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숫 8:1-9
얼마 전에 상영된 ‘커런트 워’란 영화는 발명왕 토마스 A. 에디슨에 관한 실화 영화다. 그는 인류 역사에 백열전구를 비롯해서 축음기, 전신기,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발전기, 최초로 상업화된 전등과 전력 체계, 실험적 전기철도, 가정용 영사기 등을 발명하여 무려 1,093개 특허 제품을 발명한 귀재다. 그런데 영화 내용은 전구를 킬 수 있도록 전류를 지역사회에 송신하는 직류방식과 교류방식 사이의 전류 전쟁을 그린 영화다.
에디슨은 실패와 성공에 관한 명언을 많이 남겼다.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나는 9,999번의 실험을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그러자 친구는 실패를 1만 번째 되풀이할 셈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고, 다만 전구가 안 되는 9,999가지 이치를 발견했을 뿐이다.’ 거기에 기초해서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 중 다수는 성공을 목전에 두고도 모른 채 포기한 이들이다.’ 오늘 설교제목인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도 에디슨의 말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직역하면 실패가 성공을 낳았다. 곧 실패가 있기 때문에 성공이 있다. 그러니 도전을 하다가 실패를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이를 경험삼아 계속 도전을 하다 보면 반드시 성공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명언은 세상사람들에게도 통하는 진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구나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함께하는 자들인데, 우리 기독교인이 가는 길에는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될 수 없다. 우리의 실패는 다만 성공으로 가는 길목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첫 성, 견고한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고, 이어진 전쟁, 아이 성과의 전투에서는 실패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의 마음은 크게 두렵고 위축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실패하면 자신감을 잃고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게 된다. ‘과거에 이렇게 실패했는데 내가 다시 잘 할 수 있을까?’
운동경기에도 징크스라는 것이 작용한다. 우리나라하고 중국하고 축구를 하면 중국대표팀이 늘 진다. 잘 하는 것 같은데 우리한테는 약한 징크스가 작용한다. 한 번 진 팀한테는 또 질 것 같다는 생각에 미리 심리적으로 겁을 먹게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가? 지례 겁먹고 뒤로 물러나는 거 말이다. 믿음으로 사노라면 실패를 많이 경험한다. 나나 여러분이나 분명히 실패를 한 번 이상 겪었을 거다. 그러나 우리의 실패는 실패 그 자체로 끝나면 안 된다. 반드시 실패를 통해 성공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아이 성과의 다음 전투에서는 그런 성공을 경험하게 되었다. 본문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실패에서 성공으로 나아갔는지, 그 신앙적 비결을 찾아보자.
1.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아이 성 전쟁의 실패는 죄의 문제였다. 여리고 성의 승리에 도취된 채 작은 아이 성을 얕잡아 보고 하나님에게 기도도 하지 않은 채 소수만 올라가 싸우게 했던 교만이 문제였다. 그러나 그보다도 하나님이 지적하시는 더 직접적인 원인은 아간이란 한 사람의 범죄 때문이었다.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전멸하고 오직 금은 동철 그릇 같은 전리품은 하나님의 금고에 구별하라는 명령하셨다. 이 언약을 어기고 아간이란 자가 금 덩어리와 옷에 탐욕을 부려 숨긴 죄가 문제였다.(7:1)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 때문에 대부분 실패한다. 죄란 놈 때문에 공동체가 파괴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그 은혜로 성공도 누릴 수 있는데, 죄란 놈은 그 관계를 망가뜨려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기 때문이다. 7:13,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하게 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게 하여,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라.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 전멸시켜서 주님께 바쳐야 할 물건이 있다. 그것을 너희 가운데서 제거하기 전에는, 너희의 원수를 너희가 대적할 수 없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성경에서는 죄 문제의 해결로 예방책과 치료책 두 가지를 제시한다. 먼저 예방책은 바로 죄와 싸우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이 누구를 일꾼으로 쓰실까? 그 답은 깨끗한 그릇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금 그릇이냐 은그릇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속이 깨끗한가가 중요하다. 죄에서 깨끗하게 하면 거룩하고 주인에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과 똑같이 죄에 빠져 토한 것을 또 다시 먹고 있으면 어떻게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겠나? 그러므로 죄와 싸워야 한다.
우리를 자주 실패로 몰아가는 죄는 어떤 것인가? 게으름인가? 돈에 대한 탐심인가? 교만인가? 거짓인가? 혈기인가? 무정과 무자비함인가? 불평불만인가? 미움인가? 기도를 쉬는 것인가?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승리할 수 있다.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계속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 안 되는지 아나? 믿음도 있고 알기도 하는데, 결국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지 않는 거다. 자기 혀를 깨물고 넓적다리를 꼬집으면서 죄와 싸우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는 아직 안 했다고 지적하신다. 우리는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서 죄의 본능과 싸움을 해야 한다.
탈무드에 ‘성경을 읽기 위해 촛대를 훔치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목적이 선하면 방법도 선해야 된단 뜻이다. 오늘 우리는 성경을 읽는 고상한 일을 하면서 혹시 촛대를 훔치는 저급한 죄를 범하고 살지는 않나? 예수 믿는다면서 세상과 똑같은 방법으로 사니까 우리가 욕먹는 거다. 세상이 다 돈 때문에 살고 있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돈 때문에 살고 있다면 도대체 예수 믿을 이유가 뭐 있겠나? 우리는 세상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거룩하게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한다.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겠나? 세상과 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죄와 싸우고 범죄 하지 않으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싸우는 거룩한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 죄의 싹을 성령의 능력으로 잘라 버리는 의지적 결단을 내리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자. 이게 바로 하나님이 아간과 그의 가족을 돌로 쳐 진멸하라고 하신 이유이다.
그 다음은 치유책이다. 죄와 싸우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하고 실수하여 죄에 넘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깨끗해 질 수 있나?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따라야한다. 요일 1:9,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용서하시고 다시금 새롭게 하셔서 승리하게 만들어주신다. 시 34:18, “주님은, 마음 상한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낙심한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 시 51:17,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찢겨진 심령입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날마다 나가 회개하면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얻는다. 추석에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다면 회개하라. 용서해주신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 전쟁의 패배를 가져다 준 범죄의 장본인을 찾게 하시는 데 제비뽑기를 하도록 하셨다. 그러자 ➀ 유다지파가 뽑히고 ➁ 세라족속이 뽑히고 ➂ 삽디가 뽑히고 ➃ 삽디의 아들 갈미가 뽑히고 ➄ 결국 갈미의 아들 아간이 뽑혔다. 한 번 생각해보라. 하나님이 범죄 한 자가 아간인 줄 몰라서 제비뽑기를 하게 했을까? 왜 하나님이 처음부터 “범죄자는 아간이니 돌로 쳐 죽여라!” 하지 않고, 다섯 차례나 되는 제비뽑기를 통해 범죄자를 가려내게 했을까?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거다. 그것은 아간으로 하여금 마음에 압박감을 느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아간이 자기를 뽑는 마지막 순서가 오기 전에 미리 여호수아를 찾아가 회개했다면 용서의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구약 예언서에서 계속 심판을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이유도 다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아간은 끝까지 하나님을 속일 수 있을 거란 착각으로 감추고 포장하고 있었다.
끝끝내 죄를 계속 감추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거부하는 자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짓는 것이고 그게 용서받지 못할 죄다. 여러분, 누가 지옥에 갈까? 엄밀히 말해서 죄인이 지옥 가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의인은 없고 죄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롬 3:10-11,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고 깨닫는 사람도 없다.” 단지 이 세상에는 회개한 죄인과 회개치 않는 죄인이 있을 뿐이다. 결국 회개한 죄인은 천국가고 회개하지 않은 죄인은 지옥 간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죄를 지어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거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예수 믿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살아있을 때 십자가 앞에 날마다 나아가서 정직하게 용서를 구하고 사죄의 은총을 받기 바란다. 이 땅에서 감추고 감추다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는 날이면 용서 없는 저주와 심판만이 주어질 뿐이다. 아간은 회개하지 않다가 결국 심판대 앞에서 그 죄가 다 드러나 멸망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실패를 극복하는 첫 번째 방법은 죄와 싸우고 죄를 지었을 때는 빨리 회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용서가 주어진다.
2.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실패에 머물러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일어나 성공하도록 말씀으로 격려하신다. 오늘 본문 v1a에, 하나님은 낙담하여 있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겁내지 말아라!” 이 말씀은 수 1장에서 처음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말씀과 똑같은 말씀이다. 실패로 인한 여호수아의 아픔과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새롭게 출발하도록 하나님이 용기를 북돋아 주고 계신 모습이다. 여러분, 실패를 두려워 마라. 실패에 놀라지 마라. 다시 일어나면 된다.
잠 24:16, “의인은 일곱 번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지만, 악인은 재앙을 만나면 망한다.” 말씀하셨다. 여기서 의인은 예수 믿는 오늘 우리를 의미한다. 그러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의 실수나 과오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한 번의 범죄 때문에 버림받지 않는단 얘기다. 하나님은 결단코 한 두 번의 실수와 실패 때문에 우리를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신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찾아가서 용서를 베푸시고 “내 양을 먹이고 치라!”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오늘 실패하여 낙심천만하여 있는 우리를 향해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라! 말씀하신다. 여러분의 실패의 자리를 박차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용기를 내어 일어나기 바란다. 주일설교 말씀을 통해서 마음에 찔림을 받고 격려를 받는가? 그대로 지나치지 말고 결단하고 헌신하여 삶으로 살아드려라. 그러면 승리의 길을 걷게 된다. 말씀을 받고 자꾸 그냥 넘어가는 습관에 빠지지 마라.
vv1b-2, “군인들을 다 동원하여 아이 성으로 쳐 올라가거라. 보아라, 내가 아이의 왕과 백성과 성읍과 땅을 다 네 손에 넘겨주었다. 2 너는 아이 성과 그 왕에게도 여리고와 그 왕에게 한 것처럼 하고, 오직 전리품과 가축은 너희가 가져라. 성 뒤쪽에 군인들을 매복시켜라.” 하나님이 아이 성을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겠다고 약속과 보증을 해주면서 치러 올라가라고 명령하셨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올라가면 된다. 전에는 교만하여 묻지도 않고 적을 깔보면서 삼천 명만 보냈다가 큰 코 다쳤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으니 그대로 순종하여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링컨 미국의 전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실패할 때 악마는 끝장났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나 내가 실패할 때 하나님은 이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더 커다란 일에 도전하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악마의 이야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던 구절이 바로 롬 8:28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요즘 BCGI(건강한 교회 성장 이야기) 영상에 나오는 목자목녀 간증을 보면서 공통되게 느끼는 것은 모두 실패를 통해서 오늘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다. 주님이 하시던 영혼구원, 제자만들기의 사명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인데, 우리가 잘할 수가 없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감당하도록 하신 것인데, 우리가 어디 그게 잘 되나? 내 힘과 능력과 사랑으로 해보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실망과 좌절과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렇게 실패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셔서 회복되고 용기와 도전을 받고 결국 성공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 설교 말씀에 귀기울여 듣고 실천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도 선용하셔서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그 실패를 통해 더 큰 성공을 이루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인 줄 믿는다. 끝장났다고 속삭이는 마귀의 음성을 듣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라. 겁내지 마라! 일어나라! 일어나면 무너진 네 가정을 세울 수 있다. 무너진 네 사업을 세워 주겠다. 좌절한 신앙을 다시 세워주겠다. 막혀있는 네 사역이 열려질 것이다. 저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도록 도와주겠다!”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용기를 내어 일어나길 축원한다.
3. 성심껏 최선을 다 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여호수아가 일어나 아이 성을 치는 전략을 시행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대로 순종한 것이다. 그런데 v1b에서 하나님이 군사를 몇 명 데리고 올라가라고 하셨나? 군사를 다 데리고 올라가라 하셨다. 처음 전투에서는 아이 성은 작은 성이니까 삼천 명 정도만 올라가도 될 거라고 판단하고 올라갔다가 패배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이번에는 군사들을 다 데리고 올라가라고 했을까? 하나님의 승리는 최선을 다하는 전력투구를 통해서만 주어짐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신다.
또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v2c에 “성 뒤쪽에 군인들을 매복시켜라.” 전략까지 일러주셨다. 그 말씀에 따라 매복시키기 위해서 여호수아는 군사 3만 명을 뽑아서 밤새도록 길갈에서부터 아이 성까지 약 24km되는 거리를 빠르고 조용하게 행군했다. 그리고 오천 명을 아이 성 서쪽인 벧엘 성 사이에 매복시켰다.(v12) 그리고 나머지 2만5천명은 아이 성 북쪽에 숨어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여호수아가 사용하려는 전술은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잘 쓰던 ‘작전상 후퇴’라는 병법이다.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향해 나아가면 지난번에 승리한 것을 생각하며 아이 왕의 군사들이 이스라엘을 얕잡아 보고 급하게 쳐내려올 것이 예상된다. 이때 여호수아의 부대는 거짓으로 후퇴하면서 멀리까지 추격해오는 아이의 군대들을 유인하다가 갑자기 뒤돌아서며 여호수아가 단창을 들어 성을 가리키는 신호를 하면 성 뒤쪽에 복병들이 성을 점령하고 불을 질러 버리는 작전이다. 이때 이스라엘 군대는 돌이켜 갑자기 반격을 하면 아이 군대는 성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에서는 이스라엘 군대가 쫓아오니 결국 독안에 든 쥐 꼴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제는 아이 성을 네 손에 붙였다고 말씀하셨다. 승리가 보장되어 있단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모든 병력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철저히 준비해야만 했다. 복병이란 큰 틀은 하나님이 일러 주셨지만, 세부적인 전술은 여호수아가 준비했다. 또한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향해 단창을 가리키면서 시작된 전투가 아이 성의 일만 이천 명의 거민을 다 진멸하기까지 계속 손을 거두지 않았다.(v26) 지도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은혜는 거저 받지만 복은 그릇을 준비하는 자가 받는다는 사실이다.
게으름과 적당주의는 우리가 배격해야 할 신앙의 적이다. 적당주의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적당주의는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적당하게 살겠다는 것은 다른 표현으로 편안하게 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귀는 ‘편안하게 살자’는 덫을 놓고 성도를 유인해서 잡아 가둔다. 삶 공부가 시작되는데 편안하게 살려면 안 하면 된다. 그러나 남는 건 없고 신앙의 진보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열심히 배우면 영혼에 양식이 되고 피와 살이 되고 근력이 된다. 또한 적당주의는 공동체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나만 고생하고 있네?’ 이런 생각이 들면 힘이 빠진다. 하나님의 일에는 쉽고 어려운 것이 없다. 큰 일 적은 일이 없다. 작은 일 하나가 실패로 끝났을 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 성심껏 노력해야 한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일에도 충성된 자가 될 수 있다. 적당주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최상의 축복을 놓치는 처사다. 돈이 좀 생겨서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판단될 때 이런 적당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vip 섬김과 전도도 열심히 하라. 대충하지 말고 최선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교우가 되자.
우리 교회 대학생들은 명심하라. 지금 여러분이 공부해야 하는 시절에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해라. 알바 하는 것도 좋지만, 그 시간에 공부해서 장학금 타라. 알바 하느라 공부도 못하고 피곤하고 주일에 예배도 못 드리고 삶 공부도 잘 못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나? 졸업해도 별 볼일 없다. 실력이 없으니 최업도 잘 안 된다. 안 믿는 아이들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또 신앙생활도 적당히 하지 말고 열심히 해라. 매일 큐티 하는 것도 열심히 하라. 열심히 공부해야 남 줄 수 있다. 열심히 안 하면 남 줄게 없다.
미국의 링컨 전 대통령은 소년 시절 부모를 여의고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는 힘든 소년시절을 보냈다. 오직 기독교 신앙만이 그를 지탱해줬다. 22세 때 사업에 실패, 23세 때 주 의회 의원 선거에 낙선, 24세 때 역시 사업에 실패, 27세 때 때 신경질환이 발병되어 우울증으로 시달림을 받기 시작했다. 29세에 의회 의장직에 도전했다가 낙선, 31세에 대통령 선거위원회에 도전했다가 또 다시 낙선, 34세에 국회의원에 낙선, 37세에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39세에 또 다시 낙선, 46세에 상원의원 선거에 또 낙선, 47세 때 부통령이 되려 했으나 실패, 49세 때 상원 의원 선거에 또 낙선했다. 그러나 51세에 비로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하는 일마다 거의 실패를 거듭했다. 우울증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링컨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었서 노예해방이란 역사적 기여를 하였고, 5천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오늘 미국인들과 세계인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하나로 남아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실패는 성공의 길목일 뿐이다. 어제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 성공하는 믿음의 생활이 있기를 축원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더 나아가서 적당주의를 버리고 성심껏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고 성공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런 최종 평가를 받는 우리 모든 성도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