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본 겸손
2023년 5월 7일 / 눅 22:26
눅 22:26 / 그러나 너희 가운데서는 남을 가장 잘 섬기는 사람이 너희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 평생을 겸손하게 살고파서 겸손을 연재(連載)로 하려고 한다 / 물론 앞으로 연재할 <겸손>에 대한 설교를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나 내 안에서 교만이 물러갈 때까지 준비하고 또 준비하려고 한다. 먼저 밝힐 것은 여러 목사님의 귀한 설교들을 많이 참고로 했고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분들에게 말씀하신 성령님의 음성을 통한 가르침을 통해 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평생 겸손한 자세로 살고 싶은 이유 (펌) /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백발의 노인이 될 때까지 난 절대로 겸손함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항상 학생의 자세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세상 만물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최근 2년 사이에 다양한 모임에 나가면서 나보다 연배가 높은 어른들을 많이 만나 볼 기회가 있었다.. 그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겸손함'을 많이 잃어버리는 것 같다... 모임 내내 자기 이야기 하느라 바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경청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물론 이해는 한다.. 자랑하고 싶고,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욕구다. 하지만 자신을 낮출 수만 있다면 훨씬 더 큰 보상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공자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누구랑 있든, 그 사람한테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분명 있다는 의미다..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자신을 낮추는 자는 주변 사람들의 소중한 지식과 노-하우 (미 know-how)를 쉽게 전수받을 수 있으며, 주변 사람들의 단점을 통해 내 자신을 고쳐 나갈 수 있다.
비단 인간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겸손한 자세는 내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 자신의 학교에서 전교 1등인 학생이 겸손한 자세로 학업을 이어나가면 전국 1등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1등인 기업이 겸손한 자세로 노력을 이어나가면 세계 1등도 노려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위치에 안주한 채 겸손한 자세는 커녕 오만함에 빠져버리면, 그 사람은 언제 어디서 큰 위기를 맞막뜨릴 지 모른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은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다... 큰 부를 이룬 사람, 큰 성공을 거둔 사람,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본다... 잘 나가는 사람이 갑자기 내리막길을 걷는 이유 중의 99%가 이 겸손함의 부족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겸손함의 상실은 초심을 잊어버리는 것과도 일맥상통한 이야기다.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되, 삶을 대하는 태도 만큼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겸손한 자세로 매사에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열심히 경청하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배워나가고, 내 자신을 끊임없이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야 말로, 기나긴 인생 여정을 살아가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삶의 자세가 아닐까... 이것이 바로 내가 백발노인이 될 때까지 겸손함을 잃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이유다.
● 예수님이 친히 택하여 세우신 12제자에게 나타난 겸손을 살펴보자. 이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겸손을 추구하던 내 모습과의 차이를 볼 때, 오순절에 이루어졌던 제자들의 그 놀라운 변화를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서 사탄이 인간에게 불어 넣은 교만을 깨뜨릴 수가 있으며, 겸손의 대표적인 행함인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겸손을 통한 부활의 영광스러운 승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온세상에 전하라는 사명을 알고 우리도 그 사명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 반면 사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들은 겸손의 은혜가 얼마나 부족했었는지 알 수 있다.
십자가를 곧 지시려는 예수님 앞에서 ‘누가 제일 높아질 것인지?’라는 문제로 서로 말다툼도 하였다.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어머니를 이용해 다른 제자보다 높은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청탁까지 했다. 또한 마가의 다락방에서 있었던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도 누가 제일 큰지에 대한 교만은 수그러들지를 않고 이날도 폭발했다. 물론 그들이 자기를 낮춘 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베드로의 겸손은 일시적이지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눅 5:4-8(현대어성경) / 예수께서 말씀을 다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제 깊은데로 나가서 그물을 내리라. 그러면 많은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5)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저희가 어제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시 해보겠습니다.’ 6) 시몬이 그대로 하였더니 그물이 가득 차서 찢어질 지경이었다. 7)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소리쳐 도움을 청하였다. 배가 가라 앉을 정도로 곧 두 배에 고기가 가득 찼다. 8)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오! 주님, 제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주님을 모시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죄인입니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머물게 하신 이유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에게도 그러하지만 그 뒤를 걷는 우리도 해결할 문제이다.
신 8:2-6 /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난 40년 동안 저 광야에서 여러분을 인도해 주신 그 여정을 모두 돌아보십시오. 그 목적은 여러분의 고집을 꺾어 겸손하게 낮추어 놓는 한편, 여러분이 과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인지 아닌지 여러분의 마음을 시험하여 알아보시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3) 주께서 여러분의 고집을 꺾으실 때 여러분을 굶주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여러분도 몰랐고 여러분의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주께서 여러분에게 먹여 주셨습니다. 그 목적은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주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치시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4) 지난 40년 동안 여러분의 옷이 해진 일이 없었고 여러분의 발도 부르튼 일이 없었습니다. 5) 여러분이 이 사실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옳게 가르치듯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가르치셨다는 사실입니다. 6) 그러므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로만 걸어가면서 주님을 경외함으로써 주님의 명령을 지키십시오.
그러나 가끔 제자들,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에게 나타나는 일시적인 겸손으로는 습관으로 굳어진 교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저들의 습관화된 교만은 종종 지위와 권세에 대한 자동적이며 무의식적인 이기심으로 드러났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겸손(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왜 필요한지를 배울 수 있다.
1. 겸손이 없이도 열정적인 종교활동을 할 수 있다
가장 큰 은혜인 겸손이 매우 부족한데도 제자들의 종교적 열심은 보통이 아니었다. 물론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셨지만 그들의 선생님이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그리스도이신 것도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 예수님을 믿었고 육신적으로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도 열심히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을 듣고 이해를 하지 못하여 떠나갔지만 ‘너희도 내 곁을 떠나려 하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이심을 믿습니다.’(요 6:67-69).
그뿐 아니라 예수님을 열렬히 따르려고 모든 것을 버리기까지 했다(마 19:27 /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과 함께 죽을 결심도 했다(마 26:33 / 베드로가 나서서 장담하였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린다 해도 저는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자신들도 모르는 무서운 흑암의 권세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이 되기 전에 이 어두움의 권세(음부의 세력, 죽음의 세력)를 당연히 끊어버렸어야 했다. 이 사실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다고 자칭하는 많은 목사, 장로, 집사, 크리스천들을 아니 우리 자신들에게서도 패망의 대명사인 교만은 찾아볼 수 있다. 솔직히 우리 아니 나에게서 겸손의 은혜가 성품이 되어 있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는 서두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겠는가?
마 7:21-23 /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22) 심판 때에 많은 사람이 `주님,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하더라도 23)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는 내 사람이 아니다. 물러가라, 이 악한 자들아!'
충격적인 것은 겸손은 잠시 옆으로 놓고서라도 교만에 찌들어 교만 덩어리가 암 덩어리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사실은 통곡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내가 아닌 저 사람부터’라고 하니 …. 요엘서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요 그보다 나에게 주어진 말씀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욜 2:12-14 /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지금이라도 너희는 마음을 온전히 바쳐 내게로 돌아오너라. 금식하며 울고 슬피 가슴을 치며 돌아오너라!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너희의 심장을 찢으며 회개하여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주께로 돌아오너라. 그분은 친절하시고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쉽게 화를 내지 않으시며 성급하게 너희를 처벌하지도 않으시며 지극히 너그럽고 긍휼이 많은 분이다. 14) 혹시 아직도 주께서 마음과 뜻을 돌이키어 너희들을 남겨 두시고 당신의 무서운 저주 대신에 너희에게 복을 주시려고 결심하실지 누가 알 수 있겠느냐? 너희가 전과 같이 곡식과 포도주로 주께 제물을 바칠 수 있도록 그분은 어쩌면 너희들에게 풍성한 복을 주실지도 모른다.’
겸손은 무엇보다 으뜸 되고, 가장 높은 은사 가운데 하나이다. 겸손은 이루기가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이며,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할 문제 중 하나이다. 이 겸손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우리 속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동행할 때, 비로소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제자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
2. 겸손은 외적 교훈과 인간적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
모든 외적 교훈과 인간적 노력으로는 교만을 물리치거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인간의 교훈이나 노력은 도무지 무능력할 뿐임을 제자들을 통해 배운다. 제자들은 3년 넘도록 예수님께 직접 훈련받았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원하셨던 가장 큰 교훈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바리새인들 또는 무리에게 항상 가르치신 교훈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오직 겸손임을 언제나 암시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언제나 겸손히 사람들 앞에서 사셨을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그분의 성육신의 신비가 무엇인지 여러 번 알려주셨다. 그 신비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자신의 본을 따르라고 부탁까지 하셨다.
요 13:12-15 /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 주신 예수께서는 겉옷을 다시 입고 식탁에 앉아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의 발을 씻긴 뜻을 알겠느냐? 13) 너희는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사실이 그렇다. 14) 그렇다면 주요,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남의 발을 씻어 주어야 옳지 않겠느냐? 15) 내가 너희에게 베푼 것같이 너희도 남에게 베풀도록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 그들에게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최후의 만찬에서까지 누가 가장 큰 자인지 다투었다. 제자들은 아무 의심 없이 열심히 예수님으로부터 겸손에 대한 교훈을 배우려고 애를 썼지만 배움은 배움으로 끝날 뿐 헛된 것처럼 되었다.
어떤 능력 있는 교훈도, 비록 그리스도의 교훈으로 사람을 가르쳐도 그들의 교만을 꺾을 수 없고, 아무리 논리적인 변론으로도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아무리 신실하고 열정적인 개인적 결심과 노력으로도 교만이라는 마귀의 성품을 뿌리 뽑을 수는 없다. 마귀가 마귀를 쫓아내면 더 강한 마귀가 새로 차지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오직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품, 즉 그분의 겸손이 우리의 새성품이 되어서 옛 성품을 깨뜨리는 것 외에는 효과가 없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솔로몬이 애통하는 모습을 전도서에 볼 수 있다.
전 12:12-13 / 내 아들아! 한 가지만 더 일러두겠다. 책을 많이 쓰는 것도 끝없는 일이요,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몸을 피곤하게 한다. 13) 이제 이 모든 말씀의 결론을 듣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 이것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이다.
이에 사도 바울도 동조했다.
롬 7:15-24 / 나는 나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속으로는 올바른 일을 해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원하지 않는 짓, 내가 미워하는 짓만 저지르고 있습니다. 16) 나는 내 행실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내가 어기고 있는 율법이 선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17) 그러면서도 이러는 나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나를 이미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게 이런 악한 일을 시키는 것은 내 속에 들어 있는 나보다 더 힘이 센 죄입니다. 18) 나는 내 육신 안에 올바른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나는 나에게 올바른 일을 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되지가 않습니다. 19) 선한 일을 하고 싶어도 되지 않고 악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되지 않습니다. 20) 이제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문제는 분명해집니다. 죄가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1) 나 스스로는 늘 올바른 일을 원하나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일을 해버리는 이것이 인생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22)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고 싶어하면서도 23-25) 내 속 깊은 곳에 어떤 다른 것이 있어서 그것이 내 마음에 분란을 일으켜 나를 누르고 아직도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마음으로는 늘 기쁨으로 하나님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봅니다. 이제 여러분은 내 형편이 어떻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인간입니까! 누가 이 죽을 수밖에 없는 노예 상태에서 나를 해방시켜 줄 것입니까?
3. 겸손하기를 위하여, 유지하기 위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참 겸손은 그 근원이 되시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좌정하셔야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인간 아담에게서 교만을 받았다. 그와 같이 우리는 후아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겸손한 마음을 받을 수 있고 겸손을 유지할 수가 있다. 교만은 무서운 힘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있다. 교만은 우리의 육신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겸손도 우리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 겸손이 나와 우리의 성품이 되어야 한다.
벧후 1:2-9 /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더욱더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배우십시오. 3)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지니신 위대한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선한 품성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4) 그리고 그같은 권능으로 놀라운 은총을 풍성하게 내려 주시기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정욕과 부패에서 해방되어 그분의 품성을 나누어 받게 된 것입니다. 5) 그러나 이런 은사를 받아 간직하려면 믿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6) 더 나아가 여러분은 욕망을 버리고 인내와 경건을 몸에 익히며 기쁨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7)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과 즐겁게 사귈 수 있고 친밀해지며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8)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익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9) 믿음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여기고 더 이상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시각장애인이든지 심한 근시안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위해 강하고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죄에 물든 옛 생활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교만해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쉬운 것처럼, 성령으로 충만하면 겸손 역시 자연스럽고 쉬워지며 그렇게 될 수 있다. ‘죄 많은 곳에 은혜도 넘친다’라고 하신 그 약속은 우리들에도 적용된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 안에 거하신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우리의 삶 안에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갈 5:22-2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령님과 동행하고(갈 5:25), 성령 충만해야 한다(엡 5:18). 또한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도와주신다(롬 12장, 고전 12장, 엡 4장).
겸손은 그리스도의 으뜸가는 영광이며, 첫째 명령이요, 우리에게 가장 고귀한 축복이다. 겸손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신 참 제자가 될 수 없다. 제자들에게 이 겸손의 은혜가 결핍되어 있을 때, 그들의 영적 상태는 부끄러운 모습뿐이다. 겸손하기 위하여 제자들이나 우리가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누가복음 11:9-13처럼 성령을 구하는 것뿐이다.
눅 11:9-13 / 기도도 이와 같다. 구하라, 주실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어주실 것이다. 10)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아버지된 사람으로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겠느냐?' 12) 아들이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비록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님의 거룩하심 특히 겸손함이 나에게 임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셨으되 응답을 받으려면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
눅 11:5-8 / 예수께서는 기도에 대한 것을 더 많이 가르쳐 주시면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에게 친구가 있다고 가정하자. 한밤중에 그 친구에게 가서 `여보게, 떡 세 덩이만 꾸어 주게. 친구가 여행 중에 우리 집을 찾아왔는데 먹으라고 내놓을 것이 없어 왔네' 하고 말하면 7) 그 친구는 침실에서 큰소리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제발 나를 귀찮게 하지 말게. 문은 이미 다 잠가 놓았고 우리는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네. 그러니 지금은 자네에게 어떻게 해줄 수 없네.' 8) 그러나 내 말을 잘 들으라. 그가 친구라는 이유로는 일어나서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 그 간곡히 조르는 것 때문에 일어나 그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이 말씀과 비슷한 말씀을 더 해 주셨다.
눅 18:7-8 /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간구하는 그의 백성에게 공정한 판결을 해주시지 않겠느냐? 8)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신속히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과연 몇 명이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처럼 겸손해지기를 위해 간구하며 기도할 때에 겸손한 성품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 그리고 계속 겸손함이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자.
우리도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고 악한 세상에 살고 있기에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또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실 것이다.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 살면 우리는 육체의 욕망에 끌려다니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령께서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악한 일 하기를 좋아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살며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 본성의 욕망과는 정반대이다. 우리 속에 있는 이 두 힘은 서로 우리를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양쪽 틈에 끼여서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 살면 더 이상 억지로 율법에 복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롬 7:14-24).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하나님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서 베풀며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마 6:33).
결 론
겸손을 위한 기도를 일상의 습관으로 만들자 / 오늘날 습관이라는 단어가 때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할 때가 있다. 그러나 습관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서양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생각의 씨앗을 뿌리면 행동의 열매를 얻게 되고,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습관의 열매를 얻는다. 습관의 씨앗은 성품을 얻게 하고, 성품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을 길러준다면 자녀 교육의 90%는 이미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 규칙적으로 독서하는 습관, 예습하고 복습하는 습관, 운동하는 습관, 타인의 말을 잘 경청하는 습관, 봉사하는 습관, 교회 가는 습관, 성경 읽는 습관,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주었다면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자녀 교육-끝난 것 아닌가? 그래서 습관은 운명을 결정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습관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이 기도하는 습관이셨다. 누가복음 22장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감람산 겟세마네 정원에 기도하러 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내일 십자가를 지게 되는 사건 때문에 그곳에 가신 것이라고 기록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눅 22:39) 예수님께서 감람산을 찾아 기도하는 것은 일상의 습관이셨다. 거룩한 습관이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결코 형식적인 습관이 아니셨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11:1을 보면 어느 한 곳에서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이 그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만일 예수님의 기도가 일상적인 형식이었다면 기도가 끝났을 때 제자들은 그냥 ‘기도를 끝내셨구나’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기도의 모습이 주는 어떤 감동에 사로잡힌 제자가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요청했다.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싶어진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는 일상적 습관이 아닌 거룩한 습관이셨다. 아니 그분의 삶의 거룩한 리듬이셨다. 없어서는 안 될 실존의 방식이셨다. 그래서 우리 선배들은 예로부터 기도를 호흡이라고 가르쳤다. 우리는 호흡을 습관적으로 하며 살아간다. 만일 호흡을 멈추면 성도는 영적으로 죽는다. 그래서 호흡은 생명이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이었던 기도를 우리의 거룩한 습관으로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