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낸 그곳에 사랑이 있었다
고영종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 뒤, 집안은 굴뚝 연기 빠져나가듯 온기가 사라져 허전함이 맴돌았다. 홀로 계신 어머니는 허전함을 달래느라 과수원 일구는 일에 매달렸다.
몇 해 전, 어머니는 고관절 수술을 받고 두 달을 병원에서 지냈다. 자식들이 번갈아 간병을 하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나자 어머니는 자식들을 모아놓고 입을 여셨다.
“이제부터 간병인을 쓸 테니 그리 알거라.”
자식 고생시키기 싫다는 이유였다. 어머니의 완강한 고집을 아는 터라 그 말을 받아들였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어머니가 평생을 지켜온 삶의 방식이었다. 가족에게 사랑을 주되, 짐이 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언젠가 입원실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어머니의 간병인이 내가 간식으로 사다 드린 과일을 깎아 어머니께만 내놓았다. 그때 어머니는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간병인을 나무라셨다. 왜 옆 병상 환자들에게 나누지 않느냐고 먼저 가져다드리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간병인은 머쓱해져서 얼굴이 붉어졌다고 했다. 몸은 허약해 있던 때였지만, 마음은 여전하셨다. 어머니께서 이웃에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일은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선택이 아니라, 힘들 때에도 놓지 않는 태도였다.
과수원에 나가면 어머니는 여전히 나를 가르친다. 내가 농약을 치고 나면, 어머니는 뒤따라 다니며 빠진 곳은 없는지 다시 살핀다. 가지치기를 할 때도 하나하나 짚어 준다. 나도 어느새 육십을 훌쩍 넘겼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여전히 서툰 자식인가 보다. 그런데도, 그 시선이 싫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고 있다는 안도감마저 느낀다.
수술 후, 거동이 어려운 어머니는 기저귀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사용한 기저귀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스스로 그것을 벗어 감추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자식에게조차 보이고 싶지 않았던 마지막 체면, 어쩌면 그것은 품위의 또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어머니는 평생을 부끄러운 모습은 자식에게조차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오셨다는 것을 알아챘다.
어머니는 육십 년이 넘는 긴 세월을 아버지와 함께 했다.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치매로 인한 섬망 증세를 심하게 겪고 있다. 요양원으로 모시기 전에는 어머니가 간병을 도맡았는데, 아버지는 물컵을 찾고, 먹을 걸 달라 보채고, 창문을 열어라 닫아라 하며 수시로 어머니를 호출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어린아이 달래듯 아버지 곁으로 달려갔다. 힘든 간병 생활에도 얼굴 한번 찌푸린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입이 무거워 ‘고맙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않았지만, 말 없는 눈빛과 행동으로 마음을 전하곤 했다. 어머니는 그 침묵까지도 감싸안으며 불평 없이 지금껏 살아오셨다.
하루는 요양원에서 외출 허가를 받아 아버지를 집에 모시고 왔다. 어머니 혼자 계실 때는 입맛을 잃어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를 마주하자 생기를 되찾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푸짐하게 밥상을 차리고 아버지께 떠먹여 드리며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집에 오니, 의지가 되고 상차림도 힘들지 않다.”
그 말속에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묻어 있었다.
재활치료 시간에도 어머니는 달랐다. 치료사가 십 분 정도만 걸으라고 하면, 어머니는 그 두 배를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더 걷겠다고 나섰다. 그 모습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처럼 보였다.
가족과 이웃에게 한없이 베풀면서도, 자신에게는 늘 인색했던 어머니. 살림을 일구고, 시간을 아끼고, 마음을 다듬으며 살아온 그 깊고 단단한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자신을 하나씩 덜어내며 살아온 어머니를 가슴으로 불러본다. 어머니, 당신이 비워낸 그 곳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202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