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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시 200선

한국의 명시200 길-윤동주

작성자별 그리고..그리움|작성시간07.10.27|조회수619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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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 전문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1941년 9월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시는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결연한 자세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윤동주의 시는 대부분 자아 성찰을 통한 자기 완성을 지향하는 특징을 갖는데,

그 자아 성찰의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이

주로 ‘방’․‘우물’․‘길’ 등의 이미지이다.

 ‘길’은 탐색의 과정과, 출발과 도착의 과정을 지닌 행위의 공간이므로

‘길’의 공간성은 항상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지닌다.

그러나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의 ‘길’에는 반드시 겪어야 할 시련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길’은 시련의 극복이라는 정신적인 세계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시에서의 ‘길’은 자기 성찰과 자기 수련을 통해

식민지 시대를 극복하고 본질적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1연에서는 상실의 상황과 그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을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또한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으며 길을 나서고 있다.

여기서 주머니를 더듬는 행위는 길을 나서는 행위와 대비되는 것으로,

결국 두 손은 두 발로, 주머니는 길이라는 확장된 공간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머니는 길에 비해 작고 내밀한 공간으로 화자의 내면과 상통한다.

그러므로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는 화자의 행위는 곧 잃어버린 대상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해 있던 것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2연에서는 화자가 걸어가는 길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 길은 돌이 끝없이 연달아 이어져 있는 돌담을 끼고 가는 길이다.

여기에서 돌담이 길을 안쪽과 바깥쪽으로 갈라 놓았기 때문에

그 길을 걷고 있는 화자로서는 결코 돌담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그 곳은 바로 화자가 회복해야 할 이상적 자아의 세계이지만,

 돌담이 그 길과 평행 상태로 끝없이 어어져 있기 때문에

화자는 그 곳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돌담은 자아의 안과 밖, 현실과 이상을 갈라 놓으며 끝없이 계속되는 우리네 삶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3연에서는 돌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쇠문으로 굳게 닫혀 있다고 함으로써

 절망적 상황임을 암시해 준다.

4연에서는 시간 속에서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과정으로서의 길의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다.

 길의 진행은 곧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며, 또

한 산다는 것은 화자처럼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탐색 과정인 것이다. 

5연에서는 부끄러움을 통한 자아의 갈등과 각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상적 자아를 회복할 수 없음을 깨달은 화자가 쳐다본 하늘은

 현실적 자아를 일깨워 주는 지고(至高)한 존재로 그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한다.

이 부끄러움이야말로 윤동주 시 세계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준엄한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 완성을 지향하게 해 주는 원동력인 것이다.

6․7연에서는 삶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의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존재해 있는 잃어버린 자아,

 즉 본질적 자아를 찾기 위함이다. ‘긴 그림자가 드리운’ 돌담 같은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 상황 속에서도,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기 위함이라는

독백을 하는 화자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적 삶을 추구하기 위해

악랄한 식민지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아 회복의 길을 걷던 윤동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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