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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과학

[† 창조론 †]노아의 방주에는 각 동물들이 몇 마리씩 태워졌는가? : 방주에 태워진 정결한 짐승의 수는 성경적 오류인가?

작성자주님사랑해요♡|작성시간06.01.20|조회수551 목록 댓글 0
노아의 방주에는 각 동물들이 몇 마리씩 태워졌는가?
: 방주에 태워진 정결한 짐승의 수는 성경적 오류인가?
(How Many of Each Animal Went Ark-Aboard?)
 James Patrick Holding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 수 둘씩(by two)을 네게로 취하며” (창7:2)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대로 암 수 둘씩(two and two)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창7:8-9)

자주 요청되는 질문은 “노아의 방주에 정결한 짐승은 7마리가 태워졌는가, 2마리가 태워졌는가?” 라는 것이다.

대답은 7마리이다. 창세기 7:9절에 “둘씩(two and two)”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동물들이 쌍을 지어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7마리로 선발된 동물은 암수 두 마리씩 짝지은 3쌍과 1마리의 동물이 들어갔다. (표현에서 'by two'(7:2)와 'two and two'(7:9)의 차이를 주목하라) 

가장 현명한척 하는 성경 비판론자인 존 케슬러(John Kesler)는 방주에 탄 동물들의 숫자에 있어서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비판론자에 의해서 사용되는 구절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you shall bring two of every kind into the ark)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two of every kind shall come in to you)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19-22)

케슬러가 지적한 위의 구절을 살펴보자. KJV 이탤릭 성경과 행간번역 성경(interlinear Bible)에 의하면, 여기 구절에서 ‘종류(kind, KJV에서는 sort)’라는 단어는 원문 히브리 성경(Hebrew text)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사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두 마리씩(two of every)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그들은 암수가 될 것이다.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두 마리씩 네게로 나아오리니(two of every shall come unto thee)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각기(every)', 각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종류(kind)’들에 해당되는 것으로만 가정되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웬햄의 창세기 주석(Wenham's Genesis commentary)에 의하면, 'pairs of every'은 7:8-9에서처럼 숫자가 아니다. 히브리어 전문가들도 그 견해를 따르고 있다. 다른 말로, 이전에 대답했던 것처럼, ‘두 마리씩'는 전체 숫자가 아니라 ’쌍(pair)‘을 지었다는 뜻과 관련이 있다. 케슬러는 창세기 7:1-5을 또한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창세기 7:1-5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씩(seven pairs of all clean animals) 부정한 것은 암 수 둘씩(a pair of the animals that are not clean)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 수 일곱씩(seven pairs of the birds)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Noah did all that Yahweh commanded him)”

원문 성경에 'pairs' 라는 단어는 없다. 이 번역본(NRSV)에는 그 부분을 상세히 설명할 의도로 그것을 더하였다. 또 다른 비판론자는 의기양양해서 말한다 :

   “성서 변증학(biblical apologetics)의 모든 끝이 “한 괴팍스러운 이론”을 따라간다는 것은 놀랍다.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의미를 결정하는 데에 번역본에 의존하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그가 몇몇 번역본들을 조사하여 보았다면, 의문스런 성경이 노아가 방주 안으로 각 정결한 종류(kind) 7마리를 태우지 않고, 암수 7쌍(seven pairs)를 태웠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비판론자는 그리고 ASV와 약간의 번역본을 인용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원문에 가장 가까운 의미라고 주장한다. 영어 번역본들을 비교하는 오래된 속임수는 언제나 히브리 원문 성경을 무시한다. 실제로 거기에는 “seven sevens'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H.C. Leupold에 따르면, ”히브리어 성경에서 'take seven seven'은 'seven each'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분의 하나는 희생제물을 위한 것이었다고 제안하였다. 1599년 제네바 성경(Geneva Bible)은 이것과 의견이 일치한다. ”어느 것은 희생제물로 제공되었을 수 있다. 6 마리는 번식을 위해서, 7번째 동물은 희생제물을 위한 것이었다“ Jamieson, Fausset, Brown은 논평하였다 :

“이것은 노아의 방주에 ‘정결한clean)’ 동물들이 들어가는 일반적인 규칙이었다. 정결한 짐승들, 또는 새들은 3쌍씩 취해졌다. 그리고 그 이유는 홍수 이후 땅이 새롭게 되었을 때, 그들은 먹이 공급원으로서 또는 사람의 일에 이용되어지기 위해서, 그들의 빠른 증식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7번째 동물의 사용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분명히 희생제물을 위해서 준비되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방주 내에서 노아가 거주하는 동안, 그리고 마른 땅에 내린 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릴 때에 사용되어졌다. 그는 많은 다른 사람처럼 믿음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길어지는 항해 동안에도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며 경배를 드렸다.”

이것이 그들의 비판에 대한 답이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pairs' 라는 단어가 사실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이 가장 가까운 해석이라고 말한다. 또한 케슬러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

“첫번째 명령은 엘로힘에 의해서 주어졌다 (창 6:13절 이하). 그리고 6:22절에 노아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로 되어있다. 만약 노아가 하나님이 그에게 명령했던 것을 다 준행하였다면, 즉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각기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다 이끌어 들였다면, 어떻게 야훼(엘로힘이 아님)는 다시 7:2절에서 방주에 탈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숫자 사이에 차별을 두라고, 그리고 새들을 암수 일곱씩 태우라고 명령할 수 있단 말인가?“     

오! 또 다시 쓰레기 같은 JEDP 문서설인가?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케슬러는 이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적 공상보다 실제 사용된 문맥에 근거를 두고 볼 때, 뒤에 나오는 명령은 하나의 chaistic pattern으로 볼 수 있는 의도적인 반복(intentional repetition)인 것이다. 22절은 원래 문헌/이야기가 아니라 편집자의 편집(editorial redaction) 특성을 매우 많이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친절하게 더 상세히 그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고대의 사람들은 ‘매우 어리석어서’ 이와같은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알지 못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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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해서, 한 선도적인 성경 비판론자는 이것에 대한 과학적 측면을 제시하며 비판을 해왔다. 그 문제는 우리의 일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라서, 이 분야에 경험이 있는 전문가(박사 학위를 가진)에게 의견을 구하였다. 비판론자는 말했다: 

 “암수 한 쌍을 취하는 이러한 생각은 여호와가 축산업(animal husbandry)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농부나 목장주도 소, 양, 말 등의 동물을 키우는 사업을 할 때 암수의 숫자를 똑같이 구매하지 않는다. 1마리의 숫소와 13마리의 암소, 또는 1마리의 숫양과 13마리의 암양을 구매하는 것이, 암수 각각 7마리씩 구매하는 것보다 초기 투자 시에 매우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1마리의 수컷이 13마리의 암컷과 교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이러한 이야기가 쓰여졌다는 것은 그 저자가 동물들의 번식에 대해 빈약한 지식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의견을 구했던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한 번에 많은 새끼들을 낳는다. 성경의 저자는 대부분의 회의론자들보다 지수함수적 성장을 더 잘 이해했던 것처럼 보인다! 이 비전문적인 촌스런 무신론자를 위한 설명으로, 코끼리를 생각해 보자. 아프리카 코끼리는 14세 정도에 번식할 수 있는 연령이 된다. 코끼리의 임신 기간은 평균 670일 이다. 반면에 인도 코끼리들은 좀더 일찍 성숙하고 좀더 짧은 임신기간을 갖는다. 그래서 한 쌍의 코끼리가 25살의 나이에 4마리의 자손을 가졌을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코끼리의 개체 수는 100년 동안에 줄잡아 4번이나, 2배가 되어질 수 있었다고 (새끼들이 젖을 뗀 후, 부모 세대들이 곧 죽었다할지라도) 평가될 수 있다. 개체 수가 2배로 되는 것이 22번 일어나면 800만을 넘어선다. 이 숫자는 단지 550년(22x25)이면 도달되어질 수 있다. 홍수 이후에 비어있는 생태학적 적소(ecological niches)들은 많았을 것이며, 경쟁자들은 적었을 것이다.” 

따라서 방주에 암컷을 더 많이 태우는 것은 수확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returns)의 경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유전적 다양성(genetic diversity)을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다.

또 다른 비판론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이스라엘 자손들의 인구 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바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에서, 바로는 모든 신민에게 히브리 여인들이 남자 아기를 낳으면 죽이고, 여자여든 살려두라고 명령한다 (출1:22). 이것은 인구 수를 줄일 수 없는 멍청한 계획이다. 왜냐하면 인구성장율은 임신이 불가능한 남자의 수가 아니라, (그 그룹에 임신을 시킬 수 있는 적어도 한 남자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임신이 가능한 여자들의 수에 의존한다. 바로는 그 당시에 태어난 모든 남자 아기들을 죽이는데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남아 성숙해진 여자들은 이미 살아있었던 많은 나이든 남자들과 민족의 인구 수를 늘리기 위해서 기꺼이 그들의 의무를 다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든 남성이 ”이 사랑스런 여인은 너무 젊어서 아내로 맞이하기에는 부끄럽소“ 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바로가 약간의 상식을 가졌었다면, 또는 이 허풍적인 이야기를 지어낸 작가가 약간의 상식을 가졌었더라면, 그 이야기는 바로가 히브리 여인들에서 태어난 모든 여자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었다고 썼을 것이다.”

의견을 구했던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정말 바보스러운 말이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가 바로가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에 달려있는가? 그리고 바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본 후에도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였었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남자들은 무기를 잡고 전쟁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여자들은 노예로서 많은 일들을 부려먹을 수 있다. ‘고대의 사람들이 우둔했다’ 라고 말하는 것 외에도 연대기적인 속물근성이 비판론자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다. 오! 바로는 여자들이 태어나는 것을 허락함으로서 여자들이 인구성장율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인가?”      

나는 여기에 추가하겠다. 동일차원설(uni-dimensionalism)의 원리에 의해서, 애굽 사람들은 그들이 필요로 했던 만큼의 오랜 기간 동안 아이들을 계속 동일하게 죽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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