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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인상(印象)을 넘어 인성(人性)으로 - 이천승

작성자허현|작성시간15.05.29|조회수130 목록 댓글 0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성형술의 발달로 자신의 여건과 선택에 따라 몸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의 성형술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며 성형수술을 위해 입국하는 관광객도 상당수일 정도이다. 굳이 성형이 필요 없는 사람들조차 연예인과 같은 수준의 외모를 원하고 비슷비슷하게 닮아간다. 이제는 취업 경쟁에서 외모가 주는 인상(印象)까지도 경쟁력이 된다고 믿는 사회이다.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한 인상은 단순히 외모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의 이력에서 드러난 좋은 스펙도 우선적인 관심의 대상이다. 청년들이 외부에 비춰지는 자신의 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쏟아내는 속내는 처절할 정도이다. 그러나 문제는 외부의 시선에 맞춘 인상만이 모든 것을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상은 물론이고 인성(人性)이라는 해묵은 복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똑똑한 재능에 따뜻한 인간미까지 보여 주어야 하는 이중고에 직면한 것이다. 마냥 따라가기 바쁜 취업 준비생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인재를 뽑는 마지막 관문에서 도덕성의 결함으로 낙마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도덕성을 뜻하는 인성이 실력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나 정작 인성이 무엇인지를 꼬집어 말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인성은 사람의 성품이나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및 행동 특성을 말한다. 개인이 지닌 독특한 성향을 찾는 동시에 공동체를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뜻한다. 정직하고 책임을 다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등 많은 덕목이 제시된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개인과 사회를 구분하고 효용의 극대화를 추구하려는 생각의 연장에 불과하다. 공동체의 일부로서 개인을 바라보는 동양적 사유와는 거리가 있다.
우리 문화의 주요한 기반이었던 유학의 관점에서 인성은 인간의 내면에 갖추어진 확고불변한 본성이다. 그 길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밑그림이자 세대를 거쳐도 변함없는 정신적 DNA로 간주되었다. 회피할 수 없는 그 길을 따라 사는 것이 사람다움의 실천을 위한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그 길이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덕목으로 구체화된다. 주자는 ‘소학제사(小學題辭)’의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소학의 정신을 요약하여 말한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의 일정함(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의 강령(人性之綱)이다.”
자연계의 운행에 일정한 질서가 있듯이, 자연의 일부로서 사람의 본성에도 인의예지라는 도덕성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도덕성은 후천적 학습을 통해 형성된다고 배운 사람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말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지닌 인의예지의 덕성에 대한 신뢰는 공자와 맹자를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내려온 유학계의 불문율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차마 견디지 못하는 마음, 자신이나 타인의 잘못된 행위에 수치를 느끼는 정서, 독식하지 않고 사양하거나 양보하려는 자세,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인간다움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모든 덕목의 시작이자 상황에 따라 다른 덕목을 포괄하는 마음이 바로 인(仁)이다. 따라서 유학적 소양을 지닌 지식인들은 인(仁)의 정신을 해명하고 실천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인을 추구하려는 마음에 너무 몰입하면 자칫 현실을 벗어날 우려가 있고, 반대로 일상에서 반드시 인을 실천하겠다는 자세는 조급증에 빠질 수도 있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더라도 사랑함을 표현하듯이 치고 빠지는 전략에 성공한 이가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자이다. 주자에게 있어 사랑이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자신을 직시하고 부딪치는 일상의 현실에서 내면의 울림대로 적절히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주자가 제시한 길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그 통로는 우리 마음속에 내재된 도덕성이라는 것이다. 공감을 통한 소통은 하나됨으로 이어진다. 연인처럼 친밀한 사이에서 서로를 부를 때 ‘자기’라 말하는 것은 상대방이 나의 확장이자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자기의 확대는 주변 모두를 자기로 만드는 과정이며 사적인 자기를 잊고 세상과 하나됨을 추구한다.
경쟁의 속도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경쟁의 출발점은 내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마음먹기에 따라 인생의 청사진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선현들이 배움의 출발선에서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다. ‘뜻을 세우라![立志]’ 그들에게 배움의 목적은 남보다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려는데 있지 않았다. 눈앞의 일상적 경쟁을 넘어선다. 천지를 위해 마음을 세우고, 백성들을 위한 표준을 세우며, 성현들을 대신하여 끊어진 학문을 이어가며, 먼 후세를 위해 태평을 열어 주려는 열망이었다. 즉, 공동선을 향한 굳건한 마음이 주변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고 당대를 넘어 후대까지 태평성대를 이어가는 토대를 마련함이다. 세속에 얽매이기 쉬운 마음을 털어내고 보다 큰 밑그림을 가슴속에 간직한 것이다. 때로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널리 혜택을 베풀어 대중을 구제하겠다는 박시제중(博施濟衆.사랑과 은혜를 널리 베풀어 여러사람을 구제함)과 같은 마음가짐이 뚜렷하게 있다면 내 주변의 고통을 쉽사리 외면하기 어렵다.
지식의 축적이 인격의 성장과 비례하지 않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배움이란 현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천적 지식으로 활용되어야 가치가 있다. 번지르한 말 속에 은근슬쩍 본질이 빠져서는 안 된다. 실질이 없는 빈말에 감동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상황에 적합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나뿐 아니라 나와 관계된 세상은 평화로워진다. 또한 그 자리가 공동체의 중심점에 가까울수록 그 파장은 커지므로 더욱 실질적이고 성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인상보다는 내면의 진정성에서 우러나오는 행위에 더욱 매력을 느낀다. 인상과 인성은 모음 하나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올바른 인성 함양은 나도 살고 남들도 살리는 변함없는 출발점이다. 글쓴이: 이천승/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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