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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서당(以會書堂)

좌상 김종서의 건치육진소(建置六鎭疏) 뒤에 쓰다[書金左相建置六鎭疏後] - 유성룡/서애선생문집18권

작성자허현|작성시간26.06.19|조회수24 목록 댓글 0

 

조선의 이름난 재상으로서 공적이 두드러진 인물은 김종서(金宗瑞)뿐이다. 공의 공적은 육진(六鎭)을 설치한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지금 이 상소를 보니 배치가 굉장하고 논의가 광범위하여, 세상의 범부나 어린아이의 적은 지혜와 얕은꾀로 입만 가지고 때워 국가의 일을 망친 자들이 기가 막혀 주둥이를 감히 벌리지 못하게 하였으니, 또한 일대의 뛰어난 인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세종이 사람을 잘 선임하여 이룩하도록 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년이 되어서는 재상의 공적이 위태로움에 도움 없고 헛되이 죽었으니(수양의 일파에 피살됨) 어찌된 일인가? 옛말에 이르기를, “자[尺]도 짧은 데가 있고 치[寸]도 긴 데가 있다.” 하더니 정말 그런 것이다. 그러나 가령 공의 재주가 오늘날에 있었다면 볼만한 것이 있으리라. 남긴 글을 세 번쯤 되풀이하여 보면 구원(九原)에서 살아나기 어려운 탄식이 있다. 아, 슬프도다.
만력 무술년(1598) 5월 18일에 운암거사(雲巖居士)는 한양의 우사(寓舍)에서 쓴다.

國朝名卿。以功業顯者。惟金公宗瑞。公之功業之盛。莫過於建置六鎭。今觀此疏。布置宏遠。論議恢張。使世之庸夫孺子小智淺慮。取辦口頭。沮敗人家國事者。氣索而不敢容其喙。亦可謂一代之奇才。而實 世廟之善任。有以致之也。至於末年相業。無補顚危。徒然一死。何歟。語云尺有所短。寸有所長。信矣。然使公之才在今日。必有可觀。三復遺編。有九原難起之歎。嗚呼悲夫。萬曆戊戌五月十八日。雲巖居士題于漢陽之寓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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