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에게 와서 배운 지가 거의 3년이 되었으니, 너의 뜻은 매우 근면하였다. 그러나 내가 오랜 고질병으로 정력이 소진(消盡)되어 나 자신을 돌보기에 정신없다 보니, 이미 너의 모범이 되지 못하였고, 또 엄하게 가르치지도 못하였구나. 그러므로 너의 언동(言動)이나 학업(學業)이나 용지(容止)가 여전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위안하거나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할 만한 점이 없으니, 이것이 어찌 너의 부모가 애틋한 정을 억제하고 의리를 보여 천리 밖의 나에게 보낸 뜻이겠느냐. 이것이 모두 스승이란 내가 변변치 못하여 잘 교도(敎導)하지 못한 죄이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의 자질이 본래 선(善)을 할 수 없는 자는 아니다. 그러나 동심(童心)을 버리지 못하고 못된 버릇이 고질이 된 탓에 어른 앞에서는 언행(言行)을 약간 삼가는 척하다가도 문을 나가면 이내 딴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이미 부지런히 독서를 하지 않는 데다가 또 행동마저 단아(端雅)하지 못하여, 실없는 말과 행동이 방자하고 경망하므로 매양 동료들의 천시(賤視)를 당하면서도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각오로 마음을 고쳐먹고 분발할 줄을 모르니, 이것이 어찌 나 혼자만의 죄이겠느냐.
이제 네가 돌아가서 무슨 낯으로 너의 부모를 뵙겠으며, 또 무슨 낯으로 너의 마을 사람을 대하겠느냐. 너의 나이가 장차 16세가 될 것인데도 계속 이처럼 산만하게 지낸다면 수년 뒤에는 틀림없이 시골의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그때 가서 아무리 후회한들 소용없을 것이니, 아, 두려운 일이다.
현재 황계(黃溪)에서 서당(書堂)을 열고 경전(經典)을 강론(講論)하는 큰 스승이 있으니, 네가 만약 책을 싸 가지고 가서 견식(見識)을 계발(啓發)한다면 매우 좋겠다. 그러나 형편이 곤란하여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면 부디 황랑(黃郞.黃世楨)과 더불어 책상을 맞대어 학문을 익히고 연마(硏磨)하되, 소학(小學)을 가지고 날마다 수십 줄씩을 익히고는 한 글자 한 글귀마다 모두 실천하기를 구하고, 그런 다음 논어(論語)를 공부하되 날마다 50 또는 60줄씩을 외고, 여력이 있거든 또 맹자(孟子)를 익히고서, 이 책들을 돌려가며 숙독(熟讀)해서 마치 내 말처럼 외도록 하여라. 입으로 읽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마음으로 체득하고, 마음으로 체득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힘써 행하여, 반드시 기질을 변화시키기를 목표로 삼아서, 일상 생활 사이에 한 마디 말이나 한 가지 행동을 할 적마다 반드시 먼저 ‘이것이 과연 의리에 합당한가, 우리 아버지와 스승께서 들으시면 무어라고 하실까?’를 생각하여, 조심하고 경계해서 마음을 다잡아 매진하도록 하여라.
이렇게 하고서도 마음이 열리지 않고 학문과 행실이 진보되지 않아 선인(善人)이 되지 못한 사람은 고금에 일찍이 없었다. 부모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마을 사람들도 영광으로 여길 것이니, 이렇게 실천해 나아간다면 앞으로 한없는 좋은 일이 있을 것인데, 무엇이 두려워 하지 않는지를 모르겠구나.
아, 덧없는 세월은 나를 위해 기다려 주지 않고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란다. 나 역시 이 일에 뜻이 없지는 않지만 병 때문에 어찌해 볼 수가 없구나. 지금 이 글을 써서 너를 격려하면서 이어 나 스스로를 가여워한다. 무인년(1638 인조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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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봉허봉섭 작성시간 14.03.13 허현 가페지기께서 종중일에 많은 공을들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굴은 모르지만 후손으로써 감사의 말씀 전해드리고 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 드리겠습니다
컴퓨터를 자주 접하는 직업이 아니라서 독수리 타법으로 올림을 양지하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허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3.14 고맙습니다 동주사공파 영주,고성,단양,제천,예천,밀양,구성(북한)지역출신 후손들은 모두가 일가입니다.
위 글을 쓴 동춘당(同春堂) 송준길은 문묘(文廟)에 배향된 해동18현(海東十八賢)의 한 사람이며 송시열(宋時烈)과 더불어 서인 노론의 인물입니만 남의 자식을 끝까지 배움으로 이끄려는 글(書)이 인상적입니다.