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베드로전서2장1~10절
제목 :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
베드로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하고, 찬송하여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을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성결한 신앙생활”과 “형제를 사랑하라”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것” 을 권면합니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을 묵상할 때에 큰 은혜 받으시기를 소원합니다.오늘 본문은 먼저(1~3)“버릴 것과 사모할 것”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4~8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9~10에서 성도의 신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1:22-25)에서 거듭난 것이 하나님의 살아 있고 변함이 없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하면서 버릴 것과 사모할 것에 대해 언급하고,
예수님은 어떤 분이며, 성도의 신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주신 말씀을 통하여 은혜 받으시기를 소원합니다.
1. 버릴 것과 사모할 것(1~3절)
베드로는 (1:22-25)에서 거듭난 것이 하나님의 살아 있고 변함이 없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하면서 거듭난 성도들이 버릴 것과 사모할 것에 대해 언급합니다.
1) 버릴 것(1절)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우리는 거듭난 자들입니다.
본절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거듭난 자가 취하여야 할 행동들을 나타냅니다.
특히 믿음으로 갓 태어난 자들이 성숙한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구체적인 생활 태도를 제시합니다(슥 3:3,4; 엡 4:22,23; 골 3:8,10; 약 1:21).
성경은 먼저 버릴 것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버려야 할 악덕들을
'모든'을 사용하여 세 범주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모든 악독-마음의 악(惡)
이것은 단순한 '악의'와는 다른 것으로 남을 해하려는 무자비한 모든 악들을 의미합니다(행 8:22;롬1:18;엡4:31;골3:8).
남을 해치려는 데서 출발하며, 마음이 흉악하고 독살스러운 마음으로 모든 악을 총괄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➀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② 그러므로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합니다(엡4:31,32)
엡4:31,32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골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③ 회개하고 주께 기도해야 합니다(행8:22).
*행8: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행동에 나타난 악
➀ '기만(欺瞞)'은 간사하게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3절의 '순전함'과는 반대되는 '속임'을 의미합니다.
② '외식(外飾)'은 '위선'이라고도 하며,
겉치레와 외면치레에 많은 정력을 투자함을 말합니다.
③ '시기(猜忌)'는 자기 우월감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타인이 잘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마음입니다. 방해(妨害)하는 죄악을 의미합니다.
(3) 모든 비방하는 말-대인 관계에서 빚어지는 악
타인을 좋지 않게 말하는 것입니다.
남을 향해 무고히 '중상 모략'하거나, 악담(惡談)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죄악은 악의에 찬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자들을 불의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롬1:29~31).
*롬1:29~31 “[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바울 사도는 비방하는 것을 두려워 하였다고 고백합니다(고후12:20).
*고후12:20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이 모든 악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안 믿는 이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게 바로 이런 악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➀ 더러운 옷을 벗어야 합니다(슥3:3,4).
*슥3:3,4 “[3]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4]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② 구습과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엡4:22~24).
*엡4:22,23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③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입니다(골3:10).
*골3:8~10 “[8]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9]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④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21)
*약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 사모할 것(2~3절)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1) 갓 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합니다(2상반절).
“[2] 갓 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본절은 부정적인 금지 명령을 한 앞 절과는 달리 긍정적인 명령문으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것을 제시합니다.
갓 난 아이들 같이. - '갓 난'은 방금 태어난 상태를 묘사해 줍니다.
그리고 '아이들'(브레페)은 문자적로 '아직 출생하지 않은 아이'를 의미하지만(눅1:41,44) 본문에서는 '네피오이'('유아 乳兒')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눅2:12).
이 '갓 난 아이들'은 영적으로 거듭난 자에 대한 비유로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의 젖을 간절히 찾듯이 그리스도인이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함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마18:3; 막10:14,15).
*마18:3,4 “[3]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막10:15에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 '순전하고'는, '기만'(1절)과 반대되는 거짓이 없는 순수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신령한 젖은 바로 성도가 취하고 먹어야 할 음식,
바로 말씀의 젖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고 신령합니다.
아이가 이물질이 섞인 젖을 먹으면 배탈이 납니다.
요즘의 공해는 어머니 젖도 안전하지 않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젖, 즉 말씀은 영원히 순전할 것입니다.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신령합니다.
성도는 이 젖을 먹어야 성장합니다.나무가 과실을 많이 맺기 위해서는 영양분을 계속적으로 섭취해야 합니다.
계1:3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었지만 그들은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만나를 먹는 자들은,
죽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사탄의 시험권세 몰려와도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인 젖을 "사모하라" 하십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좋아하여 마음에 생각하고 흠모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좋아하고, 기대하고, 그리워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갈구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거듭난 자들이 성장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말씀을 갈망해야 함을 강조합니다(시119:20).
*시119:20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속을 받은 사람은,
바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힘이 되고 영양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이 신령한 말씀의 젓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2하반절)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칭의 곧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단회적 사건이지만,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성장하는 것은 일생동안 이루어야 하는 과제입니다.
성장하고 성숙해져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때 가능해집니다(히 5:11-14).
*히5:12~14“[12]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본문의 '구원'은 마지막 날에 있게 될 그리스도인의 최종적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화의 완성(完成)을 시사합니다.
이런 구원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이지만 계속적인 성장으로 나타내 보여야 할 미래의 목표이기도 합니다(1:5,9; 고전 3:1-4).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은 자입니다(1:5).
그러나 계속 성장하여야 합니다. 젖 먹는 어린아이로 계속 있어서는 안됩니다.
*고전3:1~3“[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3절)
본절은 시34:8의 인용입니다.
*시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라는 것은 마치 갓 난 아이가 젖의 맛을 알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가기 위해 말씀을 더욱 사모하여 그 능력 안에서 성숙해 가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4~8절)
1) 산 돌(4~5절)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1) 그리스도께서 산 돌이심(4절).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 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유대인들에게는 배척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지라도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와. - '보배로운'은 문자적으로 '존경을 받는', '존귀한'이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영광을 가리킵니다(1:19; 눅 7:2; 14:8; 빌 2:29).
본절은 예수님께서 비록 사람에게는 버림받았을지라도 메시야로서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의 구원의 반석이 되심을 시사합니다.
(2) 우리도 “산 돌”이 됨(5상반절).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너희도 산 돌 같이. - 베드로는 앞 절에서 그리스도를 산 돌에 비유하였으나 본 절에서는 산돌을 그리스도인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산돌이 되며,
생명의 근원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야 할 존재임을 시사합니다.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 '신령한 집'은 교회를 의미합니다(시 69:9;사 56:7; 막 11:17).
*시66: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사56:7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막11:17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한편 '세워지고'는 예수께서 직접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된 동사와 동일합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단지 교회에 나아올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에게 나아와서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산 돌이 되며, 거듭난 자들과의 연합을 통해 교회를 이루게 됨을 강조합니다(롬 12:1;15:16; 고전 3:16: 엡 2:21-22; 3:6).
(3) 그리스도인들을 제사장으로 비유합니다(5하반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제사장'은 '제사장의 직분'이나 '제사장의 단체'를 의미합니다(눅1:8).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가진 산 돌이라는 사실에서 진일보하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사직을 수행하는 제사장이 되었음(만인제사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제사장적 역할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이어야 했던 것을(출 19:6) 이루지 못했으나,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교회가 그 이상(理想)을 실현했으며,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그 직무를 감당하게 되었습니다(롬 12:1;빌2:17; 히 13:15; 계 1:6; 5:10; 20:6).
이 산 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면 바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사람들은 예수를 비웃으며 자기도 구원 못하는 주제에 세상을 어찌 구원할 수 있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분으로서 하나님이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 순간적으로 거듭나게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는 날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먹고,
하나님의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 됩니다.
구약에서는 생축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바로 성도의 거룩한 생활입니다. 성도들의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생활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입니다.(롬12:1,2)
2) 모퉁이의 머릿돌(6~8절)
예수 그리스도의 이중적 기능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기능이고 하나는 불신자에게 주어지는 기능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돌을 시온에 세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모퉁잇돌을 시온에 세웁니다(6절).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 베드로는 앞서 진술한 자신의 가르침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증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산 돌이신 것과 그에게 나아가는 자도 누구든지 산 돌인 것이 성경 안에 이미 확증(確證)된 사실임을 시사합니다(사 28:16; 롬9:33).
➀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둡니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본절은 사 28:16의 인용입니다.
'모퉁잇 돌'은 건축물의 벽과 벽 사이를 잇는 건물의 기초요 중심되는 돌이라고 주장합니다(Lloyd, Calvin, Stibbs). .
이것은 '모퉁잇 돌'이 벽과 벽을 연결하여 건축물을 지탱하는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퉁잇 돌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도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셔서 교회를 이루심을 시사합니다(엡2:20).
한편 '시온에 두노니'는 요긴한 모퉁이 돌로서의 그리스도의 독특한 위치가 하나님에 의하여 이미 확정되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두노니'는 현재 그리스도의 역할이 이미 확정되었으며 지금도 수행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독특한 지위가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하며,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됩니다(8절;마21:42,44;롬 9:33).
②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문자적으로 '그를 믿는자는 다급한 일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의미로 두려움과 공포로 부터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 견고히 서게 됨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인이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는 때에 대해서는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Meyer).
(2)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비교하여 각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어떤 가치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합니다(7,8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 그리스도는 자신과 연합한 그리스도인에게 크나큰 영광이요 보배가되심을 시사합니다(Blum).
한편 베드로는 믿지 않는 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지니는 가치에 대해 두 가지 인용문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➀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 본문은 시 118:22의 인용입니다.
*시118: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버린'은 문자적으로 '거절당한'이란 의미로(고전 9:27,RV) 그리스도께서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거부당하신 사실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되었을 뿐만 아니라(시 118:22),
예수님께서도 친히 그 예언을 확인하셨습니다(마21:42;눅20:17,18).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여 버렸으나 하나님은 배척당한 예수를 영광의 자리로 높이셨습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는 사28:16을 반영하는 것으로(6절 주석참조; 마 21:42; 막 12:10; 눅 20:17; 행 4:11) 하나님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심을 시사합니다(Blum).
②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본문은 사 8:14의 인용입니다.
*사8:14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부딪히는 돌'은 길가에 있는 불필요한 돌들처럼 보행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방해물을 암시하며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은 덫이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나 덫이 되며 심판의 돌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자체가 장애물이나 덫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믿지 않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불신앙함으로 걸림돌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덫이나 장애물'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들의 불신앙입니다.
③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본문 역시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진술입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는 문자적으로 '순종하지 않아 말씀에 넘어진'이라는 의미로 믿지 않는 자들이 넘어지는 원인이 순종하지 않는 불신앙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한편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에서 '이렇게'는 '넘어지나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문은 믿지 않는 자들의 불순종에 대한 형벌이 예정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중적 기능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기능이고 하나는 불신자에게 주어지는 기능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돌을 시온에 세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돌을 유대인들은 거부하였고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버린 시온의 돌을 모퉁이돌이 되게 하셨고 믿는 자에게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께서 변호를 해주셔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게 되며 부끄러움을 당치 않습니다.그러나 불신자에게는 이 시온의 돌이 버린바 되었고 또 부딪히는 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치는 반석이 되게 함으로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 그들은 넘어지게 되는 자가 되었고 멸망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구원과 축복을, 불신자에게는 멸망의 거치는 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가 받게 되는 엄청난 축복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성도의 신분(9~10절)
1) 믿는 자들의 신분적인 특권 네 가지입니다(9절).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 택하신 족속이요.
본문은 사 43:20의 인용입니다.
*사43: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진정한 족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족속'은 '혈통' 혹은 '출생'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육적인 혈통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 되었다고 자랑하나 진정한 택함을 받은 족속은 혈통이나 민족의 차별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의 연합을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영적 이스라엘'을 나타냅니다(1:23; 신7:6-7; 사 44:1-2).
(2)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본문은 출19:6의 인용입니다.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왕노릇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을 갖고 계십니다.
'왕인 동시에 제사장'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왕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서 만국통치하며,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자입니다.
(3) 거룩한 나라요.
본문 또한 출 19:6이 인용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성별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현재 직책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거룩한'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린 것을 나타내는 말로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선별하신 존재들임을 시사합니다.
(4)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본문 출 19:5; 사 43:21; 말 3:17의 인용입니다.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신자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소유된'은 특별한 대가를 지불하고 획득된 것을 나타냅니다(행 20:28; 엡 1:7; 살전 5:10).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사셔서 그의 자녀로 삼으신 언약의 백성입니다.
2) 하나님께서 네 가지 신분을 부여하신 이유.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과정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이전에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서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신' 사실을(롬 8:29,30; 엡 1:4) 시사합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서 구원하여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신분을 부여하신 목적은 덕을 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덕'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스 아레타스'는 '찬미', 혹은 '탁월함'을 나타냅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갖는 온갖 종류의 속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실제적 행동들을시사합니다(stibbs, Calvin).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과 역사를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백성이요 긍휼을 얻은 자입니다(10절)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본문에서 베드로는 호1:6,9,10; 2:23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 상태와 그리스도인이 된 후의 상태를 비교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 수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그리스도와 연합한 이후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롬 9:25,26).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삼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부르셨음을 암시합니다(Caffin).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얻지 못하였더니' 이방인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지 못했음을암시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얻은'은 하나님의 긍휼을 오랫동안 얻지 못하던 이전의 상태에서 단회적인 회개 사건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시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했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 복종하던 종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빛 가운데 있어 구원받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크신 위엄과 영광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보답하는 일인 것입니다.성도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기에 이제는 버릴 것은 버리고 사모할 것을 분명히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신 돌은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긍휼과 부끄러움을 받지 않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바로 거치는 돌이 되고 멸망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 돌입니다.
이제 긍휼을 입은 성도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나님이 은혜를 입고 불쌍히 여김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일에 매진해야만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역사가 일어나도록 주님의 사역에 열심을 다하는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매일성경]
[찬송] 201장(통합 240장, 참 사람 되신 말씀
본문의 중심내용 : 생명의 유무는 ‘반응과 성장’에서 나타납니다. 살아있기에 반응하고 성장해갑니다. 사도는 고난 중인 성도들에게 영적 성장을 강조하며 그 방법과 목적을 알려줍니다.
[성경보기]
성장해야 할 성도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참 성전인 성도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믿는 자들과 실족한 자들
6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존재가 선교인 성도
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도움말
2절) ‘순전함’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음을, ‘신령함’은 세속적인 것과 반대되는 영적인 것을 가리키지만 ‘이성적인’(reasonal, 롬 12:2)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해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3절 다시 났다면(1:23) 이제 자라가야 합니다. 믿음이나 구원은 ‘관계’이기에 자라지 않으면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퇴보합니다. 성도가 고난 중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순전함을 넘어, 장성한 자의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영적인 성장과 관계에 독이 되는 악한 생각과 동기, 언행을 ‘버리고’,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 없이는 영적 성장도, 승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4,5절 믿음의 공동체로 지어져야 합니다.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을 기초로 삼아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신령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거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성도의 존재와 삶 자체가 하나님이 받으실 예배가 되는 일입니다. 이러한 삶은 거창한 구호에 있지 않고 거짓 없는 사랑과 거룩한 행실(1:15,22)로 구현됩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사욕(1:14)과 세속을 거스르는 ‘성도다움’, ‘교회다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6-8절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예수님을 성전의 모퉁잇돌이 되게 하셨듯이, 그분을 믿는 성도들도 부끄러움에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장은 ‘믿음의 결과’가 조롱과 비방이지만, ‘믿음의 결국’은 존귀와 영광(1:7; 2:2)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조롱과 외면에 부끄러워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의 거절을 두려워하면 따를 수도, 지킬 수도 없는 것이 믿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9,10절 구원(1:9)은 새로운 신분을 얻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 하나님의 가장 값진 소유로, 세상 앞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가 복음의 증거가 되고 선교가 되어야 할 이들입니다. 그 선명한 차별성 때문에 고난을 당하겠지만, 그 고난마저 복음 증거의 기회가 되게 하는 이들인 것입니다. 회심 전과 후로 우리 신분이 달라졌으니, 삶의 방식도, 사는 이유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영적으로 더욱 성장하여 삶 자체가 예배가 되고 존재 자체가 선교가 되게 하소서.
열방-시리아의 내전이 지속되면서 수백 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시리아 내전이 속히 종식되어 난민들이 집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