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沙溪) 문원공(文元公) 김 선생(金先生.김장생 1548~1631)이 숭정 신미년(1631) 8월에 사계(沙溪)에서 돌아가셨다. 이미 장사 지내고 난 뒤에 문인(門人)과 제자들이 선생을 사모하는 마음을 붙일 곳이 없으므로, 사계에 있는 옛집의 왼쪽에 사우(祠宇)를 건립하였다. 그로부터 3년 만인 갑술년(1634)에 낙성하고, 5월 정해일에 의례(儀禮)에 따라 신판(神板)을 봉안하여 향사(享祀)하였다.
신독재(愼獨齋) 문경공(文敬公.사계의 아들 김집) 선생은 가정에서의 가르침을 어릴 적부터 들었는데, 문원공은 문경공에 대해 서로 간에 학문을 진전시키는 도움이 있다고 여겼으니, 이른바 부자(父子) 사이의 지기(知己)라고 할 만하였다. 그리고 문원공 때부터 후생(後生)들이 이미 문경공에게 사숙(私淑)하여 배웠으며, 문원공이 돌아가신 뒤에는 마침내 문원공을 섬기던 예로 문경공을 섬겨 그대로 고비(皐比.옛사람들이 호피를 깔고 앉아 강학하였으므로 후대에는 스승의 자리라는 뜻으로 쓰이게 됨)를 거두지 않은 것이 거의 30년이나 되었다. 이에 문경공이 돌아가시자 사당에 함께 배향(配享)하였는데, 그 위차(位次)는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보게 하였다. 그리고 제생(諸生)들이 거처하고 강습하는 규칙은 한결같이 문경공이 정해 놓은대로 하여, 장차 영구히 전해지되 폐단이 없도록 하였다.
대저 두 분 선생의 규모(規模)와 기상(氣象)은 후학이 감히 헤아려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나, 온 세상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으로 논해 본다면, 문원공은 장중하고 혼후하여 마치 땅이 바다를 싣고 있는 것과 같아서 그 끝을 헤아릴 수가 없고, 문경공은 자상하고 치밀하여 마치 정금(精金)이나 미옥(美玉)과도 같아 그 흠결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두 분 선생의 성덕(成德)은 각각 다르나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한결같이 고정(考亭.주자의 호) 주 부자(朱夫子.주자)에 근본하여 이른바 뜻을 세워 근본을 정하고, 경(敬)에 전력하여 뜻을 견지하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그것을 밝히고, 자신에 반성하여 그것을 채우는 것이었다. 이 네 가지는 대체로 일상생활에서 늘 필요로 하는 포백(布帛)이나 숙속(菽粟.콩과 조)과 같아서 일찍이 하루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즉 도에 나아감에 있어서는 대개 동일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후세의 학자들이 두 분 선생의 서로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비록 힘써 미칠 수 없는 것이나 서로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더듬어서 찾고 힘써 행하여 죽을 때까지 그만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두 분 선생의 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아서 사해(四海)에 기준하고 주자(朱子)에게 질정(質正)해도 될 것이다.
문원공의 휘는 장생(長生)이고 자는 희원(希元)으로 벼슬이 참판에 이르렀고, 문경공의 휘는 집(集)이고 자는 사강(士剛)으로 벼슬이 판부사(判府事)에 이르렀다. 두 분의 시호(諡號)는 다 효종대왕께서 내려 주신 것이다. 뒤에 문경공은 효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사당 앞에 강당(講堂) 다섯 칸이 있는데, 옛 하옥(廈屋)의 제도를 써서 지었다. 문원공이 일찍이 《의례(儀禮)》와 《주자대전(朱子大全)》을 고증하여 죽림서원(竹林書院)에 강당을 창건하였는데, 일체를 그 유법(遺法)에 따라 지었다. 그리하여 방(房), 실(室), 당(堂), 상(廂), 서(序), 점(坫), 요(穾), 이(宧), 오(奧), 루(漏), 의(依), 진(陳), 호(戶), 유(牖)를 갖추고는 이름을 ‘응도당(凝道堂)’이라 하였으니, 상고하지 못하였던 옛 제도를 손바닥을 보듯이 환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응도당 양쪽 곁에 재(齋)가 있는데, 좌측은 ‘거경재(居敬齋)’라 하고 우측은 ‘정의재(精義齋)’라 하였으니, 주자(朱子)의 회당(晦堂) 양쪽 협실(夾室)의 뜻을 취한 것이다. 또한 사면에는 담장을 두르고 문을 만들었으며, 문 좌우에는 글방이 있는데, 이는 와서 배우는 소자(小子)들을 거처하게 하는 곳이다.
금상(今上.현종)이 경자년(1660)에 돈암(遯巖)이라고 사액(賜額)하고 관원을 보내어 치제(致祭)하였으므로, 합해서 ‘돈암서원(遯巖書院)’이라 이름하였다.
숭정 기유년(1669) 8월 모일에 문인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우의정 겸 영경연감춘추관사 세자부(議政府右議政兼領經筵監春秋館事世子傅) 송시열(宋時烈)은 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