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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매일성경]빌립보서 3장12~21절(끝나지 않은 경주)

작성자빛으로|작성시간19.10.18|조회수462 목록 댓글 0

본문 : 빌립보서 3장12~21절

제목 : 끝나지 않은 경주

부활에 이르는 신앙의 경주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참여하는 이가 부활의 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끝나지 않은 경주(12~16절)

1) 할례주의자에 대한 비율의 예(12~14절)

(1)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갑니다(12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

본절은 바울이 이미 도달한 현재의 상태와 앞으로 도달하여야 할 목표 사이의 갈등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났던 것을 암시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회심은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서 그가 열망하는 완전함에 이르기 위하여 믿음의 경주 즉 영적 성장을 향해 계속해서 달음질해야 합니다.

여기서 '달려가노라'로 번역된 헬라어 '디오코'는 '추적한다'라는 의미로 사냥이나 달리기 경주에서 사용된 용어입니다.

본절에서 '디오코'는 좀 더 적극적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강한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배우고 닮아가고자 하는 바울의 진지한 노력을 시사합니다.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목적을 계속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자각시키고 있습니다.

 

(2)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오직 앞에 잉ㅆ는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고 말합니다(13,14절)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3절은 앞절의 반복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과거에 집착(執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나아감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마도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 행위와 의식을 강조하며 자신들이 받은 영적 은혜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극단적 완전주의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본문의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는 바울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일관된 삶의 자세를 나타냅니다.

여기서 '잊어버리고'의 헬라어 '에필란다노메노스'는 과거의 기억이 자신의 관심을 빼앗아 진보를 방해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에필란다노메노스'를 통해서 전에 지녔던 유대인으로서의 특권이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루어 놓은 업적들로 인해서 믿음의 경주를 방해받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앞에 있는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목적을 잡기위하여 전력을 다해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스코폰'은 문자적으로 '푯대를 똑바로 쳐다보고'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경주자가 달려가고 있는 경주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바울이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히12:1,2)만을 바라보고 경주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들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시키고 그를 향하여 전진하여야 함을 시사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

'위에서 부르신 부름'은 경주의 승리자에게 상을 주기 위해 심판관 앞에 있는 높은 단으로 올라오도록 명하는 것에서 연유된 표현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부르심을 의미하며(고전 1:26;7:20;엡 1:18;4:1,4;살후 1:11) '상'은 경주 뒤에 있을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을 시사합니다.

 

2) 빌립보 교인을 향한 적용 권면(15~16절)

(1) 이것들을 생각하라(15절)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 '온전히'의 헬라어 '텔레이오이'는 더 이상의 노력이 필요치 않은 절대적 완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연약과 무지에 비하여 꽤 성장한 상대적 완전으로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한 노력의 여지가 아직도 남아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고전2:6;14:20;엡4:13;골1:28;4:12).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소속되었고 하나님께로 구별되어서 '온전히 이룬 자'가 되었으나 아직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分量)까지 성숙해가야 합니다.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바울은 자신이 생각하는 '온전'에 대해 혹시나 빌립보 교인들 중에 반대가 있거나 다른 생각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2) 성숙의 각 단계에 충실하게 살라(16절)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지라도 그 성숙의 정도가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해 영적 성장을 이루어가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히 6:11,12).

'그대로 행할 것이라'의 헬라어 '토 아우토 스토이케인'중 동사 '스토이케인'은 '보조를 마추라', '일치하여 행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갈 6:16).

바울은 '스토이케인'을 사용해서 다시 한 번 성도들 상호간에 성숙과 의견의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조화와 협력을 이루어 나갈 것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2. 나를 본 받으라(17~19절)

1) 명령 : 바울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본받으라(17절)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고전11:1) 빌립보 교인들이 따라야 할 모델로서 자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와 같은 권면은 자기를 자랑하는 우월감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의 헌신에 대하여 모델을 통한 실제적인 교훈이 필요하였고,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구체적인 모델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7-16절;고전11:1).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만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암시합니다(2:25,29).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은 물론 다른 동역자들의 삶을 빌립보 교인들이 배우기를 권면합니다.

 

2) 명령의 이유 : 부정적 예들(18~19절)

(1)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합니다(18절)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⓵ 혹자는 십자가의 공로를 무시하고 율법의 규범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로서 2절에 언급된 유대주의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⓶ 혹자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왜곡하여 율법의 모든 금지 조항을 부정하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죄를 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왜곡(歪曲)하여 참자유가 아닌 방종을 일삼는 자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한 설명합니다(19절).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⓵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 '멸망'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레이아'는 '구원'(소테리아)의 반대 개념입니다.

이는 특별히 사악한 자들에 대한 형벌로서 영원한 파멸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마7:13;벧후3:7;계17:8).

'십자가의 원수'들은 그리스도와 연합 될 수 없으며 육신의 욕망에 빠져 있기에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⓶ 그들의 신은 배요. - 본문은 쾌락주의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것을 시사합니다(롬 16:18;고전 6:13;유 1:11).

⓷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 '부끄러움'의 헬라어 '아이스퀴네'는 '벌거벗음', 또는 '사람의 은밀한 부분'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그들'이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부도덕한 일들을 서슴지 않고 즐겼음을 시사합니다(엡 5:12).

⓸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 - 그리스도인들이 '하늘 일'에 관심을 두는 반면(20절,요3:12), 이들은 '땅의 일' 즉 본능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며 세상 적 가치 기준을 따라 행동합니다.

 

3. 하늘에 있는 시민권(20~21절)

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20절)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 본절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된 자들과 반대되는 참 그리스도인의 특성을 나타냅니다.

빌립보 시민들이 비록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로마 제국에 속해 있어서 로마의 시민으로서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빌립보 교인들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히 11:13;벧전 2:11)처럼 산다 할지라도 하늘에 소속된 시민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비록 지금은 지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므로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합당한 모든 책임과 의무를 기뻐하여야 함을 권면합니다.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거기로서'가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혹자는 '시민권', 혹자는 '하늘'이라고 주장하나, 두 가지를 모두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연고지가 하늘이기 때문에 모든 관심사가 하늘에 있으며 진정한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롬 8:21-23).

왜냐하면 그의 재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해방시키는 온전한 구원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2) 왜 그리스도를 기다리는지를 설명합니다(21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임할 온전한 구원의 모습에 대해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인의 몸은 '낮은 몸'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으로 완전히 변화됩니다.

여기서 '낮은 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갖고 있는 현재의 몸으로서 죄짓기 쉬운 욕망, 죽음, 질병, 고난 등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있는 육체의 연약성을 시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현재의 썩어질 몸을, 당신이 부활하실 때 입으신 '영광의 몸' 즉 '썩지 아니할 몸', '신령한 몸'으로(고전 15:42-44)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 곧 '그리스도'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역사'(役事) 의 헬라어 '에네르게이안'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는 온 우주와 원수들,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초자연적이며 주권적인 능력을 가지시기에 마지막 날 성도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인생이 우리가 본받을 삶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이들은 ‘나처럼 살면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는 시민은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이다’를 보여줍니다.

성공과 성취로 가득한 인생이라도 자신만 드러내면 본이 아닙니다.

실패로 가득한 인생이라도 그리스도를 드러낸다면 본이 됩니다.

 

묵상 Point

1) 믿음의 경주에서 완주하라

바울은 상을 위해 달리는 경주자나(3:14) 항오를 지어 행군하는 군인처럼, 믿음의 경주와 행렬에서 각자 어디에 이르렀든지 거기에서 머뭇거리거나 뒷걸음치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고 권면한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경쟁하며, 주를 따라 더 온전히 십자가의 삶에 참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며 살라는 뜻이다.

주님은 우리의 지식이나 수준보다 순종을 보시고, 다 아는 것처럼 자만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체념하지 말고 아는 만큼 행하라고 하신다.

부족한 이해와 연약한 믿음이 신앙의 여정을 중단하고 행로를 벗어나는 정당한 변명일 수는 없다.

 

2) 십자가의 원수를 경계하라

바울은 주를 신뢰하며 십자가의 도를 행하는 이들(17절)과 달리, ‘그리스도 십자가이 원수’가 되어 교회를 어지럽히고 위협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여러번, 눈물을 흘리며’ 간곡하게 호소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 배를 신으로 삼고, 수치를 영광으로 여기며, 하늘이 아닌 땅에 속한 것에만 집착하고, 영원한 멸망을 자초하는 자들이다.

내가 피해야 할 정욕과 거짓 가르침은 무엇인가?

십자가의 은혜를 외면하고 십자가의 도를 따르지 않으며 자기 의(義)와 자기 탐닉에 빠져있는 이들은 없는가?

 

3) 하늘의 시민답게 살라

자아를 숭배하고 땅의 노예로 살다가 멸망으로 치닫는 십자가의 원수에게 미혹되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둔 하늘 시민답게 이 땅에 메이지 말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고대하며 살라고 권면한다.

그날에 주님께서 땅의 집요한 유혹을 물리치고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한 성도들의 낮은 몸을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8-21절 만물을 복종케 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지만, 많은 이들이 여전히 십자가를 거부하고 자기 배(욕망)를 신으로 섬기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땅의 일에 몰두하고 자기 몸만 살찌우며 그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이들이 맞을 최후는 ‘멸망’뿐입니다.

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이들은 비록 땅에서 가난하고 때로는 비천한 삶을 살겠지만, 하늘에 시민권을 둔 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그들의 고난으로 멍들고 십자가로 찢긴 비천한 몸을 부활의 영광스런 몸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2-16절 그리스도인은 푯대를 향해 달리는 육상 선수와 같습니다.

시작된 구원의 일이 완성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경주를 지속해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고 안주하거나 후회하는 것은 경주에서 치명적인 일입니다.

내가 달려온 길이 어디에 이르렀든지 아직 목표에 이르지 않았기에 경주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경주를 시작했으나, 뒤를 돌아보며 ‘원망하고 시비했던’(2:14)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미 얻었다’, ‘온전히 이루었다’(12,15절)는 섣부른 신념이 달음질을 더디게 만들 뿐입니다. 지금 낙심하여 주저앉아 있습니까?

구원을 확보했다 여기며 경주를 멈춰버린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은 시작일 뿐입니다. 결승점에 이르지 못한 선수에게는 받을 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7절 완주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앞서 달리는 이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이제 그 뒤를 따라 바울이 달려갑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여정을 그대로 밟아가기를 원했습니다(10,11절).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나를 본받으라’(17절)고 말합니다.

그리고 함께 달음질하는 동료들을 눈여겨보라고 권면합니다.

앞서 달리고, 함께 달리는 이가 있다면 완주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본받고 따를 만한 신앙의 선배는 누구입니까?

또 나는 누구에게 신앙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까?

 

[기도]

공동체-주 안에서 삶의 목표를 바로 세우고 신앙의 동료들과 함께 달리게 하소서.

열방-중국에서는 특정지역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인해 그 지역 출신들이 차별과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편견과 차별을 타파하는 데 솔선수범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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