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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 /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17.03.19|조회수501 목록 댓글 0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

 

 

□ 본문 : 요한복음 8장 51-59절

 

 

우리들이 부르는 찬송가 중에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545)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1.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

후렴.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

 

우리는 무엇인가 눈에 보일 때 안심을 합니다. 어린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가끔씩 눈을 들어 엄마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엄마가 자기 눈에 보이면 안심을 하고,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놉니다.

그런데 엄마가 눈에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면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고 하다가 이내 '엄마'하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 때 엄마가 큰 소리로 말합니다. '성섭아, 울지 마. 엄마 여기 있다.' 그러면 눈물을 멈추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귀에 들려야 합니다.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의 본능입니다.

이런 모습은 신앙생활에도 나타납니다. 자꾸 눈으로 보길 원합니다. 뭔가 눈으로 보야, 하다못해 꿈이라도 꾸어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로 듣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사람의 육성처럼 말입니다. 그래야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십니다. 그때 데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후에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하자 데마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20:25)

보는 것은 물론이고 만져봐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때는 도마도 제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마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0:27)

도마가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29)

이 이야기 때문에 의심 많은 사람 하면 도마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도마의 별명이 '의심 많은 도마'입니다. 심지어는 복음성가에도 도마가 등장합니다.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 외롭고도 쓸한 모습

말없이 홀로 걸어가신 길은 영광을 다 버린 나그

정녕 그 분이 내 형제 구원했나 나의 영혼도 구원하려

의심 많은 도마처럼 물었네 내가 주를 처음 만난

 

그래도 도마는 승리했습니다. 이 후로는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예수님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도마는 인도까지 가서 부활의 예수님을 전하다가 순교했는데, 도마를 고문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으면 온 몸의 마디를 하나씩 절단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래도 도마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자 손가락 마디부터 하나씩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도마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을 외쳤습니다. 도마는 온 몸의 마디가 하나씩 잘려나갈 때마다 예수를 외쳤고, 그렇게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이 정도로 주님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고 생명까지 바칠 수 있다면 눈으로 한 번 예수님을 보는 것도, 한 번이라도 예수님의 음성을 육성으로 듣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눈으로 본다고 해서, 귀로 듣는다고 해서 다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마의 경우처럼 부활의 예수님을 눈으로 본 것이 도마의 믿음의 디딤돌이 되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한 번 본 것 때문에 계속 보여 달라고 하고, 한 번 들을 것 때문에 계들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는 것이, 듣는 것이 오히려 믿음의 성장에 걸림돌이 됩니다.

 

요한복음 8장31절부터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누구의 자손이냐는 문제로 대화가 오고가다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는 말에(44) 감정이 상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귀신이 들렸다고 인신공격을 합니다. 혈통으로 본다면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분명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은 곧 하나님의 자손이라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혈통으로 하나님의 자손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잘 믿는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저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혈통으로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 사람이 진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은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롬4:11)

 

51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위대하게 여기는 아브라함도 죽었고, 선지자들도 죽었는데, 어떻게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느냐고,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습니다.(53)

어떻게 예수님과 아브라함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에도 계셨고,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도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신 분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예수님의 선재성(先在性)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뿐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도무지 행하실 수 없는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56절 말씀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지금 낙원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보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보았다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무엇을 경험하거나 목격한다는 뜻이 있으며, 나아가 마음으로 보고 영적으로 보는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보았다는 것은, 믿음의 눈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7,18)

이 말씀의 일차적인 의미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씨'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보내주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16절 말씀입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라디아서 3장16절에 나오는 자손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씨'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씨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씨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갈라디아서에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궁극적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9) 이 말씀에 근거하면 우리도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까? 그들도 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아브라함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이 때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의 때를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것 아니겠습니까?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율법으로 구원을 받고,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까?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도 믿음으로 구원받고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오실 메시야를 향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고,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오신 메시야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입니다.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보지 못했고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눈으로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유대인들은 그 메시야를 직접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메시야가 행하시는 수많은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메시야가 전하는 말씀을 직접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예수님이 그들을 보시 얼마나 안타까우셨겠습니까? 그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고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보지 않고도 믿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을 향해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귀신이 들렸다고 말하는 유대인들은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도대체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 보지 않고도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반대로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보고도 믿지 않았을까요?

아브라함과 유대인들을 비교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말할 때, 결국은 두 부류로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있고,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여부가 믿음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원의 믿음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는 것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어.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믿음에 반응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과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아브라함과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유대인들을 통해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둘은 하나입니다.

 

첫 번째는 순종입니다.

 

순종과 믿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믿으면 순종합니다. 그리고 순종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자라납니다. 강해집니다. 믿음이 강해지면 더 큰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순종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더욱 굳건해 집니다. 믿음과 순종의 선순환입니다.

믿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믿음은 약해집니다. 약한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순종하 않기에 그 믿음은 더욱 약해지고 결국은 죽고 맙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않는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특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암송했습니다. 그리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마23:3)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은 이유가 이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자신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를 죽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말씀은 우리의 영혼에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말씀을 알고도 순종하지 않으면 외식하는 자가 됩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마치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순종 없 교회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이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는데 자신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좋은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믿음인데, 실상은 죽어있는데 본인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계3:1)

교회는 열심히 나올지 모르겠지만, 성경지식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자신도 주변 사람들도 믿음 좋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믿음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 죄에 지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타협합니다. 세상에서는 세상 사람하고 똑같이 살아갑니다.

그래도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포기하셨다면, 왜 이들에게 그런 모욕을 받으시면서까지 말씀을 전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포기하셨다면, 왜 그들에게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겠습니까?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의 믿음 없음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믿는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실체를 보게 하실 때, 감사하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믿음, 외식하는 믿음으로 살았던 것을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순종하십시오. 지금 알고 있는 말씀, 지금 내 마음에 부딪치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아무리 대단한 것을 보아도, 그리고 그 순간에는 '내가 믿습니다!' 큰 소리외쳐도, 순종하지 않으면 결국은 무너집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지은 든든한 믿음의 집은 순종을 통해 세워진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마7:25)

 

아브라함은 보지 않고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두 개 있는데, 두 개 모두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먼저는 창세기 12장1절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가야 할 목적지를 알려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게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만 하셨지, 구체적으로 어디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8절을 현대인의성경으로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떠났던 것입니다."

가야 할 곳을 말씀해주시지 않고 일단 떠나라는 것입니다. 아니, 생각해 보십시오. 잠깐 외출하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적지를 모릅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명령을 하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하나님,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무조건 떠나라고 하시니 너무 막막합니다.'

것이 순종 아닐까요? 막막합니다. 계산이 되질 않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하나 붙잡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 순종을 통해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을 더 많은 듣고 말씀을 더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듣고 아무리 많이 공부해도 순종하지 않은 말씀은 믿음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많이 들어도 여전히 죽은 믿음일 수 있고, 말씀 많이 공부해도 외식하는 믿음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였고, 그리고 순종 없이 신앙생활하는 교인들의 문제입니다.

더 이상 보여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순종하면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이 순종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과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 두 번째는 사랑입니다.

 

유대인들은 왜 메시야를 보고도 믿지 못했을까요? 요한복음 5장39절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유대인들은 성경을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이유, 예수님이 전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요5:42)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과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두 가지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순종이고, 두 번째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 둘은 하나입니다. 순종은 외적인 것이고 사랑은 내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고 말입니다. 반대로 말로는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인 것이 분명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자기 기분대로 자기 고집대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낱 거짓말에 불과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요14:24)

 

사랑하는 사람이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다급한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됐어. 말하지 않아도 돼. 네가 나에게 와서 이런 부탁을 할 정도면 분명 무슨 일이 있었겠지. 나중에 천천히 말해도 되니까 빨리 이 돈을 가지고 가서 급한 일을 처리해.' 사랑하는 사람이 고맙다고 하면서 '야, 그래도 사람일은 모르는데 차용증서라도 한 장 써야지. 작은 돈도 아닌데 말이야.' 이 말을 듣고 목소리를 높여서 말합니다. '야, 너하고 나 사이야. 네가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는 것이지만, 나는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이 돈을 돌려받못해도 아무 상관없어. 나는 그런 마음으로 너에게 주는 거야. 그런데 왜 너는 나의 이런 마음을 몰라주니?'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다급한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설명을 듣고 나니 말은 그럴듯한데 잘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돈을 빌려달라고 한 사람이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서류들을 보여줍니다. 서류를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내가 차용증서를 쓰겠습니다. 여기 지장도 찍고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공증까지 받아오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믿어주십시오.' 그런데도 왠지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너무 단적인 예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야기를 여러분은 동감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말 한마디면 됩니다. 그 이상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설명해준다고, 증거를 보여준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라도 믿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드라마인지, 어떤 배우가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잊혀 지지 않는 대사가 있습니다. 대사 그대로는 아니지만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나를 속인다고 해도 나는 괜찮아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이런 사랑을 맹목적인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맹목적인 사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맹목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경험과 이성과 판단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말씀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그 말씀을 하셨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듣기 좋고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해도, 그 말을 하는 자가 사탄이라는 것을 안다면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 말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빛입니다. 생명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당연히 그 말씀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보고도 믿지 않습니다. 보여주어야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의 문제는,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리 보아도 믿지 못합니다.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생명까지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의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창세기 12장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창세기 22장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당시 가나안 족속 가운데 인신제사를 드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시대만이 아니라 그 후로도 인신제사를 드리는 우상숭배는 계속되었고, 심지어는 유다 왕 가운데 자기 아들로 인신제사를 드리는 자가 있었습니다.(왕하16:3, 21: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이유가운데 하나였습니다.(왕하17:17) 하나님은 인신제사를 철저하게 금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시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에 도착해서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칼을 들고 이삭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며 말씀하십니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이삭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을 확인하신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당신의 약속확증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내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6-18)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8:39)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독자 이삭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보지 않고도 믿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님 때를 보며 즐거워하고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오실 예수님이 아니라 오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는 시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축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약속대로 오신 성령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이상 무엇을 더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이면 충분합니다.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탄식하며 말씀합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3:1)

바울 사도가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똑같이 탄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바영광교회 성도 여러분, 왜 그리 어리석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여러분의 눈 앞에 생생한데 누가 여러분을 유혹하였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①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셨는데, 왜 죄의 종으로 살아갑니까?

②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셨는데, 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③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는데, 왜 스스로를 정죄하며 왜 다른 이들을 정죄합니까?

④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셨는데, 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합니까? 이 놀라운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왜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습니까?

⑤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셨는데, 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살아갑니까?

⑥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우리에게 천국을 약속하셨는데, 왜 여전히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을 사랑합니까?

⑦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왜 성령을 따라 살지 않습니까? 왜 여전히 육신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⑧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우리를 모든 악의 세력에서 보호해주시는데, 왜 세상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고 마귀를 두려워합니까?

⑨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낙심하고 왜 절망하고 있습니까?

⑩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러니 다시 일어나서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따라가십시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545) 2절, 3절입니다.

 

2. 이 눈이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

이 맘에 의심 없이 살아갈 때에 우리 소원 주안에서 이루

3. 주님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한 주 하나님 아버지는 참 미쁘

그 귀한 모든 약속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무슨 일이 있을

후렴.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합시다.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따라갑시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에게 능치 못할 일은 없습니다. 주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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