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아5:1).
이것은 주님의 동산이다. 이 귀절에서 우리는 그분이
이 동산에 자주 드나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저 다녀간 것이 아니고, 언제나 특별한
간구에 대한 응답으로 오셨던 것이다.
첫번째 헌신에 의해서 주님의 것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계속적으로 끈질긴 헌신이 있을 때에만 주님은 이와같이
정원에까지 모실 수 있다는 이 엄숙한 교훈을 기억해 두자.
그분은 과일과 만족할만한 향기가 있을때에만 오시는 것이다.
단순히 우리가 주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기 만족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자.
이 사실은 여러차례, 거듭 경고의 소리로 들려져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거듭되는 간구에 의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자기의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주님께서
자기의 동산에 들어오신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께 대한 모든 헌신은 주님께서 친히 받아 주신다.
이 여인이 그분에게 간구할 때마다 주님은 반응을 보이셨다.
이것은 그녀의 영적인 역사(歷史)를 이루고 있다.
만일 이렇게 말하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이것은 가장
손쉽게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종류의 기도이다.
주님은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받아 들일 수 있었다.
8번씩이나 주님께서는 소유격"나의"(my)를 써서--
나의 누이, 나의 몰약, 나의 향재료, 나의 꿀송이, 나의 꿀,
나의 포도주, 나의 젖등-- 그분은 자기에게 바쳐진
모든 것을 성령의 열매로 받아 들인다. 그러나 악의 삯이나
창녀의 소득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
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라"(신명기 23:18).
이 여인의 생애는 주님께 순수한 기쁨이 되었다.
이 단계에 와서 주님은 그녀와의 관계에서 이 "노래"의
첫째 부분에서 갖지 못했던 지위에 이르고 있다.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주님은 그녀에게 발견한 것과
그에게서 받은 것에 의해서, 자기의 고통과 수고의 열매를
볼 수 있었다.
이와같이 차원높은 헌신은 보통 우리가 아는 헌신과
주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시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특별히 유의 해야겠다.
초기의 헌신은 주님이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시도록
주님의 손에 자기자신을 맡기는 헌신이다. 이번에
주님께서 관심이 있는 것은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는
주님의 일에서 비롯되는 헌신인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손에서 어떤 것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로 가득찬
생애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이 [사랑의 역사(役事)]를
나타내는 생애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이 상과 같은 충만함과
기쁨, 열매, 그리고 영광이 모두 주님께 드려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정원의
모든 향기와 열매를 주님께 헌신한 그 헌신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이 헌신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도,
같은 형식이 적용된다. 전에 여인이 바친 것을 받아들인
것은 그에게 그녀의 마음이라는 밭을 갈고, 개경하고 심어
자기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데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녀의 헌신을 주님이 받아 들이는 것은
그녀 안에서 식물을 심고 가꾸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없고
자기 스스로 그녀의 동산에서 자란것을 즐기는 기회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처음에 갖 구원받은 신자들은 아직 개간되지 않은 땅이
주님께 바쳐져 주님께서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 주시기
를 기다리는 상태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땅을 변화시켜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는 이 동산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것이다. 경험이 있는 신자는 나중의 더욱 완전한 헌신이
먼젓 번 헌신보다 더욱 더 어려우며, 동시에, 더욱 더
영광스러운 헌신임을 알고 있다. 이것은 우리 안에서
주님께서 많은 역사의 처리의 과정을 치러 주실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자기의 산고(産苦)의
열매를 거두실 수 있는 것은 이와같은 종류의 헌신임을
알아야한다.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라"
여기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주님께서는 지금 자기 권한 안에 있는 향기로운 동산을,
즉, 자기의 사랑하는 자를 맘껏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삼위 일체,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의 동산에서 익은 영적인 열매를
받아들이기 위해, 또 즐기기 위해 함께 융화되어 있는 것이다.
신자의 생활의 열매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지
사람이 아닌 것이다.
2005년 5월 3일 화요일 /
/ 워치만 니의 "노래중의 노래"를
아는 사람에게 빌려 읽게 되었는데..
참 좋았다. 그래서 서점에서 찾아 보았지만.
절판 되었다는 것이다 ㅠ,ㅠ
다시 빌려서 이렇게 글로 옮기게 되버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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