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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

작성자정종환|작성시간03.01.18|조회수200 목록 댓글 0
안나 도스토예프스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 아내, 김봉영 역,문음사, 1982

"내가 견뎌야 했던 내 몫의 물질적 불운과 정신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생애가 무척 행복했고 내 생애의 어느 한 부분도 바꾸고 싶은 것은 없다."

"나의 회고록에 부치는 말

내 남편은 다른 남편들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처럼 나를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마치 남편 자신만을 위해 창조된 어떤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거의 숭배하다시피 한 사실은 내게는 어떤 신비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혼 초에만 그러하였던 것이 아니라 그이가 죽는 바로 그 순간까지 계속 그러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는 나는 외모가 뛰어나게 잘나지도 못했었다. 단지 2급교육(고등교육) 밖에는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점에 상관없이 나는 그분처럼 창조적이고 명석한 한 남자의 확고한 존중, 거의 숭배에 가까운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소중한 내 남편이 내게 냈던 편지들을 읽어본 사람은 나의 이런 표현이 자랑삼아 불려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불가해한 이런 사실이 로자노브가 자기의 책 "문학적 추방"에서 1890년 1월 5일자 스트라코브의 편지에 보낸 메모를 읽으며 어느 정도 풀리는 것 같았다. 그 메모를 여기 인용하겠다.

'아무도 어느 친구라도 우리보다 더 좋은 사이로 될 수는 없오. 그러나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서로 아주 다른 구조와 다른 경향과 늘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자신의 태도를 고수하는, 그러니까 약게 호응한다던지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자기들의 생각을 어느 틈엔가 은근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더구나 자기들의 진실하지 못한 정신을!) 우리들 영혼에 또는 자기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의 혼돈 속에 또는 뒤엉킨 상태에 주입시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튼튼하고 믿음직한 장벽처럼 서서 우리들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위선과 불합리한 성품들을 채찍질하기 바쁜 자세로 서 있었오. 하긴 이러한 자세야 인간인 이상 어느 누구도 조금씩은 다 가진 것이지요. 우정이란 서로 모순 속에 있는 것이지 합일 속에 있는 것이 아니지요. 참으로 하나님은 내게 스트라코브를 나의 선생으로 주셨오. 그와 나의 우정, 달리 말해서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은 내가 충분히 기댈 수 있고 쉴 수 있는 장벽이었음을 여기 말해 두고 싶소.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닐 것이고 오히려 따뜻함을 주는 것이겠지요.'

실로 나와 내 남편은 "서로 아주 다른 구조와 다른 경향과 늘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자시느이 태도를 고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은 언제나 자기 모습대로 서 있었다. 우리들 서로에게 괜히 동조하는 것은 없었고 서로가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상대의 영혼에 함부로 끼어들려고 하지도 않았고 내가 그이의 심령에 간섭한다거나 그이가 내게 그렇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남편은 둘 다 그러한 정신에 있어서만은 각자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인간의 가슴에 맺힌 원을 그토록 깊게 이해하려 했고, 그토록 되씹어 보며 탐색하던 내 남편은 내가 자기의 영혼과 지적 생활에 아무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을 충분히 이해해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그래서 그는 때때로 나한테 이렇게 말해 주곤 했다. "여보, 당신은 나를 이해해 주는 유일한 여인이오."(이것은 그이가 바로 제일 가치있는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점이었다.) 그이는 나를 마치 자기가 기댈 수 있고 그래서 쉴 수 있는 바위처럼 여기곤 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닐 것이고 오히려 따뜻함을 주는 것이겠지요."
바로 이것이다. 내 남편이 내게 신뢰한 그 놀라운 믿음이다. 그리고 나의 어떤 행동에도 그이는 전적인 신뢰를 준 것이다. 사실 그렇다고 나는 어떤 일상적인 생활한계를 한번도 넘어 서 본 적은 없었다. 지난 14년간 우리들 서로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우리처럼 행복하게 산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외칠 정도로 원없이 살아왔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서로 상대방에 대한 태도와 자세에서 연유한 것일 것이다."

1916년 안나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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