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의 마음을 보면서
2022년 2월 6일 / 누가복음 15:1-7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온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선한 목자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 그 다음에 ‘한 집념의 여인과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이고, 마지막에는 ‘아버지의 사랑과 탕자의 비유’이다. 이 세 가지 비유는 모두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가르쳐 주는 비유이다(7, 10, 24, 32절). 예수님은 이 비유들을 통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과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계시는가를 가르쳐 주셨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이 똑같은 주제를 세 번이나 비유하실 만큼 강조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한다. 세 번 반복할 만큼 이 주제가 우리에게도 중요한 진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 진리를 잘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강조하셨을 것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성경에 정통한 사람들이었고 성실한 종교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에 관해 무지했다. 하나님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는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처럼 경건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소수에 불과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서 어떻게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저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도 하고 판단도 한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님께서 다 받아 주실 거라고 말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에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종말에 충격적인 일이 있을 것을 미리 경고해 주셨다.
마 7:21-23 /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22) 심판 때에 많은 사람이 `주님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하더라도 23)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는 내 사람이 아니다. 물러가라, 이 악한 자들아!'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서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없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참되게 신앙생활하려면 우선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께서 똑같은 이야기를 세 번씩 되풀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심정을 전달하시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심정을 알게 된다면 우리 삶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사도가 된 바울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풍부했으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는지에 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나아가 자기 때문인 줄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인 중에 괴수였던 자기에게 나타나시자 엎드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때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것들을 지금에 와서는 모조리 내던졌다’고까지 여기저기에 외치면서 하나님의 뜻(마음)을 바로 알라고 가르쳤다.
빌 3:1-11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이미 여러 차례 한 말입니다만 여러분을 위해 또다시 당부하는 것이니 내 말을 단단히 들어 두십시오. 2)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위험한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그 악한 자들을 경계하십시오. 3) 몸의 한 부분을 잘라 낸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 예배만이 참할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자랑할 일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뿐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4) 그러나 만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에 충분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면만을 본다면 확실히 나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5) 나는 순수한 유대인 혈통을 이어받아 오랜 전통의 베냐민 가문에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유대인의 표지를 받기 위해 할례의식을 치렀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디 한군데 흠잡을 데 없는 진짜 유대인입니다. 게다가 유대교의 모든 율법과 관습을 지키기를 가장 엄격하게 요구하는 바리새파 회원이었습니다. 6) 얼마나 그악스러웠던지 교회를 모조리 핍박했고 유대교의 모든 규칙과 규정을 빠짐없이 지키려 온 힘을 쏟았습니다. 7) 그러나 한때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것들을 지금에 와서는 모조리 내던졌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소망을 두기 위해서입니다. 8)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존귀해서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다 쓰레기처럼 여기고 모두 내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9) 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거나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10)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내던졌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전능한 능력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11)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분이 가지는 신선하고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엡 4:17-24 / 이제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더 이상 구원받지 못할 자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지 마십시오. 그들은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닫고 깜깜한 어둠에 갇혀 지냅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깨닫지 못합니다. 19) 그들은 선과 악도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을 불결한 생활 속에 내맡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악한 생각과 무분별한 욕망에 이끌려 그런 생활을 멈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2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렇게 살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21) 만일 여러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배우고자 한다면 22) 여러분의 그 낡고 악한 옛 사람을 뽑아 던지십시오. 여러분의 그 낡고 악한 옛 사람이야 말로 육욕과 속임수로 가득 차서 속속들이 다 썩어 버린 지난날 여러분의 자화상입니다. 23) 이제 여러분은 태도와 생각을 새롭게 바꾸어야 합니다. 24) 여러분은 전혀 다른 새 사람, 거룩하고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새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라는 자부심을 버리고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11)고 하면서 ‘이 새 생명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국적이나 인종이나 교육이나 사회적 신분의 차이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 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새 생명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배려를 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하십시오. 겸손하게 온유와 인내로 관용을 베풀어 언제나 남을 용서하고 원한을 품지 마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고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십시오.’고 외쳤던 것이다.
1. 비유의 배경
이 비유를 말씀하게 된 계기는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시고 그들과 같이 음식을 같이 잡수시는 것을 보고서 속이 좁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원망하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세리와 죄인들은 그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가장 멸시 받고 죄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특별하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해 주셨다는 생각으로 우월감을 가진 유대 민족주의자들 입장에서 보면 세리는 원수나라인 로마제국의 앞잡이이요, 민족 반역자요, 모리배이다. 그리고 죄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믿음을 버리고, 도덕적인 삶을 져버린 사람들이다. 그들과는 상종할 가치조차 없다. 그들과의 교제는 종교적으로 부정한 일로 여겨졌다.
이와는 달리 서기관들은 구약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정성스럽게 구약성경 필사본을 만들고, 또 율법을 가르치는 학자들이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당시 가장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로서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았다. 이들 모두 정통파이고, 경건주의자이며 구약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문자적으로 믿는 종교 전문가들로 구약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다고 하였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은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힘쓴다고 생각했다. 그들 나름대로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키고, 금식, 십일조, 구제에 힘썼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로부터 외모로 존경받는 신앙인들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들이 예수님의 가장 큰 대적자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과 사사건건 충돌하였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식사까지 같이 하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비판하였다.
그렇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근본 문제가 무엇일까? 왜 이들은 예수님을 원망했을까? 왜 예수님과 사사건건 충돌했을까? 예수님과 그들 사이에는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견해가 너무도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경건한 자신들과는 교제를 나누지 않고 더러운 세리와 죄인들과 동석하고 친구가 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믿는 이유는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편 1:1을 보아도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다. 복 있는 사람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죄인들과 함께 길을 걷지 않고, 그들과 동석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구약성경에도 악인과 자리를 함께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서 성경을 자기네 생각대로 믿는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예수님을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 예수님은 그런 사실을 아시면서도 세리와 죄인들과 자리를 같이하며 음식까지 같이 잡수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예수님이 시편 말씀을 모르셔서 그랬을까?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성경을 잘 알고 계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을 사랑하고, 관심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무엇일까? 그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었지만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기에 말씀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죄를 미워하신다. 그런데 이 죄를 없애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❶ 죄를 짓는 사람을 즉각 처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듯이 우리 모두도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롬 3:10-18 /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❷ 그런데 또 다른 방법이 있다.
그것은 죄인을 회개시켜서 의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처벌하여 없애는 것보다 죄인을 구원하여서 의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셨다. 그분이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담당하셨다. 그래서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판결을 내리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성경에서 죄인과 함께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죄인들의 악한 행위를 본받지 말고 물들지도 말라는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기에 악한 자의 영향을 받아 죄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회개하여 모두가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 마음을 아셨다. 그래서 죄인들과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것은 그들의 죄의 길을 따라가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삼가 조심해야 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고, 성경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교만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이다. 아무리 성경을 지식적으로 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면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도 성경은 잘 아는데 실상 하나님의 심정을 몰라서 불순종하고 있지 않는지 스스로 자신을 성찰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신앙행위에 열심이었고,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던 바리새인들이 실상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여 도리어 하나님을 거슬리며 대적했기 때문이다. 이에 예수님은 이들이 너무도 안타까워서 세 번이나 같은 내용의 비유를 반복하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었던 야고보 사도가 한 말을 인용하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갖자.
약 1:23-27 / 만일 누가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그 사람은 거울 앞에서 떠나면 곧 자기 모습을 볼 수가 없고 또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립니다. 25) 그러나 인간을 죄에서 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율법을 계속 착실하게 지켜 나가는 사람은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율법대로 실천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큰 복을 내리십니다. 26) 만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라고 내세우면서 함부로 말을 지껄이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그런 신앙생활은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27)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순수하고 흠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아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주님 앞에 늘 진실하게 살아갑니다.
부정직한 세리들과 소문난 죄인들이 가끔 예수의 설교를 들으려고 온 것을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이 일을 두고 빈정거림을 보시고 누가복음 15장 말씀을 하신 것이다.
2. 비유의 내용
누가복음 15장에서 3가지 교훈은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여기에서는 한 부분만 본다.
어느 목자가 100마리 양을 치다가 한 마리를 잃어 버렸다. 양 한 마리가 그만 목자를 따르지 않고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다른 양들은 목자의 인도함을 받는 우두머리 양의 뒤를 좇아가는데 그만 한 마리가 한 눈 팔다가 뒤쳐졌다.
이렇게 상상해 본다. 길을 가다가 저쪽에 한 무더기 싱싱한 풀을 발견했다. 그걸 다 뜯어먹고 보니 그 옆에 더 상큼한 풀이 있다. 자신이 목자의 시야에서 점점 벗어나는지도 모르고, 맛있는 풀을 뜯어 먹기에 열중하고 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모두 다 떠났다. 목자의 음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큰 일 났다 싶어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울어보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길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이 신자들을 실족시킬 때도 똑 같다. 죄 사함 받고 영생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감격과 감사도 잠깐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앙생활이 시들해 진다. 이럴수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 예배를 드리는 일, 기도생활, 성경 읽고 묵상하기 그리고 성도들의 교제에 소홀히 하지 않도록 열심을 내야 한다.
마 13:24-25 / `하늘나라는 농부가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린 것과 같다. 25) 사람들이 자고 있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밭 사이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고린도전서 10:12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듯이 깨어 기도하지 않는 순간 영적인 잠에 빠져 마귀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 인간의 탐욕과 정욕, 오만과 아집, 부주의와 게으름,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가 하나님을 떠나 길을 잃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된 길로 갔었도다.’(사 53:6) 라고 하였다. 사도 요한은 믿음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다.
요일 2:14-17 / 자녀들이여, 내가 이 편지를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고 있고 있는 아비된 사람들과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 간직하고 그 말씀으로 사단과 싸워 승리한 굳센 젊은이들에게도 말합니다. 15) 이 마음 빼앗기지 마십시오. 만일 이런 것들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6) 이런 세속적인 일들, 이런 악한 욕망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욕에 미치거나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이나 다 사고 싶어하거나 재산이나 지위를 자랑하는 따위의 욕망들은 모두 이 악한 세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17) 이 세상은 사라지고 이런 악한 욕망도 세상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자기 멋대로 사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지만 잠시 잠간 동안만 그렇다. 곧 가시덤불에 걸리기도 하고, 바위에 무릎이 깨지기도 하고, 목은 마르고, 배는 고픈데 밤이 찾아오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맹수 소리이다. 멀리서 들리던 맹수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크게 들려올 때 온 몸이 부르르 떨린다. 결국은 맹수의 밥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목자의 마음은 아프다. 아흔 아홉 마리가 남아 있지만 한 마리 양이 어디서 배회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견딜 수 없다. 우리들에게는 이런 목자의 심정이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젯거리 양을 찾는다고 해도 얼마 동안 찾다가 그만 둘 것이고 또 찾더라도 화가 나서 잡아서 구워 먹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목축업에 종사하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목자와 양의 관계는 그렇게 헐렁헐렁한 관계가 아니다.
▶ 사무엘하 12장을 보면 다윗 왕이 죄를 범했을 때 선지자 나단이 찾아왔다. 선지자 나단은 지혜롭게 다윗의 죄를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책망하지 않고, 먼저 한 비유를 들어 말한다.
어떤 부자가 있는데 양과 소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옆집에는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에게는 양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이 가난한 사람은 이 양 한 마리를 마치 자기 딸처럼 사랑했다. 자신이 먹는 것을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함께 마시고, 그냥 끌어안고, 쓰다듬고, 딸처럼 애지중지하게 키웠어요. 그런데 어느 날 부자에게 손님이 왔는데 음식을 대접하는데 자기 양 잡는 것이 아까워서 하나밖에 없는 그 애지중지하는, 가난한 사람의 양을 뺏어다가 손님을 대접했다 하고 다윗의 죄를 범한 행위를 빗대어서 말했다. 이 비유에 가난한 사람에게 양 한 마리는 마치 자기 딸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양과 목자의 관계이다.
소년 다윗은 자기 생명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사자의 입을 찢어 어린 양을 구출했다. 목자로서 양을 사랑하며 돌본 경험이 있기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고 하나님과의 짙은 사랑을 노래하였다.
양이 목자를 위해 희생하지 목자가 양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요 10:11, 15)고 하셨다. 그것도 그냥 ‘목자’라고 하지 않고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다.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은 양들 아니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양과 사람은 함께 놓고 비교할 수 없지만 유목민들에게는 잃어버린 양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이처럼 절박하다. 그래서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섰다. 어떤 사람은 한 마리도 중요하지만 아흔 아홉 마리도 돌봐야 될 것 아니냐하고 질문할지 모른다. 물론 그렇다.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도 중요하다. 그래서 아흔 아홉을 ‘들에 두고’ 여기서 들이란 확 트인 들판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길 잃을 염려가 없다. 맹수가 쉽게 찾아오는 곳도 아니다. 아흔 아홉을 안전하게 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섰다. 이곳저곳 양을 부르며 골짜기를 건너고 산등성이를 넘는다. 몸은 지치고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간다. 은근히 들에 두고 온 양무리도 걱정이 되지만 포기할 수 없다.
그러다 마침내 절벽 위태한 곳에 서서 어쩔 줄 몰라 울고 있는 양을 발견한다. 얼마나 기쁘겠는가? 단숨에 달려가 그 양을 붙잡아 양어깨에 매고 신속히 그 위태한 곳을 떠난다. 집에 돌아와서는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고 ‘잃었던 양을 찾았다! 잃었던 양을 찾았다!’하면서 즐거워한다. 친구와 이웃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이려면 잃은 한 마리 양의 값보다 훨씬 더 많이 들는지 모른다. 경제적으로만 따지자면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았다고 잔치를 벌이는 것은 정신이 나간 짓이다.
그런데 목자는 그 양을 사랑하기 때문에 잔치를 벌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상대의 가치를 정해 버린다. 한 마리 양의 가격은 별로 일지 몰라도 사랑의 대상이기에 돈으로 따질 수 없도록 귀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향한 심정이다. 나 같은 죄인을 구하시려고 자기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어서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신다. 이런 엉터리 계산이 어디 있을까? 정말 바보스럽지 않은가? 죄인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희생하시다니 ….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이 아버지의 눈을 멀게 하였고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죄인들을 구하셨다.
요 3:16 /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3. 비유의 교훈
요일 3:16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고 우리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17) 누구든지 많은 돈을 가지고 잘 지내면서 궁핍한 형제를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에게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18) 자녀들이여, 사랑한다고 혀에 발린 말을 이제 그만 두고 진정으로 서로 사랑합시다. 그리고 사랑을 우리의 행동으로 보여줍시다.
■ 뉴욕에 ‘인형 병원’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은 이래저래 고장이 납니다. 아이들은 속상해 한다. 그러면 이걸 가지고 가서 수리를 한다. 그 수리하는 공장을 인형 병원이라고 했어요. 인형을 가지고 놀다 팔이 하나 떨어지면 ‘얼마나 아플까?’하는 게 아이들의 심정이다. 그래서 붕대로 붙들어 매가지고 인형 병원 수술실에 놓고 갔다가 다음날 찾아온다. 사실 이렇게 하면 새로 인형을 사는 값보다 더 비싸다. 비싸도 그렇게 한다. 왜냐하면 그 인형을 사랑하니까, 그 인형이 소중하니까. 그런데 어른들은 어떻게 할까? 고장 나면 ‘내 버려!’, 부러졌으면 ‘까짓 거 던져버려, 또 사줄게.’라고 말한다. 인형 하나가 아이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고, 인형 하나가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쉽사리 간과해 버린다. 이게 바로 동심을 잊고 사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데 오늘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이 여기에 멀쩡하게 있지만 목자의 마음은 한 마리 잃어버린 양에게 향한다. 잃어버린 양을 향한 지극한 사랑이 목자로 하여금 찾게 한다. 이 하나님 마음을 잘 알아야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뇌성마비 지체장애자인 송명희 시인이 지은 시 가운데 ‘나에게 주소서’란 시가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나에게도 주소서 / 주께서 좋아하시는 것 나도 좋아하도록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 나도 싫어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심령을 나에게도 주소서 /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 나도 기뻐하도록 주님이 슬퍼하시는 것 나도 슬퍼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에게도 주소서 /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 나도 사랑하도록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 나도 미워하게 하소서 / 이런 하나님의 마음만을 좇아 평생 살게 하소서 /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만을 닮게 하소서
■ 양들이 목자의 말을 항상 잘 들으면 좋으련만 그들이 항상 목자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아니다. 목자의 말을 잘 들어야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양들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일탈(逸脫)을 꿈꾼다. 그것이 때론 자기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보면 이 모습이 신앙을 가지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걸 알면서도 삶의 순간에서 수없이 넘어지는 우리들의 모습은 울타리를 넘어 탈출하려고 애쓰는 양의 모습과 참 비슷하다. 그리고 어쩌다가 그 울타리를 탈출한 양들은 잠시 자유를 느끼지만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다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그럴 때 나를 찾아오는 목자를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내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잘못을 짓지만 돌아설 때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느끼면서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는다’(요 10:15)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가는 글
히브리서 6:1의 ‘이제는 그리스도교의 초보 진리를 배우느라 같은 자리에서 언제까지나 맴도는 일은 그만두고 더 깊은 진리를 배우는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또한 이해력을 키워서 건장한 교인의 품격을 갖추도록 하십시오.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는 말씀처럼 초보 신앙에서 벗어나자.
그리스도인이라고 다 그리스도인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믿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성경을 믿는다면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심정을 가슴속에 품는 자가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다. 바리새인은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알고 지켰다 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심정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 즉 목자의 심정이 없었다.
왜 다윗은 큰 죄를 범했으면서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을까? / 다윗은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였고 간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중추적으로 쓰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윗의 삶에는 많은 실패가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심정을 품는 일에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는 목자의 심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다윗은 사자와 곰의 발톱으로부터 양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이것이 다윗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든 힘의 근원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모두가 다윗처럼 하나님의 심정을 품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를 바라시며 그들을 훈련하셨을 것이다. 십자가를 지시는 순간까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며, 서로 하나가 되라고 가르치셨다. 이 일은 목자의 심정을 갖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목자의 심정은 자녀를 많이 둔 가난한 어머니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손발이 다 닳을 정도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애쓰는 모습과 같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은 일만 선생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목자의 심정을 가진 아비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마음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향해 쓴 편지 속에도 나타난다.
고전 4:15 / 교사는 여러 명이 있을 수 있지만 아버지는 단 한 사람이듯이 비록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1만 명이 넘는다고 해도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여러분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새로 태어나게 한 사람은 나뿐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믿음의 후배의 길을 걷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권면하는 것을 보면서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선한 품성을 받도록 하자.
벧후 1:1-11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인 시몬 베드로가 같은 믿음을 가진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믿음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요! 또한 그러한 같은 믿음을 우리 모두에게 갖게 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의롭고 선하신 분이신지요! 2)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더욱더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배우십시오. 3)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지니신 위대한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선한 품성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4) 그리고 그 같은 권능으로 놀라운 은총을 풍성하게 내려 주시기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정욕과 부패에서 해방되어 그분의 품성을 나누어 받게 된 것입니다. 5) 그러나 이런 은사를 받아 간직하려면 믿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6) 더 나아가 여러분은 욕망을 버리고 인내와 경건을 몸에 익히며 기쁨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합니다. 7)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과 즐겁게 사귈 수 있고 친밀해지며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8)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익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9) 믿음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여기고 더 이상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장님이든지 심한 근시안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위해 강하고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죄에 물든 옛 생활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10)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더욱더 힘써 여러분이 참으로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결코 넘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고 11)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영접하시고자 우리 주님이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