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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필

솔방울

작성자고영종|작성시간26.06.16|조회수18 목록 댓글 0

솔방울

고영종

  공직을 내려놓은 친구들이 자연을 벗 삼아 걷자고 했다. 올레길을 따라 걷고, 오름을 오르며 남은 생을 나누자는 약속이었다. 화려한 백수들의 만장일치, 우리는 그 모임을 ‘화백회의’라 불렀다. 첫걸음은 가장 늦게 은퇴한 나를 위한 자리였다. 내 고향 마을의 새오름을 함께 오르기로 했다.

  새오름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 널리 알려진 제주의 숲길 명소다. 그곳에는 유독 소나무가 많다. 초등학교 시절, 산림녹화 사업에 동원되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심었던 소나무들이다. 긴 세월 동안 오름의 정기를 받으며 자란 나무들은 제주 전역에 번진 재선충병에도 굴하지 않고 숲을 지켜냈다. 그 자그마하던 묘목이 이제는 아름드리 큰 나무가 되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등반로 곳곳에 솔방울이 떨어져 나뒹군다. 앞서 걷던 친구 하나가 솔방울을 주워 들고는 비늘을 유심히 살핀다. 나도 무심코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잠시 후 친구가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진짜 열셋이네.”

  자연을 닮은 수열, 피보나치수열은 처음 두 항이 1과 1이고, 그다음부터는 앞의 두 수를 더해 이어진다. 1, 1, 2, 3, 5, 8, 13, 21, 34, 55…. 솔방울 비늘은 나선형으로 붙어 있는데, 그 나선의 개수가 8이나 13처럼 이 수열과 숫자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자세히 살펴보니 나선이 오른쪽으로 여덟 개, 왼쪽으로 다섯 개였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자연을 닮은 수열’이 문득 되살아났다. 사십여 년이 지나 솔방울 하나에서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일까 싶어 몇 개를 더 집어 들고 세어 보았다. 드물게 수열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비늘이 비틀리거나 제대로 자라지 못한 흔적이 남아 있어 변이變異로 보였다.

  꽃잎의 개수는 또 어떨까. 백합은 한 장, 등대풀은 두 장, 붓꽃은 세 장, 채송화는 다섯 장, 코스모스는 여덟 장, 금잔화는 열셋, 치커리는 스물하나…. 수많은 식물의 꽃잎이 피보나치수열을 닮아 있다. 클로버는 세 잎이 정상 형태인데 네잎클로버를 찾아내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피보나치수열에 어긋나는 돌연변이로 극히 드물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해바라기 씨앗이나 파인애플의 눈을 꼼꼼히 살펴보면 나선형으로 되어 있으며, 그 나선 수는 피보나치수열의 숫자와 맞아떨어진다. 식물은 생장점에서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내는데, 이때 생겨나는 조직, 즉 원기는 중심에서 일정한 각도를 이루며 자라난다. 이른바 황금각(≒137.5°) 방향이다. 그 결과 나선형 배열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배열은 비바람으로부터 씨앗을 보호하고, 제한된 공간에 더 많은 씨앗을 담기 위한 자연의 전략일 것이다. 종족을 이어가기 위한 효율의 극치다. 드물게 이 질서를 따르지 못하면 변이 현상이 발생하여 나선 모양이 흐트러지는 것이다. 겉보기에 평범한 자연 속에 이처럼 놀라운 수학이 숨겨져 있다. 식물의 DNA에 어떻게 이런 정교한 정보가 숨어 있다가 발현되는 것인지 경이롭기만 하다.

  나무의 가지를 일정한 높이로 나누어 살펴보면, 위로 갈수록 1, 2, 3, 5, 8, 13∙∙∙처럼 점점 많아진다. 햇빛을 골고루 받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스스로 균형을 맞춘 결과다. 올봄에 귤나무를 가지치기 하고 나서 살펴보니, 피보나치수열과 유사하게 가지가 뻗어 있는 게 아닌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내 손길 또한 자연의 이치를 조금은 닮아 있었던 셈이다.

  자연은 나름의 질서를 지니고 가장 알맞은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누구의 가르침이 없어도 생명을 지키고 종족을 이어가기 위해 스스로 길을 찾아온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질서야말로, 보이지 않는 자연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하나의 징표인지도 모른다. 자연을 닮은 수열은 우연히 발견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알아내기 위한 오랜 관찰과 몰입 끝에 드러난 비밀인 것이다.

  오름을 내려오며 솔방울 몇 개를 더 주워들었다. 사람들의 발길에 차이며 굴러다니는 작은 솔방울에도 태어나고 존재하며 소멸해 가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유심히 보니 그 색 또한 자신이 자란 흙과 닮아 있다. 황토에서 자란 것은 황토색을, 흑갈색 흙에서 자란 것은 흑갈색을 띠고 있다. 자연의 섭리대로 세상에 나와 살다가 결국 자신에게 자양분을 내어준 흙의 색깔이 되어 자연으로 회귀回歸하는 것이다.

  문득 옛 성인의 말이 떠오른다. ‘하늘을 따르는 자는 살고,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順天者存 逆天者亡]’ 사람의 일 또한 자연의 순리를 따를 때 비로소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닐까. 손바닥 위의 솔방울을 내려다본다. 맏사위네 카페에 자리 잡은 억새 옆에 놓이면 운치가 있을 듯하다.(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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