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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1년도 설교

2010년 5월 5일 / 주일낮예배 / <무교절 및 초태생 규례>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16.01.24|조회수40 목록 댓글 0

<무교절 및 초태생 규례>

2010년 5월 5일 / 주일낮예배

첨부파일 20100505.hwp


*찬송:500,361장 (출13:1~16)

 

☐ 시작하는 말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몇 차례에 걸쳐, 출애굽 사건을 전후로 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유월절과 무교절 규례’에 대해 함께 살핀 바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그에 이어지는 내용으로서 ‘무교절 규례’에 대해 재차 강조하심(3~10절)과, 또한 모든 사람과 짐승의 초태생을 하나님께 드릴 것, 즉 ‘초태생 규례’에 대해 명령하심(2,11~16절)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본문의 내용을 함께 살피면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몇 가지 영적 교훈을 생각하며 은혜 받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므로 ~살라!’

먼저 1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1절).

그런데 원문과 비교해볼 때 여기에 한 가지 빠진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리고’, ‘그러자’라는 뜻을 가진 ‘와우’라는 접속사입니다. 따라서 이런 접속사를 살려 직역해보면 ‘그러자(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가 됩니다. 이런 형태를 일컫는 문법적 용어가 바로 ‘와우’ 계속법 또는 계속적 ‘와우’ 용법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한가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본문에서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앞선 12장과 오늘 본문이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앞선 12장의 출애굽 사건과 오늘 본문의 무교절이나 초태생 규례가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무교절과 초태생 규례를 명하심 이면에는 그들을 구원해내신 출애굽 사건이 전제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를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너희를 구원해 주셨으니 이런 규례를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참으로 중요한 성경의 원리 또는 구원의 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약시대에도 보면, 특히 사도 바울의 서신 구조를 보면 ‘너희가 구원을 받았으니 그러므로 이렇게 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원리가 신약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생겨난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부터 존재했던 분명한 원리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해 크게 두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계명과 절기 준수의 명령 이전에 구원 사건이 앞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구원해놓고 나서, 또는 살려놓고 나서 무엇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코 우리가 율법에 순종하거나 하나님의 명령과 절기를 지킴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그 백성들을 당신의 은혜와 능력으로 구원해놓고 나서 그들에게 당신의 뜻과 명령을 지킬 것을 요구하십니다. 신약시대에도 보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 선택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이 먼저 일어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뜻에 걸 맞는 성결하고 거룩한 삶, 순종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엡 2장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1~8절) 즉, 당시 에베소 교인을 비롯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해 구원 얻은 사실을 먼저 설명합니다(1~3장에서). 그런 다음 4장 이후(4~6장)에 보시면 이렇게 요구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1~3)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구원이 결코 우리의 행위와 순종에 달려 있지 않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믿으십시오. 그것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실 때 그것만 주신 것이 아니라 제사제도도 함께 주셨던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그렇다면 제사제도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인이 범죄 했을 때 짐승의 피를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비록 율법을 주시고 다 지키라고 명하셨지만, 그것을 온전히 지킬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음을 일찍부터 아셨습니다. 그러했기에 그 율법을 범하거나 불순종했을 때 사죄하심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제시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율법이 의미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신의 백성들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는 죄인임을 분명히 깨닫게 하는데 그 의미와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그런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그 백성들에게 허락하셨지만, 그것을 온전히 지킬 능력이 그들에게 없음을 아셨기에 그 죄를 속할 수 있는 방법, 즉 짐승의 피 흘림을 통한 죄 용서의 방법인 제사법을 함께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제사법은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는 것으로서, 히브리서 기자가 증거하듯이, 결코 짐승의 피가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보내어 한 영원하고도 온전한 제사를 십자가에서 드리게 하심으로써 그 공로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죄 사함과 구원의 은총을 입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모든 사실을 종합해보면 결코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말씀에 대한 순종에 기인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성령의 열매’입니다. 즉,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행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성령의 열매는 성령이 우리 속에 먼저 들어오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성령은 믿는 자 속에만 계시는 영이시기에 말씀과 믿음의 씨앗이 먼저 떨어진 마음 밭이 되어야 성령이 그 삶에 역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과 믿음의 씨앗이 마음속에 떨어져 그 심령의 밭이 살아나는 일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럴 때에 성령께서 그 마음 밭에 역사하시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결국 성령의 열매 맺는 삶,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사실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살려주시는 일이 먼저 일어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그분의 전적인 선택과 조건 없는 은총에 의해 그런 일이 먼저 주어짐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엡 2장도 분명히 보여주고 있듯, 즉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1,5절)라는 말씀이 보여주고 있듯이, 구원은 이미 우리의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안에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따라서 저와 여러분 모두 결코 구원 문제에 있어서 불안해하거나 의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믿음과 아멘으로 받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한편, 우리가 또 하나 1절 말씀에서 깨닫게 되는 바는 우리의 순종과 헌신이 결코 억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무교절 규례와 초태생 규례를 주시며 지킬 것을 명하실 때 이미 저들을 구원해주신 구원자 또는 구속자(고엘)의 자격으로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들이 이 규례를 비롯한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키는 것은 당신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한 방법이었고, 또한 당연하고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당신의 뜻과 명령도 다 우리의 구원 사건에 기초하며 또한 그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또한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또한 감사하는 마음과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 2~3장을 보면 당시 초대 소아시아 7교회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 먼저 언급하고 있는 교회가 에베소 교회인데, 그 교회를 향해 주님께서는 우선적으로 이렇게 칭찬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2~3절) 즉, 저들이 많은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의 정절을 지키고 또한 게으르지 않고 성실하게 충성한 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책망하심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4~5절) 그러니까 저들이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충성, 봉사하였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마 추측해 보건대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봉사와 헌신과 충성을 하였지만, 마지못해서이거나 아니면 의무감에서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에베소 교회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에서 분명히 깨닫게 되는 한 사실은 그 충성과 봉사가 오직 하나님과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기인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억지로 하는 봉사나, 의무감에서 또는 마지못해서 하는 충성과 헌신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는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되기를 원하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과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제대로 깨닫거나 체험하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기쁨과 감사와 감격 가운데서 맡겨주신 사명과 직분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수한 사랑의 마음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우리의 충성과 봉사와 순종이 하나님의 구원 사건과 베풀어주신 은혜에 기인함을 생각할 때 그 누구도 열심히 봉사, 충성한다고 해서 자랑하거나 교만하거나 생색낼 것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그 은혜에 대한 마땅한 반응이요 빚을 갚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도 다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 충성, 헌신, 순종하며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 무교절 규례(3~10절)

크게 두 번째로 생각할 내용은 3~10절에 나타난 ‘무교절 규례’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이 무교절 규례는 이미 앞선 12:15~20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던 사실입니다. 그런데 또 오늘 본문에서도 그런 무교절 규례를 다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죠.

물론 앞선 12장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그것을 지킬 것을 명령하시는 장면이고, 오늘 본문은 그런 명령을 모세가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이라는 측면에서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내용을 이 출애굽기의 저자인 모세나 궁극적 저자이신 성령께서 다시 반복하신다는 것은 그만큼 그 내용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무교절 규례의 의미가 무엇이며, 왜 그만큼 강조하고 계신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줄로 압니다.

 

우선적으로 이 ‘무교병’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맛없는 떡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당한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신16:3은 이 떡을 ‘고난의 떡’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교병을 그것과 아울러 먹지 말고 칠 일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아울러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속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너의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신16:3)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누룩 없는 떡을 무교절(유월절)을 비롯한 맥추절(칠칠절, 오순절)과 수장절(초막절, 장막절),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3대 절기 때마다 먹게 만듦으로써(출23:18, 34:25) 출애굽 구원의 은혜와 더불어 그 고난의 때와 비교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감사하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거의 어려웠던 때를 가끔씩 추억할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전 경제적으로 참으로 어려웠던 때, 즉 못 먹고 못 살던 때, 보릿고개가 있던 때를 추억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때에는 그야말로 쌀밥 구경하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하루 세 끼를 먹기도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바로 그런 어려웠던 때를 기억하면 지금 우리의 형편은 그야말로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이 어려웠던 때를 회상하면 지금의 형편이 비록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자연히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구원의 은혜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지 않고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셔서 ‘무교병’, 즉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맛없는 떡을 먹도록 명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그 백성들에게 당신의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기를 원하시는가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물론 이런 감사는 그분의 은혜를 받은 우리의 마땅하고 당연한 반응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그 백성들의 마음 자세와 태도가 이처럼 감사와 찬송에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면 이런 감사는 결국 우리 자신을 복되고 유익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 어느 교회의 사모님이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싹 터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감리교신학대학의 고 윤성범 학장님을 만났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다. “노트를 한 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 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한 일을 써내려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암세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감사는 하나님께는 영광과 기쁨이요, 감사하는 당자에게는 복이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언제나,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무교절 규례’의 목적과 의미도 바로 이런 감사생활에 있었음을 기억하면서 남은 생애 동안 더욱 많은 감사로, 아니 범사의 감사생활로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돌리며, 여러분 자신은 그 감사에 걸 맞는 풍성한 하나님의 복과 갚으심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한 불우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는데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물로 배를 채우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사 직전에서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제 2차 세계대전까지 터졌습니다. 소녀는 계속해서 굶주림으로 허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국제연합아동구호기금(UNICEF)’이라는 단체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역의 아동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소녀는 그 구제품을 먹으며 겨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성하여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되었습니다.

이 소녀의 이름은 바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 1929~1993)입니다. 오드리 헵번은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에 처했을 때 ‘국제연합아동구호기금’의 도움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성공하게 되었을 때 지난 과거를 생각하며 이 단체의 홍보 대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같은 지역의 굶주린 소년․소녀들에게 가서 먹을 것을 주며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천사’라는 칭호를 받으며 인생을 마쳤습니다.

▶ 우리도, 지나간 과거에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셨던 것, 지금까지 함께 하셨던 사실에 대해서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1494년 이태리의 한 영주가 이른 새벽에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원 한 구석에 뭔가 인기척이 있었습니다. 둘러보니까 한 젊은 정원사가 나무로 만들어진 화분에 열심히 조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보게, 이런 일을 한다고 누가 임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이른 새벽부터 왜 조각을 하는 건가?” “저는 이 정원을 아주 사랑합니다.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저의 직무이므로 보수와 상관없이 저는 기쁘게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영주는 그 청년의 대답에 감동을 받았고, 그의 소원인 미술 공부를 후원해 주었습니다. 후에 청년은 르네상스(Renaissance)시대의 최고의 미술가가 되었는데, 그 이름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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