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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필

기억 붙들기

작성자고영종|작성시간26.06.23|조회수27 목록 댓글 0

기억 붙들기

고영종

  아버지와 저녁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요즘 우리의 식사는 밥보다 기억이 먼저 오른다.

  “과수원에 언제 농약을 쳤는지 아세요”

  “글쎄, 지난주 수요일인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기억이 흐려져 틀리게 말을 할 때가 많은데 오늘은 맞는 대답이다. 아버지의 기억이 잘 소환되어 다행이다.  

  구순을 넘긴 아버지의 기억은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다. 처음엔 그저 건망증쯤으로 여겼다. 흘러내린 기억을 모래시계처럼 뒤집어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 모래를 붙들고 싶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 묻는다. 아버지와 식탁에 앉아, 기억 붙들기 연습을 하는 것이다.

  팔월 초하루를 앞둔 토요일, 가까운 친족이 모여 가지 벌초를 하기로 했다. 아버지께 이제는 벌초는 쉬셔도 된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말씀하셨다.  

  “부모 묘소는 내가 해야지.”

  그 말에는 조부모님을 향한 변함없는 효성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의 의지를 도저히 막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친족들은 흩어진 선영先塋을 돌며 벌초를 하고 나서, 오후 한 시쯤 마중 오름에서 아버지를 만나 그곳에 모셔진 조부모 묘소를 마지막으로 벌초하기로 약속했다.

  흩어져 있는 선영 벌초를 마치고 마중 오름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 아버지는 없었다. 조금 늦겠거니 생각하며 벌초를 끝내고 아버지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봤지만 신호음만 울릴 뿐이다. 어머니께 전화해 보니 아버지는 오전 일찍 벌초하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고 했다. 우리가 기다린 시간도 두 시간이 넘었으니 아버지는 예닐곱 시간이나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기다림은 점점 불안으로, 불안은 공포로 번졌다. 모두가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오름 주변과 숲속을 속속들이 찾아봤지만 아버지는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아버지! 어디 계세요”

  바람만이 내 목소리를 날리며 스쳐 지나갔다. 해가 기울고 가슴이 점점 내려앉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고 119에도 구조요청을 했다. 마중 오름에 도착한 119 구급 대원들은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해 아버지 현재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멀리서 아버지가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시울만 붉어졌다.

  응급구조사가 다가가 상태를 살피려 하자 아버지는 손을 내저었다.

  “나는 멀쩡하니 걱정 말아요.”

  그 말속에는 길을 잃은 사람의 당혹보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깊게 담겨 있었다.

  나중에 조심스럽게 그날의 일을 여쭤보았다. 아버지는 조부모 묘 벌초를 하고 나서 그곳에서 우리를 몇 시간이나 기다렸다고 했다. 아뿔싸, 남의 묘를 조부모 묘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길을 잃어서 가족들을 애태운 적이 종종 있다. 혼자 밭을 둘러보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길을 못 찾고 헤매다 밤늦게 들어오기도 하고, 운전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이십여 분 거리를 한두 시간이나 걸려 도착하기도 했다.

  어떤 순간, 아버지는 또렷하게 빛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세월의 주름이 남아있는 굽은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릴 때면 눈빛이 달라진다. 한 문장 또 한 문장이 이어질수록 나는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젊은 시절 신문에 연재소설을 쓰기도 했고, 동화책도 내기도 했었다. 그때 모습으로 돌아간 듯,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또렷한 정신으로 삶을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길을 더 오래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체될 뿐이지 결국은 돌아온다. 기억이 흐려져도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어떤 비결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인지, 태생적 귀소 본능인지, 올곧게 살아온 영혼의 힘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요즘 나는 아버지와 더 자주 마주 앉는다. 길을 나선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아버지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들이 하나둘 사라져 가는 안타까움에 오늘도 기억 붙들기 대화를 시도한다.

  “증손녀 이름이 뭐예요?”
  “소윤이.”

  “제가 몇 살인지 아시죠?”
  “은퇴했으니…, 예순다섯 되었나.”

  아버지는 잠시 머뭇거리다 곧잘 대답한다. 그 사실이 고맙고, 또 가슴이 시리다. 다시 어떤 기억의 조각을 다시 불러낼까 질문을 궁리한다. 내 생각을 눈치챈 듯, 멋쩍게 미소 짓는 아버지와 마주 앉은 이 순간이 바로 행복이다.(2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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