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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복음을 노래하자 / 유기성 목사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20.01.25|조회수109 목록 댓글 0

복음을 노래하자

어제 대전에 내려가 대덕연구단지 기독교직장선교회 연합집회에서 설교하고 왔습니다.
대덕연구단지는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의 연구기관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신우회원들은 다 연구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향한 열정과 전도의 열심, 나라와 민족을 향한 기도와 헌신이 대단하였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진 평일 저녁 집회인데도 예배당에 가득 모였습니다.

늦은 시간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느 목사님이 제게 다니며 “이제는 다니며 설교하지 말고 기도원에 들어가 책을 쓰세요. 그것이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메시지를 전하는 길일 것입니다” 라고 충고하신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 말씀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미 낸 책들도 있고 이젠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지난 설교들을 들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집회에 참석하여 설교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현장에서 참석한 회중들과 함께 주님을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그리고 말씀을 나누는 것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은혜가 있습니다.

제가 신학생 때, 참 존경하던 목사님이 계셨는데, 당시 동대문교회 교육목사님이셨던 박내수목사님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설교에 매번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저 진리를 선포하시는 것만 아니라 성경의 메시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제천제일교회에서 목회하실 때 꽃동네에서 가서 봉사하고 무리한 몸으로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새벽기도회 설교를 시작한지 5분 만에 쓰러지셔서 돌아가셨습니다.
목사님의 갑작스런 소천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좋은 설교자 한 분을 잃은 것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생명수는 곁에 흐르고] 설교집 한 권을 남기셨습니다.
제게 너무나 소중한 책 중 하나입니다.
그 책 서문에서 목사님은 설교집을 낸 것에 대하여 어리석은 일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제법 구실일 수 있다는 고집을 꺽고 무모한 일을 해냈다. 그것은 음악소리를 문자로 옮기는 우를 범한 사실이다”
설교집을 내신 일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목사님의 글이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목사가 설교집을 내는 것이 자랑스럽고 많은 사람에게 유익한 일이지 어리석은 일이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 뒤로 목사님의 말씀이 옳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집을 읽어 보면서 깜짝 놀랍니다. 내용이 너무 평범한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하고 그렇게 은혜롭다고 유명할 수 있는가?
저 스스로 은혜로운 설교를 했다고 느꼈던 설교도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그 설교 원고를 읽어보면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설교라고 했나?’

그것이 ‘노래를 문자로 옮기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설교를 할 때는 설교 원고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합니다. 설교자의 영적 상태와 회중들의 영적 상태도 설교에 영향을 끼칩니다. 예배당의 환경, 당시의 시대 상황 등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설교는 설교 원고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원고만 떼어 놓고 보니 설교할 당시의 감동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노래는 가사와 함께 곡조가 있어야 노래가 됩니다.
설교만 아니라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사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복음의 맛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가사만 알지 곡조를 모르는 노래와 같은 느낌인 것입니다.
신학생들이 마음이 뜨거워 신학교에 갔다가 냉랭해지는 것은 복음의 가사만 배우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 그 자체로 충분한 계시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것만 가지고는 온전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진리를 온전히 느끼게 해 줄 곡조가 더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곡조는 성령의 역사이고,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동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알 뿐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친밀히 동행할 때, 비로서 복음은 살아 있는 감격이고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곡조가 있는 노래’입니다.
우리는 다 예수님을 압니다. 그러나 정말 압니까?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친밀히 동행하는 기간이 얼마인지에 따라 예수님은 너무나 다르게 경험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친밀한 동행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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