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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서당(以會書堂)

장춘정기(藏春亭記) - 기대승/고봉집2권

작성자허현|작성시간26.02.22|조회수48 목록 댓글 0

 

천지의 조화는 한 번 숨 쉴 때에도 머무르지 아니하여 오는 것이 무궁하다. 만물이 형체를 가지고 예와 지금에 유행하는 것은 반드시 그러한 소이연의 이치가 있는 것이다. 1년을 가지고 말한다면 봄은 여름이 되고, 여름은 가을이 되고, 가을은 겨울이 되고, 겨울은 또 봄이 된다. 절기가 바뀌고 한서(寒暑)가 교체하면서 생물들의 피어나고 시들며 사라지고 자라나는 것은 형세가 마치 재촉하는 바가 있어서 그러지 않고는 못 견디는 듯하니, 여기에 또한 그러한 소이연이 있는 것이다. 이 이치를 군자는 찾아보아서 그 마음을 다하고, 소인은 이것을 몰라서 그 생활에 얽매인다. 이것을 모르는 것을 편안히 여기지 아니하여 이것을 찾는 데 이르려고 노력하고, 생활에 얽매이는 것을 불만스럽게 여겨서 진심(盡心)의 도리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자가 있다면, 그 또한 가상할 것이다.

전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 유군 중한(柳君仲翰)이 죽포(竹浦)의 굽이에 정자를 세웠는데, 돌을 베개로 삼고 맑은 물을 굽어본다. 높은 바위가 좌우에 늘어서 있고 무성한 숲이 비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 아름다운 화목(花木)들을 나란히 심어 놓고는 그 현판에 써 붙이기를 ‘장춘정(藏春亭)’이라 하였다.그리고 또 정자의 서쪽 노는 땅을 개척한 뒤 작은 집을 짓고 ‘매귤(梅橘)’이라 써 붙였는데, 모두 난간을 세우고 단청(丹靑)을 입혀서 영롱하고 완연하며 아늑하고 상쾌하여 별천지와 같다. 이에 여러 명승지에 대해 쓴 시편(詩篇)을 판각(板刻)하여 편액을 걸고, 아울러 나의 기문(記文)을 걸어 놓으려고 하였다. 나는 군(君)에게 말하였다.

“1년의 봄은 3개월에 그칠 뿐인데 지금 ‘봄을 감추어 보관하였다[藏春]’ 하였으니, 이에 대한 설명이 있겠는가?” 유군이 말하였다.

“그러하다. 4시(時)와 8절(節), 24기(氣)와 72후(候)가 1년 가운데 돌고 있으며 육합(六合) 밖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사람들은 다 측량하지 못한다. 다만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아 기억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동풍이 불어 얼음이 풀리면 숨어 있던 벌레들이 비로소 나오는데, 소양(小陽)의 기운이 모두 지상(地上)에 통달한다. 그리하여 복사꽃이 비로소 피고 꾀꼬리가 욺에 이르면, 천지의 원기(元氣)가 가득하고 온갖 꽃들이 꽃봉오리를 드러낸다. 아름다운 숲은 땅에 덮여 있고 꽃들이 울긋불긋 곱게 피니, 산은 마치 단장하여 화려한 듯하고, 물은 마치 담박하여 멀리 있는 듯이 보인다.한낮의 햇빛은 더욱더 눈부시고 푸른 하늘은 더욱 넓으니, 이것은 바로 봄 한때의 좋은 기회로, 옛사람들이 시름을 잊고 감상했던 것은 진실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맹꽁이가 한 번 울어 축융(祝融.火神으로 南方과 여름철을 맡았다)이 때를 다스리게 되면 지난번 봄이었던 것이 바뀌어 여름이 된다. 그러하니 봄은 진실로 감추어 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독 내 정자만은 그렇지 않다. 기이한 화목(花木)이 무려 수십 종(種)이 모여 있는데, 종류마다 각기 수십 그루가 된다.그리하여 뿌리가 서려 있고 잎이 맞닿아 있으며, 가지가 어우러져 있어서 붉은 꽃이 지면 흰 꽃이 남아 있고, 청백색의 꽃이 드리워 있는가 하면 노란 꽃이 피어 있으니, 비록 시절이 바뀌어도 꽃이 피는 것은 쇠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겨울에도 푸르른 나무가 있어서 처마 가에 푸름을 나타내고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있으며, 왕왕 외로운 향기를 풍기는 차가운 꽃이 햇볕에 예쁘게 피어 봄기운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내 정자에 들어오는 자들은 항상 봄의 기운이 이 사이에 있는 듯이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의 정자를 ‘장춘정(藏春亭)’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옛날에 조경순(刁景純.북송의 문장가 조약)이 장춘오(藏春塢.서재 이름)를 만들자,동파(東坡) 소자(蘇子.蘇軾)는 〈장춘부(藏春賦)〉를 지어 실증하기를 ‘나이는 조화의 도견 밖에 버리고, 봄은 선생의 장구 안에 있다[年抛造化陶甄外 春在先生杖屨中].’ 하였으니, 그 말이 이에 가깝지 않겠는가. 나는 이 때문에 옛사람에게서 증명되는 것이니, 그대는 어떠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대의 말은 좋다고 이를 만하나 아직 부족하다. 큰 조화에 따라 추이(推移)함은 형상이 있는 물건으로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봄은 4월 이후에는 진실로 사라져서 다하니, 어찌 유독 그대의 정자에만 봄을 감추어 둘 수 있겠는가. 비유하면 사람이 나이가 이미 들면 비록 다시 얼굴이 붉고 머리가 검으며 근력이 조금도 감함이 없더라도 그 젊은 기운은 오래전에 이미 변한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억지로 소년이 머물러 있다고 여긴다면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장생(莊生.莊周)의 말에 이르기를 ‘강 골짝에 배를 감추어 두고 늪 속에 산을 감추어 두고는 견고하다고 이르나, 한밤중에 힘 있는 자가 지고서 달아나더라도 지혜가 어리석은 자는 이것을 알지 못한다.’ 하였으니, 그대가 말한 ‘감추어 두었다’는 것은 이와 유사하지 않겠는가.

봄은 조화의 자취이니, 조화는 무심하여 만물에 맡겨 주고 사사로이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감추어 둘 수가 없는데 하물며 높은 공명(功名)과 부귀(富貴), 풍요로운 금은보화와 곡식ㆍ비단 등으로서 파괴되기 쉬운 물건이며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것에 있어서이겠는가. 그 화려하고 빛나고 많이 쌓아 놓기를 일찍이 며칠이나 하였다고 변하여 먼지가 되고 날아가서 바람이 되어 별안간 삽시간에 없어지고 마니, 굳이 붙잡고 연연해할 것이 없다. 지난번에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뼈와 힘줄을 괴롭게 하여 급급히 구하고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던 것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니, 슬프지 않겠는가. 또 무엇을 감춰 둘 것이 있겠는가.” 유군이 말하였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대답하였다.

“내 들으니 회암(晦庵) 선생이 일찍이 인성(人性)의 사덕(四德)을 논하면서 하늘의 사시(四時)를 인용하여 증명하였다. 그 말씀에 이르기를 ‘봄에는 봄기운이 생기고 여름엔 봄기운이 자라고 가을엔 봄기운이 성숙하고 겨울엔 봄기운을 간직해 둔다.’ 하였으니, 하늘의 성정(性情)은 비록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에 따라 낳고 자라고 거두고 감추는 등의 각기 다른 명칭이 있으나, 봄이 만물을 낳는 기운은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사람의 성정은 비록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에 따라 측은(惻隱)ㆍ수오(羞惡)ㆍ사양(辭讓)ㆍ시비(是非)의 각기 다른 명칭이 있으나, 측은지심(惻隱之心)은 관통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사람이 만일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진리를 알아 돌이켜 찾는다면 감춰 둘 수 없던 봄이 진실로 나에게 있지 않은 적이 없는 것이다.이에 살펴보아서 그 마음을 다한다면 또한 가능하겠는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유군이 말하기를 “옳다. 옳다.” 하였다. 인하여 위에서 말한 것을 차례로 적어 장춘정 기문(記文)으로 삼는다.

 

 

註: 회암은 송대 성리학자 주희(朱熹)의 호이며, 인성(人性)의 사덕(四德)은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의 본성을 가리킨다. 《주역》〈건괘(乾卦) 괘사(卦辭)〉에 “건(乾)은 원(元)과 형(亨)과 이(利)와 정(貞)이다.” 하였는데, 주자는 “원ㆍ형ㆍ이ㆍ정은 천도(天道)의 떳떳한 원리(原理)로서 사람이 이것을 받아 인ㆍ의ㆍ예ㆍ지의 본성으로 삼은 것이다.” 하였으며, 이것을 다시 분석하여 “원은 사시(四時)에 있어서는 봄이 되고 인성에 있어서는 인이 되며, 형은 사시에 있어서는 여름이 되고 인성에 있어서는 예가 되며, 이는 사시에 있어서는 가을이 되고 인성에 있어서는 의가 되며, 정은 사시에 있어서는 겨울이 되고 인성에 있어서는 지가 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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