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복음1장11~18절
제목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심
성경에는 4개의 복음서가 있는데 요한복음도 그 중에 하나이고,
요한복음은 사도요한이 기록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하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믿는 자들이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1~18절을 서론으로 보며,
서론에서는 예수님을 말씀, 빛, 생명으로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며, 생명의 빛 이십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이시며, 빛이시며, 생명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참 빛으로 오셨지만 참 빛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참 빛 되신 예수님을 증거 하러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고,
그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을 밝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큰 은혜 받으시기를 소원합니다.
1.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요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러므로 하나님이 육신이 되심이 성육신입니다.
내려오심, 낮아지심, 겸손의 모본을 보이셨습니다.
1) 인성에 대한 성경적 증거입니다.
(1)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창3:15).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2)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였습니다(사7:14).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란 뜻입니다.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3) 성령으로 잉태하실 것을 예언하십니다(눅1:35).
*눅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오실 것을 예언하십니다(요1:14).
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습니다(14,18절).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14a)”
여기서 '육신'(사르크스)은 육체적 존재를 의미합니다(눅2:40,52,갈 4:13).
*눅2:40,52 “[40]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52]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사도바울은 육체가 연약한 자기를 업신여기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다고 하며, 예수님이 육체적 존재로 있었음을 나타냅니다(갈4:13).
*갈4:13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이는 그리스도의 완벽한 성육신을 나타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증으로서 본서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잘 보여줍니다.
① 피곤(4:6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않으시니)
② 갈증(4:7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
③ 하나님께 의존(5:19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없나니 )
④ 슬퍼 눈물을 흘리심(11:35나사로 죽었을때)
⑤ 비통히 여기심(11:38)
⑥ 갈등(12:27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하리오)
⑦ 수난과 죽으심(18, 19장) 등입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우리 가운데'라는 표현은 10절의 '그가 세상에'라는 말과 내용상 일치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졌으며,
우리 인간들 속에서 발생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마1:18~2:23과 눅 2:1~20의 성육신 기사를 함축적으로 요약한 말씀입니다.
(2)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예수님을 보므로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18b).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요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내신데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정도로 격렬하였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됩니다(10:20-33).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온유하고, 겸손하고, 거룩하고, 나눔과 섬김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우리도 예수님을 본 받아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3)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b)고 하였습니다.
① 우리가 그 영광을 보았습니다.
'보니'는 '놀라운 상태에서 실제로 목격했다'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생애와 부활은 그 자체로서 어둠 속에서 빛이 환하게 비치듯이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사건으로서 우리 성도들의 영광을 위하여 예정된 것이었습니다(고전 2:7;벧전 5:4).
*고전2:7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②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 저자 요한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근원이 인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에 있음을 재천명합니다.
즉 1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원성, 인격성, 신성을 나타냈듯이 본문에서도 그리스도의 영광이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영광과 대등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③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은혜와 진리'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였습니다(삼하2:6).
사도 요한은 앞 문장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이 대등하고 등질적(等質的)임을 묘사한 후에 곧 이어서 하나님의 성품인 은혜와 진리가 바로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성품과 일치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그의 지상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성을 드러내셨음을 시사합니다(10:30).
특히 기독교적 측면에서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이 인류 구속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그 일방적인 행위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입니다.
한편 '충만 하더라'란 은혜와 진리의 역동성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 속한 은혜와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차고 넘치게 흘러 나와 성도들에게 임하여 역사(役事)한다는 것입니다.
2. 세례 요한의 증언(15절)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의 사역을 극적이고도 생생하게 재현시킵니다.
그리고 그의 증언 사역이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과 일치됨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사 40:3).
*사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내가 전에 말하기를. - 원어상으로 본절은
'내가 전부터 그에 대하여 증거해 왔다'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혹자들의 이해대로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한 저자 요한의 삽입적인 해석(Westcott, Hort)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세례 요한의 부단한 증언이라고 봄이 문맥상 타당합니다.
나보다 앞선. - 앞에서 언급한 '내 뒤에'라는 표현과 대조됩니다. 즉
(1)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 요한보다 6개월 뒤에 태어나셨으며(눅 1:36), (2) 세례 요한의 사역의 시작 뒤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막 1:14, 15).
그러나 예수가 세례 요한보다 '앞선'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1) 세례 요한이 인간에 지나지 않는 반면에 예수는 창조 전부터 하나님과 더불어 선재하셨던 분으로서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십니다(빌2:6).
(2) 따라서 신분이나 권능에 있어서 당연히 세례 요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우월성을 당연하게 시인하였으며(3:22-30),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예수님을 가리켜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눅 3:16),
*눅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하나님의 어린양'(29, 36절),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분'(막 1:7) 등으로 호칭하였다.
이처럼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결코 비교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 상호 비교되어 묘사되어 있는 것은
(1) 예수의 공생애 직전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이 많았다는 점과
(2) 그에 따라 세례 요한이 메시야로 오인(誤認)되었다는 점, 그리고 (3) 초대 교회의 선교 당시에도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상당수 존재했다는 점 등에서 기인합니다.
즉 사도 요한은 이러한 비교를 통하여.
(1) 예수께서 참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2) 요한 사역의 핵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함에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증언자로서의 사명을 다 하였습니다.
3. 영접하는 자에게 주신 권세(11~13절)
1) 자기 땅에 오매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11절).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 자기 땅에 오셨습니다(11a).
세상은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소유이며, 거처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타락되었고 사단의 세력이 흥왕(興旺)할지라도
세상의 궁극적 소유권은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백성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을 말씀합니다.
(2) ‘자기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습니다(창18:19,신32:9,출19:6).
①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창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신32: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② 이 세상의 죄악을 감당하고 사단의 권세와 싸울 제사장 나라가 되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출19:6).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③ 그러나 타락된 세상 속에 휘말려버린 이스라엘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본래 그리스도의 소유인 선민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배척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잔인하게도 십자가 처형을 자행하였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결정적으로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영광스런 특권을 상실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소유'(타 이디아)라는 관점은 선민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의 제자들(13:1)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소유 ⇒ 선민 이스라엘 ☞ 예수님의 제자들
이 영광스런 특권은 영생과 아울러 영원한 것입니다(계 20:6).
*계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3) 영접하지 않았습니다(11b).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예수께서 '선민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환영받지 못했다는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①특히 예수님의 체포와 제자들의 도주(逃走), ②유대 당국자들의 모의와 재판, ③그리고 예수의 죽음을 요구하는 군중들의 함성, ④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군중들의 조롱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연상하게 합니다.
한편 저자 요한은 '깨닫지 못하더라'(5절), '알지 못하였고'(10절), '영접지 아니하였더라'(본절)라는 세 구절을 통하여, 창조주이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배척한 이세상의 죄악과 부조리(不條理)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1:3)라는 과거 이스라엘의 실상과 대동소이한 현상입니다.
따라서 예수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마 23:37)라고 탄식했으며, 스스로 선민이라 자부하던 자들을 '마귀의 자식'이라 선언하셨습니다(8:44).
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12절).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 영접하는 자.
한 개인이 그리스도를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2)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을 믿는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생애와 그의 구원의 능력 그리고 그의 영원성, 인격성, 신성을 믿는다는 단순한 사실을 뛰어넘어 그리스도를 '개인 마다'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다는,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역사적 시점에서의 신분의 변화가
초역사적 지평에까지 열려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본질적인 변화를 통해 자녀가 되는 길은 오직 중생으로만 가능합니다.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요3:3~9),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거듭 나게 하셨습니다(벧전1:3).
거듭난 것은 썩지 아니할 씨, 말씀으로 되었습니다(벧전1:23).
성도는 이와 같은 권세를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받습니다(고후10:8;계 22:14).
따라서 이와 같은 권세를 부여받았다는 것은 죄와 어둠의 세상에서부터
자유롭게 됨을 의미하며,
이 자유로운 권능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 사역에 사용되어야만 합니다(고전9:18).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는 것이 자기 상이라고하였습니다.
3) 이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13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 육정,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습니다(13a).
앞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과정이 묘사되었다면,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의 출생(중생)의 근원(根源)이 나타나있습니다.
먼저 본문에서 저자는 중생에 이룰 수 없는 부정적인(negative) 세 가지 요인 ((1)혈통, (2) 육정, (3) 사람의 뜻)을 나열합니다.
첫째로, 혈통(血統)은 육체적인 혈연관계를 의미합니다.
둘째로, 육정(肉情)이란 '육체적인 욕망'(fleshly desire, NEB)이란 뜻으로,
1차적으로는 성욕(性慾)을 비롯한 인간의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엡 2:3).
셋째로, 사람의 뜻이란 절대자에게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성적(理性的) 노력이나 수양, 율법 준수 등을 통칭합니다.
위에 열거한 부정적인 세 가지 조건(①혈통,②육정,③사람의 뜻)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무관한 것입니다(고전 1:22-25).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타락한 세상에서 비롯된 인본주의적 구원의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육체를 따라 의롭다 여김을 받을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롬3:20).
(2)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13b).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영적 출생 자를 말합니다. 영적 출생자는 ‘거듭 나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3:5 “물과 성령으로 난 자들”입니다.
3:6 “영으로 난 자들”입니다. 성령으로 난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 왕 같은 대제사장, 상속자임을 기억하고 여기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4.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임(16~17절)
1)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6절)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본문에서는 바로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은혜가 차고 넘쳐서 성도에게 미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충만함'이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것이며, 성도들에게 은사로서 주어지는 것임을 명시함으로써 당시의 영지주의의 거짓된 학설을 물리쳤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빌자면, 이 충만함은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신'것이며(골1:9),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입니다(엡 3:8).
그리고 루터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아무리 물을 퍼내어도 고갈되지 않는 샘'에 비유했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러라. - '은혜 위에 은혜'(one blessing after another, NIV)라는 말씀은 문자적으로 '은혜 대신에 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한 번 받은 은혜가 그 능력을 다 발하고 나면 또 다른 은혜를 받게 된다'는 의미로서 '은총을 받고 또 받았다'(공동번역)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곧 그리스도의 은혜이며, 이는 넘쳐 흐르는 충만함으로 인하여 성도에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은혜임을 요한은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성도는 성자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존재인 자신을 자각하게 됩니다.
당시 유행했던 인본주의적 이방 종교와 이방 철학들 그리고 형식주의적유대교라는 어두움을 뚫고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구원의 빛과 은혜를 성도들에게 끼치신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고 선포하였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은혜와 진리(17절).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 6절부터 16절까지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를 비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육신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충만한 은혜를 묘사한 저자는 이제 구약의 율법 시대와 신약의 은혜 시대의 대조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새 시대의 특성을 간략하고도 명확하게 밝혀줍니다.
먼저 사도 요한은 율법 시대의 대표자인 모세를 통하여 율법의 특성을 간명하게 규정합니다.
즉 율법(律法)은 피조물인 인간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롬 3:20), '몽학 선생'(갈 3:24)의 역할을 수행할 뿐입니다.
(2)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입니다.
율법에 대조되는 은혜와 진리란 단순한 은사의 차원보다 더 높은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의 근원은 다 하나님의 속성에서 발견될 수 있고,
이는 예수 안에서 구체화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예수 자신이 곧 은혜와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본 구절에 사용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동사 '온'이라는 말에 의해 강력히 뒷받침됩니다.
은혜와 진리는 율법의 경우처럼 수동적으로 주어질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과 선교(Mission) 가운데 임했던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 임함으로써 기독교가 시작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이는 바로 형식과 위선에 치우친 유대교의 근거를 뿌리채 뽑아버리는 말씀임과 아울러 교회의 근거를 확고한 참신앙의 반석 위에 세우는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한복음 서론는 예수님을 말씀, 빛, 생명으로 설명하고,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그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을 밝힙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겸손의 모본을 보이시고, 구원을 완성 시켰습니다.
우리 모두 말씀으로, 빛으로, 생명으로,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여 자녀로써 은혜와 진리를 누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