으시고, 큰 물고기로 요나를 바닷가에 토해내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이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신다고 하신다고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건성으로 전했습니다. 대충 전했습니다. 자기가 전하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산 위에 올라가서 그 성이 망하는가 안 망하는가를 지켜보았습니다. 망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적국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하고서도 달라지지 않는 요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모습과 비슷하지요.
8. 그런데 놀라운 표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요나가 건성으로 전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니느웨 성에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던 니느웨 성 사람들이지만, 요나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성이 망하지 않았습니다.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12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하나도 죽지 않고 모두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부족하여 대충하거나 건성으로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나의 표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입니다. 모두가 이 시대가 악하고 음란하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멀지 않아 교회의 시대가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하여 사람의 설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세상대로 굴러갈지라도, 하나님은 또 하나님의 방식으로 구원의 문을 열고 계십니다.
9.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한결 같습니다.
노아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죄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마른 하늘 아래에서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에 선지자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나 밖에 없사오니 차라리 나도 죽여 주시옵소서” 라고 탄식할 때, 이 땅에 바알에게 절하지 않고 무릎 꿇지 아니한 자 7천명을 남겨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이제 하나님의 왕국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땅에 <시나고게-회당>을 짓게 하시어, 그 땅에서 하나님을 섬겨 살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남의 나라에서 600년이 넘게 지배를 당하고 있었을 때, 더 이상 이 땅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백성들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10. 중독되기 쉽고, 세뇌당하기 쉬운 세상을 살아갑니다. 자칫하면 바리새인, 사두개인처럼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만을 바랄 수도 있습니다. 살아봐서 알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십니다.
(1) 요나의 표적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한 것입니다. 불순종을 회개하는 것이지요. 큰 물고기는 오늘의 교회입니다. 교회를 통해 죄사함 받고, 늘 회개하며 사는 것입니다.
(2) 두번째 표적은 요나가 건성으로 복음을 전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을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일을 하십니다. 작은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11. 기독교 작가인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이라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빙점이란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는 그 순간을 말합니다. 빙점이란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의 순간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원죄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주인공은 우연히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커다란 충격을 받습니다. 사생아란 죄악으로 태어난 자식을 말합니다.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또 자신의 출생의 비밀로 인하여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기로 결심하고 어느 추운 겨울날 눈 덮인 언덕길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높은 언덕에 오른 주인공은 하얀 눈길 위에 남겨 놓은 자신이 걸어온 발자국을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자기의 발자국을 보는 순간, 분명히 자신은 똑 바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앞만 향해서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눈 위에 나 있는 발자국은 비뚤거리고 흐트러진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 깨닫습니다.
인생을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자기 자신도 예외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이런 깨달음을 통해, 그 동안 용서할 수 없었던 어머니를 용서하게 됩니다.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아 부끄러움을 알고 새롭게 살고자 하는 것보다 큰 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요나의 표적은 하나님을 멀리하여 사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또 나는 비록 부족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심을 굳게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회개하며 믿음에 굳게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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