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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서당(以會書堂)

동래박의 서문 [東萊先生左氏博議序]

작성자허현|작성시간26.06.06|조회수28 목록 댓글 0

 

《좌씨박의(左氏博議)》는 학생들의 과시(科試)를 위해 지은 것이다. 처음 내가 동양(東陽)의 무천(武川)에 은거할 때는, 위로는 수림(樹林)만 보이고 아래로는 계곡만 보일 뿐, 방문을 나와 아득히 바라보아도 오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다.그러다가 반년이 지나자, 마을 사람들이 차츰 풀을 헤치고 찾아와서 나와 교유하였다.

담화하는 사이에 과시문(科試文)을 언급하기에 나는 그들의 필단(筆端)을 돕기로 생각하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치란(治亂) 득실(得失)의 사적(史蹟)을 뽑아 기록하고서 그 밑에 논설(論說)을 붙이기 시작하였는데, 날이 쌓이고 달이 쌓이자 점차 여러 권의 책이 되었다.

제생(諸生)이 명절때나 휴가를 받아 돌아갈 때면 반드시 이 책을 베껴 짐 속에 넣어 가지고 갔기 때문에, 돌아가는 자들의 행장(行裝)을 열어보면 이 책이 없는 자가 없었다. 또한 이웃에 사는 인척들이 이 책을 널리 전파하여 책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니 너무 많이 전파되어 회수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이가 내가 말을 쉽게 한다고 나무라기에 내가 천천히 대답하였다.

“그대 또한 병을 앓는 이웃 사람이 의사를 찾는 일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깊이 숨긴 고질병은 사람들이 말하기 부끄러워 숨기는 것인데, (이웃의 병자는) 그 병을 대로가에 게시(揭示)하고서 지나는 자들이 보지 않을까, 본 자가 널리 전파하지 않을까만을 걱정한다고 하니, 저 사람이 어찌 뻔뻔스럽게 부끄러움을 잊어서이겠습니까? 덕(德)은 내면(內面)에 축적하려 하고 병(病)은 외부에 드러내려 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무리를 떠나 외로이 생활한 지가 여러 해 되다 보니, 허물이 있어도 나를 보완해주는 이가 없고, 넘어져도 나를 잡아주는 이가 없으며, 용심(用心)의 잘못과 견문(見聞)의 오진(誤謬)를 바로잡아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이 책을 통해 마음속에 보존한 생각, 지키고 있는 의지(意志), 알고 있는 지식, 익힌 일들을 일정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서술하여 털끝만 한 잘못까지 모두 드러내고 숨기지 않았고, 또 다행히 과시를 매파(媒婆)로 삼고 선비를 우체부(郵遞夫)로 삼아 여러 장자(長者)들 곁에 두루 이 책을 전하게 되었으니, 어떤 이는 (이 책을 보고서) 가엾게 여겨 가르쳐줄 것이고, 어떤 이는 화를 내어 나무랄 것이고, 어떤 이는 업신여겨 꾸짖을 것입니다. 한 마디 말을 들으면 한 가지 병을 고칠 수 있으니 얻는 것이 어찌 많지 않겠습니까? 더욱 널리 전해질수록 병이 더욱 드러나고 이익이 더욱 많아질 것이니 나에게 무슨 손해가 되겠습니까?” 그리고서 드디어 이 말을 차례로 서술하여 이 책을 보는 이들에게 告하노라.

대체로 《춘추(春秋)》 경문(經文)의 뜻은 대략이라도 감히 참람하게 논하지 않았고, 전문(傳文)의 지엽적인 말과 군더더기 말만을 뽑아 논술한 것은 거자(擧子)들의 과시(科試)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동래(東萊) 여조겸(呂祖謙) 백공(伯恭)은 서문을 쓰다. 

출전: 동양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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