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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책소개)

[감명 깊었던...]추억여행, 행복한 고물상

작성자哀想|작성시간09.03.09|조회수185 목록 댓글 0

추억은 언제나 기억의 한 부분이다. 흔히 동의어로 쓰고는 있지만 나는 분명 이 두가지의 것을 구분하고 싶다. 이것은 대단한 관념론적인 고뇌와 철학적 사유를 통해 내려진 의지작용의 결과는 물론 아니다. 다만 추억이라는 말이 기억이라는 말 보다는 좀 더 아련하고, 따뜻하며, 왠지 모를 애뜻함까지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나에게는 주기 때문에 이런 구분을 하는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도 그렇다. 조금 손쉽게 알아보기 위해 사전을 뒤적이는 수고로움을 피하고 인터넷 검색창에 '추억'이라는 글자를 입력해보니,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나 그런 생각을 통칭하는 개념이 그것의 뜻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기억은 다르다.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는 것을 '기억'이라고 하며, 또는 사물이나 사상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을 '기억'이라 지칭 한단다. 나만의 독단에 의할 때, 사전적 의미로도 기억이라는 말은 추억에 비하여 이렇게 학술적이며 딱딱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왠지 인간미를 상실한 듯한 그런 느낌을.

한층 삭막해진 이 사회의 음울한 분위기를 밖에서 해소하고 풀어주는 역할은 정치, 법률 등의 몫이겠지만, 그것을 안에서 용해시켜 주는 데에는 예술의 힘도 상당히 크다고 본다. 그럼 예술은 무엇일까? 공자의 말을 빌리자면 예술의 본질은 그리움이요,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특함이나 사악함이 없는 것이다(思無邪). 그런 까닭으로 아마도 예술분야에서 만큼은 생각한다는 것은 '기억'이라는 말보다는 앞서 밝힌 것 처럼, 상대적으로 아련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추억'이라는 말과 연결점을 찾는 것이 훨씬 쉽다. 그리고 추억과 예술이 이렇게 맺어진다면 문학도 예술의 한 분야인 만큼, 추억과 문학의 관계 역시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즉, 문학은 그리움 혹은 추억 그 자체이거나, 추억을 되뇌일 수 있게 하는 정신의 활자화 된 도구라고 정의 할 수 있겠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이런 식의 성급한 정의내림에 대한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당연하다. 그리고 동의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 스스로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정의라 생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의가 문학이 가지는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속성의 일면을 짚은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라는 그리움과 추억의 한 형태의 추상(抽象)을 문학이 그토록 많이 다루고 있는 까닭을 설명 할 길은 없어질 테니까. 게다가 지금부터 언급할 <행복한 고물상>과 같은 수필의 장르에서는 이러한 필자의 정의 내림이 더욱 유효하게 작용 될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은 그야말로 작가의 추억 여행을 독자들이 따라가는 것일 수 밖에 없기에.

이철환 작가의 <행복한 고물상>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과 추억이 아름다운 문체로 담겨 있는 수필집이다. 듣기로는 이 작가는 <연탄길>이라는 수필집으로 더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 그 책은 읽어보지 못했다. 원래 수필을 독서의 한 장르로써 그닥 즐기는 편은 아니기에 아마 그것이 한창 유행 할 즈음에는 귀로는 들었으되 찾아 읽어보려는 노력까지 하지는 않았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행복한 고물상>이라는 책도 아마 선물 받은 것이 아니었다면 읽어 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그래서 혹시라도 필자처럼 수필집을 좋아하지 않아 이 <행복한 고물상>을 읽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억지로까지 권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한가지, 이런 말을 그런 사람들에게 해줄 것은 같다. "읽고 싶지 않으시다면 읽지 마십시오. 당신 자유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어린 날의 추억을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 중 한가지를 포기하신 겁니다."

 

고물상이 있는 산동네 언덕을 한참 동안 내려오면 길음시장의 좌판이 시작되었다. 길음시장에는 더 이상 갈데없는 팔도 사람들이 조그만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했다. 그래서 길음시장은 서울에 있었지만 서울이 아니었다. 시골장터와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어둠이 내리면 싸구려 소리가 유난히 커지던 곳.

쩔거덕 쩔거덕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질 소리.

상쇠의 쇠가락에 따라 농악 십이차 장단이 울려 퍼지면.

너름새 춤사위에 신명을 풀던 시장 사람들.

길가에 돌아 앉아 아가에게 젓을 먹이는 채소 파는 아줌마.

햇볕에 그을린 거무튀튀한 얼굴로 ‘뻥이요!’ 소리치던 뻥튀기 아저씨.

뽀르르 몰러서서 귀를 막고 서 있던 조무래기들.

철망 안으로 ‘뻥’ 하고 쏟아지던 하얀 튀밥들.

네모난 통을 어깨에 메고 ‘아이스께끼, 께끼나 하드.’를 외치던 때꾼한 눈빛들.

노란 달빛을 밟으며 파장하는 시장 사람들은 길음시장의 명멸하는 희망이었다.

엄마와 함께 길을 가는데 근처에서 순댓국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왔다. 순댓국집 널따란 좌판 위에 큼직한 돼지머리 하나가 배시시 웃고 있었다. 돼지 뼈를 끓이는 가마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순댓국 먹고 싶니?”

“.............”

엄마의 물음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고개를 끄덕였다.

“순댓국 한 그릇씩 먹고 가자.”

순댓집 뚱뚱보 아줌마는 밍밍한 얼굴로 쉴새없이 머리고기를 썰고 순대를 썰어댔다.

“엄마는 왜 안 먹어?”

“엄마는 돼지 냄새나서 순댓국 안 좋아해. 너희들이나 어서 먹어.”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순댓집 아줌마를 불러세웠다.

“아주머니, 순댓국에 양념장이 너무 많이 들어갔나 봐요. 아이들이 짜다고 하네요. 국물 조금씩만 더 주실 수 있나요? 우리 아이들은 워낙에 싱겁게 먹어서..”

아줌마는 펄펄 끓는 솥에서 하얀 고기 국물을 국자에 담아 형과 내 뚝배기 안에 넉넉히 부어주었다. 그 때 내가 속삭이듯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국물 하나도 안 짠데..”

국물이 왜 짜다고 엄마가 말했는지 그 때는 미처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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