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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필

목마가렛

작성자고영종|작성시간26.06.14|조회수21 목록 댓글 0

순백의 꽃

고영종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멋진 정원 만들기를 시작했다. 집 둘레 우영팟에 단감나무, 옥매화, 배롱나무 묘목을 심었다. 그 소식을 듣고 꽃 농장을 하는 친구가 금잔화, 꽃잔디, 능소화를 가져와 심어주었다. 오일장에서 구입한 목마가렛은 올레 중간에 터를 잡았다. 작년에 심었던 꽃모종들이 겨울을 견디고 새봄이 되자 제각기 색을 뽐내며 꽃을 피워냈다.

  봄을 터트리듯 피어난 꽃들 사이에 목마가렛 하얀 꽃송이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각양각색 꽃들 사이에서 유독 그 순백의 꽃이 내 눈길을 붙들었다. 목마가렛은 구절초나 쑥부쟁이와 닮아 꽃 모양으로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 모두 국화과 식물이라 꽃 모양이 서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쑥갓을 빼닮은 이파리를 보면 나는 금세 알아본다.

  J중학교에 재직할 때이다. 월요일 아침이면 일주일을 시작하는 다짐을 선생님들에게 메시지로 보내곤 했다. 어느 날, 학교 화단에 하얗게 핀 목마가렛을 보다가 한 아이가 써온 시를 떠올리며 마음를 보냈다.

 

창가에 아름답고 눈에 띄는 꽃송이/ 꽃송이는 어쩜 저리 순백같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 꽃송이가 되어서 몸도 마음도 아름다워지고 싶다/ 꽃송이가 되어 눈에 띄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보육원에서 지내는 K군의 ‘꽃송이’라는 시입니다. 말이 없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가끔 말썽을 부려 속상하기도 하지만 봄 햇살처럼 여린 감성을 가졌습니다. 담백하게 써 내려간 K군의 바람처럼, 우리 아이들이 순백의 꽃으로 피어나도록 칭찬과 격려로 관심과 사랑을 보여줍시다.-

 

  J중학교 학생들은 대체로 심성이 곱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만, 몇몇 아이들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서툰 방식으로 엇나가곤 했다. 그들에게 훈계나 벌보다 따뜻한 칭찬과 격려 한마디가 아이들을 달라지게 한다는 걸 수없이 보아 왔다.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하얀 꽃송이처럼 올곧게 자라나는 것이다. 어쩌면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을 더 잘 보살피라고 운명처럼 교사의 길에 서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학교 현관에 이런 글귀가 걸려 있다. ‘선생님은 흩날리는 이슬도 영롱하게 빛나게 하는 풀잎이고, 흐르는 바람도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갈대입니다.’ 그 의미를 다시 곱씹어 본다.

  집이나 학교에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자존감을 지닌 채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교무 수첩을 뒤적이다가 ‘하루에 세 명 학생에게 칭찬과 격려를 하자.’라고 적어둔 나만의 약속을 발견했다.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날들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걱정되었다. 혹시 또 하나의 문자 공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교직원이 백여 명에 이르는 큰 학교이다 보니 메신저에서 하루에도 수십 건의 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그 속에 묻힌 내 문자 메시지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지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매주 월요일마다 진심을 담아 보냈다. 어느 날, Y선생님의 답글을 받았다.

 

“매번 보내 주신 메시지를 읽으며 월요병이 사라졌습니다. 즐겁게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메시지에 감동하기도 하고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습니다.”

 

  짧은 글이었지만, 읽는 순간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작은 마음 하나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

  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주장한 생물 심리학자 페히너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목소리로 서로를 알아채듯이 꽃들은 향기로서 서로를 알아채며 대화한다. 꽃들은 사람보다 훨씬 우아한 방법으로 서로의 관심을 확인한다’라고 했다. 식물이 서로의 관심에 반응하듯, 사람도 관심이라는 자양분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간다.

  한자로 사람인(人) 자는 비스듬히 기운 한 획을 다른 한 획이 받쳐 주며 함께 서 있는 모습이다. 사람은 홀로서기보다 서로 기대고 받쳐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인듯싶다. 문득 종이에 ‘삶’이라 써 놓고 바라보니, 그 글자 속에도 사람이 숨어 있었다. 나의 상상력이 더해진 무주의 맹시 현상인지, ‘삶’에서 겹받침 ‘ㄻ’을 빼면 ‘사’가 보이고 초성 ‘ㅅ’을 가리면 ‘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삶은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들에 피는 야생화도 낮에는 햇빛을 쪼이고 비바람도 맞으며, 밤이면 이슬을 불러들이고, 별 과도 눈 맞춤하며 기운을 얻고 살아간다. 사람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주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교감하고 반응하는 만물 조응, 그게 삶의 이치가 아닐까.

  올레에 자리 잡은 목마가렛이 눈부시게 꽃망울을 터트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하얗게 웃는다. K군의 시가 떠오른다. 꽃송이가 되어 눈에 띄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던 그 아이의 바람처럼, 모든 아이들이 세상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라나, 순백의 꽃으로 피어났으면 좋겠다.(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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