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취업 생각을 하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되시라고 생각해서 퍼온 글입니다.
한국사람 많은 노스욕으로 오지 그래요 ...” “왜 그렇게 먼곳에서 일하세요? 교민 밀집지역으로 오면 비즈니스도 더 잘 될텐데 ...” 만나는 분들마다 한마디씩 하는 이야기다. 내 일터인 ‘어큐라 이스트 (ACURA EAST)’ 자동차 딜러십이 토론토에서 30여 km 떨어진 에이잭스에 위치하고 있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어큐라 이스트와 맺어진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1년 남짓 일자리를 얻기 위해 수없이 토론토 일대 자동차 딜러십 문을
두드렸지만 나에게 기회를 준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첫 일터인 이곳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일할 생각이다. 그리고 나에게 기회를 준세일즈매니저에게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어큐라 이스트에 내 책상을 갖게 된 것이 지난 2월15일. 이제 갓 5개월이 지나고 있다. 결혼과 함께 캐나다 땅을 밟은 것이 작년 3월이었으니 1년이 채 안돼 직장을 얻은 셈이다. ‘1년만에 취업을 하면 비교적 빠르게 자리잡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지만 나에게 지난 1년은 마음고생이 심한 나머지 10년처럼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처음 떠나올 때 느꼈던 캐나다에 대한 인상은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깨끗하고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란 정도였다. 막상 이곳에
살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넓은 땅덩어리는 새장 안에 갇힌 듯한 내게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낯선 길거리, 언어, 남의 옷을빌려입은 듯한 문화적 이질감 ... 한국에서 줄곧 직장생활을 했었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의식보다는 점점
비관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기후가 맞질 않는지 몸도 편치를 못했다. 그동안 매사를 밝고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왔기에 갑작스러운 변화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이러다가 여기서 인간적인 삶은 커녕 사람 성격 변하겠구나 ...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p>나는 남편에게 한국으로 가서 살자고 했다. 남편은 싫다고 했다. 설명하겠지만 남편은 캐네디언이다. 나는 “한국 가면 예전 직장에서 언제든 돌아오라고 했다”며 남편에게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사실 큰소리였을 뿐 나로선 답답함을 떨쳐버리기 위한 비명이었다.
돌파구로 취업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자리는 캐나다에서의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이었다. 교민신문에 난 ‘식당 웨이츄레스 구함’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기도 했다. “곧바로 일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으나 가지 않았다. 남편은 “왜 식당일이 어때서 그러느냐, 캐나다생활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포기하고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에 나 자신을 던지긴 싫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하는 말은 사실인가 보다.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면서 마음고생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민초기에는 대다수의 이민자들이 나와 비슷한 심리적 불안상태를 경험할 것이다. 한국인 이민자들 대다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 분야에서 남다른 경험을 가진 인재들 아닌가. 한사람 한사람 우수한 두뇌와 경력을 가진 사람들임에도 이땅에서 주어진 열악한 조건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30이 넘은 나이,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서도 나는 성숙하지 못한 생각과 태도로 불평만을 키워왔던 것이다.
앞을 편안하게 내다보고 살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까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취업에 달려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한국에서 한성자동차에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자동차 판매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벤츠자동차를 수입, 판매하는 한성자동차에서 ‘판매왕’에 선정되기도 했고, 여성 세일즈맨이 없었던 무렵 벤츠자동차를 한달에 12대씩이나 팔아치워 남자들보다 훨씬 우수한 실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기에 자동차 세일즈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취업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력서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인터넷을 이용해 이력서를 쓰는 법, 인터뷰하는 방법, 토론토지역 자동차 딜러십에 관한 정보 등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가끔 조금씩 틀리는 정보도 있긴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인터넷이 없는 상황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자기소개서는 커버레터로 쓰는 방식이 한국과는 달리 일과 관련된 나의 실제적인 능력과 관심을 나타내주는 것이 관건인데, 문제는 영어로 써야 하는 고달픔이 있다. 이력서는 한국처럼 정해진 양식이 있는게 아니라 내맘대로이긴 한 것 같은데, 각 웹사이트에 가니까 견본들이 있어 살짝 참고했다.
그리고 가장 까다로운 조건이 바로 캐나다에서의 경력. 한국계 이민자뿐 아니라 세계 각 나라로부터 온 이민자들이 한결같이 부딪히는 ‘캐나다 경력’ 조건은 이치에 맞지 않는 요구가 아닐 수 없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뛰어다니라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도대체 기회를 주어야 경력을 쌓을 텐데 말이다.
벤츠의 기업정신과 벤츠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론토 벤츠로부터는 깨끗하게 거절당했다. 벤츠는 본사에서만 직원을 뽑기 때문에 각 딜러십 문은 두드릴 필요도 없었다. BMW는 토론토 일대의 딜러십에 모두 이력서를 보냈다. 그리곤 마냥 기다릴 수만 없어 매장에 무작정 세일즈매니저를 만나러 간 일도 있다. 물론 이력서를 받았는지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정식 인터뷰를 기대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어떤 경우든지 예약과 약속을 미리 해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저돌적으로 부딪히고자 했던 이유중에는 한편 적극적이고 강한 나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은 의도도 깔려 있었다. 잘한 일이었는지 잘못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 BMW 타운 앤드 컨추리 매장 세일즈매니저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캐나다에서 일한 경험이 없음을 다시한번 들어야 했다. 미리 준비했던 답변들은 그냥 머릿속에서 뱅뱅 돌고 있었다. 난 그저, “I understand...”라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높은 취업장벽을 재차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좌절감만 맛본 건 아니었다. 그렇게 부딪히는 과정에서 막연한 두려움을 조금씩 벗고 반대로 오기와 자신감이 생겨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무렵 ‘못 먹어도 Go!’라는 말이 내게는 너무도 절실했다. 한국에서는 영어 좀 한다는 소릴 듣던 나였고 뭐든지 하면 중간 이상은 간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음에도 언어문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매니저들과 말 한마디를 하려면 생각부터 먼저 해야했다. 내가 하고싶은 말을 속시원히 쏟아놓지 못할 때, 34살 상식을 갖춘 지성인으로 자부해왔던 나의 모습은 그순간 온데간데 없었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은 통한다고. 누군가는 나의 이 정열과 성실함, 자신감을 읽어줄 거라고. 비록 말은 서툴더라도 진실은 통할 거라고 말이다. 여행으로 잠깐 다니러 와서의 느낌과 막상 이렇게 살러 와서의 느낌이 이리도 다를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지난 겨울은 참 춥고 눈이 많이도 왔다. 그동안 열심히 신문, 인터넷 등을 뒤져서 팩스와 우편으로, 또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이력서를 보냈다. 그 많은 이력서들은 지난 겨울 내린 무심한 눈에 묻혀버린 듯 아무런 메아리도 없었다.
드디어 한 군데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큐라로부터 온 인터뷰 요청전화였다. 어큐라 웹사이트를 다시 찾아 추가정보를 입수하고, 딜러십 위치와 상황을 좀더 면밀히 검토했다. 시아버지가 현재 타시는 차가 어큐라 TL임을 인터뷰할 때 넌지시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질문을 받기만 하진 않으리라. 내가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도 미리 생각을 해두기로 했다. 잊지 말자. 나 자신다울 때가 가장 좋은 거다.
어큐라 이스트의 세일즈 매니저는 인터뷰 마지막에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기 코끼리가 한마리 있다. 당신은 이걸 가지고 무얼 하겠는가?” 나의 대답은 “코끼리 등에 올라가 실컷 타고 즐겁게 놀 것이다”였다. 순간 그의 반응은 “ ...으음”. 나는 “어떤 대답을 기대했는가” 하고 물었다. “I would like to sell it!” 여기서 그냥은 물러설 수가 없어서 나는 궁색한 변명을 한마디
덧붙였다. “타보고 즐겨야 제품을 알 수 있고, 그래야 팔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 전에는 질문을 잘 못알아 들어서 Pardon Me를 네번이나 되풀이했다. 아, 물 건너간 어큐라인 것 같았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온 뒤 인터뷰 기회를 준 것에 고맙다며 감사카드를 세일즈매니저 앞으로 보냈다.
그 뒤로 또다른 딜러십에서의 몇차례 인터뷰. 역시 같은 반응. 캐나다에서의 경력이 없군요!
2월 13일. 20일 전 인터뷰했던 어큐라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좋은 느낌! 다시 만나길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잘 해보자고
다짐했다.
이틀후 세일즈매니저는 취직이 됐다며 월요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그리고 기다렸던 첫 출근날, 어처구니 없게도 난 무려 8시간이나 지각을 하고 말았다. 이 세상에서 그렇게 심하게 지각하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아침 9시에 출근하라는 말을 왜 오후 5시로 알아들었을까.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도록 세일즈매니저는 내 거취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었다. 견습기간 3개월 동안에는 얼마든지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에 대해 세일즈매니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잘 하고 있는건 아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대답했다. 솔직한 대답이면서 용기를 주는 말이었다.
매니저가 오픈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5개월이 지난 요즘 매장 직원들끼리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격의없이 지낼 수 있게 된 것도 사람을 믿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그의 배려 덕분이다.
한번은 지나가다가 서비스담당 매니저가 세일즈매니저에게 “너, 해리를 왜 뽑았는지 궁금하다”고 묻는 것을 들었다. 평소 옷차림이 깔끔하고 예쁘다고 말해오던 사람이라 그 질문은 “너 옷입은 모습이 예뻐서 해리를 뽑은 건 아니냐?”고 묻는 것으로 들렸다. 나는 허락을 얻고 대화에 끼어들어 “나도 그것이 알고싶은데 이야기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말은 이랬다. “처음 인터뷰를 할 때 약간 호감을 느끼긴 했지만 이력서를 한켠으로 밀어놓았었다. 그런데 며칠후 감사카드를 받고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 사람은 고객 관리도 이렇게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
사실 Thank You Card를 보낸 건 그에게만이 아니었다. 인터뷰를 하고난 후엔 항상 감사카드를 보냈다. 하지만 아무에게서도 연락이 없었는데, 그 카드가 주효했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지하고 정성어린 태도는 언젠가는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취업 도전에서 숱한 좌절을 맛보았던 나로서는 처음 어큐라에 취직했을 때 거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했었다. 그때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세일즈매니저는 “아직도 그때의 느낌을 갖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물론이다”라고 힘주어 대답했 .
어느 분야든 세일즈는 만만한 것이 없겠지만 자동차를 판매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드물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해진 가격대로 판매하는 한국과 달리 딜(Deal) 하는 과정이 까다로운 캐나다에서 자동차를 파는 일은 고도의 협상능력을 요구한다. 자동차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아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짚어내서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툭 던짐으로써 강한 구매동기를 갖게끔 유도하는 일은 수준높은 비즈니스 기법이다.
고객 대다수가 캐네디언인 까닭에 밀고 당기는 그 과정들을 모두 영어로 해야 한다는 사실은 속된 말로 ‘머리에 쥐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 세일즈가 단순히 영어만 잘해서는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전화로 상담하는 일도 어려운 업무중 하나다. 동료 세일즈맨이 고객과 통화하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무엇이 진짜 영어인지를 느낄 때가 많다. 그것은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쓰는 영어나 이웃사람과 가볍게 주고받는 대화, 집에서 남편과 나누는 대화하고는 또 달랐다. 협상력이 뛰어난 세일즈맨의 영어는 때때로 녹음을 해서라도 익히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캐나다에서의 직장생활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고객을 찾아서 고군분투하는 한국에 비하면 매장에서 기다리면서 찾아오는 고객을 맞으면 되는 이곳의 판매는 수월한 편이다.
한국에서 수입자동차는 수요층이 한정돼 있기에 고객층을 정확하게 잡는 것이 어렵고도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고객을 찾아 무작정 발품을 팔며 한달내내 단 한대의 차도 팔지 못한 채 보낸 적도 있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외제차를 젊은 여자에게 구입한다는 고객들의 불안감도 극복해야 할 장벽이었다. 자동차에 대해 무지했던 터라 입사후 한달간 정비공장에서 집중교육을 받고나서야 자동차의 기계적인 구조를 비롯, 사람들이 원하는 자동차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체계적인 연수과정은 캐나다에 와서 일하는 지금까지 적지않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이민자로서 한국말을 한다는 것이 오히려 지금은 커다란 장점이 되고 있다. 한국일보에 광고를 낸 이후 한인 고객이 특히 눈에 띄게 늘었다. 이것은 또한 딜러십에서의 내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고 있는데, 동료 세일즈맨들이 고객이 없어 놀고 있을 때에도 나는 한인 고객들의 전화문의, 상담 등으로 분주하게 보내는 편이다. 세일즈매니저도 나로 인해 새로이 늘어난 한인 커뮤니티의 고객들을 보고 매우 기뻐하는 눈치다.
토론토 동쪽에 위치한 어큐라 이스트를 찾는 한인 고객들은 나 때문에 오는 분들이고, 내가 아닌 외국인 세일즈맨과 거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것이 매장에서 나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든든한 힘이 되고 있기에, 나 역시 한인고객을 위해 최선의 봉사를 아끼지 않으려 노력한다.
말이 나온 김에 자동차를 구입할 때 한인들이 겪는 불편을 지적하고 싶다. 캐나다에서는 자동차 구입단계에서 협상을 할 때 고객의 권리와 요구사항을 조목조목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 ‘필요한 것은 세일즈맨이 알아서 다 챙겨주겠지’ 하는 식의 기대는 나중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길 경우 세일즈맨들은 한결같이 “그것은 당신이 안물어보지 않았느냐”, “그 점은 따로 요구하지 않았잖느냐”는 식으로 책임을 고객에게 전가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려면 별 수 없이 무슨 일을 하나, 어디를 가나, 특히 돈이 관련된 중요한 일이라면 미심쩍은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물론 영어로 말이다. 그런 점에서 가능하다면 한인업소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고, 한인업주들도 서로 돕고 신뢰할 수 있는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이민생활에 빨리 적응하는 비결. 내 경우 그것은 일을 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된 점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산 경험을 비즈니스 현장에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돈을 주고도 배우기 힘든 것들이다. 요즘에는 ‘영어로 잠꼬대를 할 정도로’ 영어 역시 하루하루 발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장이라는 동전의 뒷면에서 스트레스가 내 의식을 짓누를 때도 있지만 그것은 새로운 삶에 뿌리내리기 위해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경제적인 자립 역시 이민생활에 매우 중요한 안정조건임에 틀림없다. 처음 이민을 올 때만 해도 나는 “아껴서 쓰고 줄여서 쓰면 되겠지” 하고 쉽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와서 살아보니 렌트비, 모기지, 자동차 보험료 등으로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있고, 아무리 아껴쓰려 해도 한 가구당 3천달러는 족히 쓸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음 한동안은 어이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직 아이가 없이 남편이 함께 버는 내 입장에도 그러한데, 아내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집안에 묶이고 남편 혼자 벌어야 하는 많은 가정들의 경우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밝힌대로 남편 크리스 파커는 캐네디언이다. 서울의 한 외국인 고교 교사로 한국에 왔다가 94년 내가 한성자동차에 근무할 무렵 회사의 파트타임 영어강사로 위촉돼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 웨스턴 온타리오대학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한 그는 처음 사귈 무렵만 해도 사업쪽으로만 관심이 많았는데 나를 만나면서 인생의 방향이 약간 바뀐 셈이 됐다고나 할까.
그는 한국,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면서 적지 않은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했다. 다소의 우월의식을 지녔던 전형적인 백인남성의 의식에서 동양문화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남자로 바뀐 것이다. 그의 이같은 변화는 ‘백인이 인디언에게 저지른 행위는 죄악’이라고 강조했던 조부의 영향을 받은 탓도 적지 않다.
나는 정말 일할 수 있게 된 지금이 좋다. ‘자동차는 여자가 팔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나를 채용했던 한성자동차 사장님을 잊을 수가 없다. 그후 남자들이 한달에 벤츠차 4대를 팔 때 12대를 팔아치움으로써 나를 뽑아준 은혜를 갚았듯이 어큐라 이스트에서도 그런 기회를 갖기를 나는 희망한다.
나는 고정관념을 깨는 여자가 되고 싶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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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K&K 강남 작성시간 09.01.22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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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스파르탄 작성시간 09.02.03 어큐라 차량이 어떤차인지가 궁금해지네요... 지금 여기는 한국인데요... 캐나다에 관심이 있어서 이렇게 수시로 들어와서 보고 있습니다... 외국이란곳은 참 힘든곳이네요... 하지만 저 역시 새로운 도전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글쓰신분..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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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ji339 작성시간 09.02.06 고정관념을 깨는 여자!!! 이분처럼 여자든 남자든 우리 모두 도전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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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히일 작성시간 09.02.06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도 좋은일만 있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