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포기하지 말라
매일 밤 10시 교인들과 ‘하나님의 나라와 민족의 통일과 한국 교회 개혁을 위하여’ 합심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기도제목도 어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제 마음을 가장 답답하고 힘들게 하는 기도가 한국 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
한국 교회 개혁, 절벽 앞에서 선 느낌입니다.
‘안되나 보다, 이젠 끝이다’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오직 성경’의 종교개혁의 정신은 찾아 보기 힘듭니다.
‘오직’이 무엇을 말하는지 잊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장 마음 아픈 것은 교회 안의 갈라진 모습입니다.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인가? 성숙과 미성숙의 문제인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갈라져도 괜찮다는 생각, 아니 갈라지는 것이 잘 됐다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겨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모세의 마음은 자신이 대신 저주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동족 유대인을 향한 사도 바울의 마음도 같았습니다.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우리에게 이 마음이 있다면 한국 교회는 여전히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중수한 후 영적인 부흥을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을 보고 ‘지쳤다’ ‘포기했다’ ‘돌아 가야겠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들은 안되나 봐’, ‘우리 민족은 어쩔 수 없어’, ‘나 하나라도 바로 살아야 하겠다’ 하지 않았습니다.
책망도 하고 설득도 하고 감사도 하고 격려도 하고 눈물로 기도하면서 결코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느헤미야에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마지막 기도 때,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느 13:31) 라고 기도했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사 56:3-8을 보면 주님의 마음은 교회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은 누구도 잘라내고 차별하지 않는 거룩한 연합을 이루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사 56:8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나 하나 바로 서기도 힘들지만, 교회 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일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차라리 갈라지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더 이상 사람을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는 일에 손에 손을 잡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가진 문제가 너무나 많지만, 교회 공동체를 포기하면 안됩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향하여 험한 말로 비난하면 안됩니다. 그의 중심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 한다면 그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만날 때가 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 실망하여 기도를 중단한 이들이 있습니까?
다시 기도해야 하고 결코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도 기도를 무시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자기도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도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기도만 하면 다냐?" “기도만 하고 있을 때냐?”
이런 마음에는 기도에 대한 불신과 무시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무시요 불신입니다. 정말 주님을 바라본다면, 그리고 기도의 능력을 믿으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 은사, 소명이 각기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에게서 배우고, 함께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