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찍이 한가롭게 지낼 때, 새가 구름 위를 날고 물고기가 시냇물에서 헤엄치는 것을 고요히 관찰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기상이 있었다. 이로써 천지간에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이 저마다 자신의 본성을 이루지 않음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늘이 나에게 부여해 준 것을 그 본성에 따라 닦아 나간다면, 비단 자신의 본성을 이룰 뿐만 아니라 마땅히 그 본성을 온전히 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 조정에 나아가 벼슬하지 않는다면 산림(山林)에 은거할 뿐이다. 이는 세상을 구제하는 것[兼善]과 나 홀로 선을 닦는 것[獨善]의 분수이니, 그 본성을 이루는 점에 있어서는 한가지이다.
우리 무리의 선비 중에 이홍석(李洪錫)이라는 이가 있다. 그는 영남 산남(山南)의 의춘(宜春 지금의 의령) 고을에 살면서, 대대로 조상의 가업을 지키고 독서를 좋아하며 자신의 뜻을 돈독히 행하고 있다. 바위 동굴과 샘물 사이에서 스스로 유유자적하더니, 이에 도현(陶峴) 아래 문곡(文谷) 가운데에 초가집 몇 칸을 지었다.
못을 파서 물고기를 기르고 화초와 나무를 줄지어 심었으며, 칡베 두건을 쓰고 쑥대 띠를 띠고서 그곳에서 놀고 쉬기도 한다. 낮에는 마을의 수재(秀才)들과 더불어 학업을 익히고 글을 논하며, 좋은 벗들이 무리 지어 찾아오면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으며 물고기와 과일을 차려내어 그들을 즐겁게 해 준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읊조리고 세속의 염려를 잊어버리니, 숲과 들판 바깥에 다시 무슨 더 대단한 일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스스로가 즐거워하는 바를 즐기고 있다. 내가 그의 높은 뜻을 가상히 여기어 이 글을 써준다.
余嘗於閒居時。靜觀鳥雲飛而魚川泳。有活潑潑氣像。乃知兩儀間羣動之物。莫不各自以遂其性。况人其靈者也。天所以賦予於我者。率性而修之。則非惟遂其性。亦當盡其性。然士生斯世。不立身於朝則山林而已。此兼吾獨善之分。卽其遂性均也。吾黨之士。有李生洪錫者。居在山南之宜春鄕。世守箕裘之業。好讀書。篤行己志。自適於巖穴石泉之間。乃構茅棟數間於陶峴之下文谷之中。鑿池種魚。卉木成列。葛巾蘿帶。游焉息焉。日與村秀才子講業論文。良朋萃至則殺鷄爲黍。陳魚果以娛之。吟弄風月。消遣世慮。不知林樊之外。更有甚事在。而樂其所自樂者。余嘉其志而書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