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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필

말이라는 것

작성자고영종|작성시간26.06.13|조회수35 목록 댓글 0

말이라는 것

고영종

  어릴 적 아버지 말씀이 생각난다. “말이 곧 씨가 되니 함부로 뿌리면 안 된다.” 그때는 말이 어찌 씨앗이 되어 자란단 말인가 싶었다.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에 뿌리내려 싹을 틔운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서귀포로 출퇴근하던 삼십여 년 지난 일이다. 제주시 버스 터미널에서 서귀포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비를 넣으려는 데 운전기사가 나를 보더니 요금 통을 손으로 가리며 그냥 타라고 한다.

  “저 모르시겠어요?”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아 당황스러웠다.

  “동려야간학교 다녔던 J입니다.”

  “아, J구나.”

  때마침 운전기사 뒷좌석이 비어 있어서 앉았다. 오래된 기억이 스냅 사진처럼 되살아났다. J를 만난 것은 1980년 봄 동려야간학교에서이다. 키가 자그마하고 체격이 왜소해 항상 눈이 가던 학생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죽지 않고 밝게 수업받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물 수집 일을 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낮에는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고 밤에 야간학교에 다녔다. 나는 J의 집안 사정을 잘 아는 터라 각별하게 신경을 쓰며 검정고시 공부를 도와주고 있었다.  

  야간학교는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검정고시 공부를 도와주는 비정규학교였다. 당시 제주도 내 대학에는 같은 길을 가는 나그네라는 뜻을 가진 교육 봉사 동아리 동려회同旅會가 조직되어 있었고, 뜻있는 대학생들이 동려회에 가입하여 야간학교에서 교육 봉사를 했다.

  J가 나흘째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선 걱정이 앞섰지만 대학이 중간고사 기간이라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고물 줍는 일을 하는 할아버지를 도와드리느라 가끔 학교를 빼먹은 적이 있었기에, 며칠 더 기다리면 학교에 나오리라 믿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J가 세 들어 사는 집에 찾아갔다. 한쪽 다리를 다쳐서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힘겹게 방문을 열고는 초췌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손자의 행방을 여쭤보았으나 일주일째 무소식이라며 노심초사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둘러 경찰서에 가출 신고를 하고, 갈 만한 곳을 구석구석 찾아다녔으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서너 달이 흘러 야간학교 학생들과 새 학기를 기약하며 겨울방학을 맞았다. J도 할아버지 곁으로 무사히 돌아올 거라 믿으며 머릿속 걱정을 애써 지워버렸다.

  당시 동려야간학교는 시청에서 사용하던 자재 창고를 무상으로 빌려 사용하고 있었다. 노후한 창고라서 지붕에서 비가 새고 허름한 창문으로는 비바람이 들이쳐 교실 바닥이 물바다를 이루는 게 다반사였다. 동려회 회원들은 겨울방학을 맞아 학교 지붕과 창틀을 보수하느라 며칠째 매달리고 있었다. 보수 작업이 끝날 무렵에 J가 할아버지와 함께 학교에 나타났다.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며 고물을 줍다가 쓸만한 책장을 발견하고 손수레로 운반해 온 것이었다.

  “학교에 필요할 것 같아서….”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처분을 기다리는 J를 보니 반가움보다 야속한 감정이 앞서 말을 건네는 게 쉽지 않았다. 일부러 무심한 척 한마디를 툭 던졌다.

  “힘들었지. 개학하면 학교에 나와 검정고시 열심히 준비하자.”

  그 순간 눈물을 머금고 있는 J의 눈에는 굳센 다짐이 서려 있었다. 새 학기가 되자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말수가 줄고 매사에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한번 책상 앞에 앉으면 엉덩이가 빨판이 된 듯 의자에 붙어 몇 시간씩 일어설 줄을 몰랐다. 눈빛은 비장함이 묻어났고 공부하다가 코피를 쏟기도 했다. 그해,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공업계 고등학교 입학시험에도 합격했다. 병환 중인 할아버지는 학비를 감당할 처지가 안되었기에 동려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다.

  J는 서귀포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할아버지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시자 계속 학업을 이어 갈 형편이 못 되어 자퇴하고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도전하여 합격했다. 그 후 신문 배달을 일 년쯤 하고 전문대학에 진학하여 관광 안내 자격과 대형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였다. 졸업한 뒤에는 버스 회사에 취업하여 동료로 근무하던 아내를 만났고, 귀여운 딸의 아버지가 되었다. 가족이 생겨서 너무 행복하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문득 동려야간학교 교훈이 떠올랐다. ‘태양이 아니면 호롱불이라도 되자’이다. 온 세상을 비춰 주는 사람은 못될지라도, 호롱불처럼 한 사람의 밤길을 비추어 주는 사람이라도 되자는 뜻이다. 아마도 야간학교는 J의 앞길을 비춰 준 호롱불이었을 것이다. 이제 어른이 된 J는 한 가족의 호롱불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검정고시 열심히 준비하자’라는 선생님 말씀을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덕분에 제가 이렇게 반듯하게 살아갈 힘이 생겼습니다.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의 말을 몇십 년 동안 잊지 않고 있다니 놀라웠다. 새삼 나의 말투를 되돌아보았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습관, 금방 후회하는 마음과 다른 건조한 말, 정리되지 못하고 마무리하는 말, 공감 시킬 줄 모르고 설득하려 애쓰는 말 등등.

  한때 나는 말이 단지 의사소통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면서 깨달았다. 말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누군가를 따뜻하게 감싸안기도 하고 깊은 상처를 내기도 하며, 마음속에 오래 머문다는 것을. 나의 한마디가 상처가 아니라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조심스레 말을 고른다.(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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