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간 윤대녕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구요? 믿을 수 없겠지만 걸어서 왔습니다. 물론 읍내 터미널에 내려 바로 군내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었지요. 그래요,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폭설이었죠. 하지만 그 여자 가 터미널에서부터 줄곧 여기까지 걸어왔던 거예요. 네, 한 시간도 넘게 걸 리더군요. 글쎄요. 제가 왜 그 여자의 뒤를 따라왔는지 아직은 모르겠습니 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따라온 겁니다. 뭐라구요? 전에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사람 아니냐구요? 아녜요, 생면부지인 여자예요. 오늘 광주에서 처음 봤다니까요. 거기서부터 완도 읍내까지는 함께 직행 버스를 타고 왔지요. 세 시간 반이 걸리더군요. 아무튼 저는 문상을 가던 길이었어요. 발인요? 아마 내일일 겁니다. 글쎄요, 내일 아침에라도 첫차 를 타고 광주로 가야 할지 어쩔지 아직 모르겠군요.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 것도 왠지 장담할 수가 없군요.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 구계등이 다. 저녁 여덟 시에 나는 이곳에 왔다. 어제 낮에 나는 외숙모의 부음을 들었다. 그녀는 쉰 살이라는 아직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숨졌다. 암 선고를 받은 것은 9개월 전이었다. 그때 담당 의사는 앞으로 길어야 3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녀가 3개월에서 무려 6개월을 더 버틴 것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던 큰아들 때문 이었을 것이다. 아들의 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 불과 이틀 만에 숨졌으니 그 렇게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 어머니가 내려가 있기 때문에 굳이 나까지 문상을 가지 않더라도 모양새 가 나쁘달 수는 없었으나 외숙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내가 대 학에 합격했을 때 그리고 군에서 제대했을 때 외숙이 각각 쌀 한 가마니씩 을 화물 열차에 실어 보내 왔던 것이다. 요즘 세상에 쌀 두 가마니가 무슨 대수로운 것이랴만 외숙에게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그게 묘하게도 빚 감정 으로 작용하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외숙모가 서울 백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던 날도 나는 외숙의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 저녁 광주로 내려가며 그는 또 무슨 정신으로 하는 소린지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어서 혼례를 올려야지. 그 때 또 쌀 한짝 올리마." 외숙은 쌀이라는 것을 무슨 제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하기 야 어머니만 해도 아직 바늘 쌈지와 쌀을 화폐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물포를 하고 있는 외숙은 젊어서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까지 다녀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무슨 이유로 마흔 살까지 잡고 있던 교편과 서양 화를 하루아침에 집어치웠는지는 모른다. 다만 백색에 미쳐 있다가 그만 붓 을 놓게 되었다는 말을 전에 한 번 들은 기억이 있을 뿐이다. 하얀색이 아니 고 백색 말이다. 단지 어감 차이밖에는 없다고 생각되는 이 하얀 색과 백색 을 외숙은 아직도 완전히 다른 색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전 10시 30분 서울발 광주행 고속버스. 나는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검은 구두까지 신고 있었다. 누가봐도 상가에 가는 사람이란 걸 알았 을 것이다. 요즘은 굳이 옷차림까지 따져 문상을 가는 사람도 없으려니와 암만해도 그런 차림을 하고 있으면 어딜 가나 남들의 퀭한 시선을 받게 돼 나도 꺼려하는 편인데, 몇 년 전인가 어머니가 우격으로 양복점으로 데려 가 할 수 없이 맞춘 옷이었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당신이 수의를 미리 지어 놓았으니 이를테면 나도 상복을 준비해 놓아야 한 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여간해서는 잘 입지 않지만 아무래도 집안 사람이 상을 당하게 되면 또 갖출 것은 갖추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두 번 꺼내 입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검은 양복을 입고 있으면 그때마다 얼굴이 뻣뻣해지는 느낌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여자를 본 것은 오후 세 시쯤이 되어 광주 종합 터미널에 도착해서였 다. 보았다, 라는 말은 맞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버스에서 내려 나는 택시 승강장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가다 툭 하고 어깨가 부딪쳤던 것이다. 좀 세게 부딪쳤던 것 같기도 하다. 순간 여자의 몸이 휘청 하니 흔들렸고 이어 아!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귓전에 날아와 박혔다. 딱히 해침이라도 당한 듯한 단말마의 소리였다. 얼결에 놀라 돌아보니 노 란 바바리 코트를 입은 여자가 미간을 찌푸린 채 손으로 배를 싸 쥐고 있었 다. 몰랐는데, 내 몸이 그녀의 배까지 스친 모양이었다. 곧바로 내 입에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여자는 들은 척도 않고 곧바로 몸을 추슬러 매표 창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로부터 약 5분 후에 나는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된다. 가본 사람은 알지만 광주 종합 터미널은 직행 버스 터미널과 고속 버스 터미널이 상가를 사이 에 두고 연결돼 있다. 그녀는 고속 버스 터미널에서 직행 버스 터미널로 가 기 위해 상가 보도의 중간께에 있는 택시 승강장을 막 지나치고 있었다. 핸드백조차 지닌 것이 없는 단출한 바바리 차림이었다. 베이지색이 아닌가 싶어 눈여겨보니 역시 연한 노란빛이었다.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 았음인지 승강장 옆을 지나던 그녀가 히뜩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것 은 어디서나 흔히 있을 수 있는 타인과의 찰라간 마주침에 불과했다. 이내 눈길을 거두고 그녀는 가던 길을 서둘렀다. 조금 전에 서로 어깨를 부딪쳤던 사람이 나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듯했다. 아니, 잠깐 멈춰 선 듯 도 했지만 거기엔 별뜻이 없어 보였다.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은 것은 노란빛의 잔상이 좀 길게 동공 에 남아 있다 싶어 그녀가 사라진 곳을 눈으로 슬쩍 더듬고 있을 때였다. 그 녀는 터미널 입구에 우두커니 멈춰 서 있었다. 나와는 한 10여 미터쯤 떨어 져 있었을까. 얼마든지 제 시선을 다른 데로 빗댈 수 있는 거리의 유동성 때문인지 그녀는 제법 대담한 얼굴로 나를 주시하고 잇었다. 혹시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암만해도 그녀의 눈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저 여 자가 왜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뒤미처 내가 검은 양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혹시 그 때문이라고 해도 그 바라봄 의 순간은 너무 길었다. 내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은 이제 둘 밖에 남 아 있지 않았다. 넉넉히 1-2분 후면 나는 택시에 올라 고인의 자택으로 가 고 있을 것이다. 또한 30분 후에는 다른 문상객들 틈에 끼여앉아 화투를 치거나 소주를 마시고 있을 터였다. 이윽고 택시가 내 앞에 와 섰고 때를 같이하여 그녀는 터미널 안으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리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나는 택시 뒷문을 열다 말고, 돌연 덜미를 잡힌 사람처럼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 다음, 직행 버스 터미널 입구를 캄캄하게 노려보고 있다가 냅다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그녀 의 뒤를 쫓아갔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나는 9개월 전 암 선고를 받은 뒤 외숙모의 얼 굴에 드리워져 있던 차디찬 죽음의 그림자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크나 큰 당혹감이 천둥처럼 지나가고나서 그리 길지도 않은 사이에 그녀의 얼굴 에 뒤덮이던 적막한 체념의 그림자. 그것은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자의 모습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녀는 매표구 위에 붙어 있는 차 시간표를 올려다보고 있다가 완도행 표 를 끊었다. 처음부터 완도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 별 망설임 없는 모습 이었다. 고속 버스는 차가 없거나 있더라도 시간대가 맞지 않아 이쪽으로 온 게 분명했다. 스물대여섯 살 정도. 아무래도 그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았 다. 스트레이트 퍼머넌트를 한 머리에 목에는 자줏빛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 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다음 개표구 앞의 주황색 플라스틱 의자 에 앉아 세 시가 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뒷전에 누군가 와 서성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개표를 하기 직전에 그녀 가 짐짓 우연한 얼굴로 뒷전에 서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알았으리 라. 내가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택시 승강장에 서 있던 사내라는 것을. 그 사내가 갑자기 길을 틀어 지금 자신의 뒤에 와 있다는 것을. 그때 그녀의 눈빛에서 내가 두려움이라든가 경계심 따위를 읽었다면 나는 도로 택시 승강장으로 돌아갔을런지도 모른다. 요컨대 내가 타자라는 사실 을 그녀가 조금만 애써 일깨워 줬더라면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서 있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얼핏 당황한 것은 사실인듯했으나 그녀는 이내 침착 한 모습을 되찾았다. 적어도 방조 혹은 묵인을 뜻하는 그녀의 얼굴 뒤에서 나는 갈피를 못 잡고 못내 허둥거리고 있었다. 이어 부르릉 하고 차에 시동 이 걸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나는 재빨리 표를 끊고 버스에 올라탔다. 반 은 무의식적으로 또 반은 체념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라타며 나는 입엣말 로 이렇게 마구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나는 검은 양복을 입고 서 있다가 우연찮게도 죽음을 뒤집어쓰 고 있는 여자를 보게 되었단 말이다. 그래도 타인임을 빌미로 애써 외면하 고 지나칠 수도 있었겠지. 한데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생에 대한 저 한 가닥 미련의 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면? 뭐 문상을 가던 길이 아니었 냐고? 그래, 죽음 앞에 납작 엎드리러 가다 나는 산 죽음과 서로 어깨가 부딪친 거야. 아주 오래 전에 누군가 내 목숨을 구한 일이 있어. 2 여자는 중간께의 창문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가 앉아 있는 곳 을 기우뚱하니 지나쳐 맨 뒷자리에 가 앉았다. 겨우 10여 명의 승객을 태 우고 버스는 곧 출발했다. 버스가 광주를 빠져 나갈 때까지 나는 줄곧 눈을 감고 있었다. 어째서 느닷없이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나중에 어머니에게 는 뭐라고 둘러댄단 말인가. 어쩌면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일인지도 모른다. 슬픔이 슬픔을 알아보고 사랑이 사랑을 알아보듯 죽음 또 한 죽음과 만나면 별수없이 서로를 알아보게 마련인가 보다. 하여 길을 가 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로 행로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물론 나 자신 마저도. 버스가 나주를 지날 때 나는 혼곤한 피로에 싸여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죽음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홉 살 땐가 열 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비가 온 다음날 친구들과 함께 조개를 잡으러 가서 였다. 친구들과 나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철길을 따라 반나절을 걸어 큰 강 에도착했다. 민물과 바닷물이 겹치는 그 곳엔 손바닥만한 대합이 참 많았 다. 나는 손끝이 수면에 걸릴 정도의 깊이까지만잠수해 들어가 바닥에 있 는 조개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옆구리께로 떠내려가는 물살의 힘 은 엄청나게 셌다. 한순간 몸이 가로로 떠서 비틀리며 나는 이내 거센 물살 에 휘감기고 말았다. 아무리 허우적대도 중심을 되찾을 방법은 없었다. 그 리고 뼈마디의 힘이 다 빠져 나갔을 때 나는 물 속에서 번쩍 눈을 뜨고 마지 막 생사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삶과죽음이 벌거벗은 남녀처럼 엎치락뒤치 락하는 가운데 마침내 날숨이 코까지 올라왔고 이어 실크 커튼처럼 부드러 운 빛이 내 손과 발을 조여 묶기 시작했다. 짙은 푸른 빛이었던 실크커튼은 점점 보랏빛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보랏빛이 흰빛으로 바뀔 즈음 나는 의 식을 잃고 말았다. 깨어 보니 나는 들꽃이 무리 지어 있는 강둑에 누워 있었다. 처음엔 그 곳에 어느 세상인지 알지 못했다. 시간이 좀더 지나 나는 그때까 지도 조개를 쥐고 있는 손에서 매운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겨우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내 옆에는 거적때기를 쓴 친구 하 나가 더 누워있었다. 그는 나를 구하기 위해 강에 뛰어들었다가 대신 변을 당한 것이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죽은 친구를 보기 위해 거적때기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나는 그의 얼굴에서 아까 물 속에서 보았던 예의 푸른 빛과 보랏빛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한데 그 흰빛의 광경은 그새 어디로 갔 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마지막 흰색을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서였다. 군에 있 을 때였다. 다행히 뇌관만 터져 불구도 면하고 목숨도 구했지만 제대하기 얼마 전에 나는 수색을 나갔다가 지뢰를 밟은 적이 있었다. 발바닥 밑에서 뻥 하는 소리와함께 뇌관이 폭발하는 순산 나는 정말이지 뭐라 말할 수 없 이 투명한 흰색과 다시 만나고 있었다. 차라리 아름답다고 해도 좋을 은은 한 하얀빛. 훗날 박물관에 갔다가 우연히 조선백자를 보게 되었을 때 다시 금 나는 그 황홀한 흰색에 사로잡혀 있었다. 외숙을 미치게 했던 백색의 정 체도 어쩌면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을까. 월출산의 한 자락을 보고 있었으니 영암이었을 터였다. 거기서부터 나는 어이없게도 깜빡 잠이 들어 있었다. 싸락눈이 내리는 걸 본 것은 나주를 지 나 영암으로 가고 있는 도중이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버스는 어느 덧 해남을 통과하고 있었다. 눈은 그새 함박눈으로 변해 몇미터 앞도 분간 하기 어려웠다. 버스 안은 저녁처럼 어둑했다. 승객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 는지 행여 소곤거리는 소리조차 한 점 들려오지 않았다. 턱을 들고 살펴보 니 그녀는 고개를 모로 틀고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 안 혹시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을까. 청해진을 지나는 해안도로를 끼고 돌 아 버스는 여섯 시가 조금 넘어 완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매표구에서 광주행 차 시간부터 물었다. 마음 이 바뀌어 이제라도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 만 내 느낌이 틀려졌을 경우를 생각해미리 알아 놓으려는 것뿐이었다. 막차 는 일곱 시 반에 있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막차를 타게되면 열한 시까지는 광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상을 가는 시 간으로는 그리 늦는 편도 아니었다. 여자는 아까부터 터미널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완도까지 오긴 했으되 어디 갈 데가 없는 사람처럼 택시 운전사가 다가와 뭐라뭐라 해도 고개만 가로 저었다. 그렇다고 누굴 기다리는 모습이랄 수도 없었다. 그녀를 사이 사이 훔쳐보며 나는 일종의 도박을 하고 있었다. 만약 5분 내에 저 여자가 나를 돌아보지 않으면 그때는 어쨌거나 광주행 버스를 타리라고. 여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잠시 후 에 앞 길로 지 나가는 버스를 눈으로 좇는 척하며 그녀가 먼지가 잔뜩 낀 유리문을 통해 안에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이끌리듯 내가 밖으로 나가자 여자는 냉큼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겨 놓았 다. 따라오게는 하되 절대로 거리를 주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여자와 나는 읍내를 벗어나 약 50미터의 간격을 두고 함께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은 외길이었고 왼편에서 간간이 파도 소리가 들려 오는 걸로 미루어 먼데 바다 가 누워 있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부두로 빠지는 길을 버리고 인가 하나 보 이지 않는 산 아랫길로 하염없이 걸어 들어갔다. 나는 상여를 따라가듯 무 연히 여자의 뒤를 좇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문득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느낌마저 사라져 버리고 어쩌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깨닫게 되는 것은 내 가 지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실뿐이었다. 돌아가 기에는 이미 뒤가 너무 멀었고 날은 급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여 자의 희미한 뒷모습을 붙잡고 따라가는일말고는 다른 것은 생각할수도 없 었다. 여자가 왜 차를 타지 않고 그 먼 길을 걸어왔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무려 한 시간 반을 걸어 정도리에 도착했을 때는 서서히 눈도 그 치고 있었다. 나는 몇 시간 만에 서른두 해를 몽땅 다시 산 기분이었다. 입 춘이 지난 지는 벌써 오래고 양력 삼월을 보름정도 남겨 놓고 내린 눈치고 는 참으로 대단했다. 다음날에야 나는 남도가 겨우내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 다는 소리를 횟집 주인에게서 들었다. 서설이었던 것이다. 3 횟집을 겸한 여관이다. 베란다 쪽으로 난 커다란 유리창 안에 바다가 비스 듬히 떠 있다. 눈이 그치고 나서 홀연 날이 개이고 보름을 턱까지 쫓아온 달 이 음력 12월 중순의 바다를 흔들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여자는 곧장 2 층 여관으로 올라가서는 지금까지 내려오지 않고 있다. 감성돔 회를 시켜 놓고 혼자 청하를 마시고 있자 횟집 주인인 40대의 사내가 슬슬 다가와 앞 자리에 앉아 있다. 벌써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언제 깎았는지 턱수염이 쑥 길어 있다. 상에 놓인 감성돔은 사내가 바다에 나가 직접 낚아 올린 것이다. 횟집이라 김치, 된장찌게 따위는 팔지 않는 데다 매운탕을 끓인다고 해도 어차피 고 기는 잡아야 하니 그럴러면 아예 회부터 먹으라는 얘기다. 쟁반이 나오자마 자 나는 께름칙한 느낌이 들어 양복 윗도리와 넥타이를 벗어 놓는다. "요즘은 고기가 잡히지 않을 때죠. 가자미 광어는 좀 남아 있지만 감성 돔은 드물어요. 늦가을에 추자도 쪽으로 옮겨 갔다가 산란기인 봄에 돌아오 거든요. 지금 잡히는 것은 붙박이 감성돔이라고 해서 사시사철 한곳에만 붙 어 사는 것들이죠. 맛은 있을 겁니다. 봄에 올라오는 것은 껍질 빼고는 당 최 먹을 게 없거든요. 꾼들이나 미식가들이 감성돔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색깔 때문이에요. 보시다시피 이렇게 껍질을 얇게 드러내 면 빨간 얼룩무늬가 보입니다. 자고로 여기 붙어 있는 살을 최고로 칩니다. 시각적으로나 미각적으로나 말입니다. 보세요, 아주 미묘한 색깔이죠?" 아직도 무채 위에 누워 있는 감성돔의 아가미가 벌죽거리고 있다. 새삼 스럽게 내려다보니 그야말로 살풍경한 모양이다. 산 채로 재재 칼질을 당 해 아랫도리를 홀랑 벗고 누워 있다. 살았달 수도 없고 죽었달 수도 없이 그 렇게. 나는 젓가락으로 사내가 말한 얼룩무늬 부위의 살점을 슬쩍 뒤집어 본다. 미묘한 흰색. 기이한 일이다. 그 놈의 흰색을 여기와서 이내 또 만나 게 되다니. 몸서리가 쳐진다. 나는 짐짓 수를 쓰듯이 그것이 하얀색인지 백 색인지를 사내에게 물어본다. "그것까지야 제가 어떻다고 말할 수 있나요. 하지만 머리까지 다 죽고 나면 색깔이 탁해지는 건 사실입니다.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감성 돔은 회를 뜨고 나서 바로 드시는 게 아무래도 좋죠." "시각적으로 미각적으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자, 드셔 보시죠. 아니, 상추 마늘에 싸서 드시지 마세요. 손님들이 찾아 고추 된장까지 올려 놓긴 하지만 맛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 게 먹질 않죠. 회가 아니더라도 음식에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제 맛이 나지 않는 법이니까요. 제가 해드리죠. 이렇게 와사비에 그냥 무즙만 풀어서 찍 어 먹는 겁니다. 무즙은 생식을 할 때 제독 작용을 해주고 맛을 건드리지 않 으면서도 혀끝을 시원하게 해주죠." 유별난 사람이다. 내가 건네 준 잔은 내둥 사양하면서 벌써 한 시간을 이렇게 버티고 앉아 있다. 오랜만에 손님이 든 모양이다. "겨울철엔 통 손님이 없어요. 주말엔 어쩌다 사람들이 들기도 하지만 기껏해야 하루 정도 묵고 떠나죠. 오늘도 아까 그 여자분하고 손님 둘뿐 예요." "그럼 여관은 여기 하나뿐인가요?" "반대쪽 해안 끝에 구계 가든이라고 장급 여관이 하나 더 있죠. 나머진 민박인데 사정은 다들 마찬가지에요. 그저 여름 한철 벌어 먹고 사는 거 죠." "완도는 저도 초행입니다." "아까는 두 분이 일행인 줄로 착각했습니다. 여자 분이 먼저 도착하긴 했지만 설마 혼자려니 싶었던 겁니다." "......따지고 보면 일행이 아니랄 수도 없겠군요." "참으로 이상한 인연이군요. 문상을 가는 길에 만나다니요." "인연요?" "그게 아니라면 뭐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그걸 함부로 인연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제가 괜히 저 자신에게 홀려 불쑥 딴 세상을 관광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야 두고 보면 알겠지요. 여자 혼자 여기까지 오는 것만 해도 흔찮은 일인데 문상을 가던 사람이 뒤쫓았으니 예삿일이랄 수 없잖아요?" "......" "딱히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친 다음에야 사람이 만나지는 건 아닙디 다. 인연이란게 뭐 따로 있나요." 아까부터 말하는 투가 이쪽사람이 아니다. 전에 어디서 무얼 하던 사람 인지 갑자기 호기심이 인다. 결혼은 했는지 안 했는지. 스물 두어 살밖 에 안 돼 보이는 여종업원이 주방에 하나 있을 뿐이다. 회는 사내가 직 접 친다. "저요? 태생이야 전라도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죠. 젊어선 어지간히 떠 돌았지요. 그러다 어찌어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그럼 여기다 터를 닦은 무슨 이유라도......"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겠어요. 그저 어딜 가나 타향이란 걸 깨달은 거 지요. 여기서 오가는 사람들 상대로 주막이나 하는 게 제 팔잔가 싶습니 다. 있어 보면 아시겠지만 구계등은 천자문을 복습하기엔 괜찮은 곳이지 요." "천자문요?" "배운 게 짧아 놔서 천자문 하나도 다 익히지 못했단 뜻예요. 별별 일 을 다 하며 떠돌아다니다 5년 전에 혈혈단신으로 이곳에 들어왔죠. 천지 간 사람이 하나 들고나는 데 무슨 자취가 있을까만요." 배운 게 짧은지는 몰라도 말솜씨는 여간하다. 그건 그렇다치고 여기 얘 기라면 나는 아직 구계등의 뜻조차 모르고 있다. "정도리 바닷가엔 모래가 한 점도 없어요. 청환석이라고해서 푸른 돌들 이 해안을 따라 죽 깔려 있죠. 해안선이라고 해봐야 기껏 700미터밖엔 안 되지만 돌밭이 바닷속으로 아홉 고랑을 이뤄 내려가 있다고 하니 장 관은 장관인 셈이죠. 그래서 구계등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푸른 돌밭이 아홉 고랑을 타고 바닷속까지 내려가 있다. "여기 사람들 말을 들으면 돌들이 천년 동안 바닷물에 씻겨 마침내 푸 른색을 띠게 된다고 합니다. 생각 없이 들고 나가다간 봉변을 당하게 되 죠." "청환석 말입니까?" "그래요." 가지고 나가 보면 푸른빛이 곧 죽어 버릴런지도 모른다. 뭐든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게 좋다. 접시 안에서 백색이 연둣빛에 물들고 있다. "길바닥에 눈이 쌓여 택시를 불러도 소용이 없겠네요. 광주로 가기엔 벌써 늦었으니 그만 올라가 주무셔야겠군요. 여관이라곤 하지만 2층에 방이 열 개뿐이에요. 210호실에 불을 넣어 놨습니다." 열 시. 이제는 문을 닫을 시간인 모양이다. 쟁반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며 사내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린다. "여자 분은 아예 저녁도 거를 모양이네요." "......" "얼굴이 꽤나 어두워 보이더군요. 언제 가실지 모르지만 잘 좀 지켜봐야겠 어요." 그것이 내게 하는 말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사내가 주방으로 들어간 다음 이다. 방으로 올라가다 말고 나는 바람을 쏘일까 싶어 밖으로 나간다. 눈이 그치고 난 뒤의 해변은 파도 소리마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안으로 활처럼 휘어져 있는 해안으로 내려간다. 수박만한 청환석들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참외만하게, 주먹만하게 작아지더니 물밀녘에 이르자 겨우 달걀만해졌다. 무릎 아래로 달빛에 부서진 파도가 은빛 거품을 물고 달겨들고 있었다. 언뜻 뒷전에서 바람이 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방풍림 이 달빛 아래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얼마 만에 쳐다본 밤하늘인지도 모르지 만, 사금 광주리를 엎어 놓은 듯이 그야말로 무진장한 별들이 머리 위에 가 득 내려와 있었다. 그리하여 700미터의 푸른 돌밭은 왕의 요대처럼 번쩍거 리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발을 뻗어 요대 위를 걸어가 보았다. 아랫도리 에서부터 푸른 금빛의 무리가 휘황하게 번져 올라왔다. 나는 그 빛에 취해 한동안 바닷속에서 밀려나오는 소리조치 듣지 못하고 있었다. 해안선의 3분의 1쯤을 걷다가 나는 걸음을 멈추고 바다에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수만의 조개들이 물가로 몰려나와 자그락거리는 듯한 소 리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고 있었다. 켜로 콩을 까부르는 소리? 아니었다. 알고 보니 청환석들이 파도에 휩쓸리며 토해내는 소리였다. 나는 거기다 오래 귀를 열어 두고 있다가 잊었던 듯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올 려다보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천자문을 베끼는 투로 옛날 어른들 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조리고 있었다. 하늘은 커다란 천막인데 북두칠성을 못삼아 걸려 있네. 별은 독수리, 사슴, 곰의 모양을 하고 하늘 여행을 하네. 구계 가든 아래까지 와서 나는 내가 걸어 나온 횟집을 돌아보았다. 2층 여관 방 하나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오늘 밤은 더 이상 아무도 들지 않으려 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저녁도 거른 채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아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횟집 주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돌아가 여자 옆에 있어야 하리라. 바다에서 돌아와 아까 주인 사내에게서 받은 열쇠를 꺼내 보니 여자가 들 어 있는 바로 옆방이었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나는 소리를 죽여 210 호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 귀를 대보았지만 옆방에서는 아 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불을 켜둔 채 잠이 든 것인가. 새벽 두 시쯤, 여자의 잔기침 소리를 듣고 나는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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