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의 흐름
개화기의 문학은 1890년대 이후 성립된다. 그 내용에서 개화기의 현실 인식을 담고 있는 개화기 문학은 산문에서는 역사·전기 문학과 이른바 신소설류가 그 중심이 되고, 시가에서는 전통 시가의 형식을 계승한 개화 가사, 개화기 시조와, 외래 문화의 영향으로 새로 소개된 시형인 창가와 신체시가 그 중심을 이룬다.
개화 가사와 개화기 시조는 공통적으로 개화 의식에 대한 비판적 경계심이 그 중심 주제를 이루면서 작가도 봉건적 인물이거나 미상인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창가와 신체시는 개화기의 신흥 문물에 대한 찬양과 진취적인 기상을 드러내는 전문적 작가의 작품인 경우가 많다. 창가와 신체시는 개화기에 활발하게 설립된 각종 학교의 교가와 응원가, 그리고 기독교의 찬송가와 서양식의 행진곡 등의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아 성립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대의 가사와 시조, 그리고 민요의 형식도 동시에 존재하고 그 어떤 하나의 형식이라고 볼 수도 없는 이른바 자유시형을 지닌 시가도 다수 발표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개화기 시가의 어떤 작품을 특정한 한 형식에 담아 두거나, 최초의 신체시 아니면 최초의 자유시 등으로 규정하는 것은 올바른 작품 이해의 방법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1910년대의 시는 1919년 일대 전환을 이룬다. 1919년 1월 김동인과 주요한이 중심이 되어 창간된 [창조]는 최초의 근대 문예 동인지로서 자각적인 문학 활동으로서의 시와 소설을 다수 싣고 있으며, 1919년의 3·1 운동의 실패는 때마침 유행하던 세기말적 풍조와 맞물려 많은 지식인 시인으로 하여금 허무와 좌절을 읊조리게 하였던 것이다.
1910년대에까지 위력을 가졌던 계몽적이고 교훈적인 시가 청산되고, 시다운 시가 등장한 1920년대의 시는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시의 정형시적 형태로부터 자유시로의 전환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또한 主情的인 시가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둘째, 독립운동의 좌절로 인한 우울한 시대 의식과 비애 및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노래하는 영탄적이고 감상적인 경향을 띤 시가 나타나게 되었다. 여기에는 시대적 분위기도 물론이지만 서구 문학의 상징주의, 퇴폐주의 및 낭만주의의 영향이 또한 적지 않게 작용되었다. 주요한, 황석우, 오상순, 박종화, 김억, 이상화, 홍사용 등과 같은 사람들이 그 대표적인 시인들이다. 특히, '백조'의 시인들인 이 상화의 '나의 침실로',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박종화의 '흑방비곡' 등은 눈물, 꿈, 죽음과 같은 감상적이고 환상적인 세계에의 동경과 도취적인 몽환과 죽음의 미화를 주로 다루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에서도 이상화는 '나의 침실로'와 같은 감정의 노출과 반현실관을 드러내는 작품을 쓴 반면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와 같은 강한 현실 의식을 노출하는 작품을 쓰기도 했던 것이다.
세째, 경향파 또는 '카프'의 결성을 전후로 하여 강한 사회의식을 드러내는 시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문학은 시 자체의 독자성과는 관계 없이 지나치게 이념적 주장만을 강조한 나머지, 시로서의 성과도 거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네째, 서정시의 면모가 확실하게 정립되게 되었다. 김소월과 한용운은 어떤 특정한 문학의 사조와도 관계됨이 없이 이 시대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성과를 드러낸 서정 시인들이다.
김소월은'진달래꽃' , '산유화' , '금잔디', '가는길' 등의 시를 통해서 민요적인 서정의 情恨과 운율적인 가락이 조화된 시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독립 운동가요, 승려이기도 한 한용운은, 그의 시집 '님의 침묵<1926>'을 통해서, 존재와 정신의 지주가 되는 님이 떠나 버린, 침묵한 시대에 있어서 굽힐 줄 모르는 초극 의지와 희망에의 염원을 불교적인 발원과 교합시킴으로써 서정의 의연한 경지를 열어 놓았다.
기타 전통문학에 대한 관심은 김억 등의 민요적 서정과 함께 최남선, 정인보, 이병기, 이은상 등에 의한 시조문학의 계승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1930년대의 우리 현대시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갈래의 성격적인 다양성을 지니게 되었다. 첫째, 순수 서정시에의 지향과 옹호가 두드러지게 된 현상이다.
이 순수 서정시 운동은 주로 박용철, 김영랑, 신석정 등이 중심이 된 '시문학<1930년 창간>' 동인들에 의해서 주도 되었다. 이들은 시가 지나치게 사회성을 가지고 사회적 이념의 전파를 위한 수단으로 도구화되는 것을 거부했으며, 또 지나치게 기교 위주로만 치닫는 경향도 마땅하지 않게 생각한 나머지, 시 자체의 순수성과 서정성을 지향하고 옹호하려고 했던 것이다.이의 이론적 기수인 박용철은 릴케의 영향을 받은 시론 '시적 변용에 대하여'란 글로 시의 서정성을 강조했으며, 이를 시로써 실천한 것은 김영랑이다. 김영랑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끝없는 강물 흐르네' 등의 시에서 보듯, 감각적인 언어의 섬세한 다듬질과 가락의 음악성 등으로 순수 서정시의 한 경지를 열어놓은 시인이다.
둘째, 모더니즘의 주지적이고 기교주의적인 경향이다.
이 유파는 평론가인 최재서와 시인인 김광균, 장만영 등이 주도적 중심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영국의 현대 시인인 엘리어트와 파운드 등의 모더니즘 또는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주로 이전의 시가 낭만적이고 음악적이며, 주정적인 시작 태도나 경향파 등의 내용 편중의 문학을 거부하고, 도시적 감성과 문명비판의 요소를 지닌 주지적이고 기교적인 시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시에 있어서는 감정이 배제되고 시각적이고 회화적인 이미지가 강조되었던 것이다.한편, 전통보다는 변혁을 위주로 한 '오감도' 등 이상의 시는 서구의 초현실주의나 미래파와의 친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세째, '시인부락<1936>'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생명파'의 등장이다.
서정주, 김달진, 김동리 등이 중요 동인인 '시인부락'의 성격은, 주로 서정주의 관능의 열기와 숨결을담은 '화사집<1941>의 시로 대변된다. 이들 생명파는 모더니스트들의 감각적인 기교, 경향파의 이념적인 목적, 시문학파의 순수 서정의 표출과는 달리 생명의 깊은 충동과 고뇌, 삶의 절박한 갈망을 시화하려고 하였다. '생리'지의 동인 유치환 역시 그러한 생명의 현실을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생명파인 것이다.
네째, 전원적인 목가시의 반도시적 경향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망향<1939>'이란 시집을 낸 '시원'의 동인 김상용은 전원에서의 단순한 삶의 예찬을 '남으로 창을 내겠소<1939>'라는 시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촛불<1939>'의 시인 신석정도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에서 도시나 문명과는 멀리 떨어진 전원과의 화해와 자연에 친화된 삶을 노래했던 것이다.
다섯째, 여류 시인의 본격적인 등장이다. '시원'의 동인으로서 여성적인 정념의 표출을 주로 하는 모윤숙의시집 '빛나는 지역<1933>'과 산문집 '렌의 애가<1937>'를 사슴의 시인으로 절제의 아름다움을 보인 노천명이 시집 '산호림<1938>'을 발간한 것도 이 시대이다.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의 초반 오륙 년이란 시기는 우리의 현대 문학사에 있어서 가장 불행한 문학적 '암흑기'로 평가된다. 중일 전쟁<1937>과 태평양 전쟁<1941>등 침략 전쟁을 도발함으로써 세계를 전화속에 몰아놓은 일제가, 전쟁의 수행을 위해서 식민 통치의 철저한 통제화 탄압을 더욱 가중시켰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일제는, 한국어의 사용을 금지<1939>, 창씨 개명을 강제함은 물론, 민족 언론지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1940> 시키고, 작품 발표의 매개인 문예지 '문장'과 '인문평론'마저 폐간 또는 개제시키는 등, 문학 활동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한편, 전시동원의 명목으로 '국민 총력 연맹'이란 조직 단체를 결성<1940>, 한국 사람에 대한 이른바 황국 신민화운동을 전개하고, 신사 참배와 궁성 요배를 강제하였으며, 징병제의 실시<1943>와 학병제의 시행<1944> 등으로 무고한 한국 사람의 인명과 재산을 모조리 바칠 것을 강요했던 것이다.
이런 무단 정치의 강압적인 통치 체제 아래서 건실한 문학의 생성은 거의 불가능할 수 밖에 없었다. 강요에 못이긴 일부 문인들이 '조선 문인 협회<1939>'와 '조선 문인 보국회<1943>'란 친일적인 어용 문학 단체의 이름 아래 치욕스런 문화적 용병 노릇을 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문인들은 붓을 꺽는 문화적인 정적의 길을 택했으며, 시인 이육사와 윤동주는 체포되어 끝내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이육사는 시인이요 항일 투사로서, 웅혼한 남성적 기상과 의지를 담은 '광야', '청포도', '절정'과 같은 시를 남겼으며, 윤동주는 양심과 고뇌를 짊어진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노래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남겼다. 이들은 다 같이 혼몽한 역사의 어둠 속에서도 밝아 올 새벽을 예감하고 기원했던 시인들이며, 암흑기에 있어서 불멸의 시혼을 대표한다.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짝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이육사의 '꽃'에서>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 소리 들려 올 게외다.
<윤동주의 '새벽이 올 때까지'에서>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은 국권 회복이라는 의미와 함께 우리의 현대 문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국어의 회복이며, 현대 문학의 생성 이래 줄곧 식민지 통치의 제약과 검열 아래 시달리던 문학적 상황이 이와 더불어 비로소 자유의 넓은 지평을 열어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우익의 대립으로 인한 사회적인 혼란이 거듭됨으로써 문단과 문학 역시 창작의 성과보다는 좌우익의 상반하는 이념의 대치 현상을 빚게 되었으며, 이런 현상은 1948년의 정부 수립을 계기로 어느 정도 정리 되었다.
이 기간에 있어서의 우리 시문학의 성과는, 주로 '문장' 등의 폐간으로 정체되었던 자연파나 생명파의 시적인 서정과 정조가 회복된 점에 있다. 특히,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등의 이른바 '청록파'의 등장은 해방 문단에 있어서 가장 주목되는 사실이었다. '문장'의 마지막 세대로서 공동 시집 '청록집<1946>으로 새로운 시단에 나타난 이들은, 서로의 시 세계의 차이, 즉 고전적 풍류, 향토색의 서경, 갈망과 기도 등을 각각 보이면서도, 한결같이 시가 자칫하면 이념의 수단으로 전락하기 쉬운 시대적 상황에 맞서 시의 독자성을 지킨 시인들이다. 이들의 시는 자연을 서정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 생명파 시인으로 불리는 서정주와 유치환은 이 무렵 시집 '귀촉도<1948>'와 '생명의 서<1947>'를 각각 내놓았다. 유랑과 관능의 열기 및 몸부림으로 일관하던 서정주는, 여기에서 마침내 동양적 내지는 한국적인 서정의 세계에로 돌아오는 의의를 가지게 되었으며, 유치환은 삶의 앙양과 확산에의 의지와 극기의 모습을 더욱 심화했다. 이밖에도 박남수, 김현승의 특이한 시 세계가 이 시대를 전후해서 나타나게 되었다.
분단의 비극은 1950년 6·25 전쟁으로 폭발한다. 1950년대는 6·25 전쟁으로부터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소용돌이의 시대이다. 전쟁에 의한 피해와 이의 복구는 1950년대의 시대사적 과제였고 전쟁의 비극적 체험과 상흔은 우리 모두에게 인간 실존의 무의미함과 허무주의를 남겨 주었다. 전쟁은 시인들에게 참전과 종군이라는 적극적 대응 방식에서부터 풍자와 역설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 그리고 센티멘탈리즘이나 폐쇄적 자아 의식으로의 굴절 등 다양한 정신적 편차를 드러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와 함께 전쟁은 다시 분단의 고착화를 낳게 되고, 이에 따라 냉전 체제하의 안보의 논리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신성한 절대불가침의 명제로 굳건히 자리잡게 된다.
1950년대의 시는 전장시로부터 출발한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구상, 박인환, 유치환, 박두진, 조지훈 등 많은 문인들은 이에 대응하여 격시(激詩)를 쓰고 '문총구국대'를 조직하여 1·4 후퇴를 전후한 시기에 특히 체계적으로 활동한다. 이러한 와중에 이광수, 김동환, 김억, 정지용, 김기림 등은 납북되고, 설정식, 이용악 등 좌익계 시인들은 월북하고, 박남수, 이인석, 양명문 등은 월남한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문단은 재편될 수밖에 없었고, 분단시대의 문학이라는 멍에를 벗을 수 없는 비극적 현실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한편,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결성된, 박인환, 조향, 김경린, 이봉래, 김차영, 김규동 등의 [후반기] 동인들은 1930년대 모더니즘의 감각과 기법을 보다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청록파류의 보수적인 서정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현대문명의 메커니즘과 그 이면을 형상화하는 데 주력한다. 그러나 1950년대 시단은 중견 시인들의 전통적 서정시와 정한모, 박재삼, 조병화, 송욱, 이형기, 김춘수, 김종길 등 신진 시인들의 휴머니즘이나 전통적인 정한(情恨), 혹은 존재론적 성찰의 시 세계가 여전히 그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특성은 분단 이데올로기가 경직화될수록 더욱 뚜렷해져서, 대역사적 목소리의 발로나 분단 현실에 대한 자기 반성적 성찰은 1960년대 이후의 김수영이나 신동엽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1955년 [현대문학]과 [문학예술], 1956년 [자유문학]의 창간으로 인해 [문예] 폐간 이후 공백 상태이던 문단의 지면이 확보되었을 뿐 아니라, 1957년 [한국시인협회]가 결성되어 기관지 [현대시]를 간행하고 국제시인협회에 가입하는 등,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시단은 새로운 변화와 질서를 모색하는 활발한 기운을 맞게 된다. 그리하여 1955년부터 1959년에 이르는 1950년대 후반에는, [시와 비평], [시연구], [시작업] 등 각종 시 전문지와 시 동인지가 간행되는 한편, 100여 권이 넘는 개인 시집들이 상재되어 가히 현대시의 르네상스를 이루게 되고, 본격적인 현대시의 출발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1950년대 시인들의 거의 모두가 이후 1960년대의 시단의 중견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1950년대와 1960년대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1960년은 4·19 혁명이라는 분명하고도 상징적인 역사적 사건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 시기를 10년 단위로 구분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1950년대 시와 1960년대 시 모두가 뚜렷한 시대적 변별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는 1960년 4·19 혁명의 거대한 민중의 열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의 열망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좌절되고, 민주화의 과제는 근대화의 발전 논리와 냉전 체제의 안보 논리에 휘말려 결국 길고 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렇듯 1960년대는 모순과 갈등의 시대였다. 식민지 시기를 뒤이은 분단비극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4·19 혁명과 5·16 쿠데타라는 역사적 사건을 연이어 겪으면서, 한국의 시단은 이러한 1960년대의 상황을 맞아 다양한 시적 응전력을 시험하기에 이른다.
우선 첫째로, 4·19와 5·16의 충격과 영향으로 투철해진 현실 인식에 근거하여 적극적으로 변혁의 의지를 작품 내에 수용하고자 하는 일군의 작품들이 있다. 이러한 작품의 선편은 김수영이 쥐고 있다. 그는 1950년대의 소시민적 비애를 담담하게 노래하다가, 4·19를 계기로 <푸른 하늘을> 이후 <풀>에 이르기까지 현실 참여의 시작 활동을 전개한다. 그의 이러한 현실 인식은 <껍데기는 가라>, <금강>의 신동엽의 민족주의적 역사 의식과 연결되고, 이성부의 <벼>와 조태일의 <국토> 등으로 계승된다.
한편, 사회적 관심을 특히 강조한 시와는 달리 순수한 서정과 낭만성을 강조한 경향의 시들도 크게 대두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50년대 이후 계속되어 온 주된 흐름으로, 정한모, 조병화, 김남조, 박재삼, 박성룡 등이 그 중심적 위치에 선다. 이러한 전대의 흐름과도 달리 현대시의 지성적 영역을 개척하려는 일군의 시인이 등장하는데, 1950년대에 등장한 김춘수, 김광림, 김종삼, 황동규 외에도 이승훈, 오세영, 이수익, 정현종, 오규원 등의 신인들이 주로 이 경향에 가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