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은 왜 타락했는가?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태우는 헌물과 희생물을 주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시겠나이까? 보소서, 이는 거역하는 것은 마술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불법과 우상 숭배와 같음이니이다. 왕이 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분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더라"(삼상15:22,23).
사울 왕은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왕들 가운데서 가장 안타깝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던 왕인 것 같습니다. 사무엘기를 보면 사울 왕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의해 최초로 공식적으로 임명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에게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이 필요하니 왕을 달라고 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왕이 바로 사울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높여졌으며, 온 백성의 추앙과 기대와 존경을 받았고, 이후 일어났던 여러 이방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대승리를 하곤 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큰 원수인 블레셋 군대에 의해 쫓겨 사랑하는 아들 요나단은 적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자신은 나머지 세 아들과 함께 자결함으로써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졌던 왕,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일꾼이었던 그가 이렇게 타락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매우 단순하지만 중요한 영적인 진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 말씀은 그 사람의 신분이 무엇이든 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완고히 행할 때 누구든 사울 왕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열매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쉽게 보는 것도 이런 단순한 진리를 잃어버린 까닭입니다. 그들은 요한일서 2:15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는 평이하지만 중요한 진리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은 차거워지고, 생각은 복잡해져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속화되고, 배도의 길 위에 서 있는 것도 "나는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15)는 다시 말해서, 세상과 양다리를 걸치지 말고 성경대로 행하라는 주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도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아무리 성경지식이 뛰어나고,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쓰디쓴 결과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살펴볼 사울 왕의 일대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사울에 관한 말씀은 사무엘기상 9장부터 나오는데 사울은 베냐민 지파 족속이며, 기스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왕으로서 사울을 세우셨는가 즉,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게 된 이유는 앞서 짧게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요청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적으로 사울을 왕으로 세워달라고 요청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을 다스리고 통치하며, 전쟁이 일어났을 때 앞서 싸워줄 왕을 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하나님께 있어서 심히 불쾌한 요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다스리고 통치하며 인도하신 하나님보다는 다른 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말한 모든 것에서 그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을 통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삼상8: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분노를 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지 않으셨지만, 그들을 위해 왕을 세우셨는데 그가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을까요? 사울의 배경을 보면 그는 그다지 특출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특출나다면 얼굴이 매우 잘생기고 키가 크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기스에게 한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젊은이더라.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그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없고 그는 백성 중의 어떤 사람보다 자기 어깨 위에 더 크더라"(삼상9:2).
오히려 사울은 왕의 후보자들 가운데 도저히 끼일 수 없는 불리한 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그 당시 베냐민 지파는 수도 적고 보잘 것 없는 족속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그의 집안 또한 가난하여 볼품이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적어도 왕이 되려면 학식이 있고 덕망 있는 집안 출신이고, 재력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며,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질 만한 유명세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결코 왕이 될만한 자격은 못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사울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택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사울의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사울은 자기 처지를 아는 겸손함을 지녔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사울을 왕으로 세우라는 명령을 받고 이 사실을 사울에게 전했을 때 사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가장 작은 지파 출신으로 베냐민 족속이 아니니이까? 또한 내 가족은 베냐민 지파의 온 가족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니이까? 그런데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라."(삼상9:21)
둘째, 사울은 모든 일에 대해서 신중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음에도 함부로 발설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사울이 자기 삼촌에게 이르되, 그가 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하던 왕국의 일은 고하지 아니하니라"(삼상10:16).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기분이 좋아서 이리저리 말하고 다녔을 것입니다. 누가 시험에 합격만 해도 요즘 사람들은 쉬지 않고 자랑합니다. 하물며 누가 왕으로 임명이 되었다고 한다면,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다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울은 이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때를 기다리는 신중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왕으로 세움을 입은 후에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례하게 했을지라도 그는 분노를 발하지 않고 잠잠하였습니다(삼상10:27). 사울은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이러한 성품과 처지를 통해서 그 당시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이 어떠한지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보라.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이는 어느 육체도 하나님의 눈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만일 하나님께서 스스로 지혜롭다 하고 강하다 하고 부유하다 하고 권세 있다 하는 자들을 택해서 왕으로 세우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분명 그들은 자신들의 육체적인 것들을 자랑하고 뽐내면서 교만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는커녕 부패하고 더욱 악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아무 볼품없는 사울을 택하셔서 그를 통해 온전히 일하시고 싸우심으로써 온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은 결코 외모나 육체에 자랑할 만한 것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역자들과 영적인 일꾼들을 세우시는 기준은 사울과 같이 자신의 처지를 아는 겸손함과,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곰곰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신중함으로써 하나님을 순종할 수 있는 성품에 있는 것입니다. 겸손하고 신중한 사울은 분명 하나님의 일꾼이었으며, 사무엘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표시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기상 11장에서 사울 왕이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사울 왕에게 임하여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게 하였으며, 흉포한 암몬 족속을 대파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전쟁은 결과적으로 사울 왕을 더욱 확고하게 하였으며, 온 이스라엘이 사울을 더욱 따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순종할 때, 그에게는 반드시 승리가 있었으며, 모든 일들이 화합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타락하여 하나님 앞에 가졌던 신중함을 잃어버리기 시작하자 큰 불행이 닥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시발점은 두 번째 전쟁인 블레셋 사람들과의 싸움에서였습니다. 모래알보다 더 많은 수많은 블레셋 군대들이 이스라엘 앞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병거가 삼만대요 기병이 육천 명이며 백성이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사울 왕과 함께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보고 벌벌 떨었습니다. 이 순간 사무엘이 와서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분명 상황은 역전되면서 이전에 경험했던 것처럼 승리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없었으며, 사울 왕과 약속하였던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사울은 여기서 고민합니다. '과연 더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헌물을 드릴것인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사울은 결국 사무엘 없이 자신이 헌물을 드리고 맙니다. 여기서 사울에게 있어서 두 가지의 성품이 상실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겸손과 신중함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왕이며 자신도 대언하였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으니 사무엘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을 품었습니다. 둘째로 사울은 사무엘이 헌물을 드려야 한다는 법을 알고 기다리는 신중함 대신 흩어지고 있는 백성들을 보면서 경솔히 판단을 내려버렸습니다. 겸손과 신중함을 잃어버린 사울! 이것은 엄청난 잘못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어리석게 행하였도다. 왕이 주 왕의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이제 주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왕국을 영원히 세우려 하셨을 터이나 이제 왕의 왕국이 계속되지 못할 것이라..."(삼상13:13,14상).
순간의 교만함과 경솔한 판단이 더 이상 하나님의 일꾼이요 사역자로서 세워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입니다.
사울의 타락은 세 번째의 전쟁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아말렉 족속과의 세 번째 전쟁은 하나님께 있어서 반드시 실행하셔야 하는 중요한 전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 번째 전쟁을 통해서 아말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실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울에게 있어서도 다른 어떤 전쟁보다도 중요한 전쟁이었습니다. 지난 전쟁에서 그의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잘못을 범하였고, 이번 전쟁을 통하여 이전에 가졌던 겸손과 신중함으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회복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이같이 명령하셨습니다.
"만군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숨어 그를 기다린 일을 내가 기억하나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진멸하고 남기지 말며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와 젖먹이와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삼상15:2,3).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빠져 나올 때 아말렉의 죄를 보셨으며, 이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수하시려고 하셨으며, 공의로 심판하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일을 사울 왕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정말 어처구니없이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그의 겸손과 신중함은 다 사라지고, 전리품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대리인이 아니라 약탈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삼상15:9). 사울 왕은 자신이 보기에 좋은 것은 남겨두고 나쁘고 가치 없는 것은 진멸하였습니다. 대리인은 그 일을 위임한 것만 해야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하였을 때는 그 결과에 대해서는 위임한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 세상 법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였던 사울은 약탈물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불의의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사울이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았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 그의 목소리는 가증스러운 것이며, 어리석기 그지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와 같이 말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태우는 헌물과 희생물을 주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시겠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마술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불법과 우상숭배와 같음이니이다. 왕이 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분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하더라."(삼상15;22,23)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셨습니다(삼상15:11). 사울이 아무리 변명하고 울부짖고 자신이 행한 잘못을 뉘우친다 할지라도 모든 것이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의 역할을 하며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구원의 은혜를 선포할 사람들이 세상의 좋은 것들에 눈이 멀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성도들의 돈을 착복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써야 할 재정을 건물치장이나 화려함을 자랑하는데 쓰는 일들, 진리를 외치고 사람들을 죄에서 떠나게 하는 일보다 재미와 명성을 추구하는 부자 사역자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사울 왕의 결말이 그렇듯이 한때 하나님을 위해 훌륭한 일들을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세상을 더 사랑할 때, 하나님은 그의 상급을 박탈하고,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로 만드실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울 왕의 영적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울이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나서 하나님을 일컬어 "당신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사울 자신의 하나님이 아니라 너무도 멀어져 버린 하나님, 가까이 갈 수 없는 하나님, 나와 상관이 없는 하나님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울 왕과 같이 겸손함과 신중함을 잃어버리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마음에 둘 때,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는 영적 변화입니다. 하나님이 멀어져 보이고, 구원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같은 기초적인 것을 의심하게 되며, 영적 모임들에 무관심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이제 완전히 타락했습니다. 이후에 다윗 왕을 시기하고 죽이려고 하는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었고,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자결하고 마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는 사울 왕이 왜 타락했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하지만 중요한 진리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을 겸손함과 신중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망각할 때 그것은 곧 타락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며, 범죄 행위들은 단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그것의 결과는 사울 왕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과 상급을 상실하고 많은 영적 능력의 상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육신적인 눈으로 좋게 보일지는 모르나 그것은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당장 중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함과 신중함으로 어떤 것이 성경대로 하는 것인지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