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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서당(以會書堂)

題黃裳幽人帖 (황상유인첩에 제함) - 정약용/다산시문집14권

작성자허현|작성시간22.04.03|조회수145 목록 댓글 0

 

《주역(周易)》이괘(履卦)가 무망(无忘)으로 변하는 효사(爻詞)에,

“유인정길(幽人貞吉)”하다고 한 것에 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간산(艮山)의 아래와 진림(震林)의 사이에서, 손(巽)방향에 은둔(隱遯)하여 천명(天命)을 우러러 순응하며, 간산에는 과일을 심기도 하고 진림에는 채소를 심기도 하면서, 큰 길을 밟으며 평탄하게 걷고, 천작(天爵.인간 본연의 덕성)을 즐기며 화락하게 생활하는 것이다.”

이것은 은사(隱士)의 느긋함이니 유인(幽人)의 일이 그야말로 길(吉)하지 아니한가. 하지만 하늘은 매우 청복(淸福)을 아껴서, 왕후(王侯) 장상(將相)의 귀(貴)와 도주(陶朱) 의돈(猗頓)의 부(富)는 세상에 거름과 흙처럼 널려 있으나 이괘(履卦) 구이(九二)의 길(吉)을 얻은 사람은 세상에 알려진 일이 없다. 옛 사람(도연명)의 기록에, 장차 전원(田園)으로 나아가려고 한다고 하였는데, 장차 나아가려고[就]한다는 것은 분명 나아간 것은 아니다. 탐진(耽津.전라도 강진)의 황상(黃裳)이 그 세목(細目)을 물어왔으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역을 선택할 때는 모름지기 아름다운 산수(山水)를 골라야 한다. 그러나 강을 낀 산은 시냇물을 낀 산만 못하며, 마을 입구에는 높은 암벽이 있고, 조금 들어가면 눈이 시원하게 확트인 곳이라야 비로소 복지(福地)인 것이다. 중앙에 국세(局勢)가 맺힌 곳에 초가집 3~4칸을 짓되, 나침반을 가지고 좌향(坐向)을 정남향으로 정하고 아주 정교(精巧)하게 지은 다음, 순창(淳昌)의 설화지(雪華紙)로 도배를 하고, 문미(門楣.문 위에 가로 댄 나무)에는 담묵(澹墨)으로 그린 산수화(山水畫)의 가로 그린 그림을 붙이고 문 곁에는 고목(槁木)과 죽석(竹石)을 그리거나 시를 쓰기도 한다. 방 안에는 서가(書架) 두 개를 놓고서, 1천 3~4백 권의 책을 꽂되 《주역집해(周易集解)》ㆍ《모시소(毛詩疏)》ㆍ《삼례원위(三禮源委)》와 고서(古書)ㆍ명화(名畫)ㆍ산경(山經)ㆍ지지(地志), 그리고 성력(星曆)의 법칙, 의약(醫藥)의 설명, 진련(陣鍊.진법과 훈련)의 제도, 군자(軍資)의 법식과 초목(草木)ㆍ금어(禽魚)의 계보(系譜), 농정(農政)ㆍ수리(水利)의 학설이라든가 기보(棊譜)ㆍ금보(琴譜) 등에 이르기까지 갖추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 책상 위에는 《논어(論語)》 1권을 펴놓고, 곁에는 화리목(花梨木)으로 만든 탁자를 두고서, 도잠(陶潛)ㆍ사영운(謝靈運)ㆍ두보(杜甫)ㆍ한유(韓愈)ㆍ소식(蘇軾)ㆍ육기(陸機)의 시와 중국의 악부(樂府), 그리고 열조(列朝)의 시집(詩集) 등 몇 질(帙)을 올려놓고, 책상 밑에는 구리로 만든 향로(香爐) 한 개를 두고 아침 저녁으로 옥유향(玉蕤香) 한 잎씩을 피우며, 뜰 앞에는 향장(響墻.가림벽) 한 겹을 쌓되 높이는 두세 자가 되게 한다. 그리고 담장 안에는 갖가지 화분을 놓되, 석류(石榴)ㆍ치자(梔子)ㆍ백목련(白木蓮) 같은 것들을 각각 품격(品格)을 갖추되, 국화를 가장 많이 갖추어 되도록이면 48종류의 구색이 갖추어져야만 비로소 겨우 구비되었다고 할 것이다.

뜰 오른편에는 조그마한 못을 파되, 크기는 사방이 수십 보 정도로 하고, 못에는 연(蓮) 수십 포기를 심고 붕어를 기르며, 별도로 대나무를 쪼개 홈통을 만들어 산골짜기의 물을 끌어다가 못으로 대고, 넘치는 물은 담장 구멍으로 남새밭에 흘러 들어가게 한다. 남새밭을 수면(水面)처럼 고르게 다듬은 다음 밭두둑을 네모지게 분할하여 아욱ㆍ배추ㆍ마늘 등을 심되 종류별로 구분하여 서로 뒤섞이지 않게 하며, 씨를 뿌릴 때는 고무래로 흙덩이를 곱게 다듬어 싹이 났을 적에 보면 마치 아롱진 비단 무늬처럼 되어야만 겨우 남새밭이라고 이름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오이도 심고 고구마를 심어 남새밭을 둘러싸게 하고 해당화 수십 그루를 심어 울을 만들어서 진한 향기가 늦은 봄 초여름에 남새밭을 돌아보는 사람의 코를 찌르게 한다.

뜰 왼편에는 사립문을 세우되 쪼갠 대나무를 엮어 사립짝을 만들고, 사립문 밖으로 산 언덕을 50여 보쯤 올라가서 석간(石澗) 가에 초각(草閣) 한 칸을 짓고 대나무로 난간을 만들며, 초각 주위에는 무성한 숲과 길게 자란 대들을 모두 그대로 두어 가지가 처마에 들어오더라도 꺾지 않고 그대로 둔다.

그리고 개울을 따라 1백여 보쯤 가서 좋은 전답(田畓) 수백묘(數百畝)를 장만해 두고 늦은 봄철마다 지팡이를 끌고 전답 가에 나가 보면 못자리의 새 싹이 파랗게 돋아나 푸른 빛이 사람을 엄습하여 한 점의 티도 없다. 그러나 몸소 농사에 손대지는 않는다. 또다시 개울을 따라 두세 궁(弓.여섯 자 되는 거리) 남짓 나가서 큰 못이 하나 있는데 둘레는 5~6리가 되게 하고, 못 안에는 연과 가시연이 덮여 있다. 거룻배 하나를 만들어 그 위에 띄워놓고 달뜨는 밤마다 시호(詩豪)며 묵객(墨客)을 데리고 배를 타고 퉁소(洞簫)를 불며, 거문고를 타면서 못을 3~4바퀴 돈 다음 술에 취해 돌아온다.

그 못에서 몇 리를 가서는 작은 절 한 채가 나오는데 그 안에는 명승(名僧) 한 사람이 있어서 참선(參禪)도 하고 설법(說法)도 하며, 시를 즐기고 술도 좋아하여 중의 계율(戒律)에 구애받지 않는다. 때때로 그와 오가면서 세정(世情)을 잊고 유유 자적하게 지낸다면 이 역시 기쁠 것이다.

당(堂) 뒤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용이 휘어감고 범이 움켜잡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고, 소나무 밑에는 백학(白鶴) 한 쌍이 서 있다. 그리고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작은 밭 한 뙈기를 마련하여, 인삼ㆍ도라지ㆍ천궁ㆍ당귀 등을 심고, 소나무 북쪽에는 작은 사립문이 있어서 이곳으로 들어가면 잠실(蠶室) 3칸이 나오는데, 이곳에 잠박 7층을 설비해 두었다. 낮차[午茶]를 마시고 잠실로 들어가 아내에게 송엽주(松葉酒) 몇 잔을 따르게 하여 마신 다음 방서(方書.누에 기르는 법을 기록한 책)를 가지고 아내에게 누에를 목욕시키고 실을 뽑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서는 서로 쳐다보고 웃는다. 그런 다음에는 문 밖에 징서(徵書.조정에서 벼슬하라고 부르는 글)가 왔다는 소리가 들려도 빙그레 웃기만 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이 곧 구이(九二)의 길(吉)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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