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각성과 예수의 흔적-정원 목사님

작성자주만의지|작성시간13.12.24|조회수109 목록 댓글 0

  

[이번 주에는 가까이 계신 주님, 곁에 계신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죠..

그런데 아마 다음 주에는 내주하시는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문득 쳐다보니 아내가 펑펑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래요?]

놀라서 물으니 아내는

[주님께 너무 죄송해요..]

그러면서 우는 것입니다.

 

아내는 요즘 메시지에 많이 민감해졌습니다.

주님에 대해서, 영혼의 깨어남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녀는 울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오래 동안 나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해는 했지만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것이 많이 이해되고 가슴에 다가온다고 합니다.

목회 사역을 하는 동안 그녀는 다양한 은사의 경험을 하고

예언이나 환상이나 음성을 듣는 경험을 했지만 영혼의 각성은 별로 없었습니다.

 

은사적인 것과 영혼의 깨어남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러합니다.

은사는 능력과 기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여, 영혼이 각성되고 깨어나는 것은 예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의 경험도 이와 비슷합니다. 말씀의 깨달음이나 이해는 일종의 기능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하게 하고 확신에 서게 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은사적인 경험입니다.

말씀이 경험되고 실체화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그 사람에게서 예수님이 나타나게 합니다.

 

말씀을 이해했을 때, 그것은 옳고 그름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아, 대단해.. 이것은 놀라운 말씀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이해를 넘어서 경험되고 실체화될 때

사람들은 그에게서 예수님을 보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내가 누리는 중요한 보람은

사람들에게서 점점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에게서 예수의 흔적이 나타나고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 거룩함, 따뜻함과 눈물, 섬김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은사적인 영역에서는 아직 죄나 육체를 다스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넘어지기 쉽습니다.

영혼의 감각이 열릴수록 예수의 생명을 경험하고 느끼게 되고 사람들의 영혼을 느끼며,

하늘에서 오는, 환경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평화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나는 바깥의 형통이나 복이나 성취에 아무 관심이 없고 예수를 전하기 원하는데,

정말 예수에게 관심이 있는 이들은 별로 없어요.

 

[많이들 주님을 사모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갈망이라는 것은 많은 환란을 통과한 후에 입증되는 것이죠.

그것은 일시적인 열정이나 흥분과 달라요.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주를 진정 갈망한다고 생각하지만,

시련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많은 이들이 아주 작은 시험에서도 넘어지죠.

 

베드로도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고 자신이 정말 주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그는 시험에서 넘어지고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되고 울었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작은 일에 상처받고 서운해하고 낙심하고 넘어져요.

사실 그것은 실족이 아니라 각자의 영적상태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죠.

 

거기서 넘어져 성장이 끝나는 사람도 있어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또 반성과 성찰을 통해서 겸손해지고 견고해져서

갈망이  더 깊어지고 순수해지는 이들도 더러 있죠.

갈망이란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증가되는 거에요.

하지만 순수하고 성숙한 갈망은 대체로 드물어요.. 대부분은 영적 어린아이의 상태이죠.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것이 실제로는 욕망이고 자아인데,

그것을 주님께 대한 갈망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아적 열등감이나 현실 도피의식이 영적 갈망으로 둔갑되기도 하죠.

그런 경우에 영적 현상에 집착하거나 영적 체험이나

지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자기 과시로 나타나기도 해요.

 

또한 영적 호기심이나 일시적 흥분, 지적인 탐구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 데,

그러한 동기들은 육적인 것이며 그리 오래 가지 않아요.

그러한 것들은 주님 자신을 구하는 것과 본질에 있어서 많이 다르죠.

환란들, 시간들은 그것들을 드러나게 해요.

 

출처:정원목사님 독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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